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사상에 대한 성찰

한국 나탄(Nathan)

2022년, 저는 고향 교회로부터 예전에 알고 지내던 장화(張華) 자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장화가 교회 생활을 방해하며 형제자매 사이를 이간질하고 파벌을 만들고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리더가 여러 차례 교제하며 도와줬지만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리더 일꾼의 약점을 잡아 공격해서 교회에서는 장화의 출교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니 저에게도 장화에 대해 평가서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장화가 이번에 출교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에 적힌 내용들이 모두 그녀의 평소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그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이 본질은 너무 심각했습니다. 장화가 출교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예전에 그녀가 저를 발탁해 주고 생활에서도 여러모로 챙겨 주었는데, 만약 제가 그녀의 악행을 폭로했다는 것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저를 어떻게 볼까요? 제가 양심도 의리도 없다고 비난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이 일을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다른 바쁜 일도 있어서 며칠간 편지를 쓰지 않고 미뤄두었습니다.

이 일은 계속 제 마음을 짓눌렀고, 저는 자연스레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장화는 교회 리더였고 저를 문서 사역에 발탁해 더 많은 훈련을 받게 해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차례차례 발탁되어 마침내 외지로 나와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문서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장화의 발탁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화가 리더로 있던 몇 년 동안, 그녀는 예배와 교제를 통해 자주 우리를 도와주고 붙들어 주었습니다. 함께 지내는 동안 사이도 꽤 좋았고, 우리의 생활도 세심히 챙겨주었습니다. 형편이 좋은 가정에서 우리를 접대하도록 안배했을 뿐만 아니라 옷이나 생활용품이 부족해지면 곧바로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주곤 했습니다. 한번은 장화가 우리와 예배를 하다가 제가 간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의사로 일하는 한 형제에게 직접 연락해 간 보호제를 열 병 넘게 공짜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이나 가족말고 제 병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또 없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서는 장화가 저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며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으로 항상 남아 있어 늘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지금 장화에 대한 평가서를 쓰라고 하니 난처하기도 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많은 악행을 저질러서 만약 폭로한다면 출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화가 리더로 있을 때, 직무에 소홀하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교회 사역에 큰 손실을 끼쳤었습니다. 그녀는 교체된 후에 복음을 전하러 나가서도 적그리스도를 따라 리더 지위를 두고 경쟁했고, 교회의 리더들이 다 거짓 리더라고 판단하고 공격해 리더 일꾼이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되어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방해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언니가 악인으로 출교되었을 때 그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불만을 품어 자기 언니가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고 분개하며 관념을 주변에 퍼뜨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장화는 늘 부정적인 인물의 편에만 서는 걸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교회에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사람을 미혹시키는 일이 생기면 그들은 꼭 사탄의 편에 선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사탄의 종이라 하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들에게 분별력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매번 진리가 아닌 쪽에 서고, 비상시에 단 한 번도 진리의 편에 선 적이 없으며, 진리를 위해 일어나서 변론한 적도 없다. 그들에게 정녕 분별력이 없는 것이냐? 그들은 어째서 꼭 사탄의 편에 서는 것이냐? 어째서 단 한 번도 진리를 위해 공평하고 합리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정말 그들의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한 일이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니,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느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죄악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말해 주지 않느냐?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사탄의 충실한 후손임을 말해 주지 않느냐? 어째서 그들은 늘 사탄의 편에 서서 사탄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냐? 그들의 언행과 표정은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임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들이 사탄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사탄이 자신을 위해 평생 분투하는 그 작은 마귀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전부 눈앞에 훤히 드러난 사실이 아니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장화의 과거 여러 악행과 현재 모습을 대조해 보니 그녀는 언제나 사탄의 편에 서서 교회 사역을 방해해 왔었습니다. 저는 장화가 사탄의 종이자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악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장화의 이런 악행과 모습을 모두 폭로한다면 교회의 교인 제명 원칙에 따라 그녀는 분명 교회에서 제명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하나님 집과는 인연이 끊어져 구원받을 기회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 중년의 나이임에도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만약 출교된다면 앞으로 어디로 갑니까? 과거 그녀가 저를 발탁하고 챙겨주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폭로를 하자니, 그녀의 평소 모습으로 볼 때 출교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렇다고 폭로를 하지 않자니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께도 불충한 태도가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한 끝에 저는 절충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 일들은 이미 몇 년이나 지났고, 제 기억력이 나빠서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은 이미 자세히 기억 나지 않으니 더 이상 자세히 되돌아보지 않고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들만 적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했을 때 마음속에서 또 다시 가책을 느꼈습니다. 