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제는 책임을 맡는 게 두렵지 않아요
2020년 11월의 어느 날, 리더가 저희 팀을 찾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리더는 팀에서 글 편집 작업을 책임질 팀장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형제자매들은 놀랍게도 저를 팀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저는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내가 팀장이라고? 난 생명 진입도 얕고 진리 실제도 없는데, 팀장의 본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앞으로 사역에 문제가 생기면 다 나를 찾을 텐데,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사역을 지체하면 어떡하지?’ 과거 팀장 본분을 맡았을 적에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몸을 사리다 교체됐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저는 누군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을 보고서도 즉시 제지하지 못했고 결국 사역에 지장을 주게 되어 교체되고 말았었습니다. 이번에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서 하나님 집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지장을 주면 교체되는 건 물론이고, 심각할 경우 드러나 도태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 저는 리더에게 생명 진입이 얕아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니 팀장을 하기에 부족하다며 본분을 맡을 수 없는 이유를 잔뜩 늘어놓았습니다. 리더는 그래도 일단 먼저 받아들이고 순종해 보라고 했지만 저는 아무리 해도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그때, 문득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순종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바로 너의 본분이자 책임이다. 네 앞에 놓인 길이 어떻든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위축, 두려움, 걱정, 추측 등은 모두 본분을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마음이 좀 진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로 제게 이런 본분이 임했으니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도 일단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본분상 여러 문제점과 어려움이 생기고, 특히 팀 내 사역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또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역에 효과가 없으면 저는 팀장으로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이 여간 어지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파트너 자매와 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자매로부터 예전 팀장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은 탓에 업무에 발전이 없고 실제적인 사역도 못 하여 교체됐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불안해졌습니다. ‘지금 내가 팀장 본분을 맡은 상황에서 팀 사역에 문제와 어려움이 많은데,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하면 나 역시 교체되는 거 아니야? 차라리 팀원으로 있는 게 낫겠어. 이렇게 많은 책임을 짊어질 필요가 없으니 말이야.’ 하지만 팀장으로 뽑힌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일단은 본분을 이행하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얼른 물러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괜히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악행을 저질러 교체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착지마저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였던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 탓에 문제가 발생해 책임을 지게 될까 늘 두려워하며 지냈습니다. 특히 사역이 어려움에 처할 때면 저는 팀장감이 아니란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고, 계속 이런 일들에 영향을 받게 되니, 심적으로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적그리스도의 성품 실체를 폭로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저의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조정하는 이런 간단한 일에 있어, 적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무슨 일을 하든 힘이 닿는 대로 잘 해내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틀림이 없다.’라는 이렇게 간단한 진리조차 없다. 그에게는 무엇이 있겠느냐? 추측, 의심, 반항, 시험이 있다. … 적그리스도는 지극히 간단한 일을 큰 문제로 부풀려 생각하고 궁리하며, 심지어는 밤새 잠도 자지 못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어째서 간단한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또한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이 그에게 한 모든 일과 안배를 자신의 훗날 종착지나 복받을 희망과 긴밀하게 결부하고 연관 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 첫발을 잘못 내디뎠다간 완전히 길을 잘못 들 수 있어. 그럼 복받을 희망도 사라질 테고, 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거야. 방심하면 안 돼! 하나님 집, 형제자매, 상부 리더,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다 믿을 수 없어. 모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야. 사람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신뢰할 만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야.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타산하지 않는다면, 또 누가 나를 생각해 주겠어? 누가 내 앞날을 생각해 주고, 앞으로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 주겠냐고? 그러니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타산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궁리해야지, 실수하거나 작은 일이라도 대충 넘어가선 안 돼. 그랬다간 다른 이에게 미혹되고 이용당할 거야.’라고 생각한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본분이 바뀌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니 마땅히 올바르게 대해야 했습니다. 팀장으로 뽑혔으니 저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제 책임을 다하면 되었습니다. 정말 노력했는데도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교체되면, 그때에도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본분은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따라, 자신이 그 본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조정되는 거지 결말이나 종착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는 탓에 하나님 집에서 합당하게 본분을 조정하는 것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곡해해 생각하였습니다. 본분이 저의 결말이나 종착지와 관련 있다 생각하고, 제가 복을 받을지 여부와 관련 있다 생각하면서 늘 하나님을 의심하고 경계했습니다. 