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더 이상 저의 좋은 이미지를 지키려 하지 않게 되었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저희 다섯 자녀를 무척 어렵게 키우셨고, 마을에서는 모두가 어머니를 무시했습니다. 제가 기억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머니는 늘 저희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기개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난할지언정 뜻까지 가난해서야 되겠니.”,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은 한평생 살면서 좋은 명성을 남겨야지, 좋은 명성이 없으면 살맛이 뭐가 있겠니? 앞으로 어디에 있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남들에게 뒤에서 욕을 먹거나 손가락질당할 일은 하지 말고, 사람들이 너를 좋게 기억하고 칭찬하게 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간곡하게 타이르신 덕분에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이 말은 제 마음속 깊이 뿌리내려 제가 처세하고 행동하는 방향이 되었고, 저는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 마음속에 제 이미지를 굉장히 신경 썼습니다. 제가 십 대였을 때, 올케언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희 엄마와 언니가 자기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올케언니가 내 뒤에서 그런 말을 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자발적으로 올케언니의 아이를 돌봐주고 아이 옷을 빨아주고 밥을 먹여 주었습니다. 그 후로 올케언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늘 집안에서 제가 제일 낫다고 말했고, 마을 사람들도 저를 칭찬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저는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께서 병으로 누워 지내셨는데, 한동안 간병하다 보니 몸이 너무 힘들어 친정어머니께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시어머니께 잘해 드려야 한다. 욕 먹을 일은 없어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구나. 사람이 한평생 사는 게 다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인데, 욕을 먹어서는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는 동서 셋이 번갈아 가며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지만, 저는 마을에서 좋은 평을 듣고 싶어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동안 병상에 계신 시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저 또한 바라던 대로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좋은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어머니의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형제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신경 썼습니다. 제가 무언가 잘못해서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안 좋은 인상을 남길까 봐 두려워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열심히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읽었으며, 예배 때도 적극적으로 교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리더 본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저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제가 진리를 교제할 줄 아는, 자격 있는 리더라고 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동역자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동역자들이 무슨 일이 있어 제게 도움을 청하면 저는 최선을 다해 도왔습니다. 그들이 때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소그룹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문제를 발견해도 스스로 해결하지 않은 채 제게 와서 대신 교제로 해결해 달라고 하면 저는 그 일까지 다 맡아 해주었습니다.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저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사실 저도 매일 그렇게 바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은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반대했고, 집에 돌아가면 늘 야단을 맞았기에 제 마음도 매우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역자들에게 좋은 말을 듣기 위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저는 다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생활 속에서 어떤 억울한 일이 있거나 본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든 모두 제게 와서 하소연했고, 저 또한 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그들과 교제했습니다. 교회에서 저는 형제자매들로부터 한결같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번은 정루(郑璐) 자매와 제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정루 자매가 몇몇 형제자매들이 저더러 성품이 교만하고 말투가 강하다고 말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무척 놀랐고, 마음속으로 누가 저를 그렇게 평가했을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접촉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얼마 전 제가 고발 편지를 처리할 때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제 관념과 상상으로 함부로 단정 짓고 다른 사람들에게 제 말을 따르라고 강요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저는 확실히 교만방자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이 저를 그렇게 평가했다는 생각을 하니 저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마음도 몹시 울적했습니다. ‘나는 줄곧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내 이미지가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엉망이었구나. 정말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네! 앞으로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봐야 하지?’ 제 기분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마음은 몹시 괴로웠으며, 머릿속은 온통 형제자매들이 제게 내린 안 좋은 평가로 가득 찼습니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남몰래 울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 본분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기가 꺾여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제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예배에 갈 때는 제 말투와 표정에 특별히 신경 쓰면서 형제자매들과 말할 때는 최대한 부드럽고 느리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본분 이행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해도 지적하거나 폭로하지 않고 늘 그들을 달래 가며 하게 했습니다. 제가 다가가기 쉽고 겸손하며 교만방자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한번은 저희가 예배에서 사역을 이행하는데, 한 팀장이 집안일로 늦게 와서 예배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도 그 팀장이 본분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평소 예배에도 늦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지적하고 책망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그녀가 다른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가 얼마나 엄했고, 어떻게 그녀를 책망했는지 말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형제자매 마음속에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저는 자신을 억누르고 부드러운 얼굴로 그 팀장에게 말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이러시면 안 돼요. 다음에도 이러시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요.” 말을 마치고 나서,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면 앞으로 교회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저도 알아 차렸지만, 그녀가 저를 안 좋게 볼까 봐 두려워서 결국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저는 제가 이렇게 위장하는 것이 몹시 피곤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팀장은 그 후에도 변하지 않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여전히 질질 끌며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도 답답하고 괴로웠으며, 심지어 이 본분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너무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하루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가정의 교육은 한두 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수많은 명언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은 집안 어른이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일생에 다른 게 아닌 바로 이름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들 가운데 좋은 명성을 남기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어디서든 덕담과 칭찬을 많이 하고 선의의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남에게 미움을 사지 말고 좋은 일과 착한 일을 많이 하라.”