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번의 시련

중신( 忠心) 중국 지린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내려 줄 때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를 믿음은 내가 많은 은혜를 주고,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전에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게 사실이라고 말만 했지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었어요. 전 그동안 신앙 생활하면서 많은 걸 내려놓고 헌신하구 고난도 많이 받았으니까 시련이 와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질병의 시련이 임하니까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죠.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믿은 속셈이 다 드러나게 됐어요. 그제야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인정하게 됐고, 제 신앙관도 조금 바뀌게 됐어요.

그때가 2018년 7월쯤이었어요. 왼쪽 가슴에 작은 덩어리가 잡히는 거에요. 첨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소염제만 먹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더 심해지는 거에요. 식은 땀이 나고 기운도 없고, 그 부위가 너무 아팠죠. 순간 내가 큰 병인가 걱정을 하면서도 별거 아닐 거라면서 그냥 넘겨버렸어요. 하나님도 믿고 교회에서 본분으로 항상 바쁘게 보내니까 절 지켜주실 거라고 믿었죠. 그러다 어느 날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깼어요. 가슴에서 고름 같은 게 나오고 심각했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같이 병원에 갔어요.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글쎄 유방암이라는 거에요. 그걸 듣고 가슴이 철렁했어요. ‘어떻게 유방암이지? 난 아직 30대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어요. 그러면서두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아닐 거야.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 리 없어. 하나님도 믿고, 그동안 헌신하고 본분도 잘했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오진한 걸 거야.’ 전 그게 사실이 아니길 바랬어요.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 나요. 제가 넋나간 것처럼 있으니까 남편이 위로해주면서 여긴 작아서 의사들도 혹시 오진할 수도 있다구, 큰 병원 가서 다시 검사 받자더라구요. 남편이 그런 얘길 하니까, 조금 실낱같은 희망이 느껴졌죠. 그런데 나중에 큰 병원에서 검사했어도 유방암이었어요. 의사는 암 중후기라면서, 약물치료랑 수술을 받아야 한댔죠. 안 그럼 위험하다고요. 그 얘기에 머리 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내려앉았어요. 그리고 암치료 하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치료받다 도중에 죽으면 가족들한테 빚만 남기고 갈 텐데, 그 뒤 걱정부터 들었죠. 정말 무기력하고 절망감이 들었어요.

처음 항암치료를 받는데 온몸이 다 쑤시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정신이 혼미하고 그랬어요. 며칠 후에야 약 기운이 사라지고, 좀 기운을 차렸어요. ‘전 그동안 많은 걸 내려놓고 헌신도 했었고 예배 한 번 안 빠지고 어려운 상황에도 본분을 다하고, 형제자매들한테 어려움 있으면 먼저 가서 도와주곤 했는데, 그걸 봐서도 하나님이 절 지켜주셔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앞으로 아무 본분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하나님이 절 버리신 것 같았죠. 항암 치료를 5번이나 더 받고 수술도 받아야 하는데, 견딜 수 있나 싶었어요. 몸이 고생하는 건 둘째 치고 혹시 죽으면, 그동안 믿은 게 의미 없어지잖아요. 그 생각을 하면 계속 눈물이 났고 한동안 정말 힘들게 지냈어요. 말씀을 봐도 안 들어오고 기도도 싫어지구, 영적으로 어둠에 빠져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어요.

하루는, 이 자매님이 병문안을 왔는데, 다정하게 몸 상태도 물어보고 또 고통스러워하는 절 보면서 교제를 해줬어요. 이렇게 병이 생긴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구, 시련이 온 거라면서 이럴수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한댔어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깨우쳐 주신다구요. 그때 ‘시련’이란 말이 마음에 와닿았으면서 하나님이 이 병을 주신 건 날 버리시는 게 아니라, 시련을 주셨단 걸 깨달았죠. 자매님이 돌아가고, 전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죠. ‘하나님, 병이 난 뒤로 당신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자매님의 얘기를 통해 제게 시련을 주신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알 수 있게 깨우쳐 주십시오.’