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교체되면 제 지위도, 미래도 다 사라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생각이 복잡하고 똑바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다 보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빨리 물러날 생각부터 하면서 간사하게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오직 제 앞날과 빠져나갈 길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높여 주셔서 팀장 본분을 맡기셨습니다. 이는 업무적으로나 생명 진입에 있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훈련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곡해하여 저를 드러내 도태시키려 한다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고 적그리스도와 똑같은 사악한 성품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 기간 제가 드러낸 것들을 살펴보니 온통 하나님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마음밖에 없고, 하나님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어 많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반성해 보았습니다. 나중에 적그리스도의 성품 실체를 폭로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신분, 본질을 믿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사유와 관점으로 이 모든 것을 대하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또한, 사람의 관점과 사람의 사유, 사람의 간계로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갖가지 역사를 바라보며, 나아가 사람의 사유와 사람의 방식, 사탄의 논리와 사탄의 사유로 하나님의 성품과 신분, 본질을 대한다. 분명한 것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품과 신분, 본질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과 신분, 본질에 대해 관념으로 가득 차 있고, 막연하고 텅 빈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사람의 이해만 가득할 뿐, 진실한 인식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할진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품과 신분, 본질에 대해 최종에 내리는 정의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뿐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정의는 의문이자 의혹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신분을 결정한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조차 코웃음을 치며, 의문과 부정, 비방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하나님의 신분에 대해서는 어떻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신분을 대표하거늘 하나님의 성품조차 이렇게 대하니, 하나님의 신분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부인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을 볼 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관점과 사탄의 논리를 기준으로 모든 일을 연구한다고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 안에도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인원을 조정하고 교체하고 도태시키는 일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높이 오를수록 더 심하게 다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높은 곳은 그만큼 춥다.” 등 사탄의 논리를 가지고 판단하면서 높은 지위를 얻으면 져야 할 책임도 크니 그만큼 빨리 드러나고 빨리 도태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팀장 본분을 맡았을 때, 겉으로는 받아들였지만 속으로는 계속 하나님을 경계하며, 무슨 문제라도 생겨 제가 드러나 도태되어 종착지를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긴 했지만, 일을 보는 관점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이 생겼을 때 진리를 구하지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일을 보지도 않고, 대신 사탄의 관점대로 하나님의 사역을 가늠했습니다. 하나님께선 사람이 잘못하기만 하면 바로 드러내 도태시키실 거라 오해하면서 하나님을 통치자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사람을 교체하고 도태시키는 것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자질이 어떠한지, 인성이 어떠한지, 진리를 추구하는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지, 가끔 저지른 과오나 일시적인 행위 때문에, 혹은 그 사람의 지위 고하에 따라서, 그 사람을 규정하여 교체시키고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헌신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리더를 맡은 후 설령 과오를 저지른다 해도 하나님 집에서는 책망하고 훈계하고 권면하고 충고해 주면서 다시 기회를 줍니다. 그때, 정말 자신에 대해 알고 회개하고 변화한다면, 교회는 그런 사람을 계속 쓰고 양성합니다.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고, 안락함만 추구하며 자기 역할을 하지 않고, 리더 자리만 차지한 채 리더의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거짓 리더들은 하나같이 교체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악하지 않고, 악행을 많이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렇게 쉽게 도태시키거나 출교나 제명을 하지 않고 하나님 집은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 합당한 본분을 맡겨서 반성하고 회개할 기회를 줍니다. 오직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지위와 권력만 위해 일하면서 교회를 쥐락펴락하려는 적그리스도만 완전히 드러내 도태시키고 영원히 교회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하나님 집의 인사 처분은 완전히 공정하고 공의롭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집은 진리가 다스리기 때문에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일이 없고 악인을 봐주는 일도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드러나 도태되는 건 지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느냐, 진리를 추구하느냐 여부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게 되고 많은 책임을 지게 되며, 더 많은 훈련의 기회를 얻게 되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원칙을 구하지 않고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아 패괴된 성품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결국 모두 도태되고 맙니다. 예전에 팀장을 맡았다가 교체되었던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건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던 제가 진리를 조금도 행하지 않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탓이었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임한 것이자 하나님께서 저에게 회개하고 변화될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그 일이 하나님의 구원임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였던 것입니다. 그제야 “높이 오를수록 더 심하게 다친다.”라는 사탄의 철학이 저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됐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했고, 점점 더 간사하고 사악하게 변해 갔던 것입니다. 