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열등감에서 벗어나다
2022년,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임을 알고, 속으로 반드시 이 훈련 기회를 소중히 여겨 하나님의 나라 복음 확장에 제 힘을 보태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장신(张欣) 자매와 함께 협력하면서 장신 자매가 꽤 명확하게 진리를 교제하고, 새 신자를 양육할 때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끔은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제가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경우에도 장신 자매는 어렵지 않게 교제로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신 자매가 진리를 깨닫고 실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상대적으로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신 자매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러워했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장신 자매는 정말 아는 게 많아. 그에 비하면 내가 아는 건 정말 새 발의 피야. 같이 예배하고 교제하면 내 수준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내 부족함을 간파하지 않을까?’ 그래서 장신 자매와 함께 문제를 논의할 때면 제가 하는 교제가 너무 얕다며 자매가 비웃을까 봐, 라디오 청취자처럼 장신 자매의 교제를 듣기만 하면서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장신 자매가 예배에서 자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자매가 양육하던 새 신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자신이 온 후에 어떻게 붙들어 주었는지, 형제자매가 소극적일 때 어떻게 진리로 교제해 소극적이고 오해하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교회 리더가 일이 많아 너무 바쁠 때 자신이 어떻게 도왔는지 등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장신 자매에게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장신 자매는 분명 실제적인 체험도 있고, 교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도 성과를 보였어. 내가 자매 문제를 지적했다가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면 자매가 나를 어떻게 보겠어?’라는 생각에 결국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한 번은 책임자가 말할 때 장신 자매의 감정까지 고려하지 못했고, 장신 자매는 그 일로 책임자에 대해 선입견을 품게 되어 사사건건 따지고 들었습니다. 저는 장신 자매에게 교제하며 문제를 지적해 주고 싶었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신 자매는 나보다 진리를 더 잘 아는데 굳이 내가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지. 나 자신도 일을 잘 꿰뚫어 보지 못하고 깨달은 진리도 얕은데, 분명히 교제하지 못했다가는 장신 자매가 날 간파하지 않겠어?’ 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꾹 삼켰습니다. 점심 무렵, 마침 장신 자매의 상태에 딱 맞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막 장신 자매에게 교제하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장신 자매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어. 자매는 모르는 게 없는데 내가 굳이 교제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자매가 직접 하나님 말씀을 보게 하는 게 낫겠어. 그러면 자매에게 도움도 줄 수 있고, 내 부족함도 드러나지 않잖아.’ 이렇게 생각한 저는 장신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하나님 말씀이 정말 좋아요. 한번 읽어 봐요.” 저는 한껏 기대를 품고 장신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스스로 잘못된 상태를 인식하기를 기다렸지만, 예상과 달리 장신 자매는 말씀을 읽고도 별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조금 실망스러웠고 자매에게 좀 더 교제하고 싶었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 능력과 인식이 너무 얕고 실제적인 내용을 교제할 수도 없어. 그냥 내 분수에 맞게 행동하자.’ 이렇게 생각한 저는 장신 자매와 교제하려던 생각을 단번에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비록 장신 자매가 패괴 성품 속에 살고 있어도 진리를 저렇게 많이 알고 있으니 서서히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 후에도 장신 자매는 자주 그 일을 언급했는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가 끝나고 오히려 사람들이 책임자에게 문제가 있고, 장신이 패괴를 드러낸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예배 시간에도 그 일을 이야기해서 예배를 교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장신 자매의 문제에 대해 자매에게 교제해 주고 싶었지만, 말하려 할 때마다 목구멍이 막힌 듯하고, 늘 이런 생각이 앞섰습니다. ‘장신 자매가 나보다 깨달은 것이 훨씬 많으니 내가 자매에게 교제하면 그건 관우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 아니겠어? 아무래도 교제하지 않는 게 낫겠어.’ 그렇게 그 일은 지나갔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예배에 와서 장신 자매의 문제를 교제하며 드러내자 자매도 받아들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스스로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약한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 어렵겠다 싶으면 바로 물러난다. 왜 물러나겠느냐? 한 가지 원인으로는 열등감이 있다. 열등감 때문에 감히 사람들 앞에 서지 못하고, 자기가 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조차 다하지 못한다. 자기 능력과 자질이면 충분히 가능하고, 자기 인성과 경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도 부담하지 못한다. 이러한 열등감은 그의 인성에 온갖 방면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의 인격에도 영향을 끼치고, 당연히 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자기 관점을 발표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가 자기 입장과 견해를 밝히는 걸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이 닥치든 선뜻 입을 열지 못하며, 시종일관 움츠러들고 물러나기만 한다. 사람이 얼마 없을 때는 그나마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을 엄두를 내지만, 사람이 많을 때는 어떻게든 구석진 곳으로, 조명이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 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한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말을 좀 하고 싶고, 자기 관점과 견해를 발표해 자기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도, 그럴 용기조차 없다.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열등감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너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입 열지 마. 넌 안 돼. 관점을 발표하지 마. 네 생각은 너만 알면 돼. 정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컴퓨터에 기록하고 혼자 소화해. 남이 알게 하지 마. 말 잘못했다가는 망신당한다고!” 그 목소리가 쉼 없이 네게 말한다. “이렇게 하지 마라, 저렇게 하지 마라, 이 말 하지 마라, 저 말 하지 마라.” 결국 너는 뱉으려던 말을 도로 삼킨다. 하고 싶은 말을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생각했으면서 막상 말할 타이밍이 오면 중도에 포기한다. 말할 엄두를 못 낸다. 민망해서 말을 못 한다.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말하는 게 꼭 규정을 어기는 것 같고, 법을 위반하는 것 같다. 언젠가 자발적으로 자기 관점을 발표하게 되면 내심 극도로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한다. 