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참된 간증이 있다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만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합격한 본분 이행이다.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데는 기준이 있다. 예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한 바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는 어떻게 구현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 실제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본문 이행의 기준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이 요구한 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피조물의 본문을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쓰는 것이 중요하며, 마음을 쓰면 그 밖의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은 쉽게 이를 수 있다. 만약 머릿속의 상상과 은사에만 의지해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요구에 이를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한 것이고, 또 충성을 다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한 것이겠느냐?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되고 강렬할수록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법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중에서

양심이 있다면 마땅히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고 “정복을 하시든 온전케 하시든 나는 이 단계 증거를 잘해야 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너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철저히 정복되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책임이자 반드시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사람은 이 부담을 가지고 이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 3> 중에서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지금의 충성심과 순종이며, 지금의 사랑과 증거이다. 설령 네가 지금은 무엇을 증거라고 하는지,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모를지라도 마땅히 너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너의 유일하고 보배로운 충성심과 순종을 내 손에 바쳐야 할 것이다. 내가 사탄을 물리친 증거는 사람의 충성심과 순종에 있고, 내가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증거 또한 사람의 충성심과 순종에 있음을 너는 알아야 한다. 나를 믿는 이상 너의 본무는 나를 증거하고, 내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하며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다음 단계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너는 나를 어떻게 증거할 것이냐? 너는 또 어떻게 내게 충성하고 순종할 것이냐? 너는 네가 하고 있는 기능에서 충성을 다할 것이냐, 아니면 뿌리치고 그만둘 것이냐? 너는 내 모든 안배에 순종할 것이냐(설령 죽거나 멸망할지라도), 아니면 내 형벌을 피하려고 중도에 도망칠 것이냐? 내가 너를 형벌하는 것 또한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하며, 내게 충성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의 형벌은 다음 단계 사역을 펼치기 위함이고, 앞으로의 사역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자신의 생명과 생존의 의의를 가치 없는 한 줌의 흙처럼 여기지 말고 현명하게 행동하라고 권하겠다. 앞으로 나의 사역이 대체 어떤 것일지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사역할지, 사역을 어떻게 전개할지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너는 내 사역을 체험하는 의의를 알아야 하며, 더욱이 나를 믿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는데, 어찌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중도에 포기할 수 있겠느냐? 내가 이토록 큰 공사를 시작했는데, 어찌 허물 수 있겠느냐? 내가 시대를 끝내기 위해 온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시대를 열고 사역을 전개하며 더구나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의 사역이 그저 시대를 여는 것이고, 앞으로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며, 또 앞으로 시대를 끝내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사역은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고, 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가치 없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번 너에게 알려 주겠다. 너는 내 사역을 위해 헌신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해 너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나를 증거하는 것은 내가 일찍부터 바랐던 것이며, 나의 복음을 확장하는 것은 더더욱 내가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것이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일할 때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해 하지 말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마라. 또한 사람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체면, 명예, 지위를 생각하지 마라. 먼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제일 앞자리에 두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먼저 자신의 본분 이행에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지, 충성을 다했는지, 책임을 다했는지, 전력을 다했는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본분 그리고 교회 사역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네가 늘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잘 알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쉬워질 것이다. 네가 자질이 부족하고 체험이 얕거나 업무에 정통하지 못해 사역에 실수와 잘못이 생기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너는 이미 최선을 다한 것이다. 네가 너의 사욕을 충족시키거나 취향을 충족시키지 않고, 어디서나 교회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해서 한 일이라면, 본분 이행에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네 마음은 올바른 것이다. 거기에다 또 진리를 구해 본분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네가 이행하는 본분은 합격일 수 있고, 동시에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간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육으로 살아가면서 육적인 누림을 즐기고 늘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데, 이런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징표이다. 너는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고 하십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네 생각은 전부 사악한 것으로, 일하는 속셈, 목적, 동기와 일을 행한 결과는 모두 사탄을 만족시키고,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며, 사탄에게 약점을 잡히고,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간증이 조금도 없다. 너는 바로 사탄에 속한 사람이다. 너는 매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진실한 간증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가 행한 것을 기억하겠느냐? 마지막에 하나님이 너의 모든 행위와 네가 이행한 본분에 어떤 결론을 내리겠느냐? 