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새 신자를 양육한 특별한 체험

미얀마 조지나(Georgina)

2021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했습니다. 한동안 저는 인터넷으로 새 신자 세 명을 양육했습니다. 그 세 명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예배에 임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에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인터넷을 쓰려면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까지 가야 했는데도 모든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인근의 두 마을에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각각 100여 명씩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 때, 저는 이 새 신자들에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도 읽어 주었습니다. 『모든 재난이 연이어 닥치고 있다. 각국 각 지역에 재난이 일어나고 있으며, 전염병, 기근, 수해, 가뭄, 지진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미 한두 곳의 문제도, 하루이틀에 끝날 문제도 아니다. 확산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재난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기간에는 각종 충해까지 연이어 발생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현상도 도처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다 만국 만민에 대한 나의 심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5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고, 재난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만 재난이 닥친 게 아니라 우리 와방(佤邦)에서도 전염병이 아주 심각합니다. 지금 곳곳에서 도시와 마을이 봉쇄되어 많은 사람이 격리되어 있습니다. 격리 기간에 먹고 마실 게 없어서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전염병에 걸렸는데 격리 비용을 내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을 벌러 나갔다가 봉쇄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못해 가족이 죽어도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걸렸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오늘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지만,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서둘러 우리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진리를 얻어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가 혹시라도 그들이 전염병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가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가서는 아무리 통곡해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이 있습니까?” 그들은 다 듣고 나서 모두 기꺼이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그들은 복음 대상자 여러 명을 데려왔는데, 그중에는 이장 아들과 마을에서 꽤 신망이 높은 재정 총무도 있었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그들에게 참하나님과 거짓 신을 분별하는 진리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참하나님을 믿어야만 재난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고, 거짓 신을 믿으면 오직 재난에 빠져 결국 유황불 못에 떨어지게 될 뿐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참하나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무척 기뻐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그들은 인성이 비교적 괜찮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두 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20여 일 만에 이 두 마을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러 온 사람이 100명이 넘었고, 그중 제가 양육을 맡은 사람은 60여 명이었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후, 두 마을에서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마을에 사는 구 정부 서기는 마을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 민병대를 소집해 순찰하고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참도를 알아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 신자 16명을 붙잡아 벌금까지 물렸습니다. 마을에는 밤낮으로 민병대가 순찰을 돌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에서 설교를 들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어떤 사람들은 산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마을에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그들이 직접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저에게 연락해 오지 않는 한, 새 신자들과 연락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거 참 큰일이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요 며칠 사이 갓 받아들인 새 신자들조차 굳게 설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 그때, 한 예배 조장이 산에 올라와 인터넷을 찾아 저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지금 상황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매일 파출소 사람들과 민병대가 곳곳을 순찰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만 예배를 드리면 안 될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건 안 돼. 새 신자들은 분량이 작아서 아직 모르는 진리가 많아. 계속 양육하고 붙들어 주어야 해. 어떻게 해서든 새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게 해야 해.’ 저와 조장은 다큐멘터리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할 때,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추격군이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자 그 가운데로 마른 땅이 드러났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지만 추격군들은 모두 홍해에 수장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정하신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또 조장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 사역의 각 단계는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교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사역의 각 단계와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이는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이자 사람의 교란이었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 사역의 각 단계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이어서 교제했습니다. “지금 서기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사탄의 교란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서기를 이용해 우리를 핍박하고 잡아가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욥이 시련을 겪을 때 막대한 재산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강도들의 짓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고 공격한 것이었죠. 