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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초신자가 최소한 깨달아야 할 기타 몇 방면의 진리

4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성도의 체통.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탄의 패괴를 겪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의 패괴를 겪은 후에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지와 양심 그리고 원래 있었던 인성은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사랑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람의 이지가 정상이 아니고 사람의 성정도 짐승의 성질처럼 변하여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심해지지만, 사람은 여전히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한사코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정상적인 이지란 하나님에 대해 순복과 충성심이 있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이고 양심이 있음을 가리키며, 하나님에 대해 일편단심이고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대적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비정상적인 이지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겼고 충성심이 없으며, 사모하지도 않고 양심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며,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논단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하나님을 욕하며,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논단하며, 순복하려는 뜻은 아예 없고 줄곧 하나님께 토색하고 요구할 뿐이다. 이지가 정상적이지 못한 이런 사람은 자신의 비열한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패역한 행위를 뉘우치지도 못한다. 만일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지가 약간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지가 건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현재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든 외적인 인성 변화나 소질 높이기를 추구하든 다 괜찮은데, 가장 주요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한 모든 것이 다 의의 있고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어도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러움을 떨쳐 버리게 하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며, 이런 것을 중요시하도록 하여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 너에게 어떤 간증을 하게 하느냐? 말하자면, 네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어도 성결하게 되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어도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유되지 않고, 사탄에게 시달리지 않고, 전능자의 손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간증이고 사탄과 싸워서 이긴 증거(證據)이다. 네가 사탄을 배반할 수 있으면 살아내는 것은 사탄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한 요구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정상 인성, 사람의 정상적인 이지(理智)와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정상적인 심지(心志),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인데, 이것이 곧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정상 인성에는 모두 몇 가지 방면이 들어 있느냐? 여기에는 식견, 이지, 양심, 인격이 들어 있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이르라고도 요구하지 않고 외부와 교제하라고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정상 사람이 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으며, 일을 꿰뚫어 볼 것을 요구한다. 최소한 사람들이 볼 때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 오늘날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 네가 이를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너에게 쓸데없는 말과 쓸데없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너의 삶 속에서 표현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그런 추한 몰골은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한다. 너희가 사탄에게 패괴되어 사탄의 독소가 너무 많기에 너에게 그런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지, 너에게 고위급 인사나 명인이나 위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필요 없다. 너희에게는 너희 원래의 것에 따라 한다. 사람에 대한 요구에는 다 한도가 있다. 지금 만일 사람들이 다 국가 엘리트처럼 그들이 말하는 그 말투를 훈련하고, 국가 고위급 인사가 말하는 방식을 훈련하며, 수필가, 소설가들이 말하는 방식과 말투를 훈련한다면, 그것도 안 된다. 이르지 못한다. 이 사람들의 소질에 따라 최소한 말할 때 지혜와 방식을 쓰고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면 요구에 이른 것이다. 최소한 식견과 이지가 있으면 된다. 지금 주요한 것은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네게서 표현되는 추한 몰골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도 네가 아직 벗어 버리지 못하는데 또 무슨 최고의 이지, 최고의 식견에 대해 말하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대가 바뀐 것을 보고는 그 어떤 겸손이나 인내도 지키지 않으며, 아예 사랑이 조금도 없고 성도의 품위도 없다. 그 사람들은 너무나 황당무계하다! 정상 인성이 어디 조금이라도 있느냐? 어디 가서 간증을 하겠느냐? 그 무슨 식견이나 이지도 다 사라졌다. 물론 어떤 실행은 그릇되고 치우친 면이 있으니 그런 것은 시정해야 한다. 이전의 틀에 박힌 영 생활과 마비되고 멍청한 모습 같은 것도 다 달라져야 한다. 달라진다고 해서 방탕하라는 것이 아니고 육체를 방종하라는 것도 아니다. 말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퍼부으면 안 된다! 정상 사람의 언행이 있다는 것은 말할 때 조리가 있고,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며, 말이 사실에 부합되고 매우 적절하며, 기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소질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께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에서 발췌

 

