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본성을 분별하는 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에는 ‘흉악함’도 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한마디로 악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부류의 사람이 지위를 가지면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그럼 지위가 없을 때는 그들이 적그리스도인지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인성이 어떤지를 보면 된다. 인성이 악독하고 음험하고 악랄하다면 100% 적그리스도이다. … 적그리스도의 흉악함은 일종의 성품이자 본질이다. 그것은 영락없는 사탄의 본질로, 본능도, 육체의 필요도 아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 성품의 한 가지 모습이자 특징이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은 어떤 모습과 표출, 행동으로 드러나겠느냐? 그가 하는 어떤 일이 그의 흉악한 성품과 악인의 본질을 대표하겠느냐? 말해 보아라. (사람을 혼내고 괴롭히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패거리를 짓고 이간질하는 것이 있습니다.) 패거리를 짓고 이간질하는 것은 좀 음험하다. 그것은 사악한 성품에 속하는 모습으로, 아직 흉악한 수준은 아니다. 관념을 퍼뜨리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은 흉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역지침에 대항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며 하나님의 제물을 강점하고 하나님에게 직접 대항하는 것은 흉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제물을 강점하는 것은 탐욕일 뿐 아니라 흉악한 성품의 모습이기도 하다. 제물을 강점할 수 있는 자는 성품이 너무도 흉악해서 비적과 같다. 방금 종합한 그 몇 가지를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사람을 혼내고 괴롭히는 것,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는 것,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 관념을 퍼뜨리는 것,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 사역지침에 대항하는 것,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 제물을 강점하는 것입니다.) 총 아홉 가지다.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의 모습에는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사실 구체적인 모습들은 더 있지만, 앞서 말한 것들과 유사하니 더 이상 구체적으로 열거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이런 행동과 수법을 보이는 부류가 바로 악인이다. 그의 행동이 음험한 것이 한 측면이다. 예를 들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는 것, 관념을 퍼뜨리는 것 등은 비교적 음험한 행동이다. 이 밖에, 그는 수법이 악랄하고 흉악한 편이다. 이는 성품이 흉악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6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3)>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본성 안에 있는 주된 한 가지 성품은 흉악함이다. 흉악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악랄하다는 뜻이다. 그는 순종하거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책망 훈계하는 사람을 정죄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다.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만만한 사람이라고, 늘 책망과 훈계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을 농락하고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그를 책망 훈계하면 상대에게 반항하고, 상대를 괴롭히려 한다. 또 누가 그의 결점이나 패괴를 지적하고, 진리와 하나님 뜻을 교제해 그가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면 그는 상대가 자신을 못살게 굴고 못마땅해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속 깊이 상대를 미워하고, 복수로 상대를 힘들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제하려는,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또 다른 태도이다. 자신을 책망하고 폭로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태도는 적그리스도에게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럼 어떤 부류가 이런 흉악한 성품을 지녔겠느냐? 악인이 그러하다. 사실 적그리스도는 악인이다. 그래서 오직 악인과 적그리스도만이 이런 흉악한 성품을 지녔다고 하는 것이다. 흉악한 사람은 선의에서 비롯된 그 어떤 사람의 격려, 질책, 가르침이나 도움도 감사하며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수치심에 분노를 터뜨리면서 극단적으로 상대를 적대시하고 증오한다. 심지어는 복수심도 생긴다. 누군가가 적그리스도를 책망하고 폭로하며 “당신은 그동안 제멋대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스스로를 뽐내기만 했으며, 지위를 위해 사역했죠. 본분도 엉망으로 이행했고요. 그러고서 하나님께 고개를 들 수 있습니까? 당신은 왜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 겁니까? 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겁니까?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교제해 주면 왜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는 겁니까? 왜 계속 당신 뜻대로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면, 그는 이 몇 개의 ‘왜’와 자신의 패괴 표출을 폭로하는 몇 마디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냐고? 왜가 어디 있어?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그랬지! 무슨 근거로 나를 책망하는 거야? 당신이 뭔데? 내가 멋대로 행동하면 당신이 날 어쩔 건데! 이 나이가 되도록 감히 나한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어.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고. 누가 감히 나를 훈계해? 나를 훈계할 만한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없어! 그런데 당신 따위가 나를 훈계하겠다고?’ 그는 증오심을 품고, 상대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으려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주판을 굴린다. ‘나를 책망한 그 사람은 교회에서 세력이 있나? 