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통한 검증

2022.12.9

아프리카 주니어

어릴 때, 전 주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뭐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했는데, 주변에서 예수님 믿어 저도 믿었죠. 그러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많아지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 하나님을 믿어야 되지? 하나님은 어떻게 알 수 있지? 이 사악하고 어두운 세상에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은 왜 고달프게 사는 거지?’ 이런 문제들이 수수께끼처럼 좀처럼 풀리질 않았어요. 다행인 건,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궁금증을 하나님 말씀에서 찾게 된 거예요.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경험해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거더라고요. 또 하나님은 말세에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으로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게도 시련을 달라고 기도했죠. 또 중국에서 태어난 분들이 부러웠어요. 저도 중국 형제자매처럼 사탄 정권의 핍박과 박해 속에서 굳게 서서 이기는 자가 되는 증거를 보이고 싶었었죠. 이런 걸 깨닫게 됐을 때 제게도 일이 닥친 거예요.

코로나 때문에 저희 회사가 망해 직장을 잃게 됐어요. 그 후에 여러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면접 보라고 연락 오는 회사가 없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졌죠. 수입은 없고 음식 살 돈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코로나 전에 전 퇴근하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나 영화를 보고 형제자매와 본분도 했었어요. 그런 걸 중시했었으니까 전 제가 잘 믿는다고 여겼죠. 그래서 제가 힘들어할 때 분명 유일하신 하나님이 절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어요. 전 하나님을 믿으니까 구하는 건 다 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셨죠. 조금 연약해지고 의문스러웠죠. ‘난 매일 말씀을 보고 기도도 하는데, 하나님은 왜 내가 힘들 때 안 도와주실까?’ 근데 한편으로는 욥이 생각나더라고요. 욥은 모든 재산을 잃었을 때도 굳게 섰잖아요. 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이 하시는 거라고 믿고, 원망하지 않았죠. 물질적인 축복을 주실 때도 감사했고, 다시 그 복을 거둬 가실 때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했어요. 욥의 믿음과 기도를 잘 생각해 보니까 제 믿음은 너무 작고 미약하고 비교가 안 되더라고요. 그치만 저도 욥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기로 했죠. 근데 바로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니까 막막해지는 거예요. 전 믿은 지 3개월 밖에 안 돼서 아는 말씀도 적은데, 핸드폰 데이터도 다 써서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거예요. 그저 기도만 했어요. ‘하나님, 제가 살고 죽는 것도 당신 손에 있습니다. 제가 죽는대도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하니까 마음이 편안했어요. 근데 바로 그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삼촌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는데, 일하러 오겠냐고 묻는 거예요. 건축 일은 좀 힘들었지만 일주일 사이에 한동안 먹고 살 돈은 벌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 감사했죠. 그제야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됐어요. ‘하나님께 직장을 구하는 기도를 할 땐 응답이 없었는데, 왜 순종하겠다는 기도에는 도움을 주셨을까?’

