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의 관념과 상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역에는 항상 새로운 진전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역이 생기면 그에 따라 시대에 뒤처진 낡은 사역이 있게 마련이다. 이 낡은 사역과 새로운 사역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한 단계씩 이어진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므로 낡은 것은 당연히 도태시켜야 한다. 일례로, 오랜 세월 사람의 실행과 관례적인 견해에 다년간의 경험과 교훈이 더해져 사람의 마음에는 형형색색의 관념이 생겼다. 하나님이 그의 본모습과 고유의 성품을 사람에게 전부 공개하지 않은 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전통 학설까지 더해져 사람의 관념은 더 쉽게 형성되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각종 고정 관념의 영향으로 하나님에 대한 여러 관념적 인식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이에 하나님을 섬기는 수많은 종교 인사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관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크게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원수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새롭기에 규례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다른 수준의 변화와 새로움을 낳는다. 이런 사역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의 발현이자 고유의 사역 원칙이고, 그의 경영을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사역 수단이다.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은 변화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없으며, 사탄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에는 규칙이 없는 듯하나 주기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방법은 이와 크게 다르다. 사람은 낡고 익숙한 규례와 제도를 고수할 뿐만 아니라, 낡으면 낡을수록 더 좋아한다. 아무리 두드려도 꿈적하지 않는 돌처럼 어리석은 사람의 머리로 어찌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그 많은 새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낡아 빠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백발이 성성한 하나님을 좋아할 뿐, 새로운 하나님은 싫어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의 서로 다른 ‘취향’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나아가 더 많은 갈등이 지금까지 남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6천 년 가까이 새로운 사역을 행한 오늘날, 이러한 갈등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완고하여 변하지 않은 것인지, 하나님의 행정 법령이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 관료와 그 부인들은 여전히 낡아서 곰팡이가 핀 그 옛날 책과 신문들을 붙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경영 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비록 적대적인 갈등이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런 갈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대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붙잡고 놓지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람의 ‘입장’이 아무리 굳건해도 하나님의 ‘발’은 언제나 움직이며,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스스로 패배하는 대상이며, 하나님은 모든 패장의 가장 큰 ‘원수’이자 패배했거나 패배하지 않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승자’이다. 누가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점차적으로 많은 관념이 생겨났기 때문에 사람의 관념이 꼭 하나님에게서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으며,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맞춰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사역 외의 산물을 무더기로 만들어 낸다고 해서 칭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는 사람의 고정 관념과 낡아 빠진 경건한 신앙에 극도로 반감을 품으며 그런 고정 관념이 생긴 날을 거들떠볼 마음도 없다. 하나님은 그런 관념들이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관념은 사람에게서 전염된 것으로, 그 발원지는 사람의 사고와 머리이고, 하나님이 아닌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역의 원뜻은 본래 새롭고 살아 있는 것이지 낡고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지키도록 한 것은 시대별, 단계별로 나누어진 것이지 영원한 것이나 한 번 이루어지면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죽게 하고 낡게 하는 마귀가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하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너희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한 고정 관념을 잡고 놓지 못한다면, 이는 네 머리가 트이지 않은 것이지 하나님의 사역에 일리가 없거나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뜻과 안 맞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네가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네 순종이 턱없이 부족하고, 네가 피조물로서의 면모를 조금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너를 괴롭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네가 초래한 것으로,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고통과 화근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는 너에게 고정 관념이 생기기를 원하지 않으며, 네가 시대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하길 원한다. 그러나 너는 사리 분별을 못 한 채 연구나 분석에만 매달린다. 하나님이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너의 패역한 마음이 너무 큰 것이다. 작디작은 일개 피조물이 감히 하나님이 과거에 준 것들 중 극히 일부로 하나님을 공격하다니, 이것이 패역 아니겠느냐?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아예 없으며, 자신의 그 아무 가치도 없는 썩어 문드러진 말과 글을 제멋대로 뽐낼 자격은 더더욱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곰팡이가 핀 고정 관념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더 무가치하지 않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중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판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모르기 때문이며, 또한 성령의 역사를 너무 건성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관념과 태생적인 교만, 그리고 너무도 패역한 천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감히 공개적으로 성령 역사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이야기하며, 또 성령의 새 역사가 있는 사도들을 훈계하고 이래라저래라 불손하게 말하니, 참으로 저급한 인성이요,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자들은 언젠가 성령 역사에 의해 버려지고 지옥의 불에 불살라질 대상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며 지휘할 생각까지 하는데, 이렇게 비이성적인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구하며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지, 제멋대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너의 관념과 옛 성품, 인성, 품성, 도덕 사상은 모두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밑천’이다.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품성이 악랄하며 인성이 저급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원수인 것이다. 