내가 그 사람한테 복수하면 그를 편들어 주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그를 혼내고 괴롭히면 교회에서 나한테 처분을 내리지 않을까? 방법이 있어. 그 사람한테 직접 복수하지 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벌이는 거야. 그 가족한테 손을 써서 그를 극도로 고통스럽게 해 주자. 그래야 내 분이 좀 풀릴 것 같아. 복수해야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나는 모욕을 당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괴롭힘 당하려고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야.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나님을 믿는 거라고!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는 말도 있잖아. 체면을 세우려면 분발해야 해. 감히 나를 폭로하다니, 이건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나를 인물로 취급을 안 하니 본때를 보여 주지. 끝까지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어디 한번 해보자. 누가 더 독한지 겨뤄 보자고!’ 보아라, 단순한 폭로의 말 몇 마디가 적그리스도를 격노케 해서 이렇게 큰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이토록 대대적으로 복수를 하게 했다.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물론, 그가 누군가를 증오하여 복수하게 된 것은 그들 사이에 원래부터 원한이나 응어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가 그의 잘못을 폭로했기에 원한을 품은 것이다. 이는 누구든, 예전에 그와 어떤 사이였든 그를 폭로하는 순간 그의 원한을 사고 그의 복수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게 누구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리더 일꾼이든 평범한 하나님의 선민이든 그를 폭로하고 책망하고 훈계하면 그는 그 사람을 원수로 대한다. 심지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한다. “누가 나를 책망하면 나는 그 사람을 못살게 굴 것이다. 누가 나를 책망하고 훈계하거나 내 과거를 폭로하여 내가 하나님 집에서 출교당하거나 복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 사람과 끝장을 볼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왔다. 아무도 감히 나를 건들지 못했다. 지금까지 감히 나를 건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이렇게 지독한 말을 한다. 그들이 하는 이 독한 말은 상대를 겁주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해 보는 소리도 아니다. 그들은 정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반항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증오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누구든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하는 사람, 자신의 실체를 까발리고 자기 실상을 폭로하는 사람을 마음속 깊이 증오한다. 어느 정도로 증오하겠느냐? 이가 갈리고, 눈앞에서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다.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할 정도로 말이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적그리스도가 자기를 폭로하고 정죄하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겠느냐? 그럴 리 없다. 그는 자신을 폭로하는 대상이 누구든, 자신을 폭로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존재라면 증오하고 복수하려고 하며, 자신을 책망한 상대를 눈앞에서 없애 버리지 못해 안달이 난다. 그는 상대가 잘되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한다. 만약 그 사람이 죽거나 화를 입는다면 기뻐하고, 그 사람이 살아서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며 모든 것이 평소와 같으면 마음이 괴로워하고 불편해하고 언짢아할 것이다. 손을 써서 상대에게 복수할 수 없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몰래 저주한다. 심지어는 그 사람을 징벌하고 응보를 내려 달라고, 자기를 위해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증오심을 품은 적그리스도는 일련의 행동을 한다. 그 행동에는 복수와 저주가 포함되며, 당연히 증오에서 비롯된 누명 씌우기나 중상모략, 정죄 등도 포함된다. 누가 그를 책망하면, 그는 뒤에서 상대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다. 네가 한 말이 옳아도 그는 틀렸다고 할 것이고, 네가 한 긍정적인 일은 부정적인 일로 왜곡할 것이다. 그리고 배후에서 이를 퍼뜨리며 교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어리석고 일을 밝히 알지 못하며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끌어들여 자기편에 세우고 자기를 위해 입을 열게 할 것이다. 그를 책망한 사람은 분명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 나쁜 짓을 그 사람이 한 것으로 누명을 씌워서 모두가 그 사람이 그 일을 했다고 오해하게 한 다음, 함께 그 사람을 저버릴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교회 생활과 사람들의 본분 이행을 교란한다. 그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자기를 책망한 상대가 잘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모두가 그 사람을 저버리게 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적그리스도도 있다. “당신이 나를 책망해서 곤란하게 했으니, 나도 당신을 편하게 해 줄 수는 없지. 다른 사람에게 책망당하고 버림받는 기분을 똑같이 느끼게 해 주겠어. 당신이 나를 대한 방식 그대로 돌려줄 거야. 나를 곤란하게 한 이상, 당신도 발 뻗고 잘 생각은 하지 마!”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했을 때 리더 일꾼이 그를 찾아가 대화하며 회개하라고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면서 도와주고 붙들어 주면, 그는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결코 하나님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없다고 날조한다. 사실 리더가 방금 한 게 그런 사역이었지만, 그는 돌아서자마자 그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중상모략한다. 이것이 흉악함 아니겠느냐? 