어느 날 말씀을 보면서 여기에 대해 좀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복을 바라는 우리 속셈과 패괴 성품을 다 폭로하셨네요.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이 위로받기 위해 믿죠. 안 좋은 일은 겪지 않으려 하고, 원하는 걸 하나님이 채워 주시길 바랄 뿐이지, 자기가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는지는 관심이 없어요. 그저 중요한 건 하나님께 순종하고 흡족게 해 드리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하나님이 채워 주시냐 하는 거죠. 전에 주님을 믿을 땐, 목사님이 항상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라고 했었어요. 근데 그러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했었죠. 하나님 말씀에 있잖아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이 진리의 말씀에 제 자신을 비춰 봤어요. 보니까 저도 복받기 위해 믿고 있었죠. 그게 제 진짜 속셈이었던 거예요. 저는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그를 받아들인 자에게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으니 당연히 복을 받을 거고 생활이 나아질 거라고 믿었죠. 근데 현실은 아니었어요. 저는 더 심한 생활고를 겪게 됐고, 그러니 연약해지고 소극적이 됐죠. 수입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데이터가 없어 예배도 못 드리는데, 어떻게 믿겠어요? 하나님이 저를 보시지 않는 것 같아 원망했죠. 또 계속 직장을 찾고, 기도도 했는데, 응답이 없고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니 정말 하나님이 맞을까 의심도 했어요. 이 말씀과 같았어요.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이 말씀을 보는데, 제 생각들이 정말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복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건 잘못됐단 걸 알게 됐죠. 그건 하나님을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보고 저를 수혜자로만 생각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일자리를 못 구할 때, 하나님이 외면하신다고 원망했죠. 정말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은 참 어리석었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예배에서 들은 건 다 이랬어요.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다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기도만 하면 다 들어주실 거다 종교계와 부모, 주변사람들한테서 들은 말이 저한테 영향이 컸죠.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고난받지 않고 복만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엔 이런 생각이 잘못된 신앙관점이란 걸 몰랐고, 사탄 성품이란 것도 몰랐어요. 근데 하나님이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 잘못됐단 걸 좀 알게 됐죠.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 믿는 게 정말 물질적 축복만을 위한 건가? 돈 있고 물질적으로 풍족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나?’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안 하셨겠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그제야 알았죠. 하나님께 물질적 축복을 구하는 건 사람의 욕심이자 패괴 성품이고 가증스러운 거죠. 그건 우리가 사탄에게 미혹돼 하나님의 신분을 모르고 창조주께서 우리 운명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게 순조로우면 감사해하고 찬송하지만 반대로 생활의 어려움이 생기거나 하나님이 우리 요구를 안 들어주시면 오해하고 원망을 해요. 아브라함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는 하나님께로 온 모든 것에 순종했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기만의 선택이 없었죠.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대로 다 하려고 했어요. 아무리 괴로워도 왜 그걸 시키시냐고, 왜 자기를 이렇게 대하시냐고 하나님께 따지지 않았어요. 반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려고 했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자긴 피조물인 걸 아니까요. 그래서 조건없이 하나님의 분부와 요구에 다 순종해 그의 믿음이 칭찬받게 된 거죠. 근데, 지금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달라요. 하나님의 뜻을 소홀히 하고 온통 물질적인 축복에만 신경 쓰고 있어요. 주님이 그러셨잖아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물질적 축복을 구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진리를 추구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게 젤 중요한 거더라고요. 하나님은 창조주시라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고,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잘 아시죠. 근데 사람은 패괴돼서 사람의 사상이 온통 욕심과 물질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기 위해 믿는 게 아니라 그저 사욕을 채우려고 믿고 있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의 사탄 본성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말씀이 딱 저를 두고 하신 거였어요. 이기적인 제 자신을 보게 됐어요. 또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환경이 임할 때는 복과 은혜만 구할 게 아니라 기도하고 순종해야 하더라고요. 근데 그 후에 또다시 같은 문제가 생긴 거예요. 전에 제가 삼촌한테서 일주일만 일하고 그만뒀는데, 집에서 본분에만 집중하다 보니 돈이 금방 떨어졌죠. 다음 끼니도 장담할 수 없고, 일자리도 찾기 어려웠어요. 제가 학교 졸업을 안 해서 구직 신청 자격이 안 됐거든요. 가진 게 없는 데다 데이터 살 돈도 없는데, 본분을 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잖아요. 이런 걸 생각하면 막막해져 조금 연약해지더라고요. 근데 그때 어머니한테 연락이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식구들이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머니까지 그렇게 고생하신다니까 괴롭고 슬펐어요. 방법이 안 보였죠. 제가 남들에 비해 겪는 고통이 많은 것 같고 제가 제일 힘든 것 같았어요. 하나님의 뜻이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매일 본분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살펴주셔야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든 상황만 생기나 싶었어요.

