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내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던 이유
예전에 이웃들과 어울려 지낼 때,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누구에게 잘못된 점이 보일 때마다 바로 지적했고, 그 결과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일쑤였습니다. 이웃들은 뒤에서 수군댔습니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왜 저렇게 어리석은 짓만 골라 할까?” 시간이 지나자 이웃들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그녀가 다가오면 하면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그녀는 점점 고립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람들과 지낼 때는 절대 그 이웃처럼 생각나는 대로 바로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래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담에도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말이 있듯, 상대의 문제가 보이면 저 혼자 알고 있으면 그만이지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다가는 상대의 체면을 깎아 미움을 사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문제가 보여도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위 이웃들은 모두 저와 교제하기를 좋아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와서 이야기했으며, 저더러 인간관계가 좋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형제자매들과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문제나 패괴 성품이 드러나도 지적하거나 폭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사자를 난처하게 만들고 약점을 들추는 것이라 미움을 사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몇 가지 일을 겪고 나서야 저는 이런 처세술에 따라 사는 것이 모두 진리를 거스르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3년 9월 중순, 저는 한 교회에서 리더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가, 복음 전도 사역을 하는 자오전(趙珍) 자매가 성품이 교만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말해서 함께 지낼 때 자매에게 속박을 받는다며, 저더러 자매의 문제를 교제하고 해부하여 자매가 자신을 인식하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해부하고 도와줘야 해. 안 그러면 자매는 계속 교만한 성품으로 말하고 행동할 테고, 그럼 형제자매들이 속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역에도 영향이 있을 거야.’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이 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자오전 자매와 잘 알지도 못하는데, 오자마자 자매를 폭로하고 해부하면 난처해하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지?’ 이런저런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마지못해 자오전 자매를 찾아갔습니다. 막상 자매를 마주하니 입에 테이프를 붙인 듯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데, 만약 자매의 미움을 사게 되면 내 발등을 찍는 셈이 아닐까? 해부하고 폭로하는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래서 저는 자매에게 앞으로는 말할 때 방식을 주의하고, 언짢은 티를 내지 않아야 다른 사람이 속박받지 않는다고 가볍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오전 자매는 제 말을 듣고 “제가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해서 그렇지 다른 뜻은 없어요. 앞으로 주의할게요.”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오전 자매가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약간의 가책을 느꼈지만,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단 몇 가지 문제는 지적해 줬으니, 다음에 또 교만하게 굴면 그때 가서 교제하고 폭로하자.’ 얼마 후, 양육 집사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에 따르면 양육 팀장인 왕훙(王紅) 자매가 몇 번이나 안전상 우려가 있다고 핑계를 대며 본분도 이행하지 않고, 예배에도 불참하고, 자신이 맡은 두 팀도 내팽개쳤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알아보니까, 자매는 체포되어 감옥에 갈까 봐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내적 상태로 지내며 늘 누군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의심했고, 여러 차례 교제해 주었지만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양육 집사는 제가 가서 교제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왕훙 자매와 빨리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왕훙 자매와 만난 적도 없는데, 오자마자 자매의 문제를 폭로하면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만약 왕훙 자매의 미움을 사면 어떡하지? 이 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 해부하고 폭로해서 모두에게 밉보이고, 반감을 사서 고립되면, 앞으로 리더 사역을 하기 힘들어질 거야. 아무래도 우선은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교회 각 방면의 사역에 익숙해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그래서 저는 왕훙 자매를 찾아가지 않고 양육 집사에게 교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사가 교제한 후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왕훙 자매의 문제는 계속 미뤄졌고, 자매는 한 달 넘게 예배에도 불참하고 본분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 후, 윗선 리더가 편지를 보내 저희의 본분 이행 상황을 알아보면서, 형제자매의 편차나 문제, 패괴된 상태를 발견했을 때 즉시 지적하고 도와주었는지 물었습니다. 편지에는 리더 일꾼의 직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인용되어 있었는데, 저는 그 말씀을 보고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 형제자매들이 자오전 자매의 문제를 보고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자오전 자매에게 가볍게 문제를 언급했을 뿐, 자매가 교만한 성품으로 행동하는 것의 성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해부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자오전 자매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고, 교만한 성품에도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또, 왕훙 자매가 두려움 속에 살면서 예배와 본분에 불참하는데도 저는 교제하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리더로서 형제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니,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이런 생각에 속으로 죄스럽고 편치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자오전 자매를 찾아가, 자매가 교만한 성품으로 행했던 여러 모습과 그 성질 및 결과를 폭로하고 해부해 주었습니다. 자오전 자매는 제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바로잡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양육 집사와 함께 왕훙 자매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하여 자매의 문제를 교제하고 해부해 주었습니다. 왕훙 자매는 자신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패괴 성품을 인식했고, 나중에는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교제한 뒤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의 미움을 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보고, 저는 왜 더 일찍 교제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했습니다.
