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목사에게 복음을 전한 경험
2021년 4월 어느 날 저녁, 리더가 갑자기 저를 찾아와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50년 넘게 하나님을 믿어 온 목사님 한 분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시겠다네요. 차오쟈춘에서 오신 차오(曺) 목사님인데요. 자매님이 증거해 줄 수 있을까요?” “차오목사님은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다니시면서 설교를 하셨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공산당에 잡혀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주님께 등 돌린 적이 없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분이세요.”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여태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만난 목사며 장로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성경의 글귀와 종교 관념을 지켰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 아주 어려워했습니다. 대부분은 지위와 자기 밥그릇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임을 분명히 깨달았으면서도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목사님이 정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른 목사들처럼 종교 관념을 완고하게 고수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다른 본분을 이행하느라 꽤 오래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성경 지식이 많고 종교 관념이 심한 목사님을 만나라고 하니, 만에 하나 진리를 밝히 교제하지 못해 그의 종교 관념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주관을 갖고 굳게 서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성령 역사에는 원칙이 있다. 바로 사람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성령은 사람이 능동적으로 기도하고 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역사하며, 깨우침과 빛 비춤을 준다. 성령이 일방적으로 역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도 아니다. 둘 중 하나라도 없어선 안 된다. 사람이 협력하고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 다가갈수록 성령도 더 역사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제’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이 복음 대상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입니다. 여태까지 목사나 장로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실패한 적이 있지만, 모든 목사와 장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갖고 실질적으로 대가를 들이며 협력해야죠.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에게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고 참도를 알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책임감을 갖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해야 합니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한 포기해서는 안 되죠. 하나님을 의지해 사랑과 인내로 교제함으로써 제 책임과 본분을 다하고 아쉬움이나 마음의 짐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자 믿음이 생겼습니다.
목사님을 만난 저는 주님이 돌아오신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은진지하게 얘기하셨습니다. “사실, 20여 년 전에 제게 여러 차례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재림예수시고, 진리를 선포하여 말세 심판 사역을 행하셨다고 했죠.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지난 말씀과 사역일 뿐이라고요. 이제 예수님이 돌아와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셨으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새로운 말씀을 많이 보고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저는 그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사도 바울이 분명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라고 말했잖아요. 이는 성경이라는 책이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자 기독교의 경전이니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죠.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든 성경을 읽고 지켜야죠. 그때 저는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들의 교제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그러셨는지는 저도 이해가 됩니다. 종교계의 많은 사람이 바울의 말에 근거해 성경의 말씀이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규정하니까요. 그런데 그 생각이 사실에 부합할까요?” 그러자 목사님은 당연히 사실에 부합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성경의 말씀이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에 관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일찍이 명확한 답을 주셨습니다.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라고 말하자 표정을 좀 굳히며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이왕 이렇게 온 거 한번 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여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그만큼만 말씀했고, 성경에 있는 그만큼의 말들은 모두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신구약 66권은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람의 치우친 이해 방식으로, 사실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에는 사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쓴 서신은 사람이 한 일이었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며, 여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격려이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선지자도 아니었고, 요한이 본 이상(異象)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들은 당시 에베소, 고린도, 갈라디아 등등 교회에 써 보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바울 서신은 바울이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이지, 성령이 묵시한 것도, 성령이 직접 한 말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서신은 다만 바울이 사역하는 기간에 쓴 여러 교회에 대한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자 당시 그가 했던 많은 사역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써 준 것이고, 또한 당시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그의 권유를 듣고 예수가 전한 회개의 도를 준행하라는 것이기도 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성경의 기록이 모두 하나님이 친히 발한 음성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전 두 단계 사역에 대한 사실 기록일 뿐이다. 거기에는 선지자들의 예언에 대한 기록도 있고, 역대에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 쓴 체험과 인식도 있다. 사람의 체험에는 사람의 견해와 인식이 섞여 있기 마련이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수많은 책들 중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이나 편견, 치우친 이해 방식에 속한다. 물론 대부분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비롯된, 올바른 이해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를 완전히 정확하게 말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개인적으로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나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에 이사야가 했던 예언이나 다니엘, 에스라, 예레미야, 에스겔이 했던 예언은 성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예언자에 속하는 그들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로, 모두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묵시를 받은 그들은 많은 예언을 했는데, 그것은 여호와가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차오 목사는 집중해서 들었고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다 읽은 후 저는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전 두 단계 사역에 관한 역사적 기록일 뿐이에요.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 외에 나머지는 전부 역사적 기록과 사람의 체험에 속하죠.