안 그래도 말씀 많이 보고 찬양도 많이 듣고 그랬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말씀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두들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으로 해결받아야 하며,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배치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에게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편안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람의 내면에는 늘 하나님에 대한 사치스러운 요구가 존재한다. 그는 언제나 ‘우리는 가정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니까,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를 축복하셔야 해. 또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내려 주셔야 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속에 이러한 것들을 품고 있다. … 사람이 너무 비이성적인 것이다. 스스로 진리를 실행하지는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니 말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는 하지 않는다. 또 사람이라면 마땅히 진리 추구의 길을 선택해야 하건만 그는 진리를 싫어하고 육적인 누림을 탐한다. 늘 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기를 추구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너무 높다고 원망한다. 하나님에게 언제나 그를 선대하고 그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그가 육적으로 더 누리게 해 달라고 한다. 이런 자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의 이성도, 믿음도 없다. 이는 다 사치스러운 요구가 충족되지 않아 하나님께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부 사람이 마음속으로 드러낸 것으로, 사람의 본성을 완전히 대표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이러한 것들을 벗어 버리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기 쉽고 언제 어디서나 참도를 저버릴 수 있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깨달았죠. 전 매일 가족 걱정도 안 할 정도로 본분에 전념을 했었는데, 이렇게 헌신하면 복을 주셔야 한다고 여겼던 거죠. 하나님께 많은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생활 유지할 직장만 주시길 바랐고, 직장을 찾게 되면 본분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 이게 합리적이고 지나친 게 없다고 여겼어요. 근데 말씀을 보면서 반성하니까 그런 요구와 욕심을 가졌다는 건 하나님께 순종이 없다는 거고, 제 걸 요구하고 있다는 거였죠. 그리고 또 깨달은 건 늘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또 자기 요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수 있고요. 제게 어려움이 닥친 이유를 알게 됐으니까요. 겉으로 보면 고생을 많이 하고 있고 불쌍하지만 사실은 고통의 연단을 받고 있는 거였죠. 좀 힘든 건 맞지만 하나님이 절 버리신 건 아니었어요. 그건 하나님을 믿는 제 잘못된 목적과 불순물을 알게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바로잡아 주시려는 거였어요. 되돌아봤어요. 난 정말 좋은 직장에서 돈 벌고 싶지 않았나? 데이터와 생계 걱정에 대한 요구가 없었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본분을 하고픈 바람이 없었나? 아니, 있었어요. 난 그런 걸 바라고 있었는데, 왜 하나님은 안 주셨을까? 너무 불행하거나 운이 안 좋아서? 아니요, 전 행운아였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하나님이 제게 이런 상황을 주신 건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워 믿음의 불순물을 정결케 하기 위함이었죠. 만약 제가 안일하고 편하게 하나님을 믿고 이런 힘든 상황을 겪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과 사랑엔 늘 욕심과 불순물이 섞여 있고 인정받을 수 없겠죠.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께 진실하고 충성되고 순종적이길 바라세요. 자녀의 경우 아버지가 물질적으로 채워 줄 때는 아버지를 사랑하다가 채워 주지 않으면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자기가 필요한 걸 안 주기 때문에 아버지도 아니고 존중 못 하겠다고 하면 어떤 자식이겠어요? 양심과 이성이 없는 패륜아잖아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제게 임한 상황이 바로 그랬어요. 제가 이런 상황을 겪어야 제 믿음 속의 불순물이 깨끗해질 수 있죠.

또 이 말씀을 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생명 실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를 알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존경스러움을 알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행하는 사역이 구원이요, 온전케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로 육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고, 패괴된 삶에서 하나님 말씀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육체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함으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영광이 너에게 나타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하거나 육적인 것을 위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주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는데, 그런 뒤에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초반에 봤던 말씀인데, 그때는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 못 했어요. 근데 여러 번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하나님 뜻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어요. 제가 하나님께 헌신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모든 게 충족돼야 한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었어요. 당연히 말씀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든 거두시든 다 순종하고 헌신하는 게 맞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한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죠. 베드로처럼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한다면 온전케 되는 거고요. 제가 올바른 관점을 갖고 믿을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마음속이 너무 평안했어요. 그래서 순종하겠다고 기도하면서 이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힘을 달라고 했죠.

놀랍게도 다음 날 삼촌이 돈을 주셔서 데이터와 음식을 사게 됐어요.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 후에 알바 자리도 찾았어요. 힘들긴 해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는 할 수 있게 됐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거죠. 정말 깊이 느끼게 된 건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는 게 삶 속에서 제가 배워야 할 공과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어요. 또 생활 속에 많은 문제가 생길 때 가져야 할 자세고요. 그때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네가 실생활에서 문제에 맞닥뜨릴 때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를 어떻게 느끼고 깨달아야 할까?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여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 모를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네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염원과 실제가 있음을 보일 수 있을까? 우선 너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런 후에는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 즉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사람과 일과 사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점차적으로 너에게 나타나는 것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사람과 일 가운데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을 살피고 깨닫는 것이다.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고, 사람이 행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도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얻고자 하는 성과와 맺고자 하는 결실을 아는 것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안배한 사람과 일, 그리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창조주가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어떻게 그의 생명을 사람에게 공급하며, 어떻게 진리를 사람 안에 만들어 넣는지를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 아래에서 모든 일은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간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에 순종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너희가 많은 노력을 들여 이런 태도와 소양을 갖춰야만 진정한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예전에도 이 말씀을 봤었는데, 이런 고난을 겪고 나서 다시 보니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 말씀에서 깨달았죠. 하나님 뜻을 구하고 기다리고 순종하는 건 문제가 생겼을 때 취해야 할 첫 자세였어요. 그 기다림은 가만 있는 게 아니라 기도하고 말씀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반성을 해 보는 거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진짜 상태와 진입할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구하면서 경험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실제 행사를 볼 수 있어요.

