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본분을 잃은 뒤의 뉘우침
저는 몇 년 동안 배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2022년 5월, 리더는 저에게 훈련 삼아 감독을 맡으면서 영상 검사도 겸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부담이 좀 됐지만 더 잘해 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무척 보람을 느꼈습니다.
2022년 8월, 새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고 감독은 저와 류윈 자매에게 주연 오디션을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오디션에 합격해 주연까지 맡으면 세 가지 본분을 감당하지 못할 게 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류윈 자매가 주연으로 뽑혔고 저는 3번 배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주연으로 뽑히지 않았을 때 저는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몰래 기뻐했습니다. 3번 배역은 대사도 많지 않고 비중도 크지 않아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에 저는 기꺼이 그 배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류윈 자매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여 주인공의 긍정적이고 굳센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저에게 다시 주연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지금 맡은 세 가지 본분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쁜데, 배역이 주연으로 바뀌면 더 바빠질 거 아냐? 게다가 주연은 우는 연기도 해야 하고 연기 난이도도 높아서 잘 해내려면 에너지를 엄청 쏟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저는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주인공은 좀 무게가 있는 편인데, 저는 아직 어리고 좀 가벼워서 이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류윈 자매는 이 배역에 많은 공을 들였고, 나이나 분위기도 더 잘 어울립니다. 단지 표정이 조금 아쉬울 뿐이니 옆에서 많이 도와주면 나아질 거예요. 저는 오디션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후 다 같이 상의한 끝에 역시 류윈 자매가 주인공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더 도와줘 보기로 했습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저는 제가 주연을 맡기 싫었던 이유가 고생하기 싫어서였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좀 느꼈지만 저는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매일 스케줄이 꽉 차 있자 저는 마음속에 약간 불만이 생겼습니다. 때로 저녁에 감독들이 모여 영화에 대해 논의할 때면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속으로 ‘빨리 좀 끝내지! 다들 끝나면 바로 쉴 수 있겠지만 난 영상도 검사해야 한다고. 검사할 영상은 언제쯤 줄어드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종종 빨리 감기로 영상을 봤습니다. 그러면 검사를 일찍 끝내고 더 빨리 잠자리에 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독 본분을 이행하려면 카메라 구도나 연출 방식 등을 깊이 연구해야 했지만 저는 그런 일은 너무 골치 아프다고 생각해서 공을 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연 배우가 연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다른 감독들은 자매가 배역을 잘 소화하도록 도왔지만, 저는 게으름 피울 생각만 할 뿐 배역을 깊이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쌓아 온 약간의 경험을 자매에게 알려 주는 데 그쳐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맡은 3번 배역에 대해서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배역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촬영 성과는 매우 안 좋았습니다.
하루는 한 자매가 저에게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며, 잔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운다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제게 확실히 자매가 말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차피 이렇게 많은 본분을 다 감당할 수도 없고, 감독 본분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교체되겠지. 교체되면 교체되는 거지, 뭐. 본분 하나 줄면 육적으로 고생도 덜하고 좀 한가해질 거 아니야. 한 가지 본분만 이행하는 것도 괜찮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계속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본분을 더욱 수동적으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 촬영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해 진도가 무척 느렸지만, 저는 오직 본분을 줄일 생각뿐이었기에 그런 문제들을 보고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본분 이행에 계속 부담을 갖지 않자 리더는 저에게 감독을 그만두고 맡은 배역에만 전념하라고 했습니다. 본분이 줄었지만 저는 여전히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연기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결국 촬영상의 문제와 저희 주연 배우 몇몇의 부족한 연기 때문에 그 영화의 촬영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또 몇 가지 특수한 사정으로 저는 더 이상 배우를 할 수도, 영상 검사를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연이어 본분을 잃었지만 무감각해진 제 마음은 깨어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본분을 잃은 데에는 객관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는 저에게 복음 사역을 책임지도록 안배했습니다. 저 역시 그 본분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옛 버릇이 또 도졌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며 겪는 어려움, 복음 전도자들의 협력 문제, 복음 대상자의 문제 등등 끝도 없이 일이 생기는 것 같자 저는 또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그저 지시를 전달만 했고, 매일 리더가 맡긴 일을 빨리 끝내고 일찍 쉴 생각만 했습니다. 피곤할 때는 ‘좀 수월한 본분은 없을까? 이 일은 왜 이렇게 항상 바쁘지? 언제쯤 쉴 수 있을까? 언제쯤 이렇게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뜻밖에도 그 ‘소원’은 금세 이루어졌습니다.
