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드디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다

저는 소회의 한 사역자였습니다. 1997년 4월, 한 사역자 모임에서 리더였던 장 형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동방번개’를 전하는 사람들이 한 무리 생겨났는데, 아주 대단합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이 매우 풍부해서 방심하면 미혹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돌아오셨다고 말하며, 예배 시간에 성경은 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봅니다. 성경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명확히 알려 줍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은 주님을 믿는 우리의 반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곧 성경을 믿는 것이고, 성경을 떠나는 것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며 주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맞장구쳤습니다. 장 형제님은 또 손을 휘저으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수준 높고 훌륭하다 해도 성경에 없는 것이라면 절대 믿어서는 안 됩니다. 친부모님이 전하더라도 믿지 마십시오! 만약 그들이 여러분의 집에 와서 전도한다면 쫓아내야 합니다! 만약 미혹되어 그들을 따라간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니,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당시 저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담긴 건 다 주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폐해질 수 있겠어? 성경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통행증이자 생명의 보장이야. 성경을 보지 않는 것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니 나는 성경을 굳게 지켜야겠다.’ 그 후 장 형제님은 또 흉흉한 소문들을 퍼뜨렸고, 저는 그 말을 진짜로 믿었습니다. 양떼를 보호하고 주님의 도를 수호하기 위해, 저는 집에 돌아와 신도들에게 ‘동방번개’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동방번개’를 받아들이는 형제자매들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장 형제님이 류 자매가 ‘동방번개’에 이끌려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믿기지 않았습니다. ‘류 자매는 성경을 깊이 알고 설교도 잘하는데, 그렇게 자질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이끌려갈 수 있지?’ 나중에 장 형제님과 자주 함께 설교하던 왕 형제님마저 ‘동방번개’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동방번개’ 사람들을 절대 영접하지 말고, 듣지도 보지도 말라고 하는데, 왜 계속해서 형제자매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러 가는 걸까? 도대체 ‘동방번개’의 도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그들의 책에는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을까? 왕 형제님과 류 자매 같은 사역자들은 모두 추구하는 마음과 믿음도 크고, 자주 설교하고 성경도 깊이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끌려갈 수 있었을까? 우리 교회는 회복교회라 다른 교파보다 더 수준 높은 도를 전하는데, 설마 동방번개의 도가 우리 소회가 전하는 도보다 더 수준 높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들이 하나둘씩 다 이끌려가서 아무리 설득해도 돌아오지 않겠어?’ 그 후, 장 형제님은 ‘동방번개’를 전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기도 모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행동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과 같다고 하셨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는데, 그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지 않나?’ 저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 10월 말, 조카딸이 저희 집에 와서는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시어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3단계 사역을 하셨는데, 율법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이 첫 번째 단계 사역을, 은혜시대의 예수님이 두 번째 단계 사역을, 하나님나라시대의 하나님이 세 번째 단계 사역을 하셨으며, 그 3단계 사역은 단계마다 점차 깊어지고 높아진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카딸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것 같아 말을 끊었습니다. “첫 번째 단계가 율법시대고 두 번째 단계가 은혜시대인 걸 너한테 들어야 알겠니? 내가 모르겠어? 몇 단계 사역이든 성경을 안 보면 안 돼. 믿으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니, 성경 외에 다른 건 믿으면 안 된다고. 얘야, 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그들은 주님이 돌아오셨다고 하는데, 주님이 어디 계시니? 누가 봤는데?” 조카딸이 말했습니다. “주님은 돌아오셔서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어요. 하나님을 뵙고 싶으면 하나님 말씀에서 구해야 해요. 이모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저는 더욱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장 형제님이 성경에 없는 것이라면 아무리 수준 높은 도라도 들어서는 안 되며, 그 누구든 ‘동방번개’를 전하면 친척이나 친구라도 영접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저는 조카딸을 꾸짖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전부 성경에 있지 않니? 성경 외에 다른 도는 아무리 수준 높고 좋아도 믿으면 안 돼! 네가 성경을 몇 년이나 읽었다고 그래? 네가 뭘 알아? 미혹되고도 모르면서 나한테 전도까지 하다니! 나를 보러 온 거면 며칠 더 있다 가고, 복음을 전할 거면 당장 가거라. 앞으로 너랑 의절할 거야!” 조카딸이 말했습니다. “이모, 다시 한번 알아보세요! 이모는 주님을 믿은 지 오래됐고 고생도 많이 하셨잖아요. 만약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다 허사로 돌아가요. 제가 참도를 받아들이고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이모였어요.” 조카딸이 아무리 설득해도 저는 듣지 않았고, 결국 조카딸은 울면서 떠났습니다. 그 후 저도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조카딸이 이렇게 멀리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쫓아내 버리다니, 이것도 주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인데!’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 아이는 주님을 배반했으니 쫓아낸 것도 잘못은 아니지.’