『정상 사람의 성정에는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부패하지 않다. 또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관통되게 하며, 사람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처럼 순진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땅에서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6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정상적인 인성이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를 초월하고 환경의 핍박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며,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환경에서든 나를 가까이하며 나와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55편 말씀>에서 발췌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실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실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내가 희망하는 것은 아주 많은데, 너희가 반듯한 사람이 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며, 충심으로 본분을 하고, 진리 있고 인성 있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등이다. 이런 희망은 모두 너희의 부족함과 너희의 패괴와 패역에 대해 말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너희의 인성은 너무나 결핍하고 생활은 너무나 천하며, 인성이 없고 식견이 부족하다. 이러면 인성 방면의 것을 장비(裝備)해야 한다. 양심적이고 이지적이며 식견이 있고 말솜씨가 좋고 일을 잘 판단하며 위생을 지키고 정상 사람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 정상 인성 방면의 지식이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적합하게 행하면 너희의 인성은 합격된 셈이다. 다른 한 방면은 영 생활을 장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한 모든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가 한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너는 어떻게 그의 안배에 순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지금 진입해야 할 두 가지 방면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7)>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에게 실생활에서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교회 생활에서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는 것만이 아니고, 사람에게 실생활에서 진리를 살아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교회 생활에서 진리를 살아내라는 것만이 아니며, 사람에게 실생활에서 자기의 기능을 다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교회 생활에서 자기의 기능을 다하라는 것만이 아니다. 실제에 진입하려면 모든 것에서 실생활로 향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실생활에 진입하여 자기를 알지 못하고 실생활에서 정상 인성을 살아내지 못하면 실패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모두 실생활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모두 입으로는 인성을 말하나 귀신의 성정을 살아내는 사람이며, 모두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나 도리를 살아내는 사람이다. 실생활에서 진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을 사람이다. 네가 실생활에서 진입하기를 훈련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패역과 우매를 인식하고, 자신의 비정상적인 인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연약한 면을 인식할 수 있고, 이런 인식을 모두 너의 실제 정형과 실제 어려움에 결부시킬 수 있으면, 이런 인식이야말로 실제적인 것이고, 너로 진정 자신의 정형을 파악하게 할 수 있고 성정이 변화되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교회 생활과 실생활에 대해 말해 보자>에서 발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겉으로는 이지가 없는 것 같고 사람들과 정상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말을 분수 있게 하고 함부로 하지 않으며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충분히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급한 이지가 없는 것 같다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사람들과 정상 관계가 없는 것 같고, 또 겉면의 사랑과 겉면의 행실은 중시하지 않지만, 영 안의 일을 교통할 때면 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체험하여 얻은 빛 비춤과 깨우침을 사심 없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 준다. 그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를 훼방하고 비웃을 때에도 그 사람은 외부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좌우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자신의 독특한 견해가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웃고 떠들어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거나 속으로 마음속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정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처세 철학이 없는 듯하다. 겉으로 보면, 그런 사람은 활발하고 사랑스러우며 애티가 나고 어느 정도 침착함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의 모습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서 발췌

 