이런 악인, 적그리스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하고, 자기가 저지른 나쁜 일, 잘못, 사악하고 악독한 일을 긍정적인 사물,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교회 사역에 아무리 큰 손실을 끼쳐도 인정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얘기가 나오면 그저 대충 몇 마디 언급만 하고 넘어갈 뿐이다. 반대로 그의 눈에는 그 일로 그를 책망하는 사람이 오히려 죄인이고, 비판해야 할 대상이다. 이는 흑백이 전도된 것 아니겠느냐? 심지어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리더 일꾼에게 책망받을 때 이렇게 반박하기도 한다. “형제자매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우매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고, 리더 일꾼이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리더 일꾼이 사역을 잘해서 바로 일깨워 주고 관리했다면, 하나님 집의 손실도 줄어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저희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리더 일꾼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겠죠.” 이는 또 적반하장이 아니겠느냐? 이런 적반하장이 바로 흑백을 전도한 것이고, 복수의 일종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교체되고 도태되는 순간, 체면을 집어던지고 원망을 퍼부으며, 그의 귀신 몰골을 드러낸다. 어떤 귀신 몰골이겠느냐? 지금까지 그의 본분 이행은 결코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진실을 말하면서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천국에 들어갈 목적이 아니었다면, 훗날 복을 받고 큰 영광을 얻으려는 게 아니었다면, 내가 분토보다 못한 당신들과 함께 지냈겠어? 당신들이 나와 함께 지낼 주제나 되나? 당신들이 나를 양성하거나 발탁하기는커녕 도태시키려 들다니, 나를 도태시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걸 알게 해 주겠어. 나를 도태시키면 어떤 결과를 보게 될지 보여 주겠다고!”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말을 퍼뜨리고, 이런 마귀적인 말을 내뱉는다. 체면을 집어던지는 순간, 그의 악독한 본성과 흉악한 성품이 드러난다. 그는 관념을 유포하는 한편,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고 분량이 작아 분별력이 없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수시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지는 사람들,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회유한다. “당신이 나를 도태시키면, 희생양 몇 명을 끌고 가야겠어!”라는 자기 말처럼 말이다. 이는 사탄의 본성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정상인이 이렇게 행동하겠느냐? 보통 패괴 성품을 지닌 사람은 교체될 때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희망이 사라졌다고 느끼지만, 양심이 있기에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가 잘못했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잖아. 앞으로는 좋은 쪽으로 행동하자.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실지, 어떻게 규정하실지는 하나님 일이니, 사람이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는 없어.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든 사람의 태도에 근거하는 것 아니겠어? 길을 잘못 들었다면 마땅히 징계받고 처벌받아야지. 이건 뭐라 할 게 아니야. 지금 괴로운 건 내 자질이 떨어져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하고, 진리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패괴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굴었다는 거야. 그러니 도태되어도 마땅하지. 그저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이야!’ 어느 정도 양심이 있는 사람은 이런 길을 걷는다. 그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고려하고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선택한다. 물론 그 안에는 진리 실행의 성분이 많지 않지만, 양심을 갖췄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고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다르다. 그는 흉악한 본성이 있어서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 자신의 앞날과 운명이 위협받거나 박탈당할 때,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그는 관념을 유포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판단하며, 그와 같은 불신파를 회유하여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기를 선택한다. 심지어는 그가 저지른 모든 잘못이나 과오, 그리고 하나님 집 사역과 재물에 초래한 손실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처분을 내리고 도태시킬 때, 그는 적그리스도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을 한다. 어떤 말이겠느냐? (“여기에서는 나를 받아 주지 않아도 어딘가 나를 받아 줄 곳이 분명 있을 거야.”라는 말입니다.) 이는 또 하나의 마귀적인 말 아니겠느냐? 그것은 정상 인성을 지니고 염치를 알며 양심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마귀적인 말이라고 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기 힘들고 지위와 명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특히 자신의 앞날과 운명이 박탈당할 것 같다고 느낄 때 표출하는 갖가지 흉악한 성품의 모습이며, 동시에 적그리스도 불신파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자들은 간사하고 교활하고 사악할 뿐만 아니라 특히 흉악하다. 자기 지위가 흔들리거나, 사람들 마음속 그의 지위를 이미 잃었고, 남들의 옹호나 추대를 받지 못하고, 더 이상 자신을 앙망하거나 우러러보는 사람도 없고, 명성이 땅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즉시 태도가 돌변할 것이다. 일단 지위를 잃어버리면,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하고,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대충 하고, 무엇을 해도 기분이 나지 않는다. 이건 그래도 최악의 모습은 아니다. 최악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자들은 일단 지위를 잃고 누구 하나 자기를 우러러보지 않고 더 이상 사람들을 미혹할 수 없게 되면, 마음속에 증오와 질투, 복수심이 생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거니와 눈곱만큼의 순종도 없다. 