관념에 심각하게 사로잡힌 자와 성품이 독선적인 자는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로, 이런 부류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네가 관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관념은 영원히 하나님과 적대될 것이며,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어긋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앎은 낡은 관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생기지만, 낡은 앎이 꼭 낡은 관념인 것은 아니다. 관념이란 사람이 혼자 상상하는,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 낡은 앎이 옛 시대에서도 이미 뒤처진 데다 사람이 새로운 사역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그런 앎은 관념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앎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다양한 면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 새것과 옛것을 결합할 수 있다면, 그 낡은 앎은 오히려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새 시대로 들어가는 밑바탕이 된다. … 사람은 모두 머릿속으로 자신이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을 뿐, 실제의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을 갖고 있다면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생겨난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실제적인 사역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단지 귀로만 들었을 뿐 눈으로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며, 전설과 이야기로만 들었지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에 대한 인식은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1년 믿은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 역시 관념 속에서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들어갔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모두 관념이자 떠도는 소문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관념이 정확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겼지만, 오늘날 이 사역을 마주하면서 오랫동안 지녀 온 관념을 분출하게 되었다. 지난날의 상상과 생각이 이번 사역의 장애물이 되었건만 사람은 모두 이 관념들을 내려놓기 어려워하고, 이전의 생각들을 뒤엎기도 힘들어한다. 오늘날까지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은 한 걸음씩 진행되는 이 사역에 대해 관념이 점점 심해져 성육신 하나님과 풀기 어려운 원한을 맺게 되었다. 그 원한의 근원이 바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사실’은 사람이 멋대로 펼치는 상상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람이 제멋대로 뒤집으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반면 사람은 관념과 상상 때문에 존재하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실의 정확성과 진실성은 무시한 채 한결같이 자신의 관념만 분출하고 상상의 나래만 펼친다. 이렇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오늘날의 모든 사역과 원수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한 단계는 고사하고 조금도 뒤엎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면서 그를 영원히 변치 않는 조각상인 양 완전히 성경 안에 국한하고 유한한 사역 가운데 고정해 놓는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했다는 의미이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고정화된 우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오직 메시야라고 불려야만 하고, 또 그렇게 불려야만 하나님인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조각상(생명이 없는 존재)처럼 여기면서 섬기고 경배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당시의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리하여 죄 없는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죄가 없지만, 사람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을뿐더러 기어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하여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고불변의 존재로 생각하며 성경 한 권에 기대어 하나님을 규정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경영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파악한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고 교만하며, 모두가 과장해서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하든, 내가 보기에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을 전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을 왜 늘 못마땅해할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고정 관념이 너무 많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실제 사실에 완전히 어긋나고 천편일률적이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할 때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며, 하나님이 육신을 통해 행하는 행사를 보게 된다. 그때 사람이 가지고 있던 모든 관념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러나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진심으로 순종하는 경우에는 정죄받지 않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이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있음에도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셈과 행실에 근거하여 정죄한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정죄한다면 아무도 노한 하나님의 두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대적하는 사람은 모두 그들의 불복으로 인해 징벌을 받는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근원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허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정죄받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는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여러 해 동안 체험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고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며, 아무리 오랫동안 체험해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설사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해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아주 많으며, 비록 그러한 관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지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도 못하므로 하나님의 사역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얼간이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조금도 내려놓지 못하므로 정죄받는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갓 믿기 시작할 때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가지거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나,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고 수많은 사역을 체험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진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것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비정상적인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정죄받게 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람은 모두 쓸모가 없는 사람,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공짜로 누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는 도태될 사람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관념 때문에 사람은 늘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에게 이런저런 요구와 판단, 평가 기준을 갖게 된다. 