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나이가 들어도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중국 훙초(紅草)

예순이 되던 해,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인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인류를 이끌고 공급하며 기르시어 오늘까지 살아 오게 하셨고, 말세에 하나님께서 또다시 인류를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고 아름다운 종착지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집에 와서 이렇게 큰 하나님의 구원을 얻었다는 건 정말 엄청난 축복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추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으로,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아무리 큰 방해나 좌절이 있어도 본분 이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22년, 저는 일흔여섯이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도 감퇴하고 반응도 느려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본분을 이행하러 갔습니다. 그날따라 자전거 속도가 빨라서 속도를 줄이려 했지만, 긴장한 나머지 머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앞뒤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아 버렸습니다. 저는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3~4미터의 작은 다리에서 굴러떨어졌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자주 가던 접대 가정으로 예배하러 가는데,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그 집으로 가는 길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결국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교회 리더는 제 나이와 안전을 고려하여 저더러 집에서 예배를 접대하고, 시간이 될 때 근처의 새 신자 몇 명을 양육하도록 안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 신자와 예배 드릴 때는 다른 자매에게 자전거로 저를 태워 오도록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조금 낙담했습니다. ‘예전에 건강할 땐 어디든 본분을 이행하러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예배드리러 나갈 때도 다른 사람이 데려 가야 하다니, 내가 교회의 짐이 된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하면 하나님께 기억되어 구원받을 수나 있을까? 앞으로 점점 나이 들고 그만큼 정신도 흐릿해질 텐데, 그때도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어?’ 특히 그 뒤로 새 신자와 예배를 드리는데, 새 신자는 젊고, 진리도 빨리 이해하고 반응도 빨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본 다음 교제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아무리 생각해도 교제하려던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크게 실망했습니다. ‘난 정말 늙었나 봐. 모든 면에서 따라갈 수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양육하던 새 신자 두 명이 안전상의 우려로 예배에 나오지 못하고, 저희 집 또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예배 접대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분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을 보며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어떤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되었어. 정말 늙으니 아무 쓸모가 없구나. 구원받을 희망도 전부 사라졌어!’ 저는 아무런 의욕도 없을 만큼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병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기침이 멎지 않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병원 진료로 상태는 좀 나아졌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고 몸 상태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 어떻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롭고, 온몸에 마치 서리가 내려앉은 듯 힘이 없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기도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일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면 TV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저의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늙고 병들어 그 어떤 본분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구원받을 희망도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낙담한 나머지 살아갈 기운조차 없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가 그릇된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이끌어주세요.’

어느 날 보게 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바로 제 상태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중 일부 연로한 사람들, 다시 말해 60대에서 80, 90대의 사람들도 많은 나이로 인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생각과 관점이 진리에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 연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으니 그들은 항상 이렇게 걱정한다. ‘이제 몸도 따라 주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한정적이구나.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해서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병에 걸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는 홀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이를 먹으니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기억이 안 나고 진리를 깨닫기도 쉽지 않다. 진리를 교제할 때 횡설수설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체험도 없구나.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고, 시력도 나빠지고, 체력도 달린다. 다방면으로 고충이 많으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깜빡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흐리멍덩해서 교회나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치니, 이래서는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고 싶어도 힘들겠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어떻게 이 나이에 하나님을 믿었을까? 왜 남들처럼 20, 30대에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까? 하다못해 40, 50대에 믿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늙어서야 하나님의 사역을 만나게 되었을까? 팔자가 사납다고 하자니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역을 만나게 되었으니 팔자가 좋은 편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기억력도, 건강도 좋지 않고, 열의는 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예배 시간에 조금만 듣고 있어도 졸리고, 눈을 감고 기도하면 잠들 때도 있다. 하나님 말씀도 입으로만 읽을 뿐, 조금만 읽어도 졸리고 노곤하여 읽어 나갈 수가 없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런 현실적 고충에도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수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허투루 믿은 게 아닐까? 구원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럼 어쩌지? 걱정이다! 이 나이 먹고 무엇이 중요하겠나. 이왕 하나님을 믿었으면 걱정하거나 근심할 게 무엇이냐. 아들딸 모두 장성하여 내가 돌봐 주거나 보살피지 않아도 된다. 평생 가장 큰 소망은 살아 있는 동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여 마지막에 구원받는 거다. 하지만 지금 나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을 보면 늙어서 눈도 침침하고 흐리멍덩해. 건강도 나빠졌으며 본분도 이행하지 못한다. 힘닿는 대로 일을 해 보지만 폐만 끼칠 때도 있으니 이래서는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걱정한다. 생각하다 보니 근심하게 된다. ‘좋은 일은 모두 젊은이들과 관련 있지 연로한 사람과는 무관한 것 같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든 내가 누릴 복은 없는 것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근심하고 염려한다. 자기를 걱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때문에 속상해한다. 울자니 딱히 울 일도 아니고, 울지 않으려 하나 약간 마음이 쓰리고 아프니 어쩌면 좋겠느냐? 특히 일부 연로한 사람은 풀타임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만 병을 앓고 있다. 혈압이나 혈당이 높거나 위장병이 있어 체력도 달리니 근심한다. 젊은이들이 잘 먹고 마시며 잘 뛰고 달리는 것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니 이런 젊은이들을 볼수록 근심만 깊어진다.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고도 싶은데 어쩌면 이렇게도 어렵기만 할까? 정말 늙으면 쓸모가 없어지는구나! 설마 하나님에게 노인은 필요 없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정말 쓸모없어지는 걸까? 구원받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도 괴롭고 즐겁지 않다. 이렇게 좋은 시기와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지만 젊은이들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연로한 사람들은 자기 나이 때문에 깊은 근심과 염려, 걱정에 빠진다. 고충과 좌절,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며 싫어하기까지 하지만 어떻게 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별수도 없고 나아갈 길도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저의 상태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과 꼭 같았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 몸도 기억력도 따라주지 않게 되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힘 닿는 만큼 본분을 이행해도 너무 적어서 하나님께서 기념해 주지 않으실까 봐 슬픔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리더는 제 나이와 안전을 생각해 저에게 집에서 접대 본분을 하면서 겸사겸사 새 신자 몇 명을 양육하라고 했지만, 저는 조금 낙담했습니다. 그렇게 제한적인 본분만으로는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처럼 반응이 빠르지 않다는 사실에 앞으로 나이가 더 들면 모든 면에서 뒤처지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점점 줄어들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특히 그 뒤로 본분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병까지 닥치자, 저는 더욱 낙심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지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니 더욱 구원받을 희망이 없는 줄 알고 근심과 우려의 정서에 빠졌습니다. 기도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힘이 나지 않았고, 심지어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은 의기소침한 정서로 살면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서둘러 하나님 앞으로 나아 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세요.’

