안일함을 탐하다가 초래한 뼈아픈 교훈

2025.4.18

2017년 말,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리더 본분을 이행해 본 적이 없던 저는 다소 부담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과 은혜가 있었음을 알았기에 마음속으로 기꺼이 협력하길 바랐습니다. 그때는 형제자매들이 문제에 직면하면, 저는 하나님께 기대어 진리 원칙을 구하여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아주 늦은 시간까지 바쁠 때도 있었지만, 전 고생스럽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교회의 여러 사역에 진전이 있었고, 저는 본분 이행과 관련한 원칙을 조금은 파악했으며 그러자 부담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2021년 3월이 되었습니다. 교회 사람이 많아지면서 협력해야 하는 사역도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저는 점점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와 협력하던 징위안 자매는 새신자로 아직 사역을 잘할 줄 모르는 상태였고,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쉽게 소극적으로 변해 교회의 사역은 대부분 제가 맡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징위안이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아 사역을 맡지 못하는 것이니 제가 조금 더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낮에는 예배 이행 사역과 형제자매의 문제 해결에 매진했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서 사역의 오류나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자 저는 리더라는 직책이 너무 고생스럽고 힘들며 조금도 쉴 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원래 몸도 좋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암에 걸렸다가 회복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의사는 저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매일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 병이 재발하는 것 아닐까? 그때가 되면 육적으로도 고통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직면할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는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리더 본분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수월한 본분으로 바꾸어 스스로에게 좀 더 휴식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몇 번이나 사직서를 쓰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교회에는 지금 리더를 할 만한 적합한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관둔다면 교회 사역은 어쩐단 말입니까? 그 후 복음 사역을 실행하다가 형제자매들 속에 수많은 그릇된 관점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초반에는 제가 노력해서 교제로 해결해 주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복음 사역의 성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신경 쓰고 대가를 치르며 오류를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복음 대상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면 계속 점검하고 해결해 주어야 하고 해야 할 사역이 많다는 것을 떠올리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사역이 이미 너무 많아. 이렇게 바쁜데 이걸 다 어떻게 하겠어? 나중에 몸이 아파서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몸은 내 것이니까 조금 쉬엄쉬엄해야겠어. 이렇게 무리해서는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그저 간단히 복음을 전할 대상이 있는지 물어만 보고, 도리 몇 마디만 가르친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부 리더가 편지로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는 것은 분명 리더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괴로웠습니다. 속으로 ‘복음 사역은 내가 맡은 일이야. 성과가 없는 건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답답함도 느꼈습니다. 차라리 단일 사역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새신자를 양육하는 일을 맡으면 조금 더 마음이 가볍고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리더로 일하는 건 너무 힘겨웠고,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책임도 져야 하니 저는 서둘러 책임을 통감하고 관두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부 리더를 볼 때마다 어려움과 힘듦을 토로하며 스스로 자질이 부족해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없으니, 이 리더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을 지체하고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게 되니 악행을 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리더는 제 사직에 동의하지 않았고, 교제로 저를 도와줬습니다. 저는 제 문제는 자질 부족이 아니라 육적인 것을 지나치게 생각한 데 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육적으로 고통받을 것을 생각하면 힘들어 몸이 망가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고질병이 재발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 속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 복음 사역을 담당하는 자매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교회의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는 것은 자매님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어요.” 저는 여전히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 이유와 핑계를 대며 제 자질이 부족하니 사역을 맡을 역량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도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굉장히 수동적이었습니다.

