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화기애애한 것이 곧 화목을 의미할까요?
2022년 초, 저는 몇몇 교회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 동역자 몇몇이 사역을 논의할 때 챠오이 형제님이 한 교회에서 팡칭 자매를 리더로 선출했다고 말했습니다. 팡칭 자매라는 말을 듣자 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팡칭은 이전에 리더로 사역할 때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고, 늘 명리를 다투었으며, 심지어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을 배척하여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어. 결국 적그리스도의 길을 갔다는 이유로 교체됐지. 이전의 과오에 대해 깨달은 걸까? 만약 회개하지 않았다면 다시 리더로 선출되는 건 적합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교회는 주로 챠오이 형제가 책임지고 있는데, 내가 우려를 제기하면 일부러 자기를 곤란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면 앞으로 협력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됐어, 나는 팡칭 자매를 잘 알지도 못하고, 자매가 자신에 대해 참되게 인식했는지 아닌지는 챠오이 형제가 나보다 더 잘 알지 않겠어? 이 일은 그냥 언급하지 말자.’ 저는 미움을 살까 봐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협력하던 다른 몇몇 형제자매들도 팡칭 자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보통이지만, 한동안 훈련시켜 보고 적합하지 않으면 그때 교체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팡칭 자매가 적합하다고 여기는데 저만 다른 의견이라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팡칭 자매의 현재 실제 상황을 나도 잘 모르는데, 혹시라도 정말 회개했다면 다들 내가 사람을 쉽게 규정하고 인성이 안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됐어, 그냥 말하지 말자.’
어느 날 밤, 한 자매가 제게 물었습니다. “팡칭 자매는 이전의 과오를 깨달았나요? 리더가 될 조건을 갖추었나요? 어떤 원칙에 근거해서 판단하신 건지 모르겠어요.” 당시 연이은 질문에 저는 어쩔 줄 몰랐지만,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매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이전에 팡칭 자매가 인도자로 사역할 때 명리를 다투어 교회 사역에 심각한 방해와 교란을 가져왔어요. 게다가 예배 때 교제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매는 자신에 대해 별로 반성하거나 인식한 게 없는 것 같던데요. 다시 리더로 선출된 후에 옛 병이 도져서 교회 사역에 해가 될까 봐 걱정돼요. 그녀의 태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매의 우려를 듣고 매우 괴로웠습니다. 사실 저도 똑같은 우려를 하고 있었지만, 챠오이 형제에게서 제가 일부러 자기를 곤란하게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웠고, 다른 협력하는 형제자매들도 모두 동의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모두의 의견을 따랐던 것입니다. 리더를 선출하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제가 그렇게 건성으로 대하다니, 정말 너무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뒤척이며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저는 몇몇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을 찾아가 이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오이 형제는 그 말을 듣고 다시 관계자들을 찾아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았습니다. 결국, 모두 팡칭 자매가 이전의 잘못에 대해 별다른 인식이 없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 리더에 적합하지 않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하여 팡칭 자매를 교체했습니다. 일이 끝난 후, 저는 더욱 죄책감과 자책감에 휩싸였습니다. ‘이번 팡칭 자매의 리더 선출 건에 대해 나는 분명 다른 의견이 있었으면서도 발표하지 않고 그저 모두의 의견을 따르기만 했으니, 정말 너무나 무책임했어!’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골호인이라, 누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봐도 고발하거나 폭로하지 않고,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하면서 자기 주관 없이 대세를 따른다.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보고도 순종하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며, 늘 절충하고 타협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인성이 있는 것 같고, 선을 넘지 않으며, 양심과 이성도 얼마간 지니고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 관점을 말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은 어떠하냐?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 아니겠느냐? 간사한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일이 닥쳤을 때 가볍게 입을 열거나 어떤 관점도 말하지 않고 늘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성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사람이 매우 잘 위장하고 있으며, 속내를 숨기고 꿍꿍이가 많다는 의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 이런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겠느냐? 하나님을 대할 때나 진리를 대할 때 순종할 수 있고, 본분이나 각종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모두 원칙이 있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모두가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모든 사람의 실제 상황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속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다른 이의 험담을 하는 법도 없고, 다른 이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도, 다른 이의 재물을 탐하지도 않는다고 내세운다. 심지어 이해 갈등이 생길 때면 자신이 손해를 보면 봤지 남에게서 이득을 챙기지 않아,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분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린 적이 없고 심지어는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으며, 어떤 원칙도 없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이는 인성이 좋은 것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성이 좋다는 기준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심을 가지고 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하며, 교회 사역이 손해를 입는 것을 보았을 때 용감하게 일어서서 말하고 저지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인성이 있는 것이고 정직한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문제를 보고도 의견을 발표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면,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속을 알 수 없고, 교활하며 간사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팡칭 자매의 일에 대해 저 자신을 반성해 보니, 저는 분명 마음속으로 그녀가 이전의 잘못에 대해 별다른 반성과 인식이 없을까 봐 걱정했고, 만약 다시 리더로 선출되면 옛 병이 도져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모두 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까, 동역자들이 저를 오해할까 두려웠고, 또 만약 제 관점이 틀려서 다들 저보고 사람을 쉽게 단정하고 인성이 좋지 않다고 할까 봐 걱정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심고 동역자들과의 화기애애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는 교회 사역이 손해를 입든 말든 침묵을 선택하고 좋은 사람인 척했습니다. 