『실제 체험 중에서 간증을 굳게 서거나 입장을 세워 하나님의 편에 서서 절대로 물러가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정상 관계가 있고, 일이 닥쳐도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할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순복한다면, 그 사람은 진리가 있는 것이다. 너의 실제 생활 중의 실행과 생활 중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바로 하나님의 증거이다. 이것은 사람의 살아냄이자 하나님의 증거인데,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다. 네가 이 정도까지 체험하면 효과에 도달한 것이다. 자신에게 실제적인 살아냄이 있으면 일거일동을 다른 사람이 보고는 탄복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의 겉모습의 차림새는 보통이지만 너의 살아냄은 매우 경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할 때는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이 있으며, 말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말할 수 있고 실제를 교통할 수 있으며, 영적으로 섬기는 많은 일에 대해 알고 있고, 말을 명쾌하게 하며, 단정하고 정직하며, 소란스럽지 않고 방탕하지도 않으며, 일이 닥칠 때는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으며, 어떤 일을 처리할 때 믿음직하고 침착하며 서두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어리지만, 겉면의 행동은 마치 중년처럼 성숙되고 진리가 있어 다른 사람도 다 탄복한다. 이런 사람은 간증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존재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매일 적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교통하고, 노래하고 찬미하고, 범사에 찾고 구하는 이 5가지 영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거기에 예배 생활까지 더한다면 아주 누림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웬만한 터득 능력을 갖추고, 즉 개인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본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진리를 깨닫고는 어떻게 행해야 진리에 부합되는지도 알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모두 성공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 이러한 영 생활이 없거나 아주 비정상이고, 어쩌다가 약간 있다면, 제가 보건대 그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흐리멍덩하게 믿는 자입니다. 흐리멍덩하게 믿으면 영 생활이 없고 본분을 해도 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영 생활이 없으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마음에 오히려 하나님도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는데, 어찌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겠습니까? 제가 보건대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지 않습니다. 그의 생활과 평소의 언행에서 보아 완전히 이방인 같고, 정상 사람의 모양이 없으며, 말과 행동은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밉살스럽게 굴고 반감을 주어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본분을 하는 데도 지체되고 이후의 복음 사역에 번거로움을 가져옵니다. 사람의 주의를 끌 몇 가지 정형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 모두 단정하고 정직하고 대범하고 예의 바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괴상하고 조금도 대범하지 못하며, 눈짓으로 말하고 정상 사람의 몸가짐이 없으며, 도둑과 흡사하여 사람에게 방비하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용모가 잘 생기지 못한 데다가 옷치장 할 줄도 모르고 더욱이 단정하거나 정직한 모양이 없다면, 본분을 하는 데에 어느 정도 어려움을 가져오게 됩니다. 본분을 잘 하려면 정말 잘 연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 간에 서로 모르면 대부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정말 도둑과 흡사한 그 모양이라면 누구나 다 방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옷 입는 것을 배워 단정하고 정직한 사람의 모양으로 단장해야 하며, 언행은 솔직하고 진실해야 하며, 절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눈짓으로 오가지 말며, 더욱 자신을 단속해야 하고 남의 집에서 아무데나 돌아다니지 말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말며, 보지 말 것은 보지 말고 가지 말 곳은 가지 말며, 정직하고 반듯해야 하고 정말 타인으로 마음놓게 하고 신뢰하게 하고 호감이 있게 해야 합니다. 이래야 본분을 잘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줄도 모르고 정상적으로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거나 교통할 줄도 모릅니다. 정상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정미조차도 없고, 마음속으로는 빨리 사역을 해서 다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는 것만 알고,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는 사랑의 유로가 조금도 없고 따스함과 다정함이 느껴지지 않고 도리어 냉혹하고 무정한 느낌이 드는데, 마치 냉혹한 살인마가 다가온 듯합니다. 이러한데 어찌 사역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식사하는 데도 갖가지 양념으로 맛을 조절해야 하는데, 사람과 접촉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더욱 신경 써야지, 너무 단조로우면 안 됩니다. 정상적인 정황에서는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 한나절이나 반나절이면 하나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즉, ‘그 사람 정말 시원시원하고 정열적이며, 사랑이 있는가 하면 진리도 있고 붙임성도 아주 좋고, 정말 보기 드문 좋은 형제(자매)이다.’라는 것입니다. 일을 처리할 때 너무 단조롭고 정상 인성에 갖추어야 할 것이 결핍하고 지혜도 없다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의 결점이니 되도록 빨리 바로잡고 보완해야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형은 바로 복음을 전할 때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사람과 접촉할 때 정형을 살필 줄 모르고, 정황을 판단하거나 기회를 찾을 줄 모르며, 더욱이 어디로부터 손을 대야 적합한지도 모릅니다. 일을 처리할 때 방식과 방법이 없고 절차가 없으며, 만나면 한바탕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세 번 찍고는 그만두는 격으로 가 버립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보기에 덤벙대고 좀 멍청하고 또 아주 미련합니다. 이것 역시 사람의 부족함입니다. 이 방면에서 사람은 모두 너무 많이 실패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지혜가 없고 인내가 부족하면 절대 안 됩니다. 성격이 급할수록 많이 실패합니다. 느긋한 성격이라 해도 지혜가 좀 있으면 우세를 차지합니다. 성격이 급한 데다가 인내할 수 없고 지혜까지도 부족하면 절대로 이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성급한 사람은 성격이 느긋한 사람을 찾아 협력하면 가장 좋습니다. 두 사람이 다 성급한 사람이면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를 돌아보는 것과 다릅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지혜가 가장 필요하고 사랑과 온유가 가장 필요합니다. 엄청난 인내가 없으면 이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는 그래도 자신을 낮추고 사람을 사랑하는 진실함과 진지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구하면서 다른 사람을 깊이 감동받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내가 없고 사람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해낼 수가 없습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인격이 비천하여 접대집에서도 제집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조금도 버릇이 없습니다. 무슨 물건을 보기만 하면 가지고 놀기도 하고 써보기도 하는데, 마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디나 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여 남의 미움과 불만을 사게 하는데, 그래도 ‘참관을 사절’하기가 딱해 부득불 화를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낸 지 며칠 안 되고 아직 서먹서먹한데도 다짜고짜 돈을 빌리거나 남의 물건을 사용하는데, 정말 사람을 몹시 난처하게 만듭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의 집에 거주하면서 예의가 없고 정욕을 방종하고 남을 존중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농담하고 시끌벅적거리는데, 완전히 성도의 체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농담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조금도 경건하지 않은 그런 상스러운 농담은 부적당합니다. 말할 때 유머가 있고 재미있어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하고 후련하게 한다면 당연히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메스껍게 하고 징그럽게 하는 상스러운 농담은 그래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너무나도 사람 모양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에게 설사 다 결점이 있다 해도, 언제나 좀 단속하고 방탕하지 말고 예의를 좀 차려야 하고 남을 좀 존중해야 하고 범절을 좀 알아야 하고 사람들이 볼 때 합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해야 사람에게 덕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도 모욕받지 않게 되며, 본분을 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사람 모양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사람 모양이 없으면 틀림없이 인성에 부족함이 너무 많고 전혀 진리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더욱 혐오하십니다. 사람은 인성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어도 구원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사람 모양이 없는 사람은 다 하나님 집에서 훈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고 역시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시는 기간에 사람이 조금의 변화도 없다면, 여전히 이방인의 마귀상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날이 오기만 하면, 이 부류 사람들은 틀림없이 징벌받을 대상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의를 모르고 버릇없는 것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것은 배우고 훈련하면 됩니다. 정상 인성에 갖출 얼마의 것들을 장악해야 하는 것은 매우 필요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정상 인성의 생활에 들어가기를 배우는 것도 배워야 할 한 항목의 공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추구하려면,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려면, 인간적 지식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절대다수가 모두 근로자 가정에서 나서 자랐고, 부모가 아무런 지식도 없으며, 그저 식구를 벌어먹일 줄만 알고 대부분 다 자녀를 어떻게 교육하여 어른이 되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우리 이 사람들은 확실히 가련합니다. 사탄의 각종 방식의 패괴를 거쳐 그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생활 출로를 도모할 줄만 압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덕분에, 우리는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인식하게 되었고 사람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추구하여 진리와 생명을 얻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또 몇 가지 가장 심각한 정형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형형색색의 악인들이 다 이미 정체를 드러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어떤 자는 남녀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뻔질나게 내통하는데 보기만 해도 메스껍고 징그럽습니다. 정말로 건달짓이 버릇이 되어 짐승만도 못합니다. 이런 사람의 결말은 더 심한 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부류 사람들은 아마 너무도 가난에 찌들어 살아갈 방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타서 여기저기서 부당한 이득을 차지하며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과 물건을 토색하는데, 정말로 인격이 비천한 비열한 소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 대한 호의를 모르므로 불쌍히 여길 가치도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며 여기저기서 거짓말로 남의 물건을 사취하는데, 나중에 탄로나 사람들이 그 본모습을 꿰뚫어 보고 싫어 하고 증오하며 마지막에 저버립니다. 악을 행하는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증오하는 사람들이고 이 흐름 속의 부정적 인물들입니다. 어떤 징벌을 받느냐는 사태의 발전 변화를 보아 가며 정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를 건드려 징벌받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사람들의 실패 교훈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경계하기를 바랍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기 바랍니다.

