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적그리스도의 인품을 분별하는 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적그리스도의 인품의 첫 번째 모습은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고 우리는 이를 마귀의 본성으로 규정한다. 이 마귀의 본성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교류하든 이런 부류의 사람이 하는 말은 마귀나 뱀의 말과 같아서 신뢰할 수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특별히 조심하고 분별해야 하며 마귀의 말을 경솔히 믿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에 인이 박인 이런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퇴고, 분석, 분별에 견디지 못한다. 그는 언제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이를 묻는 말에도 그는 고민한다. ‘무슨 의도로 내 나이를 묻지? 나이가 많다고 하면 나를 무시하고 양성하지 않으려나? 젊다고 하면 경험이 없다며 나를 얕보지 않을까? 그럼 뭐라고 대답하지?’ 이렇게 간단한 일에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그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반문한다. “몇 살로 보이나요?” “쉰?” “비슷해요.” “마흔다섯?” “이제 곧이요.” 그가 정답을 알려 주었느냐? 그의 대답을 통해 그의 나이를 알았느냐? (모릅니다.) 이것이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거짓말에 인이 박인 모습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간증할 때조차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거짓 간증은 저주받고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짓이다. 간증할 때도 허위로 날조하고 거짓말로 기만하니 정말이지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다.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 남들은 간증할 때 체험과 인식이 있는데 자기는 없는 걸 보면 그는 호박에 줄 긋듯 꾸며 낸다. 남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고 남들이 체험한 걸 짜깁기하는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으면서 말로는 그렇게 인식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그런 체험적 인식, 깨우침이 없는데 있다고 하고,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했다고 말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 일에서 거짓말을 하고 조작하면서 그는 그 결과가 아무리 심각해도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것이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이런 부류는 누구든 속인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도 결국엔 사람입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 그를 도왔던 사람, 그와 함께 역경을 이겨 낸 사람은 속이지 않겠죠? 그와 혈연관계인 사람은 속이지 않겠죠?”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는 말은 누구든 속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부모, 자녀는 물론 형제자매까지 모두 속일 수 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두 속인다. 심지어 사실대로 말하면 아무런 뒤탈이나 지장이 없을 일, 지혜가 필요하지 않은 일도 그는 속일 수 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거짓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라 직설적으로 말하면 될 정도로 간단하고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될 일도 그는 속이고 거짓말로 해결한다. 이것이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 아니겠느냐?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은 사탄 마귀의 주된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성이 정직하기는커녕 오히려 거짓말에 인이 박였으니 신뢰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이런 부류가 잘못을 저질러 책망과 훈계, 형제자매의 질책을 받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겉으로는 하나님에게 빚을 졌다고, 앞으로 회개하겠다고 하면 섣불리 믿을 수 있겠느냐? (섣불리 믿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 섣불리 믿을 수 없느냐? 가장 강력한 증거가 바로 이들이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는 것이다! 설령 그가 겉으로는 회개하고, 가슴을 치며 목 놓아 울면서 맹세한다 해도 믿지 마라. 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며 사람을 속이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뱉는 회개하는 말이나 괴로워하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궁여지책으로, 남들에게 신뢰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는 목 놓아 울며 잘못을 시인하고 맹세하며 입장도 밝히지만 뒤에서 그와 사이가 좋고 비교적 믿을 만한 사람이 보고하는 그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개석상에서는 잘못을 시인하고 깊이 참회하며 시정하겠다고 맹세하니 겉보기에는 진심 어린 말 같지만 뒤에서 하는 말은 그가 당시에 했던 말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었으며 더 많은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그가 뒤에서 무슨 말을 하겠느냐? 당시 자기가 했던 말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하겠느냐? 그러지 않는다. 그는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며 이치를 따지고 변명한다. 이렇게 변명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이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맹세했던 말이 모두 거짓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신뢰할 가치가 있겠느냐?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 아니냐? 죄를 인정하는 것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것도, 깊이 참회하며 시정하겠다는 것도, 심지어 맹세마저 거짓말이니 마귀의 본성이 아니냐? 그가 “제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이 정도이고 나머지는 아직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조금씩 인식하도록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형제자매님들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정직한 태도와 말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절대 이런 류의 진실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면 남들이 얼마나 무시하겠어? 