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제5장 반드시 하나님의 성육신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1 무엇이 도성육신인가? 도성육신의 실질은 무엇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첫 번째로 성육신된 하나님은 땅에서 33년 반 동안 생활했는데, 직분을 한 것은 단 3년 반이었다. 그는 역사하는 기간에도,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도 정상 인성을 갖추고 있었고, 정상 인성에서 33년 반 동안 생활하였다. 그는 마지막 3년 반 동안에 시종일관 성육신한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다. 그는 직분을 시작하기 전에 평범한 정상 인성으로 나타났고, 신성(神性)의 표현은 조금도 없었는데, 정식으로 직분을 시작한 뒤에야 신성의 표현이 있게 되었다. 그가 29년 동안 했던 사역과 모든 생활은 그가 틀림없는 사람이고, 인자이며, 육신임을 증명한다. 그것은 그의 직분이 29세 이후에야 정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육신이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일단은 반드시 육신이어야 하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함의는 바로 육신에서 역사하고 육신에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성육신하여 생활하고 역사한 것은 모두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시작하기 전의 생활인데, 보통 사람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극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의 윤리와 법칙 그리고 사람의 정상적인 필요(먹고, 입고, 자고, 거하는 것)가 있고, 사람의 정상적인 연약이 있으며, 정상인의 희로애락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면서 정상인의 모든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분을 시작한 이후의 생활인데,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이 있는 보통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는 외적으로 초자연적인 것들이 전혀 없고, 직분하는 것을 생활로 한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직분을 할 때의 정상 인성이 이미 충분히 직분을 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생활은 정상 인성에서 직분을 하는 생활이다. 즉,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생활이다. 첫 번째 생활을 완전하고 평범한 인성에서 한 까닭은 그때의 인성이 신성의 모든 역사를 유지할 수 없고 성숙되지 않은 인성이어서 반드시 인성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이어야만 그가 해야 할 직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신인 이상, 반드시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생활은 단지 정상 인성에서 하는 생활이다. 그러나 두 번째 생활은 인성이 이미 충분히 사역을 담당하여 직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이 직분을 하는 기간의 생활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에서 하는 생활이다. 만일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강생하자마자 정식으로 직분을 시작하고, 또 모두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나타낸다면 육신의 실질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의 실질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또한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류이다. 그리하여 육신의 인성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외형이 있는 신성에서 살면서 역사하는데, 그때의 인성은 전적으로 신성이 그 정상 육신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속에 있는 신성이고, 신성이 역사하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신성은 인성에 가려진 신성이기에 그 실질은 여전히 완전한 신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하는 것은 이 육신이므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이 되어 사람의 외형과 사람의 실질이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실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조된 어떤 인류보다 높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보다 높다. 이런 연고로 그와 같이 사람의 외형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조된 인류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었지만 피조된 사람은 인성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성육신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서 인성 외에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신성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성은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서라야 발표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신성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실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한 후에도 너희 다수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에 대해 여전히 수수께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되었다고 한 이상, 그의 실질은 바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다. 이 결합을 하나님 자신이라 칭하고, 또한 땅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라 칭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하나님은 땅에 와서 그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거나 정상 인성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할 뿐이다. 하나님이 말하는 정상 인성은 사람이 상상하는 정상 인성이 아니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정상 인성’이란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고 아들딸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것에 근거해 정상 사람인지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 인성’은 정상 사람의 사유와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고, 정상 사람에게서 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상에는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고 아들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이 말씀한 ‘정상 인성’은 인성이 없고 감정이 거의 없는 것 같고, 마치 육체의 필요가 없는 듯하다. 예수처럼 정상 사람의 외형만 있고, 정상 사람의 형상을 취하였지만, 실질상 정상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을 완전히 갖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것에서 보면, 성육신 하나님의 실질은 완전한 정상 인성을 갖춘 것이 아니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일부분만 갖춘 것인데, 그것은 정상 사람의 생활 법칙을 유지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성육신 하나님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에게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고 가정이 있어야 정상 인성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또 이런 것이 없다면 정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하나님에게 그래 아내가 있겠는가? 하나님에게 그래 남편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게 그래 아들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은 그릇된 논리가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성육신은 돌 틈에서 튀어나올 수 없고 하늘에서 떨어질 수도 없기에, 정상 사람의 가정에서 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 부모와 자매가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에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처럼, 그에게 부모가 있고 자매와 형제도 있는 것은 다 정상이다. 그러나 예수에게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이 원하는, 성육신 하나님이 갖춰야 할 정상 인성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신성을 대표하여 역사할 수 없다. 그에게 아내가 없고 아들딸이 없지만 정상 사람에게서 태어났고 정상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었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보는 ‘정상 사람’은 정상 가정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라야 신성 사역을 할 조건이 갖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거나 남편이 있다면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정상 인성만 갖추었을 뿐, ‘하나님’에게 있어야 할 정상 인성은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은 흔히 사람의 인식과 크게 다르고 차이가 아주 크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에서 발췌

 

