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운이 나빠서 일까?

2025.4.18

2023년 4월, 저는 교회의 복음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리더는 우리와 예배하며 복음 전파에 관한 진리들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너무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 진리들을 복음 전파자들에게 잘 전한다면 종교인들의 관념을 해결하기가 쉬워질 것이고, 복음 사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서둘러 복음 전파자들과 예배하고 교제할 약속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제가 맡고 있던 한 교회에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만나기로 했던 형제자매들 중 일부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일부는 안전상의 이유로 참석이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 형제와 약속을 잡으려 했을 때, 그는 최근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당분간 참석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사람들이랑 예배 약속 잡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니. 중요한 순간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니, 어쩜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을까?’ 그때 리더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이미 교제를 마치고 실행하기 시작했다며 우리 쪽의 진행 상황은 어떤지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부러움과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어쩜 저렇게 운이 좋을까? 사역도 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우리 쪽은 아직도 전혀 진전이 없는데, 리더가 나를 보고 사역 능력이 없어서 일을 질질 끈다고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나도 사역을 잘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왜 내 사역도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와주시지 않으실까? 누구는 안전 문제가 있고, 누구는 바빠서 시간이 없고, 모든 일이 한꺼번에 겹쳐다니!” 이런 환경에 직면한 저는 무력감을 느꼈고, 본분 이행에도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른 교회의 자매에게 편지를 써서 예배 시간을 정해서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길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답장을 받았을 때는 이미 약속한 예배 시간이 지나버린 상태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운이 없을까? 겨우 잡은 예배였는데, 또 예배 시간을 놓쳐버렸네. 또 며칠을 더 미뤄야 하잖아.’ 그 사이 제 마음은 무척 초조했습니다. ‘처음에는 확신에 차서 사역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사람들조차 못 만났어. 리더가 사역 진행 상황에 대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아직 시작도 못한 것을 알면 일을 질질 끈다고 하지 않을까?’ 뜻밖에도 이틀 후 리더에게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공산당이 전국적으로 또다시 대대적인 체포 작업을 시작해서 많은 리더 일꾼이 잡혀갔으니, 당분간은 예배 약속을 잡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겨우 약속을 잡았는데, 또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됐어. 이러면 사역하기 더 힘들어지잖아!” 이 모든 상황을 마주한 저는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나도 사역을 잘 하고 싶어. 그런데 사역을 실행하려고 하면 왜 자꾸 일이 꼬일까? 하나님은 왜 보호해 주시지 않는 걸까? 역시 난 운이 나쁜 것 같아.’ 저는 생각할수록 운이 나빠서 무슨 일을 해도 순탄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지만 이리저리 뒤척이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좋은 운을 추구하는 면에 대해 폭로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자기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문제점은 대체 무엇이겠느냐? 그는 언제나 운이 좋은지 나쁜지를 기준으로 삼아 자기가 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자기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가늠하며, 마땅히 겪어야 할 일과 직면한 모든 문제를 가늠한다. 이것이 옳은 태도냐? (옳지 않습니다.) 나쁜 일은 재수가 없었다고 표현하고 좋은 일은 행운이라든지 이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이 옳은 것이냐?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물을 가늠하는 관점은 틀린 것이다. 이는 극단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가늠 방식이자 기준이다. 이러한 가늠 방식은 사람을 늘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사람의 심리는 항상 애타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 정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점점 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하나님마저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남은 선대하면서 자기는 선대하지 않고, 남은 보살피면서 자기는 보살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왜 나는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애가 타는 거지? 왜 나쁜 일은 꼭 나한테만 일어나지? 왜 좋은 일은 항상 내 몫이 아니지? 한 번쯤이라도 나한테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을걸!’ 이렇게 잘못된 사상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면 너는 행운과 불운이라는 굴레에 얽매이게 된다. 이 굴레에 점점 더 단단히 얽매일수록 네 정서는 계속해서 의기소침해진다. 그렇게 계속 의기소침해지는 과정에서 너는 네게 닥친 일이 행운인지 불운인지에 대해 아주 민감해진다. 네가 그렇게 민감해졌다는 것은 이미 행운과 불운이라는 관점 혹은 논조에 지배당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관점에 지배당하면 네가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 일종의 극단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극단에 빠지면 너는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의기소침해진다. 평소에는 전혀 의기소침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불운한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면 너는 곧바로 의기소침해진다. 이러한 의기소침함은 네 정상적인 판단과 결단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네 희로애락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네 희로애락에 영향이 가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전체적으로 교란되고 파괴된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들이 파괴되면 네가 깨달은 얼마 안 되는 진리가 연기처럼 사라져 아무런 작용도 못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에 빠졌을 때 너는 네가 깨달은 얼마 안 되는 진리 원칙을 실행하기가 어렵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늘 불안 초조하고 답답했던 이유는 일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이 잘못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운이 좋고 나쁨으로 닥친 모든 일을 판단하고 대했습니다. 사역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늘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겼습니다. 예배 약속 잡기가 순탄하지 않고 벽에 부딪히면서 자신은 재수가 없고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다른 교회의 사역은 모두 정상적으로 진행되는데 우리 쪽은 예배 약속을 잡는데 계속 문제가 생겼고, 형제자매들에게 안전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바빠서 시간이 없었고, 겨우 약속을 잡아도 또 예배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은 재수가 없고 운이 나쁘다고 생각해 답답하고 억울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지 않는다며 원망하기도 했고, 본분을 이행할 힘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뜻하지 않은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제가 그 속에서 진리를 구해 공과를 배우도록 하신 것이고, 이는 저의 생명에 유익한 것입니다. 저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이를 깨닫자 제 마음도 평온해졌고,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을 올바르게 대하고 싶었습니다.