이 얼마나 체면을 구기고 망신스러운 일이야? 위신이 땅에 떨어지지 않겠어? 내가 누군데, 무릎 꿇을 수 있겠어? 인식하지 못해도 잘 인식하고 있는 척해서 속여야겠어. 사람들 마음속에 내 입지부터 다지고 보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냐? 적그리스도가 말하는 방식과 근원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보면 이런 부류는 절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 그의 인품이기 때문에 그는 무슨 일이든 속이고 은폐하려 하며, 남들에게 알리길 원하지 않고, 남들이 진상이나 실상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은 너무나도 어둡고 음침하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이런 측면의 인품은 인성이 없고 마귀의 본성을 지닌 것으로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다. 입만 열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거짓말이 튀어나온다. 심지어 잠꼬대조차 진실한 말은 없고 죄다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음험함과 악랄함은 어떤 부분에서 나타나느냐? (거짓말을 꾸며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서 나타납니다.) 거짓말을 지어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에는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도 있고 음험하고 악랄한 것도 있다. 이 두 가지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나쁜 짓을 해놓고 책임지기 싫을 때 허상을 만들거나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것으로 오해하게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그 사람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사악하고 비열할 뿐 아니라 더욱이 음험하고 악랄한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음험하고 악랄한 모습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느냐? (그는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며, 공격하고 보복합니다.)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것은 악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 명예, 명성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이롭지 않은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고 보복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 해를 입히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음험하고 악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음험하고 악랄하다’라는 말을 보면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이 대단히 악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양심에 기대거나 그들과 대등한 지위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사람을 이용하고 통제하고 지배하여 자신을 위해 쓰려고 한다. 그의 처세 방식은 정상적이거나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남들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샌가 그에게 미혹되고 이용되며 그의 공격하는 무기가 되게 하는 방식과 수단을 쓴다. 그는 누구를 대하든, 겉으로 보기엔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진심이 전혀 없다. 이용 가치가 있어 보이면 가까이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들떠보지 않고 멀리한다. 심지어 비교적 점잖고 취약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온갖 방식과 수법으로 미혹하고 포섭해서 자기한테 이용당하게 만든다. 하지만 연약해졌거나 어려움이 생겼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못 본 체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이나 도움을 주는 법이 없고, 이런 사람일수록 괴롭히고 미혹하며 심지어는 이용하려 한다. 이용할 수 없으면 걷어차 버리는데 남에게 사랑이나 동정심을 전혀 갖지 않는다. 여기에 선량함이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이는 악독한 모습 아니겠느냐? 간계와 수법으로 사람을 이용하고 속여 상대가 자신의 빈틈을 보지 못하게 하고, 기꺼이 자기를 위해 죽도록 일하고 힘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 적그리스도가 사람과 함께 지내는 방식이자 철학이다. 그를 분별해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은 괴롭히고 구박하는 것도 모자라 제멋대로 죄를 씌운 후 형제자매에게 버림받게 하고 그런 다음 제명되고 출교당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 부류는 음험하고 악랄하여 선량함이나 진실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그는 진심으로 남을 돕는 법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동정심은 물론이고 사랑의 마음은 더욱 갖지 않는다. 그는 남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기 이익과 이득만 도모한다. 그는 그에게 다가오거나 어려움이 생겨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가 누가 됐든 타산을 따져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를 도와주면 나중에 그가 나한테 무슨 쓸모가 있을까? 날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이용할 수 있을까? 그에게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는 늘 이런 것들만 생각한다.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 선거가 있을 때 어떤 수법을 쓰겠느냐? (그는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추켜세워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밟아 버립니다.)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추켜세우는 것 역시 음험하고 악랄한 것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염치를 아는 것은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것으로, 이는 이성적이라는 의미이다. 염치를 아는 것에 대응되는 부정적인 말이 무엇이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은 후안무치하다는 뜻으로, 문어로 염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 부류의 어떤 행동과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나 방식이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지위를 놓고 공개적으로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 바로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지위와 선민을 놓고 공개적으로 하나님과 다투는 것은 오직 적그리스도 부류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다른 사람이 원하든 말든 그는 사람을 통제하려 하고, 자기에게 능력이 있든 없든 지위를 차지하려 한다. 