또 관념 때문에 사람은 늘 잘못된 생각과 관점으로 사물의 옳고 그름, 사람의 좋고 나쁨,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게 충성심이나 믿음이 있는지 여부를 가늠한다. 이런 잘못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관념이다. 사람의 관념은 비록 식사나 수면 등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머릿속과 마음속에 존재하며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사람을 쫓아다닌다. 만약 관념을 제때 해결하지 않는다면 관념은 수시로 너의 생각과 판단, 행동, 하나님에 대한 인식, 그리고 너와 하나님의 관계를 좌우할 것이다. 이제 명확히 알겠느냐? 관념은 아주 심각한 문제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벽이 있는 것과 같아 사람은 하나님의 진면목과 진실한 성품, 진실한 본질을 볼 수 없게 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사람이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 관념으로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어떤 내적 상태에 자주 빠지겠느냐? 사람이 관념 속에 살면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에게 어느 정도 순종한다 한들 그 역시 관념과 상상에 근거한 것이다. 관념과 상상에 근거한 것에는 사탄과 세상에 속하는 개인적인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품는 문제는 아주 심각한데, 이는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큰 문제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누구나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온갖 의심을 품는다. 하나님에 대해 여러 가지 오해를 품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모든 것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를 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겠느냐?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의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하나하나를 판단하게 된다. 사람의 이런 행위는 무엇이냐?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정죄하는 것이자 판단하고 모독하며 겨루는 것이다. 심각한 경우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하나님과 ‘결투’를 벌이려고까지 한다. 사람의 관념은 가장 심각한 경우 어느 정도에 이르겠느냐? 진실한 하나님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기도 한다. 이 정도에 이르면 자연스레 하나님을 부정하고 정죄하며 모독하고 배신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뿐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아주 끔찍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아주 끔찍한 문제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고, 자기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어 무슨 일이든 평안하고 순조롭게 풀리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은혜를 구하고 복을 받으며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가정이나 직장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이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인내하면서 좋은 모습만 보이면 하나님의 축복과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하나님에게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고, 모든 일에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다. 사람은 이 관점이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떠나지 않는 것은 모두 이런 관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이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악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으니 분명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실 거야. 일할 때마다 많이 고생했고 대가도 엄청나게 치른 데다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일하며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셔야 마땅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기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도록 말이지.’ 이것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득을 봤으니 고생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심리이다. 하지만 진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은 물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완전히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자 순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다. 여기에 깃들어져 있는 것이 거래이든, 요구이든, 아니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든, 전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고, 사람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에도 미달한다. 특히 이런 거래적 사상 관점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인데도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행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즉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가 생겨나고 또한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는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지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기까지 한다. 사람에게 어떤 관념과 오해가 생기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 어떤 일도 사람의 관념이나 뜻대로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사람의 관념이나 뜻대로 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 본질에 따라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원칙대로 대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의 일을 할 때 사람의 관념이나 상상, 사람의 기호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에서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하지 않는 점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마련한 어떤 환경이 전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도 모자라 부정하기까지 한다. 이럴 때 하나님이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람의 관념대로 하나님의 사역 방식이나 뜻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바뀌어야 하는 쪽이 어디냐? 사람이다. 사람이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진리를 구해 자신의 관념을 해결해야지, 관념으로 하나님의 행사가 옳은지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이 끝까지 관념을 포기하지 않고 고수하면 하나님에게 반발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발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냐? 