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괴 성품을 해결할 길이 생기다
멕시코 람세스(Ramses)저는 천주교 가정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가족을 따라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다 크면서 일요일에만 성당에 나가고 평소에는 이방인을 따라 술과 담배, 유흥을 즐기는 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제 딸은 태어날 때부터 뇌전증을 앓았어요. 저랑 남편은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지만 치료가 안 됐어요. 제가 막막해할 때 지인이 복음을 전해 줘서 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어요. 얼마 안 돼 딸도 좋아졌고 남편과 시어머님도 예수님을 믿었어요. 나중에 남편은 목회자가 됐고 저는 동역자 예배 모임을 섬겼어요.
1997년 즈음, 누가 와서 저랑 남편한테 예수님이 오셨다고 했죠. 말씀이 육신 되어 새 사역을 하고 계시는데,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했어요. 전 그게 불가능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경은 이렇게 말했으니까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예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전능자라고 하며 새 사역을 하신다고 하지 싶었어요.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냥 외면했어요. 그 후에 좀 지나서 다시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전 아예 듣고 싶지도 않았어요. “성경에서는 분명 예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주님이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오셨다고 하니 그건 성경에 부합하지도 않아요. 뭐라고 해도 난 받아들일 수 없네요.”라고 했죠. 남편도 듣지 않았어요.
2002년에 남편이 객지에 설교하러 갔다가 돌아와서는 기뻐하면서 그러는 거예요. “여보, 정말 기쁜 소식이야.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주님이 돌아오셨어. ‘동방번개’에서 증거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재림주가 맞아. 봐봐,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은 모두 세 단계로 나뉘는데, 첫 단계는 율법시대의 사역으로, 여호와께서 율법을 반포해 사람들이 땅에서 살 수 있게 이끌어 주신 사역이야. 두 번째 단계는 은혜시대의 사역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인류를 구속하신 사역이고,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많은 진리를 선포해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인데, 사람의 죄성을 해결하고 철저히 정결케 하고 구원하여 최종에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끄는 사역인 거야. 이 세 단계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 사역의 완전체로,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는 거야.” 남편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좀 의아했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어떻게 ‘동방번개’를 수용할 수 있지? 지금까지 교회 강단에 섰던 사람이 어떻게 미혹될 수 있지? 우리가 맨날 보는 성경, 특히 갈라디아서 1장 6절과 7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라고 했어. 또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지. 이 성경 구절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데, ‘동방번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건 예수님의 이름을 바꿔 놓은 거잖아? 이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는 거 아니야? 근데 그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어? 주님의 이름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니까 우리는 끝까지 주의 이름을 붙들고 있어야 해.’ 물론 남편은 저보다 성경도 더 잘 알고 설교도 하는 사람이라 변론이 안 될 것 같았어요. 더구나 자기가 확신을 가지면 절대 바꾸지 않는 성격이라 뭐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혼자 속으로 ‘당신이 뭐라고 하든 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은총을 베푸셨는데, 절대 주님을 배신할 수 없어. 우리 부부 연을 끊는 한이 있어도 주님만은 끝까지 따라갈 거야.’라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당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 내가 들을 거고 우린 여전히 한가족이에요. 근데 ‘동방번개’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하면 그냥 우리 각자 자기 길을 가요. 서로 터치하지 말자고요.” 제가 고집부리면서 듣지 않으니까 남편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남편은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후 저희 교파 사람들한테도 전했는데, 남편이랑 제일 가까웠던 펑(馮) 동역자가 남편을 쫓아낸 거예요. 그러고는 각 예배소를 봉쇄하면서 남편과의 접촉을 차단시켰어요. 그리고 저한테도 그랬죠. “남편분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였어요. 절대 남편 얘기 듣지 마세요. 잘못 빠진 겁니다.” 저도 말했죠. “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근데 어떤 내용은 성경적인 것 같긴 하더라고요.” 제가 그 말 한마디를 했더니 저까지 경계를 했어요. 뒤에서는 ‘남편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아내랑도 가까이하면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 분명 영향받을 거고 따라갈 거다.’라는 소문이 돌았죠. 그런 말을 들으니 참 억울했어요. 제가 아무리 ‘동방번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맹세해도 다들 믿지 않았어요. 제가 예배소에 나타나면 다들 얼굴색이 변했고, 제가 다른 신자들을 미혹하지 않는지 경계했죠. 