그 극도의 불안감은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말하고 싶고, 자기 관점을 발표하고 싶고, 정상인이 되고 싶고, 남들과 똑같고 싶다는 생각을, 그러한 마음가짐을, 그러한 계획을 열등감이 차츰차츰 덮어 버린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네가 말수가 적다고, 조용하다고, 낯을 가린다고, 나서기 싫어한다고, 사람 많은 데서는 말하는 걸 쑥스러워해서 얼굴이 빨개진다고, 비교적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열등감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다. …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열등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속박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저를 자극하거나 깎아내린 사람도 없었고, 저를 억압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주 자유롭게 살았어요. 그렇다면 열등감이 없는 거 아닐까요?” 과연 그러하겠느냐? (아닙니다. 때로는 열등감이 있을 것입니다.) 많든 적든 있을 것이다.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진 않을지 몰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특별히 우러러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너보다 유능하거나 특기와 은사가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너보다 기가 세거나 막무가내이거나 악한 사람을 만났을 때, 너보다 덩치가 크거나 근사하게 생긴 사람을 만났을 때,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너보다 학력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너보다 나이가 많거나 하나님을 믿은 세월이 긴 사람을 만났을 때, 너보다 하나님을 믿으며 체험이나 실제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 너도 모르게 열등감이 생긴다. 이런 정서가 생기면 너는 자유롭지 못하다. 움츠러들게 되고, 말을 고르느라 심사숙고하게 되고, 표정도 부자연스러워지고, 언행이 제약을 받고,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습 또한 열등감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사람에게 열등감이 생겨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차마 자기 관점을 얘기하지 못하고, 특히 모든 방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은사를 가진 사람을 보면 더욱 움츠러들어, 그 사람의 문제를 보더라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앞뒤를 재며 지나치게 걱정하느라 결국 교회의 이익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자매와 협력하던 때를 돌이켜 보니, 저는 장신 자매가 깨달음도 많고 교제도 잘하고, 특히 새 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고, 교제에도 분명한 길이 있는 것을 보고, 장신 자매가 진리 실제를 갖추었는데 그에 비해 저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제가 깨달은 것들을 자매 앞에서 내놓고 교제하기가 민망했습니다. 저는 장신 자매 앞에서 마치 초등학생처럼 그냥 잘 듣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저도 모르게 열등감의 상태 속에서 살았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함께 문제를 논의할 때면 저는 청취자가 되어 많은 경우 장신 자매의 얘기를 듣기만 하고 제 관점은 거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장신 자매가 자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도 지적하여 도와주지는 않고, 오히려 장신 자매가 진리 실제도 있고 본분 이행에서도 성과가 있으니, 약간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건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신 자매가 사사건건 따지며 책임자에 선입견을 품었을 때에도, 자매가 스스로 반성하며 그 속에서 공과를 배우도록 교제해 주어야 했지만, 저는 자매가 저보다 더 일을 더 잘 꿰뚫어 보고, 저는 인식과 이해가 일반적이라 자매와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매에게 교제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저는 장신 자매의 문제를 발견해도 감히 말하지 못했고 자매 앞에서는 항상 위축되어 있었으며 제 관점이나 의견이 있어도 교제하기를 포기하곤 했습니다. 사실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교제 수준과 관계없이 문제를 발견하면 자기 책임을 다해 교제할 수 있는 만큼 교제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한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저는 열등감 때문에 장신 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얘기하거나 지적하지 못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점을 인식하고 무척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을 만날 경우, 상대가 누구든 문제를 발견하면 반드시 교제하고 도와주며 더 이상 열등감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며 왜 저보다 나은 사람 앞에서 이렇게까지 열등감을 느끼는 것인지를 구했습니다. 어느 날 예배에서 저는 제 상태를 교제했습니다. 한 자매가 제 문제를 짚어 주었는데, 자매는 제가 체면과 지위욕이 너무 강해서, 말을 꺼냈다가 남에게 얕보이고 명예와 지위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자매의 지적을 듣고 저는 의식적으로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잔머리는 쓸 줄 알지만 진리를 구할 줄 모르는데, 자신의 이익과 체면, 다른 사람 마음속의 자신의 위치 또는 무게를 특히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유일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의 목숨줄로 여기고 꽉 움켜쥐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볼지, 어떻게 대할지는 그다음이라 일단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 무리에서 우두머리인지,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자신의 말이 무게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이 위치를 선점하려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무리에 오게 되면 다들 이런 위치와 기회를 차지하려 한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려 하고, 능력이 평범해도 무리 속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무리 중에서 능력이 낮은 편이며 자질과 재능이 보통이어도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체면과 존엄, 이 최후의 보루를 반드시 굳게 지키려 하는 것이다. 설령 인격을 잃고 하나님의 인정과 열납을 잃더라도, 무리에서 쟁취하려는 체면, 지위, 남들의 우러름은 절대 잃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헛된 것들을 완전히 버리고 포기해야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버려야 할 이런 것들을 생명처럼 지키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그는 이런 이해관계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비장의 카드를 남겨 놓는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전부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자신을 위해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패괴된 인류는 모두 체면과 지위를 무척 소중히 여기며,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력과 업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 가운데 높은 지위를 얻어 다른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싶어 하고, 업무 능력이 평범한 사람조차도 남들보다 뒤처지고 얕보이는 것을 원치 않으며, 심지어 교회의 이익을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 