그 뒤로도 매일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어느 날, 이런 말씀을 보게 됐어요. 『시련에 직면하는 순간, 사랑이 사라지고 믿음도 사라지고 기도가 부족해지며, 찬양도 잘 나오지 않는데, 어느새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다양한 환경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루며 또 다양한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을 책망하는 한편 드러내기도 하고 폭로하기도 하면서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을 모조리 파헤치고 밝힌다. 수많은 내적 상태를 폭로함으로써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를 통해, 또 책망, 연단, 형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이 매우 실제적임을 알게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좀 알게 됐어요. 말세에 사람을 온전케 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또 심판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자신의 사탄 성품을 깨닫고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서, 패괴 성품이 깨끗게 되고 변화되는 거였죠. 하나님이 이 병을 허락하신 건 절 버리거나 일부러 상처주시려는 게 아니라, 절 변화시키려는 거였죠. 그러니 하나님을 오해하고 의기소침할 게 아니라 순종하고, 그 상황에서 진리를 구하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거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까 전처럼 답답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고,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어요.

기도를 마치고 말씀이 떠오르는 거에요. “너는 편하게 살기만 추구하며 너의 집이 무탈하고, 바람도 너를 피해 가고, 모래도 너를 피해 가길 바라며 …” 저는 얼른 책을 가져와 이 말씀을 찾아 봤죠.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 어려움도 환난도 고통도 전혀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너는 이런 것만 추구한다. 너는 편하게 살기만 추구하며 너의 집이 무탈하고, 바람도 너를 피해 가고, 모래도 너를 피해 가길 바라며 홍수가 나도 너의 밭을 피해 가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란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고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은 복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을 정확하게 짚어주셨어요. 그동안 저를 돌아보면 가족이 건강하고 탈없이 다 순조로울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본분에 적극적으로 임했어요. 근데 암에 걸리니까 하나님이 절 지켜주지 않으셨다고 오해하고 원망했어요. 또 그간의 헌신을 핑계로 하나님과 따졌고, 제가 헌신해 온 걸 후회하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죠. 이런 연단을 통해 절 보니까 제가 본분하고 헌신했던 목적은 다 진리를 추구하거나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평안하고 복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고 있었어요. 전 제가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 금세에 여러 배를 내세에 영생을 받으려고 했죠. 근데 암에 걸려서 복은커녕 죽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했어요. 정말 인성이 없었죠. 그동안 전 하나님께 정말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께 많은 진리를 공급받았었어요. 그렇게 많은 걸 주셨는데, 저는 그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없고, 병이 생기니 순종하지도 않고 오히려 원망했어요.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었던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이 병을 허락하신 건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었던 제 마음과 잘못된 추구 관점을 깨끗하게 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에 이르라고 하신 거였어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니까 정말 후회되고 죄스러웠어요. 그래서 조용히 다짐했죠. 이 병이 낫든 안 낫든, 이제 하나님께 무지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생사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요. 그러니까 마음도 불안하지 않고 평온해졌어요. 더 이상 불안하거나 괴롭지 않았고 차분하게 말씀도 보고 기도도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순종하게 되니까 다시 항암치료 받는 게 전처럼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조금 울렁거리긴 했는데, 다 괜찮았어요. 다른 환자들도 놀라워하면서 부러워했죠. 전 그게 다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라는 걸 알았어요.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치료를 몇 번 하니까, 달걀만 했던 종양이 좀 작아졌어요. 그렇게 아프지 않았고 진물도 나오지 않았죠. 의사도 회복이 빠르다면서 만약 이대로만 간다면 6주 치료만 끝내고 수술은 안해도 된댔어요. 그 얘길 들으니까 너무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그리고 더 믿음이 생기면서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면 어쩌면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았어요.