제가 그곳에 오지 않기를 바라고 저를 전염병 같은 존재로 보면서 말을 안 섞더라고요. 전 너무 괴로웠고 남편이 원망스러웠어요. 형제자매들이 저를 외면하는 게 남편 탓인 것 같았으니까요. 한동안은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주님께 기도했죠. ‘주님, 형제자매들이 저를 외면하니 너무 괴롭습니다.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동방번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모임을 섬기는 자매님이 입원하자 선물을 사서 병문안을 가 저의 진심을 보여 줬어요. 근데 퇴원한 후에는 여전히 외면하는 거예요. 나중에 저는 예배소에 가지 않고 혼자 집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보곤 했죠. 남편은 제가 힘들어하니까 다시 하나님의 새 사역을 증거했어요. 저는 분노하면서 쏘아붙였어요. “당신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이지만 않았어도 교회에서 날 내쳤겠어요? 모두가 날 외면했겠어요? 이제 예배드리러 못 간다 해도 당신 따라 ‘동방번개’로 갈 일은 없어요. 난 주님의 이름을 지킬 거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이심은 절대 부인할 수 없어요.” 남편은 제가 안 좋게 나와도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저랑 교제를 나누자며 형제님 두 명을 불렀어요. 그때 한 형제님이 성의를 보이면서 그러는 거예요. “자매님, 예수님이 정말 오셨습니다. 수백만 자에 이르는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자매님의 궁금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들어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할 일을 하느라 별로 듣고 싶지도 않았어요. 형제들은 제가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갔어요. 그때 ‘동방번개’ 사람들을 보니 반듯하고 사랑도 많은 게 보였어요. 제가 그렇게 차갑게 구는데 화도 내지 않고 싫증도 내지 않고 계속 교제를 나누려고 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저런 사람들이 어쩌다 ‘동방번개’로 갔나 싶은 게 이해가 안 됐어요. 나중에 남편은 복음 전하러 객지로 떠났어요. 그 사이에도 계속 하나님의 새 사역을 전하러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저는 계속 듣지 않았어요. 누군가 찾아오면 저는 문을 잠그고 숨었는데, 문이 잠긴 걸 보면 다들 발걸음을 돌렸어요. 그때는 기성 교회 사람들이 저를 오해하고 등 돌린 걸 생각하면 정말 너무 괴로웠어요. 정말 수없이 울면서 주님께 어려움을 토로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교회에서 예배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데, 내가 ‘동방번개’가 훔쳐간 양들을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내가 주님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걸 믿어 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어 얼른 기도했죠. ‘주님, 당신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는 분인 줄 압니다. 당신은 저의 진심을 아시고 제가 ‘동방번개’로 가지 않았음을 아십니다. 주님, 지금 교회에서 버려지니 너무 괴롭습니다. 이렇게 억울하게 버려져서 소외되는 게 용납이 안 됩니다. 주님, 제가 ‘동방번개’에서 훔쳐 간 양들을 다시 당신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게 지혜와 힘을 더해 주십시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동방번개’ 사람들을 만나기로 마음먹었어요. 만나서 성경으로 반박하면서 하나님의 양들을 되찾아 와야겠다고, 정면 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일 성경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어느 날, 진지하게 성경을 보는데, 이 구절이 보이는 거예요.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또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 17:24~25) 조금 놀랐어요. 그날 따라 그 구절이 예전하고 좀 다르게 느껴졌어요. 전에 저는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또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는 이 구절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시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이 세대에 버림받고 십자가에 달려 모든 고통을 당하셨잖아요. 근데 “또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고 하셨으니까 이건 한 번 더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럼 이것은 여전히 예수님을 말씀하신 걸까 싶었어요. 뭔가 ‘동방번개’ 분들이 했던 얘기가 성경에 부합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동방번개’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 번째 말씀이 육신 되신 분이라고 증거했는데, 각 종교, 각 교파의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판단하고 있으며, 또 중국 집권당은 누구보다 심하게 ‘동방번개’를 박해하고 있잖아. 그게 많은 고난을 받으며 또 이 세대에게 버림받는 거잖아. 설마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또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는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걸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짜 재림주이실까?’ 그때 조금 놀랐어요. ‘큰일 났네! 내가 진짜 주님을 대적한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아니겠지. 주의 이름은 바뀌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큰 문제니까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지. 괜히 주님께 대적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 돼.’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주님의 이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8) 전 눈이 번쩍 뜨이면서 한번 찾고 구해 보면 되겠다 싶은 거예요.