2023년 6월 9일, 제가 있던 곳에 특수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저는 격리되어 교회에 갈 수도, 형제자매들과 연락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제 본분은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환경에 저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한가해지니 어찌할 바를 몰랐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복음 사역이 이렇게 바쁘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마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왜 내 본분은 갑자기 중단된 걸까?’ 순간,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네가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그릇된 길로만 간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아 너는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은 안 되겠다. 쓸 수가 없구나. 옆으로 비켜라!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손해를 본 것이냐, 아니면 이익을 본 것이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 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난 늘 쉬고 싶어 했잖아? 늘 힘들고 고된 것이 싫어 요령을 피우고 육적인 것만 생각했잖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쉬게 됐네. 아무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됐다고!’ 머릿속이 하얘졌고, 뇌리에는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는 하나님 말씀만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고 그저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지난날 본분을 이행하던 제 모습을 돌아보니 마음속 깊이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왜 본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까? 왜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자책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것은 본분을 이행할 때 절대 금물이다. 네가 늘 대충 건성으로 임한다면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며,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현상을 발견하는 즉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얼렁뚱땅 넘어가면 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늘 건성으로 임하며 형식과 절차에만 치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본분 이행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기회는 잡지 못하면 사라지고 그 후에 다시 잡으려 해도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전에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지만 이제 다시 그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겠어.” 이런 의지가 있다는 것은 아주 좋다. 그러나 본분을 어떻게 제대로 이행할지 분명히 알고, 진리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기준 미달이다. 진리를 명확히 깨달을수록 본분 이행 성과는 좋아진다. 네가 이 점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진리에 힘을 쏟을 수 있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본분이 주어져 네가 힘을 들여야 할 때, 이는 네가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네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때이다. 어떤 것도 숨기거나 잔꾀를 쓰거나 여지를 남기거나 뒷길을 열어 두어서는 안 된다. 여지를 남기거나 잔꾀를 부리며 요령을 피운다면 절대 그 일을 잘 해낼 수 없다. ‘아무도 내가 요령 피운 걸 못 봤어. 정말 다행이야!’, 이것은 대체 어떤 생각이겠느냐? 너는 사람을 속였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속였다고 생각하느냐? 사실 하나님은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알고 있다. 사실, 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누구든 네 패괴와 추악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단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 몰래 너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많은 이가 드러나 도태된 이유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의 본질을 간파한 사람들이 그를 폭로하고 쫓아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양심에 따라 실질적인 일을 해야 한다. 네게 비록 결점이 있더라도 본분 이행에 효과가 있다면 도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절대 도태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여전히 본인에 대한 반성도 인식도 하지 않고, 본연의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건성으로 대충 임한다면, 이를 보다 못한 하나님의 선민들이 너를 폭로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도태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너를 꿰뚫어 보았고 네가 네 존엄성과 인격을 모조리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도 너를 신뢰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너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본분 이행이 기준에 맞는지, 정성으로 임하고 있는지, 건성으로 대충 넘어가려는 내적 상태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늘 건성으로 대충 임한다면 위험하다. 작게는 너라는 사람이 신용을 잃어서 다른 사람이 너를 믿지 않게 된다. 크게는 본분 이행에 늘 건성으로 임하고 하나님을 늘 기만한다면, 크게 위험할 것이다! 네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속임수를 쓴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느냐? 사람들은 누구나 네가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너는 순전히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고 매사에 건성으로 임하며 진리는 전혀 실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인성이 없는 것이다! 계속 그런 식으로 살면서 큰 잘못은 아니더라도 사소한 잘못이 계속되고,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악인이요, 불신파에 해당되니 제명해야 한다. 이는 무척 심각한 결과로, 바로 불신파, 악인이 완전히 드러나 도태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그 하나님 말씀은 전에도 적잖이 읽었지만, 그때처럼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 아팠던 적은 없었습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잔꾀를 부리며 요령을 피우는 것으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본분이 많아져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할 때면 마음속으로 불평했습니다. 여가 시간이 없고 제때 쉴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언짢았고, 언제쯤 쉴 수 있을까 하고 늘 바랐습니다. 영상을 검사할 때도 일찍 쉬고 싶은 마음에 건성으로 봤습니다. 비록 어떤 손실을 초래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요령을 피우고 건성으로 했던 것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정말 정직하지 않고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훈련 삼아 감독을 맡아 보라고 했을 때도 저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시나리오나 카메라 구도를 깊이 연구하는 데 공을 들이지 않았으며, 골치 아프고 신경 쓰이는 게 싫었습니다. 배우가 배역을 소화하도록 돕는 면에서도 잔꾀를 부렸습니다. 과거 연기 경험에만 의지해 배우를 지도했으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배우 본분에서도, 주연 배역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오디션 기회를 회피했습니다. 