욥은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교란해도 욥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았고, 결국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갔습니다. 지금 서기의 교란과 핍박이 닥쳤다고 우리가 거기에 얽매여서 한 달에 한 번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결국 사탄의 간계가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이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예배를 드린다면 사탄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 말을 다 들은 조장은 마을로 돌아가 새 신자들에게 연락해서 같이 예배를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조장의 교제를 듣고, 새 신자들은 앞다투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잡히고 안 잡히고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탄은 정부의 교란을 이용해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우리를 핍박해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따를 것이며,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은 매우 나빴지만, 꽤나 진리를 갈구하는 몇몇 새 신자들은 어떻게든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들이 예배드리던 장소가 노출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60~70명이 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는 없었고, 한 예배 소당에는 많아야 20명 정도만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몇 곳으로 나누어 예배드리게 하려고 안배하던 중, 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새 신자들에게 인터넷이 연결되는 유심칩이 두 개밖에 없어서, 나누어 예배를 드리면 유심칩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이 생기고 맙니다. 게다가 20명이 휴대폰 하나로 예배를 드리다 보니 가끔 인터넷 상태가 안 좋으면 교제하는 내용이 잘 안 들리는 사람도 생겨서 예배에서 좋은 효과를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조금 기운이 빠졌고, 참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직접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만나서 그들을 직접 양육할 수 있을 텐데.’ 그 후 저는 책임자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했고, 책임자는 제가 그곳에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현지 섬김 가정에 도착했을 때 마침 새 신자 조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장에게 다음 날 점심때 형제자매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모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모이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장소를 정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약속 장소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놀랍게도 그 60여 명의 새 신자가 다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다가와 저와 악수하고 포옹하며 앞다투어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즐거운 새 떼 같았습니다. 그건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날 예배가 끝난 후, 그들은 이웃 마을의 새 신자들에게도 연락해 설교를 들으러 오라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셋째 날, 우리는 조장을 따라 먼 산길을 걸어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날은 50명 남짓한 새 신자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한창 예배를 드리던 중, 소를 치던 한 이방인이 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신고하는 건 아닐까? 서기나 파출소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오지는 않을까?’ 저는 당장이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때, 예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안전을 지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해. 다른 누가 잡혀가도 나는 잡혀선 안 돼.’ … 적그리스도는 안전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사역한다. 겉으로는 무척 적극적이고 주동적이며, 엄청난 ‘책임감’과 ‘충성심’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역을 하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쉽게 문제가 생기거나 큰 붉은 용에게 들킬 수 있다면, 그들은 핑계를 대며 그 일을 거절하고 기회를 봐서 도망친다. 위험하거나 위험한 조짐이 있기만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빼려 한다. 본분을 내팽개치고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한다. 그들은 어쩌면 마음속으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이 보이는 순간 하던 모든 사역을 급히 내던질 준비 말이다. 교회 사역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어떤 해를 입든 신경 쓰지 않고, 형제자매들의 안위 역시 개의치 않으며, 자신이 도망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마음속으로 ‘가장 좋은’ 계획, 스스로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다. 바로 위험이 닥치거나 체포되면 자기가 아는 것들을 전부 털어놓고 자신은 깨끗이 발을 빼며 모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위험이 없을 때 적그리스도는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을 하지만, 위험이 닥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안위부터 생각하고 자기 혼자 안전한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교회의 이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일말의 양심과 이성도 없습니다. 제 모습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산에 올라가 새 신자들과 예배를 드리며 나름 사역도 하고 고생도 감수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 안전이 위협받자 본분을 내팽개치고 도망칠 생각부터 했습니다. 제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느라 새 신자들을 먼저 안전한 곳에 대피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새 신자가 붙잡힌다면, 분량이 작은 그들은 믿음에서 물러설 확률이 큰데도 저는 저만 위험에서 벗어날 생각만 했으니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이 새 신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랑에, 어떤 사람은 풀숲에, 또 어떤 사람은 숲속에 몸을 숨기게 했습니다. 소를 치던 사람이 자리를 뜬 후에야 우리는 다시 예배를 이어갔고, 형제 몇 명을 안배해 망을 보게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우리는 다음 예배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 후 또 100명이 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당시 두 마을의 새 신자를 합치면 20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자 서기의 주의를 더 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초등학생들까지 산에 올라가 순찰하게 했습니다. 서기는 또 우리 예배 소당을 찾아내면 포상으로 한 사람당 100위안씩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마을 안에 순찰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에도 순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지만, 새 신자들은 매일같이 계속해서 자신의 친척과 친구들을 데리고 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심지어 두 마을의 이장과 부이장까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서기의 핍박 때문에 우리는 예배 소당을 끊임없이 바꿔야 했습니다. 