더는 이런 사탄의 논리와 법칙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일을 보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시어 팀장 본분을 맡기셨고, 훈련받을 기회도 주셨으니 이를 소중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본분에 지장을 주었지만, 이제는 진리의 원칙을 구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최선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함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되돌려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하면서 경계심을 품고 있었을 때를 돌아보니, 저는 너무나 이성 없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소경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의 추한 모습을 분명히 보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탄의 그릇된 논리가 하나님과 제 사이를 막고 있던 큰 장벽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너무나 무디어진 나머지 아무 지각이 없어 하나님 마음을 전혀 모른 채 오해하고 경계하였습니다. 저는 너무도 패역한 자였습니다. 이제, 당신께 회개하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글을 보게 되었는데, 작가의 상태가 저와 비슷했습니다. 글에 인용된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실행할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 된다. 섬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은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심판받는 과정에서 점점 줄어들므로 본분을 가로막거나 본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섬기는 과정에서 폐단이 생길까 봐 섬김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가장 나약한 자다. …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결코 높은 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길 바라시고, 자기가 깨달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능력껏 발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건성으로 하지 않고, 몸을 사리며 잔머리 굴리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향상하길 바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할 수 있고, 실수도 할 수 있겠지만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러한 문제는 다 해결되고, 성장하고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순종하는 자세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슨 일을 잘못해서 과오를 저질렀다가 도태되어 종착지를 잃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진리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동안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던 것도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의 미래와 종착지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이기적이고 간사한 자였습니다! 본분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이자 모든 피조물이 마땅히 다해야 할 직책입니다. 마지막에 가서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상관없이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악행을 저지를까 봐 겁이 난다고 본분을 내려놓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장은 생명 체험이 얕고,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시어 팀장의 본분을 맡기신 것은 제가 곧바로 이 본분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제 부족함을 채워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도달하길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니 본분에서 생기는 문제나 어려움을 대면할 자신감이 생겼고,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겠다는 의지도 솟아났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매우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을 맡게 되었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를 추천하여 이행하게 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 맞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충성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려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네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입니다. 이런 것을 전부 써서 모두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정직한 모습 아니겠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것과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모습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치려 하지 않고, 감추고 숨기며, 꾀를 부리고, 핑계를 대서 거절하며, 제대로 하지 못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다른 이에게 시킨다면, 그것이 정직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마음만으로는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실행하지 않는다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실행하고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만 정직한 사람이고, 정직한 마음을 지닌 모습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기쁨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은 화복을 염려하지 않고,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릴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다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니 참 부끄러웠습니다. 평소 입으로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겠다고 말했으면서 정작 본분이 주어지고 진심을 바쳐야 할 때가 되자 잔머리를 굴리며 책임을 밀어내기 바빴습니다. 입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실은 하나님을 속이며 조금도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저는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성실하게 제게 맡겨진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본분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해결책을 구했고, 잘 모르는 문제는 형제자매들과 상의하면서 진리 원칙을 구하곤 했는데, 그렇게 하자 어려움이나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어 갔습니다.
이런 체험을 겪고 나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자 구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책임을 맡는 것이 두렵지 않고,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경계하는 일도 없습니다. 제게는 아직도 패괴 성품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면서 정결케 되고 변화되기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