또한 그들은 속으로 하나님 집을 증오하고 교회를 증오하고, 리더 일꾼을 증오한다. 교회 사역에 문제가 생기거나 마비 상태에 빠지기를 바라면서 교회와 형제자매를 비웃으려 한다. 그 외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를 미워하고,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비웃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아주 흉악하지 않으냐? 딱 봐도 악인이 자명하다.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바로 악인이다. 그는 온라인 예배를 할 때조차 인터넷 신호가 좋은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며 저주한다. ‘끊겨라! 끊겨! 아무도 설교를 듣지 못하면 좋을 텐데!’ 이는 어떤 인간이냐? (마귀입니다.) 이는 마귀이다! 이런 자는 절대 하나님 집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마귀, 악인은 어느 교회에 가든 이렇게 교란하며,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폭로하고 제약하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한순간의 소홀함으로 인해 실수를 저질렀으니 앞으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누가 그를 분별하고 폭로하든 승복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보복하고자 한다. 자기가 불편하면 그는 형제자매들도 잘 지내기를 원치 않으며, 심지어는 마음속으로 몰래 형제자매들과 하나님 집 사역에 일이 생기라고 저주한다. 그러다가 하나님 집 어딘가에 일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고 좋아한다. ‘흥! 드디어 일이 생겼군. 나를 교체했기 때문이야. 모든 것이 잘못되면 좋지!’ 누가 연약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그는 기뻐하고 마음속으로 흡족해하며, 조롱하고 비꼬는 말로 상대를 깎아내리기까지 하는데, 심지어는 소극성과 사망의 말을 유포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하나님 집에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줄까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대가를 치르는 게 가치 있는 일일까요? 저는 지금 몸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만약 과로로 몸이 망가지면 누가 우리를 부양해 줄까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리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기뻐한다. 이는 음흉하고 음험하며 악독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은 보응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같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한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이런 자는 불신파 아니겠느냐? 만약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어째서 옳지 않으냐? (그의 마음에는 아예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적대시합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감찰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이 그의 모든 언행과 생각, 마음을 감찰한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믿지 않기에 두려움이 없고, 제멋대로 그런 마귀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하늘도 눈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지켜본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사람에게 진실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신파의 이런 마귀적인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면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겠느냐? 그 성질이 심각하지 않겠느냐? 너무도 심각하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참작의 여지 없는 마귀이고,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악인이라는 뜻이다. 오직 마귀, 적그리스도만이 감히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들 수 있다. 하나님 집의 이익은 하나님의 이익을 의미하며, 하나님 집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도와 허락, 인솔하에 있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저주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비방하면서 하나님 집을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하고, 언젠가 하나님의 선민들이 모두 체포되어 교회 사역이 철저히 마비되기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기를 바라는 자, 그렇게 되면 기뻐하는 자,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마귀입니다.) 이는 마귀이자 악마의 환생이다!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을 갖고 있고, 때때로 패역을 드러낸다.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질 때는 약간의 나쁜 생각을 품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는 그렇게까지 못되지 않고, 그렇게까지 사악하고 악독한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오직 적그리스도와 마귀만이 이런 본질을 갖고 있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마음속으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의심하겠느냐?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의심하지 않겠느냐? (그는 자기 생각과 말을 진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의 본성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이다. 사탄이 언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겼느냐? 언제 하나님을 진리라고 생각했느냐? 그런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적그리스도, 마귀도 이러하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분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기 말이 맞다고 여기며, 서슴없이 함부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본성이다. 반면, 패괴된 인간은 이렇게 행동할 때 마음속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그에게는 양심이 있고, 사람으로서의 지각이 있다. 