지위를 차지하고 나서 교회에 얹혀살려는 것인데, 하나님의 선민을 등쳐 먹고 자기는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그들이 자기를 먹여 살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민에게 생명을 전혀 공급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그의 권력 아래로 끌어들여 자기 말에 따르고 자기를 위해 봉사하며 목숨 바쳐 일하게 해서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지위가 생기게 만들고자 한다. 네가 만약 다른 사람이 훌륭하다고 하거나 하나님의 큰 은혜와 은총, 축복, 전능을 찬미하면 그는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해한다. 늘 자기를 칭찬하고 마음속에 그를 품고 숭배하며 앙망하는 데다가 불순물이 전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가 무슨 일이든 그를 위해 해야 하고 그를 고려해야 한다.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처리하든 매사에 그를 앞세우고 그의 생각과 기분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또 어떤 모습이 있느냐? 제물을 훔쳐 먹고 낭비하며, 하나님의 제물을 함부로 차지한다. 이 또한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분명하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적그리스도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없다. 그들의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측면의 모습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잘못해도 뉘우칠 줄 모르고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어떻게 만회하고 회개할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고, 책망과 훈계를 받거나 교체되면 억울해하며 시종일관 자기를 위해 이치를 따지고 간사하게 궤변을 늘어놓는데 이를 염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으면서 어디서든 남들을 가르치며 공허한 이론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자기를 영적이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자기가 얼마나 사역하고 고생했는지 과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형제자매들로부터 대접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당연하다는 듯 교회에 얹혀살면서 좋은 것을 먹고 마시며 특별 대우까지 누리는데 이를 염치가 없다고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고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질이 형편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며, 실행 원칙도 찾지 못하고, 어떤 사역도 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면서 자기가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잘한다고 허풍을 떠니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뭐든 아는 척해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만들고,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물으면 성내고 질투하며 미워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을 괴롭히니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자신이 분명 늘 거짓말을 하고 여러 패괴 성품을 지녔으면서 자신은 패괴 성품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사랑받는 사람인 척한다. 여기저기서 자기가 고생을 잘 견디고, 순종하며,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며, 노고와 원망도 마다하지 않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며 위선을 떨지만 사실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하다. 분명 아무런 인식도 교제하지 못하고, 어떤 진리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며, 아무런 체험 간증도 없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가장하며 말뿐인 자기 인식을 늘어놓아 자기가 무척 영적이고 많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 자기가 문제가 많고, 인성도 나쁘며, 본분도 충성을 다해 이행하지 않고, 늘 자기 머리나 잔꾀로 사역하며,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부담을 가지고 있고, 아주 영적이며, 자질이 있으며 보통 사람들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성이 없는 모습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늘 이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느냐? 분명 진리 원칙을 깨닫지 못하고, 어떤 사역이든 실행 원칙을 찾지 못하며, 구하지도, 교제하지도 않고, 자신의 잔꾀와 경험, 머리에 의지하여 하면서 남을 지휘하는 리더가 되어 모든 사람이 자기 말을 따르게 하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겐 화가 나고 성을 내니,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자기에게 야심과 은사, 약간의 잔꾀가 있어서 늘 하나님 집에서 나서려고 하고, 하나님 집에서 자신을 중용하고 양성해 주기를 바라며, 양성해 주지 않으면 속으로 언짢아하고 분해하면서 하나님 집이 불공평하고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원망하고, 하나님 집에 자기 같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 같은 사람이 없다며 원망한다. 자기를 양성하지 않으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 하지 않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며,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려 한다. 그는 속으로 하나님 집에서 누군가 자기를 우러러보며 치켜세워 자신이 두각을 나타내고 하나님 집에서 원대한 뜻을 떨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이것이 야심과 욕망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적그리스도에게서 가장 자주 보이는 모습이 아니겠느냐? 네가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하나님의 선민이 너를 우러러볼 것이다. 만약 진리는 하나도 없는데 나서려고만 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것이다! 여기에 야심과 욕망까지 있어서 한바탕 크게 해 보려고만 한다면, 이런 자는 틀림없이 큰코다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사회에서 지위와 명성이 조금 있었다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집에 오고 나서도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며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려 하고 모든 사람을 자기가 시키는 대로 복종시키려 한다. 