정상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양에 관해 10가지 주의 사항을 규정하여 훈련 진입하도록 제공합니다.

1. 예의를 차리고 범절을 알며, 연장자를 존중하고 아랫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2. 다른 사람에게나 자기에게나 다 유익한 점이 있는 적합한 생활 방식이 있어야 한다.

3. 옷차림은 올바르고 단정해야 하며, 기괴망측한 옷차림은 금한다.

4. 어떤 구실로도 형제자매들에게서 돈을 빌려서는 안 되며,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거나 써서는 안 된다.

5. 이성과 교제할 때는 경계가 있어야 하며, 품행은 단정하고 정직해야 한다.

6. 남과 논쟁해서는 안 되며, 인내성 있게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7. 위생을 중요시하되, 현실 조건에 근거해야 한다.

8. 남과 정상적으로 왕래하면서 지내고, 사람을 이해해주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

9. 남이 곤란에 처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하며, 타인의 물건을 토색하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

10. 남의 시중을 받지 말아야 하고, 혼자서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수고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이상 10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인성 생활 방면에서 최소한 준수해야 할 바입니다. 만일 누가 범한다면 인격이 비천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의 규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자주 범한다면 꼭 버림받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역대 성도들의 우수한 품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총계하면 10가지입니다. 사람이 만일 항상 훈련하고 지킨다면 꼭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이고 사람에 대하여 아주 유익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의 품위에 맞는 10가지 원칙:

1. 이른 아침에 영적 수양을 하는데, 30분 정도 하나님 말씀을 기도하며 읽는다.