3월 달에,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긴장되기도 하고 기대도 됐어요. 치료가 끝나고, 의사가 그랬죠. 그래도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요. 수술하고 2주간 약물 치료랑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된다고요. 그 소리에 심장이 철렁하면서 머리가 백지장이 됐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반성할 만큼 했고, 인식할 만큼 다 했는데 왜 상태가 좋아지지 않지? 수술받으면 몸도 많이 약해질 텐데 약물 치료받고 방사선까지 받으면 정말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러니 더 씁쓸해지면서 온몸의 힘이 빠지고, 서운함에 하염없이 눈물만 났어요. 수술받은 날 밤, 마취가 풀리니까, 수술 자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고 숨도 크게 못 쉬겠는 거에요. 그니까 서운하고 억울해지면서 다시 하나님이 원망됐어요. 고통이 너무 크다고 언제까지 이 고생해야 하냐고요.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보게 된 말씀이 있어요.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며, 또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질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하여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한다. 이로써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연단 사역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일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무익한 일도 하지 않는다. 연단하는 것은 사람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멸하여 지옥에 넣으려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 하나님 연단 사역의 목적> 중에서) 말씀을 보고 정말 크게 와닿았고, 느끼는 게 많았어요. 이런 연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제가 진정 제 자신을 알기를 바라셨던 거고, 진리를 구해서 패괴 성품이 변화되길 바라신 거에요. 전에도 하나님은 복을 위해 믿는 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전 그런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어요. 마음 깊은 곳엔 하나님께 바라는 게 많았죠. 제가 반성도 했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았으니까 이 병을 없애주시길 바랬던 거에요. 그런데 이 반성에는 제 욕심과 불순물이 묻어 있었고,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욕망을 포장했을 뿐이었죠. 그건 정말 회개한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절 감찰하시고 병으로 다 드러내서 제가 더 깊이 반성하고 진정 회개하길 바라셨어요. 이건 하나님의 사랑이었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제 당신의 뜻을 알았어요. 제 모든 선택과 요구를 내려놓고, 당신이 예비하신 상황에서 진리를 구하겠습니다. 절 이끌어 주세요.’

며칠 후에, 이런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을 믿는 초심에 자기 목적과 야심과 저의를 품지 않은 자가 있더냐? 일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이 존재함을 보았어도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 거래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서 뭘 얻어 내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끝까지 하나님과 거래를 하며 계속 하나님께 손 내밀고 심지어는 더 심해져 욕심이 끝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면서 하나님과 논쟁을 벌인다. 심지어 어떤 이는 시련이 임하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늘 나약해지고 태만해지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하나님을 믿어서부터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고 보살펴 주고 공급해 주는 것은 하나님이 해야 할 책임이라고 여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가 ‘하나님을 믿는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이기도 하다. 사람의 본성과 본질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경배’와 전혀 관련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는 생각이 없고 그래야 한다는 것도 모른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이 본질이 무엇일까? 바로 마음이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것이다. 또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고 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고 경배를 받지 못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말씀을 보면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하나님이 제 모습을 그대로 말씀하신 거에요. 하나님을 오래 믿어 왔지만 계속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거래했어요. 전 하나님을 믿는 데다 교회에서 본분도 하고 헌신도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절 탈없이 잘 지켜주셔야 된다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암에 걸렸을 때 불평불만을 토했던 거고, 그동안 헌신했던 걸로 하나님과 따졌던 거에요. 병이 좀 나아졌을 땐 감사하다고 했지만 속으론 더 많은 걸 바랬어요. 제가 더 고통을 받지 않게 하나님께서 완전히 낫게 해주시길 바랬죠. 하지만 제 사치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악한 본성이 다시 나왔고, 하나님께 따지면서 원망했어요. 제 태도는 하나님 말씀에 고스란히 나와 있었죠.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말씀을 보고 마음이 찔렸어요. 전 여태까지 하나님을 저의 신으로 경배하거나 순종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사나 피난처로만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이용해 이생의 평안과 훗날의 복을 받는 목적을 이루려고 했어요. 저의 믿음은 그냥 적나라한 거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을 이용해 은혜와 복을 짜내고 있었죠. 이건 하나님을 속이고 대적한 거잖아요. 전 정말 이기적이고 간사했고 인성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사탄 성품만 가득했어요.

