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새 신자를 양육한 특별한 체험
2021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했습니다. 한동안은 인터넷으로 새 신자 세 명을 양육했습니다. 그들은 예배에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에는 인터넷이 안 돼서 먼 산꼭대기까지 가야 인터넷이 터지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다가 인근 두 마을에 아직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각각 백여 명이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예배 때 저는 그 세 명의 새 신자에게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하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모든 재난이 연이어 닥치고 있다. 각국 각 지역에 재난이 일어나고 있으며, 전염병, 기근, 수해, 가뭄, 지진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미 한두 곳의 문제도, 하루이틀에 끝날 문제도 아니다. 확산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재난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기간에는 각종 충해까지 연이어 발생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현상도 도처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다 만국 만민에 대한 나의 심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5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차츰 응하고 있고 재난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저희 와방(佤邦)의 전염병 상황도 아주 심각합니다. 지금 곳곳의 도시와 마을이 봉쇄되어 많은 사람이 격리되고 있습니다. 격리 기간에 먹을 밥과 마실 물이 없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염병에 걸렸는데 격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목을 매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돈을 벌러 나갔다가 도시 봉쇄로 집에 돌아오지 못해 가족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 무사히 지내고 있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은혜롭게도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우리의 가족, 이웃,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진리를 얻어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그들이 어느 날 전염병에 걸려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면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때 가면 죽도록 울어도 아무 소용없어요. 여러분은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그들은 제 말을 듣고 모두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그들은 촌장 아들과 마을에서 명망이 높은 회계사를 포함해 복음 대상자 여러 명을 데려왔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그들에게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을 분별하는 진리에 대해 교제해 주었습니다. 참 하나님을 믿어야만 재난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고, 거짓 하나님을 믿으면 재난에 빠져 결국 유황불 못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며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거짓 하나님을 섬기며 사탄에게 어리석게 놀아나 고통받았던 것을 생각하며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쁘고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그들은 인성이 비교적 좋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두 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그렇게 20여 일 만에 두 마을에서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보고자 찾아온 사람이 백여 명이었고, 제가 양육을 맡은 사람만 60여 명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후 두 마을에서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웃 마을의 한 지역 정부 책임자는 마을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의 민병을 소집해 순찰을 돌게 했고, 막 참도를 알아보기 시작한 새 신자 열여섯 명을 체포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마을에서는 밤낮으로 민병들이 순찰을 돌았고, 다른 마을 사람들은 감히 마을 안에서 설교를 듣지 못했으며, 일부는 산에 올라와 예배에 참석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마을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 새 신자들과 연락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직접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저에게 연락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제 끝이구나.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요 며칠 사이에 갓 받아들인 새 신자들조차 굳게 서지 못할지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한 예배 그룹장이 산에 올라가 인터넷을 찾아 저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매일 파출소 사람들과 민병들이 곳곳을 순찰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만 예배를 드리면 안 될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안 돼. 새 신자들은 분량이 작고 깨닫지 못한 진리가 많아서 계속 양육해야 해. 어떻게든 꼭 예배에 참석하게 해야 한다고.’ 저는 그 그룹장과 함께 다큐멘터리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추격병이 쫓아와 더 이상 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자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났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으며, 추격병들은 모두 홍해에 수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반드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또 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교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각 단계 사역과 모든 일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이는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교란이었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저는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정부 책임자가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대적하고 가로막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사탄의 교란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책임자를 통해 우리를 핍박하고 체포하여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마치 욥이 시련을 당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욥이 막대한 재산을 잃은 것은 겉보기에는 강도의 소행 같았지만, 사실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고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욥은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사탄은 아무리 교란해도 욥이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것을 보고 결국 수치를 당하며 물러갔습니다. 