2. 매일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는데, 진리를 더 정확하게 실행하는 데에 이롭다.

3.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반드시 교통이 있어야 하고,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4. 낙관적 생활 태도가 있고, 항상 노래하고 찬미하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5.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6. 마음에 지혜를 갖고, 험악하고 분쟁이 많은 곳을 멀리한다.

7. 다른 사람과 논쟁하지 않고, 진리를 교통할 줄 알며,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8. 기꺼이 전력을 다해 남을 도와주고 남의 근심을 덜어주며 하나님을 믿고 진입하는 데의 애로를 해결해주기를 원한다.

9. 남에게 순복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을 통제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지 않고 사람에게 범사에 유익을 얻게 한다.

10.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으로 범사에 주권 잡게 하고 만족을 얻게 한다.

이상의 이 10가지 인성 생활 원칙과 성도의 품위에 맞는 10가지 원칙은 다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닫기만 하면 실행해 낼 수 있습니다. 가끔 과오가 있을지라도 해결하기 쉽습니다. 인성이 너무 부도덕한 극소수의 사람은 우리가 말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심오한 진리는 사람이 닿지 못하지만 사람이 갖추어야 할 정상 인성 상식은 반드시 깨달아야 되지 않을까요? 이 몇 가지마저도 해낼 수 없다면 너무나도 사람 모양이 없으며,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말고 좀 자신을 아끼고 자신을 존중해야 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을 하여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잠시 목적을 달성하고 육체를 만족시키면 견디기 어려운 영원한 고통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곧 사람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징벌받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만일 상을 받지 못하고 반대로 징벌을 받는다면 세상에서 살아갈 면목도 없습니다. 당신 생각엔 이렇지 않습니까?』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양>에서 발췌

 

『정상 인성은 주로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고 인격이 있고 존엄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양심과 이지에는 또한 사람에 대하여 포용이 있는 것, 사람에 대하여 인내가 있는 것, 사람에 대하여 성실해야 하는 것,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지혜가 있는 것, 형제자매들에 대하여 진실한 사랑이 있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 5가지 조목은 정상 인성에 반드시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조목,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포용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결점이 있든지 우리가 정확히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척해서는 안 되고 타격을 주어서도 안 되며,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바로 허용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결점이 있고 패괴 유로가 있음을 보았을 때, 지금은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하시는 기간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선민들에게 패괴 유로가 있는 것이 정상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 밖에 또 자신의 패괴를 좀 본다면, 다른 사람보다 적게 유로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패괴 유로를 어떻게 대했으면 다른 사람의 패괴 유로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고, 사람을 포용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없다면 당신의 이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 밖에 당신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도 증명합니다. 하나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지금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직도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하시는 기간에 있고 아직 온전케 되지 못하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패괴 유로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모두 정상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있고, 모두 정상적으로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있고, 모두 진리에 진입하는 기간에 있으며, 아직 완전히 진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을 때에야,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것을 인식한다면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지가 있으면 남을 대하는 데서도 이지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만약 이지가 없다면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이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포용 방면입니다.