『정상 인성이 있는 그리스도는 영이 실제화되어, 정상 인성이 있고 정상 이지가 있으며 두뇌의 사유가 있는 그런 육신이다. ‘실제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 거하는 것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통해 자신의 신성의 역사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화’, 즉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며, 하나님의 영은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그의 육신도 지고지상하며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러한 육신은 공의로운 일만 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일만 하며 거룩하고 휘황하고 위대한 일만 할 뿐,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할 리가 없고 하나님 영을 배반하는 일은 더더욱 할 리가 없다. 하나님의 영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의 육신도 사탄에게 패괴될 수 없다. 그의 육신은 사람의 실질과는 다른 육신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패괴시킨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고, 게다가 사탄은 하나님 자신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 한 편 전체 발췌)

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이 육신은 육체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 같지 않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혈기에 속하지 않는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있는데, 그의 신성은 어떤 사람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에서의 모든 정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다 천부의 뜻에 순복한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영이자 신성이므로, 그의 실질 자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다. 이 실질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할 리가 없으며, 그는 자신의 사역을 허무는 일을 할 리가 없고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할 리도 없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에 방해되는 사역을 할 리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령 역사의 실질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역사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된 이상 그의 실질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그의 육신이 족히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를 대신하고, 게다가 말씀이 육신 된 기간의 전체 사역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핵심으로 한다. 그 외에 어느 한 시대의 사역도 섞여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고, 육신에 온 이상 육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이든 어쨌든 다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직분을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그 자체가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또 자신의 권병에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는데, 영의 역사이든 아니면 육신의 역사이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의 권병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육신도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있는 하나님은 또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또 자신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다”는 데에 내포된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어도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말씀하든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하는데, 그는 방해하거나 가로막지도 않고, 더욱이 서로 모순되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실질은 같은 것이며,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하나의 사역을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가지 속성이 있지만 그 실질은 모두 같은 것으로, 다 하나님 자신의 실질과 신분이 있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고, 하나님의 실질은 선한 것이다. 그는 모든 미와 선의 발표이고, 또한 모든 사랑의 발표이다. 설령 육신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기꺼이 원하며 아무런 선택도 없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고(自高)한 성분이 없고, 교만하고 자대(自大)하거나 간사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런 것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있게 된 까닭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고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할 때,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육신이 얼마나 연약하든지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방해되는 일을 할 리가 없고, 더욱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거역할 리도 없으며, 차라리 육신이 고통을 받을지언정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없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지만 여전히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한다. 이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면 하나님의 실질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실질만 있기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복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 외의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아무도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경영을 자기가 해야 할 본분으로 삼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사탄의 속성이 있는 자라면 그리스도라고 칭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까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후의 앞날을 위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역사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그가 비록 육신으로 있지만, 그의 인성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특정된 성격이 있는데, 이 성격 또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은 연약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연약이란 그의 인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연약은 어떤 상황에서는 신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범위가 있고 기한이 있는 것이지 끝없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를 상관치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에서의 정상 생활을 제외하고 인성에서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있고, 또한 신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인성이 있다고 해도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되지 않는 까닭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한 인성이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의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직접 신성의 지배를 받고, 또한 그에게 일반 사람보다 높은 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여 역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고,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발표할 수 있는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복할 수 있는 인성이다. 