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자기 과시

2024.5.5

중국 신핑(心平)

1년 전, 저는 새로운 교회로 옮겨 갔습니다. 처음에는 좀 적응이 되지 않았죠. 기존 교회에서는 형제자매들 모두 리더인 저를 우러러봤고, 문제가 생기면 항상 저한테 찾아와 해결해 달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교회에 오니 형제자매들은 저를 낯설어 했고, 저 또한 이름 없는 말단 병사가 된 기분이라 힘이 빠졌습니다. 저는 ‘예전에 나는 복음 전파 성과가 꽤 좋은 편이었어. 여기서도 복음을 전하면서 내 능력을 발휘해 자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 그리고 사역 성과가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좋다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고, 얼마 안 가 십여 명에게 전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형제자매들을 만날 때마다 제 복음 전파 체험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었죠. 형제자매들은 부러운 듯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쉽게 복음을 전하시네요. 저희는 글렀어요. 관념 때문에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복음 대상을 만나면 어떻게 교제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걸요.” 사실 저 또한 그런 상황을 자주 겪곤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실패한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 실패담은 아주 조금 이야기하거나 아예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저를 별다른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고, 우러러보지 않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공한 복음 전파 체험을 이야기해서 제가 어떻게 본분을 이행했는지 알려 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는 어렵지 않다고, 복음 대상을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교제한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형제자매들은 무척 감탄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고 싶어 하는 친지를 둔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신핑 자매님한테 복음을 전하라고 해요. 신핑 자매님을 찾아가 봐요.” 모두 이런 태도를 보이자 저는 무척 흡족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리더가 제게 교회 몇 곳의 양육 사역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저는 더 득의양양해졌습니다. 능력을 펼칠 공간이 더 확대됐다고 생각했죠. 복음을 전하거나 새 신자를 양육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혀 물러서고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는 형제자매를 볼 때면 격려하면서 제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영하 십몇 도의 한겨울에 복음을 전한 적이 있답니다. 찬바람이 칼날처럼 얼굴을 때렸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복음을 전했어요. 한번은 비가 많이 와서 다리가 잠기고 신발도 전부 젖은 적이 있었어요. 저는 신발 깔창을 꺼내 빗물을 짜낸 후 주머니에 넣고 복음을 전하러 갔죠. 또 한번은 한겨울에 함께 예배드리려고 한 새 신자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영하 십몇 도의 날씨에 밖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죠.” 제 이야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찬사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봤고, 제가 고난을 잘 이겨 낸다며 감탄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얼마 안 가 제가 담당하는 교회는 더 많아졌습니다. 저는 ‘몇 달이나 됐다고 또 발탁됐네. 이제 형제자매들이 날 더 우러러보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시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새 신자들을 양육하는 측면의 진리를 갖추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본분을 잘 이행하는 방법도 찾게 됐죠. 형제자매들은 제 교제를 들을 때마다 늘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는 새에 또 들뜨기 시작했죠. 예배 때도 스스로를 과시하기 시작했고요. 형제자매들이 새 신자의 종교 관념을 어떻게 교제해서 해결해 줘야 할지 물어볼 때마다 저는 ‘내가 잘 얘기해 줘야겠네. 모두에게 내가 진리를 깨달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과 체험을 상세하게 알려 주었죠. 조금씩 저를 보는 형제자매들의 눈빛조차 달라졌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집중해서 들었고, 어디를 가든 저를 우러러보는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형제자매들조차 제 교제를 들으러 오겠다고 할 정도였죠. 얼마 후, 저는 복음 전파 사역과 양육 사역에서 자주 나타나는 17가지 문제를 정리한 후, 예배 때 가져와 형제자매들에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한 자매의 남편은 마을 간부였는데, 아내가 하나님 믿는 것을 반대하여 예리한 질문들을 수없이 쏟아내며 고의로 우리를 난감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와서 교제해 달라며 저를 지명했습니다. 저는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했지만, 하나님께 의지해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 반박했고, 결국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일 이후, 저는 자매의 남편이 제기한 질문들을 복음 전파 과정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 정리집에 포함시켰습니다. 저는 예배 때 수시로 그걸 꺼내 생생한 체험담으로 이야기하곤 했죠. 사역 능력과 지혜,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형제자매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몇 번은 예배가 끝난 후 “신핑 자매님, 저희 교회에 며칠 더 계시면서 저희한테 좀 더 교제해 주시면 안 되나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모두 이렇게까지 저를 높여 주는 모습을 보자 무척 흐뭇했습니다. 제가 중요 인물이며, 사역하면서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형제자매들에게 알리기 위해 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양 말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교회가 좀 많아서요. 벌써 다른 교회의 예배에 가기로 약속이 돼 있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요즘엔 너무 바빠서 쉴 시간도 없네요.” 평소에 형제자매들과 이야기할 때도 일부러 “요즘에는 예배를 시작했다 하면 온종일 앉아 있게 되네요. 저는 예전에 허리에 분쇄성 골절을 겪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게 정말 힘들어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자 한 자매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시네요. 건강 주의하세요!” 저는 늘 이런 식으로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스스로를 과시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제가 고난을 잘 견디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죠.