처음엔 알바가 힘들어서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한 달 정도만 하고 그 외엔 본분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근데 폰이 고장난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더 일해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살까 싶었어요. 근데 전 교회 리더라서 해야 할 사역이 많았거든요. 저한테는 본분 완수가 중요했고 그게 젤 소중했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뒀죠. 윗선 리더가 제 상황을 알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본분을 잘할 수 있게 교회에서 노트북과 데이터를 구매해 주겠다고요. 그 말에 너무 기뻤고,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어요.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잖아요. 제가 본분을 잘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신 거예요. 하나님은 절 힘들게 하신 게 아니라 제 진심과 순종을 원하셨던 거였죠. 고난 중에 하나님 사랑을 느껴 보니 예전에 생각했던 하나님의 사랑은 모호하고 실제적이지 않았어요. 이번 일을 통해서 공과를 배우게 되면서 진정으로 알게 됐어요. 어려운 상황들을 통해 저의 이기적이고 무지함을 알게 됐고, 조금씩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고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게 된 건 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어요. 또 고난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와 하나님을 대하는 바른 자세도 알게 됐어요. 예전엔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걸 주셔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께 계속 달라고 구걸해선 안 되고, 범사에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 하는 거예요.

얼마 후 또 검증을 받게 됐어요. 한 달간 일하고 월급을 받은 날인데, 글쎄 길에서 강도를 만난 거예요. 월급의 절반을 뺏겼어요. 하나님의 보호로 칼을 들고 있었지만 절 해치진 못했어요. 그 순간 하나님이 이걸 허락하신 것에도 뜻이 있겠다 싶었죠. 욥의 일이 생각났어요. 부유했던 욥은 재산과 자녀를 다 잃게 됐을 때도 무조건 순종하고 원망없이 하나님을 찬송했잖아요. 전 부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죠. 그 뺏긴 돈은 제게 필요했던 거고, 어디다 쓸지 계획도 했던 거지만 욥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기로 했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 속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테니, 그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소극적이지 않도록 절 감화하시고 이끌어 주세요.’ 기도하니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고민이나 불안감 같은 거 없이 평소처럼 본분을 했어요. 하나님의 주재를 알기 전에 비해 태도에 큰 변화가 생긴 거죠. 하나님이 저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함인 걸 알았으니까요. 하나님의 사랑도 더 깊이 알게 됐어요. 그 사랑은 물질적 축복으로만 보여지는 게 아니었어요. 물질은 그저 육을 충족시켜 줄 뿐이잖아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말씀의 심판 형벌, 시련과 연단을 통해 진리를 알고 왜 하나님을 믿는지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흡족게 해 드리는 법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게 하는 거예요. 이 말씀이 생각나더라고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이 평안하거나 물질적 축복만 받았다면,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와서 은혜의 사역을 하며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물질적 축복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은혜와 자비, 긍휼만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체험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느끼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다. 그러나 한동안 체험한 후에는 그의 은혜와 자비, 긍휼로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의 내면에 있는 패괴된 것들을 들춰내지 못하며, 사람의 패괴 성품을 벗겨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과 믿음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 사역일 뿐,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느냐? 그의 공의 성품을 통해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공의, 진노, 위엄과 심판, 저주이며,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주로 심판의 방식을 택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어요. 하나님의 말세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에요. 우리 믿음 속의 불순물, 그리고 우리의 패괴 성품은 오직 말씀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으로 정결케 될 수 있어요. 은혜를 누리는 것만으론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죠.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고, 이런 고난이 없었더라면 전 이런 걸 몰랐을 거예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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