2003년 1월 어느 날, 조카딸에게서 자기 엄마가 가스에 중독되었으니 보러 와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그 기회에 다시 한번 얘기해서 조카딸이 ‘동방번개’의 도를 포기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언니를 만나 보고 저녁을 먹고 나니 한 형제님이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그를 경계했습니다. 형제님이 물었습니다. “자매님, 주님이 오시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분이시라면 저도 같이 성경에 대해 교제할 수 있지만, ‘동방번개’를 믿으라고 권하러 오셨다면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성경 말씀만 믿고, 성경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저도 예전에는 자매님처럼 성경을 굳게 지켰으니까요. 그럼 오늘은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눠 보시죠.” 그 순간, 저는 그들의 도가 아무리 좋고 수준 높아도 미혹될 수 있으니 절대 듣지 말라던 장 형제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곤해서 쉬러 가야겠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다음날에는 두 자매님이 찾아왔지만, 저는 그때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당시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밖에 눈이 잔뜩 쌓여 차 운행이 중단되는 바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온통 장 형제님의 말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두 자매님은 제게 잘 들어 보라고,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중 한 자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계시록에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라고 쓰여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깨우쳐 주시겠어요?” 저는 두 자매님이 몸가짐도 하나같이 단정하고 올바르며, 사람에게 사랑이 넘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안 좋은 태도로 대해도 결코 화내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으로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장 형제님이 말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속의 반감도 조금씩 누그러졌습니다. 셋째 날, 몇몇 형제자매님들이 찾아왔을 때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라는 말씀처럼, 성경에 있는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주님을 믿을 때는 성경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지 않으니 주님의 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까?”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먼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말씀이 누구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인지부터 살펴보시죠.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이 말씀은 바울이 한 말이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형제님은 그렇게 말하며 성경을 꺼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보니 정말로 바울이 한 말이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왜 평소에 그 구절을 보기만 하고, 그 문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이어서 형제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어 주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그만큼만 말씀했고, 성경에 있는 그만큼의 말들은 모두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신구약 66권은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람의 치우친 이해 방식으로, 사실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에는 사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쓴 서신은 사람이 한 일이었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며, 여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격려이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선지자도 아니었고, 요한이 본 이상(異象)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들은 당시 에베소, 고린도, 갈라디아 등등 교회에 써 보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바울 서신은 바울이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이지, 성령이 묵시한 것도, 성령이 직접 한 말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서신은 다만 바울이 사역하는 기간에 쓴 여러 교회에 대한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자 당시 그가 했던 많은 사역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써 준 것이고, 또한 당시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그의 권유를 듣고 예수가 전한 회개의 도를 준행하라는 것이기도 했다. 바울은 당시의 교회든, 그 이후의 교회든 모두 그가 써 준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 말들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당시 교회의 상황에 대해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권면하며, 믿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또 그는 단지 설교하거나 일깨워 주고 권면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감과 연관 지어 말했고, 그런 말로 그들을 붙들어 준 것에 그쳤다. 당시 교회들의 사도로 사역한 바울은 예수가 쓴 일꾼이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교회에 대해 책임지고, 교회의 사역을 담당하며, 형제자매들의 상태를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긍정적이었던 바울의 말은 모두 옳았다. 하지만 바울의 말은 성령의 말씀도, 하나님도 대변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만일 사람의 체험에 대한 기록과 사람의 서신을 성령이 교회들에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법이고, 크나큰 모독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형제님은 계속해서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명확하게 나와 있듯이,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계시하신 예언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율법시대에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기록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이집트를 탈출했는지와 야곱과 다윗, 솔로몬의 체험 등은 모두 사람의 체험이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와 같이 성경에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사람의 말이고 사람의 체험과 인식입니다. 