2021년 6월 어느 날, 저는 예배드리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 순간 전 하나님의 채찍질이 저에게 임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전 본분을 이행할 때 매우 수동적이었고 늘 육적인 것을 좇아 관두려고 했으며, 리더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경을 통해 저의 본분 이행 자격을 거두신 것 같아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저는 금세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와 체포를 피하고자 저는 당분간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고,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속으로 너무 고통스러웠고, 매우 소극적으로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처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드러내시고 필요로 하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고 나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어떤 일을 통해 너를 드러내거나 징계한다. 이것이 너를 도태시킨다는 의미겠느냐? 네 말일이 도래했다는 의미겠느냐? 그렇지 않다. … 사실, 많은 경우에 사람의 걱정은 자신의 이익에서 비롯된다. 크게 보면 훗날 결말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고 도태시켜 버리시면 어떡하지?’라고 늘 생각한다. 이는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으로, 네 일방적인 생각이다. 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도태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결함을 폭로하고, 사람의 잘못을 폭로하고, 사람의 본성 본질을 폭로해서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고 진실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하나님을 오해해서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자포자기하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드러내는 것은 반드시 도태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고 회개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거역하고, 패괴를 드러내고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사람을 드러내어 그 추한 행동, 가련한 모습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하도록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즉, 악인을 드러내는 것은 도태시킨다는 뜻이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를 파악해서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니 더는 제멋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일깨우고 경고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본분을 되는대로 이행하고, 또 전혀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서 작은 성과에 만족하고, 그러면서 본분 이행이 합격이라고 착각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사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판단했을 때는 아직 거리가 먼데도 사람은 스스로 만족하고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징계하고, 일깨우고, 경고할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사람의 추한 행동을 드러내는데, 이는 분명 사람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이때 너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네가 그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불합격이다. 네 내면에 패역이 있고 소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언제나 대충 건성으로 넘긴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벌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고 드러낸다고 해서 반드시 도태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니 이 일을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설령 도태되더라도 너는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얼른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제 오해를 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체포되어 본분을 잃은 것이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통해 저를 드러내시고 도태시키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환경에 맞닥뜨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시고 저에게 경고하시며,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과거 본분을 이행할 때를 떠올려보면, 전 늘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했고 안일함을 탐하며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아 사역에 방해만 가져왔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없었더라면, 전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며 계속해서 가벼운 태도로 본분을 대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사역에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줘 하나님을 분노케 하여 정말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스스로 깊이 반성하고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더는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반성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려 제가 이번 사건에서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며 간구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늘 수월하고, 힘들지 않고, 몸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 고른다. 이는 몸을 사리는 것이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또 있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힘들고 고생스럽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늘 불평을 합니다.) (평소에 먹고 입는 것, 육적인 즐거움을 중요시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너무 힘들고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편한 일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질이 부족하고 사역 능력이 없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상 그것은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고생하기 싫어한다. … 이 밖에도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렵다고만 하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쉬거나 잡담하거나 여가를 즐긴다. 사역이 바빠져서 생활 리듬과 규칙이 깨지면, 언짢아하면서 불만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 교회 사역이 아무리 바빠도, 본분이 아무리 바빠도 그 자신의 생활 규칙이나 평소의 생활 상태는 전혀 깨지 않으며, 자신의 육적인 생활의 어떤 세부 사항도 그는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 적절하게 관리한다. 무척 엄격하고, 또 무척 진지하게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 집의 사역을 대할 때는 아무리 큰 일이라도, 설령 형제자매들의 신변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대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부탁이나 그 사람 개인이 이행해야 할 본분과 관련이 있어도 그는 전혀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이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얘기만 꺼내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불평을 가득 늘어놓으며 소극적으로 군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쓸모가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으니 도태돼야 마땅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의 유대를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이 네게 어떤 일을 하라고 맡기고 어떤 본분을 주었을 때 네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네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바로 이런 문제이다. 하나님은 너의 태도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빨리 하나님에게 너의 태도를 밝히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이 핵심을 잡고 하나님이 맡긴 부탁을 제대로 완수한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정상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사역을 맡기거나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라고 했는데, 네가 무성의하고 진지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이는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과는 상반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분명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네 본분 이행은 분명 합격일 수 없다. 