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누가 교만한 성품은 변할 수 없다고 했는가

자오판(趙凡) 중국 랴오닝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저절로 변화될 수 없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을 받아야 성품에 변화가 있게 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책망을 겪은 사람만이 함부로 하지 않고 침착하고 진중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아도 관념을 내려놓고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정말 실제적이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이 없다면 우리의 사탄 성품은 절대 변할 수 없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수 없어요. 예전에 전 정말 교만했어요. 직장에선 제 능력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했구, 다들 절 따르기를 바랬어요. 하나님 믿은 후에도 교만한 성품을 자주 드러냈죠. 뭘 하든 주도권을 쥐고 남들을 훈계하고 제압하면서 결국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만 줬어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으로 그제야 제 교만한 본성을 알게 됐구,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게 됐어요. 그 후엔 다른 사람을 대할 때나 함께 본분을 이행할 때 좀 겸손해졌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했어요. 그제서야 사람다워졌죠.

그게 2015년이죠, 교회 리더를 맡게 됐는데 그때 너무 기뻤어요. 왜냐면 그래도 제가 젤 괜찮은 사람이라서 다들 절 뽑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 본분을 잘해서 절 잘 선택했다는 걸 증명해 주려고 했죠. 그 뒤로 저는 매일 바쁘게 보냈어요. 형제자매한테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생활은 훨씬 더 좋아졌어요. 교회 사역량이 좀 많긴 했지만 전 그래도 그 사역을 다 질서 있게 처리했어요. 특히 다른 지교회보다 저희 교회의 교회 생활이 더 활기찬 걸 보면서 속으로 엄청 흐뭇했어요. 그 후에 위의 리더가 교회의 사역 효과가 좋다면서 다른 지교회보고 우리 방식을 참고하라고 하는 거에요. 게다가 교회의 중요한 사역도 저보고 맡으라고 했어요.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었죠. ‘위의 리더가 이렇게 나의 능력을 알아주는 걸 보니 내가 정말 남들보다 괜찮고 좀 많이 뛰어난가 보다.’ 어느새 전 자아도취에 빠져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동역자들이 뭔가 의견을 내도 무시하기 일쑤였고 사람들 위에 서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만 하고, 만약 제 뜻대로 안 하면 못 참고 크게 훈계를 했어요. 한번은 동역자 자매가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게 어려운 점이 있다며 상의하러 왔어요. 그때 속으로 ‘뭐 이 정도로 그래, 쉬운 문제니까 당신한테 답변해 보라고 시켰지. 이런 것도 해결하지 못하다니 사역 능력이 형편없네. 나라면 벌써 끝냈을 텐데.’ 그랬죠. 그래서 오만하게 말했어요. “됐어요, 그냥 제가 할게요.” 그때부터 그 자매는 눈치를 보구,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신 찾아오지 않았죠. 한번은 제가 어떤 본분에 왕 자매를 추천했어요. 천 자매는 그 본분이 엄청 중요한 거라며 왕 자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정하자고 하는 거에요. 그러니 기분이 안 좋았죠. ‘아니, 이런 일은 내가 맡아 해와서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게다가 난 왕 자매랑 자주 보는데, 내가 잘 모를 리 있겠어? 형제자매들한테 알아보면 시간만 더 걸리구...’ 그래서 전 좀 강하게 시간 낭비할 것 없이 그냥 하자고 했어요. 제가 이렇게 세게 나오니까 천 자매는 말이 없었죠. 그때 자매가 제 눈치를 보는 것 같긴 했는데, 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 후에도 형제자매들이 어떤 제안을 하면 왠지 형편없어 보이고 별로란 생각에 갖은 이유를 대서 제안을 다 거절했구, 그리고는 제 생각을 고집하고 말했어요. 그렇게 다 제 말대로 따르게 한 거죠. 시간이 갈수록 형제자매들은 제 눈치를 봤고, 사역을 의논할 때는 의견도 별로 안 냈어요. 나중에 전 아예 의논을 안 했어요. 전 그러는 것도 시간 낭비 같았거든요. 그렇게 저는 교만하게 일하면서 점점 독단적이고 제멋대로 했죠.

