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육신이란? 그 본질은 무엇인가?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9~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육신의 형상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육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정상 인성을 가진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정상 인성과 정상적인 이성, 정상적인 사유를 가진 육신으로 실체화한 것이다. ‘실체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에 거하면서 그 육신을 통해 신성 사역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체화’, 즉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의 의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한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성으로 신성의 사역을 하며, 이를 통해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성육신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된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곧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을 통해 실체화되고,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나타낼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처음 성육신했을 때 29세 이전까지 정상 인성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세상의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며, 말을 떼자마자 천상의 말씀을 하고, 사람의 생각과 품고 있는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다면, 이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육신은 육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성육신의 의의와 본질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성육신’ 하나님임을 증명한다. 그가 정상인의 성장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더더욱 그의 육신이 정상적이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그의 사역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존재임을 충분히 보여 준다. 하나님은 사역의 필요로 인해 육신이 되었다. 다시 말해, 그 단계의 사역은 반드시 육신, 즉 정상 인성을 통해 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의 전제 조건이며, 두 차례에 걸친 성육신의 실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삶과 사역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의 삶이다. 일반인의 가정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며,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 윤리와 법칙, 정상적인 필요(의식주 등), 정상적인 연약함과 정상인의 희로애락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정상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의 삶이다. 이때도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평범한 인성으로 살며, 겉모습에는 조금도 초자연적인 부분이 없지만, 직분을 이행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오로지 신성의 사역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정상 인성이 이미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정상 인성으로 직분을 이행하는 삶이자,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첫 번째 단계의 삶이 완전히 평범한 인성으로 사는 삶인 이유는 그때의 인성이 신성의 모든 사역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으며, 인성이 성숙해질 때까지,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인 이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의 삶은 그저 정상 인성의 삶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인성으로 사역을 충분히 담당하고 직분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직분을 이행하는 기간의 삶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만약 성육신 하나님이 태어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직분을 이행하고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사만 행한다면, 육신의 본질은 없어진다. 그래서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의 본질을 위해 존재하고,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육신의 인성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성육신 하나님께는 신성만 있고 인성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이는 아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고, 성육신의 원칙과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옷을 입은 신성으로 살며 사역한다. 다만, 이때의 인성은 오로지 신성이 정상 육신에서 사역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안에 있는 신성이다. 즉,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성은 인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인성이 아닌 완전한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단, 역사하는 것은 육신이며, 이 육신을 사람이라고도,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의 외형과 본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했다고 하면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예수가 사역한 기간에 사람은 하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그가 춤을 추고,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혹은 어떤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의 모습이었다. 이와 함께 예수는 신성을 대표하는 사역도 많이 행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역은 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발현된 것이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의 신성이 정상적인 육신에 실체화됨으로써 사람은 그를 보거나 만질 수 있었고, 또한 더 이상 하나님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사람은 인자의 일거수일투족, 인자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거나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었다. 성육신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사람이 본 것은 형상을 지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와 어떠함 등등을 구체화하고 인간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서, 인자의 겉모습은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었다. 단지 발현되는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이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고, 육신의 위치에서 말씀했으며, 인자의 신분으로, 인자의 위치에서 인류를 마주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로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을 지극히 낮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높고 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게 되었고, 초보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과 그의 사역 방식, 말씀할 때의 위치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참모습과 다소 다를지라도, 그의 모든 것은 사람이 본 적 없는 하나님 자신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대변하였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 패괴된 인류 중의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할 리 없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 겉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또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사람의 언어를 쓰며, 심지어는 사람의 방식과 화법을 빌려 그의 뜻을 표현할 때가 있다고 해도, 그가 인류를 대하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패괴된 인류와 결코 같지 않다. 게다가 그가 서 있는 위치와 차원은 패괴된 인류 중 누구도 닿을 수 없다. 하나님은 진리이므로 그가 입고 있는 육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인성이 나타내는 것 역시 전부 진리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육신이 선포하는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며, 이는 특정한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공급이다. 패괴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몇몇 사람만을 마음에 수용할 수 있고,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이도 단지 몇몇에 지나지 않는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자기 집의 아이들과 배우자, 부모만을 생각한다. 비교적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도 고작 어느 친척이나 친한 친구를 생각할 뿐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위치와 차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심지어 사람에게 아무리 멸시를 당해도, 그의 마음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신성의 위치에서, 창조주의 차원에서 인류를 관찰하고,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으로 인류를 대한다.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의 차원이나 패괴된 사람의 관점으로 인류를 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안목으로, 사람의 지식과 규칙, 학설 등을 평가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이런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가 이를 수 있는 범주이다. 반면,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각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으며, 이 범주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 차이는 각자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본질의 차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차원을 결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이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도,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도 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을 방해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점이다. 성령 역사의 본질은 인류 구원과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인류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그의 본질을 육신에 실체화하여 육신이 충분히 그의 사역을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기간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을 대신하고, 성육신 기간의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핵심으로 하며, 다른 어떤 시대의 사역도 섞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하며, 육신으로 온 이상 육신에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든 어쨌든 모두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직분을 다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그 자체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권병에서 나온 모든 것에 순종할 수도 있다. 영의 사역과 육신의 사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에 대한 권병을 지니고, 하나님의 본질이 있는 육신 역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고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그의 권병에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고, 이를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사역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같은 뜻을 이루려 하며, 같은 사역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이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는 하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발현이자 모든 사랑의 발현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해져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며 거역하는 일은 더더욱 저지르지 않는다.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는 똑같이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본질만 있을 뿐 하나님의 본질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존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고, 하나님의 경영을 자신의 당연한 본분으로 삼아 이행할 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공존할 수 없으므로 사탄의 속성을 가진 자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앞날을 위함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그것은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게다가 사탄은 하나님 자신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되고, 이용당하고, 해를 입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영원히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만,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할 수 있다.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한 영과 크게 다르지만,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여전히 성육신 하나님 자신이고 또 영이자 육신이다. 호칭이 어떠하든 결국은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육신이 하는 사역은 또한 하나님의 영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의 신분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할 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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