지금 책임자의 교란과 핍박이 닥쳤는데, 만약 우리가 여기에 속박되어 한 달에 한 번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사탄의 계략이 성공하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이 환경 속에서 예배를 꾸준히 드릴 수 있다면 사탄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룹장은 제 말을 듣고 돌아가서 새 신자들과 예배 약속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그룹장의 교제를 듣고 새 신자들은 저마다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불법은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잡힐지 안 잡힐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탄은 정부의 교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려 하고,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따를 것이고,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상황은 긴박했지만, 갈급한 마음이 있는 일부 새 신자들은 여전히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배드리던 장소가 노출되어 예전처럼 60, 70명이 함께 모일 수 없었고, 한 예배 장소에 많아야 20명 정도만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따로따로 예배드리도록 막 안배하려던 차에 우리는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새 신자들에게는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유심 카드가 두 장뿐이었기 때문에, 나누어서 예배를 드리면 카드가 부족했고, 그러면 일부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스무 명이 휴대폰 한 대로 예배를 드리다 보니 때로는 인터넷이 불안정해서 일부 사람들이 교제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해 좋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맥이 빠지면서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지역으로 갈 수만 있다면 직접 그들을 양육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새 신자들도 유심 카드가 없어서 속박받지 않아도 될 거고.’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양육하는 새 신자들 중 많은 이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데다 유심 카드도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 지역으로 가서 그들을 양육하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회를 마련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책임자에게 제 생각을 말했고, 책임자는 제가 그 지역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섬김 가정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새 신자 그룹장이 메시지를 보내 저를 찾았고, 저는 그들에게 다음 날 정오에 형제자매들과 예배 약속을 잡되, 되는 대로 많이 약속하고 은밀한 장소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60여 명의 새 신자들이 모두 온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저에게 다가와 악수하고 포옹하며 저마다 앞다투어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흥겨운 한 무리의 새들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예배가 끝난 후, 그들은 또 우리가 다른 마을의 새 신자들과 약속을 잡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셋째 날, 현지 그룹장은 저희를 데리고 먼 산길을 걸어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날은 대략 50여 명의 새 신자가 왔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소를 몰던 외부인 한 명이 우리를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가 나를 보면 어쩌지? 나를 신고하지 않을까? 정부 책임자나 파출소 사람이 나를 잡으러 오지 않을까?’ 제 안전을 고려하니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때, 이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안전을 지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해. 다른 누가 잡혀가도 나는 잡혀선 안 돼.’ … 적그리스도는 안전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사역한다. 겉으로는 무척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것 같고, 엄청난 ‘책임감’과 ‘충성심’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역을 하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쉽게 문제가 생기거나 큰 붉은 용에게 들킬 수 있다면, 그들은 핑계를 대며 그 일을 거절하고 기회를 봐서 도망친다. 위험하거나 위험한 조짐이 있기만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빼려 한다. 본분을 내팽개치고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한다. 그들은 어쩌면 마음속으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이 보이는 순간 교회 사역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어떤 해를 입든 신경 쓰지 않고, 또한 형제자매들의 안위 역시 개의치 않으며 그들이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바로 내팽개칠 준비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도망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마음속으로 ‘가장 좋은’ 계획, 스스로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다. 바로 위험이 닥치거나 체포되면 자기가 아는 것들을 전부 털어놓고 깨끗하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생각해 보니, 적그리스도는 위험이 없을 때는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하며 겉으로는 교회의 이익을 지키는 것 같지만, 위험이 닥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으며 자기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 자신의 모습도 적그리스도와 똑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새 신자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겉으로는 어느 정도 사역도 하고 고생도 감수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의 안위가 걸리자 본분을 내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그 새 신자들을 먼저 잘 안배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직 위험에서 벗어날 생각만 했으니,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만약 그 많은 새 신자가 잡히게 되면, 그들은 분량이 작아 물러서게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나는 혼자잖아. 