자격을 과시하고 경력을 따지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보다 못하고 자기 권력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여 일부 성과를 내고 공헌을 하면 형제자매가 자기를 원로나 고위 인물, 특별한 인물로 여겨 공손히 대해 주길 바라는 것도 모자라 자기를 앙망하고 따르며 자기 말까지 듣기를 바란다. 그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모든 일을 판결하며 좌지우지하고 싶어 한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팽개치고 훼방 놓고 조롱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부끄러움을 모를 뿐 아니라 몹시 악독하기까지 하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인성도 없다. 부끄러움을 모를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무척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는 이해하기 쉽다. 바로 이익만 꾀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마음을 기울이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으며, 정성과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 없는 일은 본체만체하며 내버려둘 뿐, 남이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방해하고 교란해도 상관하지 않는데, 이는 그와 무관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부류의 사람은 비열하고 야비하며 옹졸한 사람으로, 우리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말로 규정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면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그는 자신의 지위, 명예에 유익한 일이라면 공을 들여 말하고 행동하며, 기꺼이 어떤 고생도 감내한다. 그러나 하나님 집에서 안배한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생명 성장에 유익한 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악인의 방해와 교란, 온갖 악행들로 교회 사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 일어나도 그는 자신과 무관한 일인 것처럼 신경 쓰지도 않는다. 누군가 악행을 저지른 악인을 발견해 그에게 알리면 그는 보지 못했다며 모르는 척한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고발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명예와 이익, 지위만 추구한다고 폭로하면, 그는 눈이 벌게져서 서둘러 사람을 모아 대처 방법을 연구하고, 누가 뒤에서 그런 일을 했는지, 누가 주모했는지, 누가 가담했는지 알아본다. 그는 식사도 거르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라도 이 일을 파악하여 철저히 해결하려고 한다. 심지어 고발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조리 처리해야 그는 속 시원해한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 아니냐? 이게 교회 사역을 하는 것이냐? 이는 순전히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자신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어떤 사역을 맡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입을지만 생각하고, 현재 자신에게 유리한 그 정도의 일만 고려한다.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 그에게는 그저 부업 같은 일이라 아예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촉구할 때만 움직이고, 그저 자신이 하기 좋아하는 일,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일만 한다. 하나님 집에서 안배한 일, 복음 확장 사역,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은 그가 보기에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사역에 어떤 어려움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발견하여 그에게 알려도, 또 아무리 간곡히 말해도 그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인 양 아랑곳하지 않고 참여하지도 않는다. 교회 사역에 아무리 큰 문제가 생겨도 관심이 없다. 문제를 그의 앞에 갖다 놔도 그저 대충 처리할 뿐이다. 상부에서 직접 그를 책망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령할 때라야 상부에 보이기 위해 억지로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한다. 그 후엔 또 자기 일로 바쁘다. 교회의 사역, 전반적인 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으며, 심지어 문제를 발견했더라도 처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그는 대충 대답하고 얼버무리며 마지못해 대응한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 아니냐? 또한, 적그리스도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남 앞에 나설 생각만 한다. 인지도를 높일 수만 있다면 머리를 쥐어짜서 어떻게든 그 일을 배워서 하려고 든다. 두각을 나타낼 수만 있으면 된다.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 오로지 자신의 명예와 이익, 지위밖에 모른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우열이나 승패를 겨루고, 누구의 명성이 더 클지 겨룰 뿐이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자신을 숭배하고 앙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자기 말을 듣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진리를 교제하거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없고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면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이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지, 책임을 다했는지, 사역에 오류나 실수는 없는지,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와 뜻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명예와 이익, 지위를 얻거나 야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몰두하여 일할 뿐이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이 아니냐? 이는 그의 내면에 야심과 욕망, 무리한 요구가 가득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그의 야심과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드러낸다. 무슨 일을 하든 그 동력과 근원은 모두 그의 야심과 욕망, 무리한 요구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질이 아주 뚜렷하고, 그 방면의 모습이 특히 두드러진다. 교회에서 사역을 맡길 경우, 만약 그 일이 그에게 명예와 이익을 가져다주고, 얼굴도 드러낼 수 있는 일이라면 큰 관심을 보이며 받아들이고자 한다. 