제가 뽑힐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치고, 하나님 집 사역에 필요할 때 저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협력하기는커녕 제 육이 편안할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제 육에 이롭지 않다고 판단되자 오디션을 보지 않으려 했고, 간사하게 핑계를 대며 회피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3번 배역을 맡았을 때도 저는 가볍게 여겼고, 충분히 준비하지도 않아서 촬영 결과물은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세 가지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시간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했다면 어느 본분 하나 제대로 못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본분이 아무리 바빠도 다른 사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더 하는 것뿐이었는데, 저는 그 정도 대가조차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늘 힘들고 고된 것을 두려워했고, 심지어 본분을 하나씩 잃어 가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복음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도 옛 버릇이 또 도졌습니다. 육적인 안일을 위해 저는 모든 일에서 요령을 피웠고, 건성으로 할 수 있으면 건성으로 하고 속일 수 있으면 속이며 제 인격과 존엄을 완전히 망가뜨렸고, 신뢰를 잃었습니다. 저는 결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었고, 진작에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었습니다.
지난날 본분을 이행했던 제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니 마음속으로 깊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온통 건성으로 대충 하며, 육적인 안일만 탐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오늘 제 본분이 갑자기 중단된 것은 당신의 형벌과 징계가 저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 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도록 저를 깨우쳐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 후 저는 제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했고,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처음부터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은 정예이지, 사람 수가 많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자, 교회 인원수에 대한 요구 원칙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예이다.”에서 ‘정예’란 하나님나라의 정예병을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이기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둘 다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해 ‘정예’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 진정한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 집에서 네가 사람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며, 너를 사람으로 쓸 수 있고, 누군가가 너를 끌고 당기고 밀지 않아도 사람의 책임을 다하고 사람의 본분과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면,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며, 공짜 밥을 먹는 사람도, 망나니도 아니다. 너는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인간이다! 본연의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망나니가 사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할 수 없습니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쓸모없는 자이다. 책임을 질 수 없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 하나님 집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없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리더 일꾼을 하든, 아니면 어떤 업무 기술과 관련된 사역을 하든, 너는 자신의 본분에 속하는 사역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활하고 생존하는 것 외에도, 그저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부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피조물,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하나님 집에서 늘 밥을 빌어먹으려고 하고, 어물쩍 대충 넘어가려 하고, 끝까지 대충 버티다가 복을 받으려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역과 책임도 감당할 수 없으며, 사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람은 도태시켜야 하며, 아깝지도 않다. 도태된 자들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를 쓸모없는 놈이라 불러도 좋고, 망나니라 불러도 좋으며, 건달이라 불러도 좋다. 어쨌든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는 어떤 사역을 맡아도 혼자서 완수하지 못하며, 어떤 임무를 맡아도 자신의 책임을 짊어지지 못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도 못한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나님이 그를 살려두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은총을 베푼 것이며, 특별한 은혜인 셈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게으름뱅이, 건달 같은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빈둥거리는 것’으로, 온종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나 육적인 안일만 생각하고, 제대로 된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본분을 대할 때 대충 할 수 있으면 대충 하고, 쉴 수 있으면 쉬고, 미룰 수 있으면 미룹니다.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어떤 사역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책임질 능력도 없으며, 그저 한가하고 편안하기만 바라다가 마지막에는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부류입니다. 제 모습을 비춰 보니 저 역시 그런 자들과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사역도 하지 않았고, 져야 할 책임과 부담도 지기 싫어했습니다. 그저 육적인 안일만 탐하며, 제 자신이 고생하거나 힘들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매일 소원은 그저 일을 빨리 끝내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돼지처럼 배불리 먹고 잠만 자려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영상 검사라는 중요한 본분을 제게 맡겨 주셨는데, 저는 일찍 자고 싶다는 이유로 영상을 검사할 때 빨리 감기로 봤습니다. 만약 저의 무책임함 때문에 기준에 맞지 않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갔다면, 하나님을 증거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했을 것이고 그 결과를 저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또한, 감독은 영화 사역의 책임자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할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신 것인데, 저는 무책임하게 요령만 피웠습니다. 