제 인성은 정말 너무나 간사하고 비열했습니다! 제가 겉으로 잘 위장하니까 주변 형제자매들은 제 속마음을 전혀 몰랐고, 심지어 제가 말하기 편하고 사람들과 전혀 충돌하지 않으며 인성이 좋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 마음속 생각은 하나님께서 모두 감찰하십니다. 저는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고 늘 사람들과의 관계만 지키려 했으니, 이것이 어찌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다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너무나 혐오하실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만약 너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든, 어떻게 노력하고 힘을 쓰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할 뿐이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처세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너의 위치를 지키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는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른 이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길 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다른 이의 관계는 육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서 맺어진 것으로, 육적인 왕래는 거의 없으나 영적으로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공급하게 된다. 이 모든 행함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 위에서 이뤄지며,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이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마음을 맡겨야 하며, 사탄의 처세 철학으로 육적인 관계를 지키려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지위나 이미지를 고려해서도 안 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다하고 모든 일을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적으로 될 것입니다. 반면, 처세 철학에 의지해 지키는 관계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닐뿐더러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고, 그런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팡칭 자매의 일에서 제가 무책임하게 대세를 따르고,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비위를 맞춰 좋은 말을 하라, 고지식하면 미움을 받는다’와 같은 사탄 철학에 따라 살면서, 그렇게 사람들과 지내면 충돌이 생기지 않고 관계를 지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저는 이런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면서 점점 더 교활하고 간사해졌고, 일이 생기면 먼저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인 화목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협력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진실함이 없었고, 서로 돕거나 제약하는 역할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 몇몇에게 함께 협력하여 본분을 다하도록 안배한 것은, 바로 우리가 몇몇 중대한 일에서 서로 감독하고 검토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책임하게 좋은 사람 역할만 하면서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지 않아 교회 사역에 손해를 끼쳤으니, 정말 너무나 무책임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계속해서 ‘도대체 무엇이 진정으로 조화로운 협력일까?’ 하고 구했습니다. 한 자매가 제게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싶다면 우선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는 형제자매와 협력할 때 ‘조화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것이 그와 조화를 이루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와 조화를 이루는가? 나의 이러한 방법이 그와 조화를 이루는가?’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조화로운 협력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조화롭다는 것은 인내와 양보, 포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입장을 견지하고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조건적 타협도 아니고, 무골호인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이것이 원칙이다. 네가 이 몇 가지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면 말하거나 행동할 때 너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게 되고, 진리의 실제를 살아 내게 된다. 이러면 하나가 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조화로운 협력에 관하여> 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제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저도 파트너가 있어요. 파트너는 저와 아주 잘 협력한다고요. 제가 어디를 가든 따라오고 무얼 하든 따라 하죠. 가라는 데로 가고요.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든 다 시키는 대로 한다니까요.” 이게 파트너겠느냐? 이는 파트너가 아니라 졸개이다. 졸개는 무엇이든 네가 시키는 대로 하는데 이게 파트너겠느냐? 이는 노예임이 분명하다. 생각도, 관점도 없고 주관은 더더욱 없는 데다가 무골호인 성향까지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건성으로 형식만 갖추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도 않는다. 이런 파트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누구와 협력하든 절대 복종하며, 노예처럼 말하는 대로 따르고 하라는 대로 한다. 이것은 협력이 아니다. 협력이란 무엇이겠느냐? 일이 생기면 상의하고 관점이나 견해를 밝히며 서로 보완하고 감독하는 것, 그리고 서로 구하고 의논하고 일러 주는 것이야말로 조화로운 협력이다. 예를 들어, 네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일은 잘못 처리했어요. 철저히 원칙을 위배했다고요. 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처리했죠?”라고 말하는 걸 듣고 네가 “그러게요. 당신이 일깨워 줘서 다행이에요.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큰 화를 부를 뻔했어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서로 일러 주는 것이다. 그럼 상호 감독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이런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너는 그와 적극적으로 교제하며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라고 그에게 일깨워 주면서 스스로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호 감독이다. 상호 감독하면 무슨 작용을 하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동시에 사람이 길에 잘못 들지 않게 할 수 있다. 협력의 작용은 서로 일러 주고 감독하는 것 외에 서로 의견을 묻는 것도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신 것은 바로 제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형제자매들과 협력할 때 마치 꼭두각시처럼 제 관점을 발표하지 않아 아무런 감독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협력은 서로 일깨워 주고 감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패괴 성품이 많아 본분을 다할 때 자기 뜻을 따르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파트너끼리 서로 지적하고 돕거나 책망하고 훈계할 수 있다면, 사역에 손실을 가져오는 것과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부족한 점이 많아서 많은 문제를 전반적으로 고려할 수 없는데, 때로는 협력하는 사람이나 동역자의 일깨움이 바로 오류를 즉시 바로잡고 사역상의 실수를 줄일 수 있게 합니다. 