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말과 사탄의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혼동하지 말고 구분해야 합니다. 이사야나 엘리야, 에스겔 등 구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예언을 보면 그들은 말할 때 항상 앞에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가 누구에게 이르시되’ 이와 같은 말을 붙인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달했다는 의미입니다. 근데 사도들의 편지는 전부 사람의 체험이자 기록에 속합니다.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가 전부 그 개인의 체험이자 인식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 당시 형제자매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바울 형제가 편지를 보냈다고 했지, 절대 하나님의 말씀이 왔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절대 사도의 편지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성경에 나오는 사람의 말, 사탄의 말까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요?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성경의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순간 멍해졌던 목사님은 조금 격앙된 어조로 말했습니다. “예전에 신학을 공부할 때, 신학교의 교수들은 성경에 나오는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어요. 여태까지 저도 그렇게 설교해 왔고요. 바울의 이 말이 틀릴 리 있겠어요?” 목사님의 질문에 저는 가슴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길래 다 알아들은 줄 알았더니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네. 목사도 예전에 내가 만났던 그 종교계의 지도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십 년 동안 종교 관념을 지켜 온 목사님이 이렇게 쉽게 관념을 내려놓을 리 없을 거니까 인내심을 갖고 교제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교제했습니다. “일단 바울의 그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차치하고, 사실에 근거해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목사님,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목사님도 아시겠죠. 그럼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쓸 때가 주후 몇 년이었는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목사님은 바로 주후 육십 년쯤 됐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신약 성경은 주후 몇 년 동안 형성된 거냐고 물으니 주후 삼백 년 넘게 형성된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쓸 때 신약 성경이 있었냐고 물으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 물었습니다. “신약 성경이 없었는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에 신약이 포함되었을까요?” 목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해했어요. 바울의 그 말에는 신약 성경이 포함될 수 없어요. 주님께 감사하네요. 저는 왜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이렇게 오래 주님을 믿으면서도 저는 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교하기까지 했고요. 이 말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죠. 이렇게 교제하니 알겠네요.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정말 전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군요. 몇십 년 동안 갖고 있던 관념이 해결됐네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목사님의 관념이 해결되는 것을 보자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시고, 수백만 자에 달하는 진리를 선포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성경의 비밀을 열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세 단계 사역의 비밀, 하나님 이름의 비밀, 성육신의 비밀 등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의 비밀을 전부 밝히셨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의 진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본성 그리고 각종 사탄 성품을 드러내시는 동시에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구원받는 길도 알려 주셨고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이 진리들은 곧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자, 하나님이 말세에 인류에게 내려 주신 영생의 도이며,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유일한 길이에요.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목사님은 이해는 하시는데, 하나님이 말세에 여성의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에 관념이 있으셨습니다. “지금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 사역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여러분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이 여성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2천 년 전, 예수님은 남성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여러 차례 ‘아들’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나오고요. 그러니 다시 오실 때도 남성의 몸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여성의 몸으로 오실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이 부분에 대해 교제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몇천 년 동안,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난날 남성의 몸으로 오셨으니 말세에 다시 오실 때도 남성의 몸으로 오실 거라고, 여성의 몸으로 오실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성의 몸으로 오시니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관념을 갖는 부분일수록 구할 만한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일에 관해 예언하실 때 늘 ‘인자’, ‘인자의 나타남’, ‘인자의 임함’, ‘인자가 오리라’, ‘인자가 임하는 날’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자’란 무슨 뜻일까요? ‘인자’란 사람에게서 태어나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의 자식을 말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인자’지요. 그럼 예수님은 왜 ‘인자’라는 단어를 재차 강조하셨을까요?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세에 육신을 입고 인자가 되셔서 사역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세에 인자로 다시 오실 때 남성의 몸으로 올지, 여성의 몸으로 올지 말씀하신 적이 없죠. 그런데 사람이 왜 마음대로 규정하는 걸까요? 아시다시피,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태초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남성으로 규정짓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목사님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에는 모두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 예수는 예전에 왔을 때는 남성으로 왔었지만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영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육신을 취할 수 있고, 그 육신은 하나님을 대표한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면 모두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설령 예수가 여자의 몸으로 왔더라도, 즉 당시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가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였어도 똑같이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단계의 사역은 남자가 하게 됐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할 것이다. 사역은 어느 단계든 모두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의 사역은 중복되지도,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성별을 봐도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졌으며, 이로써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그 어떤 관념도 가지지 않게 된다. 즉, 하나님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으며,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남자를 만들고 여자도 만들었으며, 그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가령 성육신한 하나님이 단지 남자라면, 사람은 그를 남자로 규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대하지, 결코 여자의 하나님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같은 성별이니, 하나님은 남자들의 머리라고 여길 것이다. 