한번은 어떤 팀장의 본분 효과가 좀 좋지 않았는데 전 그 팀장이 제대로 사역을 못해서 교체해야 할 것 같았어요. 사실 그때 동역자랑 의논했어야 하는데, 한편으론 어차피 해봐야 다 내 뜻대로 될 텐데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그냥 그 팀장을 교체해버렸어요. 그리고는 교체한 결과를 동역자한테 말했죠. 그러니 천 자매가 놀라더라구요. “그 팀장이 본분에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진리를 추구하는 분이라면서 믿은 시간이 짧아 진리를 아는 게 적으니까 사역에서 문제나 실수가 생기는 것도 정상이라는 거에요. 그러니 자주 교제하면서 도와줘야지 이렇게 그냥 교체하면 어떡하냐구요.” 그 말에 전 반박하면서 변명을 늘어놨어요. 제대로 사역을 할 능력이 없는 게 확실하니까 교체했다구, 이런 일에 경험 많은 제가 그걸 모르겠냐구요. 제가 하도 세게 나가니까 천 자매는 입을 다물었어요. 나중에 자매가 그 일을 다시 조사해 보니까 정말 제가 원칙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그분은 다시 팀장으로 복귀했어요. 결국 그러는 사이에 팀내 사역에만 지장을 주게 된 거죠. 그제야 좀 부끄럽더라구요. 제가 너무 교만해서 원칙 없이 일했잖아요. 그래도 저는 진리를 구하면서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한 달 후에 교회에 중요한 사역이 있어서 동역자 중 한 사람을 뽑아 그 일을 맡아야 했어요. 전 은근히 기뻤어요. 솔직히 자질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제가 젤 괜찮아 보여서 다들 절 뽑을 거라 생각했죠. 근데 제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전 떨어졌어요. 심지어 한 표도 못 받았죠. 그때 전 너무 당황스럽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구요. ‘어떻게 된 거지? 왜 아무도 날 안 뽑은 거야? 다들 분별을 못 하는 거 아냐?’ 이유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했죠. 그때 주 자매가 머뭇거리길래 제가 말했죠, “다들 보신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달라구요.” 그러니 자매가 용기 내서 말해줬어요. “자매님은 너무 교만해서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늘 고압적이구요. 자매님과 같이 있으면 좀 불편하고 눈치를 보게 돼요.” 다른 자매도 작게 말했어요. “저도 눈치가 보여요. 자매님은 너무 교만하구 다른 사람들을 무시해요. 마치 모든 교회 사역은 자매님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처럼요. 자매님 눈에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죠.” 천 자매도 거들었어요. “자매님은 너무 거만해요. 진리 원칙을 찾아보지 않구, 다른 사람의 의견도 묵살해요. 모든 일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고, 늘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에요.” 다른 자매들도 다 제가 교만해서 눈치 보인다는데 정말 인정이 안 되구, 속으론 ‘다들 나보고 교만하다고 하는데 왜 자기들이 본분에 책임감이 없다는 말은 안 하는 거지? 그래, 어디 당신들 맘대로 해봐.’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을 못 자고 뒤척였어요. 원래는 제가 잘하고 능력이 있으니까 좀 교만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두 다들 괜찮게 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형제자매들 눈에 그런 사람이었던 거에요. 교만하고 감정적인 데다 사람들한테 위압감과 상처까지 준다니… 생각할수록 견디기 힘들더라구요.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반감을 느낀다니 전 제가 사람들의 돌맹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쥐 같았구, 하나님도 구원하시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니 소극적이 됐구, 괴로워서 계속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너무 괴롭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 뜻을 알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주세요.”

다음날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말씀 낭송을 하나 들었어요. 『네가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고, 드러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든 드러나든 이것을 명심해라. 드러나는 것은 정죄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네게 생명 체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너는 자신의 패괴된 본모습을 알 수 있는 기회도 조건도 환경도 얻지 못한다. 네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 깊이 숨겨져 있어 인식하기도 어렵고 찾아내기도 힘든 면면들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진실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되고 거듭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진정 자신을 알면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고 진리를 갈망하며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이는 매우 좋은 일이다! 네가 이 기회를 잡아 실패하고 쓰러졌을 때 진지하게 스스로를 반성하여 진정 자신을 알게 된다면,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 고비를 넘기면 크게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감동이 됐어요.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렀죠.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주셔서 형제자매들을 통해 저를 크게 꾸짖으신 거였어요. 이건 저를 내치거나 일부러 힘들게 하시는 게 아니죠. 제가 너무 교만하고 너무 강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채찍질로 저를 일깨워 주시고 벼랑 끝에 선 저를 잡아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게 하셨어요. 절 구원하신 거죠. 그걸 알게 되니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마음도 편해졌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이 기회에 저를 돌아보고 잘 반성하겠다구요.

