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이런 사람으로 사니 참 좋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서 말을 할 때는 너무 직설적으로 하지 말고, 매사를 좋게 좋게 넘기는 것이 처세를 잘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동네 이웃들과 지낼 때도 항상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욕을 해도 허물은 들추지 말라.”와 같은 사탄의 처세술로 대처했습니다. 설령 누가 부적절한 일을 하더라도 상대의 체면을 생각해 애써 약점을 들추지 않았고, 그 결과 주변으로부터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게 좋은 것이라 여기며,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하고 나서야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좋은 사람이 아님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처세술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타인은 물론 본인에게도 전혀 유익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일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됨의 원칙을 찾게 되었습니다.
2019년 8월,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훈련의 기회를 주신 것에 감격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본분을 맡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상 제작 본분을 건성으로 하는 바람에 결과물에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해 본분의 진행에 지장을 주고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다들 패괴 성품을 안고 본분을 이행하는데, 이걸 지적하지 않으면 분명 하나님 집 사역에 더 큰 영향이 갈 거야.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합격할 수 없어. 형제자매들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해부하고 교제하면서 짚고 넘어가야겠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 본분을 맡자마자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마구 드러내면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괜히 의욕만 앞서 까다롭게 군다고 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깐깐한 인상을 주면 다들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 에이, 관두자. 우선은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제일 중요하지.’ 결국, 저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점을 보아도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갔습니다. 일일이 잘못을 지적했다가는 상대방이 체면이 상하고 난처해할 것이고, 그것 때문에 그들과의 좋은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어느 자매가 왕 형제의 문제점을 얘기했습니다. 그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아 사역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왕 형제에 관해 물어보니 다들 하나같이 그를 성품이 교만하다고 했습니다. 말투가 늘 훈계조이고 권위적이라 함께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이 제약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형제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왕 형제의 생명 진입은 물론, 하나님 집의 사역에도 이롭지 못했습니다. 저는 형제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도록 교제하고 해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형제를 만나니 자꾸 뒤로 물러서게 됐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지적한 문제는 모두 왕 형제의 가장 부족한 부분인데, 일일이 다 해부해 버리면 내가 자기를 너무 몰아세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완전히 체면을 구기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고의로 자기를 겨냥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서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예배드릴 때나 본분 이행할 때나 항상 마주치는 사이인데, 이런 일로 관계가 틀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겠어?’ 이런 고민과 함께 예배 때 형제가 스스로 자신을 성품이 교만한 사람이라 얘기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렇다면 깊숙한 곳까지 들춰내서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살짝만 짚어 준다면 형제도 크게 난처해할 것 같지 않았고, 형제와의 관계도 틀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형제와 얘기할 때 형제는 성품이 교만하고, 사람들과 협력할 때 다소 권위적이라고 가볍게 지적했습니다. 형제는 이야기를 듣더니, 말로는 본인에게 확실히 그런 문제가 있고 자기도 이미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형제가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음을 알았지만, 말을 아꼈습니다. 자신의 패괴 성품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한 왕 형제는 여전히 본분을 이행할 때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해 사역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고, 급기야 다른 본분을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본분을 이행할 때도 여전히 패괴 성품대로 일을 하다 보니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왕 형제의 팀을 맡은 자매가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왕 형제에게 있는 문제점을 모르고 계셨어요? 알면서 왜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그 형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역 진도를 크게 지체시키고 있어요.” 자매의 엄한 책망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자매를 들어 진리를 행하지 않은 저를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괴로웠고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제때에 문제점을 짚어 주어 형제가 진정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했더라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왕 형제는 자신의 사탄 본성에 대해 알지 못해 전에 맡았던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조정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사역 진도를 지체시켰고 변화된 모습이 없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사람들에게 해가 되었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스스로 좋은 인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남들 체면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생각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과 하나님 집의 사역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를 어찌 좋은 인성을 가졌다고 하겠습니까?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모두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이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겠느냐? 하나님과 사람, 어떤 일을 대할 때 늘 진심을 갖고 책임지는 것을 모두가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며, 모든 사람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거나 탐하지도 않는다고 내세운다. 나아가 이해 갈등이 생길 때면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하며, 험담을 하는 법도 없어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분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린 적이 없고 심지어는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으며, 어떤 원칙도 없으니, 이런 자는 인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니 사람됨의 원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정 좋은 사람은 중용의 길을 걸으며 타인의 문제점을 보고도 지적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과 하나 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좋은 사람의 기준은 사람이나 일을 대함에 있어 원칙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일을 보았을 때 사람에게 밉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원칙을 고수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형제자매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든 상대의 체면을 건드리지 않고 밉보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인간관계만 잘 유지하면 모두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전혀 진리의 원칙에 맞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패괴 성품에 따라 일을 해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여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특히 왕 형제를 대하는 문제에서 두드러졌습니다. 