한편, 그것이 남들에게 원망을 살 수 있으며 애만 쓰고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은 일이라면, 혹은 그가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의 명예와 이익, 지위에 불리한 일이라면 그는 그 일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으며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이 아니라는 듯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는 난관에 부딪힐 때 절대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법이 없고, 나아가 대국(大局)적으로 행동하며 교회 사역을 고려하는 법도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의 사역 범위 안에서 전반 사역의 필요로 인원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교회에서 인원을 몇 명 이동시킨다면, 그 교회의 리더가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만약 그가 자기 교회의 이익만 생각하고 전체적인 이익은 고려하지 않으면서 인원 이동을 죽어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교회 리더인 그가 왜 하나님 집의 통합적인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겠느냐?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겠느냐? 대국적으로 사역을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만약 그가 하나님 집의 전반적인 사역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 교회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도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아니겠느냐? 교회 리더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그리고 하나님 집의 통합적인 안배와 배치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이래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다면, 누구든 하나님 집의 배치와 안배에 순종해야지, 절대 어떤 한 리더 일꾼에게 통제되어 그가 소유하고 그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선민이 하나님 집의 통합적인 안배에 순종하는 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단, 리더 일꾼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인력을 이동하는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이럴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원칙에 맞게 정상적으로 인력을 이동하는 경우라면, 하나님의 선민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어떤 리더 일꾼도 누군가를 통제할 권력을 갖지 않으며, 그럴 만한 이유도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 집 사역이 아닌 사역이 있느냐? 하나님나라의 복음 확장과 관련 없는 사역이 있느냐? 모두 하나님 집의 사역으로, 경중의 구분이나 네 일과 내 일의 구분 같은 건 없다. 원칙을 따르고 교회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인력을 이동한다면 그 몇 사람은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 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는 갖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면서 적합한 그 사람들을 자기 곁에 남기는 한편, 평범한 사람 두 명을 보낸다. 그러면서 일에 아주 바쁘다는 둥, 일손이 부족하고 진짜 찾기 힘들다는 둥, 그 두 사람을 보내면 사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둥 핑계를 대며 난처하게 한다. 또한,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 인원을 이동한 것이 네가 그에게 신세를 진 것으로 느끼게 한다. 이는 마귀의 행실 아니겠느냐? 이방인은 이렇게 일한다. 교회에서 늘 자신의 이익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냐? 원칙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냐? 절대 아니다. 이는 이방인이고, 불신파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으냐? 만약 적그리스도 주변의 자질 좋은 사람을 이동시켜 다른 본분을 이행하게 하면, 그는 마음속으로 계속 반항하고 거부한다. 그는 내팽개치고 하지 않으려 하며 리더나 팀장 자리에 있으면서 열의를 보이지도 않는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그는 왜 교회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겠느냐? 그는 유능한 조력자를 보낼 경우, 자신의 사역 성과와 사역 진도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지위와 명성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역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고생해야 하는데, 이는 그가 가장 원치 않는 일이다. 그는 안일을 탐하는 데 인이 박여 조금이라도 더 일하거나 고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 집에서 인력 이동을 강행한다면, 그는 원망을 한가득 쏟아낼 것이며, 심지어는 자기 사역을 내팽개치고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선민은 하나님 집에서 통합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 어떤 리더나 팀장, 개인과도 관련이 없다. 누구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집의 규칙이다. 하나님 집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고, 늘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위해 도모하고 계산하는 적그리스도는 자질이 좋은 형제자매들을 이용하여 그를 위해 봉사하게 함으로써 그의 권력과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한다. 이것은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아니냐? 겉으로는 자질 있는 사람을 주변에 남겨 둔 채 하나님 집의 인력 배치를 거부하는 것은 교회 사역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전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생각하는 것이지 전혀 교회 사역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교체되고 지위를 잃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의 전반 사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개인의 지위만을 고려하는 것,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해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는 대가도 불사하고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최소한 양심에 근거해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 집의 사람이지 나 개인의 사유 재산이 아니야. 나 역시 하나님 집의 일원이야.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 집의 인력 이동을 가로막겠어? 하나님 집의 전반적인 이익을 생각해야지 내가 책임지는 범위 안의 사역만 생각해서는 안 돼.’ 