전 남편이 복음을 전할 때 쓰던 소책자가 생각났어요. 그때 남편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이 다 그 책에 있다고 했거든요. 저는 급한 마음에 그 책을 찾았어요. 그리고 보기 전에 이렇게 기도했죠. ‘주님, 제가 이 책 속의 내용을 분별할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저는 믿음이 작아 미혹될까 봐 겁도 나고, 당신을 대적하게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주님, 제가 오늘 이 책을 보려고 하오니 저를 지켜 주시옵소서.’ 그다음 책을 봤는데, 정말 제가 궁금해했던 게 있더라고요.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문제였어요.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이 말은 맞는 말이지만, 그게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예수여야 하고 절대 변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할 겁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여호와 …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그리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죠. 이 구절의 ‘다른이’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와 예수님 중에 유일한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였다가 나중에 예수가 되셨는데, 그럼 하나님의 이름이 바뀐 게 아닌가요?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하나님의 이름은 마찬가지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계시록 예언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분명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오시면 새 이름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럼 그 새 이름이 ‘예수’ 일까요? 계속 ‘예수’라는 이름을 쓰면 새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고 나서 저는 일리가 있는 말이고 성경에서 벗어난 게 없이 오히려 부합한다고 생각했죠. 전에 이 구절을 자주 봤는데, 왜 잘 이해를 못 했을까 싶은 거예요.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쓰신 이름이고, 예수는 은혜시대에 쓰신 이름이죠. 여호와, 예수 둘 다 하나님의 이름인데, 다만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쓰신 거고 두 시대에 이름은 각기 달랐죠.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 제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거예요. 더구나 계시록에서는 주의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라고 했으면 예수님은 아닌 게 맞잖아요.
복음 책자의 답변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인용했더라고요.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린다. 시대가 다른데 어찌 같은 사역을 행하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란 구속 사역을 위해 취한 이름인데, 말세에 재림해서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하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도 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사역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한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으며,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만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역만 대변하면 충분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 제물임을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변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변할 뿐이다. …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되었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또한, 은혜시대의 사람이 거듭나고 구원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과 은혜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대표적 의의가 있다. 즉, 각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며,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다.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표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 이름이다. 사람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 그대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 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니까 조금 알겠더라고요.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바뀌는 거였어요.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다른 내용의 일을 하시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시는데, 이름에 따라 시대를 바꾸시고 이름으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거였어요. 시대별로 하나님은 다른 이름을 사용하셨고, 이름으로 그 시대에 선포하실 다른 성품을 대변하셨어요. 율법시대에는 율법으로 이스라엘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셨는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상징하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기도 하는 성품을 상징했죠. 은혜시대는 말씀이 육신 되시어 예수님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셨는데,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상징했어요. 하나님께서 시대별로 쓰신 이름은 다 의미가 있었어요. 저는 하나님의 사역과 이름은 영원불변한 거로 생각했는데, 그건 하나님을 규정하는 거잖아요.
