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왜 나는 사람을 맹신했나
2021년, 저는 교회 세 곳의 양육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교회의 양육 팀장인 리찬과 장쉔은 일찍이 저와 함께 협력해 본분을 이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리찬을 보며 사역 능력과 책임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제 사역에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즉시 지적해 주었고 교제를 해주며 도와주었습니다. 그녀가 감독하고 일깨워준 덕분에 일부 사역들이 지체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장쉔도 비교적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가끔 저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녀는 사랑으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과 협력해 본분을 이행하게 되어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사역 능력과 자질, 본분을 대하는 태도 모두 비교적 좋은 두 사람만 버티고 있어 주면 그 교회의 양육 사역은 제가 신경을 많이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른 두 곳의 교회 사역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녀들이 보낸 서신을 통해 저는 그녀들의 사역 성과가 다른 교회보다 좋은 것을 보았고, 더욱 그녀들의 사역 능력을 인정하게 되어 그쪽 사역에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리더가 저에게 실제적으로 양육 사역에 참여하라는 서신을 보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적합한 인원을 발견하면 사역이 지체되지 않도록 즉시 조정하라고 했습니다. 서신을 받은 저는 서둘러 다른 두 곳의 교회에 가서 사역을 파악했고, 한 양육 팀장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해 즉시 조정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리찬이 책임지고 있는 교회에 가려고 준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사역 능력, 책임감, 자질 등 모든 방면에서 괜찮아. 그 둘이 있으니 그쪽 교회 사역은 분명 문제없을 거야.’ 그래서 저는 그녀들의 사역 상황을 확인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문제를 발견하고 적시에 해결하기 위해 몇 군데 교회의 양육 팀장들과 함께 그녀들의 사역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저는 다른 팀장을 대상으로만 평소에 어떻게 새신자들에게 예배해 주는지, 새신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하나님 말씀들과 연관시켜 교제하며 해결해 줬는지 등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파악했습니다. 세부적인 질문을 통해 일부 문제들을 발견했고, 그 자리에서 교제하며 그것들을 바로잡았습니다. 이어서 리찬과 장쉔이 있는 곳에 도착했지만, 두 사람 모두 본분에 책임감이 있고 사역 능력도 좋다는 생각에 그녀들의 사역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비교적 괜찮은 양육 인원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저는 리찬을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리찬에 대해 파악해 본 리더는 그녀의 양육 성과가 별로 좋지 않다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추천했냐고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리더의 요구치가 너무 높은 거 아냐?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리찬은 발탁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새신자를 양육하는 사역은 충분히 잘해.’ 그 후, 리더는 또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찬과 장쉔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교활한 수단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고, 편안함을 탐했어요. 이미 그녀들에게 교제를 해주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죠.” 그 말을 들은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누구든 육적인 것만 생각하는 때가 있기 마련이지. 어쨌든 그녀들이 자기 손에 있는 사역만 잘 해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이후에도 저는 그녀들의 사역을 제대로 챙기고 감독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리더가 리찬이 책임지고 있는 교회의 사역에 문제가 많으니 빨리 가서 해결하라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편지를 보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리찬은 하나님을 오랜 기간 믿어 왔고, 리더를 맡은 적도 있어. 그녀의 사역 능력과 자질에 대해 내가 다 아는데, 그렇게 문제가 많을 리 없을 텐데?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리더가 이렇게 말을 한 데에는 분명 근거가 있을 테니 실제로 가서 파악해 봐야겠다.’ 상황을 파악해 본 저는 그제야 리찬과 장쉔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양성해야 할 사람들을 양성하지 않았고, 새신자들이 예배에서 먹고 마시는 내용도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 사역을 인식하는 방면의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새신자들은 중국 공산당의 루머를 믿고 소극적이 되었는데, 리찬과 장쉔은 놀랍게도 책임감 없는 사람을 안배해 새신자들을 붙들어주게 하였습니다. 새신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그녀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 교제하며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새신자는 하마터면 그대로 물러날 뻔했지만,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내적 상태를 바로잡았습니다. 양육 사역에 수많은 오류와 허점이 있었지만, 그녀들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 원인을 돌렸습니다. 이 사실들을 알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예전 그녀들은 본분 이행에 참 책임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변한 거지?’ 하지만 진실이 제 앞에 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무척 자책감이 느껴졌습니다. 