어떨 때는 밭에서, 어떨 때는 모래밭에서, 어떨 때는 숲속에서 예배를 드렸고, 또 어떨 때는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까지 가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갈 때면 매일 서기의 집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곳은 제가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서기나 파출소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그들이 서기 집 문 앞에서 갑자기 길을 막고 저를 체포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했습니다. ‘만약 내가 잡히고 그 사실을 가족이 알게 되면 어떡하지? 원래도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을 반대하는데, 잡힌 것까지 알면 더 핍박하지 않을까?’ 이런 장면이 매일 머릿속에 떠올랐고,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갈 때마다 조마조마했습니다. 서기 집 문 앞을 지날 때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오토바이 엑셀을 힘껏 당겨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두려울 때면 저는 묵묵히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믿음이다>라는 하나님 말씀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말세의 사역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다. 이 단계 사역은 이전의 그 어떤 단계의 사역과도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실족할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것은 바로 사람의 믿음인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바로 말씀이 믿음, 사랑,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갖은 연단을 받아 욥보다 더 큰 믿음을 갖추려면 커다란 고통과 온갖 시달림을 겪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해 지극히 큰 믿음을 갖게 될 때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8> 중에서) 이 찬양을 부르자 마음속에 힘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이 닥치도록 허락하신 것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우게 하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마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이 꽤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제 상황이 닥치자 제 실제 분량이 드러났고,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이 너무나 작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제가 핍박받는 환경을 통해 제 믿음을 온전케 하려 하셨고,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환경을 기꺼이 겪어 내고자 했습니다. 그 후 서기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예배드리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신고하라고 했으며, 하나님 믿는 사람 한 명을 신고하면 500위안을, 두 명을 신고하면 1,000위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사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하나님만 믿었을 뿐인데,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잡으려 했습니다. 저는 그런 그들을 뼛속 깊이 증오했습니다.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전 10시 예배를 새벽 6시로 바꿨습니다. 그때는 12월이라 날이 몹시 추웠지만, 그래도 새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환갑이 넘었는데도 한결같이 예배드리는 새 신자도 있었고, 온 가족이 함께 오기도 했으며, 태어난 지 한 달 된 갓난아이를 안고 산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감동하면서도, 제 믿음이 이 새 신자들만 못하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이와 함께 이 사탄 정권도 정말 증오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온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순찰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을 신고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사역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은 이 일대에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게다가 순찰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하루는 불신자인 남편이 갑자기 부대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설날에나 올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일찍 돌아온 것입니다. 남편은 제가 집에 없는 것을 보고 전화해서 어디 갔냐고 묻더니, 다음 날 날이 밝는 대로 즉각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제가 집에 돌아가지 않자 남편은 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저는 인터넷이 안 터져서 답장을 못 했는데, 남편은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 후, 남편은 계속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재촉하며,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조금 연약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족들은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반대했고, 시어머니도 남편에게 저와 이혼하라고 여러 번 부추겼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가 남편이 정말 이혼하자고 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너무도 괴로운 마음에 며칠만 집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가면 다시 나오고 싶어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 새 신자들은 누가 양육하겠습니까? 저는 속으로 몹시 고통스러웠고, 저도 모르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내게 닥치도록 허락하셨을까? 남편이 계속 집에 오라고 강요하고, 안 가면 이혼하겠다고 하는데, 내가 집에 가면 본분은 또 어떻게 이행한단 말야?’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속으로 계속 묵상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려면 무엇보다도 사람이 하나님께 지나친 욕망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속셈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늘 요구한다면, 이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떤 일이 닥치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늘 자신의 이치를 따지고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하나님이 진리이고 공의롭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문제가 된다. 이런 사람은 가장 교만하고 하나님을 제일 심하게 거역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늘 요구하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 요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한다는 의미이며, 자기 뜻을 선택하고 자기 뜻에 따라 행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배반이고, 불순종이다. 네가 하나님께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성이 없는 행위이다. 