사람의 양심과 지각, 그리고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내면에서 작용하여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질 때면, 옳고 그름, 시(是)와 비(非), 정의와 사악함이 맞붙어 그 결과가 나오는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의 사악한 세력 편에 선다.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은 사탄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는 소극성과 헛소문을 퍼뜨리고, 하나님 집을 웃음거리로 삼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저주하고 비방하고, 또 형제자매를 저주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하다. 그는 내면에 양심의 참소를 받지도 않고 전혀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100%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적그리스도의 사탄 본성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추악한 몰골이 철저히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영락없는 마귀이자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과하지 않다. 적그리스도는 태생이 마귀로, 절대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 아니고, 절대 보통의 패괴된 인간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마귀의 환생으로, 날 때부터 악마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에서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특징은 바로 권력을 혼자 차지하고 주무른다는 것이다. 누가 말해도 듣지 않으며, 어떤 사람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 누구에게 어떤 장점이 있든, 누가 어떤 올바른 관점과 고견을 제시하든, 혹은 어떤 적합한 방법을 내놓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그와 협력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가 하려는 일에 참여할 자격을 갖춘 사람 또한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성품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는 인성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어디 그냥 인성이 좋지 않은 것이겠느냐? 이는 그야말로 사탄의 성품이다. 이런 성품은 너무도 흉악하다! 어째서 성품이 너무도 흉악하다고 하겠느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소유물과 교회의 재산을 자기 손에 넣어 사유재산으로 삼고 자기가 통제하려고 하며, 다른 사람이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교회 사역을 할 때 고려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지위, 체면뿐이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자질이 있고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명예나 지위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진리를 교제해 하나님의 선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사람을 경쟁 상대로 보면서 억누르고 배척하며 이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매장하고 망가뜨리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사람들이 줄곧 소극적이 되지 않은 채 본분을 이행하고 간증을 말하고 남들을 붙들어 준다면, 적그리스도는 최후의 수단을 쓴다. 즉, 빌미를 잡아 정죄하거나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하거나 거짓을 날조해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교회에서 제명되면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는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가장 음험하고 악독한 면이다. 그가 가장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한 체험 간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가장 동조하고 옹호하는 이는 글귀와 도리를 공허하게 논하는 사람이 아니라 체험 간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진실한 체험 간증이 없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좋은 일을 좀 해서 남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듣기 좋은 말을 얼마나 많이 하든, 좋은 체험 간증 하나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이점과 도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의 하나님 선민에 대한 공급과 양육 성과는 무엇보다 크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누군가 체험 간증을 말하는 걸 보면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며 증오가 샘솟는다. 그는 간증을 말하는 사람이 더는 말하지 못하게 당장이라도 입을 막아 버리고 싶어 한다. 상대가 계속 말한다면 적그리스도의 명성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질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추악한 몰골이 철저히 드러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빌미를 잡아 간증을 말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억누르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그들 자신이 글귀와 도리를 논해 사람을 미혹하는 것만 허용할 뿐, 하나님의 선민이 체험 간증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을 가장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 사역을 잘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으면, 또 누군가 진실한 체험 간증을 말해 하나님의 선민에게 도움과 이로움을 가져다주고 그들을 붙들어 주며 모두의 동조를 받을 수 있으면, 적그리스도는 질투와 증오에 휩싸여 배척하고 억누르려 하며 이들이 사역을 맡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적그리스도 옆에 있으면 적그리스도의 빈궁함과 가련함, 추함, 사악함을 부각시키고 드러낸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파트너나 사역자를 선택할 때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적그리스도가 가장 질투하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로, 바로 적그리스도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진리를 실행하는 이들이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하나님 집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적그리스도는 죽을힘을 다해 그것을 은폐한다.