당시, 저는 예배하고 교제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떨 때는 마음속이 텅 빈 것 같아 무엇을 교제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형제자매들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며 ‘형제자매들은 다 내가 진리 교제를 잘한다고 생각해. 내가 무척 대단한 사람인 줄 알지. 만약 내가 어떻게 교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내 좋은 이미지는 바로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짐짓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먼저 교제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교제하는지 들어 보자. 그리고 마지막에 모두의 인식을 정리한 다음 내 이해를 좀 곁들이는 거야. 그러면 진리에 대한 내 이해가 더 종합적이고 명확해 보이지 않겠어?’라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해서 형제자매들은 제 교제가 종합적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또 일부러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게 깨우쳐 주신 것 역시 달랐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 자신을 높이고 과시하기 위해서였죠. 형제자매들은 저를 더욱 대단하게 생각하고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거나 새 신자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기도하며 구하지 않고 오직 제가 가서 교제를 통해 해결해 주기만을 기대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앙망하는 사람이나 앙망받는 사람 모두에게 화가 닥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좀 불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또 ‘내가 교제한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해이고, 내가 형제자매들에게 알려 준 것은 실행의 길이야. 전부 사역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거였다고. 이게 잘못되었을 리 없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걱정과 불안은 머릿속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데 그쳤고,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가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 오랫동안 잠잠했던 건선이 재발했습니다. 팔과 다리, 심지어 얼굴에까지 큼직한 건선이 퍼졌죠. 온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려워 예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번에 재발된 건선은 예전에 겪었던 것보다 증상이 훨씬 더 심각해서 많은 약을 써도 호전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병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식하지 못했죠.

얼마 후, 저는 복음을 전하는 형제자매 몇 명과 예배드리고 교제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갔습니다. 그때 저는 ‘이야기를 잘해서 내 사역 능력을 보여 줘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사가 회의 자리에서 보고하듯 복음을 전할 때는 어떻게 중점을 잡고 교제해야 하는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말을 매우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한 자라도 놓칠세라 펜을 들고 쉴 새 없이 받아 적는 사람도 있었죠. 접대 가정의 자매까지 문 앞에 앉아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수시로 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모두 제 교제를 이렇게까지 경청하는 것을 보자 무척 흐뭇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깨달음과 인식일 뿐이야.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모두 내 말을 받아 적고 있잖아. 이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또 ‘형제자매들은 좋은 실행의 길을 기억해 두고 싶은 건지도 몰라. 어쨌든 본분 이행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제 말을 받아 적는 것을 보고도 묵인했죠. 다음 날 예배 때는 한 자매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어제 저는 자매님의 교제를 적지 못했거든요. 오늘 다시 들으러 왔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저는 또 다른 두 자매가 속닥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녹음했어?” 다른 한 자매가 원망하듯 말했습니다. “왜 녹음 안 한 거야?” 그 말을 듣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모두 내 말을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다니. 내가 사람들을 내 앞으로 이끌어 오는 거잖아.’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워진 저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며 뽐내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사탄의 본성에 지배된 사람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이자, 패괴된 인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사람은 보통 어떻게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느냐? 어떻게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느냐? 자신이 많은 사역을 했고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많은 헌신을 했고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고 증거한다. 