만약 제가 더 일찍 그녀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파악했더라면, 양육 사업에 이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책임자에 대해 거짓 리더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책임자를 선발하고 나면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이후의 사역과 관련된 일은 책임자가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단지 가끔 예배 모임을 가질 뿐, 사역 상황을 감독하거나 물어보지도 않으며 나 몰라라 한다. 어떤 사람이 한 책임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하면, 거짓 리더는 “그건 작은 문제라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서 처리하시고, 저한테 묻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문제를 보고한 사람이 “그 사람은 먹는 것만 밝히고 게으릅니다. 먹고 노는 것만 중시하며, 무척 게으르고, 본분을 이행할 때 약간의 고생도 하지 않으려 하며, 늘 꾀를 부리고 온갖 핑계를 대며 사역과 책임을 회피합니다. 책임자로 적합하지 않아요.”라고 하는데도 거짓 리더는 “처음에 그를 책임자로 선발했을 때는 매우 괜찮았어요. 당신이 말하는 것들은 전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그의 일시적인 모습일 뿐입니다.”라고 한다. 거짓 리더는 이 책임자의 상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과거의 인상에 따라 이 일을 판정하고 규정한다. 누가 이 사람의 문제를 보고하든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책임자가 이미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 교회 사역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져도 거짓 리더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책임자의 문제를 보고했는데 그가 모르는 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역겹지만, 가장 가증스러운 것은 무엇이겠느냐? 어떤 사람이 책임자의 심각한 문제를 고발했을 때도 그가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이 책임자는 제가 압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무슨 문제가 생길 리 없습니다. 문제가 좀 생기더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거나 징계하십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저희가 상관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이렇게 관념과 상상에 따라 사역한다. 그는 진리를 깨달은 척하고 믿음이 있는 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회 사역을 엉망으로 만들며, 심지어 사역이 마비되어도 여전히 모른 척한다. 이는 거짓 리더가 너무 관료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니, 팀장과 책임자의 사역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점검하지도 않으며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는 인상과 상상에 근거해 사람을 보며, 어떤 사람이 일시적으로 잘하면 그 사람이 영원히 잘할 것이며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누가 그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말해도 그는 믿지 않으며, 누가 그에게 주의를 환기해 주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거짓 리더 부류의 사람이 어리석지 않으냐? 어리석고 완고하다. … 거짓 리더에게는 치명적인 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상상에 근거해 사람을 쉽게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말씀에서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어떻게 폭로하였느냐? 하나님조차 사람을 믿지 않는데, 그는 무슨 근거로 믿는 것이냐? 거짓 리더가 지나치게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는 ‘내가 사람을 잘못 볼 리 없어. 내가 적절하다고 본 사람은 아무 착오도 없을 거야. 이 사람은 절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며 편한 것만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는 확실히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해. 그는 변하지 않을 거야. 만약 변한다면 내가 잘못 본 것 아니겠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무슨 논리이냐? 네가 무슨 고수라도 되느냐? 너의 눈이 투시력이라도 있다는 것이냐? 너에게 그런 능력이 있느냐? 네가 다른 사람과 1~2년을 함께 생활한다 할지라도, 만약 그의 본성 본질을 완전히 드러내는 적절한 환경이 없다면 네가 그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드러내지 않으면, 얼굴을 맞대고 3~5년 동안 함께 생활해도 그 사람의 본성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기 어렵다. 하물며 자주 만나지 않고 함께 지내지 않으면 더 말할 나위 있겠느냐! 단지 일시적인 인상이나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 몇 마디로 사람을 함부로 믿고, 교회 사역을 그런 사람에게 섣불리 맡기다니, 이는 너무 맹목적인 것 아니겠느냐?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가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으냐?』(<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3)> 중에서) 하나님이 폭로하신 것은 바로 저의 내적 상태로, 저는 본분을 대함에 있어 바로 이렇게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과거 리찬, 장쉔과 협력하면서 그녀들에게 사역 능력이 있고 본분 이행에도 성과가 좀 있는 것을 본 저는 그녀들을 쉽게 믿어 버렸습니다. 