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해서 말하며 좋은 일에 대한 공로는 자신에게 돌리고 나쁜 일에 대한 과실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몹시 시기하며,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까 봐 온 힘을 다해 공격하고 배척한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접하거나 옹호하고 동조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사탄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또한 이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사악한 역류이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는 원흉임을 증명한다. 이 밖에도 적그리스도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수시로 거짓말을 날조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이들을 깎아내리고 정죄한다. 이들이 어떤 사역을 하든, 적그리스도는 갖가지 이유를 찾아 배척하고 억누르며, 이들을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잘난 체하기 좋아하고,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체험 간증이 있고 진리 실제를 갖춘 사람들이며, 인성이 상대적으로 좋고 양심과 이성이 있으며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일부 결점과 부족함이 있고, 가끔 패괴 성품을 드러내지만,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들은 본분 이행에 적합하고, 본분 이행의 요구와 원칙에 맞는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고? 너는 내 구역에 들어와 역할을 수행하면서 나와 겨루려고 하겠지만, 그건 안 될 일이야. 꿈도 꾸지 마! 너는 나보다 지식도 많고 말솜씨도 뛰어나며 인맥도 좋은 데다 나보다 진리를 잘 추구하지. 너와 협력하라고? 네가 내 명성을 빼앗아 가면 어쩌라고?’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겠느냐?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겠느냐? 어떻게 해야 자신의 지위를 보전할지나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설령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자질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양성하거나 발탁하지 않는다. 그가 발탁하는 자는 다 아첨꾼들, 사람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에게 동조하고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또한, 언행이 매끄럽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을 발탁하여 자기 옆에 두고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하며, 자신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매일 자신의 주변을 맴돌게 한다. 그러면 그가 교회에서 세력을 갖게 되는데, 이는 그에게 다가가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있게 되고,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양성하는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로, 대다수가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그저 규례를 지키는 것밖에 모른다. 그들은 대세와 세력 따르기를 좋아하는데, 권력의 앞잡이, 바보들이다. 이방인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지 않으냐? 사내대장부의 노복이 되는 한이 있어도 무뢰한의 조상이 되지는 않겠다. 이와 정반대로 적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그들을 전적으로 양성해 자신을 거들게 하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 권력을 잡을 때 늘 멍청하고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끌어모아 자신의 조수로 삼는 한편, 자질 있으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사역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 특히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리더 일꾼은 배척하고 억누른다. 그렇게 교회에 두 개의 진영이 형성된다. 한 부류는 인성이 상대적으로 정직하고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적그리스도가 이끄는 멍청하고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다. 이 두 진영은 적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내쳐질 때까지 계속 싸우게 된다. 적그리스도는 늘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맞서고 대항한다. 이는 교회의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하나님의 뜻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막는 방해물이자 걸림돌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세력 아니겠느냐?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는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을 통해, 적그리스도의 비열하고 이기적인 인성과 진리를 싫어하는, 사악하고 흉악한 성품을 알 수 있다. 그는 비열하고 떳떳하지 못한 갖가지 수법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이는 그의 사악한 본성의 특징이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이 원하든 원치 않든 상관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늘 남을 통제하고, 우롱하고, 조종하려 할 뿐이다. 그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원하는 모든 것이 그의 지배를 받기를, 사람들 마음속에 그의 지위가 있기를,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기를, 어떤 일이 닥치면 그를 앙망하기를, 그의 말과 관점에 영향받고 제약받기를, 또 그의 뜻대로 지배와 통제를 받기를 원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흉악함 아니겠느냐? 마치 호랑이한테 목이 물려 있는 것과 같다. 