평소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진리가 아닌 순전히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 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패괴 성품도 전혀 정결케 되지 않고 여전히 패괴 성품에 의지해 사는 삶에 속하니 구원을 받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너희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마음속 관념으로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너희가 생활 속에서 자주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는 관념으로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네가 가진 관념이 자연스레 튀어나오며, 그 후 너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게 따지고 하나님과 겨룬다. 이로 인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금세 변해 버린다. 처음에 너는 자신이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아주 충성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에게 일생을 바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갑자기 또 마음이 변해 본분을 이행하거나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은 것과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심지어 너를 택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를 갑자기 변하게 만드는 관념으로는 또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어떤 환경을 마련해 저에게 시련을 주시고 저를 드러내실 때,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계속 본분을 이행해 왔으니 제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이상 하나님도 저를 버려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일종의 관념이다. 너희는 이런 관념을 자주 갖지 않느냐? 하나님이 너희를 버리는 일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나님이 너희를 버리는 것이 너희를 원하지 않고 구원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역시 일종의 관념이다. 그럼 이런 관념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겠느냐? 상상에 기댄 것이겠느냐, 아니면 근거가 있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좋은 결말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네가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이 직접 너에게 말했느냐? 사람의 이런 생각은 온전히 사람 스스로 규정한 것이다. 이제 그것이 관념이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런 관념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다. 관념이라고 의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이런 관념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우선 이런 관념이 지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사탄 철학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떤 해악이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명확히 알고 나면 자연스레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살펴본 다음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조하여 관념을 해부해야 한다. 관념은 잘못된 것이고, 황당한 것이며 진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분별할 줄 안다면 기본적으로 관념을 해결한 것이다.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하지도 않는다면 관념이 왜 잘못된 것인지 철저히 분별할 수 없고 관념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설사 관념임을 알지라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너의 관념과 하나님의 요구가 서로 모순될 때, 너는 네 관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기는 해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네 관념을 고수할 것이며, 관념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 관념도 성립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 진입이 없으며 분량도 크게 부족하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신의 종착지와 결말, 본분의 조정이나 교체에 특히 민감하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일에 대해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일단 교체되어 지위가 없어지거나 혹은 하나님이 싫어한다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규정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하나님이 자신을 원하지 않고 결말도 이미 다 정해졌으니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한다. 사람이 듣기에 아주 이성적이고 염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이는 어떤 생각이냐?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자 자포자기다. 그가 자포자기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간파하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포자기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있다. 그럼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사람은 관념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주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많은 사역을 하고, 많은 노력을 쏟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고 구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포자기한다면 하나님은 무척 슬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그 사람이 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서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도 사람의 관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취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네가 자포자기하여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고 네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만약 네가 “저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최선을 다해 실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은사와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것이며, 만약 별 능력이 없다면 순종하고 따르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저는 제 본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면 계속 따르거라. 하지만 너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 기준과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할 뿐이지 하나님은 영원히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든 최종에 구원받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는 것은 실패를 한 번 경험하거나 책망과 훈계, 또는 심판과 형벌을 한 차례 겪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온전케 되기까지 수백 번의 연단을 겪었다. 끝까지 힘쓰고 살아남게 되는 사람 중에 그저 8~10번의 시련과 연단을 겪고 길 끝까지 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유대인이 유대 땅에서 쫓겨난 일에 대해 많은 사람이 관념과 의견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가장 간단한 방법을 하나 알려 줄 테니 너희의 그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는지 잘 들어 보아라. 