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더는 기호에 따라 본분을 선택하지 않게 되다
2006년,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줄곧 리더 일꾼을 맡았습니다. 매일 바쁘고 힘들었지만 전 볼멘소리하지 않았습니다. 리더와 책임자는 모두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본분을 이행하면 형제자매들이 매우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18년이 되었을 때, 저는 또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꽤 괜찮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에게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도록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상부 리더가 저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교회가 중국 공산당의 체포를 겪고 있어요. 여러 지역의 상황이 긴박해져서 행정 본분을 이행할 사람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저희가 상의해 봤는데, 자매님과 자매님 집에 계신 형제에게 함께 이 본분을 맡기고 싶어요.” 리더의 말을 듣고 머리가 순간 ‘웅’하고 울리며 복잡해졌습니다. 제 두 귀를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행정 본분을 하라고 할 수 있지? 리더가 뭔가 잘못 안 게 아닐까? 행정 본분은 그냥 몸을 써서 하는 것 아냐? 그 본분은 너무 수준이 낮잖아! 형제자매들이 알게 되면 날 어떻게 보겠어?’ 저는 생각할수록 반발심이 생겨 리더에게 이 본분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렇게 안배한 데에는 사역의 필요에 따른 것임을 생각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 마음은 계속해서 요동쳤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 나는 줄곧 리더 일꾼이나 문서 본분을 해왔어. 어떤 본분이든 사무 본분보다는 더 명예로워 보이잖아. 나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나르고 더럽고 힘든 일을 하라고 하다니. 지금 하는 문서 본분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크잖아. 팀 내 자매들이 알게 된다면 나를 얕보면서 내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이 본분을 이행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저는 힘없이 침대에 누웠습니다. 자매들을 마주했을 때 저는 억지웃음만 지었고, 제 내적 상태를 터놓고 교제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행정 본분을 하게 된 걸 자매들이 알게 되면 절 얕볼 것이 두려웠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저와 남편은 정식으로 행정 본분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며칠간은 위험에 처한 형제자매들의 이사를 도왔습니다, 저와 남편은 매일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일어나 이사를 했습니다. 오르내리며 뛰어다니느라 힘들어 매일 허리가 쑤시고 등이 아팠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밥을 먹기도 싫었고, 침대에 누워 일어날 기운도 없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매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바빠지자, 속으로 또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너무 힘이 많이 드는 일이야. 세상에서는 지식도 없고 교양도 없고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하나님을 믿은 지 이렇게 오래되고도 결국 이런 처지로 전락할 줄이야. 그저 힘만 쓰고 땀 흘리며 가장 미천한 일을 하게 된다니. 예전에 문서 사역을 할 땐 컴퓨터 앞에 깔끔한 옷차림으로 앉아서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지금은 종일 힘들게 땀 흘리는 바람이 등이 다 젖다니. 정말 천지 차이야!’ 저는 매일 어쩔 수 없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내적 상태는 극도로 침체되어 종일 멍했고, 마치 살아 있는 송장처럼 지냈으며 마음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행정 본분을 안배하시고 이끄신 것은 어떻게 해도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행정 본분은 수준이 낮은 것 같고 사람들이 얕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부디 제가 공과를 배울 수 있게 저에게 깨우침을 주시고 이끌어주세요.’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자주 우월감을 갖곤 하는데, 어떤 우월감이겠느냐? 무엇으로 인해 이런 우월감이 생기는 것이겠느냐?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외국어를 할 줄 알아서 자신에게 은사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집에 만약 자기들 같은 사람이 없으면 사역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가든 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보길 바란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타인을 접할 때 어떤 식이겠느냐?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집에서 다양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리더, 두 번째는 특수한 재능이 있는 사람, 세 번째는 평범한 재능이 있는 사람, 마지막은 후방에서 여러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다. 중요하고 특수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을 밑천이자 진리 실제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무슨 문제이겠느냐? 이는 너무도 터무니없지 않으냐? 그는 특수한 본분을 좀 이행한다고 해서 교만해지고 안하무인으로 남을 무시한다. 그는 타인을 접할 때 늘 상대방에게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묻고, 만약 상대방이 평범한 본분을 이행하면 그 사람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업신여긴다. 다른 사람이 그와 함께 교제하려고 하면 그는 겉으로는 그럭저럭 응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와 교제하겠다고? 당신이 뭔데? 그까짓 본분이나 이행하는 주제에 내 대화 상대가 되겠어?’ 만약 상대방이 이행하는 본분이 그의 본분보다 더 중요하면 그는 아부하고 부러워한다. 그는 리더 일꾼을 만나면 노예처럼 입발림 소리를 한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원칙이 있는 것이겠느냐? (없습니다. 그는 이행하는 본분에 따라 사람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대합니다.) 그는 자격을 따지고 서열을 중시하며 재능과 은사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구분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부탁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내는 일은 나한테 시키네. 이건 불공평하잖아! 