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가정의 교육은 사람의 행위나 행동 원칙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자신의 명성과 명망,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상, 그리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 나타내는 모든 관점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평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요시하면 무의식중에 본분 이행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원칙에 부합하는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지,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차순위, 후순위로 본다. 반면 가정이 네게 교육한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은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네가 사람들 마음속의 사소한 부분까지 주목하게 만든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남들이 하는 그에 대한 평가까지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몰래 훔쳐 듣기도 하고 심지어는 남들이 그에 대해 적은 평가를 훔쳐 보기까지 한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나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좋게 얘기하는지 얼른 들어 봐야겠다. 아, 내가 게으르고 좋은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하네. 그럼 고쳐야지. 앞으로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부지런하게 지내다가 고민한다. ‘다들 아직도 날 게으르다고 하는지 들어 봐야겠다. 최근엔 별말 없었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그는 안심이 되지 않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모두에게 말한다. “제가 좀 게을러요.” 그럼 사람들이 말한다. “게으르지 않아요. 예전보다 훨씬 부지런해지셨어요.” 그는 곧 마음을 놓고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 ‘거봐. 나에 대한 모두의 평가가 달라졌어. 내 행동을 모두가 눈여겨봤나 보군.’ 네가 한 모든 것은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것도,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닌 자신의 명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네가 한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하겠느냐? 종교 행위가 된다. 너란 사람의 본질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전형적인 바리새인이 된다. 네가 걷는 길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이 된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다. 네가 한 모든 일의 본질은 변질되어 바뀌어 버린다.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도,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네 본분 이행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불합격이란 한 마디로 끝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가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과 피조물의 본분이 아닌 오로지 자기 명성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정의하면 네 기분이 어떻겠느냐? 그간 하나님을 믿은 것이 헛믿음이 아니겠느냐?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이 말의 영향을 받아 다른 사람의 평가와 마음속 자신의 지위와 이미지를 굉장히 중시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과 좋은 명성을 남기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줄곧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사상 관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올케언니가 저희 엄마와 언니를 안 좋게 말하는 것을 듣고, 올케언니가 저에 대해 안 좋게 말하게 하지 않기 위해 먼저 나서서 올케언니 아이의 옷을 빨아주고 밥을 먹여 주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 먼저 나서서 병상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를 10년 동안 모셨습니다. 비록 저 자신도 매우 힘들고 내키지 않았지만,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참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으며, 동역자들이 개인적인 일로 본분을 지체해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게 칭찬하는 것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도 힘이 났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기꺼이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괴로워 본분조차 이행하고 싶지 않았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제 이미지를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말하고, 말투는 최대한 부드럽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며 친근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팀장이 예배에 늘 늦고 무책임한 것을 보았을 때 저는 마땅히 지적하고 폭로해야 했지만, 책망했다가 그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될까 봐 저는 못 본 체하고 대수롭지 않게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거나 가볍게 언급하는 식으로 넘어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저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저는 리더로서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건성으로 하여 업무에 차질을 빚는 것을 보았을 때 마땅히 교제하고 도와주며 지적하고 책망하여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제때에 바로잡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명성을 남기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를 어기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을 방임했으며, 교회의 업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니 저의 그런 행동들을 생각하니 정말 역겨웠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제 행동에 대해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명성만 매우 중시한 것은 근본적으로 너에 대한 가정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네가 교육받은 것 중 가장 중요한 말은 무엇이냐?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이 네 마음에 깊이 뿌리내려 네 좌우명이 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 말에 영향받고 교육받아 커서도 자주 그 말을 되뇌면서 네 후대와 네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네 행동 및 일 처리 방식과 준칙으로 삼고, 나아가서는 네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나 방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목표와 방향이 잘못되면 마지막 결실은 부정적일 것이 분명하다. 네가 한 이 모든 일의 본질은 그저 이름을 위한 것이었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데도 너는 그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 넌 사람은 이름을 위해 살지 않느냐며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이 말은 긍정적이고 정당해 보여서 너도 모르게 이 말에 물들어 이 말을 긍정적인 사물로 간주한다. 네가 이 말을 긍정적인 사물로 간주한다면 너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고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얼떨결에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진리 준칙으로 여길 것이다. 네가 그것을 진리 준칙으로 간주한다면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든 듣지도 않을뿐더러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네가 무조건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네 좌우명에 따라 실행하고 일을 한 결과로 얻는 것은 좋은 명성일 것이다. 너는 바라는 것을 얻겠지만 진리를 위배하고 진리를 포기했기에 구원받을 기회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결과가 이럴 것이니 가정이 너에게 교육한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사상을 내려놓아야 하며 거부해야 한다. 그것은 네가 보류해야 할 것도 아니고 네가 평생의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 실천해야 할 말과 사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사상 관점의 주입이자 영향인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내려놓아야 한다. 