가장 간단한 그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의 피조물이고,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고, 늘 관념이 생겨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대역무도한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반드시 창조주가 피조물을 대할 때는 기본적인 원칙이자 최고의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어떻게 대하든 전부 그의 경륜에 근거하고 그의 사역의 필요에 근거한다. 그는 누구에게 자문할 필요가 없고, 누구의 동의도 구할 필요가 없다. 그는 행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대하고 싶은 대로 대한다. 그가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대하든 모두 진리 원칙에 부합하고, 창조주가 일하는 원칙에 부합한다. 피조물은 오로지 창조주께 순종해야지, 어떠한 선택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피조물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이성이다. 만약 이런 이성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사람은 반드시 창조주는 영원히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에게는 모든 피조물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주재할 권력과 자격이 있으며, 거기에 이유는 필요치 않다. 이는 그의 권병이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행한 일이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해야 적합한지 평가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할 자격이 있는 피조물은 없으며, 창조주에게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어떻게 주재하고 안배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 피조물도 없다. 이것은 최고의 진리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든 피조물인 인류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바로 창조주가 행한 이 모든 것에서 구하고 순종하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최종적인 결과는 바로 창조주가 자신의 경륜을 이루고 자신의 사역을 성취하여 그의 경륜이 아무 방해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한편, 피조물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그 가운데서 진리를 얻고 창조주의 뜻을 깨달으며 창조주의 성품을 알게 되는 것이다. 너희에게 또 하나 알려 줄 원칙이 있다. 창조주가 무엇을 하고 어떠한 태도를 보이든, 큰 행사를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그는 창조주라는 것이다. 반면 피조물인 인류는 무엇을 하든, 얼마나 큰 재능과 은사가 있든 결국엔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류는 창조주의 은혜와 축복을 얼마나 많이 받았든, 창조주의 긍휼과 자비 또는 은총을 얼마나 많이 받았든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고급 피조물이 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너에게 아무리 많은 은혜를 베풀고, 은사를 주고, 일찍이 은총을 베풀거나 특별한 재능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의 밑천이 아니다. 네가 피조물이라면 영원히 피조물이다. 너는 영원히 ‘나는 하나님 품속의 아기이니 하나님은 영원히 날 버리지 않으실 거야.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으로 대하실 거고, 나를 보호해 주실 거야. 또 나를 살살 어루만지시고, 작고 낮은 소리로 따뜻하게 위로하며 격려해 주실 거야.’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바꿔 말해, 창조주의 눈에 너는 다른 피조물과 같다. 하나님은 마음대로 너를 쓸 수 있고, 또 마음대로 너를 지배할 수도 있으며, 마음대로 너를 각종 사람과 일, 사물 속에 배치해 어떤 역할을 맡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인식이고 이성이다. 이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차 정상적이 될 것이고, 또 하나님과 가장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고 자신의 위치에 똑바로 설 것이며,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킬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에게 오해와 관념이 생겼을 때는 우선 하나님은 진리이고,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으므로 분명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일종의 형식이냐? (아닙니다.) 만약 네가 단지 이런 실행법을 형식적으로나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 자신을 인식하려면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자신이 하는 일이 진리에 부합하고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봐야 한다. 일단 마음가짐은 보지 마라. 간혹 마음가짐은 옳지만 실행 원칙이 틀릴 때가 있다. 이런 경우가 많으냐, 적으냐? (많습니다.) 네 실행 원칙이 틀렸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어쩌면 네가 구했지만 원칙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전혀 구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좋은 마음과 열정에 따라, 자신의 상상과 경험에 따라 행동해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너는 상상할 수 있느냐? 네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실수가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너는 드러나지 않겠느냐? 드러난 후에도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한다면, 그건 어디가 잘못된 것이냐?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잘못이다. 가장 큰 잘못은 네가 어떤 일을 잘못 처리하고 원칙을 어겨서 손실이나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일을 잘못 처리한 뒤에도 억지를 부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에게 대항하며 하나님 사역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부인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크고 심각한 잘못이다. 사람의 이런 내적 상태를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자신이 한 일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주재가 옳다는 것과 거기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를 인식하고 말고를 떠나, 우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대항하는 내적 상태다. 이런 내적 상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가장 먼저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방금 얘기했던,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실행 방법은 사람에게 그다지 실제적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별로 실제적이지 않다면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닌가요? 구해 깨달을 수 있는 것들도 구할 필요 없습니다. 이 단계는 건너뛸 수 있어요.” 그렇게 해도 되느냐?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 사람은 구할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은 이해가 치우친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은 조금 요원해서 금방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름길을 가는 비교적 현실적인 방법은 먼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이 틀렸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런 다음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절차이다. 이 절차는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실행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다. 사람에게 패괴 성품, 각종 상상과 요구,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사람이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는 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3)>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행사에는 의의가 있다. 