저 많은 사람이 잡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 한 명이 잡히는 게 낫지. 형제자매들이 안전하기만 하면 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새 신자들을 잘 숨겨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랑에, 어떤 사람은 풀숲에, 어떤 사람은 숲속에 숨겼습니다. 소 몰던 사람이 떠난 후 우리는 다시 예배를 이어갔고, 형제 몇 명에게는 망을 보게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우리는 다음 예배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 후 또 백여 명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당시 두 마을의 새 신자를 합하면 거의 200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자 또다시 정부 책임자의 주의를 끌었고, 그는 마을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해 산을 순찰하게 했습니다. 책임자는 또한 우리의 예배 장소를 찾는 사람에게는 한 사람당 100위안씩 포상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마을에 순찰하는 민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에도 순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지만, 매일같이 새 신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친척과 친구들을 데리고 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심지어 두 마을의 촌장과 부촌장까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책임자의 핍박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예배 장소를 옮겨 다녔습니다. 때로는 들판에서, 때로는 모래밭 소나무숲에서, 때로는 수풀 속에서 예배를 드렸고, 아주 먼 산꼭대기까지 달려가 예배를 드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갈 때면 저는 늘 그 책임자의 집 앞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책임자와 파출소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 책임자의 집 앞에서 갑자기 저를 가로막아 붙잡을까 봐 걱정됐습니다. ‘만약 내가 잡혀서 가족들이 알게 되면 어떡하지? 원래도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내가 잡힌 것을 알면 더 핍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그런 장면이 매일 제 머릿속에 떠올랐고, 생각만 해도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매일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갈 때마다 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책임자의 집 앞을 지날 때는 숨도 크게 쉬지 못했고, 오토바이 액셀을 밟아 쏜살같이 지나가며 뒤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두려움 속에서 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 찬양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믿음이다>가 생각났습니다. 『말세의 사역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다. 이 단계 사역은 이전의 그 어떤 단계의 사역과도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실족할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것은 바로 사람의 믿음인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것은 바로 말씀이 믿음, 사랑,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갖은 연단을 통해 욥보다 더 큰 믿음을 갖추려면 사람은 커다란 고통과 온갖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해 지극히 큰 믿음이 생기게 될 때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났다고 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8> 중에서) 이 노래를 부르니 마음속에 힘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제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우게 하시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마을에 가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이 꽤 크다고 생각했지만, 그제서야 저의 실제 분량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반성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을 믿다가 잡힌 것을 가족들이 알면 저를 더 핍박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과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은 너무나 작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책임자의 핍박이라는 환경을 통해 제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저는 기꺼이 그 환경을 겪어 내기로 했습니다. 그 후 다시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갈 때도 여전히 책임자의 집 앞을 지나야 했고,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조금 두려웠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 계속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자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는 예배드리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신고하라고 했고, 하나님 믿는 사람을 한 명 신고하면 500위안, 두 명 신고하면 1,000위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중공처럼 너무나 사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을 뿐 죄를 짓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렇게 온갖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우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진정으로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전 10시 예배를 아침 6시로 변경했습니다. 