그다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니까 마음이 더 환해졌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안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는데 권병이 느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여호와, 메시야, 예수,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분의 하나님이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었는데, 바로 이 성경 구절이 이뤄진 거예요.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알파와 오메가는 각각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마지막 문자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이렇게 되니까 좀 괴롭더라고요. 과거 바리새인들도 성경 글귀만 붙들고 메시야라는 이름이 아니면 하나님이 아니라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탓에 하나님께 벌 받았잖아요. 보니까 제가 딱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인 거예요. 성경의 글귀만 고집하고 제 생각과 상상에 빠져서 예수라는 이름이 아니면 하나님이 아닐 거라 여기면서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찾지도, 살펴보지도 않았어요. 그저 완고하게 제 관념과 상상만 고집하면서도 하나님의 새 사역을 대적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 주의 이름을 지키고 주의 도를 지키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죠. 후회가 밀려오면서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계속 책자를 봤는데,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이런 고정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다들 성경에서 분명 우리와 다른 내용을 전하면 저주받는다고 했으니 ‘동방번개’에서 전하는 내용이 우리랑 다르니까 그건 다른 복음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겁이 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게 궁금했거든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주후 60년 즈음에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복음은 거침없이 이방 족속에게 전파되고 있었죠. 갈라디아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때는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유대에는 복음을 전하는 두 형태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며 율법시대의 옛 사역을 전하는 복음이었고, 또 하나(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중심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라며 은혜시대의 새 사역을 전하는 복음이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떡을 떼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등의 삶을 살도록 말입니다. 그때 구약의 율법을 지키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자기들이 전하는 것과 다르니 예수님의 도는 성경을 벗어났고 율법을 폐한 것이라면서 예수님의 새 사역을 정죄했고 십자가의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방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여호와의 가르침에 어긋나니 구원을 얻지 못한다며 계속 안식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당시 분별력이 없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님의 복음을 버리고 다시 구약 율법을 전하는 유대인들을 따랐습니다. 갈라디아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떠나 다시 성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이런 내용의 서신을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갈 1:6~7) 이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다시 참도로 복귀하도록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다들 알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만 고집하면서 예수님을 정죄했다가 성령님의 새 사역에 의해 도태된 자들이었고 결국 하나님께 벌 받고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새 사역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이 교제의 내용을 보니까 제가 정말 성경을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바울이 그 말을 했던 배경은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제 관념과 상상에 따라 마구 풀이했던 거예요. 바울이 말했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율법시대의 여호와의 복음을 전하면서 구약 율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한 거였지 지금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 바울이 그 서신을 쓸 때는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을 하셨던 게 아니니 말세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근데 저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한테 다른 복음이라고 했으니까 그건 제가 치우치게 이해했던 거고 억지로 가져다 붙인 거였어요. 전 정말 가련하고 빈궁하고 눈먼 자였어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전에 ‘동방번개’가 훔쳐 간 양을 찾아오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이렇게 알고 보니까 그 사람들은 미혹된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른 거였어요. 그러니까 ‘동방번개’로 간 뒤에는 다들 믿음이 넘치고 무슨 수를 써도 돌려세울 수 없었던 거예요. 그건 그들이 주님을 맞이했기 때문이었어요. 원래는 성경을 많이 보고 나서 ‘동방번개’에 갔던 좋은 양들을 다시 데려오려고 작정했었는데, 제 예상과 다르게 하나님은 특별한 상황을 통해 무감각하고 강퍅했던 제 마음을 소생시켜 주셨어요. 정말 가슴이 너무 벅찬 거예요.
그 뒤로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봤는데,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 이후에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였다. 그의 사역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역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를 끝내고 행한 새 시대의 사역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사역이 끝난 후에도 하나님은 다음 시대의 사역을 계속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경영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낡은 시대가 지나가면 새로운 시대로 대체해야 하고, 옛 사역이 끝나면 새 사역으로 하나님의 경영을 이어 가야 한다. 이번 성육신은 예수의 사역을 이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이다. 물론, 이번 성육신 역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뒤를 잇는 세 번째 단계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새 사역을 펼칠 때마다 늘 새로운 시작이 있고, 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역 방식, 하나님의 사역 장소, 하나님의 이름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생긴다. 이러니 사람이 하나님의 새 시대 사역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대적하든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항상 전 인류를 인도하여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열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였으며, 이번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내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를 열었다.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하나님나라시대로 들어갈 수 있고, 또한 직접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그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록 마음이 밝아졌어요.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불변한 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앞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각 시대의 사역은 모두 앞 단계 사역을 기반으로 한 차원 더 깊어지는 거였어요. 하나님께서 시대별로 다른 사역을 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성품도 달랐어요. 제 주장을 기준으로 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사역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그럼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뀔 수 없는 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도 그저 율법시대에 머무른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게 되죠. 그 결과는 인류가 하나님의 구속을 받지 못하고 결국 율법 아래에서 죽어야만 하는 거잖아요. 제가 ‘예수’라는 이름만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말세 새 사역과 새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는 절대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는 거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놓침으로 재난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거였죠.