저는 감독이자 배우로서, 영화 촬영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연된 것에 대해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본분 이행 중에 심각한 과오를 남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수년간 저를 배우로 양성해 주셨는데, 저는 새 영화에 적합한 주연을 뽑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안절부절못하기는커녕 태연했고, 심지어 육적인 안일을 위해 주연 오디션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려 하지 않았으니 인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의 여러 가지 행태와 제가 하나님 집 사역에 끼친 손해를 하나하나 짚어 보니, 하나님 말씀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나님이 그를 살려두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은총을 베푼 것이며, 특별한 은혜인 셈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제게 거듭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고, 제가 본분 이행을 통해 진리를 얻고 더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일을 하든 늘 대충대충 하고 빈둥거리려 했으니 정말이지 쓸모없고 양심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맡겨진 본분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저는 살아갈 가치도 없고 죽어도 아깝지 않은, 그저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제게 반성할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은혜였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가 본분을 맡을 때마다 늘 힘들고 고된 것이 싫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심한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라 제 안에서 사탄의 독소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는 말이나,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현재를 즐기고 스스로를 아껴야 한다’, ‘육적인 즐거움이 곧 복이다’와 같은 사상 관점들이 그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들에 의지해 살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고 비열해졌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고, 육적인 안일을 최우선으로 두었습니다. 마치 어릴 적, 중학교에 간 몇몇 친구들이 매일 동트기 전에 일어나 등교하고, 방과후에도 온갖 숙제를 해야 하는 것을 보며 저렇게 사는 건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고생해도 대학에 간다는 보장도 없으니, 저는 그저 현재를 즐기며 편안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서 초등학교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저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신경 쓰기 싫어했고, 남편이 알아서 다 처리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제가 복이 많아 자유롭게 산다고 했고, 저 역시 사람은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마음고생, 몸 고생 없이 여유롭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한 사탄의 독소는 이미 오래전에 제 본성이자 제가 일을 처리하고 처신하는 준칙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에 의지해 살면서 갈수록 육적인 것만 탐했고, 아주 천박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에도 저는 육적인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육적인 안일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만 약간의 대가를 치를 수 있었고, 일단 육적인 이익과 관련되면 어떻게든 육이 편할 길을 찾으며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했습니다. 마치 한 찬양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육을 위해선 목숨도 버리나, 진리 위해선 내놓는 것이 없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세상의 처량함 애석하도다> 중에서) 심지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성과가 생기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헌신하면 제가 손해 보는 것만 같아서 계속 안일만 탐냈고, 결국 본분 이행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감독과 배우로 있는 동안 하나님 집 사역에 그토록 큰 손실을 끼쳤음에도 저는 아무렇지 않았고, 마음 아파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객관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런 사탄의 독소는 저를 이기적이고 구질구질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제 육은 편안했지만, 제 인격과 존엄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더 이상 본분을 이행할 기회조차 없었고, 과거 본분 이행 중에 남긴 아쉬움은 제 신앙 여정의 오점이 되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겪으시고, 여러 방면의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공급하고 이끌며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쏟으신 심혈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그런데 저는 피조물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본분조차 이행하려 하지 않았으니, 제게 무슨 양심과 이성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정말이지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격리 기간 내내 저는 교회와 연락이 닿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튜브에서 형제자매들이 촬영한 영상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의 영화, 생명 체험 간증, 찬양, 무용 영상이 점점 더 많아지고 매일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형제자매들에게 성령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가 함께하심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게 몹시 부러웠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본분을 이행하던 날들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한때 저도 그 일원이었지만, 본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매번 건성으로 이행하다가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제가 남긴 과오와 아쉬움이 마치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진정한 행복이란 육적인 안일을 얼마나 누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선행을 예비했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일을 몇 가지나 했느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린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언제 떠올려도 아쉬움과 죄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하나님 말씀 찬양을 듣고 마음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1.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찾은 후 자기 본연의 위치에 제대로 서서 그 본연의 위치를 지키면서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온 힘을 다해 자기가 해야 할 일, 완수해야 할 일을 잘해 낸다면,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보고할 때 스스로 마음에 참소나 아쉬움 없이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위안과 수확이 있으며 값진 삶이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2. 삶이 값지고 마지막에 이런 수확을 얻기 위해 사람이 육체가 피로하여 병에 걸리거나 몸이 병들더라도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의미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그저 놀고먹는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삶의 가치가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니다.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
