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는 왜 바리새인의 길을 갔는가?

산시성 쑤싱

저는 본성이 교만하고 지위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오면서도 항상 명예와 지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등용과 교체가 반복되는 동안 지위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고, 여러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고 연단을 겪으면서 지위에 대해 담담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처럼 리더를 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리더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어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본분을 하든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항상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어떤 본분이 주어지든 지위가 없더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으며, 가끔 명예와 지위에 관한 패괴를 드러내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고, 본분을 수행하는 중에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대가를 치르고 협력하고자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스스로 이미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섰고, 인성과 이성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의 드러냄을 겪으면서 제가 진정으로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서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3년 6월 말, 저희 구역에 한 리더가 실제 사역을 수행하지 않아서 교체되는 일이 있었는데, 재선거에서 형제자매님에 의해 제가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런 큰 사명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진리 실제가 없는 저로서는 그 큰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 큰 구역, 그 많은 형제자매들을 잘 이끌 수 있겠어? 나보다 자질이 뛰어난 사람들도 모두 교체되고 도태되었는데, 내가 되겠어? 결국 나도 교체되고 말 거야. 이제는 정말 그렇게 높은 지위를 원하지 않아. 아무 본분이든 수행하면 되지.’ 그래서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안 되겠는데요. 이 일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핑곗거리를 댔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또 사실이기도 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형제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리더를 해서 다시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높이 오를수록 크게 다친다’, ‘높은 곳은 추위를 피할 수 없다’와 같은 사탄 독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더를 맡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 왔던 것입니다. 물론 전에 도태된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거나 혹은 본성이 너무 나쁘고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그렇게 되었음을 이치적으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리더만 하지 않으면 악행을 저지를 기회도 없을 테니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쫓기면서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니, 물러설 길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리더를 맡았다가 나중에 진리가 없어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악행을 저질러 출교라도 당하면, 그때는 정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관념과 독소에 얽매여 흑암 속에서 살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사명이 제게 임한 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라는 것도, 사명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사탄의 독소에 얽매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나이다. 큰 사명을 맡았다가는 본성도 불안하고 진리도 없는 제가 큰 악행을 저지르고 당신의 성품을 거슬러 벌을 받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너무나 고통스럽고 막막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당신께 순종하는 것인지 모르겠나이다. 저를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소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깨우침으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오해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경우는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하늘을 능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그런 믿음이 너희가 내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너희가 나를 더욱 적대하게 만들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의 사역을 통해 너희도 수많은 진리를 보고 접했다. 그러나 내 귀에 들리는 것들이 전부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 중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는 하나같이 자신이 진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진리를 위해 고난받은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의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는 불의뿐이다. 그래서 너희는 누구나 다 똑같이 간사하고 교활하다고 생각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한 구절 한 구절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보고 난 뒤 제 심정은 혼란과 고통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하늘을 능멸하며’,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는 불의뿐이다.’와 같은 말씀들은 비수처럼 제 가슴을 찔렀고, 말씀에서 하나님의 공의, 위엄, 진노의 성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의 제 영적 상태는 그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것이며, 그 성격이 너무나 엄중했습니다! 그제서야 제 패역의 마음이 돌아섰고,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스스로의 패괴를 성찰하고 해부하며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지를 찾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 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여러 번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깨닫기는커녕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경계만 늘고, 심지어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여겨 일체의 불의를 하나님께 뒤집어씌웠습니다. 수년 간 하나님 사역을 겪으면서 저와 하나님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지고 정상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의 사이에 더 큰 벽과 거리가 생겼고, 심지어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그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어 오면서 내가 얻은 수확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으로 인해 저는 스스로의 양심을 배반하고 하나님이 수년 간 제게 들이신 심혈과 대가, 저에 대한 구원과 양육을 잊은 채 살았습니다. 저는 가슴 한가득 자책과 후회를 안고 하나님께 또다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사탄 독소에 기대어 살고 싶지 않고, 더는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 제 잘못된 관점을 바꾸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원하나이다.’ 또 설교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가는 길이 적그리스도의 길이며, 결국에는 드러나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입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악인은 모두 드러나고 도태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각기 부류대로 나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지위와 권력을 얻고 나면 온갖 악행을 저질러서 드러나게 될까요? 지위가 사람에게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사람의 본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라면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위가 없을 때에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겉으로 보면 아주 좋은 사람 같다가도 지위가 생기면 온갖 악을 자행합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이 설교 말씀을 통해 제 마음에 있는 관념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황당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진리 추구의 길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위의 유무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있다고 해서 진리 추구의 길을 가기 힘든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본성이 진리를 사랑하느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제 나름대로는 수년 간 시련을 겪으면서 지위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고 담담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풀이니 나무가 되려고 애쓰지 않으며, 자기 분수를 지키며 제대로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교회에서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선발되면 괴로워하거나 연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지고 자포자기하지 않았으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 성품이 달라졌으며, 이미 베드로의 길을 가고 있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지금, 사실과 진리 앞에서 비로소 제 진면목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는 정말로 지위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더욱 ‘영리해지고’ 교활해졌고, 패괴 성품을 더욱 깊숙이 숨겼을 뿐입니다. 여러 번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은 뒤,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하고 관찰하는 재주만 늘어 자신을 수호하는 데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앞날의 운명을 마음에 두고 ‘지위가 높으면 위험하다’는 황당한 관점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경계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 있고, 베드로의 길을 간 모습이 어디 있습니까!