그 후에 사람의 교만한 성품을 폭로하는 말씀을 찾아봤어요. 『네 안에 정말 진리가 있으면 자연히 바른길로 가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쉽게 악을 행한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함이 있으면 어떻게든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교만함은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증거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에서 나온 것들, 자기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이 사람을 지배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보아라!』(<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교만은 사람이 지닌 패괴 성품의 근원이다. 사람은 교만할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이건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일까? 교만한 성품이 있으면 안하무인일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하나님도 무시하게 된다. 겉보기엔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으며 늘 자기는 진리가 있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만한 성품의 본질이자 근원으로,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안하무인은 작은 문제지만 관건은 교만한 성품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치 않으며 하나님과 권력을 다퉈 남을 통제하려 한다. 이런 자는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말씀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찔리고, 괴로웠어요, 두렵기도 했구요. 보니까 교만한 성품으로 살면 남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잘 지낼 수도 없더라구요. 더 중요한 건 마음에 하나님 자리가 없고 경외심도 없어서 언제든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어요. 생각해보니 전 리더가 되고 나서 저 스스로 능력도 있고 잘났다 생각한 뒤로 거들먹거리게 됐어요. 형제자매와 함께 본분 할 때는 늘 고압적인 자세로 남을 지휘하고 압박했고, 동역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때도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업무 경력도 많고 판단도 잘하니 다 제 뜻대로 하라고 강요했죠. 제 생각이 절대적인 진리고 기준이라는 듯이 다 따르라고 한 거죠. 더 무서운 사실은 제가 눈치를 주면서 의견도 못 내게 한 거에요. 근데 전 전혀 느낌두 없구, 그저 다들 제 생각에 동의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능력 있고 잘난 줄 알구요. 알게 모르게 저는 형제자매들 위에 군림하면서 동역자랑 팀장을 교체하는 일조차 의논하지 않았구, 자매들이 지적하면 반박하고 변명하기 바빴죠. 보니까 전 너무 교만했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하나님 집 사역에 이로운지를 고려하지도 않고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면서 독단적이고 함부로 행동했어요. 그 결과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고 형제자매들에게도 굉장히 큰 상처를 줬어요. 전 본분을 이행한 게 아니었어요! 지금 보면, 제가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주도권을 쥐고 장악해서 권세욕을 채우려는 거였어요. 이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죠! 그 후에 저는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어요. 왜 그렇게 교만 방자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한 건지요. 반성하면서 조금 깨달은 건 제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억울하면 출세해라’ 같은 사탄 독소에 지배받은 거였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남을 지배하길 좋아했죠. 무슨 일을 하든 남이 제 말을 듣고 따라야 하구 자기중심적이었어요. 그래야만 제 능력을 증명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의미 있게 사는 건 줄 알았어요. 이제야 깨달았지만 전 이런 사탄의 독소로 살아왔기 때문에 교만한 성품이 더 심해졌고, 사람의 모습이 없었던 거에요. 다른 사람들한테 상쳐줬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도 방해하고 혼란을 초래했구요. 그제야 느꼈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억울하면 출세해라 이런 사탄 독소는 다 그릇된 거고 사악한 논리라서 사람을 패괴시키고 해치죠. 전에는 높은 위치에서 남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게 정말 좋은 거라구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까 사탄 독소로 살아가는 건 마귀로 사는 거에요. 제 옆에 오려는 사람이 없고 다 싫어하구, 하나님도 증오하셨죠. 이게 다 제가 사탄 독소로 살아서 초래한 결과였어요. 시초에 천사장도 보면, 교만함이 극에 달해서 하나님과 동등해지려 하구, 모든 걸 장악하려구 했잖아요. 결국엔 하나님을 거슬러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쫓겨났지요. 저두 교만 방자해서 모두를 압박하고 제 말만 따르게 했어요. 이런 성품은 정말 천사장과 다를 게 없죠. 그제서야 교만한 성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안 주셨다면 저는 분명 교만한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악행을 계속 저지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다 벌을 받을 거에요. 이런 걸 깨닫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다시는 교만한 성품으로 대적하고 싶지 않아요. 진리를 추구하고 교만한 성품을 버리고, 진심으로 회개할게요.”