그 후 저는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어떤 패괴 성품 때문에 내가 형제자매의 문제를 감히 폭로하고 해부하지 못하는 걸까?’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리더로서 형제자매의 문제를 발견하면 마땅히 진리를 교제하여 지적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 문제를 보고도 감히 교제하거나 폭로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시어 저 자신을 알고 공과를 배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구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속을 꿰뚫어 보아도 다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로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즉,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다 터놓고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약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들추더라도 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누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사회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회관계에서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지키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때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들추더라도 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분명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교활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마음을 나눌 사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들추더라도 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미움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가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처세 철학에 따라 사는 것은 자신을 점점 더 간사하고 음흉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진심 어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유익한 말이라고 해도 감히 꺼내지 못해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처세술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바로 이런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며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말을 생존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나 부족한 점이 보이면 완곡하게 한번 말해주면 되지, 폭로하고 해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다가는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서 적을 만들게 되고,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이에서 누군가 잘못하는 것을 보아도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미움을 사서 고립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이런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저는 교회 리더로서 형제자매에게서 어떤 패괴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마땅히 사랑으로 돕고 그들의 문제를 지적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질적인 사역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자오전 자매의 문제를 보고했을 때, 저는 만약 교제하고 해부하여 자매가 깨닫고 바로잡도록 돕지 않으면 더 많은 형제자매가 속박을 받고 사역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매의 미움을 사서 앞으로 지내기 불편하고, 리더 사역도 하기 힘들어질까 봐 두려워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 결국 자오전 자매는 자신의 교만한 성품에 대해 별다른 인식이 없었고, 별로 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왕훙 자매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왕훙 자매가 겁을 먹고 두려워하며 예배에도, 본분에도 불참하여 이미 사역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첫 만남에 자매의 문제를 폭로하고 해부하면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겠지. 혹시라도 미움을 사면 어쩌지?’ 그래서 자매의 문제를 폭로하고 지적하기를 꺼렸고, 심지어 잔꾀를 부려 그 문제를 양육 집사에게 떠넘겨 해결하게 했습니다. 저는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이었지만, 사실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해를 입혔고 사역도 지체시켰습니다. 만약 제가 좀더 일찍 진리를 실행하여 자오전 자매와 왕훙 자매의 문제를 폭로하고 해부했다면, 그들도 좀더 일찍 자신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교회 사역과 그들의 생명 진입에 손해를 끼치는 일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말은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라, 둥글둥글하고 간사한 처세 수단이며, 진리와 완전히 위배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계속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산다면, 남과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많이 저지르고, 교회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와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사고, 결국에는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들추더라도 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라는 말은 좋은 것이냐? 이 ‘들추다’는 단어에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인류의 언어를 통해 이 ‘들추다’는 단어에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악의적으로 남을 폭로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사람의 문제점이나 결점, 또는 아무도 모르는 일, 행위, 그리고 이면의 음모나 사상 관점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들추더라도 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는 단어의 뜻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 마음이 통하고 마음의 벽이 없다면, 또 상대가 자신으로부터 이로움과 도움을 얻었으면 한다면, 앉아서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정당한 일이지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상대의 문제를 발견했는데 상대가 네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면, 아예 말하지 마라. 분쟁이나 충돌이 생기지 않게 말이다. 네가 그를 도와주고 싶다면, 그의 의견을 구하며 먼저 “저는 당신의 문제점을 발견했고, 의견을 말해 주고 싶은데 당신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받아들이겠다면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지금은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물어봐도 된다. 그가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적절하고 저는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허락받은 것과 같다. 그때 하나씩 문제점을 교제해 주면 된다. 상대가 전부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유익도 얻게 되고, 두 사람은 정상적인 관계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솔하게 대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올바르게 지내는 방식이지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무엇이 약점을 들추는 것이고, 무엇이 올바른 지적과 도움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약점을 들추는 것은 악의적인 공격입니다. 일부러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 사생활, 그리고 가장 꺼리는 일을 끄집어내어 폭로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난감하게 만드는 것으로 남에게 상처만 입히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 집에서 형제자매가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원칙을 어기며 일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들의 문제를 폭로하여 해부하고 지적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은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유익하며, 이런 식의 해부와 폭로는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돕는 것입니다. 