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더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자포자기하지 않게 되다

2023년 11월, 저는 설교문을 심사하는 본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리더를 맡았을 때 자질이 부족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감당하지 못해 교체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싶어 그 후로 적극적으로 원칙을 배웠습니다. 배운 원칙을 본분에 잘 적용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성장하는 다른 형제자매를 보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에 반해 저의 경우는 배울 때는 이해하는 것 같다가도 막상 실제로 적용할 때는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식으로 척척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심사한 설교문에는 늘 편차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난 자질이 너무 부족해. 좋은 자질과 이해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나 봐. 예전에 리더를 맡았을 때도 몇 가지 사역을 책임졌지만, 자질이 부족하고 사역 능력이 없어 본분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지. 지금은 설교문 심사라는 한 가지 사역만 배우는데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이 본분마저 잘 해내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기회는 사라지고 말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배울 의욕이 사라졌고, 자질이 부족해서 배워 봤자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형식적으로만 본분을 이행할 뿐 원칙에 힘쓰려 하지 않았고, 제가 심사한 설교문에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자오잉(趙瑩) 자매를 배치해 저를 돕게 했습니다. 저는 자오잉 자매에게 잘 배워서 하루빨리 원칙을 파악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오잉 자매는 자질도 좋고 이해력도 있어서 원칙을 배우면 바로 적용하고 본분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는 반면 저는 자질도 부족하고 이해 능력도 없어 본분 이행의 성과가 안 좋은 것을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은 자질로 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까? 만약 잘 해내지 못해서 도태되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되지 않을까?’ 그러고는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저희는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좋은 자질을 주시고 제게는 이렇게 부족한 자질을 주셨나요?’ 그렇게 생각할수록 제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임을 깨닫고 나니 계속 그런 생각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 후, 자오잉 자매는 제 설교문 심사의 편차에 대해 제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자매가 저의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짚어 주자 저는 더욱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이 본분을 이행한 지 몇 달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많은 걸 보니 제 자질로는 정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칙을 배울 때 자오잉 자매가 저에게 교제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 같은 자질로는 교제해 봤자 나중에 적용도 못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몇 마디만 했고, 결국 원칙을 배우는 이틀 동안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제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질이 부족해서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해 교체되고 도태될 것이라는 생각만 합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그 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는 사람의 자질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근원적인 문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사람의 자질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본분을 대하는 태도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지닌 자질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최선을 다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분을 대하는 저의 태도를 보면, 저는 제가 심사한 설교문에 많은 편차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소극적으로 변해 저 자신을 규정했습니다. 배워야 할 것은 배웠으니 제 자질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원칙을 파악할 수 없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을 거라며 더 노력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도 역사하여 이끌어 주실 수 없으니, 본분이 제대로 이행될 리 없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문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이렇게 규정해 버린다. 자신이 아무리 추구해도 하나님의 요구에 이를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고 그냥 이 정도라고 생각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아무런 진리도 얻지 못한다. 너 스스로도 노력하여 추구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며 자포자기하고, 늘 소극적인 내적 상태 속에서 살다가 결국 깨달아야 하는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진리도 실행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자기 자질이 수준 미달이라는 말만 내세우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떻든 간에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아 조금이나마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자포자기하고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면, 일말의 양심과 이성도 없는 폐물이다. 자질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네게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네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과 사명을 잘 완수해야 한다. 탈주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심각한 일이며,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너무 소극적이고 나약한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수도 없고, 진리를 얻어 성품 변화에 도달할 가망성은 더더욱 없다. 진리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제 상태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원칙을 배우면 실제로 활용해 본분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는데, 저는 배우고 나서도 발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늘 편차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질과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규정하고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원칙에 힘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자오잉 자매를 배치하여 저를 지도하게 한 것은 저는 물론 사역에도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오잉 자매가 자질이 좋고 원칙도 금방 깨달아 본분에서 성과를 내는 것을 보고는, 자매의 장점을 배워 제 부족함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게 좋은 자질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질이 부족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저 자신을 규정하고 본분 이행의 의욕마저 잃었으며, 원칙을 묵상하는 데 힘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나 유약하고 의지가 없는 제 모습이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인성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본분에 책임감을 갖습니다. 설령 어려움이 있더라도 소극적으로 변해 태만하게 굴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으며, 본분에 화풀이하지도 않고, 더욱이 하나님께 따지거나 하나님을 오해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 자질이 부족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는 원칙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성의하고 형식적으로 본분을 이행한 결과, 제가 심사한 설교문에 많은 편차와 문제가 발생하여 사역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토록 많은 진리를 공급해 주시고 저를 도와 줄 형제자매를 안배해 주셨음에도,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했던 저는 어려움이 닥치자 도망치려 했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누릴 자격이 없었습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정말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묵상하고 나니 더 이상 이렇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본분을 대해서는 안 되며,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조금씩 찾게 되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질은 형편없어도 내 마음은 정직하네.”, 이 말은 듣기에 참 현실적이고 여기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들어 있다. 어떤 요구이냐? 바로 자질이 부족해도 괜찮지만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역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너는 어떤 상황, 어떤 배경에서도 반드시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정직한 말을 하며, 정직하게 일을 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과 뜻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며, 꾀를 부리지 말고,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 되지 말고, 거짓말하거나 기만하지 말아야 하며,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에 근거해 일을 해야 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자질이 너무 부족해 아무리 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늘 기준에 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과 힘을 다해서 일을 하지만 늘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성과가 여전히 별로 좋지 않다 보니, 결국에는 자신의 자질이 부족함을 원망하게 되고 소극적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자질이 부족하면 길이 없는 것이냐? 