그때는 12월이었는데 유난히 추운 겨울이라 저는 발에 동상이 걸렸지만, 새 신자들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이미 60세가 넘은 새 신자도 있었고, 온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갓 한 달 된 아기를 안고 산으로 예배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저는 무척 감동했고, 제 자신이 그 새 신자들보다 믿음이 크지 않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온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순찰을 돌게 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신고하게 하는 그 사탄 정권이 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사역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복음은 여전히 그 일대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순찰하던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하나님의 보호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때, 또 다른 환경이 저에게 닥쳤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 갑자기 부대에서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원래는 설에나 돌아올 사람이었는데 뜻밖에 앞당겨 온 것입니다. 남편은 제가 집에 없는 것을 보고 어디 갔냐고 전화해서는 다음날 동이 트는 대로 바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도 제가 돌아오지 않자 남편은 저에게 위챗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마침 저는 예배에 참석 중이라 인터넷이 안 돼서 답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제 외삼촌에게 전화했고, 외삼촌도 제게 집안을 돌보지 않는 여자라며 욕했습니다. 남편은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했고,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저는 조금 연약해져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가족들은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고, 어머님도 여러 번 남편에게 나와 이혼하라고 부추겼잖아. 만약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남편이 정말 나와 이혼하지 않을까?’ 한쪽에서는 책임자가 핍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니 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며칠만 집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돌아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고, 그러면 새 신자들을 양육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저는 속으로 애가 타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저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환경을 허락하셨을까? 남편이 돌아왔으니, 이제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겠어? 하나님은 왜 지켜 주시지 않는 걸까?’ 저는 마음속으로 계속 이 문제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묵상하는 중에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려면 무엇보다도 사람이 하나님께 지나친 욕망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속셈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늘 요구한다면, 이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떤 일이 닥치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늘 자신의 이치를 따지고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하나님이 진리이고 공의롭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문제가 된다. 이런 사람은 가장 교만하고 하나님을 제일 심하게 거역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늘 요구하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 요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한다는 의미이며, 자기 뜻을 선택하고 자기 뜻에 따라 행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배반이고, 불순종이다. 네가 하나님께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성이 없는 행위이다. 그가 하나님임을 진실로 믿는다면, 너는 무리한 요구든 합리적인 요구든 감히 그에게 요구할 수 없고, 그에게 요구할 자격도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오로지 경배하고 순종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저는 제 모습이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모습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이 제 뜻에 맞을 때는 기꺼이 순종했지만, 제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순종하려 하지 않고 늘 이성 없이 하나님께 요구하려 했습니다. 저는 제가 본분을 이행했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이 순조롭도록 저를 지켜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핍박과 교란이 닥치지 않도록 돌보고 지켜 주셔야 하고, 남편이 일찍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막아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가 돌아오면 저는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하나님께서 제 요구대로 해 주시기를 바랐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안배가 부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예전에 제가 집을 떠나 복음을 전하기 전에도 남편은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그때는 제가 그에게 그다지 속박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예배드리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족의 교란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예배에도 감히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면, 저는 스스로 분량이 꽤 있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저의 실제 분량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환경은 제 관념에 맞지 않았지만, 그것은 저 자신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평소 환경이 안일할 때 저는 전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구하지도, 저의 패괴를 반성하고 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환경이 드러내 주었기에, 저는 제가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억지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갈망하고, 날씨가 아무리 춥고, 길이 아무리 멀고,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꾸준히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만약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누가 그들을 양육하겠어? 하지만 돌아가지 않으면 이혼에 직면하게 될 거야.’ 