사람의 말은 설령 성령의 깨우침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 사역의 역사 기록이자 증거일 뿐, 성경 말씀이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전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형제님의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좀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 성경이 전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은 아니었구나. 사람의 말도 섞여 있는 거였어. 만약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혼동해서는 안 되지. 소회에서는 지금껏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이렇게 명확하게 나눠 주지 않았어. 이런 교제는 처음 들어 보네.’ 형제님이 또 말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성경 외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역이나 말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성경에 있는 말씀만으로도 완비되어 있는 것이라고 여겼죠.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문제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호기심이 생겨 저는 서둘러 물었습니다. “어떤 중요한 문제를 간과했다는 건가요?” 형제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이 먼저입니까, 성경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이 더 큽니까, 성경이 더 큽니까?” 그 질문을 듣고 저는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기에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계실 때는 아직 성경이 없었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불쑥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그다음에 성경이 생겼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더 크시죠.” 그렇게 말하고 나니 눈앞이 환해지는 듯했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더 크신데, 나는 이전에 성경을 하나님보다 더 높게 여겼으니 잘못된 거였네?’ 형제님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성경 기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성경 안에 가두고 성경 밖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여기는 우리의 관점이 맞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시죠. 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 13절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계시록 2장 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아직 사람에게 이르지 않은 것이 많다고 명확히 알려 주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님은 말세에 다시 오셔서 더 많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모든 진리와 비밀을 사람에게 열어 주시어 사람이 깨닫고 진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말세에 성령이 교회들에게 음성을 발하시고, 작은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감추었던 만나를 말세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 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이런 예언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세에 오셔서 더 많은 말씀을 선포하실 것이며, 이는 모두 성경에 없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하고 풍부한데, 성경을 벗어나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성경에 부합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동방번개 사람들은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시고 새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건 성경 밖의 말씀이니 성경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약 그들이 전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성경 밖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 저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날 밤, 저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형제님의 교제가 아주 좋았고 성경적 근거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정말 장 형제님의 말처럼 ‘성경 밖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주님의 예언은 이루어질 수 없고 작은 두루마리도 펼쳐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특별 예배에서 장 형제님이 그 무리는 성경에 정통하니, 그들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수준 높고 훌륭해도 절대 듣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만약 잘못 믿는 거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라고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은 성경은 덧붙이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읽는데,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제가 잘못 믿는다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형제님은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그런 걸 염려하고 계셨군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기에 언제든 폐해지지 않습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덧붙이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사람이 덧붙이거나 줄이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사역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까지 덧붙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서 새 사역을 하시고 새 말씀을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을 구약 성경에 덧붙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맞아, 성경에서는 예언에 관해서 사람이 덧붙이거나 줄이지 말라고 했지, 하나님께서 새 말씀을 하지 않으실 거라고 하지는 않았어.’ 그 순간 저는 마음이 아주 환해졌고, 형제님의 교제에도 흥미가 생겼습니다.