네가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너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과가 아주 심각하다. 네게 있어 그것은 단순히 말 한마디가 아니라 하나의 암 덩어리이며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과 방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좋은 명성이나 명망을 추구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좋은 인상을 남겨서 남들의 지지를 받거나 남들이 엄지를 치켜세우게 만들라고 한 적도, 이름을 위해, 좋은 명성을 남기기 위해 살라고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직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과 진리에 순종하라고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네가 내려놓아야 하는, 너에 대한 가정의 영향 중 하나인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이 말이 실로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가르치신 사상을 받아들여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도 제 뜻을 굽히고 억지로 참으며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그것을 지고의 명언으로 여기며 지켰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닥치면 본분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고, 늘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치는 제 이미지만 생각했습니다. 자매님이 제 성품이 교만하고 말투가 강하다고 지적한 것은 제가 스스로 반성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감싸고 위장하며 겉모습의 허울로 형제자매들을 속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에 무책임하여 교회 업무에 차질을 빚는 것을 보고도 지적하거나 돕지 않고, 그저 달래고 어르며 스스로 사랑과 인내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 형제자매들에게 높이 평가받으려 했습니다. 사실 제 모든 언행은 겉으로만 자제하고 위장한 것이며, 위선적이고, 형제자매들을 미혹하고, 더욱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고 겸손하며 사랑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일부러 네거리에서 기도하며 날마다 교회에서 성경 지식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경건하고 충성스럽다고 여겼고 모두 그들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한 이런 행동들은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겉으로 보이는 좋은 행동으로 스스로 포장하여 사람을 기만하고 미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 행동이 바리새인과 똑같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 위장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는다 해도 결국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더로서 훈련 받을 기회라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여 교회 일을 지키고,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 지적하고 교제하여 해결하도록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직책이자 하나님의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로지 제 명예와 지위만을 추구하며 조금의 인격적 존엄도 없이 살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최소한 양심과 이성을 갖추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원칙과 기준대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함께 지내며 일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그럼 하나님이 요구하는 진리 원칙이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그를 이해하고, 그의 고통과 고충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물어봐 주고, 도움을 주며, 붙들어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더 이상 연약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에 부합되는 실행 방식이 아니냐? 이러한 실행 방식은 진리 원칙에 부합하며, 물론 이러한 관계는 진리 원칙에 더욱 부합한다. 어떤 이들이 일부러 방해하고 교란하거나 혹은 일부러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것을 보면, 너는 원칙에 따라 그에게 지적해 주고 질책하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수수방관하거나 그를 용인하고 감싸 준다면, 심지어 듣기 좋은 말로 그를 추켜세우고 칭찬한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은 분명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러한 방식으로 사람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분명 부적절하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해부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정말 간파하기가 어렵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람이 진리의 원칙에 따라 지내고, 형제자매가 소극적이고 연약하거나 부족한 점이 보일 때 사랑으로 교제하고 도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인식하여 생명이 성장할 수 있게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어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거나 지체한다면, 원칙에 따라 문제를 드러내고 책망해야 하며,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못 본 척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예배에 늘 늦어 교회 생활에 영향을 주던 그 팀장처럼 말입니다. 저는 마땅히 그 자매를 훈계, 책망하여 문제를 드러내고 분석해 주어야 했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제 문제를 지적하면, 저는 마땅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교만한 성품을 진지하게 반성하며 진리를 실행하여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야지, 스스로 위장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제 이미지를 지키려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실행의 원칙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다른 교회에 가서 복음 사역을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복음 전도 집사가 본분에 무책임하고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리더의 업무 감독과 점검에도 반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땅히 문제를 지적하여 도와주고 잘못을 드러내어 책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곳 예배에 처음 참석하는데 오자마자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면 다들 나를 어떻게 보겠어? 오자마자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협력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제가 또 명예와 지위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마땅히 먼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교회의 사역을 생각해야 하며 그것들을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 그다음 네 지위가 안정적인지,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언제나 교회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복음 전도 집사가 본분에 무책임하여 복음 사역의 진도를 지체하고 감독을 받으려 하지 않는데도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면 복음 사역을 지체할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의 생명 진입에도 유익이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제 지위를 의식하며 이미지를 지키려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자매가 저를 어떻게 보든 저는 진리를 실행하여 교회 이익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자매에게 본분 이행 중의 문제를 지적했고, 리더 일꾼이 사역을 감독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의 의미, 복음 전도 집사의 본연의 사역,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인지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교제 후, 자매는 자신이 본분을 건성으로 대했다는 것을 인식했고,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바로 잡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자발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복음 사역에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저는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개인의 이익과 자신의 체면, 지위를 지키려 한다면 교회 사역을 해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과 자신까지 해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제가 이런 인식과 변화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