하나님의 행사를 받아들이기 쉽든지 아니면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관념이 생기기 쉽든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신분은 그로 인해 바뀌지 않는다. 그는 영원히 창조주이고 너는 영원히 피조물이다. 네가 어떠한 관념의 제한도 받지 않고 하나님과 여전히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를 유지한다면 너는 진정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네가 어떠한 관념의 영향과 교란도 받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진실하게 순종할 수 있다면, 네가 깨달은 진리의 깊이와 상관없이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고, 관념의 속박을 받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은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한 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사실 사람의 분량은 한계가 있다. 사람의 머리에 얼마나 담을 수 있느냐? 하나님을 온전히 측량할 수 있느냐? 허황한 망상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 사람은 영원히 갓난아기임을 잊지 마라. 만약 네가 자신이 똑똑하다는 생각에 늘 잘난 척하면서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이해하려 하고, ‘이해가 안 되면 당신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당신이 창조주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고요. 당신이 제 관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제가 당신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당신의 주재를 받아들이며, 순종하게 할 생각은 일찌감치 접으세요!’라고 생각한다면 골치 아프다. 무엇이 골치 아프겠느냐? 하나님은 네게 이런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영원히 다음과 같다. 즉, 네가 그를 네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역시 너를 그의 피조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네가 그의 피조물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하나님에 대한 너의 태도로 인해 변화가 생긴다. 네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 그리고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의 신분 또한 변하게 되는데, 네가 여전히 피조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인정하지 않으니 네가 어떤 핑계를 댄들 소용없다. 피조물이 아닌 너는 하나님에게 필요 없는데 네게 구원받을 희망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피조물로 여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너는 피조물로서 다해야 할 책임과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창조주를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하겠느냐? 너를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아닌 변절자, 사탄 마귀로 간주한다. 너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찌 자신을 사탄 마귀로 만들었느냐? 이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이 말에서 사람은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착실하고 진실해야 한다. 네게 관념이 생길 만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하나님께 큰소리치거나 하나님을 규정할 만한 밑천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절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일단 피조물의 신분을 상실하면 네가 멸하게 될 것이니, 이건 정말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어떤 관념이 생겨날 때, 사람은 각기 다른 대처 방식과 해결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사람의 관념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사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이치를 얘기하고 권면한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쉽지 않다. 사람은 올바른 일은 그다지 견지하지 않으면서 각종 관념이나 부정한 것, 치우친 것은 쉽게 고수하고 잘 내려놓지 못한다. 이는 어떤 이유 때문이겠느냐? 바로 사람이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념이 크든 작든, 심각하든 심각하지 않든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관념은 쉽게 해결된다. 사실 관념은 결국 일종의 생각일 뿐이지만 사람이 교만함, 강퍅함, 심지어 사악함과 같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념이 도화선이 되어 사람이 하나님에게 반항하고 하나님을 오해하며 심지어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고도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 그런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 반항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판단하며 심한 경우 정죄하기까지 한다. 이로써 관념은 패괴 성품에서 생겨나고, 관념이 튀어나오면 패괴 성품이 표출되며, 표출된 패괴 성품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않았어요.” 이는 거짓말이다. 그는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반항하고 있고, 그의 행위에도 반발심이 담겨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진리에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건 불가능하다. 그는 패괴 성품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관념을 고집하는 것이다. 이것은 패괴 성품으로 초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관념을 해결하는 동시에 사실 사람의 패괴 성품도 해결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의 패괴 성품이 해결된다면, 사람의 미숙하고 유치한 많은 생각들, 심지어 이미 관념이 형성된 것도 사람에게는 사실 문제가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생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본분을 이행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관념은 패괴 성품과 관련된다. 때로 관념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의 행동을 지배하지 않는다. 너의 직접적인 이익에 영향을 주지 않을 때는 너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념의 그 이면에 패괴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네 관념과 충돌하면 너는 모종의 태도로 그 관념을 고수한다. 그런 태도는 네 성품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 성품은 강퍅함일 수도 있고, 교만함일 수도 있고, 흉악함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께 이렇게 대들게 된다. “제 관점은 많은 학술 논증을 거친 것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고수해 오던 것인데, 왜 고수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당신의 말씀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니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또 그것이 진리이고, 지고지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 관점이야말로 전 인류 중에서 지고지상한 것입니다!” 하나의 관념으로 인해 너는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대들게 된다. 이는 무엇으로 초래된 것이냐? (패괴 성품입니다.) 그렇다. 바로 패괴 성품으로 초래된 것이다. 관념과 사람의 패괴 성품은 직결되어 있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각종 관념이 해결된다면, 사람은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쉽게 순종하게 된다. 그러면 굽은 길도 가지 않고, 방해도 교란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도 하지 않으며 더욱 순조롭게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해결하지 않으면 쉽게 방해하거나 교란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의 관념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 대해 여러 가지 반발심이 생긴다. 