형제님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몇 구절 더 읽어 주었고, 저는 성경의 내막과 성경을 어떻게 올바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한단 말이냐? 성경이 크겠느냐, 하나님이 크겠느냐?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한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는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고 구약의 그 계명들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반면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고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 아니더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안식일의 주인인 그가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신약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새 사역을 개척한 것이었다. 예수는 구약시대의 사역대로 하지 않았고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했던 말씀에 맞추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사역을 했다. 그는 더 새로운 사역, 율법보다 더 높은 사역을 했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던 것이다. 그가 이룬 것에 따라 수많은 규례가 깨졌다. 안식일에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을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으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까지 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법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였다. 하지만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 예수가 한 그 사역들은 여호와가 구약시대에 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구약 율법을 뛰어넘었으며, 구약 율법보다 더 높아졌다. 그는 구약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다. 은혜시대에 이미 구약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고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건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고수하며 예수를 정죄하였다. 이는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교계도 성경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은 거룩한 책이므로 반드시 봐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은 그 어느 때에도 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이므로 폐할 수 없지요. 그러니 안식일은 언제라도 꼭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너무 그릇된 자 아니겠느냐? 예수가 당시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은 어찌 된 일이겠느냐? 예수가 죄를 짓기라도 했단 말이냐? 누가 그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사람의 이해 능력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본다 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순수하게 알기는커녕 갈수록 관념이 많아져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관념에 의해 끝장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형벌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형제님이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역하신 후에 사람이 그 사역의 사실을 기록하고 편집하여 성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단지 역사책이자 하나님께서 행하신 앞선 두 단계 사역의 기록일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은 여호와께서 율법시대에 행하신 사역의 기록으로,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와 율법시대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에 행하신 사역의 기록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기록하여 사람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과 말씀 역시 구약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 보기에는 그것도 성경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는 성경 외에 덧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 높아진 것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은혜시대 사역의 기초 위에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을 여시고 새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작은 두루마리가 이미 펼쳐진 것입니다. 어찌 이것을 성경에 덧붙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작은 두루마리의 비밀이 모두 열린 것을 보게 된다면, 나아가 이 말씀들이 모두 현시대 인류에게 필요하고 인류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된 진리임을 알게 된다면, 과연 다시 종교계로 돌아가 매일 사람이 강해 주는 성경 이야기를 듣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은혜시대에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새 말씀을 선포하시고 새 사역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면, 다시 성전으로 돌아가 바리새인들이 구약 성경을 강론하는 것을 들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벗어나고 성경보다 더 높은 새 사역을 하셨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새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제님의 말에 저는 완전히 설득되어 더는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너무 숭배해서 성경을 하나님보다 더 높게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또한 ‘동방번개’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성경을 부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 발걸음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약을 위주로 성경을 보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님의 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돌아오신 주님이라면,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놓친다면, 그렇다면 나는 미련한 처녀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저는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만약 정말로 주님이 돌아오셨다면, 저는 제 자신을 내려놓고 관념에서 벗어나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따르겠습니다. 만약 주님의 사역이 맞다면, 주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든든하고 평안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곧 생명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로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는 일이 없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글귀와 도리, 나아가 죽음뿐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생명과 함께 공존한다. 진리의 근원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분명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온몸은 상상과 관념을 제외하면 너의 육체, 즉 구린내가 진동하는 육체에 불과할 것이다. 명심해라. 책의 글귀는 생명으로 삼을 수 없고, 역사적 기록은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는 하나님이 오늘날 한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한 말씀만이 진리이자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오늘날의 사역 방식이다.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 했던 말씀의 기록을 오늘날에도 고수한다면 너는 고고학자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역사ㆍ문화재 전문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너는 늘 하나님이 과거에 사역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지난날 인간 세상에서 사역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오래전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해 준 도만 믿을 뿐, 하나님이 오늘날 사역하는 방향이나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 오늘날 선포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공상가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글귀만 고수하고 있다면 너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나무와 다름없다. 너는 너무나 고집스럽게 낡은 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며 너무나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말세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며,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는 곧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역사(歷史)를 고수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 아니겠느냐?