이는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생각이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이성이다. 하나님 집은 전반적인 사역을, 교회는 국지적인 사역을 하기에 하나님 집에서는 교회에 특별한 요구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 일꾼은 먼저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는 이러한 양심과 이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 무척 이기적이라서 자신만을 생각하고 교회 사역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눈앞의 이익만 고려하고 하나님 집의 전반적인 사역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감히 하나님 집에서 방해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 이런 자는 누구보다 인성 없는 사람이고, 악인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이다. 그는 늘 교회의 사역과 형제자매, 심지어 자신의 책임 범위에 있는 하나님 집의 재물까지 모두 자신의 사유 재산이라 여겨 어떻게 분배하고,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사용할지 모두 자신이 결정해야 하고, 하나님 집에는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손에 넘어가면 마치 사탄에게 점유당한 것처럼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그는 마치 토박이 건달이나 산적 두목처럼 군다. 누구든 그의 세력 범위에 들어가면 순순히, 고분고분 그의 지휘와 배치에 따르며 그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인품 안에 있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이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 집의 사역을 고려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지위만을 고려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에게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특징 중 하나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인성에는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권력자에게 빌붙고 약자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교회나 세상의 일부 유명인이나 권세와 지위가 있는 사람을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한없이 부러워하고 흠모하며 아첨까지 한다. 그는 기독교를 믿으면 정계 지도자 아무개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면 큰 교파의 아무개 목사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는 무슨 일이든 명분을 내걸고, 유명인을 숭배하고 따라 하려 한다. 최소한 유명인이나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묻어가야 흡족해한다.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라면 그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적그리스도는 한결같이 환심을 사고 아첨하며 알랑방귀를 뀌는 것도 모자라 하인처럼 시중드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지위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아무리 올곧고 정직하며 선량하더라도 그는 할 수만 있으면 괴롭히고 깔아뭉갠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개가 사회에서 기업 CEO다, 아무개 아버지는 부자다, 아무개 집이 잘산다, 아무개는 가문이 대단하고 사업 규모가 크다, 사회에서 명성이 높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교회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들이 어떤 악을 행했든 그들을 고발하고 폭로하며 분별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시키는 대로 한다. 그가 어떤 등급의 리더를 따르면 곧 그 등급 리더의 추종자, 졸개, 노예가 된다. 권력, 세력, 돈, 지위가 있는 사람을 대할 때 그는 굉장히 고분고분하고 겸손하며 무능해 보인다. 무척이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데 무슨 말에든 고개를 끄덕이며 청종할 수 있다. 반면 지위가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말할 땐 거친 기세로 사람을 짓눌러 남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안하무인격으로 자기가 누구보다 강하고 높은 사람인 것처럼 자기에게서 어떤 문제나 흠, 약점도 찾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무슨 인품이냐? 음험하고 악랄한 것,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권력자에게 빌붙고 약자를 억압하는 것은 적그리스도 부류의 추악한 인성의 일면이 아니냐? 이런 인성을 지닌 사람이 올곧은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그가 지위를 가진 사람이나 권력자와 이야기할 때 진실을 말하겠느냐? 그가 약자와 이야기할 때 진실을 말하겠느냐? (모두 아닙니다.) 그래서 이 항목은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이 항목에서 보면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품은 극도로 악랄해 완전히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람을 진리 원칙, 인성, 하나님 집에서의 진리 추구 여부에 따라 대하는 법이 없고 오로지 사람의 지위, 세력에 따라 사람을 보고 대우한다. 지위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극진하게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며 접근하는데 심지어 그들에게 맞거나 욕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원망 한마디 없이 한결같이 저자세로 약한 척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속마음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위나 명성이 있는 사람이 한마디를 하면 설사 그것이 사탄의 황당한 이론과 그릇된 주장이고 진리와 전혀 무관하더라도 그는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겉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능력이나 지위가 없는 사람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는 거들떠보지 않고 깔본다. 아무리 원칙과 진리에 부합하더라도 그는 그 말을 듣기는커녕 반박하고, 조롱하며, 비아냥거린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품 속에 있는 또 다른 측면의 특징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처세하는 방식이나 원칙을 보면, 그들을 영락없는 불신파로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의 인품에서 저열하고, 야비하며, 옹졸한 측면을 볼 수 있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성에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즉, 물질에 대한 욕망과 요구가 한없이 크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마음에 가득해서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이다. “대다수 적그리스도는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의 인성에 그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지위를 갖게 되면 어떤 원칙으로 먹고 입고 꾸미겠느냐? 