자신의 밑천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높여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지위를 더 높게, 더 공고하게, 더 안정되게 만든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숭배하고 앙망하고 추종하게 한다. 사람이 이 목적을 위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일을 많이 저질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이냐? 그것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일로, 염치없는 것이다. 즉, 염치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증거하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나 재능, 특별한 기능, 어떤 경험이나 좋은 처세술, 남을 우롱하는 수단 등이 있는지 자랑하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수단은 자신을 뽐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또한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이 자신의 약점과 결점, 부족한 부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자신의 빛나는 일면만 보게 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이 되어도 남들에게 알리거나 마음을 열고 교제하지 못하며, 일을 잘못해도 애써 포장하고 숨긴다. 자신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교회 사역에 끼친 손실은 입에도 올리는 법이 없지만, 아주 작은 기여나 성과만 있어도 즉시 끄집어내 자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재능 있고 자질이 좋은지, 자신이 얼마나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해 한스러워한다. 이것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방식 아니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또한 곳곳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드러내며 하나님을 아예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희는 내가 한 이런 말을 체험해 보았느냐? 많은 사람은 계속 자신을 증거한다. 자신이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떻게 사역을 했다느니,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신임하여 어떤 일을 하게 맡겼다느니, 자신은 지금 어떠어떠하다느니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말할 때 일부러 특정 말투와 자세를 취하는데, 결국 다른 이들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여기게 될 정도다. 사람이 이 정도가 됐을 때는 성령이 버린 지 오래다. 비록 잠시 그를 제명하거나 출교하지 않고 봉사하게 하더라도,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으니 징벌받을 일만 남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제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스스로를 높이고 과시해 왔죠. 이곳 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스스로가 말단 병사처럼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해 복음 전파를 형제자매들의 우러름과 인기를 얻는 기회로 여겼습니다. 제게 사역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저를 다시 보게 하기 위해 실패한 체험은 언급하지 않고,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몇 명에게 전했는지, 또 까다로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만 실컷 늘어놓으며 허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는 진리를 깨달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죠. 발탁된 후에는 더 많은 사람에게 우러름 받고,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늘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가 얼마나 바쁜지,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떠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연약함과 패괴는 꼭꼭 숨겨 두고 말하지 않았죠. 그런 식으로 저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며 본분 이행에 큰 부담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는 형제자매를 기만하고 미혹한 것 아닐까요? 큰 붉은 용은 맨날 자신의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한’ 모습을 떠들어대며 사람들이 숭배하고 따르게 하지만, 배후에서 저지른 악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숨기려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고 기만하죠. 제 행동이 큰 붉은 용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복음 전파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제가 복음 확장 과정에서 제 몫을 다하라는 것이었죠. 또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저는 이러한 은사와 능력을 밑천 삼아 스스로를 과시하고 뽐냈으며, 형제자매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즐겼으니 참으로 몰염치한 인간이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높이고 과시한 탓에 형제자매들은 저를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저를 찾아와 교제하고 해결해 달라고 하며 저를 에워싸고 돌았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나 두려워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스스로를 높이고 과시하면서 사람들이 저를 숭배하게 했습니다. 제가 걷는 길은 당신을 대적하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회개하고자 합니다.”