묵상하던 중,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사람의 느낌은 사실 자기 사심과 욕망에 기반한 것이요, 자기 이익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본질에 근거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떠한 일을 두고 좋으니 나쁘니 할 때, 그의 근거는 정확하지 않다. 근거가 정확하지 않기에 최종적으로 가늠된 결과도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운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다들 운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좋고 나쁜 게 따로 없음을 알고 있다. 네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은 좋든 나쁘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것이므로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좋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이 닥쳤다고 자기 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좋지 않은 것이 닥쳤다고 해서 운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어디에나 자기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이를 거절해서도 안 되고 도피해서도 안 된다. 좋은 것이 임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지 않은 것이 닥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안배한 까닭이다. 좋은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는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기 마련이고, 좋지 않은 것에는 더더욱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 전부 다 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체험이며, 빠뜨려서는 안 될 부분이다. 사람은 이를 운이라는 말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일의 좋고 나쁨을 운으로 가늠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상 관점을 가진 것이냐? 그러한 사람의 본질은 무엇이냐? 그는 어째서 그렇게 운이 좋은지 나쁜지에 집중하는 것이냐? 운에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운이 좋기를 바라느냐, 안 좋기를 바라느냐?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사실 그는 자기가 운이 좋기를, 온갖 좋은 일이 다 자기에게 임하기를 추구한다. 자기만 실속을 차리고 이익을 얻으면 그만이요, 남들이야 어떤 고통을 받고,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든 관심이 없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재수 없는 일이 부디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쁜 일은 하나도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절, 실패, 난처함, 책망 훈계, 또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의 일은 닥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닥친다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안배한 일이든 간에 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곧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어디 발탁된다든지, 체면이 선다든지, 실속을 차린다든지, 이익을 얻는다든지, 큰돈을 번다든지, 높은 지위를 얻는다든지 등등의 좋은 일은 모두 자기에게 임해야 하며 이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운의 좋고 나쁨으로 자기에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나쁜 운이 아니라 좋은 운이다.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불만을 품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부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자기 실속과 이익만 추구하고, 우위를 점하기를 추구하며, 체면을 세우기를 추구한다. 좋은 일은 자기가 혼자 다 차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 본질이며, 진짜 모습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순조로운 일이든 순조롭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고 나쁨으로 나눌 수 없고, 운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매일 닥치는 환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것이며, 모두 우리 생명에 유익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이해득실만 고려합니다. 순탄하지 않은 일을 만나면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며 재수가 없고 운이 나쁘다고 여깁니다. 제가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 무슨 일을 하든 순조롭고, 직장에서도 계속 승진하거나 상사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어쩜 그렇게 운이 좋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까 생각했습니다. 반면 저는 똑같이 일해도 남들처럼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고, 늘 안 풀리는 일만 생겼습니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상사의 꾸지람만 듣다보니 저에게는 재수 없는 일만 생긴다며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그랬습니다. 자질이 좋고 본분 이행 성과가 좋은 형제자매가 리더의 중용을 받고 형제자매들의 인정을 받으면,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며 남들은 어쩜 그렇게 운이 좋고 자신은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생각했고, 본분을 이행하며 늘 벽에 부딪히고 순탄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운이 나빠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그런 생각이 터무니없는 망상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순탄하지 않고 재수가 없다고 여긴 것은 모두 저의 이익에 따라 판단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만약 제가 이번에 사역을 실행할 때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성과가 올라가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면, 저는 분명 기뻐했을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열심히 본분을 이행해 사역 성과를 높이겠다고 말하면서 사실 제가 고려한 것은 제 체면과 지위뿐이었고, 리더가 저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는 아예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개인적 이익과 관련된 경우에는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했고, 전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방인과 똑같은 관점이 아닙니까?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다. 평생 모든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실패와 좌절을 조금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때때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좌절 또는 실패가 임하더라도 이는 운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네가 마땅히 경험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은 소금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짠 것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신장이 나빠질 수 있다. 어떤 계절에는 신 것을 먹어 줘야 하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치아와 위에 좋지 않으므로 적당히 먹어야 한다. 신 것, 짠 것, 단것을 모두 먹고 쓴 것도 먹어야 한다. 쓴 음식은 인체의 특정 장기에 좋으므로 먹어 줘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도 이렇다. 인생의 각 단계에서 경험하는 사람, 일, 사물 대다수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째서 뜻대로 되지 않느냐? 사람이 다른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명리, 지위, 돈을 추구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거나 벼락출세 등등을 추구한다면 99%의 일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느니, 재수가 없다느니 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네가 운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말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러한 일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면, 많은 일이 그렇게까지 뜻대로 안 되거나 대처하기 힘든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네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어떠한 불행이 닥쳐도 거부하거나 도피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고 나쁨으로 이러한 일을 평가하지 않으면, 예전에 불행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일들을 이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뀌고, 네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네 심리 상태가 바뀌면서 너는 인생에서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동시에 다른 수확을 얻게 된다. 