하나님은 육신에서 역사해도 여전히 육신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단지 그가 땅에 와서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의 외형을 갖게 되었고 원래보다 인성이 더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로서 사람이 모방할 수 없다.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육신의 각도에 서서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한다”라는 이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고 자신은 오히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다 그의 소시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역사하든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고,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가 어떠하든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다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모든 사람보다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인데, 그 권병은 바로 신성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소시이다. 이 성품과 소시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얼마나 정상이든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고, 그가 어느 각도에 서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든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우매무지한 사람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본다. 그가 어떻게 신성의 소시를 표현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든지 사람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순복과 낮춤을 표현할수록 우매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배척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위대한 형상이 있는 ‘위인’들을 책상 위에 놓고 공양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된 실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데에 있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가려지지 않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갖고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좋아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고 피조물의 속성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멸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리스도가 땅에 와서 비록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역사할 수 있지만 그가 땅에 온 목적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형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식견을 넓히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그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아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의 기능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실질을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떻게 역사하든 육신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모두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전부 나타내어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지금까지 사람이 상상한 대로 그렇게 초자연적이거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육신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친히 하고 있지만, 그는 하늘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도 않고 육신에서 비미은장한다. 그리스도가 아닌, 그리스도라고 사칭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그리스도의 속성이 없다. 거짓 그리스도의 교만방자하고 스스로를 높이는 성정으로부터 도대체 어떠한 육신이라야 그리스도인지를 대조해 낼 수 있다. 거짓 그리스도일수록 더욱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고, 더욱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을 미혹한다. 거짓 그리스도라면 하나님의 속성이 없고, 그리스도라면 거짓 그리스도의 성분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은 단지 육신에서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행하는 사역으로 자신의 신분을 실증하고, 자신의 유로로 자신의 실질을 실증한다. 그의 실질은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분은 자신이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사역과 그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있고, 게다가 그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는 영과 다른 육신이고, 영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가 어떻게 정상적이든, 어떻게 연약하든, 또한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든, 그의 신성을 부인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과 정상 인성의 연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성의 기묘와 난측(難測) 그리고 육신의 모든 행사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다 아주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조금도 공허하지 않고,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다. 그가 땅에 온 주요 목적은 역사하는 것이다. 땅에서 역사하려면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의 위력이 얼마나 크든지 그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성이 비록 매우 중요하지만 인성은 결코 그의 실질이 아니다. 그의 실질은 신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서 직분을 시작할 때 자신의 신성의 소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의 인성은 다만 육신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여 신성이 육신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역의 전부를 지배하는 것은 신성이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면 그는 자신의 직분을 다한 것이며,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그의 모든 역사인데, 역사하는 것으로 사람에게 그를 알게 한다. 역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성의 소시를 아주 완전하게 발표하는데, 인성이 섞여 있는 성품이 아니고 사유와 인위적인 것이 섞여 있는 소시도 아니다. 그의 모든 직분이 다 끝날 때에 그는 이미 자신이 발표해야 할 성품을 완전무결하게 다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역사는 어떠한 사람의 지시도 받지 않고, 그의 성품의 발표 역시 상당히 자유로운데, 두뇌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사유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유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해내지 못한다. 설사 환경이 열악하거나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적당한 시간에 자신의 성품을 발표한다. 그리스도이면 그리스도의 소시를 발표하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대적하거나 그에 대해 관념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사람의 관념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발표한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한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성의 발표로 인하여 그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할 것이고, 절대로 어느 한 방면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매우 미련할지라도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를 알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셈으로 인하여 고의로 그리스도를 대적할 뿐이다. 