그 후,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왜 내가 교제한 빛이 성령의 깨우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과시하고 뽐낸 걸까?’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상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이미지에 관심 두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그의 본성을 해부해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사람은 교만한 본성, 교만한 본질을 갖고 있으니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또한, 자신을 높이거나 증거하는 일도 저지를 수 있다. 너는 자신이 교만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만약 너에게 교회 하나를 맡겨 혼자 이끌게 한 다음, 내가 너를 훈계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도 너를 지적하거나 도와주는 자가 없다면, 너는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사람들을 너의 발밑으로 데려와 너에게 순종하게 할 것이다. 심지어 너를 우러러보고 앙망하게 할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순전히 자연적으로 유로하는 것이다. 너는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필요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이 일부러 너에게 가르쳐 줄 필요도 없으며,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통제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상황이 형성되는데, 네가 하는 모든 것은 사람들이 너를 높이고 칭찬하고 숭배하고, 너에게 순종하게 하고, 모든 일에서 너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이다. 너에게 리더가 되게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국면이 만들어져 바꿔 보려고 해도 안 된다. 그런 국면은 왜 형성되는 것이냐? 바로 사람의 교만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교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교만하고 잘난 체하거나 독선적인 사람은 독립 왕국을 세우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자기 손안으로, 자기 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사람이 그런 교만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데, 그런 교만한 본성의 본질이 곧 사탄의 것이고 천사장의 것임을 의미한다. 사람의 교만함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어진다.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두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모두가 자기 말을 듣게 하려고 한다. 그러면 천사장이 되는 것이다. 너에게 그런 사탄의 교만한 본성이 있으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너를 악인으로 여겨 내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교만한 본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제 본성이 몹시 교만하고, 바울처럼 남들에게 숭배와 앙망을 얻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본성에 지배되어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과시하고 뽐내게 됐죠. 제 말에 불순한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야심과 욕망을 자제하지 못한 채 언제나 사람들의 우러름과 인기를 얻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 사업을 하면서는 현지에서 이름난 알파걸이 되었습니다.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결정권이 제게 있었고, 어디를 가든 추켜세우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죠. 저 또한 세상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 모두가 제 말을 따라 주는 기분을 즐겼고요.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교회에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으로 있는 데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기회를 잡아 스스로를 뽐내 남들의 감탄과 우러름을 얻어 내려고 했죠. 바울은 본성이 몹시 교만하여 늘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받고자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과시했죠. 그의 편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붙들어 준다는 기치를 들고 스스로를 높였을 뿐이었죠. 그러다 나중에는 뻔뻔스럽게 자기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로 인해 신자들이 모두 그를 숭배하고 높이게 되었고, 그를 모범으로 삼았으며, 심지어는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교계 신자들이 바울의 말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감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징벌받았습니다. 저 또한 교만한 데다가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두각을 나타내다.” 등과 같은 사탄의 사상 관점으로 살아왔습니다. 언제나 남들 위에 서고 싶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과시하며 뽐내고 싶었습니다. 이로 인해 형제자매들은 일이 닥치면 모두 제 말을 들었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다 받아들이게 됐죠. 제 교제를 받아 적다가 빠진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보충하려고 하면서요. 아예 녹음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거죠. 그런데도 저는 반성할 줄 모르고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도 교만하고 몰염치한 인간이었습니다! 저는 제 신분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제가 하나의 피조물이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뻔뻔스럽게 자신을 높은 위치에 두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었고, 모두 제 말을 듣고 저를 지지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뽐내고 과시했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의 마음속에 제 자리가 생긴 것이고, 저를 점점 더 높이 받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됐죠. 그러니 제 행동은 사람을 두고 하나님과 다툰 것 아니겠습니까? 문득 하나님나라시대의 행정 법령 제1조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여야지, 함부로 잘난 체하거나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법령>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로,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여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저를 숭배하고 높이게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른 것 아닐까요? 순간 너무도 두려워졌습니다. 스스로를 과시하여 사람들의 숭배와 우러름을 받는 일의 성질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게 됐죠. 이대로 계속 간다면 바울처럼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을 게 분명했습니다! 오늘 제게 병이 임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통해 경고하며, 제가 그릇된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셨죠.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스스로는 창조주이고 인류는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계급이 나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한 모든 행사는 이런 관계를 한참이나 넘어서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한다. 그는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가욋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게 엄청난 공헌을 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요구할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부분이기도 하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탄의 결박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와 사역하시면서 사람들의 정죄와 비방을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셨지만,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한 적 없으십니다. 