그러므로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는 정말 중요하며, 선택하는 방식과 길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본분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도태되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자 마음에 찔리는 듯했고, 하나님께서 직접 저를 심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탁하신 것은 사람이 성심성의껏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는 가벼웠고, 자신의 책임을 전혀 다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이 바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면 더 많이 마음을 쓰고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저는 안일함을 탐하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책임을 통감하며 관둠으로써 본분을 떠넘기려 했습니다. 제가 처음 리더 본분을 맡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때도 일은 많았지만, 저는 하나님께 기대어 실질적으로 대가를 치렀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끌어 주셨으며 사역도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교회에 사람 수가 많아지자, 교회 여러 사역을 제가 직접 해야 했고, 밤낮없이 너무 바빠지자 저는 육체적으로 너무 고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암이 재발할 것을 우려하며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복음 사역에 발전이 없자 저는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며 제가 자질이 부족하여 맡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이를 미루고 쉬운 본분을 찾을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대가를 치르고자 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귀찮은 것을 두려워하며, 신경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형제자매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힘들어 망가질 것에 지레 겁먹고, 사역 속도가 느린 것을 뻔히 보고도 신경 쓰지 않아 결국 복음 사역은 몇 개월간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지나치게 안일함을 탐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자매의 책망 앞에서도 저는 반성하지 않고, 제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저의 이런 태도는 정말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살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환경을 통해 제 본분을 멈추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정확히 나타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통해 저를 드러내고 도태시키신다고 생각하며 오해 속에 살았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진심 어린 배려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저는 하나님께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며 육적인 것만 좇았습니다. 힘든 것이 두려운 마음에 조금도 당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패역을 깨달았습니다. 회개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저는 당신의 뜻을 헤아려 더는 육적인 안일함을 탐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 저는 차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왜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다가 어려움에 직면하면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며 협력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런 사람은 안일함을 탐하는 자로 돼지나 다름없으며 배불리 먹고 잠만 잘 줄 알고 긍정적인 추구는 전혀 없다고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빗대어 보며 제가 그런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리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저에게 훈련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며,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진리를 추구하여 사역을 맡아 책임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리더를 하면 걱정이 많고, 고생할 것이 많다는 생각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어 제가 고생과 대가를 치르며 협력해야 함에도 육적인 것을 좇으며 힘들면 암이 재발할 것을 걱정했고, 늘 핑곗거리를 찾아 관둘 생각만 했습니다. 저에게서 조금의 양심도, 책임감도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대충했고,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결국 복음 사역에는 발전이 없었습니다. 전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 사역을 지체한 것입니다. 저야말로 이기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과거 교회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사역 프로젝트는 많았고, 사역하다가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가를 치르고 협력하자,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사역에서도 성과가 나타났고, 저 또한 일부 진리 원칙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아진 후에도 똑같이 사역에서 문제가 조금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대가를 치르며 진리를 구하여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스스로 힘들어 무너질 것을 두려워했으며 결국 사역에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고, 저도 아무런 진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저의 패괴된 성품을 정결케 하시고 바꾸시기 위해 저에게 여러 가지 환경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움에 봉착하여 육적인 고통과 관련되자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로써 저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손실을 줬고 과오를 남겼습니다. 전 큰 자책감에 휩싸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싶다며 기도드렸습니다.

기도 후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맞습니다. 저는 가벼운 마음과 반발심을 가진 채 본분을 대했으며,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이건 심각하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며 유다보다 더 비통한 것입니다. 과거 유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 예수를 팔았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리 많은 도리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는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진리도 깨달았으며 일부 진리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았고, 육적인 것을 좇아 교회 사역에 무책임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유다보다 더 혐오스럽지 않겠습니까?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려했던 것은 제 육체밖에 없습니다.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만을 찾아 교회의 사역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 행위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사실 제가 본분 이행에 조금 더 신경 쓰고 노력하며 대가를 치렀다면 복음 사역이 몇 달 동안 아무 성과가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본분을 소홀히 대했고, 복음 사역을 지체했습니다. 이건 심각한 잘못입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살만한 제 본분 이행 태도를 반성했습니다. 정말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했던 행동으로 저를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중국 공산당의 체포를 통해 제가 하나님 앞으로 와서 자신의 패괴된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육적인 것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길 바라셨습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앞으로 본분 이행에 얼마나 힘든 고난이 있어도 떠넘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협력할 것입니다.