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기세가 크고 드높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새로운 시대로 너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설마 이런 차이가 너를 반성케 하지 못하는 것이냐? 네가 그 속의 비밀을 깨닫게 하지 못하는 것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말세에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저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며, 하나님의 풍부함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님께서 과거에 하셨던 사역을 죽어라 지켰습니다. 주님께서 말세에 돌아와 새 사역을 하시는데도, 저는 주님의 과거 말씀과 사역을 오늘날에 가져와 지키려 했으니,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고고학자였던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자신이 과거에 하셨던 사역에 미련을 두지 않으시고 또 새 사역을 하시는데, 저는 하나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고수하며 심지어 그것으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늠하려 했으니,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제가 계속해서 성경만 죽어라 지키며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는 주님을 믿어도 결국 생명도, 주님의 인정도 얻지 못할 것이고, 천국에 들어갈 생각은 아예 할 수도 없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가슴이 찔리는 듯 부끄러웠고, 얼굴이 화끈거렸으며, 마음속 깊이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기쁘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기뻤던 것은 마침내 예수님께서 돌아오신 것을 맞이했기 때문이었고, 부끄러웠던 것은 제가 너무나 눈이 멀어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헛소문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듭 거절하면서도 그것이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완고했던지요! 이전에 저는 헛소문을 믿고 교회를 봉쇄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갓 받아들인 형제자매들을 다시 종교계로 끌어들이는 등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소회에서 매일 바쁘게 사역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대적하고 맞서는 일에 바빴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행한 악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마찬가지로 형제자매들 앞에서 천국의 문을 닫아 버리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많이 저질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저의 악행대로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형제자매들을 보내 복음을 전해 주시고 저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마음속의 자책감과 죄책감을 억누를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침대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당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돌아오셨군요. 지금 저는 너무나 벅차고 기쁘면서도,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당신께서 사람을 보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건만, 저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종교 지도자들이 퍼뜨린 헛소문을 믿고 관념을 고수하며 수차례 당신을 문밖에 두고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들이 당신 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가로막고, 바리새인처럼 당신을 성경 안에 규정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틀렸습니다. 저는 너무나 눈이 멀었습니다! 당신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더는 바리새인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당신의 사역 발걸음을 따르고자 합니다.” 기도를 마치자 저는 마음이 환해지고 후련해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면서 제 마음속의 의문은 모두 풀렸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야말로 제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재림하신 예수님임을 온 마음으로 확신했습니다. 마음이 무척 벅차올라 어서 빨리 돌아가 그 기쁜 소식을 형제자매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먼저 친정으로 가서 몇몇 형제자매들을 전도했습니다. 그 후 다시 제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 같은 교파의 리 자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리 자매는 듣고 매우 기뻐하며 참도를 알아보려 했지만, 뜻밖에도 소회 사역자들이 방해하여 다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소회 사역자들은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을 알고 저를 출교시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속박받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회유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세 명씩 저희 집에 찾아와 울면서 소회로 돌아오라고 애원하고는, 저를 출교시킨 것이 잘못이었다며 사과했습니다. 지난 수년간 그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며, 같이 사역자 모임에 참여했던 시간들이 영화 속 장면들처럼 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마음이 무척 아파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들에게 미련이 남아 끊어 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이미 돌아오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제가 그들을 따라 종교계로 돌아간다면 당신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구원을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양심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도 후에, 저는 갑자기 형제님이 읽어 주었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교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각 단계 사역과 모든 일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이는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교란이었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저는 그들이 형제자매들을 보내 제게 애원하고, 듣기 좋은 말로 저를 추켜세우게 한 것 안에 사탄의 간계가 숨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그런 회유책으로 미혹하여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수법에 넘어가서는 안 됐습니다. 그들은 저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열흘 뒤에 장 형제님이 또다시 십여 명의 사역자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와서 저를 방해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주님이 돌아오셨는데, 그들은 소회의 우두머리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관념과 황당한 논리를 퍼뜨려 우리를 미혹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정죄하고 있어. 내가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하면 다들 구하고 알아보려고 하는데, 내가 가기 무섭게 그들이 뒤따라와 형제자매들을 다시 데려가지. 그런 그들이 과연 주님을 믿는 사람들일까?’ 저는 바리새인들을 정죄하고 저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으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게 되면 너희보다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도다(마 23:15) 형제님 무리의 행동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것을 보고도 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으며, 심지어 거짓으로 증거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의 본성 본질은 하나님을 증오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따르는데도, 장 형제님 무리는 알아보려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대적하고 정죄하며 교회를 봉쇄하고, 헛소문과 황당한 논리를 퍼뜨려 신도들이 참도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공포심을 주며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이 자기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옥에 가게 만들었으니, 그들이야말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아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는 바리새인이자 산 귀신이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그들에 대해 분별력이 생겼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본질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방해하든 저는 더 이상 그들의 수법에 넘어가지 않고,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이끌어 종교 지도자들이 퍼뜨린 헛소문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적극적으로 복음 전도의 대열에 합류하여 형제자매들과 함께 협력하여 소회에서 삼십여 명을 전도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보며 하나님을 따르는 제 믿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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