만일 이런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인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발표한 신성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발표가 그의 실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부탁을 완성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의 자연적인 유로도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유로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발표한 것이 모방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교육하거나 수년간 양성한 결과가 아니며, 그 자신이 배운 것이나 꾸며 낸 것도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의 사역과 그의 발표를 부인하고, 그의 인성을 부인하며, 정상 인성의 모든 생활을 부인하지만, 아무도 그가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천부의 뜻을 완성하러 온 것을 부인하지 못하며, 아무도 그가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비록 그의 형상이 그다지 사람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고, 비록 그가 말을 함에 있어 비범한 기개를 갖추지 못했으며, 비록 그의 역사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천지개벽하게 하거나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그는 정말 진심으로 천부의 뜻을 이루고, 천부에게 완전히 순복하며, 죽기까지 순복하는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그의 실질은 바로 그리스도의 실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모두 믿기 어려우나 또 확실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직분을 모두 다 마치고 나면 사람은 그의 역사에서 그의 성품을 볼 수 있고, 그의 소시가 모두 하늘의 하나님의 성품과 소시를 대표한다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을 종합해 보면 그는 바로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 혈기에 속한 사람과 같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땅에서 사역하는 단계마다 대표적인 의의가 있지만 각 단계의 현실적인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그가 사역하는 의의, 특히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하는 몇 개 절차의 사역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말씀만 들었거나 그리스도의 말씀만 보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의 역사에 대해 관념이 없다. 만일 그리스도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의 사역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겉모습과 정상 인성이 사람의 구미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스도가 떠난 후에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사역만 받아들일 뿐,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접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극력 연구하는 것은 모두 그의 겉만 보고 그의 역사와 말씀으로 그의 실질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다. 만일 사람이 모두 눈을 감고 그리스도의 겉모습을 보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인성을 논하지 않고 신성의 일면만 논하면서 역사하거나 말씀하는 것이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의 관념은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고, 심지어 사람의 어려움까지도 다 해결된다. 성육신 하나님이 역사하는 단계에는 사람이 모두 그를 용인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 관념이 겹겹이 쌓여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용인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비미은장(卑微隱藏)을 ‘관용’하지 못하며, 천부에게 순복하는 그리스도의 실질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역을 끝마친 후 영원히 사람과 함께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가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역사하는 기간에도 사람은 그를 ‘관용’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가 직분을 마친 후에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이 점차적으로 그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다 그로 인하여 ‘실족’할 것이 아닌가? 사람은 단지 그가 땅에서 역사하는 것만 허락할 뿐이다. 이것은 이미 사람이 최대한 관용을 베푼 것이다. 만일 사역으로 인한 까닭이 아니라면 사람은 벌써 그를 땅 밖으로 쫓아냈을 것인데, 하물며 그의 사역이 완성된 후에는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면 사람이 그를 사형에 처하거나 무참하게 죽도록 괴롭히지 않겠는가? 만일 그가 그리스도라고 불리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리가 없다. 만일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지 않고 정상 사람의 신분으로만 역사한다면 사람은 그가 한 마디 말씀을 하는 것도 아예 용인하지 않고, 더욱이 그가 일을 좀 하는 것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분을 지니고 역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신분을 지니지 않고서 역사하는 것보다 더욱 위력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모두 ‘지위’와 ‘고귀한 신분’에 순복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지 않고서 역사하고, 하나님 자신의 신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역사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그에게 하나님의 실질과 그리스도의 소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수월하게 역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고 역사하는 것이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지 않고 역사하는 것보다 몇십 배 나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그에게 완전하게 순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순복하는 것은 다만 그의 지위이지 그의 실질에 순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데, 혹시 어느 날에 그리스도가 ‘제2선으로 물러난다면’ 사람이 그를 하루라도 생존하게 하겠는가? 하나님은 친히 행한 사역이 몇 년 후에 도달하게 되는 효과를 보기 위해 사람과 함께 땅에서 생활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사람이 모두 그가 하루라도 더 머물러 있는 것을 용인할 수 없으니 그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사람이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을 하게 하고, 그의 직분을 다할 수 있게 한 것은 이미 아주 큰 관용을 베푼 것이고, 크게 체면을 봐준 것이다. 그에게 직접 정복된 사람은 그에 대해 비록 이렇게 크게 체면을 봐주었으나 사역을 다할 때까지만 머물도록 용인할 뿐, 그 이후로는 한 시각도 더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에게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은 또 어떠하겠는가?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그가 정상 인성의 외형이 있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만일 그에게 신성만 있고 정상 인성이 없다면 사람의 어려움은 다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 아닌가? 그의 실질이 조금도 틀림없이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그리스도의 실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모두 그의 신성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그의 정상 인성의 외형에 대해서는 결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과 동고동락하며 환난을 겪는’ 이 ‘사역’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그의 존재에 대해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

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본분(本分): 피조물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천직.

③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비미은장(卑微隱藏):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

이전: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다음:반드시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신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