이런 행동은 간사한 짓과 속이는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역사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드러내는 단계이고,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때입니다. 악인, 적그리스도, 불신파, 악령이 모두 교회에서 제명되어야만 교회가 정결케 되고, 교회의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장화가 악인에 해당됨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를 폭로하려 하지 않고 그녀를 비호하고 그녀의 악행을 덮으려고 했습니다. 이는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조금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장화의 모습들을 자세히 되돌아보며 평가서를 작성한 후에 리더에게 전달했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나니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만약 언젠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제가 그녀의 악행을 폭로했다는 것을 장화가 알면 저를 의리도 없고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이 일만 생각하면 저는 마치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악인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야. 모든 하나님의 선민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기도 해. 그런데 나는 왜 괴롭고 마음에 걸리는 걸까? 왜 그녀에게 빚진 기분이 드는 걸까?’ 그렇게 반성하던 중, 저는 하나님께서 덕행과 관련된 여러 주장을 해부하며 교제하실 때,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관련된 화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은 중국 전통문화 중에서 사람의 덕행을 평가하는 매우 전형적인 기준이다.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덕행이 어떤지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그가 남에게 은혜를 입고 도움을 받은 후 보답하는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문화나 인류의 전통문화에서, 사람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것을 덕행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배은망덕한 사람인 것이다. 그는 양심이 없는 사람,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며, 사람들에게 멸시와 혐오, 버림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은혜에 보답할 줄 안다면, 즉 남에게 은혜를 입거나 도움을 받은 후에 그것을 잊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자기 방식으로 상대에게 보답한다면, 양심과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이득을 얻고 도움을 받은 후 은혜에 보답하지 않거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감사의 뜻을 표한 후 더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면, 은혜를 베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느냐? ‘이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구나. 좋은 작자는 아닌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정말이지 양심도 인성도 없는 사람이야. 사귈 가치가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가 앞으로 그런 부류의 사람을 또 만나면 도와주겠느냐? 적어도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희가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정말 도와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겠느냐? 지난번 경험을 떠올린 후 교훈을 얻을 것이다. ‘함부로 남을 도와주면 안 되겠어. 은혜를 반드시 갚는 사람이어야 도와줄 거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서 도와줘도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한다면 안 도와주는 게 낫겠어.’라고 말이다. 너희는 이런 관점을 갖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니, 제 마음이 괴롭고 장화에게 빚진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주장에 미혹당하고 물든 결과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이나 어른들, 또는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담을 나눌 때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셨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나서 보답했다고 하면 모두가 그 사람은 양심이 있는 좋은 사람이라 사귈 만하다고 칭찬하며,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 사람을 인정하고 매우 존경했습니다. 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도 보답하지 않았다고 하면, 사귀기 싫어하고 뒤에서 배은망덕하고 양심과 인성이 없는 놈이라고 욕까지 하며 만나도 아는 체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생활 환경의 영향을 받아, 저는 늘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누군가 우리 집을 도와주고 이익을 주었다면 저는 마음에 새기고 보답할 수 있으면 나중에라도 보답했습니다. 가끔 당장 보답할 능력이 없으면 나중에 형편이 되면 꼭 보답하자고 염두에 두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고상하고 양심과 인격이 있다고 여겼고 저도 이 덕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장화의 경우, 그녀가 당시 저를 발탁하고 보살펴 주며 도움을 줬는데 이를 보답하지 않고, 그녀의 여러 악행을 폭로하는 것은 양심에 찔리고 배은망덕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사상과 관점에 지배당한 저는 악인, 불신파를 교회에 남기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영향을 미칠 줄 뻔히 알면서도 장화의 악행을 폭로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과 관점에 미혹당하고 너무 깊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도덕적 행위에 관한 말은 사람이 이 사회, 이 인류 가운데서 다해야 할 책임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속박하고 강요할 뿐, 사람이 원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에게 닥친 일이 어떤 상황, 어떤 배경에서 벌어진 것인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고대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된 거지를 어떤 집안에서 거두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무예나 각종 지식을 가르쳐 준 다음 그가 성인이 되면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악행, 살인 등 그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가 입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가 그들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에 물들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가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수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짓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을 본다면, 주인의 지시대로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보은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특히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사상에 물들고 지배된다. 