관념이라면 옳지 않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관점임이 틀림없고, 완전히 진리와 반대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각종 반발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이 반발심 때문에 너는 그리스도를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에게 순종하지 못한다. 동시에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데도 지장을 받는다. 보다 큰 틀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생긴 각종 관념 때문에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사역 방식과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부인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은 구원받을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다. 사람이 하나님의 어떤 면에 대해 관념이 생기든, 그 이면에는 패괴 성품이 숨어 있다. 그 관념 때문에 사람의 패괴 성품은 더욱 심각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삼아 자신의 패괴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성품을 대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 패괴 성품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부추기게 되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관념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결과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관념이 생기면 그것이 어떤 관념이든, 일단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옳은지 묵상해 보고 분석해 보아라. 만약 그것이 그릇되고 치우친 생각이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느껴진다면 당장 기도하고 네가 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치고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구하여라. 그런 다음 예배 시간에 자기의 인식을 이야기하여라. 인식하고 체험하는 동시에 자기 관념의 해결 또한 중시하여라. 만약 이렇게 실행해도 확실한 결실에 이르지 못한다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서 이런 측면의 진리에 관해 교제하여 그에게 도움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체험 속에서 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한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차츰 확인하고, 자신의 관념을 해결하는 문제에 있어 큰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과 사역을 받아들이고 체험함에 따라 결국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며, 네 관념을 내려놓고 해결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경계하지 않으며,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게 된다. 이것은 쉽게 해결되는 관념이다. 또 한 측면의 관념은 사람이 인식하거나 해결하기 쉽지 않다. 해결하기 어려운 관념의 경우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분출하지 말고, 퍼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의 관념을 분출해 봤자 사람에게 득 될 것이 없고,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관념을 퍼뜨리는 것의 성질과 결과가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너 혼자 분명하게 판단하는 게 좋으니 함부로 떠들지 마라. 네가 만약 “교회에서 말하지 않으니 답답해 견딜 수가 없어요. 이러다 죽겠어요.”라고 말한다면 이런 관념을 퍼뜨려서 하나님의 선민에게 과연 득 될 게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득 되기는커녕 남들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게 만든다면 네가 하나님의 선민에게 해를 끼친 게 아니겠느냐? 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친 것이니 역병을 퍼뜨린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정말 네게 이성이 있어서 자기가 고통을 감내할지언정 관념을 퍼뜨려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을 안 하려니 답답해 견딜 수 없다면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해결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도 관념을 품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오해한다면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를 징계해 주시고 여러 환경을 통해 저를 드러내 주셔서 제 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세요. 저를 어떻게 징계하시든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옳은 것이다. 네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나면 그렇게 답답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만약 계속 기도하고 구하여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이 환해지면 답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 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 반발, 패역도 거의 사라지고, 적어도 꼭 분출하겠다는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문제가 여전히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체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관념을 해결하여라. 네 관념을 해결할 수 있는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달라고 해서, 수십 번, 수백 번이고 읽으면 네 관념이 완전히 해결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제가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에게 분출하면 관념을 퍼뜨리는 것이니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답답해서 힘들 때 가족에게 말하는 건 괜찮을까요?”라고 말한다. 네 가족이 모두 형제자매일 경우, 네가 이 관념들을 분출하고 나면 그들을 교란하게 될 텐데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겠느냐? (합당하지 않습니다.) 너의 말이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미혹하는 등의 악영향을 미친다면, 절대 말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해결해야 한다. 네가 경건한 마음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관념이 해결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모든 진리가 담겨 있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그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려 하는지,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 말씀 속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네게 문제가 일어날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만약 한동안 기도하고 나서도 하나님이 네게 아무것도 깨우쳐 주지 않은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말씀해 주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관념이 너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네 생활을 교란하지 않는다면, 또 네 관념이 점차 희미해져서 너와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는 물론 네 본분 이행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이 관념이 거의 해결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이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관념을 대하는 실행 방식과 관련하여 너희에게 원칙이 생겼느냐? …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파악하면 관념은 자연스레 해결된다. 