―<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그 찬양은 제게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육적인 안일은 잠시뿐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게으름과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문제 때문에 영원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실행의 길을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자기 몸을 사리고 하나님의 감찰을 피하려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면서 그런 행동이 옳은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거지? 내가 이렇게 건성으로 하면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어. 게다가 내가 몸을 사리려고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잖아.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정상 인성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태도도 아니야. 안 되겠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을 사리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 나는 하나님 집에 있잖아. 하나님의 주재와 감찰 아래 있다고. 나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양심적으로 일해야지, 내 마음대로 행동해선 안 돼.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몸을 사릴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사리거나 건성으로 임하는 게 아닐까? 더 노력해야겠다. 방금 나는 그렇게 하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젠 나도 알아. 그렇게 하면 귀찮기는 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 그렇게 해야만 해.’ 막상 행동에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고생할 게 걱정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게으르고 뺀질거리는 사람입니다. 저를 징계하고 질책하여 제 양심이 자각하게 해 주시고, 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충 건성으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패역과 추태를 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면 후회의 마음이 생길 것이며, 자신의 추태를 증오할 수 있어 잘못된 내적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대충 건성으로 하는 걸까? 나는 왜 늘 몸을 사리려 드는 거지? 그건 양심도 이성도 없는 짓이야. 그러고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왜 일할 때 참답게 대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에너지와 시간을 좀 더 들이는 것뿐이잖아? 그게 뭐라고? 그건 당연한 거잖아. 이런 것조차 해내지 못하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래서 의지를 다지며 하나님께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깊이 패괴되어 양심도 이성도 인성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회개하고자 하니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겠습니다. 만약 제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를 징벌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마음가짐이 바로잡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을 할 때 참답게 대할 수 있다. 대충 건성으로 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수 있다. 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깃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면 내적 상태가 바로 달라질 것이다. 네 마음속 소극적인 상태가 바로잡히고 자신의 속셈과 육의 사욕을 저버리게 되고 육의 안락함과 즐거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며 더 이상 제멋대로 하지 않게 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된다. 이렇게 육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쉽겠느냐, 어렵겠느냐?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되는데,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본분을 최우선시해야 합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건성으로 대충 하고 싶을 때는 즉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생할 각오를 더해 달라고 구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실행하면 건성으로 이행하는 문제를 점차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본분을 잃게 된 데에는 제 문제를 반성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신앙 여정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고 육을 저버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함으로써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는 제 실패의 근원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탄 성품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만약 앞으로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본분을 최우선시하고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추구하겠습니다.”
2024년 8월, 저는 마침내 교회와 연락이 닿았고, 다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벅찼고, 순간 기쁨과 감사, 죄스러운 마음이 한데 뒤섞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회개할 기회임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다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절대로 예전처럼 육적인 안일을 탐하지 않고, ‘본분을 최우선시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자’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후 교회에서는 저에게 배우를 맡아 체험 간증 영상을 촬영하도록 안배했고, 다른 본분도 겸하게 했습니다. 그때는 본분을 겸직하는 것이 더 이상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협력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알던 형제자매들이 지난 1년여 동안 본분 이행에서 큰 성장을 이룬 것을 보았습니다. 체험 간증 영상 촬영 진도도 무척 빠르고 연습 시간도 짧았습니다. 저는 제가 많이 부족하고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촬영한 첫 체험 간증 영상도 준비 시간이 매우 짧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속으로 ‘나는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사정을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준비 시간을 좀 더 길게 줘야지, 이건 너무 촉박하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감독에게 제 생각을 말했고, 감독은 “괜찮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협력하면 돼요.”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또 육을 만족시키며 수월하고 편안하게 본분을 이행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의 실패를 떠올리며 더 이상 육을 좇아서는 안 되고, 시간이 짧아도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그 후 저는 서둘러 준비했고, 곧 첫 번째 체험 간증 영상을 순조롭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비교적 긴 체험 간증 영상을 촬영할 때는 간혹 큰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지면 힘들고 고된 것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마음이 드러날 때마다 바로 알아차리고, 더는 육을 고려하지 않게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즉시 하나님께 기도하며, 몇 번이고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온 힘을 다해 협력했습니다. 비록 요즘 촬영한 영상 속 제 연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지는 않지만, 저는 이제 마음에 자책감이 아닌 평안함과 든든함이 있습니다.
몇 가지 본분을 맡았지만 소중히 여기지 않아 잃었다가 다시 찾게 되면서, 저는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진실로 체험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환경을 마련해 주시는 것은 모두 제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알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