둘째 조목은 인내입니다. 포용만 있어도 안 되고, 인내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당신이 단지 포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해도, 극소수의 형제자매들이 한 일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고 당신을 화나게 할 수 있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정황에서 사람의 패괴 성정이 발작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모두 맞서기 좋아하고 아주 이기적이며, 모두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좋아하고 모두 허영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느 누가 말한 것이 당신을 건드렸거나 어떤 일을 한 것이 당신을 거슬렀다고 느껴진다면 마땅히 인내해야 합니다. 그럼 어떤 것이 인내하는 것입니까? 인내도 역시 이지(理智) 이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이지가 있어야만 인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인내합니까?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인내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누가 말하든지 간에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이런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의 말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어. 그의 이 말이 내 허물을 들춰내는 것 같고 날 겨냥하여 말한 것 같아. 만약 날 겨냥하여 말한 거라면 무슨 뜻일까? 날 해치고 있는 걸까? 날 원수처럼 여기는 걸까? 내가 미워서 그럴까? 내게 보복하려는 걸까? 난 그의 노여움도 산 적이 없는데, 그럼 이 몇 가지 문제는 다 아니야.’ 다 아닌 이상,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사람을 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당신을 원수처럼 여기고자 하는 뜻도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 말을 할 때는 다만 정상 사람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에 따라 말했을 뿐, 단 어느 한 사람만 겨냥하여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진리를 나누고 인식을 나누고 사람의 패괴를 폭로하거나 자신의 패괴 정형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 절대 의식적으로 어느 한 사람을 겨냥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먼저 이해해 주면, 후에 당신의 노여움이 사라질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물을 것입니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의식적으로 나를 겨냥한 것이고 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가?” 당신은 이렇게 인내해야 합니다. ‘그가 의식적으로 나를 공격할지라도 나는 인내해야 해. 그가 형제자매이지 내 원수가 아니고 더욱이 마귀 사탄도 아니니까. 형제자매들이 패괴 유로가 있음을 피하기 어렵고 마음에 얼마의 속셈이 있음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정상이니, 이해하며 용서하고 인내해야 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 후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지금 어떤 사람이 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는데, 저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저는 자꾸 화를 내고 싶고 자꾸 그 사람을 공격하고 싶은데, 이는 정말 패괴 유로입니다. 이전에는 그래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랑이 있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 말을 하여 저의 마음을 찌르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반격하고 싶고 보복하고 싶은데, 어디 사랑이 있습니까? 이는 다 미움이 아닙니까? 저는 마음속에 아직도 미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것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저를 보호하사 저의 본성이 발작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는 당신께 순복하길 원하고 당신의 사랑 속에서 살길 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에 대하여 너무 많이 거역 대적하였어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인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인내와 사랑으로써 이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얼마나 많은 굴욕을 당하고 얼마나 많은 비방을 당해야 하시는지! 그리스도도 인내하실 수 있는데, 우리의 이 정도 인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내와 비하면 차이가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기도하기만 하면 자신이 너무나 패괴되고 너무나 미소하고 너무나 분량이 없음을 느낍니다. 이때는 인내할 수 있고 화가 없어지고 노기가 가라앉습니다. 이러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셋째 조목, 사람에 대하여 성실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하여 성실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도와주든 아니면 형제자매들을 돌보든 아니면 진리를 교통하든 다 마음속의 말을 해하지, 거짓으로 하지 말고 가면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밖에, 일을 다 하기 전에는 말을 꺼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줘야 하고, 우리가 어떤 본분을 해야 하면 그 본분을 착실하게 하며, 거짓으로 하지 말고 가식으로 하지 마세요. …물론,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 있어 극소수의 사람에 대해서는 좀 지혜를 써야 합니다. 당신이 보건대 이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너무 깊이 패괴되고, 그를 꿰뚫어 볼 수도 없고 그가 무슨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면, 좀 지혜를 쓰고 무엇이나 다 그와 말하지 마세요. 성실한 사람이 됨에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은 함부로 하지 말고, 해야 할 말만 하세요. 또 하나, 성실한 사람이 됨에는 말할 때 이지가 있어야 하고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제가 오늘 당신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겠어요. 제 모든 일을 다 알려 드릴게요.”라고 말하지 마세요. 이것이 어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남이 “오늘 전 일해요. 별일 없으면 저 먼저 가볼게요.”라고 말하는 데도, 그가 “저기, 잠깐 기다려 주세요.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우리 얘기 좀 합시다.”라고 말합니다. 상대방이 “저는 지금 들을 시간 없어요. 빨리 가서 일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데도, 그가 “안 돼요. 당신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돼야 한다니까. 제가 이전에는 당신에게 어떠어떠했지만 오늘은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말합니다. 이러면 바보짓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총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총명하고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기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정상적이어야 하고 이지가 있어야 합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이지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성실해야 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실한 사람이 됨에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에 대하여 성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람 앞에서만 성실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불성실하고 여전히 기만할 수 있다면 이것은 골칫거리가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면 사람 앞에서도 자연히 성실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해낼 수 없는 것을 사람 앞에서는 더욱더 해낼 수 없습니다. 어떤 방면의 진리에 진입하든, 어떤 방면의 긍정적 사물이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효과에 달하게 되면 사람 앞에서도 자연히 살아냄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애쓰면서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자유자재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마세요. 이러면 안 됩니다. 주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검증하시고 하나님이 사람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 그쪽에서 통과될 수 있다면 정말 실제가 있지만 하나님 그쪽에서 통과될 수 없다면 실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입니다.