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저는 제가 사역 능력이 별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이 닥쳤을 때 역시 체면과 지위를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얕보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존엄성과 인격이 있는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며 제 체면과 지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어떤 상황에서도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설령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저는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썼고, 저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제 관점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저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숨는 방식을 택했고, 가급적 말을 아껴서 제 부족함과 약점을 감추어 다른 사람에게 저의 안 좋은 면을 보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면 저를 언급할 때 최소한 좋은 평가를 줄 테니까요. 안 그러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요! 한동안 접대 가정의 한 자매가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자매에게 하나님 말씀을 자매에게 교제해 줄 수 있었고 제가 아는 만큼 교제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제 후 자매의 상태도 바로 잡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신 자매 앞에서는 자매가 모든 면에서 저보다 뛰어난 걸 보니까 괜히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 문제를 발견해도 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마치 입에 테이프라도 붙인 듯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장신 자매의 생명 진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제 체면과 지위를 지나치게 중요시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매우 후회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회개하오니 제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그 후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나이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본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각자 하는 업무가 다를 뿐, 자격 유무를 나누지는 않는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겸허한 마음과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이자 태도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진리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사람 간에는 높고 낮음도 없고, 자격의 크고 작음도 없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형제자매가 함께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일을 만나면 누구나 참여해서 자신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설령 교제의 깊이가 얕더라도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하며, 문제를 발견했다면 제때 지적해서 교회 사역을 지켜야지,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장신 자매와 협력한 일을 떠올려 보면, 장신 자매가 저보다 더 분명하게 진리를 교제하긴 했지만, 자매도 부족한 점이 있고,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도 있었습니다. 장신 자매가 패괴를 드러내거나 혹은 자매의 말이나 행동이 교회 사역에 불리할 때, 저는 방관할 것이 아니라 제가 보고 깨달은 것을 교제하며 제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을 따라 사람과 사물을 보며, 사람 사이에는 높고 낮음, 귀천, 자격의 크고 작음과 강약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약자는 강자에게 평생 다른 의견을 제시할 자격이 없고, 의견을 제시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고 심지어는 배척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관점이었습니다! 사실 설령 누군가 빛 비춤이 있는 교제를 하고 진리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이 완전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패괴 성품이 있어 때때로 교만하고 건방지게 굴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패괴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지적하고 도와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올바른 행동이며, 사람의 생명에도 유익한 일입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할 때면, 더 이상 체면과 지위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종종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는, 상대가 저보다 뛰어나든 아니든 올바르게 대하면서, 진리 원칙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부분이 보이면 바로 얘기하고, 다같이 구하고 교제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매우 가볍고 홀가분했습니다. 이후 몇 년 전 저를 양육해 주었던 리우후이(刘慧) 자매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자매는 본분을 오랫동안 이행했고 교제도 잘해서, 당시 저는 자매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이번에 다시 만나 교제를 들어 보니 조리도 있고 아주 명확했습니다. 그런 자매와 비교하면 저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한 번은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마다 늘 이치를 따지던 자매가 있었습니다. 리우후이 자매는 그런 자매에게 계속 그러다 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교제했습니다. 자매는 그 말을 듣고 꽤 두려워하는 듯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리우후이 자매가 문제를 해결할 때 길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결부하거나 말씀을 증거하는 데에도 방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과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아서 리우후이 자매에게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내가 지금 리더 본분을 이행하고 있긴 해도 리우후이 자매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야. 내가 하려는 말은 자매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일 거야. 그냥 말하지 말자.’ 그 순간 저는 또 제가 열등감에 얽매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도 열등감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눈 앞에 떠올라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열등감 속에 살 수 없어.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리우후이 자매가 날 어떻게 보든 내가 깨달은 건 교제해서 자매와 함께 진리에 진입해야 해. 더는 후회를 남기지 않을 거야.’ 그래서 저는 제가 발견한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리우후이 자매는 제 지적이 맞다면서, 이렇게 서로의 장점을 본받고 부족함을 보완하면서 조화롭게 협력하는 게 참 좋고, 자신의 생명 성장에도 유익이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열등감의 상태에서 벗어나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만한 변화는 하나님의 역사로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