관념에 발목이 잡혀 멈춰 서서는 안 된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전력을 다해 해결하고,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최소한 그것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것 때문에 본분 이행에 차질이 생기거나 너와 하나님의 관계에 지장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소한 너는 관념을 퍼뜨려서는 안 되고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을 하거나 사탄의 졸개나 대변인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피상적으로만 해결될 뿐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는 관념이 있다면 거들떠보지 마라. 관념 때문에 진리 추구나 생명 진입이 지장을 받으면 안 된다. 이 몇 가지 측면의 원칙을 파악하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사람은 보호받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악인이 아닌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는 사람, 방해하고 교란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상시 관념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날 때 일반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한 가지 최소한의 실행 원칙은 네게 관념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든 조급하게 관념을 품고 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다가 진리를 구하여 해결하고 하나님의 행사는 틀리는 법이 없음을 믿는 것이다. 이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네 본분을 내려놓아선 안 되고 관념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만약 관념이 생겼을 때 ‘대충 하고 치우자. 기분 나쁘니까 잘해 주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큰일이다. 네 태도가 일단 소극적으로 변하고, 대충 건성으로 하는 태도가 되면 골치 아파진다. 이것은 관념이 속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관념이 네 안에서 농간을 부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었다면 사실 그 순간 너와 하나님의 관계에 이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는 관념이 있으면 문제가 심각해지니 반드시 제때 해결해야 한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고, 너와 하나님의 관계에 지장을 주지 않는 관념은 큰 문제가 아니다. 만약 네게 생긴 관념이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준다면, 즉 네가 관념 때문에 하나님에게 의구심을 품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데다가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런 결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도 없다면 위험하다. 시험에 빠져 사탄에게 농락당하며 사탄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관념을 대하는 네 태도와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관념이 해결될 수 있든 없든, 어느 정도까지 해결되든 너와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가 변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환경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행사에는 틀림이 없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이런 인식과 이런 측면의 진리는 언제까지나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네게 맡긴 본분을 내려놓거나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면적으로든, 표면적으로든 네가 하나님에게 반발하거나 반항하거나 거역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네게서 보는 것은 순종과 기다림이다. 비록 너는 여전히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너의 패역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네가 거역하지 않고, 반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하나님은 너를 피조물로 여긴다. 반대로 네 마음에 원망과 불복종이 가득하고 보복할 기회를 찾으면서,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하고 내팽개치려 하고 심지어 하나님에게 온갖 원망을 품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불복종하며 불평하는 모습을 표출했다면 그 순간 너와 하나님의 관계에 이미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네가 피조물의 위치에서 떠났으니 피조물에 속하지 않게 되었고 사탄 마귀의 대변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네 상황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만약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너는 교회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특히 관념을 해결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에서 반드시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하나님에게 미움받을 일이나 정죄받을 일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마라. 이것이 원칙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갖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사람의 관념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해결해야만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 많은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본분을 이행할 때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의 관념은 줄곧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과 순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갖든 이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큰 문제이다. 관념은 하나의 벽처럼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무관해진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관념이 생겼는데 제때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면 쉽게 소극적으로 변하고, 하나님에게 반발하는 것도 모자라 적대시한다. 그러고도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생명 진입이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다.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길은 험하고 평탄하지 않다. 사람에게는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할 때가 많고, 자칫 어떤 일에서 관념이 생길지도 모른다. 진리를 구하여 해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여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일단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면 구원의 기회가 있겠느냐? 쉽지 않을 것이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네가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창조주를 연구하는 법이나 네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검증하고 증명하는 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 이것은 네 의무가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사람이 매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묵상해야 하는 것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방법이지, 하나님이 창조주인지, 하나님인지 증명하는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엇을 했는지, 하나님이 한 일이 옳은지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네가 연구해야 할 것이 아니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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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상상으로는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