제가 이렇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하고 있을 때, 이전에 책임자님이 알려주셨던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짊어진 중책과 너에게 맡겨진 부탁, 너의 책임을 너는 모두 알고 있느냐? 너의 역사적 사명감은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떻게 다음 시대의 어엿한 주인이 될 것이냐? 너는 주인 의식이 강렬하냐? 만물의 주인은 어떻게 해석되느냐? 정말로 생물과 세상 모든 물질의 주인이겠느냐? 너는 다음 단계 사역의 진전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 너의 목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너의 임무가 무척 무겁지 않으냐? 가난하고 가련하며 눈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들은 흑암 속에 떨어져 슬피 울고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느냐? 밝은 빛이 문득 유성처럼 내려와 오랫동안 사람을 억압한 이 흑암 세력을 몰아내길 얼마나 갈망하고 있겠느냐? 간절히 기대하고 밤낮으로 생각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느냐? 깊은 고난에 빠진 그 사람들은 빛이 가로지르는 날에도 여전히 흑암의 감옥에 갇힌 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더 이상 울부짖지 않겠느냐? 한 번도 안식을 얻지 못한 그 연약한 영들은 그렇게 참혹한 불행을 겪고 있다. 무정한 밧줄과 굳어 버린 역사(歷史)가 일찍이 그들을 그 속에 가둔 것이다. 그 울부짖음을 누가 들은 적이 있느냐? 그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누가 본 적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애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손수 지은 무고한 인류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 어쨌든 인류는 해악을 입은 불행한 자들이다. 비록 인류가 오늘날까지 살아남기는 했지만, 일찍이 악한 자에게 해악을 입었음을 누가 알겠느냐? 설마 너는 네가 그 피해자 중의 하나임을 잊은 것이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 생존자들을 모두 힘써 구원해 오고 싶지 않으냐?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 사람을 자신의 뼈와 살처럼 사랑하는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지 않으냐? 너는 하나님께 쓰임 받음으로써 평범하지 않은 일생을 사는 것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너는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일생을 살 의지와 믿음이 있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앞으로의 사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역하신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거짓 신을 섬기며 사탄에게 어리석게 놀아나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여 그들이 하루빨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새 신자들과 예배드렸던 장면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줄 때,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갈망하는 눈빛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치 어두운 세상에서 이제 막 빛을 본 것 같았고, 오랫동안 빛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희망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정부 책임자가 핍박하고 벌금을 물더라도, 아이가 갓 한 달밖에 되지 않았더라도, 아무리 길이 멀더라도 그들은 예배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고, 온종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정부의 핍박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어떤 새 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사탄과 유격전을 벌이면 돼요. 그들이 산으로 올라오면 우리는 산에서 내려가는 거죠. 어떻게든 예배드릴 방법을 찾을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그들을 버려두고 가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양심에 참소를 받을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고, 저는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으며, 많은 진리와 비밀을 깨닫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길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은 너무나 많았고, 저에게 주신 사랑도 너무나 컸습니다! 평소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저와 이혼할까 봐 두려워 본분을 내팽개친 채 새 신자들을 버리고 떠나려 했습니다. 제가 정말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책임자가 계속 핍박하면서, 잡히면 벌금을 물리고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하면 새 신자들은 연약해지고 겁을 먹어서 예배에 감히 참석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도 그들을 양육하지 않으면, 그들이 소극적으로 변해 물러서지 않을까? 그들은 그렇게 갈급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날이 밝기도 전에 예배 장소에 와서 나를 기다렸는데,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된다면 마음이 몹시 괴롭고 고통스럽지 않을까? 만약 내가 그냥 가 버린다면, 내 양심에, 그리고 그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이혼이 두려워 이 새 신자들을 버려서 그들이 연약해지고 물러서게 된다면, 나 또한 하나님을 뵐 낯이 없을 거야!’ 저는 생각할수록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며 보살피고 감찰하는 사람, 하나님의 검증을 통해 선택되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은 바로 그 뒤를 따라간다. 사탄은 그 사람을 미혹하고 해하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얻고자 하면, 사탄은 있는 힘을 다해 훼방 놓는다. 갖가지 사악한 방식을 동원해 시험하고 교란하며 하나님 사역을 파괴하여 오직 자신만 아는 숨겨진 목적을 이루려 한다. 사탄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탄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도 얻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을 자기가 빼앗아 점령하고 통제하고 장악해서 자신을 경배하게 하고 함께 악행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려 한다. 이것이 사탄의 음험한 속내가 아니겠느냐? … 사탄이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의 뒤를 쫓아다니는 목적은 하나님이 하려고 하는 모든 사역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얻기를 원하는 사람을 점령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다. 사탄은 하나님이 얻기를 원하는 사람을 모두 멸해 버리거나 자신이 가져 이용하려 한다. 