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교만함을 해결하고 나서야 찾은 사람다운 모습

미국 전신

2017년 3월, 저는 교회 디자인팀에서 영화 포스터와 섬네일 디자인 본분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분야를 잘 알지 못해 관련 원칙과 기술을 배우는 데 집중했고, 겸손한 자세로 형제자매들의 가르침을 구하며 다른 사람의 제안도 잘 수렴하면서 디자인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적응하니 기술적인 부분이 좀 익숙해졌습니다. 그 후, 제가 만든 섬네일이 인터넷에서 꽤 많은 클릭 수를 얻었고, 제가 참여한 다큐멘터리 포스터 디자인이 형제자매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기술 부분에서 많은 문의까지 받는 등 해당 분야의 기술을 어느 정도 익혔습니다. 그러니 제가 정말 디자인 분야에 자질도 있고 제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교만해졌습니다.

한번은 섬네일 디자인을 맡았는데, 제 실력이면 그 정도의 섬네일 제작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칙을 구하지도 않고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제가 가진 기술에만 의존해 디자인했고, 완성한 작품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제 능력에 심취해 있을 때, 리 자매가 저의 디자인을 보더니 명암과 컬러가 모두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안 좋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는 눈이 없는 거 아니야? 이건 내가 파격적으로 뒤집어엎은 것이라고. 그런 건 나도 다 생각해 본 부분이고, 문제가 안 된다고. 볼 줄도 모르면서 지적하기는….’ 저는 계속 제 생각을 고집하면서 자매에게 혈기를 부렸고 조금도 수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다른 제안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제가 만든 섬네일은 그래픽 문제로 폐기 처리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리 자매는 눈치가 보여 제가 디자인한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못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저는 자신을 알려고 깊이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저는 또 복음 영화의 포스터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영화는 한 종교인이 목사와 장로의 미혹과 통제, 그리고 종교 관념에 묶여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나중에 진리를 구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생각하면서 포스터에 어두운 데서 조금씩 밝아지는 효과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반나절을 들여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작 같은 느낌이 들고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기 작품에 빠져 있을 때, 한 자매가 말했습니다. “여기는 너무 어두운 것 같아요. 디테일이 없는 것 같고 밋밋해 보여요.” 그때 다른 한 자매도 한술 떴습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어둡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요. 하나님을 증거하는 영화니까 너무 어두운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두 자매의 말을 듣자 반감이 들며, ‘내가 볼 때는 딱 좋은 것 같은데? 둘 다 명암을 조절하는 것도 모르면서 내 작품에 문제가 있다 말하다니, 이건 괜한 흠을 잡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암 처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맞지 않아요? 명암 대비가 있어야 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질 것 같은데. 그리고 이건 영화 포스터라 명암 효과가 중요해요. 다른 영화 포스터도 다 이런 식으로 했던데, 문제없지 않겠어요?” 말을 마치고 저는 온라인에서 다른 영화 포스터를 예로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본 후에도 자매들은 제가 처리한 명암 효과는 어두운 부분이 너무 많다며 인터넷에 있는 포스터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잔뜩 화가 났습니다. ‘평소에는 나한테 와서 명암 처리를 어떻게 하냐고 묻던 사람들이잖아. 기본적인 명암 이론도 나보다 모르면서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다니, 이건 아마추어가 전문가를 가르치는 격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저의 안목이 더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너무 어둡다고 했습니다. 다들 그러니 저는 마지못해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생각이 맞고, 명암 처리 이론에도 부합한다고 판단해 약간만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수정한 포스터의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결국, 1주일이면 완성되어야 할 디자인을 거의 한 달 동안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 부분에서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 제가 만든 것은 폐기 처리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보니 뺨을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람 빠진 공처럼 완전히 의기소침해졌고, 심적으로 어둠에 빠져 괴로웠습니다. 그때, 팀장이 요즘 들어 계속 디자인에서 문제가 생기니 빨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반성하며 자신을 인식하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았고, 이에 관한 하나님 말씀도 찾아보았습니다.