난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본분을 대하던 관점이 잘못되었으며, 하나님 집 본분에 등급을 매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이나 각 팀 책임자를 하는 사람은 자질이 훌륭하고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형제자매들이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행정 본분과 같은 일은 자질이 별로 좋지 않고, 진리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본분을 하는 사람은 수준 낮은 사람으로 존재감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에 했던 본분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때 형제자매들은 모두 저를 높이 평가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전 늘 모종의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운이 났고, 가정을 떠나고 생업을 포기하며 고생하고 헌신하는 것도 모두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에게 행정 본분을 안배하자 저는 제가 좌천된 것처럼 느껴졌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가 열등한 것 같았습니다. 특히 본분을 이행하며 고생스럽고 힘들어지자, 속으로 원망의 말을 내뱉으며 리더가 이렇게 안배한 것은 저에게 불공평한 처사고 제 인격을 해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계속해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제가 본분을 선택한 것이 모두 사람들 앞에서 돋보이는지, 저에게 이득이 있는지를 고려하며 교회의 사역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바라보지 않고 본분에 등급을 매겨 불신파와 같은 관점으로 일을 바라봤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한 저는 마음이 조금 괴롭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늘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말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럼 본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겠느냐? 크게 보자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사역으로 인해 생긴다. 작게 보자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사람들 가운데서 전개되면서 여러 가지 사역이 생기는데, 그러한 사역은 사람이 협력하고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에게 책임과 사명이 생기게 되고, 그 책임과 사명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본분인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각종 사역이 바로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그렇다면 본분에는 상하 귀천이나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겠느냐? 그런 차이는 없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과 관계가 있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사람의 본분이다. 이것이 바로 본분의 유래이자 정의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사람은 어떤 태도로 본분을 대해야 하느냐? 첫째, 분석하지 말고, 누가 안배한 것인지 따지지도 말고,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본분이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상하 귀천을 논하지 말고, 어떤 성질의 본분인지,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앞에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뒤에서 하는 일인지 등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순종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순식간에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 집 본분에는 높고 낮음이나 귀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떤 본분을 하든 각자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하며, 모두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에서는 개개인의 분량과 자질에 따라 본분을 안배합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리더는 저에게 행정 본분을 맡기며 형제자매의 접대 가정을 배정하고, 그들의 생활을 잘 마련해주어, 형제자매들이 마음 편히 본분을 할 수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역시 사역의 필요에 따른 것입니다. 기계처럼 말입니다. 모든 부품은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어떤 부품 하나만 빠져도 기계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본분은 필수 불가결인 것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진리 실제가 있는지 보는 것도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줄곧 리더 일꾼의 본분을 이행하며 형제자매들에게 예배로 교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본분 조정이 한 번 생기자 저는 순종하지 못했고, 이방인의 관점으로 가늠했습니다. 저에게서 진리가 없는 불쌍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된 모든 것은 본분이라 하시며 높고 낮음이나 귀천이 없다고 하시면서 모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매우 고귀하게 여기며 제가 행정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뛰어난 인재를 별 볼 일 없는 곳에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소극적으로 변하고 대항하며 심지어 도망치려고도 했습니다. 이런 제가 어찌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본질은 그토록 거룩하시고 존귀하시지만, 모든 고통을 받으시며 성육신하시어 진리를 발표하셨고, 묵묵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육적으로 조금 고생한다고 해서 연일 고통을 호소하고 원망하며 오해했던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는 정말 인성이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너무 큰 빚을 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했던 제 행동이 후회되었습니다. 더는 제 기호와 바람에 따라 본분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순종하기로 마음먹자, 본분을 이행하는 제 마음가짐도 달라졌고, 마음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으며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배하신 환경은 제 안에 있는 그릇된 관점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저를 향한 사랑이자 구원입니다.