그가 하나님임을 진실로 믿는다면, 너는 무리한 요구든 합리적인 요구든 감히 그에게 요구할 수 없고, 그에게 요구할 자격도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오로지 경배하고 순종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저는 제 모습이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대로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경이 제 뜻에 맞을 때는 기꺼이 순종하려 했지만, 제 뜻에 맞지 않으면 순종하려 하지 않았고, 항상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요구만 했습니다. 저는 제가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저를 보살피고 보호해 주셔서 남편의 핍박과 교란을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남편이 일찍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저는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요구대로 해 주시기를 바랐고,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안배가 부적절하다며 원망하고 하나님께 따지며 억지를 부렸으니, 정말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집을 떠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분량이 있고 이미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제 실제 분량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 일이 닥친 것이 제 관념에는 맞지 않았지만, 저 자신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는 이 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 사모한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추운 날씨와 먼 거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꾸준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누가 그들을 양육하겠습니까? 하지만 돌아가지 않으면 이혼당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때, 전에 책임자가 나누어 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짊어진 중책과 너에게 맡겨진 부탁, 너의 책임을 너는 모두 알고 있느냐? 너의 역사적 사명감은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떻게 다음 시대의 어엿한 주인이 될 것이냐? 너는 주인 의식이 강렬하냐? 만물의 주인은 어떻게 해석되느냐? 정말로 생물과 세상 모든 물질의 주인이겠느냐? 너는 다음 단계 사역의 진전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 너의 목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너의 임무가 무척 무겁지 않으냐? 가난하고 가련하며 눈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들은 흑암 속에 떨어져 슬피 울고 있다. 길은 어디에 있느냐? 밝은 빛이 문득 유성처럼 내려와 오랫동안 사람을 억압한 이 흑암 세력을 몰아내길 얼마나 갈망하고 있겠느냐? 간절히 기대하고 밤낮으로 생각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느냐? 깊은 고난에 빠진 그 사람들은 빛이 가로지르는 날에도 여전히 흑암의 감옥에 갇힌 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더 이상 울부짖지 않겠느냐? 한 번도 안식을 얻지 못한 그 연약한 영들은 그렇게 참혹한 불행을 겪고 있다. 무정한 밧줄과 굳어 버린 역사(歷史)가 일찍이 그들을 그 속에 가둔 것이다. 그 울부짖음을 누가 들은 적이 있느냐? 그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누가 본 적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애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손수 지은 무고한 인류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것을 어찌 참고 지켜볼 수 있겠느냐? 어쨌든 인류는 해악을 입은 불행한 자들이다. 비록 인류가 오늘날까지 살아남기는 했지만, 일찍이 악한 자에게 해악을 입었음을 누가 알겠느냐? 설마 너는 네가 그 피해자 중의 하나임을 잊은 것이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 생존자들을 모두 힘써 구원해 오고 싶지 않으냐?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 사람을 자신의 뼈와 살처럼 사랑하는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지 않으냐? 너는 하나님께 쓰임 받음으로써 평범하지 않은 일생을 사는 것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너는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일생을 살 의지와 믿음이 있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앞으로의 사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 역사하신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한 채 거짓 신을 숭배하며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여, 그들이 하루빨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새 신자들과 예배드리던 장면을 떠올려 봤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줄 때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사모하는 눈빛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두운 세계에 있다가 막 빛을 본 사람들 같았고, 아주 오랫동안 빛이 오기를 고대하다 마침내 희망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정부의 핍박을 받아 체포되거나 벌금을 물 상황에서도, 아무리 먼 길일지라도, 심지어 갓 한 달 된 아이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결코 예배를 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온종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만을 애타게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정부의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한 새 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두려워 마세요. 우리는 사탄과 유격전을 벌일 겁니다. 그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어떻게든 예배드릴 방법을 찾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대로 그들을 버려두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든다면, 제 양심이 참소를 받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며 많은 진리의 비밀을 깨달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길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큽니다! 평소에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며,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혼하자고 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본분을 내팽개치고 새 신자들을 버려둔 채 가 버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가 떠난 뒤에도 서기가 계속 그들을 핍박하며, 붙잡히면 벌금을 물리고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한다면, 그들이 연약해지고 겁을 먹어 예배드리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또 아무도 그들을 양육해 주지 않아 그들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물러나지는 않을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토록 진리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날이 밝기도 전부터 예배 장소에 와서 저를 기다렸는데,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된다면 마음이 얼마나 애타고 고통스럽겠습니까? 만약 제가 이대로 떠나 버린다면, 하나님께 그리고 그들에게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이혼이 두려워서 이 새 신자들을 버려두어 그들이 연약해지고 물러나게 만든다면, 제게는 하나님을 뵐 낯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사역을 할 때 한 사람을 보살피고 감찰하며 검증을 통해 그 사람을 선택하고 칭찬하면 사탄은 바로 그 뒤를 따라가서 그 사람을 미혹하고 해하려 한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얻고자 하면, 사탄은 애써 훼방을 놓고, 온갖 사악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시험하고,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목적을 이루려 한다. 