하루는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일이 임했을 때 독선적으로 굴면서 ‘나는 원칙을 알아. 그러니 내가 말한 대로 할 거야. 당신들은 말할 자격이 없어. 당신들이 뭘 아는데? 당신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고!’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독선이다. 독선은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정상 인성 안에 갖춰야 할 것이 아니다.』 『네가 늘 독선적으로 굴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듣지 않을 거야. 듣는다고 해도 겉으로만 듣고 고치지 않을 거야. 이렇게 할 거야. 나는 틀리지 않았는 걸. 나는 당당하다고.’라고 말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네게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네 행동에 아무 문제나 잘못도 없을 수도 있으며, 업무적인 측면에서 네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 그러한 태도와 실행을 다른 사람이 보면 “이 사람은 성품이 안 좋구나!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말이 맞든 틀리든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전부 반대하네. 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조차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보겠느냐? 하나님이 네 그런 태도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네 모든 언행을 지켜본다. 하나님이 네 언행을 보고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는 참 강퍅하구나. 너는 네가 맞았을 때도, 틀렸을 때도 그렇게 행동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네가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은 전부 맞서고 대항하는 것으로, 어떤 이의 의견과 건의도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네 마음은 온통 반발과 거부뿐이며, 완전히 닫혀 있다. 너는 정말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다!”라고 말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자는 불신파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다 저의 상태를 드러내신 말씀이었고, 저는 확실히 그동안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탄의 성품을 드러냈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만든 포스터가 주변 형제자매들의 인정과 좋은 평가를 얻자 저는 제가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했고, 디자인 능력이나 이 분야에 관한 지식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뛰어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의견을 내도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형제자매들이 똑같은 의견을 말해도 저는 강퍅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받아들였지만, 계속해서 저의 생각을 고집하며 자기 구미에 맞는 제안만 받아들여 수정하고, 제가 받아들이기 싫은 부분은 전혀 고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반박하고, 심지어 혈기를 부려 자매가 제 눈치를 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저를 보니 정말 이성적이지 못할 정도로 교만했고, 참으로 막무가내였습니다. 저는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계속 수정을 해야 했고 사역을 지체하게 되었으며, 저의 영적 상태도 점점 나빠졌습니다. 이러한 실패와 좌절을 맛보지 않았더라면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반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계속 이런 교만한 성품으로 살면서 돌이키지 않으면 형제자매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왔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께 회개하겠다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리 자매와 교제하면서 제가 드러냈던 패괴 성품에 대해 털어놓았고, 형제자매들의 지적과 책망 훈계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본분을 하면서 형제자매에게서 이런저런 제안이나 지적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실패했던 과거를 교훈으로 삼고, 의식적으로 기도하면서 자신을 내려놓았습니다. 또 상대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어떤 좋은 결과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는지, 어떤 부분을 고려해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생각해 보고, 다시 원칙으로 가늠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로잡으니 형제자매들의 제안을 더 빨리 이해하고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수정한 후에는 확실히 결과도 훨씬 좋았습니다. 이로써 저는 진리 실행으로 얻는 달콤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성품은 고질병 같은 존재라 한 번의 실패로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저는 또다시 교만한 성품에 빠져 살았습니다. 한번은 교회 찬송 섬네일을 만들었습니다. 교회 찬송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 조금 따뜻하고 낭만적이면서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보라색이 따뜻하고 낭만적이며 그윽한 감을 표현한다고 공부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찬송 표지 섬네일에는 보라색을 메인 컬러로 삼으면 가장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만든 섬네일을 본 어떤 사람들은 아이디어도 좋고 색감도 이쁘고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흐뭇해지면서 ‘역시 난 다른 사람보다 자질도 있고 디자인 능력도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이제 막 디자인을 훈련하는 자매에게서 “교회 찬양은 형제자매들이 실제로 겪은 것과 깨달은 내용이에요. 보라색은 너무 몽환적이라 찬송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리고 이미지도 그렇게 편안한 감이 없어요. 수정하시는 게 어떻겠어요?”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자 곧바로 욱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정말 많은 자료를 찾아봤는데 다 보라색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했어. 게다가 인터넷에서도 이런 보라색 계열의 디자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근데 왜 당신만 편한 느낌이 없다고 하는 거지? 더구나 이제 막 디자인 훈련을 시작했으면서 몇 개나 만들어 봤다고 나한테 수정 제안을 하는 거야? 정말 주제넘는 것 같아.’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으니 다른 형제자매들의 의견도 물어보겠다고 둘러대고 넘어갔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섬네일 수정에 대해서는 의논하지도 않고 그냥 대충 마무리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자매가 똑같은 제안을 하며 색감이 너무 답답한 느낌이 든다면서 다른 색상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팀장도 너무 고집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수정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니 더는 고집 부릴 수 없어 일단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라색이 들어간 스타일은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고른 색깔이 정말 그렇게 별로인가? 더구나 이 색깔이 좋다고 하는 형제자매들도 있는데, 내가 왜 꼭 수정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강해질수록 수정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결국, 몇 번이나 수정했지만 이상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수정하는데 이미지에 갑자기 흠이 생겼고, 몇 시간 동안 작업해도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속이 뒤집히고 답답하고, 심지어 더 수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거 하나 만드는데, 한 달씩 걸린 것도 모자라 여섯 번이나 수정했고, 그 과정에서 형제자매들도 저 때문에 고민하면서 제안해 주었지만, 여전히 제대로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사역 진도까지 지체해서 몹시 괴로웠습니다. 