숨을 쉬고 싶어도, 움직이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고, 그 시뻘건 아가리에 단단히 꽉 물려 통제된 채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며, 놔 달라고 애원해도 불가능하고, 협상의 여지가 없다.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성품이다. 네가 그에게 “사람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안 할 순 없나요? 착실하게 따르는 사람이 될 수는 없나요?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는 없나요?”라고 상의한다면, 그가 동의하겠느냐? 너의 선한 행동이나 네가 깨달은 진리로 그를 말릴 수 있겠느냐? 그의 관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으로 볼 때, 그의 사상 관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남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그의 욕망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사람은 그를 바꿀 수 없고, 그와 협상이 되지도 않는다. 이것을 가리켜 흉악하다고 한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3조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정도 통제한다> 중에서
적그리스도라는 이 마귀 사탄은 천성적으로 하나님과 모든 것을 놓고 다투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선민을 쟁탈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봉헌한 제물도 쟁탈한다. 표면적으로는 적그리스도가 탐욕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그가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봉헌한 재물마저 강점하고 집어삼키려 하니, 본질이 흉악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네가 디자인과 품질이 좋은 새 누빔 재킷을 샀는데, 누가 보더니 “제 것보다 좋네요. 제 건 낡아서 다 헤졌고 디자인도 구식인데, 당신 것은 어쩜 이렇게 좋은가요?”라고 하면서 강제로 네가 입고 있는 누빔 재킷을 벗겨 내고 자신의 낡은 누빔 재킷을 너에게 준다. 너는 반대할 수도 없다. 그러면 그가 너를 혼내고, 괴롭히고, 때리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데, 반항할 수 있겠느냐? 반항하지 못한다. 네가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이 너의 물건을 점유해 버린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떤 성품이겠느냐? 흉악한 성품이다. 교회 재물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이 경우와 다른 점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재물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관리’가 되어 교회 재물을 장악하면, 교회 재물은 그의 소유가 된다. 누가 무엇을 봉헌하든 모두 강점해 버린다. 강점이란 무엇이겠느냐? 바로 이런 교회 재물들을 교회 규정에 따라 바르게 사용하고 분배해야 하는데, 적그리스도가 통제한 후에는 그 한 사람만이 사용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교회 사역이나 교회 일꾼이 필요로 해도 사용을 허락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만 사용하며, 교회의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분배할지에 대해서도 자기가 결정한다. 너는 그가 원할 때만 사용할 수 있고, 그가 원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만약 교회 헌금이 많지 않은데 그가 혼자 점유해 다 써 버려서 교회 사역에 쓸 돈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교회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지출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그 재물들을 자신이 번 것인 양 혼자 쓸 생각만 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행동은 매우 부끄러운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지역의 교회에서, 적그리스도는 ‘지금 있는 곳이 괜찮네. 돈을 마음대로 펑펑 쓸 수 있어. 교회 규정이나 원칙에 따를 필요 없이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어. 리더가 되고서 드디어 돈 걱정 없는 삶을 누리게 되었어. 돈을 쓰고 싶을 때 말만 하면 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과 상의할 필요도 없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돈을 쓰는 일에 있어서 그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제멋대로 하며, 돈을 물 쓰듯이 한다. 적그리스도는 무슨 사역을 하든 교회 원칙과 사역지침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 재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전혀 원칙이 없다. 설마 그가 원칙을 모르겠느냐? 아니다. 그는 교회 재물의 분배 원칙과 사용 원칙을 훤히 알고 있지만, 자신의 탐욕과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위가 없을 때는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았던 평범한 사람도 일단 리더가 되면 완전 때깔이 달라진다. 먹고, 입고, 꾸미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어 평범한 음식은 먹지 않고, 옷에도 품질과 브랜드를 따져 가며 무엇이든 고급을 쓰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가 리더가 되면 마치 형제자매가 자신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모두 자기에게 갖다 바쳐야 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먼저 가져와야 하고, 자신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리더가 되면 교회 재물에 대해 우선적으로 점유하고 사용할 권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행동한다. 게다가 너무 심해서 역겨울 정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적그리스도의 인품은 어떠하냐? 리더가 되고 나서 아무런 사역도 하지 않고, 제물을 점유하려 하며, 우선적으로 제물을 사용하려 한다. 어떤 사람이어야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 토적, 악질 불량배, 토호만이 이런 짓들을 한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3조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정도 통제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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