제 그릇된 관점을 겨냥해 또 ≪원칙 있게 일하기 위한 실행과 훈련≫ 중 ‘자신의 본분과 위치를 확정하는 원칙’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원칙’을 찾아보았는데, 베드로의 기도를 보게 되었습니다.『제가 무슨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당신께서 더 잘 아실 것이옵니다. 저를 당신의 지배에 맡기길 원하옵고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길 원하옵나이다.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신만이 아시나이다. 사탄이 이렇게 저를 우롱하고, 저 역시 당신을 거역한 적이 있으나 당신께서는 그런 이유로 저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런 것들로 저를 대하지 않으실 것이라 믿사옵니다. 저는 제 일생을 당신께 바치길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바람이나 계획도 없사옵니다. 오직 당신의 생각과 뜻에 따라 행하길 원할 뿐이옵니다. 저는 당신의 쓴잔을 마시고, 저 자신을 당신의 지배에 맡기길 원하나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 중에서)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는 한평생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고자 했습니다. 일절 자신이 선택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에 무조건 순종함으로써 결국 피조물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믿는 데 성공한 것은 그의 지위 고하와는 무관합니다. 그는 사도였고, 주 예수께서 교회들을 보살피는 중대한 사명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사도의 위치에 서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성실하게 피조물의 본분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본분에 있어서도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만족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성공의 비결입니다. 베드로의 기도와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에 비추어 보니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에 울림과 깨달음을 줍니다. 그동안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고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언제나 제 선택과 요구, 계획을 앞세웠고, 오랫동안 제 자신의 결말, 앞날, 명리, 지위만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습니다. 본분을 수행하면 하나님과 거래를 했고, 심지어 제가 구원을 받는다는 확실한 보장을 하나님께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은 제 본성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피조물이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간사한 본성 때문에 사명을 거절하고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했는데, 도리어 억지를 부리고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성’을 논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겪어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하신 심판 형벌은 모두 제 양심과 이성을 회복시키고 제 잘못된 관점을 돌려 제가 진정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이든 마땅히 자신을 바쳐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대역무도한 것이고,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오늘 이 사명을 마주하게 된 것은 어느 누가 정한 것이 아니라, 제가 오랫동안 걸어온 길, 제 실제 분량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입니다. 제가 진리 실제가 없고, 분량이 너무 작은 것은 현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이 사명을 내려 주신 것은 지금 그것을 능히 감당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본분에서 각별히 진리를 추구하고, 훈련을 받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마음과 목숨과 뜻,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에 들어가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과거에 터무니없는 관점 속에 살면서 자기 본분과 위치를 확정한 줄로 착각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심리 상태로 본분을 수행하면서 연단과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 않았지만, 정작 생명은 별로 자라지 않고 성품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편안함만 누리려 하고, 현상에 만족하는 제 타락한 성품이 드러났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얻고 좋은 결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한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스스로가 베드로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통해 제가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려 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바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베드로의 추구에 부합하는 부분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찾고 구하는 중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옳은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며 얻은 것이 성품의 변화라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네가 추구하는 것이 육적인 복이고, 실행하는 것이 자신의 관념 속 진리이며, 성품에 어떤 변화도 없고 육신의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막연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네가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베드로의 성공의 길이 무엇인지, 성공의 길을 가는 실천 방법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성공의 길은 단순히 지위를 추구하지 않거나 본분을 가리지 않는 것 등 소극적인 면에서 정복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애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른길을 감으로써 수많은 긍정적인 실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진리를 추구하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갈수록 인식이 깊어지고, 점점 더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요구나 바람, 불순물이 더는 남아 있지 않으며 성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갈수록 진리에 깊이 들어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진실해지며, 그 어떤 바람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한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에서 보다시피 제게 진리 실제에 진입한 모습이 있었나요? 