결론이나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성경에서 예수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라고 하였다. 예수는 왜 이런 말을 했겠느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이 왜 악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느냐? 바로 주 예수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 예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으로 진리를 싫어했다. 그저 주를 위해 사역하고, 고난을 받으며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천국의 복을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이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속이는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는 그들을 싫어했고 증오했으며, 그들을 악을 행하는 사람으로 정죄했다. 지금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어떤 이는 여전히 명예와 지위를 좇으며, 늘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어 하고, 리더 일꾼이 되어 명예와 지위를 얻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모두 명리와 지위를 얻기 위함이고, 늘 개인의 의도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충성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굴 수도 있으며, 조금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아 악을 행하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이런 악인을 혐오하며 그들을 구원하지 않는다. 사람의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드러내는 것, 행하는 것에 진리를 실행한 간증, 진리 실제를 살아 낸 간증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네게 그러한 실제가 없고 그러한 살아 냄이 없다면, 너는 의심할 나위 없이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겠느냐?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겉으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거나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어디서나 하나님을 욕보이는 표가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도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정확하게 말하면 사탄을 위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하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행한 것이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이어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죄받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믿어도 결국에는 전부 허사가 되지 않겠느냐?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이것이 옳다. 한편으로 자신을 반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본분 이행을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반성만 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는 것이며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떤 시련이 임하든 그것을 하나님이 준 부담으로 여겨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큰 병이 임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나아가 어떤 사람은 죽음까지 직면하게 되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시련은 대부분 사람에게 더해 주는 부담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부담을 더해 주든 너는 마땅히 그것을 짊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네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부담은 네 분량이나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지 않으므로 너는 분명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부담과 시련을 주든 이것 하나는 기억해라.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든 그러지 못했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었든 얻지 못했든, 그 시련이 너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든 경고든, 네가 알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 네가 본분 이행을 지체하지 않고 충성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만족할 것이고, 너는 굳게 설 것이다. 큰 병을 얻어 죽음을 목전에 둔 후 ‘내가 하나님을 믿은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본분을 이행했는데도 하나님은 나를 죽게 하시네. 그럼 내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어. 이루지 못한 사적인 소망을 이루고, 이번 생에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며, 일단 본분은 이행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어떤 태도겠느냐? 그렇게 오랜 세월 본분을 이행하고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도 너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시련 한 번에 넘어지고 쓰러져 드러났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걱정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가당치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조금의 충성심도 없다. 그럼 지난 세월 동안 그가 행한 본분 이행을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느냐? 힘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힘을 들인 자가 된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질병의 고통이나 내 뜻과 다른 어떤 일이 닥치게 허락하셔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도 나는 순종해야 한다. 피조물로서의 위치에 제대로 서야 한다. 먼저 순종과 관련된 진리를 실행하여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를 살아 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부탁과 내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한 내 본분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네게 이런 다짐과 내적 상태가 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너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숨결을 주셨어. 또 지난 세월 동안 내게 공급하고 보호해 주셔서 많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셨고, 수많은 은혜와 진리를 베푸셨지. 나는 역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진리와 비밀을 깨달았고, 하나님에게서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하나님께 보답해야 해! 예전에 나는 분량이 작고 개념이 없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만 했지. 앞으로는 하나님께 보답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내가 아직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을 다 바쳐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해. 그래서 하나님께 그동안 내게 헛되이 공급하신 것이 아님을, 성과가 있음을 보여 드려야 해. 그리고 내게서 위안을 얻으시게 해야지. 더는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거나 실망시켜 드려선 안 돼.’ 이런 생각이 어떠하냐? 목숨을 구하려 하거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서 ‘병이 언제 나을까? 병이 나으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충성을 다해야지. 병이 있는데 어떻게 충성을 다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마라. 