전에도 교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며 형제자매들의 제안을 무시한 것 때문에 사역을 방해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교만한 성품에 빠져 다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질병이 도진 것 같아 얼른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만한 성품이 너무 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순종이 잘 안 됩니다. 제가 당신의 뜻을 깨닫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오.”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교만은 사람이 지닌 패괴 성품의 근원이다. 사람은 교만할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겠느냐? 사람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심각할 경우 하나님조차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늘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자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만한 성품의 본질이자 근원으로,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이다. 관건은, 사람의 교만한 성품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고 다른 이를 통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느니 하나님께 순종한다느니 하는 것은 더 언급할 가치도 없다.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 특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추켜올리고 자신을 증거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려면 먼저 교만한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 너의 교만한 성품이 철저히 해결될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지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알 수 있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교만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본 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저는 항상 제가 한 말이 옳고, 저의 관점과 견해가 진리이자 권위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가 없었고 다른 사람의 제안은 전혀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저보다 디자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잘 모르는 형제자매의 제안을 들으면 바로 반감이 생겼습니다. 겉으로는 수렴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제안을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은 주변의 형제자매를 들어 저에게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시하면서 더 좋은 버전을 만들 수 있도록 더 구해보고 시도하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집을 꺾지 않고 제가 쌓아온 이론과 경험을 진리로 여기며 다른 사람이 저의 생각과 다른 것을 제안하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제야 “사람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심각할 경우 하나님조차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사람은 교만할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라고 드러내신 말씀을 백번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교회에 있었던 적그리스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몹시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제멋대로 하며 다른 사람의 제안이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의견을 말한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집의 사역에 방해되었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도태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런 적그리스도들과 똑같은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드러낸 성품을 놓고 보면 그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교만한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얼른 하나님께 회개하겠다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 보면 본분 이행에 합격하기가 어렵겠느냐? 사실 어렵지는 않다. 겸손한 태도로 몸을 낮추고 조금이나마 이성을 갖추며 적절한 위치에 서야 한다. 네 학력이 얼마나 높다고 여기든, 과거에 어떤 상을 받고 어떤 것을 이뤘든, 네 자질과 수준이 얼마나 높다고 여기든, 그런 것들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아무리 높고 좋아도 진리보다 높을 수 없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를 대신할 수도 없다. 그래서 너는 이러한 이성을 가져야 한다. 만약 네가 “저는 많은 은사를 받았고 머리가 좋아 반응 속도도, 배우는 속도도 빠릅니다. 기억력도 비상하지요.”라고 하며 언제나 그러한 것들을 밑천으로 삼는다면 문제가 된다. 네가 그것들을 진리로 여기거나 진리보다 높게 생각한다면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하기 어렵게 된다. 교만한 자가 늘 높은 위치에 서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렵고, 또한 쓰러지기가 가장 쉽다. 교만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진리 실행이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표면적으로 좋아 보이고 대단해 보이며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들을 내려놓고 먼저 그것들을 부인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진리가 아니며, 오히려 진입하지 못하게 너를 막을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교만한 성품을 해결하려면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부인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가진 기술, 재능, 경력, 은사는 아무리 뛰어나거나 좋은 것이라도 진리가 아니며, 그것은 단지 본분 이행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니 밑천으로 삼으면 안 됐습니다. 본분 이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많이 찾고 구하며 원칙대로 일하고,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며 절장보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바로 예전에 만들었던 것 중 좋은 평가를 받았던 포스터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살펴보니, 제가 디자인했던 이미지는 아이디어나 명암, 채도, 구성 등에 많은 결함과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의 제안에 따라 수정한 후에는 포스터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심지어 어떤 디자인은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니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괜찮은 작품을 만들고, 많은 형제자매의 인정을 받는 것은 제가 가진 기술이나 이론, 경력 면에서 남보다 많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저의 밑천으로 여기며 높은 위치에 서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만들어서 합격받은 작품은 전부 진리 원칙 기준에 따랐던 것이고, 진리에 부합하는 제안을 수렴하고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에서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형제자매들이 마음과 뜻을 합치고 조화롭게 협력한 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기 기술만 믿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으며 형제자매들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는, 혼자 힘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사역을 심하게 지체하는 결과만 초래했습니다. 