사역을 완전히 두 사람에게 맡긴 채 저는 관심을 가지고 감독하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저에게 양육 팀장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지 검사해 보라고 했을 때, 저는 제가 믿는 리찬과 장쉔은 따로 검사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에도 상세히 물어보며 상황을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리더가 그 두 사람이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편안함만 탐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저는 그녀들이 그럴 리 없는데 리더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거라며 거부감을 느꼈고, 속으로 두 사람을 옹호하며 따지고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그 두 사람과 고작 몇 달 함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리찬과 장쉔은 겉으로는 사역 능력도 좀 있고, 본분 이행에도 책임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는 그녀들의 인성과 본성, 본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인상과 호감으로 그녀들을 믿고는 마음 놓고 사역을 맡겨 버린 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사탄에게 너무 심하게 패괴되어 온전케 되기 전까지는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아니하기에, 누구나 무성의하고 무책임할 수 있고, 누구나 치우친 자기 길을 갈 수 있다고 폭로하십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저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일을 보았습니다. 그녀들의 일시적인 좋은 모습만 보고, 그 좋은 일면을 제 마음속에 고정시켜 버렸습니다. 심지어 리더가 그 두 사람의 문제를 지적해도 순종하지 않고, 리더가 그녀들에게 너무 높은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탄 성품에 따라 살며, 무척이나 자신의 생각을 믿고 이를 고수하였고, 제 안목에 따라 일을 보았습니다.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이 아무리 다르게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사역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자만했고, 교만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 있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원칙 없이 일을 처리하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말로만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고자 하며, 진리에 공을 들이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자는 본분을 대할 때 조금의 책임감도 없으며 늘 건성으로 대충 임하고 그저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 심지어는 책망과 훈계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일단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지면 본분을 내팽개칠 수 있는데, 이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 모양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까지는 믿을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어려움이나 좌절 앞에서 쓰러지고 소극적으로 변하며 연약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늘 소극적이고 연약해지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다르다.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다 신뢰할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당연히 사랑으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많이 점검하고 도와주고 지도해 줘야 한다.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보장된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주요 목적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는 데 있으며, 그다음으로는 제때 문제점을 발견하고 제때 공급하고 붙들어 주거나 책망하고 훈계하고, 또한 오류를 바로잡고 부족한 점과 단점을 보완하는 데 있다. 이는 사람에게 유익하며, 악의는 없다. 사람을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보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도록 돕기 위함이며, 방해하거나 교란하거나 헛수고하는 일 없이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서일 뿐, 어떤 악의도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비록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또 본분을 잘 이행하기를 바라지만, 이는 단지 아름다운 소망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패괴 성품이 있기에,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고, 일을 함에 있어서도 원칙이 없으며, 사역을 할 때 오류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또한 종종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굴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 일꾼이 사역을 감독해야만 즉시 문제를 발견해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리찬과 장쉔 역시 패괴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녀들이 예전에는 본분에 책임감이 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영원히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 자질이 좋고 사역 능력이 좀 있다고 해서, 그녀들이 진리를 얻었고 일 처리에 원칙이 있어 완벽하게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으므로, 그녀들의 사역은 감독과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는 사람의 패괴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저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사람과 일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쉽게 사람을 믿어 사역을 모두 남에게 맡긴 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만약 제가 맹목적으로 그녀들을 믿는 대신 하나님 집의 요구에 따라 자주 그녀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검사하며 저의 책임을 다했더라면, 양육 사역이 몇 달이나 성과가 없는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어째서 그렇게 리찬과 장쉔을 믿어 그녀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검사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심지어 리더가 저를 일깨워주었는데도 저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이 배후에는 대체 어떤 패괴 성품의 지배가 있는 것일까요? 