숨이 붙어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 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을 수 있느냐? 또 숨이 붙어 있고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쉽지만, 막상 그 일이 정말로 닥치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리를 추구하고 늘 진리에 공을 들이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할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를 많이 생각해야 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너는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일이 닥치든, 소극적이고 연약하든 아니면 책망받아 기분이 좋지 않든, 늘 올바르게 대해야 하며, 또한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실행의 길이 생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기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매사에 진리를 실행하고,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네게 동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너를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 책임감이 있는 사람, 진정으로 좋은 사람, 본분 이행에 합격인 사람으로, 완전히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정결케 되고 진실로 변화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 눈에 정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정직한 사람만이 진리 실행을 견지해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이행하는 본분이 합격일 수 있다. 일 처리에 원칙이 있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 본분 이행에 조금도 빈틈이 없고 건성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 남들의 우러름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똑같이 매일 해야 할 일을 열심히, 책임감 있게 해낸다. 설령 본분 이행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 닥쳐 압박과 방해가 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도할 수 있다. ‘어떤 큰일이 닥칠지라도, 설령 하늘이 무너져 내릴지라도, 제가 살아 있는 한,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것입니다. 하루라도 살아 있으면 그 하루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 본분과 숨결에 떳떳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어떤 어려움이 있든 일단 한쪽에 제쳐 두겠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과 일, 사물, 환경의 영향도 받지 않고, 어떤 기분이나 외부 환경에도 통제되지 않으며, 본분을 가장 앞자리에 두는 자, 하나님의 부탁을 가장 앞자리에 두는 자,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닌 사람이요,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생명 진입이 있는 사람이고, 진리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살아 낸, 가장 참되고 실제적인 모습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죄악이 극에 달한 것이고 백번 죽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뻔뻔스럽게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고 하나님과 겨룬다. 이런 자에게 무슨 온전케 될 가치가 있겠느냐?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 그리고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증오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피조물이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누릴 자격이 있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자격이 있다. 그런데 너희 대부분은 또 어떠하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살고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의 앞에서 또 어떻게 너희의 본분을 이행하고 있느냐? 성심성의를 다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쳤느냐? 너희의 희생은 어떠하냐? 너희가 나에게서 얻은 것이 아직도 적단 말이냐? 너희는 분별할 줄 아느냐? 나에 대한 너희의 충성심은 어떠하냐? 나를 섬기는 것은 또 어떠하냐?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주고 너희를 위해 행한 것은 또 어떠하냐? 너희는 가늠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쥐꼬리만 한 양심으로 가늠하고 비교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언행이 떳떳하냐? 설마 너희의 그 작디작은 희생으로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에 떳떳하단 말이냐?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얼마 되지도 않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으냐? 설마 너희는 자신들이 아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가 어찌 피조물이라 불리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자기 자신이 잘 알지 않느냐? 너희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성한 은혜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소인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 너희 같은 둔재들은 하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다면 너희의 운명은 곧 고통이고, 나의 말과 사역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너희의 결말은 곧 징벌이다. 그 어떤 은혜와 축복,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삶도 너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너희가 누릴 몫 또한 없다. 너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말이며 자업자득이다! 그 어리석고 오만한 자들은 온 힘을 다하고 본분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요구가 당연한 것인 양, 손을 내밀어 은혜를 요구한다. 요구가 무위로 돌아가면 더욱 신의를 저버리는데, 이런 자에게 이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자질이 부족하고 이성 또한 전무하여 경영 사역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본분을 추호도 이행하지 못한다. 너희의 몸값은 이미 바닥을 쳤다. 이토록 은총을 베풀었음에도 너희가 보답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극도로 패역한 것이다. 이런 것들로 너희를 족히 정죄할 수 있고, 너희의 나약함과 무능함, 그리고 비열함과 옹졸함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너희가 또 무슨 자격으로 다시 손을 내밀어 요구한단 말이냐? 너희가 나의 사역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충성을 다하지 못하며, 나를 굳게 증거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미 너희의 잘못이고 부족함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도리어 나를 공격하고, 나의 잘못이라고 허튼소리를 하며, 내가 공의롭지 못하다고 원망한다. 이것이 너희의 충성심이냐? 너희의 사랑이냐? 너희가 이것 말고 또 무슨 사역을 할 수 있느냐? 너희는 모든 사역에 있어 어떤 공헌을 했느냐? 얼마나 헌신했느냐? 내가 너희를 책망하지 않는 것만 해도 이미 지극히 큰 관용을 베푼 것인데도 너희는 뻔뻔스럽게 이유를 따지고, 암암리에 나를 원망한다. 그런 너희에게 인간미가 조금이라도 있느냐? 사람의 본분 이행에 사람의 생각과 관념이 수없이 섞여 있을지라도 너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고,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사역하다가 불순한 것들이 섞이는 것은 자질의 문제지만,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은,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차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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