그가 일하는 방식과 방법, 그리고 의도와 출발점은 분명 이런 것들에 통제될 것이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 집안에서 나를 구해 줬으니 나는 이 집안에 은혜를 입은 거야. 은혜에 보답해야지, 배은망덕하게 굴어서는 안 돼. 내 목숨은 저들이 구해 준 거니까 저들을 위해 바쳐야 해. 저들이 뭘 시키든 해야 한다고. 설령 그게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보답해야 해. 이렇게 큰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집안사람들이 살인이나 나쁜 일을 시킬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그럼 그의 이런 행위와 행동,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 태도는 전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생각과 관점에 지배된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덕행의 준칙을 이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사례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원칙이 없습니다.) 사실, 보은하는 사람에게도 원칙이 있다. 그의 원칙은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며,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정죄당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이는 물 한 방울의 은혜가 아니라 목숨을 구해 준 은혜이니 더더욱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은의 원칙이 무엇인지, 보은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목숨을 그 집안사람들이 구해 주었으니, 마땅히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들이 무엇을 시키든, 심지어 그것이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런 보은은 원칙과 선을 잃어버리고 악인의 앞잡이가 되는 행위로, 스스로를 망치는 짓이다. 그의 그런 보은 방식이 옳으냐? 당연히 옳지 않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께서 예로 들어 주신 은혜 갚는 거지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전통 문화가 사탄이 인간을 해치는 그릇된 논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념은 사람의 영혼을 구속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사상과 관점까지 왜곡시켰습니다. 그래서 원래 사람들 사이의 정상적인 도움에 불과한 것을 은혜로 격상시키고 마음에 새겨 어떻게든 보답하게 하며, 보답하지 않으면 양심과 인성이 없다고 여기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통 문화의 미혹과 해악 속에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기준을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은혜를 베푼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설령 악인이거나 다른 속셈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고, 심지어 대신 목숨까지 버려야 하며, 설령 살인이나 악행이라도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를 보며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그릇된 논리가 확실히 사람을 해치는 독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장화가 리더 일꾼을 공격하고 교회 사역을 방해했기에 리더가 저에게 장화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목적은 장화라는 사람의 평소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출교 여부를 종합적으로 따져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에 미혹되고 영향을 받아 장화가 과거에 저를 발탁하고 보살펴 주었던 은혜만 생각하며 장화의 악행을 덮어주려 했으니 저는 정말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시비도 판단하지 못하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과 관점에 어느 정도 분별심이 생겨 이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헛소리, 그릇된 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이런 사상과 관념에 기대어 살며 이를 처세 원칙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의 관점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의 골자는 ‘은혜’에 있다. 여기에서 ‘은혜’를 어떻게 봐야겠느냐? 이는 어떤 측면의 은혜겠느냐? 어떤 성질의 은혜겠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 이런 문제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절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사람의 관념에서 ‘은혜’란 무엇이냐? 작은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네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피죽도 못 먹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네게 밥 한 그릇을 주는 것,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을 때 물 한 병을 주는 것,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번 부축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은혜에 속한다. 한편, 큰 은혜는 네가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가 너를 구해 주는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속한다. 네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 죽음에서 구해 준다면, 이는 목숨을 구해 준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람이 생각하는 ‘은혜’이다. 이런 은혜는 물질적이고 사소한 은혜의 범주를 넘어선, 크나큰 은혜에 속한다. 이는 금전이나 물질로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감사의 말 몇 마디로는 상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럼 이런 식의 판단이 정말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냐? (사람은 전통문화에 근거해 이 일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대답은 도리이고 이론이다.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의 본질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묵상해 보아라. 얼마 전, 인터넷상에 다음과 같은 동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보고는 지갑을 물고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강아지가 자기 지갑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강아지가 훔쳤다고 생각해서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이 일이 황당하지 않으냐? 그 사람의 품격은 개보다 못하다! 그 강아지가 한 일은 사람의 도덕적 기준에 완전히 부합한다. 다만 사람은 말을 할 줄 알아 “지갑이 떨어졌어요!”라고 외칠 수 있었겠지만, 강아지는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니 조용히 지갑을 물고 따라갔을 따름이다. 개조차 전통문화가 제창하는 좋은 행위를 실행할 수 있다. 그럼 사람은 어떠하냐? 