반성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네가 올바른 길을 가고 하나님 뜻에 부합하게 된다면 성령 역사도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한 성품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너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나타내게 한다. 교만함은 네가 다른 사람을 얕보게 하고, 너를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교만함으로 인해 너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네게 순종하게 할 것이다.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아 사람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되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다 제가 실패한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성품이 너무 오만하고, 너무 스스로를 믿었다는 게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녀들이 본분을 열심히 이행하고 책임감과 부담이 있으니 무성의하게 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척이나 저의 생각을 믿었습니다. 늘 ‘제가 볼 때는’, ‘제 생각에’, ‘제가 보기에’라고 하며, 저는 항상 사람을 정확히 본다고 확신해 사역을 그녀들에게 맡긴 후에는 관심을 꺼버렸습니다. 심지어 리더가 그녀들의 문제를 명확하게 지적했는데도 저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녀들이 단지 약간의 패괴를 표출한 것일 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저 자신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관점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고, 남이 뭐라고 하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고, 그녀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저에게만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저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동의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과 견해가 틀리지 않을지, 오류는 없을지, 사역에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교만하고,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교만한 성품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며, 다른 사람의 건의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고,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안하무인이었고,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제가 정확히 본 사람과 일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맹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며 직무를 소홀히 한 탓에 사역에 그렇게 큰 손실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거역하며,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본질과 결과가 무척 심각함을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하며 회개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의 건의든 간에 진리 원칙에 부합하기만 하면, 설령 그것이 어린아이의 의견이라 해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 그가 한 말과 그의 건의가 진리 원칙에 완전히 부합한다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할 것이다. 핵심은 네 출발점이 무엇인지, 네가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방법이 무엇인지에 있다. 만약 네 일 처리 원칙과 방법이 사람의 뜻과 사람의 사상 관념, 사탄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이 원칙과 방법은 실용적이지 않고 분명 효과도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원칙과 방법의 근원이 잘못되었고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네 관점이 진리 원칙에 따른 것이고, 네가 진리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옳게 처리할 것이다. 설령 당시에는 누군가 받아들일 수 없거나 관념이 있거나 거부감이 생긴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확증될 것이다.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일은 효과도 점점 좋아지고,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당시에는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더라도 결과가 점점 나빠진다. 사람들은 이를 모두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일이 닥치면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일을 봐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견해와 관점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근거로 삼을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이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형제자매의 일깨움과 건의를 대할 때도 구하는 마음을 품고,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는 대신 원칙에 따라 대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구하고 순종하는 것이고, 이성적인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과거의 저는 일이 닥치자 진리 원칙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고, 먼저 저의 관점을 고수하며, 제가 다른 사람보다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가 건의를 해왔을 때, 저는 구하는 마음 없이 무척이나 스스로를 믿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실패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먼저 저 자신을 부정하는 법을 배우고, 형제자매의 건의를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감독은 문자적으로 본다면 검사하는 것으로, 어느 교회가 사역지침을 시행하고 어느 교회가 시행하지 않았는지, 시행 진도는 어떤지, 어느 리더 일꾼들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어느 리더 일꾼들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는지, 사역지침을 하달하기만 하고 구체적인 사역에 참여하지 않은 리더 일꾼은 없는지를 보는 것이다. 