사탄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탄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도 얻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을 자기가 빼앗아 점령하고 통제하고 장악해서 자신을 경배하게 하고, 자신과 함께 악행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려 한다. 이것이 사탄의 음험한 속내가 아니겠느냐? … 사탄이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의 뒤를 쫓아다니는 목적은 하나님이 하려고 하는 모든 사역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얻기를 원하는 사람을 점령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다. 사탄은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멸해 버리고 싶어 하며, 만약 멸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갖고 이용하려 한다. 이것이 사탄의 목적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사역이 이르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탄의 교란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이 사람들을 얻고자 하셨지만, 사탄은 정부를 이용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사탄은 이런 핍박으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방식을 바꾸어 남편을 이용해서 이혼을 빌미로 저를 협박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이 마을을 떠나게 해서 이 새 신자들을 양육할 사람이 없게 만들고, 이 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점차 물러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참으로 비열하고 파렴치합니다! 만약 제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사탄의 간계에 넘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탄의 음흉한 속셈을 꿰뚫어 본 저는, 반드시 이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 두 마을의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하겠습니다. 남편이 저와 이혼한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이혼당할 각오를 했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위챗으로 ‘잘 지내고 날이 많이 춥다. 옷 따뜻하게 입어. 밖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늘 조심하고,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라는 메시지와 함께 겨울옷을 사 입으라며 4천 위안까지 보내 준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남편에게 크게 얽매이지는 않게 되었지만, 서기의 핍박은 멈추지 않았고 게다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죽어도 뒤돌아서지 않으리>라는 찬양을 듣게 되었습니다.

말세의 인자가 진리 선포하시고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시네. 나는 하나님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보고 하나님을 따르게 됐네. 사탄,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의 선민을 미친 듯이 탄압하고 체포하니, 그리스도를 따르며 본분을 이행하는 이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네. 어쩌면 어느 날, 하나님을 증거하다 체포되어 박해받는다 해도 나는 이것이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임을 분명히 아네. 어쩌면 어느 날,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간다 해도 이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받아야 할 고난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네. 복음 전하는 이 길을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한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리.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헌신하리. 이번 생에 그리스도를 따르고 증거할 수 있어 내 마음 더없이 자랑스럽네. 설령 하나님나라가 실현되는 그날을 보지 못한다 해도 오늘날 증거하여 사탄에게 수치를 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만족하네. 핍박과 환난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하나님은 나의 든든한 방패시라. 어쩌면 내 생명이 마치 순간 떨어지는 불꽃과 같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힘 있게 증거한 것이네.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다했으니, 원망도 후회도 없네.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으니 이번 생은 헛되지 않았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니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네.

하나님 말씀 천하에 널리 퍼지고, 그리스도의 나라 인간 세상에 나타났네. 하나님은 재난 속에서 이미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셨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 있네. 어둠은 곧 지나가고 공의로운 서광이 이미 비치었네. 하나님이 사탄, 큰 붉은 용을 물리치셨으니 영광 얻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네.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중에서

이 찬양을 듣고 저는 깊은 감동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제가 이 두 마을에 가서 새 신자들을 양육하다가 붙잡혀 핍박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날을 보지 못한 채 붙잡혀 핍박받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나라 복음을 널리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이 환경을 겪어 낼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서기는 우리가 매일 아침 6시에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5시부터 자기 집 마당에 불을 피워 놓고 우리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행여나 발각될까 봐 전조등을 끄거나, 아예 시동을 끈 채 오토바이를 끌고 지나갔습니다. 산에 오를 때도 두려운 마음에 손전등도 켜지 못했고, 비가 올 때는 마을 외곽에 있는 형제자매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예배가 끝나면 어떤 형제자매는 장작을 지고 집에 갔고, 어떤 이는 소를 몰고 갔으며, 또 어떤 이는 나물을 캐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서기가 마당에서 불을 쬐며 우리를 기다렸지만, 단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가리셨음을 알았습니다. 이런 환경을 겪으며 저는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에 대해 조금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두 마을 사람들 중 서기 부부와 인성이 좋지 않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서기의 남동생, 여동생, 제수, 장인까지도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또 그들을 통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당시 70~80명이 받아들였습니다. 서기가 아무리 핍박해도 이 새 신자들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했고, 받아들이는 새 신자는 끊임없이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성령 역사로 이룬 성과입니다. 사탄이 어떤 방식을 쓰든 복음 사역의 확장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비록 육적으로 고생도 조금 했고 정부의 핍박과 남편의 교란을 겪으며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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