협력하는 사람들 사이의 감독과 일깨움은 정말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늘 협력하는 사람들 사이가 화기애애해야만 그것이 조화로운 협력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건의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라고 여겼으니, 제 사물을 보는 관점은 정말 너무나 편협하고 그릇되었습니다! 사실, 조화로운 협력은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원칙과 입장을 지키고 정의감을 가지며, 협력하는 형제자매가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일깨워 주거나 책망하고 훈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일부러 사람을 곤란하게 하거나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교회 사역을 지키는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제가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지 않고, 알고도 모르는 체했으니, 이것이 어찌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처세 철학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본분에 무책임한 모습이며, 이런 협력은 전혀 감독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생각을 하니, 저 자신이 조금 미워졌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어느 정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실행하는 길이 옳고, 네가 나아가는 방향이 옳으면, 너의 앞날 또한 아름답고 빛날 것이다. 그럼 너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평안할 것이고 영적으로 윤택할 것이며 충실하고 즐거울 것이다. 만약 육적인 속박이라는 이 관문을 돌파하지 못한 채 늘 감정과 이익, 사탄의 철학에 속박되고, 언행이 늘 수상쩍고 떳떳하지 못하다면, 이는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육적인 속박의 관문을 돌파하고 진리를 실행하면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언행 모두 떳떳하고 당당해지고, 어떤 관점, 생각이나 잘못한 일도 모두 드러내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 줄 수 있다. 마지막에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투명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투명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느냐? 매우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그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그가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할지라도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고 용서해 준다. 그 자신 역시 그것을 의식하면 바로 사과하고 시정한다. 이것이 바로 투명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가 좋아하고 신뢰한다. 네가 이런 정도에 이르러 하나님의 신임을 얻고 사람들의 신임도 얻는다면, 이는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엄이며, 이런 사람이 바로 자존감 있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과 행동이 광명정대하고, 어떤 관점이나 생각이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모두와 상의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고, 존엄성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 후 우리가 다시 문제를 토론할 때, 저는 의식적으로 제 생각과 관점을 꺼내어 협력하는 형제자매들과 솔직하게 교제했고, 더는 숨기거나 포장하며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미숙한 생각이라도 제기했고, 만약 제 관점이 틀리면 체면을 내려놓고 모두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좀 더 평안하고 안정되었습니다.
하루는 모두 리샤오 자매를 교회로 다시 받아들일지 여부를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리샤오 자매는 성품이 교만하여 일관되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여러 차례 교제했지만 자매는 시종일관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심해져 형제자매들 앞에서 리더를 판단하여 교회 생활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격리 반성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 후에는 여전히 본분을 이행했고, 얼마 전에는 복음 전도 성과도 괜찮았습니다. 몇몇 동역자들이 잇달아 리샤오 자매를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는 데 동의했지만, 저는 속으로 좀 망설여졌습니다. ‘자매는 복음 전도 성과는 좀 있지만, 성품이 좀 악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니야. 게다가 예전 자신의 악행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것도 없고 회개하는 모습도 안 보였는데, 일시적으로 복음 전도에 성과가 좀 있다고 다시 교회로 받아들이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몇 동역자들이 이미 동의했는데, 만약 나만 동의하지 않으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늘 그들의 의견과 다르고, 너무 까다롭고 어울리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다들 동의했으니,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저는 갑자기 팡칭 자매의 일에서 제가 무책임하게 대세를 따르고 진리 원칙을 고수하지 못해서 결국 교회 사역에 차질을 빚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좀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역자들이 모두 리샤오 자매를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는 데 동의했지만, 제 마음은 늘 불안합니다. 이번에는 더는 얼떨결에 함부로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를 원하오니, 저를 깨우쳐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 후, 저는 교회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원칙을 찾아보았습니다. 원칙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일관되게 오만방자하고 이간질하는 사람은 구제 불능이며, 악인은 영원히 악인이고 진실한 회개가 불가능하다.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절대 교회 일을 방해하지 않고 대다수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하며, 오직 이런 사람만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적합하고, 교회에 해롭기만 하고 이롭지 않은 사람은 절대 교회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요. 다시 리샤오 자매의 경우를 보면, 자매는 성품이 비교적 교만하고 일관되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아무리 교제해도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았죠. 설령 일시적으로 복음 전도에 성과가 있다 해도, 자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옛 병이 도져 계속해서 교회 사역에 교란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이런 사람은 교회로 받아들이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제 관점을 발표했고, 몇몇 동역자들도 제 관점에 찬성하여 결국 리샤오 자매는 교회로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고 제 마음은 매우 평안했고, 이렇게 본분을 다하니 마음이 매우 안정되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본분을 다할 때 정직한 마음을 갖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본분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와 진리를 실행하며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교회 사역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