자질이 부족한 것은 죽을병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구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예전에 하나님은 정직하지만 우매한 사람들 때문에 슬퍼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우매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 많은 경우 우매함은 자질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리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깊이 깨닫지 못하고, 늘 겉면에 머물고, 글귀, 도리, 규례만을 이해하는 데 그친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원하지 않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길과 방향은 무엇이냐?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입으로 말만 하면 정직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자질이 부족한 것은 불치병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저마다 다른 요구를 하십니다. 사람이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대하고, 깨달은 만큼 진리를 실행하며, 본분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도태시키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자질이 부족하다 보니 원칙에 대해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식으로 하지 못하고 자매만큼 이해력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원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느릴 뿐이니,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 더 힘쓰면 됩니다. 자매가 제 설교문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면, 그 문제에 맞춰 원칙을 배워 저의 부족함을 보완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자 제게 주신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소극적이지 않게 되었고, 제 앞날에 대해 따져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좋은 실행의 길을 본받아 착실하게 원칙을 배우고, 요령을 피우거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소극적으로 변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경영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한 자신의 모습을 알았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을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얼마간 헌신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얼마간 바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기대 살아가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해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복받는 것과 연관 짓고 조심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본인이 복과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게 아니라, 본분을 이행하면서 바치고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복을 받는 것이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이 변화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제 모습이 적그리스도와 똑같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로, 교회에서 새 신자 양육 본분을 맡기든, 리더 일꾼의 본분을 맡기든, 저는 기꺼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며 협력하고자 했습니다. 본분을 많이 이행하고 선행을 많이 쌓아야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질이 부족하여 리더 본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원칙을 배워도 설교문 심사에 적용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아무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도태되고 구원의 희망도 사라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한 저는 소극적으로 변해 저 자신을 규정하고 자포자기했으며, 본분도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이행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던 것은 사실 하나님과 거래하고, 하나님을 기만하거나 이용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익에 눈이 먼 비열한 소인배였습니다. 제가 계속 거래하려는 속셈을 품고 본분을 이행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는 구원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도태되어 징벌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묵상하고 나서 심한 자책감이 든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혜를 베풀어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는데, 저는 늘 복받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섬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섬김 본분은 이행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 사람에게 최종적으로 이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몇 가지이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우선 진심으로 추구하고 능동적으로 향상하려고 노력해야지, 이 일을 소극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누구나 온전케 될 기회가 있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말에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네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아 이 세 가지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의 자질이 저마다 다르고 사람에 대한 요구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질이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자질에 맞는 요구를 하시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족한 자질에 맞는 요구를 하십니다. 자질이 좋든 나쁘든, 사람이 충성을 다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만 하면 구원받을 기회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지 못한 채, 자질이 부족한 저는 구원받을 수 없고, 자질이 좋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구원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너무나 치우친 관점이었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지,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 충성과 순종으로 본분을 이행하는지를 근거로 판단합니다. 제가 알던 한 지역 리더가 생각났습니다. 그 자매는 머리가 좋고 자질도 있어서 형제자매들에게 꽤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본분을 이행할 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자기에게 교제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던 그녀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출교되었습니다. 반면, 다른 한 자매는 자질은 좀 부족했지만 매우 성실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으며, 본분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저는 자질이 좋고 이해력이 있더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비록 자질이 부족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진리 원칙을 모두 실행에 옮기고, 온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젠가 정말 본분을 감당하지 못해 교체된다 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좋은 자질과 은사를 주시지 않은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성품이 교만했던 저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형제자매들과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굴어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질이 부족하여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난관에 부딪히니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구하며, 형제자매들의 건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패괴 성품으로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피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자질이 부족한 것이 저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원칙과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묵상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제 본분 이행에 발전이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제가 한 자매에게 제 체험을 교제해 주자, 그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요즘 확실히 예전보다 성장하신 것 같아요. 자질이 부족한 건 괜찮아요. 우리가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여 성령님의 역사를 받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자질을 채워 주시니까요.” 저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이 그 부족함을 메워 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깨달았다면 마땅히 실행해야 한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질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후에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본래 자질을 바탕으로 그를 깨우치시고 이끌어서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찾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21. 은혜만 누리려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다음: 23. 내가 질투심을 해결한 방법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2. ‘죽음의 시련’ 속에서

한국 싱다오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모든...

설정

  • 텍스트 설정
  • 테마

색상

테마

폰트

폰트 사이즈 조정

줄 간격 조정

줄 간격

페이지 너비

목차

검색

  • 페이지 내 검색
  • 도서 내 검색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