진리를 얻고 성품이 변화한 모습이 있었나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있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진입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그 어떤 지배와 안배에도 순종하고, 기꺼이 자신을 바쳐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사실의 드러냄과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통해 비로소 제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는 길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애쓰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이익과 바람을 추구하는 길, 자신을 보호하느라 마지못해 하나님을 따르고 자신의 일부만을 바치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지금껏 제가 추구한 것은 육체의 편안함이었습니다.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얻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관점은 바로,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지 말고 적당히 평온하게 본분을 수행해서 나중에 좋은 결말을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바울이 실패한 근원은 그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였기 때문임을 거듭 밝혔습니다. 바울은 훗날 상과 면류관을 받기 위해 열심히 사역했으며, 그가 추구하는 것에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순종과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실패하고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만약 그렇다면 종착지를 위해 노력을 바친 자는 결국 마지막 실패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너희는 생각해 보았느냐? 하나님을 믿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모두 기만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종착지에 관하여> 중에서) 그렇습니다. 그런 희생에는 거짓과 기만만 있을 뿐,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완고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 채 제 길을 고집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임했을 때 사리 분별을 못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하면서 하나님을 완전히 오해하고, 대적하고, 배반했습니다. 그제야 제 본성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열한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몇 년째 하나님을 믿으며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음에도,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지고 언제나 하나님과 거래하면서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잘못된 길을 가게 된 원인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주를 위해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보고서도 피해 자기 자신의 길을 가기 때문에, 늘 실패한 사람이 갔던 길을 따라 추구하기 때문에, 또 늘 하늘을 거역하기 때문에 항상 실패하고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며 자신의 올무에 빠진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저는 또 설교 말씀을 보았습니다. 『항상 이런 염려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본분을 수행하는데, 혹시나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을 대적할까 봐 두렵구나.’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특히 리더와 일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을 것입니다. 아무개를 보니 전에 그렇게 열심히 추구하고, 은사도 있고 머리도 좋은데 결국 실패했고, 또 아무개는 설교도 잘하는데 결국 생각지도 못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합니다. ‘내 보잘것없는 실력으로는 한번 맡았다가 결국 그 사람들처럼 실패하지 않을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두려워할까요? 여러분에게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걱정에 구속받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신경 쓰기 때문에 그릇된 일을 하지 않습니다. … 여러분이 정말 어떤 것이 적그리스도의 길이고 어떤 것이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인지 분별할 줄 안다면, 어째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될까 봐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런 길을 가고 싶고 그릇된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 중에서) 하나님 말씀과 설교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실패의 근원임을 더욱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내면에 숨겨진 사탄의 이유와 핑계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더 큰 사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실패의 길을 갈까 두려워한 것은 제 본성이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하기 때문이고, 제가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사탄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오래 믿었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정상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그들은 사악한 본성이 있으며,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한 사람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들을 통해 저는 진정으로 제 그릇된 관점을 바꾸었고, 저는 영적으로 해방되었으며, 올바른 추구의 방향과 실행 길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이기적으로 비열하게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제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일체를 하나님 지배에 따르고 싶습니다. 본분을 수행하는 가운데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로 인해 저는 추구하는 바와 목표를 바꾸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과 본질을 진실로 인식하고, 실패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해 본 적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게 되었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온전케 된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아가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베드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더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비루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제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고생하고 희생을 치르면서 진정으로 제 책임을 짊어지고 싶습니다. 본분을 수행하는 가운데 진리를 실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에 진입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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