감독은 하나의 구체적인 사역으로, 사역지침 시행 상황을 감독하는 것 외에, 즉 시행을 했는지, 시행 속도는 어떤지, 시행의 질과 도달한 성과는 어떤지 등을 감독하는 것 외에 리더 일꾼이 사역지침을 엄격하게 따랐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어떤 리더 일꾼은 겉으로는 사역지침을 준수하고 싶다고 하지만 환경이 닥친 후 잡혀갈까 두려워서 숨기만 한다. 사역지침은 일찌감치 까맣게 잊어버려 형제자매들은 문제가 있어도 해결받지 못하고, 사역지침에서 어떻게 규정했는지, 실행의 원칙은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사역지침이 전혀 시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리더 일꾼은 사역지침의 일부 요구 사항에 대해 생각과 관념, 반발심을 품고 있어 사역지침을 시행할 때는 다르게 시행한다. 사역지침의 본래 의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시행하고, 형식적으로 대충 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는 등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상황들은 모두 윗선 리더 일꾼이 가서 감독해야 한다. 감독의 목적은 사역지침에서 요구하는 구체적인 사역을 약간의 변형도 없이 원칙대로 보다 잘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감독할 때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책임감 없이 사역지침을 느리게 시행하는 리더 일꾼이라든가 사역지침에 반발심을 품고 시행하지 않으려 하거나 선택적으로 시행하는 리더 일꾼, 혹은 아예 사역지침대로 시행하지 않고 자기 경영을 하는 리더 일꾼, 사역지침을 보류시키고 자기 뜻대로만 전달해서 하나님 선민들이 사역지침의 본래 의도와 구체적인 요구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리더 일꾼 등을 발견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윗선 리더가 감독하고 검사해야만 실상을 알 수 있다. 만약 윗선 리더가 감독하고 검사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리더 일꾼들이 사역지침을 시행할 때는 사역을 단계별로 전달하고 지도하는 것은 물론 감독까지 진행해야 한다. 교구 리더는 지역 리더의 사역을 감독하고, 지역 리더는 각 교회 리더의 사역을 감독하고, 각 교회 리더는 각 팀의 사역을 감독하는 등 단계별로 감독이 이루어져야 한다. 감독의 목적은 무엇이냐? 사역지침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에 따라 사역을 정확하게 더 잘 시행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감독’이라는 사역은 매우 중요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0)> 중에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리더 일꾼이 합격한 본분 이행에 도달하려면, 모든 사역을 실제적으로 감독하고 챙기며, 작업의 세부 사항까지 깊이 들어가며, 사역의 진행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와 사역 안배에 따라 사역을 하고, 사역 중 원칙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교제하여 해결하며, 양성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즉시 양성해야 합니다. 이런 사역들을 실제적으로 검사하고, 관여하며, 감독하고, 챙겨야 합니다. 이것이 본분을 대하는 책임감 있는 태도입니다. 예전에 저는 개인의 상상에 따라 제가 좋게 본 사람에게 쉽게 사역을 맡기고는 따로 감독하고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역하는 실제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역을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무책임하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해야 했습니다. 제가 책임진 사역을 실제적으로 감독하고 챙겨야 했습니다.
리찬이 교체된 후, 저는 그녀가 책임졌던 교회에서 양성할 만한 새신자들을 만났고, 함께 예배를 드리며 그들의 내적 상태와 어려움에 대해 실제적으로 파악해 교제하며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육 인원과 예배를 드리며 사역상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고, 동시에 새신자를 양육하다 발생한 오류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 사역을 인식하는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는 데 집중하게 하였고, 새신자들이 빠르게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 교회에 있었던 새신자 양육 관련 문제가 다른 교회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다른 교회의 양육 팀장에게 서신을 썼습니다. 서신을 다 쓰고 나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어디까지나 서신 교류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교제를 하는 것보다 성과가 떨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에게 서신을 써서, 그들이 현장에 가 이 사역들을 감독하고 챙겼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 후, 리더는 그들 교회에도 크고 작은 비슷한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며, 앞으로 감독하고 챙기겠다고 서신을 통해 전해왔습니다. 그제야 저는 실제적으로 사역을 감독하고 챙기라고 하시는 리더 일꾼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척이나 필요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저는 저의 교만한 성품에 대해 조금은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입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2)> 중에서) 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정말 중요함을 실감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상상에 따라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일이 닥치면 먼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주변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