형제가 하나님 집 사역에 심각한 손실을 끼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형제를 공격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그리고 형제가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에게 편견을 가질까 봐 가볍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최대한 좋게 좋게 넘어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결과는 형제가 자신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이미지’를 남겼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님 집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손해만 끼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거짓된 좋은 사람이자 쓸데없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야말로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을 입는 것을 명백히 보아도 신경을 쓰지도 묻지도 않고,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사탄의 철학을 고수하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전혀 없으며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에 대해서도 교제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사람들을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사람들이 어떠한 잘못을 자주 저지르고 어떤 패괴된 성품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교제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줄곧 사람의 연약함과 소극성 심지어 대충 하려는 태도를 방임하며 끊임없이 이러한 사람들의 모든 행태들이 전혀 정죄받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그가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리더는 마치 우리의 어머니와 같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준다.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못 미치지만 우리의 리더의 요구에만 맞출 수 있으면 된다. 그는 우리의 좋은 리더이다.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다른 생각과 바람을 내세워 상부와 협상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생기고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인상을 갖고 마음속에 이러한 의지, 부러움, 존경, 숭배가 생기면 이 리더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느껴야 하느냐? 이 일에 있어서 만약 그의 마음에 가책이 있고 평안이 없으며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는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나 이미지를 신경 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높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게 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오며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의 목적은 이것을 위함이 아니라 이러한 방법과 수단으로 사람을 유혹하여 참도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진리를 등지게 하며 심지어 사람들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하게 계속 방임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그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방식이 아니냐? 이런 방식이 사악하지 않으냐? 가증스럽지 않으냐? 정말이지 구역질이 나는구나!』(<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행동했던 저의 속셈과 본질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리더 본분을 맡으면서부터 저는 항상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이 보여도 그들의 체면을 생각해 그것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왕 형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교란하고 방해하여 교회 사역의 진도에 영향 준 것을 알면서도 전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대화의 방식을 생각하고 고민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저의 입지를 굳힐 방법만 생각했습니다. 보기에는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말했지만, 사실은 거짓된 모습을 보이며 형제자매들을 미혹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좋게 보이는 방식과 말투로 환심을 산 것은 다 사람들이 저를 높이 평가하고 추앙하도록 만들고, 저의 입지를 굳히려는 방법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형통하려고 저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제 이익과 맞바꾸었고, 진리 원칙을 어기고 하나님 집 사역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저는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친지와 친구, 아내(남편)와 자녀, 부모에게 매우 자상하고 충실하며, 여태껏 다른 이를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부모와 가족을 세심하게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여전히 악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간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하나님 집에서 제게 리더의 본분을 맡겨 훈련시킨 것은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이끌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잘 수호하라는 의미입니다. 저의 직책은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을 보면 진리 교제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알고, 또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고, 늘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저의 명망을 지키는 것만 중시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집의 사역에 지장을 주었고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도 가로막았습니다. 완전히 사탄 편에 서서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드러낸 것처럼 저는 분명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간교하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악인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변화되지 않으면 분명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가진 생존 법칙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욕을 해도 허물은 들추지 말라.” 등의 사탄 독소는 진정한 사람됨의 원칙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회개하면서 그동안의 잘못된 추구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이 기초 위에서 다른 사람과도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진다. 만약 너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든, 어떻게 노력하고 힘을 쓰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할 뿐이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처세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너의 위치를 지키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는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른 이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길 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다른 이의 관계는 육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서 맺어진 것으로, 육적인 왕래는 거의 없으나 영적으로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공급하게 된다. 이 모든 행함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 위에서 이뤄지며,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이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처세술을 이용해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형제자매들의 영 안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형제자매들은 물론 저 자신에게도 유익한 길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패괴 성품대로 본분을 이행하여 사역을 지체시킬 때, 저는 저의 지위와 이미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문제점을 짚어 주면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진리를 깨달아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왕 형제도 예배드릴 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형제도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증거였습니다. 다만 문제의 근원을 깨닫지 못해 자신을 진정으로 증오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패괴 성품에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하나님 말씀을 찾아 형제에게 문제의 본질을 해부하면서 도와주고,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원칙을 찾아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도움입니다. 이를 깨달은 후, 예전의 잘못된 추구를 바로잡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왕 형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잘못한 부분을 정리하고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형제와 함께 그것들을 교제하고 해부하면서 문제의 근원을 분석했습니다. 교제를 마친 후, 형제는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저를 미워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교제해 준 것을 다 받아들였고, 나중에는 그렇게 지적해 주지 않았으면 심각성을 몰랐을 것이라며 고맙다는 메시지까지 남겼습니다. 그때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마음을 바로잡고,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며 원칙을 지켰더니, 형제자매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고 평온했습니다.