사람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러한 것들을 갖고 태어났으니 이런 일들을 더더욱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는 한, 노력하거나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이 아주 간단히 이런 책임과 의무를 해내고 타인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일의 성질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데, 보답을 논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는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은 밝아졌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의 골자는 ‘은혜’에 있다. 여기에서 ‘은혜’를 어떻게 봐야겠느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가 이 ‘은혜’를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사실과 진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더 이상 은혜에 미혹되거나 속박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화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두 가지야. 첫째는 장화가 나를 발탁한 것이고, 둘째는 장화가 리더로 있는 동안 형제자매를 통해 간 보호제를 보내준 거야. 그럼 이건 과연 은혜에 해당될까?’ 사실 다른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손을 내밀어 돕고 구제해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고 일종의 책임이며 인지상정입니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은혜’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저는 장화의 도움을 ‘은혜’라는 면류관을 씌워 마음에 새기고 심지어 그녀의 악행을 덮어 교회에 남기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교회 이익을 가지고 사적인 정을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정말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화가 나를 발탁한 일은 ‘은혜’에 해당할까?’ 이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느 시기, 어느 단계에서 사역하든 모두 일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하나님 사역에 협력하거나 복음 전파에 협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일이다. … 지금 너희 중 누가 하나님 집에서 우연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어떤 배경에서 나와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아무나 몇 명 찾는다고 해서 그들이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정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자세한 내용은 어떻게 되느냐?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전체 경륜 안에서 일찍부터 계획해 놓았다는 뜻이다. 네가 몇 번 인간 세상에 올지, 말세에 네가 어느 집안,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 네 가정이 어떤 조건일지, 네가 남자일지 아니면 여자일지, 어떤 특기가 있고 교육 수준이 어떨지, 네 말주변이 어떻고 자질과 외모가 어떨지, 네가 몇 살에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 이행을 시작할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하나님은 일찍부터 하나하나 정해 놓았다. 네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전생에 여러 번 인간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은 네가 마지막 단계 사역에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모두 안배해 놓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수록 마음이 점점 더 명확해졌습니다. 제가 문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겉으로는 장화가 저를 발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하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집에 이 사역이 없다면 저는 이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진정으로 감사하고 은혜을 느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신데, 저는 그 은혜를 장화에게 돌리고 그녀에게 보답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보지 못한 채 사람의 좋은 점만 바라본 것입니다. 저는 정말 눈이 멀고 무지해서 사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장화는 교회 리더로서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양성하고 발탁하는 것은 그녀의 책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그 은혜를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고, 마음속에 십여 년 간 담아두었던 장화에 대한 감사함, 발탁의 은혜, 그리고 보답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더 이상 장화의 악행을 폭로한 일로 그녀에게 빚진 마음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고, 배은망덕과 같은 죄책감도 사라졌습니다. 단지 저와 그녀 사이에 은혜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은혜에 관한 그 말은 나에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도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그것을 그저 무엇으로 여겨야겠느냐? 하나의 의무이자 책임, 인성의 본능으로 해야 할 일,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로 여기고 힘닿는 데까지 실행하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이런 일에 대한 정확한 관점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일은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의 교회에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 장화가 어떻게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보호했는지, 어떻게 적그리스도를 따라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모습, 시간, 지점을 모두 자세하게 적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런 사실 증거가 없이는 출교할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받은 후 제 마음은 여전히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번에 모든 것을 적어서 보내면 장화가 정말로 출교될 거야. 그녀는 예전에 나한테 꽤 잘해줬는데 내가 이렇게 해서 어쩌면……’ 그러나 저는 곧 이것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사탄에게서 나온 생각이니 이 생각을 따라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형제자매이니, 사랑으로 대해야 하고, 반대로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자주 악을 행하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은 형제자매가 아니라 사탄의 종이자 악인이므로 마땅히 폭로하고 분별하여 교회에서 제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제공한 자료에 근거해 당시 장화가 악행을 저질렀던 구체적인 모습을 다시 열심히 떠올려 정리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후, 제 마음은 평안하고 편안해졌습니다. 드디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사상과 관점의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이 어느 정도 해방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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