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체험으로, 네게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안겨 준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일을 경험하고,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으며,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경험이 풍부해집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겪어 고통스럽고 괴롭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야만 우리가 더욱 강해지고, 인성도 점점 성숙해지며 침착해집니다.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실패와 드러남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마다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구함으로써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아는 것은 우리의 생명 진입에 유익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겪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비바람을 전혀 견디지 못하고 나약할 것입니다. 예전에 만났던 형제자매들을 떠올려 보면, 어떤 이는 자질이 뛰어나 본분 이행에도 성과가 있었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순탄하고 별다른 좌절과 실패를 겪지 않았지만,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조금만 성과가 있어도 스스로를 내세우며 자랑하기 바빴고, 자기 마음대로 본분을 이행해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교란했습니다. 결국에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다가 회개하지 않아 출교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본분을 순조롭게 이행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꼭 좋은 일도 아니며 운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느냐입니다. 어떤 일이 닥칠 때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려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또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환경이 닥칠 때마다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울 수 있다면 사람의 생명에 유익함이 있습니다. 저처럼, 최근 본분에서 좌절과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아직도 본분 이행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하고, 체면과 지위를 위해 일하며,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결국에는 본분을 마친다 해도 진리를 실행한 것이 아니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한 것도 아닙니다. 결국에는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아 하나님께 혐오를 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바로 자신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자신에 대해 또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관념과 상상 속에 살아가고 추구하면 모든 것을 관념과 상상에 따라 바라보고 평가하며 판단하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떻게 진리를 공급하여 사람이 가져야 할 관점과 걸어야 할 길을 알려주든, 사람이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지 않으면 관념과 상상에 따라 살아가기 마련이고 이 관념과 상상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생명이자 생존 법칙이 된다. 그러면 사람이 여러 사물을 처리하는 방식과 방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 및 준칙이 되면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추구하든, 얼마나 고생하고 대가를 얼마나 치르든 전부 헛수고이다. 사람이 관념과 상상에 따라 살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적대시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이나 하나님의 요구를 진실하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얻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걸림돌입니다. 일이 닥쳤을 때 관념과 상상에 따라 판단하면 쉽게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동안 저는 관념과 상상 속에 살면서 자신이 사역을 실행하는 것도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고, 사역을 위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하셔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만들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보니 제 생각이 너무 비이성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환경 이면에는 하나님의 정밀한 계획과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고,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마련하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는 환경이 주어질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사물의 표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번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사역도 실행하지 못한 데에는 사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예배를 드리러 가려 했던 집이 공안의 감시를 받고 있어서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안 그랬다면 우리들은 체포되거나 감시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을 때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연루되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을 겪은 후 곰곰이 생각하니, 이번에 닥친 환경은 제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깨닫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출발점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고, 진리를 실행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이 제 관념과 맞지 않자, 저는 여전히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모습을 전부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닥치지 않았다면 저는 자신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회개해 변화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직 많은 지역의 교회에서 대대적인 체포가 진행되고 있고, 이런 환경에서는 배후에서 사역을 챙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사역의 성과를 거두고,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많이 구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어떤 곳은 상황이 좋지 않아서 본인과 접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점검한단 말입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그런 일을 처리하는 데는 방식과 길이 있다. 사람이 책임을 지는지, 마음을 다하는지에 달렸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가 충성심과 책임을 다했다면 그 일의 결과가 그리 좋지 않더라도 네게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감찰하고 알 것이다. 반면, 네가 충성심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고 뒤탈이 없더라도 하나님은 감찰한다. 이 두 가지의 성질은 같지 않으며, 하나님은 구분하여 대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지금 형제자매들이 일부 종교 관념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고, 저는 주요한 몇 가지 관념에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제 인식과 결합해 편지를 써서 형제자매들과 세세하게 교제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복음 전파 과정에서 문제나 어려움을 겪을 때도 즉시 편지를 보내 교제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협력하면서 복음 전파 성과는 이전보다 어느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비록 지금 사역하는 과정에 아직 많은 문제가 있지만 저에게는 협력할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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