그 후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고 제 믿음에 있던 불순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믿을 때의 속셈과 불순물을 명확하게 폭로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동분서주하며 고생을 마다 않고 대가를 치르려고 하는 것은 모두 복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보이지 않으면 바로 바람 빠진 공처럼 맥이 빠지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의욕이 사라집니다. 제가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를 돌이켜 보면, 저는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 구원받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추위와 더위에서든, 중공의 핍박이라는 험난한 환경에서든, 저는 물러서지 않고 본분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고 칭찬해 주실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기억력도 체력도 따라주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본분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나마 있었던 새 신자 양육과 예배 접대 본분도 협력할 수 없게 되자, 이제는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해서, 그때부터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과거 제가 본분을 이행할 힘이 넘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복을 얻고자 하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복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기도도 하기 싫고 하나님의 말씀도 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어찌 하나님께 진심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함이었고,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미래의 복을 맞바꾸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행위 아니겠습니까? 이런 제 행동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저 자신이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게 느껴지고, 하나님께 너무 죄스러웠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수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고,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입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 억장이 무너지고 괴로워서 속으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때, 하나님 말씀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시어 제가 올바르게 마주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다가 그렇게 높은 다리에서 떨어졌지만, 사람과 자전거 모두 무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복 받을 희망이 없다고 느끼자, 오해와 원망 속에 살며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어쩜 그리도 인성이 없었을까요? 애초에 교회에서 제 본분을 조정해 주었을 때는, 나이 든 제가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기엔 안전하지 않고, 교회 사역도 지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정하는 게 저에게도, 교회 사역에도 유익하므로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마땅합니다. 본분 조정이 닥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까지도 수년간 하나님을 믿어온 이면에 이토록 비열한 속셈이 숨어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은혜시대 바울을 떠올려보면, 그는 유럽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난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셈은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면류관과 복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복을 얻기 위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의 실패한 길을 걷고 싶지 않기에, 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남은 삶 동안 더는 복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묵상 중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질이나 나이를 보지 않으시며, 그 사람이 이행한 본분이나 본분의 양에 따라 구원 여부를 판단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한다면, 그런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구원받습니다. 저는 제 관념에 갇혀 늙고 아파 많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칭찬하지 않으실 테고, 그럼 구원받을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아무런 의욕이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세상의 사장처럼 여겼습니다. 직원이 쓸모가 있을 때만 쓰고, 나이 들어 쓸모가 없어지면 바로 해고하는 사장 말입니다. 저는 사탄의 관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며, 모독입니다! 이제 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입니다. 제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착실히 제 본분만 이행한다면, 하나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지금은 제가 팀장이나 교회 리더로서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어도, 힘 닿는 한 복음을 전하고, 또한 소극적이고 연약한 형제자매를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본분이든 진심으로 협력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원칙에 따라 일 처리 하는 데에 방점을 두면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한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더 보게 되었고, 마음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인이 할 일이 없는 것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네가 현세에서 축적한 여러 그릇된 견해와 황당한 논리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생각과 관념, 우매하고 완고한 것, 보수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치우친 것들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들을 파헤치고 해부하여 인식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은 네 임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먼저, 노인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나이가 많아 몸은 상대적으로 노화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젊어야 한다.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70, 80대가 되어서도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량이 너무 작아 아직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 앞에서 나이의 구분은 없다. 그 밖에 패괴 성품을 논해도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비록 몸의 여러 기능이 퇴화되어서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많은 패괴 성품이 있고, 각종 사탄 독소도 쌓여 있습니다. 따라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깊이 파헤치고 분석해야 합니다. 저는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교만하고 간사했으며 제 안에는 온갖 전통 관념과 사탄의 처세 철학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진리를 구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 한 자매가 예배 중에 늘 잡담하고 주제를 벗어나 교회 생활을 방해했을 때, 저는 그 자매를 지적하고 싶었지만, 괜히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면서 끝내 그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예배 때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상태와 연결해 교제하지 못할 때면, 저는 스스로 그들보다 교제를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고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고 이번에는 나이가 들었다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할까 봐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복을 받고자 하는 욕심이 너무 강했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진리를 구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 점들을 인식하게 되자 실행할 길이 보였습니다. 제가 나이는 들었어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닥치는 일들 속에서 저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찬양과 율동을 배우고, 복음을 전하는 본분도 이행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본분이 정말 많습니다! 이후 저는 매일 닥치는 일을 통해 저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는 데 집중하고, 저녁에는 그것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체험적 인식을 써 냈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건강이 좀 회복된 뒤, 저는 또다시 접대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환경을 잘 지켜서 형제자매들이 마음 놓고 예배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아 있는 마지말 날까지 자신의 본분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설령 훗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제 패괴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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