지위만 생기면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고 기회와 여건이 생긴 것이기에, 생활이 달라질 것이다. 음식은 격식을 따지며 사치스러운 것을 먹으려고 신경 쓴다. 입고 쓰는 것은 반드시 명품이어야 하고, 집과 차도 고급스럽고 호화스러워야 한다. 심지어 공구 카트 하나를 사더라도 호화로운 장비여야 한다. “그는 돈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따지는 걸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돈이 없다고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의 인성에 이런 욕망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부류가 일단 하나님 집에서 제물을 장악하면 뻔뻔하고 자제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절제하게 낭비하고 무엇이든 사고 누리려 한다. 차를 마셔도 고급 차에 찻잔도 도금된 것이어야 하고, 밥을 먹어도 산해진미에 특등급 인삼까지 먹어야 한다. 컴퓨터, 휴대전화는 예외 없이 글로벌 일류 브랜드의 최신 모델이어야 하고, 안경은 수천 위안짜리이어야 하며, 머리 한 번 하는 데에도 수백 위안을 들이려 한다. 마사지나 사우나도 수천 위안이나 그보다 더 비싼 것을 원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무엇을 하든 고급에 명품이어야 하고, 스타나 유명인, 권력자가 누리는 것을 그대로 누리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지위를 얻으면 이런 추한 면들을 드러낸다. 예배 때 3~5명이 그의 설교를 들으면 그는 사람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면서 300~500명을 모으려 한다. 다른 사람이 여건에 맞지 않는다면서 상황이 불리하니 3~5명이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안 됩니다. 제가 설교하는데 어찌 고작 몇 사람만 듣습니까? 이러면 제가 설교할 필요가 없죠.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교회당을 한 채 사서 설교해야 위엄이 있어요.” 이건 제 무덤을 파는 꼴이 아니냐?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하는 짓이다. 이 역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호화로운 생활, 물질에 대한 필요에 대해 억누르기 힘든 욕망과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인품에 있는 또 다른 측면의 특징이다. 유명한 음식, 고급 세단, 명품 의류, 고가의 럭셔리 상품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두 눈에 불을 켜고 욕망을 쏟아낸다. 이 욕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분명 마귀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돈이 없는 일부 적그리스도는 고급 액세서리나 2,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을 번뜩이면서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5캐럿짜리는 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1캐럿도 없는 지금의 자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을 믿는 게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큰 복을 얻으면 500캐럿을 머리에 쓰고 다녀야지.’ 그에게 욕망이 있지 않으냐? 명품을 입고 호화 크루즈를 타고 바다 위를 누비는 부자가 TV에 나오면 너무 행복해 보이고 낭만적이며 너무 고상하고 부럽다는 생각에 침을 질질 흘린다. ‘난 언제쯤 저런 사람이 되고 군계일학이 될 수 있을까? 언제쯤 저런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그는 반복해서 보고 또 보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하나님을 왜 믿는데?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잖아. 앞으로 내 삶은 저 사람보다 훨씬 나을 거야. 그가 호화 크루즈를 탔으니 나는 호화 여객기나 비행접시를 타고 달에 가겠어!’ 이런 생각은 조금이라도 현실성이 있느냐? 정상 인성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성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즉, 물질과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얻고 나면 욕심이 끝도 없어서 탐욕의 눈빛과 본성을 드러내며 영원히 갖고자 한다. 적그리스도의 인성엔 권력자를 부러워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물질과 양질의 삶에 대해서도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정상 인성은 생활이나 물질에 대해 정상적인 범위 내의 필요를 가진다. 하나는 일상생활의 필요이고, 다른 하나는 일과 생활 환경의 필요이며, 또 하나는 신체적인 필요이다. 이런 것들은 쓰기에 충분하기만 하면 되는데, 자신의 능력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적정 수준에서 그치는 것을 비교적 정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 부류는 물질을 비정상적으로 원하고 누리니 욕심이 끝이 없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 음험하고 악랄한 것,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권력자에게 빌붙고 약자를 억압하는 것, 물질에 대한 욕망이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는 것 등의 몇 가지 특징은 모두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품 속에 있는 전형적이고 대단히 대표적인 특징이자 뚜렷한 특징이다. 보통 사람에게도 이런 모습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이런 모습은 일종의 패괴 성품이거나 사탄의 패괴를 거친 비정상적인 인성, 혹은 인성이 없는 모습이다.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양심과 지각이 생기면 사람은 이것들을 내려놓고 저버릴 수 있고 회개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진리 추구는 물론, 본분 이행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오직 적그리스도만이 아무리 많은 설교를 들어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의 인성 속에 지니고 있는 이런 품성과 특징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정죄되고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 구원받지 못하겠느냐? 이런 인품을 지닌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와 하나님 그리고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그가 구원받을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구원받을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은 반드시 도태되어 지옥에 떨어질 대상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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