6개월간의 행정 본분을 마친 후 저는 제 관점이 바뀌었다고 생각했고, 더는 체면과 지위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한 사건이 임하자 저는 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리더가 저를 찾아와서 저와 남편에게 접대 본분을 맡기고 싶다며 상의했습니다. 예전에 행정 본분을 이행하면서 순종하지 않아 빚진 마음이 들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더 이상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저희는 서둘러 집을 임대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형제자매들이 모두 문서 본분을 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쓰리고, 착잡했습니다. ‘나도 예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본분을 이행했어. 그런데 지금은 매일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채소나 다듬고 밥이나 하다니.’라는 생각에 제가 다른 사람보다 수준이 낮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눈물이 핑 맴돌았습니다. 하루는 리더가 저희 집으로 와 형제자매와 사역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 상태는 묻지도 않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제 기분은 더 우울해졌습니다. 과거 문서 본분을 이행할 때를 떠올려보면 리더가 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종일 냄비나 접시, 그릇들과 씨름하고 있으니, 제가 돋보일 날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사는 게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제 내적 상태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패괴 성품에 지배받은 사람은 무엇을 자신의 이상, 소망, 포부, 삶의 목표와 방향으로 삼겠느냐? 긍정적인 사물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 예를 들어, 사람은 늘 유명인이나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크게 이름을 날리고, 얼굴을 알려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은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긍정적인 사물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법칙에도 어긋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위인, 유명인, 위대한 사람,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을 원하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착실하게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렇다. 또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역시 맞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이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이 사람의 본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원문에서 어떻게 말씀했느냐? (“창조된 인류의 일원으로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본위를 지켜야 하며, 착실한 사람이 되어 분수에 맞게 창조주가 맡긴 부탁을 지켜야 한다. 도가 넘치는 일을 해선 안 되고, 자신의 ‘능력 범위’ 밖의 일을 해서도 안 되며, 하나님이 증오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위인이나 초인, 고귀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사람에게 있어선 안 되는 ‘소망’이다. 위인이나 초인이 되고자 하는 건 허무맹랑한 일이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건 더더욱 파렴치한 일이자 혐오감을 불러오는 일이며 버림받아 마땅한 일이다. 반대로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귀한 것이고, 피조물이 가장 지켜야 할 바이며,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게 그렇게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너희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런 사람이 되길 추구할 수 있느냐? 너희는 항상 날개를 펴고 높이 날고 싶어 하고, 혼자 날고 싶어 하고, 항상 작은 새가 되려 하지 않고 매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느냐? 이것이 무슨 성품이냐? 이것이 사람으로 사는 원칙이더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에 맞는 사람으로 살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다. … 그러면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만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고 싶게 하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좌지우지하고 자기 미래를 스스로 계획하고 싶게 만들며, 자신의 앞날과 방향, 인생 목표를 제 스스로 관장하고 싶게 만들겠느냐? 그 출발점은 어디겠느냐? (사탄의 패괴 성품입니다.) 그럼 사탄의 패괴 성품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나님과 맞서게 합니다.) 하나님과 맞선 결과는 무엇이냐? (고통입니다.) 어디 고통스럽기만 하겠느냐? 그것은 멸망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고 소극적이고 연약하며, 반발하고 원망한다. 그런데 이것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멸망의 재앙이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고, 장난도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받아들여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곱씹으며 제가 늘 리더 일꾼의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고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고 우러러보는 것을 추구했던 이유가 명예와 지위 욕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로 살며 이름을 알리고 저를 드러내며 사람들 속에서 사람 위에 서는 것을 긍정적인 사물이라 여겼고, 그렇게 살아야만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얕보는 삶을 사는 것은 앞날이 없고, 남들보다 열등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결혼 후 남편과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었고, 생활도 살 만했지만 저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고, 특히 승부욕이 강해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며 친척과 동료들이 저를 높게 평가해 주길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저와 남편은 출근하면서 부업으로 닭도 키우고 채소도 키우며 매일 온종일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삶이 점차 나아지고 친척과 동료들도 제가 유능하다며 칭찬하자 저는 속으로 정말 기뻤고 이래야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집에 온 후에도 저는 두각을 나타내고 남들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며 리더 일꾼이나 각 팀의 책임자가 되어야 형제자매들이 높이 평가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명예와 지위 욕구가 충족되면 저는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저에게 행정 본분이나 접대 본분을 하라고 하자 저는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에 마음속에는 반발심과 원망으로 가득했고, 순종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교회 사역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탄의 성품만 표출했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전 너무 두려운 마음에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추구한 관점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몇 년 동안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본분 이행을 통해 제 명예와 지위 욕구를 충족하려고만 했으며 진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가 진리를 깨우치고 제 안에 있는 그릇된 추구 관점을 바꿀 수 있게 이끌어주세요.’ 얼마 후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제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됩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은 오랜 기간 저는 늘 리더 일꾼의 본분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그 안에는 바뀌지 않은 수많은 그릇된 관점이 있었습니다. 본분 조정을 통해 저는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한 저는 후회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려는 생각만 있을 뿐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협력할 것입니다.
그 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나이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본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각자 하는 업무가 다를 뿐, 자격 유무를 나누지는 않는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겸허한 마음과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이자 태도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최종적으로 자기 장래와 운명을 고려치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너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눈에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고 모두 평등합니다. 하나님은 누군가 리더를 한다고 해서 높이 평가하시고, 행정 본분을 한다고 해서 얕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발표하시고 모든 이에게 공급하십니다. 사람이 갈망하며 추구하기만 한다면 구원받을 기회는 모두 동등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냐에 따라 사람의 종착지를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과 그 사람이 걷는 길에 따라 결정하십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아 성품에 변화가 없다면, 리더 일꾼이더라도 결국에는 도태될 것입니다. 이때 전 또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높게 평가해도 그들이 절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만 구원받을 기회가 생깁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저는 마음속으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빚을 갚아나갈 것입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다른 형제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떻게 이 집의 안전을 지키고 형제자매들이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잘 접대할지 고민했습니다. 또한, 저는 접대를 하는 한편 매일 저에게 임하는 사람과 일, 사물에 어떠한 마음가짐과 생각, 패괴 표출이 있었는지 반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해결했으며 묵상 필기 작성에 집중했고, 체험 간증문 쓰기를 훈련하면서 하루하루를 매우 알차게 보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이 저의 그릇된 관점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저에게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내신 성과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