이것이 사탄의 목적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르는 곳마다 사탄도 따라와 교란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얻고자 하시자, 사탄은 정부와 책임자를 이용해 그들을 핍박했고 온갖 대가를 치르며 인력과 재력을 총동원해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사탄은 그런 핍박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는 또 다른 방식을 썼습니다. 바로 제 남편이 이혼으로 저를 위협하게 하여 제가 그 마을을 떠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그 새 신자들을 양육하지 못하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점차 물러서게 될 테니 말입니다. 사탄은 정말이지 너무나 비열하고 파렴치했습니다! ‘만약 내가 돌아간다면 사탄의 간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사탄의 사악한 속내를 간파한 저는 어떻게든 그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하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과 협력하여 이 두 마을의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하겠습니다. 설령 남편이 저와 이혼한다 해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혼할 준비를 마치자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다음날 남편이 위챗 메시지를 보내 몸조심하라고, 날이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밖에서 복음 전할 때 조심하라고,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겨울옷을 사 입으라며 4천 위안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로, 비록 남편에게는 이전만큼 속박받지 않았지만 책임자의 핍박은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체험 찬양 <그리스도를 따르며 죽어도 뒤돌아서지 않으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큰 힘을 얻어 그 환경을 겪어 낼 믿음이 생겼습니다. 『말세의 인자가 진리 선포하시고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시네. 나는 하나님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보고 하나님을 따르게 됐네. 사탄,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의 선민을 미친 듯이 탄압하고 체포하니, 그리스도를 따르며 본분을 이행하는 이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네. 어쩌면 어느 날, 하나님을 증거하다 체포되어 박해받는다 해도 나는 이것이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임을 분명히 아네. 어쩌면 어느 날,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간다 해도 이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받아야 할 고난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네. 복음 전하는 이 길을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한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리.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헌신하리. 이번 생에 그리스도를 따르고 증거할 수 있어 내 마음 더없이 자랑스럽네. 설령 하나님나라가 실현되는 그날을 보지 못한다 해도 오늘날 증거하여 사탄에게 수치를 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만족하네. 핍박과 환난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하나님은 나의 든든한 방패시라. 어쩌면 내 생명이 마치 순간 떨어지는 불꽃과 같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힘 있게 증거한 것이네.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다했으니, 원망도 후회도 없네.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으니 이번 생은 헛되지 않았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니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네. 하나님 말씀 천하에 널리 퍼지고, 그리스도의 나라 인간 세상에 나타났네. 하나님은 재난 속에서 이미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셨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 있네. 어둠은 곧 지나가고 공의로운 서광이 이미 비치었네. 하나님이 사탄, 큰 붉은 용을 물리치셨으니 영광 얻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중에서) 이 노래를 듣고 저는 속으로 깊은 감동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 두 마을에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가면 체포되어 박해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영광 얻으시는 날을 보지 못하고 잡혀가 박해받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야.’ 이 점을 깨닫고 나니, 저는 그 환경을 이겨 낼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정부 책임자는 우리가 매일 아침 6시에 예배드리러 간다는 것을 알고, 새벽 5시부터 자기 집 마당에서 불을 피우며 우리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그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오토바이 불을 끄거나 시동을 끄고 밀고 갔습니다. 우리는 산에 갈 때도 손전등도 감히 켜지 못했으며, 때로는 비가 오면 마을의 비교적 외진 형제자매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예배가 끝날 때면 어떤 형제자매는 땔감을 지고 돌아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소를 몰고, 또 어떤 이는 산나물을 캐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비록 책임자가 자기 집 마당에서 불을 쬐며 우리를 기다렸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가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위험한 환경이 닥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그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겪으며 저는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두 마을 사람들은 정부 책임자 부부와 인성이 좋지 않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책임자의 남동생, 여동생, 제수, 장인까지도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또 그들을 통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당시 70, 80명이 받아들였습니다. 책임자가 어떻게 핍박하든, 그 새 신자들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했고, 받아들이는 새 신자들도 끊임없이 늘어났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성령 역사가 이룬 성과였습니다. 사탄이 어떤 방식을 쓰든 복음 사역의 확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간에 비록 저는 육체적으로 고생도 좀 하고, 정부의 핍박과 남편의 교란도 겪으며 당시에는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얻은 수확 또한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