넷째 조목,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지혜를 쓸 필요가 있나요?”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혜를 쓰면 형제자매들에게 더욱 유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지혜를 쓰면 간사한 꾀를 부리는 게 아닌가요?” 지혜는 간사한 것이 아니라 간사한 것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지혜를 쓰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분량이 작을 때에 얼마의 방식을 강구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밖에 분량이 작은 사람, 특히 진리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패괴 유로가 좀 있고 아직도 패괴 성정이 좀 있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할 말 못할 말 다해 버리면, 어떤 때는 남에게 약점을 잡히기 쉽고, 남에게 이용 당하기 쉬운데, 이것도 좋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좀 방비해야 하고 방식을 좀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방비한다는 것은 돕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집의 일부 중요한 일은 그에게 미리 말하지 말고 진리만 교통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생명상의 영 안의 도움이 필요하고, 진리상의 공급이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하나님 집의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려 하고 인솔자와 일꾼들의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이런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그에게 말하면 그가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기 쉬우니, 하나님 집의 사역에 영향을 끼칩니다. 다시 말해, 그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과 그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면 알지 못하게 하며, 그가 알아야 할 것이면 최선을 다해 알게 하고 확실하게 남김없이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그가 알아야 할 것입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진리를 장비해야 하는지, 어떤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떤 본분을 하는 것이 적합한지, 어떻게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어떻게 교회 생활을 지내는지, 이런 것은 다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하나님 집의 법칙과 원칙, 교회의 사역을 함부로 이방인들에게 말해서는 안 되고, 형제자매들의 정황도 이방인들에게 말해서는 안 되며, 믿지 않는 집식구들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지혜를 쓰는 데에 준수해야 할 원칙입니다. 어느 인솔자가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사는지 이런 것과 같은 것을 말하지 마세요. 말하면 언젠가는 이방인들의 귀에 전해질지도 모릅니다. 또 일부 간첩 노릇을 하는 나쁜 놈들 그쪽까지 전해지면 시끄럽게 됩니다. 이런 일에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것은 아주 필요한 것이라 합니다. 그 밖에, 당신이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을 때, 일부 특별한 사적인 일은 함부로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형제자매들의 분량을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죄다 말해 버린 후에는 그가 경건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당신의 이 일을 장난으로 여겨 퍼뜨리면 시끄럽게 되고, 당신의 인격에 손상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는 데에도 지혜를 써야 합니다. 이것은 정상 인성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넷째 조목의 표준, 즉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조목,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에 대하여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하고, 참된 사랑을 좀 말하고 참된 도움이 좀 있어야 하며, 봉헌 정신이 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보세요. 우리는 특별히 이런 사람과 많이 교통해야 하고 그에게 많이 공급해야 합니다. 그가 새 신자인지 아니면 몇 년 믿은 자인지를 상관하지 마세요. 교회 생활에 이런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즉,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하여 특별 대우를 해야 하고, 많이 교통하고 많이 공급하고 많이 양육해야 하며, 되도록 빨리 그들을 돌보아 그들의 생명이 최대한 빨리 자라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한동안의 양육을 거쳐, 만약 그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면, 그에게 너무 많이 공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최대의 노력으로 도와주었고, 책임을 완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사역의 중점을 어떤 사람들 몸에 놓아야 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온전케 하실까요? 성령이 그렇게 하시지 않는데 사람이 뭘 괜히 합니까?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자주 잘난 척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우매 무지함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들을 많이 돌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대상이고, 하나님이 예정 선택하신 대상입니다. 우리가 만약 항상 이 사람들과 함께 동심합의(同心合意)하여 진리를 교통하며 서로 돌보고 공급한다면 최종에는 다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신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 두고 이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 동심합의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데에 점차적으로 도달해야 합니다. 이러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구원받고 당신도 구원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

이상에서 우리는 정상 인성에 갖추어야 할 5가지 방면을 교통하였습니다. 이 5가지 방면을 만약 다 갖추었다면, 당신은 형제자매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고, 교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을 수 있으며, 해야 할 본분을 잘할 수 있습니다.』

<설교 교통 (1)ㆍ어떻게 교회 생활을 이루는가와 교회 생활을 이루는 의의>에서 발췌

 