그럼 여자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는 불공평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모두 자신과 같은 남자뿐일 테고, 여자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할 때 아담도 만들고 하와도 만들었다. 하나님은 아담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여자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저는 계속 교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태초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성육신은 당연히 남성도 되실 수 있고 여성도 되실 수 있죠. 만약 하나님이 두 번 다 남성의 몸으로 오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남성으로만 될 수 있고 여성은 될 수 없다고 했을 거고, 하나님은 남성이며 여성의 몸을 지닌 하나님은 없다고 규정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크나큰 오해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여성은 영원히 차별받을 텐데, 이건 여성들에게 너무 불공평하죠. 하나님은 첫 번째는 남성으로 성육신하셨고, 말세에는 여성으로 성육신 하신 거고요. 이는 무척 큰 의미가 있는 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으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의미를 완전하게 하죠. 사실, 하나님의 성육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진리를 선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을 대표하고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오시어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시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행하셨으며, 은혜시대를 끝내고 하나님나라시대를 여셨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자 돌아오신 주님이시라는 걸 완벽히 증명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의 말이 다 일리가 있어서 반박할 수가 없네요. 근데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는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구절이 나오고,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은 패괴의 기원이자 남성이 다스리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여성의 몸으로 오실 수 있단 말입니까?” 목사님의 말을 듣고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많이 읽어 주고, 또 이렇게 많이 교제해 주었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남성이라고 규정하면서 하나님이 여성으로 성육신하신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네. 아무래도 관념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한편으로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관념이 있는 건 성경 구절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야. 진리를 알게 되면 관념은 자연히 사라질 거야.’ 이런 생각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문제에 관해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 함께 하나님 말씀을 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말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에게 해당할 뿐, 여호와가 처음에 만들었던 남자와 여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여자는 마땅히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은 가족을 부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여호와의 율례이자 법도이다. 여호와는 여자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을 한 이유는 다만 인류(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상규를 지키며 질서 있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남자와 여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규칙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는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 해당하는 것일 뿐,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된 인류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창조된 인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별에 따른 규칙을 만든 것이다. 여호와는 태초에 사람을 만들면서 남자와 여자, 두 부류로 나누었다. 그러므로 그가 입은 육신 또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됐을 뿐이지, 그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자신의 사역을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의 두 차례 성육신 또한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의 생각대로 결정되었다. 즉, 패괴되지 않은 남자와 여자를 통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 여호와가 두 차례 입은 육신의 성별은 뱀에게 유혹당한 적 없는 남자, 여자와 관련된다. 즉, 뱀의 유혹을 받지 않은 남자와 여자로 두 번 성육신한 것이다. 예수를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와 ‘아담’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둘은 성질이 전혀 다른 남자다. 예수가 남자라고 해서 그가 모든 여자의 머리일 뿐,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느냐? 그는 모든 유대인(남자와 여자 포함)의 왕이 아니더냐? 그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며,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자 머리이다. 너는 어째서 예수의 성별을 여자의 머리라는 상징으로 규정하느냐? 그것은 모독이 아니겠느냐?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자이며, 그는 하나님이자 그리스도이며 주님이다. 그가 어떻게 패괴된 아담과 같은 남성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취한 육신이다.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성이 있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도 모두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남성성을 예수에게 더했을 리 있겠느냐? 오늘날의 성육신은 예수와 성별은 다르나 성질은 똑같은 성육신의 또 다른 사역이 아니겠느냐? 그럼에도 너는 여자가 먼저 뱀에게 속아 넘어갔으니 하나님은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하면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여자는 가장 더러운 존재이자, 인류의 패괴를 초래한 기원이니, 하나님이 여자로 성육신할 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또한 “여자는 언제까지나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변할 수도 없다.”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이 여성에 관해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이야기하신 것은 패괴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단속임을 깨달았어요. 이는 패괴된 인류가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질서정연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겁니다. 이 요구는 성육신한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없죠.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말씀처럼 말이에요.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였지만, 사람이 이것을 예수님께 요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는 예수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여자의 머리는 남자” (고전 11:3) 라고 한 구절은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전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하나님 자신이니까요. 만약 사람이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남성이며 여성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부정한다면, 이는 성육신 하나님과 패괴된 인류를 동류로 구분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에 대한 모독 아닐까요?” 그때 목사님은 제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자매님, 주님이 성육신하셨다면 사람에게서 태어나셨을 것이고 성별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입니다. 