그 후, 또 한 자매가 맡은 본분에서 자기 멋대로 행하고 늑장 부린 관계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자매는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평소 자매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그 원인이 크게 관계가 있음을 알았기에 그것을 짚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 그래도 속상할 텐데, 지금 이런 것까지 지적하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아닐까? 내 말을 듣고 더 소극적으로 변하기라도 하면 주변에서 나를 배려심도 없는 인성이 나쁜 사람이라 하고, 이것 때문에 나를 멀리하면 어떡하지? 그냥 본분 과정에 생긴 문제만 이야기하고 자매의 문제점은 지적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제가 또 사탄의 처세술로 사람을 대하려 한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자매의 그 문제점을 짚어 주지 않으면 자매는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떤 진리에 진입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후,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에게는 사람이 지닌 중용의 도도 없고 사람의 뜻이 섞인 불순물도 없다. 하나면 하나고 둘이면 둘이며, 옳으면 옳고 틀렸으면 틀린 것이다. 하나님께 모호하고 애매한 것은 없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실로 순종해야 진실한 믿음이 생긴다> 중에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거나 일을 하실 때, 매우 원칙적이시며 애증이 분명하셨습니다. 사람이 긍정적인 일을 하면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지만, 진리의 원칙을 어기거나 하나님 집 이익을 해치는 일을 할 때는 증오하는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모호한 면이 없으시고 늘 태도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베드로와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마 16:23)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성격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사탄이 하는 짓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그 당시 주님은 베드로의 체면이 상하거나 소극적으로 변할까 걱정되어 말씀을 아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한 행동의 성격에 따라 정확하게 규정하셨습니다. 이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분명한 태도를 보여 주시고, 자신의 행위가 어떤 성격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에서 저는 실행의 원칙을 찾았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드러나는 문제에서 참아 주고 관대하게 대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본분에 영향을 끼치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체시키는 문제에서는 무골호인처럼 중용의 길을 택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놓고 해부하고 교제하며, 진리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그 자매가 비록 소극적인 상태에 있지만 저는 저의 체면과 지위를 생각하고, 밉보이지 않기 위해 자매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되었습니다. 자매를 싫어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로 지적하지 않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의 성격을 파헤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자매가 자신의 패괴 성품을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하고, 자매와 함께 실행 길을 찾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방법입니다. 그 후, 저는 자매에게 있는 문제점을 해부하면서 자매의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짚어 주고, 추가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매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너무 엄격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자매가 자존심 때문에 못 받아들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교제를 마친 후 자매가 더 소극적이 된다든가 저에게 편견을 가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책망과 훈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 뒤로 본분을 대하는 자매의 자세가 많이 나아져서 문제가 생기면 의식적으로 진리 원칙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무척 기뻤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니 마음이 정말 편했습니다.
예전에는 누구와 어울리든 항상 제 말 때문에 상대가 상처를 받거나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늘 처세술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과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어떤 사람이 진정한 좋은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고, 또 누구와 어울리든 진리 원칙을 고수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사람됨의 원칙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