그 뒤에 이런 말씀을 보게 됐어요.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뭘 요구하지도 손 내밀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을 칭송함은 복을 받거나 화를 입은 것 때문이 아니라,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권능 때문이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변함없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이며,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권능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생각을 듣고 모든 행실을 보았다. 또한 그의 생각과 행실을 중히 여겼으며, 욥의 그러한 인식을 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마음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항상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욥은 하나님께 요구하는 바가 없었다. 욥이 자신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욥이 생각하는 자신의 책임이자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묵상하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잖아요. 은혜와 축복을 주실 수도 있고, 심판 형벌, 시련 연단도 주실 수 있는데, 사랑한다고 시련을 주면 안 되는 법이 없잖아요. 욥을 보면 하나님이 크게 복을 주실 때, 그는 감사하며 찬양했어도 물질적 부를 탐내진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 거두어가셨을 때,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칭송하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냐고 고백했죠. 욥은 모든 걸 하나님이 주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시든 거두어 가시든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믿었어요. 욥의 믿음에는 사적인 욕심이 섞이지 않았고, 복과 재앙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불평하지 않았고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죠. 욥의 인간성과 이성을 보고, 전 정말 부끄러웠어요. 하나님이 제게 이 생명과 모든 것을 주셨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프니까 원망만 하고, 정말 양심이란 게 없었죠. 전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제 자리를 몰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몰랐어오. 그저 제 생각과 거래하는 관점으로 믿었죠. 그래서 시련이 오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했죠. 그러고도 하나님께 축복과 은혜를 원하고, 천국을 바랬으니 정말 낯두꺼운 거죠. 이렇게 패역하고 패괴된 절 보니까 지금 죽는대도 하나님의 공의란 생각이 들었죠. 전 욥의 경험에서 실천의 길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전 이 병이 얼마나 오래가든, 회복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 순종하겠단 마음을 가졌죠. 그게 피조물인 제가 가져야 할 이성이라더구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요.

어느새 방사선 치료일이 됐어요. 다른 환자들 말론 방사선 치료가 무리가 많이 간다는 거에요. 심지어 어떤 때는 화상도 입는다면서 받고 나면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밥도 못먹는댔죠. 그 얘길 들었을 때, 전 그러지 않게 해 주길 하나님께 바라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옳지 않은 마음이란 걸 깨닫고서 기도했죠. 그리고 하나님 말씀 찬송 가사가 떠올랐어요. 『너는 지음 받은 사람인 이상 너를 지은 창조주께 순종해야 한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고, 너의 운명을 지배할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이상 성결해지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 믿는 자가 추구해야 할 것> 중에서) 저에게 이런 상황이 온 건 하나님이 검증하시는 건데 억지를 부리면서 하나님을 아프게 할 게 아니라, 순종하는 게 맞는 거죠. 이렇게 순종하고 나니까 매일 방사선 치료 때문에 몸 어딘가 불편하긴 해도, 그래두 다른 환자들 말처럼 심하진 않더라구요. 하나님께서 절 지켜주신 거죠.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몸 회복도 빨랐고, 정신적으로도 좋았어요. 형제자매들도 전혀 암환자같지 않다고 했죠.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전 다시 본분을 시작했어요. 이번 경험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자랐고, 본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됐어요.

어느새 2년이 지났는데 그 열달 동안 병으로 겪은 시련을 생각하면,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 같아요. 몸은 좀 고생했지만 복을 바랐던 제 마음과 잘못 추구한 것에 대해 좀 알게 됐고,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 하죠. 이게 피조물이 가져야 할 이성이죠. 이런 것들은 편안하게 살았다면 얻지 못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생명의 보배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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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李潔) 미국 사이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든,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을 통해 힘쓰게 하든, 사람에게 어떤 어조로 말씀하든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너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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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성 양리 저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줄곧 가족을 부양해 왔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지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 저는 점차 우울해졌고, 말수도 적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헛되이 시간만...

12.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증거를 만들어 내다

산둥성 샤오민 빈곤하고 낙후한 농촌에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는 하루빨리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일했지요. 그러다 과로로 몸져눕게 되었고, 건강했던 몸은 졸지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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