자오전 자매의 문제를 대할 때,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하여 자매의 교만한 성품을 폭로하고 해부한 것은 자매가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인식하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자매에게 변화가 생기고 생명에 진입하게 되면 형제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하여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으니, 이는 자매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또, 제가 왕훙 자매의 이기적이고 자신만 보전하려는 문제를 교제하고 해부한 것도, 자매가 자신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 본질을 알아 회개하고 변화하여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니, 이 또한 왕훙 자매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폭로와 해부는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긍정적인 것이지,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닙니다. 약점을 들추는 것인지, 올바르게 지적하고 돕는 것인지는 주로 그 사람이 일하는 마음가짐과 출발점에 달려 있습니다. 또, 저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고 해부하면 미움을 사고 적을 만들어 리더 사역을 하기 힘들어질까 봐 늘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만 신경 썼습니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 집은 사회와 다릅니다.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이기에,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반드시 진리 원칙에 따라 일해야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의존해서 사역을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이 너무나 치우쳐 있고,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어떤 패괴 성품 때문에 내가 감히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성에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양심과 이성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양심과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성이 없는 사람, 인성이 몹시 나쁜 사람이다. 자세히 말하면, 이런 사람에게 인성을 상실한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느냐? 이 부류의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일할 때 건성으로 하고, 자기와 무관한 일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는다. 본분 이행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 이런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양심과 이성이 없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일하는데 자책을 느끼겠느냐? 이런 사람에게는 자책이 없다. 이런 사람의 양심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가 한 번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본 적이 없는데 성령이 질책하고 징계한다고 한들 느낄 수 있겠느냐? 느끼지 못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저는 제가 한 일들에 대해 자책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은 본분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이 있어 언제나 교회의 이익을 고려하고, 누군가 교회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오는 행동을 하면 폭로하고 해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성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거나 적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합니다. 자신의 이익만 지키고 무골 호인 노릇만 할 뿐, 교회의 이익은 조금도 지키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반성해 보니,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인성이 매우 나쁘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자오전 자매에게 속박받아 교회 사역과 그들의 생명 진입이 지장을 받았다는 사실과, 왕훙 자매가 안전상 우려가 있다는 핑계로 본분을 내팽개쳤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교회 리더인 제가 마땅히 빨리 그들을 찾아가 교제하고 해부하여,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어떤 해악과 결과가 있을지 깨닫게 하고, 제때에 상태를 바로잡아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미움을 사면 그들이 제게 반감을 품고 저를 고립시킬까 봐 교제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오직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좋은 인상을 남길 생각만 했으며, 교회의 이익과 형제자매의 생명에 초래될 피해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으며, 정의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의 그런 행동은 전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회개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급기야 하나님의 혐오를 사서 도태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제가 한 일에 대해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도 죄송하고, 형제자매들에게도 미안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인성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되어, 앞으로 당신의 뜻을 헤아리고 교회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기도하며 구하는 가운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이 기초 위에서 다른 사람과도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진다. 만약 너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든, 어떻게 노력하고 힘을 쓰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할 뿐이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처세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너의 위치를 지키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는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른 이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길 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다른 이의 관계는 육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서 맺어진 것으로, 육적인 왕래는 거의 없으나 영적으로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공급하게 된다. 이 모든 행함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 위에서 이뤄지며,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이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형제자매와 지낼 때 마땅히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하고, 형제자매에게서 어떤 패괴 성품을 발견하면 사랑으로 교제하고 도와주어, 형제자매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생명에 진입하도록 해야지, 처세 철학에 의지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가 폭로하고 해부해 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라면 모두 올바르게 대할 수 있고, 나중에는 달라질 것입니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지적과 폭로가 임하면 따지고 반항하는데, 이는 그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의 분별력을 키워 주기도 합니다. 그 후, 저는 양육 집사가 본분에 부담이 없고 사역을 시행할 때 일을 질질 끌며, 심지어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모른다는 핑계를 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여 본분에 좀 더 부담을 갖게 하고 싶었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직접적으로 문제를 폭로해서 미움을 사면, 앞으로 우리 둘이 어떻게 협력한담?’ 여기까지 생각하니 약간 망설여졌습니다. 그때 예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제가 또다시 사탄의 처세 철학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아무리 잘 유지한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의지를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양육 집사가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의 성질과 결과에 대해 교제해 주었습니다. 교제 후,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했고,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하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지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