『성정 변화의 넷째 방면의 표현은 바로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고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줄 알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고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면, 본분을 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마음씨가 착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거짓말이 없고 기만이 없으며 흉계는 더욱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영원히 위험이 있을 리가 없고 손해도 입을 리가 없습니다. …생명 성정이 변화된 후에는 마음씨가 착한 데에 도달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특히 비교적 좋은 사람에 대하여 은총을 베풀 수 있는데, 첫째로 당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로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며 셋째로 당신에게 피해를 줄 마음은 더욱 없을 것입니다. 이것만은 당신이 영원히 안심해도 됩니다. 그 밖에 당신이 설사 어떤 일에서 그에게 손해를 입혔다 해도, 그는 용서하고 당신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을 관용하고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으며, 또 사랑으로 당신을 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을 만난다면,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그의 마음씨가 착하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사랑이 있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설령 당신이 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미안한 일을 하였을지라도 그는 당신을 포용하고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정상 인성이 있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양심적이고 이지적이며, 진리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을 대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순복이 있고 사랑이 있고 진실한 경배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생명 성정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현재 사람 안에 악독한 성분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 어떤 표현들이 있습니까? 누가 눈에 거슬리면 논단하고 얕잡아 보는데, 이것은 악독한 것이 아닙니까? 그 밖에, 다른 사람이 패괴를 좀 유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사람처럼 여기지 않고 마귀로 여겨 대하며 그 사람을 정확히 대할 수 없는데, 이것은 악독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누가 그에게 미안한 일을 한 가지 하였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말, 예컨대 그를 논단하는 말과 의심하는 말을 좀 하여 그의 노여움을 샀다면, 그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날카롭게 맞서는데, 이것은 악독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사람 간에 함께 지낼 때 언제나 남의 이득을 차지하기 좋아하고, 언제나 남을 공짜로 부려먹으면서 자기의 일을 봐달라고 하고 자기는 다른 사람을 도와준 적이 없는데, 이것은 악독한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은 다 악독한 표현입니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은 마음속에 악독한 것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빚져도 괜찮습니다. 그는 당신과 따지지 않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빚진다는 건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그는 당신에게 빚질 리가 없습니다. 그 밖에, 당신이 그의 노여움을 사도 괜찮지만 그는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고 당신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은 더욱 싫어합니다. 이것이 마음씨가 착한 것이 아닙니까? 누가 그에게 불리한 일을 하였다 해도 그는 입장을 바꾸어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을 양해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마음씨가 착한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전에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지금 하나님을 믿고서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는 더욱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대하고 공평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마음씨가 착한 사람에 속합니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사람에 대하여 포용이 있고 긍휼이 있고 용서가 있고 인내가 있으며 더욱이 사랑도 있고 동정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사람과 접촉하기 좋아하고 모두 이러한 친구를 사귀기 좋아합니다.』

<설교 교통 (4)ㆍ성정 변화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및 성정 변화의 표현>에서 발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게 된 후에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냅니다. 이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두 마디 말로 개괄하면, 하나는 진리가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인데,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성실한 사람은 안에 진리가 있으므로 틀림없이 더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을 것이고, 사탄도 그를 미혹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꿰뚫어 보았고, 이 세상의 사악함과 흑암을 꿰뚫어 보았으며, 이 패괴된 인류의 본성과 실질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며, 그의 생활은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간증으로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진리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으며, 사람 앞에서는 인격이 있고 존엄성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피조물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여 창조주를 만족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 일면은 바로 세상에 대하여 꿰뚫어 볼 수 있고 사탄에 대하여 꿰뚫어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에 대하여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고, 사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고, 더욱이 이 패괴된 인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면 생활 속의 많은 일들에서도 틀림없이 원칙이 있고 진리가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갖춘 사람은 몇 가지 방면의 표현이 있습니다. 첫째, 진리와 관련된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찾고 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고, 과감하게 진리와 원칙을 견지하고 사람에게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피조물의 위치에서 본분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시종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 면입니다. 인성이 있는 면이라면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줄 알고, 피조물의 위치에서 충성스레 본분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본분을 힘이 닿는 데까지 잘할 수 있으며, 또한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있고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정상적으로 지낼 수 있고 잘 어울릴 수 있으며, 말할 때는 성실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성이 있는 면입니다. 이 두 방면의 표현이 갖추어진 사람은 곧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인성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비록 높거나 크지 않고 무슨 지식이나 견식도 없지만 진리를 갖춘 것으로 인하여 정상 인성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정상 인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겉으로 보면, 출중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아 아주 보통이고 아주 정상적인 듯하며 사람이 보기에 하잘것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리가 없는 사람은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오직 진리를 갖춘 사람만이 그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최종에는 이 사람이 남다르고 그의 안에 진리가 있고 원칙이 있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너무나도 지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그의 정상 인성은 단순하고 성실하고 마음을 터놓는 것이므로, 사람들과 교제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누가 이러한 사람과 교제하면 마음속으로 그가 진짜 착한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착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조금의 악의도 없고 조금의 악행도 없습니다. 당신이 그와 어떻게 함께 지내든지, 설사 그가 당신에 대하여 지혜 있게, 원칙 있게 표현할지라도 영원히 당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당신을 기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착한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설교 교통 (3)ㆍ구원받는 데의 4가지 표준과 구원받는 사람의 진실한 정형>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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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③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④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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