그 후 제가 늘 몸이 망가질 것과 죽음을 두려워 한 내적 상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또 찾아 읽었고, 저의 걱정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제일 먼저 사람의 수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는지는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자 온갖 방법으로 치료해도 병이 낫지 않고 오히려 계속 악화되기만 하는데도 그 병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하지 않고, 근원을 찾지 않으며, 스스로 인위적인 방법을 강구한다. 결국,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고 거금을 들여도 병이 낫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치료를 포기한 뒤 시간이 좀 지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나았다. 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사소한 병에 걸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결국 어느 날 병세가 악화되어 급사한다. 이게 어찌 된 일이겠느냐?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겠지만, 사실 하나님이 봤을 때는 그가 세상에서의 사명을 완수했기 때문에 그를 거두어 간 것이다. 흔히들 “병도 없이 죽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지만 정말 그렇겠느냐? 어떤 이들은 건강 검진에서 아무런 병도 발견되지 않고 아주 건강했는데, 결국은 며칠 만에 갑자기 죽어 버린다. 이런 죽음을 자연사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는 사람의 수명이 다해서 영계에서 그를 거두어 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암이나 결핵에 걸렸는데도 죽지 않고 일흔, 여든까지 산다. 이런 사람도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다. 네가 이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에게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깨달았습니다. 제 병의 재발 여부와 생사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제가 암에 걸렸던 것도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병에 걸리고 언제 좋아질지는 하나님께서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삶과 죽음에 관해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본분을 이행하다가 너무 힘들면 병이 재발하여 죽음에 직면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대할 때 책임감이 없었고, 교회 사역을 지체했습니다. 이제 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죽음이 제게 임하도록 하셔서 그것을 체험하도록 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부탁을 대했는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온갖 어려움, 곤경, 난관 앞에서도 노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때로는 고난도의 작업 과정에서 잦은 실패와 손해를 겪고 속으로 힘들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했던 말씀, 즉 하나님이 그에게 분부하면서 했던 모든 말씀과 하나님의 높여 줌을 떠올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크게 격려를 받곤 했다. ‘포기하면 안 돼. 하나님의 분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내버려둬선 안 돼. 이건 하나님의 부탁이야. 부탁을 받고 하나님 말씀과 음성을 들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였으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해. 이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어떤 조롱과 비방을 받아도, 육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그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분부한 내용 하나하나를 항상 가슴에 새겼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고 얼마나 큰 어려움을 만나든 그는 이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분부한 일만큼은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믿었다.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 그가 마땅히 가져야 할 순종의 자세를 유지하며 하나님이 만들라고 요구한 방주를 계속 만들었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고 일년 또 일년이 지나면서 점점 나이를 먹었지만 노아의 믿음은 줄어들지 않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겠다는 그의 결심과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육이 간혹 지치고 피곤해서 병이 나고, 마음이 연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심과 의지는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긴 세월 방주를 만드는 동안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했으며, 또한 하나의 피조물이자 평범한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는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실행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3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 방주를 짓는 데에 그토록 큰 어려움이 있고, 육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음에도 물러서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노아는 백 년을 하루 같이 방주가 지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을 지켰습니다. 노아의 실행과 비교하며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 본분을 지키지 않고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며 오직 제 육적인 것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감히 노아와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돌이켜보면 과거 저는 암에 걸렸지만, 하나님의 보살핌 아래 치료가 잘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본분을 이행하면서 암이 재발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줄 모르고 늘 저의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병의 재발을 걱정했고, 항상 육적인 안일함만을 생각했습니다. 본분을 떠넘기려고 생각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인성도 없고 비이성적입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높여 줌과 구원의 대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노아처럼 더는 육적인 것을 좇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후 상부 리더는 저에게 새신자 교회의 사역을 맡으라고 배치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정말 기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제게 주신 회개의 기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새신자 교회에 도착해보니, 여러 사역의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복음 사역에는 지금까지 진전이 없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도 모두 오지 않아 어려움이 정말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사역을 잘 해내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아. 여러 사역의 원칙을 공부해서 파악해야 해. 나는 몸도 좋지 않은데, 혹시라도 힘들어서 몸이 망가지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제 생각이 틀렸음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교회 사역이 어려움에 맞닥뜨렸습니다. 저는 육적인 것을 좇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양심과 이성을 갖고 당신에게 협력해야 합니다. 부디 저를 이끌어주세요. 형제자매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이 사역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 그다음 저는 예배할 장소가 없자 마음을 다해 적합한 맞이의 집을 찾아 형제자매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형제자매들이 어려움 속에 사는 것을 보자 저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생각하자 어려움을 보고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를 해결해 주었고,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부탁을 대했는지 교제해 주어 형제자매들이 복음 전파의 의미와 하나님의 간절한 뜻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교제 후 형제자매들의 상태에 변화가 생겼고, 복음 사역에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복음 사역은 예전보다 더 성과를 보였습니다.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안일함을 탐하는 성질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겼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서도 약간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이제 저는 태도를 바로잡고 본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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