그 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본 후, 그 말씀 중에서 단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여겨진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자신을 과신하거나 높이 여기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미약하게나마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의 마음에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자꾸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과연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이 말씀은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는데, 딱 저를 놓고 하신 말씀이었어요. 전에 남편이 저한테 성경에 부합하는 교제를 많이 해 주었지만 전 정말 무지하면서도 잘난 척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금 아는 성경 지식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단정 지었던 거예요. 그러면서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새 이름과 새 사역을 부인할 근거를 찾으려고 했으니 정말 아집이 세고 치우친 사람인 거죠. 그래서 제 관념을 내려놓고 계속 구하며 알아보기로 했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면서 회개하기로 했어요. 전에 남편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말해 줄 때는 계속 거절했었는데, 정말 듣고 싶은 순간에는 남편이 없었어요. 복음 전하러 객지로 떠났으니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맨날 대문을 열어 놓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찾아오길 기다렸어요. 교회의 어떤 자매님이 찾아와서 같이 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어느 날 아침에 밥 먹고 치우는데, 누가 절 부르더라고요. 보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자매였어요. 정말 가슴이 벅차올라 기쁜 마음으로 자매를 집 안으로 맞이했죠. 자매는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이라는 말씀 책을 펼쳤는데,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자매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전 집중해서 들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단계 사역은 전체 경영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이 모두 3단계 사역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는 방식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도 모르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다양한 방식과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모른다. 3단계 사역은 인류 구원 사역을 오롯이 나타내므로 3단계 사역을 모르면 성령이 역사하는 다양한 방식과 원칙도 알 수 없다. 한 단계 사역에서 남겨진 규례만을 고수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규례에 국한하는 자들이자 막연한 신앙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만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구원의 전 과정을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얻은 증거이자 하나님이 승리한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현이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의 사역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 알 뿐이다. 그나마 알고 있는 그 한 단계도 사람의 관념 속에서 규례로 변질되어 하나님을 규정하기 쉽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체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까지 가득 뒤섞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 지혜와 사역의 원칙을 유한한 범위에 단단히 국한시킨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 번 그리한 것은 영원히 그러할 것이며, 영세까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3단계 사역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정확하고 전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최소한 하나님을 이스라엘인의 하나님이나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단계 사역으로만 하나님을 안다면, 그런 앎은 그야말로 백사장의 모래 한 알과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원로 종교가들이 왜 하나님을 무참히 십자가에 못 박았겠느냐? 하나님을 한 범주 안에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냐?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지식과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했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은 체험이 얄팍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성령의 징계를 등한시한다. 또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낡은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스스로 학식이 높다고 믿으며 온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자는 모두 성령께 혐오받아 버림받는 자이자 새 시대에 도태되는 자임을 어찌 알지 못한단 말이냐?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얄팍한 지식으로 경망을 떠는 소인배들 아니냐? 얼마 되지도 않는 성경 지식으로 세상의 ‘학술계’를 휘어잡으려 하고, 겨우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돌려세우려 하고 자기 생각대로 주무르려는 야심을 품으며, 좁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6천 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다 꿰뚫어 보려고 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이성이 있다고 하겠느냐! 사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을 쉽사리 평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을 좀 말할 뿐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분수를 모르며, 또한 하나님의 어떠함에 대해 실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론만 멋대로 떠벌릴 뿐이다. 이런 사람은 가장 무가치한 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중에서) 이 말씀을 듣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제 속을 훤히 보고 계시는 게 느껴졌어요. 제 관념을 있는 그대로 들춰내셨으니까요. 저는 하나님이 하신 사역의 한 단계만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그 단계 사역에서 남겨진 성경 글귀를 붙들고 하나님을 틀 안에 가둬 두고는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에서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단정 지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에 대한 배신이요, 배도하는 거라고 주장했거든요. 전 정말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막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3단계 사역은 인류 구원 사역을 오롯이 나타냈어요. 전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의 사역만을 아는 사람으로,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 알 뿐이었는데도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하심, 하나님의 지혜와 사역을 제가 아는 범위에 단단히 가둬 놓고는 하나님이 한 번 그리하신 것은 영원히 그러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좁은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사역을 단정 짓고 있었으니 얼마나 교만하기 짝이 없었던지요.
그 후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재림주이심을 확신하게 됐어요.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가입했고 형제자매들이랑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배드리면서 필요한 걸 다 공급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기묘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주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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