주께서 깨우쳐 달라고 기도해야겠네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답답해졌습니다. ‘이렇게 많이 교제했는데, 왜 아직도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 하나님의 양이 아닌 걸까? 계속 얘기해 드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대체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하는 걸까?’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책임을 다하고, 반드시 모든 복음 대상자를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최대한 구원하려 하니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참도를 구하고 알아보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쉽게 놓쳐서는 안 된다. …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 중에 이해 능력이 있고 자질도 무척 좋지만 지나치게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종교 관념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으로 인내심 있게 진리를 교제해 해결해 주어야 한다. 만일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포기해도 된다. 그러면 우리도 모든 성의를 다한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파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급해진 저의 마음은 안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대상을 사랑과 인내로 대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상대가 복음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적어도 최선을 다하라는 거죠. 목사님에게 복음을 전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성경을 고집하며 바로 돌아서지 못하자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또 하나님이 여성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것에 관해 관념을 가지며 교제를 다 듣고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자 인내심을 잃었고요. 저는 목사님에게 계속 편견을 갖고 목사 자리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니 마음속으로 규정했고, 심지어는 포기하려고까지 했죠.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이셨고, 그토록 많은 말씀을 선포하셔서 우리를 공급하고 양육해 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가지 진리를 교제하실 때마다 몇 번이고 알아듣도록 일러 주며 거듭 설명해 주셨고요. 이야기를 예로 드시기도 하고 비유를 하시기도 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이주 세세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를 위해 하나님이 치르신 대가가 실로 대단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고 위축되어 상대를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건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게 아니죠. 목사님이 관념이 생겨 돌아서지 못하고 있을 때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시간을 더 들여 교제해 주고, 목사님을 깨우치고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많이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교제를 이어 나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진리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진리를 선포할 수 있으며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니 그분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 사역하신 지도 이미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셨죠. 인류가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진리를 다 선포하셨습니다. 각 종교 각 교파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간절히 바라던 수많은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슬기로운 처녀인 거죠.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고 자신의 패괴된 진상을 간파했으며, 스스로를 뉘우치고 증오하게 됐습니다. 또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진실한 회개를 통해 패괴 성품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재난 전에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만드셨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계시록에 예언된 ‘처음 익은 열매’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사탄을 이긴 체험 간증은 오래전에 인터넷에 올려져 전 인류에게 구세주가 돌아오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각 나라 각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참도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 사역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을 마무리 지으셨고, 인류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하셨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현 사역이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자 돌아오신 예수님이심을 완벽하게 증명합니다.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돌아오신 예수님이 맞는지를 판단할 때는 성별을 봐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할 수 있는지를 보는 거죠.” 그러니 목사님은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진리를 선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 있으면 그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는 거죠?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수많은 말씀을 보면서 관념이 해결되었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번 복음 전파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사역은 전부 하나님 자신이 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이 얼마나 많든, 그들이 얼마나 많은 종교 관념을 갖고 있든, 진리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보고 얼마간 깨닫는 능력이 있으며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 마지막에 하나님 말씀에 정복될 수 있죠. 차오 목사님에게 복음을 전하던 때를 돌아보면, 저는 시종일관 종교계의 목사와 장로는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계속 편견을 갖고 있었죠. 복음을 전하는 동안 목사님이 관념을 고집하면 저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규정했고, 심지어는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자신을 깨닫고 제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됐죠.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종교 관념이 깊은 복음 대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더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이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한다면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귀찮아하지 말고 대답해 주되, 그가 이해해서 더는 물어보지 않을 때까지 어떻게든 문제를 분명하게 교제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네 책임을 다한 것이고, 마음속으로 죄책감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에서 하나님께 죄책감이 없을 것이다. 그 본분, 그 책임은 하나님이 네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고, 하나님을 향해 하고, 무엇이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한다면 그런 실행은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러면 네 언행으로 상대가 도움을 얻을 것이고, 찬성하며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파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리 많은 문제를 갖고 있고, 종교 관념이 아무리 심해도 인성이 좋고 진리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만 있으면 편견을 갖고 함부로 상대를 규정해서는 안 되며, 쉽게 포기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귀찮아하지 말고 대답해 주되, 어떻게든 문제를 분명하게 교제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대로 행하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해 복음 대상에게 전해 줘야 합니다. 이는 제가 피조물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복음 대상을 만나든 상대의 인성이 좋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만 하면 온 힘을 다해 진리를 교제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