제가 드러냈던 이런 교만하고 독선적인 행동이 떠오르니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고, 전문성으로 따지면 제가 배운 기술적인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습니다. 전문가에 비하면 저는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독선적이고 안하무인격으로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정말 경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닫자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저의 생각을 내려놓은 후, 형제자매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수정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어려움을 해결한 것은 물론, 의도치 않게 더 좋은 색감을 조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빠르게 수정하였고, 형제자매들도 수정한 이미지가 훨씬 보기 좋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니 더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었던 탓에 이미지 하나를 놓고 수없이 수정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였고, 형제자매들에게도 많은 폐를 끼치고, 사역도 심하게 지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기술이 늘지 않은 것은 물론, 생명 진입에서도 손해를 보았습니다. 정말 교만한 성품에 따라 살면 백해무익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으니 너무 후회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제안이 오든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며, 더는 교만한 성품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최근, 낭송 프로그램 섬네일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제가 디자인 초안을 낭송팀 형제자매에게 보여 주었더니 지구를 표현한 부분이 중간을 너무 크게 차지해 호기스럽지 못하고 확 트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참고 도안을 주면서 다시 수정할 수 있냐고 했습니다. 그 순간, ‘지구는 이렇게 크게 해야 호기스러운 느낌이 들지. 더구나 당신들은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실제로 만들어 본 적도 없잖아. 나만큼 이 분야를 아는 것도 아닌데, 그 제안을 내가 다 받아줄 필요는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의 제안을 무심하게 읽어 보고는 제 생각대로 수정하려 했습니다. 그때, 제가 또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음을 인지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가치 없는 제안이라고 규정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은 처사였습니다. 저는 서둘러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육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먼저 자세를 낮추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은 다음 다른 사람이 교제하게 해야 한다. 설령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발전이자 진리를 구하는 태도이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기도해라. 네가 옳고 그름을 모르니, 하나님께 드러내 달라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지, 또 가장 적합한 것인지 하나님께 알려 달라고 해라. 모두가 함께 나누다 보면 그때 성령이 깨우쳐 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깨우치는 데는 과정이 있고, 때로는 너의 태도를 본다. 네가 죽어라 자기 생각을 고집한다면 하나님은 네게 얼굴을 감추고 숨으며, 너를 드러내고 네가 벽에 부딪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올바른 태도를 보이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거나 독선적으로 굴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지도 않는다면, 찾고 구하는 태도,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며 모두와 함께 교제한다면,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면서 누군가의 말을 통해 네게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형제자매들에게서 오는 다양한 제안도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마음과 말,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외적인 상황만 놓고 따지거나 제안한 사람이 아마추어인지 전문가인지를 분석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진리를 행하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설사 제가 남보다 더 잘 알고, 저의 생각이 더 합리적인 것 같아도 자기 생각과 관념을 내려놓고, 진리 원칙을 구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쪽으로 실행해야 했습니다. 설령 결국에는 제 생각이 옳은 것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증오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의 사탄 성품이었습니다.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은 일을 잘못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전에도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 때문에 하나님 집 사역에 많은 방해를 안겨준 걸 생각하니 앞으로는 더더욱 자기 멋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런 수정 제안을 수렴하고 최대한 잘 수정해야 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이 준 제안을 꼼꼼히 살펴봤고, 그중 매우 호기스럽고 참고할만한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같은 팀 형제자매들과 의논했더니 다들 제안을 준 대로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디자인 구성과 요소를 재구성하면서 다시 수정했더니 수정본이 금세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의 결과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에도 형제자매들이 여러 번 수정 제안을 했지만, 저는 반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제안을 올바르게 대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수정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차례의 수정 끝에 형제자매들 모두가 잘 수정했다며 다른 의견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마음이 참으로 편했습니다.

몇 번의 징계를 받고 드러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교만하고 독선적인 저의 사탄 성품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고,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모든 일에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전처럼 그렇게 교만하게 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조금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이 정도의 변화를 얻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징계와 채찍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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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쉰추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서 말을 할 때는 너무 직설적으로 하지 말고, 매사를 좋게 좋게 넘기는 것이 처세를 잘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동네 이웃들과 지낼 때도 항상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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