사람과 함께할 때도 하나님의 신분으로 행세한 적이 없으시고요. 그저 묵묵히 우리에게 진리, 생명을 공급해 주셨죠. 저는 하나님의 본질이 너무도 아름답고 선하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추며 조금의 교만과 거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반면 저는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으로, 아무런 진리도 없으면서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본분 이행에서 조금이라도 성과가 나면 항상 스스로를 과시하고 뽐내면서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찬사를 받고자 했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이 역겨워하고 증오하는 몰염치한 인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스스로를 과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회개하고자 합니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을 높이거나 증거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만약 네가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한다면 일부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마음을 열어 자신을 인식한다면 그것은 성질이 다른 것이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냐? 마음을 열고 자신에 대한 인식을 얘기하는 것은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하는 것으로, 이는 긍정적인 사물이다. 만약 정말 스스로를 인식하여 자신의 내적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 진실하게 말하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인식만을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반면, 마음을 열고 솔직히 얘기한답시고 자신의 장점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렀는지, 어떻게 굳게 서서 증거했는지를 떠들어 댄다면,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게 된다면, 이는 스스로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시련이 임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연약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했는지, 그 후 어떻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이 생겨 굳게 서서 증거하게 됐는지 이야기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진실한 체험을 말하는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보면 된다. 또 체험 간증을 이야기하는 의도와 목적을 보면 분별이 쉬워진다. 만약 간증할 때의 의도가 올바르다면, 설령 그를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도가 올바르지 않다면 그를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지라도 문제가 된다. 혹여 그를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이가 나온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지를 분별하려면 결과만 봐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근거하여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정확하다. 결과만 보고 분별한다면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기 쉽다. 복음을 특별히 진실하게 증거하여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스스로를 증거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다. 그가 말한 증거와 그가 이행한 본분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그저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이 치우치게 이해하여 사람을 숭배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지를 분별할 때의 핵심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의 마음속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만약 의도가 모두에게 자신의 패괴 표출을 알게 하고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게 하며, 그것을 통해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면, 네가 하는 말은 진실하고 간절하며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면 그 의도는 올바른 것으로, 이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네게 진실한 체험과 변화, 진리 실제가 있음을 모두에게 보여 주어 우러름과 숭배를 얻고자 한다면 그 의도는 그릇된 것으로, 이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이다. 만약 네 체험 간증에 거짓과 과장이 있어 사람들을 기만하고 네 실제 내적 상태를 알지 못하게 하고, 네 의도와 패괴, 또는 연약함과 소극적인 것을 남들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라면, 그런 말은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는 것으로, 거짓 간증에 속한다. 또한, 이는 하나님을 기만하고 욕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행위이다. 이 몇 가지 내적 상태의 분명한 차이는 전부 의도를 보고 분별할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마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지 않으려면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며, 경건한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형제자매들 앞에서 마음을 열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패괴를 털어놓고 해부하면서 진실한 체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높이거나 증거하고 싶을 때는 자신을 저버리고 마음가짐을 바로 하며, 자신의 패괴와 패역을 많이 폭로하고 해부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 생겼는지, 자신의 패괴된 성품과 본질에 관해서는 어떤 인식을 하게 되었는지 교제해야 하고요. 마음속 말을 많이 해서 형제자매들에게 진실한 일면을 보여 줘야 합니다. 이런 실행의 길이 생긴 후, 예배 때 저는 그동안 제가 드러낸 패괴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전부 형제자매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또 평소 제가 말한 인식에 빛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부 성령의 깨우침이지 제 진짜 분량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을 거라고 알려 주었죠. 형제자매들도 저를 숭배하고 앙망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앞으로 다시는 사람을 앙망하지 않겠다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 원칙을 찾아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예배 때 또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저는 체면을 내려놓고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히 구하며 교제했습니다. 모두가 서로 자신의 깨달음과 인식을 교제했죠. 그중에는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었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도 예전처럼 그렇게 저를 숭배하지 않았고요. 제게 문제가 보이면 바로 짚어 주었죠. 또 스스로를 높이고 과시하려는 생각이 들 때면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였고,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며 제 패괴와 부족한 점에 대해 알게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감독을 받아들였죠. 이렇게 실행하자 마음에 평화와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고요. 제가 제 교만한 본성, 그리고 제가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자 몸에 번진 건선의 가려움 증세가 완화되었습니다. 상태도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고요.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을 체험한 후 저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제가 사탄의 패괴 성품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와 채찍질로 악을 행하는 제 발걸음을 제때 제지해 주셔서 저는 위험한 벼랑 끝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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