그 뒤로 저는 악을 저질러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 저의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찾고 구했고,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본성은 너를 방자해지게 한다. 사람에게 방자한 성품이 있으면, 제멋대로 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너에게 어떤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내놓고 그 일에 대한 너의 생각과 의견을 말한 다음 모두와 교제해야 한다. 먼저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이는 제멋대로 하는 성품을 극복하는 첫 단계이다. 두 번째, 누군가 너와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어떻게 실행하면 제멋대로 하지 않겠느냐? 먼저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모두가 교제하게 해야 한다. 설령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고집하지 말아라. 그것도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리를 구하는 태도이자 자신을 부인하는 태도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는 태도다. 이런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고 기도해라. 답을 모르겠으면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최적의 방법과 최선의 방법을 알려 달라고 구해라. 모두가 함께 나누다 보면 그때 성령이 깨우쳐 줄 것이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실행의 길을 찾게 됐어요. 바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먼저 기도해서 진리를 구하고 그 다음에 자기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꺼내서 형제자매와 함께 교제하는 거죠. 자신이 옳다고 생각돼도 그걸 의식적으로 부인하고 돌아보고, 형제자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하고 교회 사역에 유익한지를 봐야 하죠. 그 후엔 예배에서도 전 저의 패괴 성품을 솔직하게 파헤치고 그동안 형제자매들을 힘들게 하고 상처 준 거에 대해 사과했어요. 근데 다들 마음에 두지 않고 진심으로 교제해 줬어요. 그러니 너무 편하고 좋았어요. 그리고 사역에 대해 토론할 때는 형제자매들보고 의견을 얘기하라구 격려했고,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면 함께 교제하면서 공감대를 찾아갔어요. 그러니 다들 제 눈치를 안 보게 됐고, 본분에도 더 조화롭게 하게 되니까 훨씬 좋아졌죠.

하루는 동역자랑 사역을 의논하는데 그 자매가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위에다 편지를 쓰겠다는 거에요. 그동안 본분에서 있었던 어려움과 그걸 해결한 걸 말하고 싶다구요. 그 말을 듣고 제 교만한 성품이 또 고개를 들었어요. 전 생각했죠. ‘다음 예배 때 말하면 되지, 굳이 편지까지 쓰나!’ 그래서 자매의 생각에 반대하려는데 그때 또 교만했던 제 지난날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때 늘 제 의견만 고집해서 형제자매들이 제 눈치만 봤고, 저도 사람답게 살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속으로 기도했어요, 저를 부인하고 교만한 성품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겠다구요. 그 후엔 자매가 사역에 책임감을 갖고 리더와 소통하는 건 좋은 일이니 자매를 속박하지 말고, 같이 편지 쓰며 협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말투도 금세 부드러워지구 사역에서 생긴 문제점도 함께 나누게 됐어요. 자매의 의견을 많이 듣고 별로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도 섣부르게 단정하지 않고 생각해보고 얘길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매가 제안한 문제 중에는 제가 생각 못한 것도 있더라구요. 그때 제가 좀 부끄럽더라구요, 전엔 제가 너무 교만해가지구 형제자매들한테 눈치를 주면서 제 몫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 거에요. 사실 누구한테나 장점이 있잖아요. 형제자매들과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본분을 잘한다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그 후에 저희는 함께 문제를 정리했고 편지 내용을 다듬어서 보냈어요. 그 뒤론 본분을 이행할 때 교만한 성품이 다시 고개를 들면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을 부인하고 형제자매랑 의논하고 교제했어요. 그러니 훨씬 조화로운 협력이 이뤄지더라구요. 저도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고 가벼워지면서 ‘본분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구 느꼈어요. 저처럼 교만했던 사람이 이만큼 변화할 수 있었던 건 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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