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부모님의 은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중국 광시 쑤웨이

어릴 적 저희 집은 형편이 어려워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무시당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우리 가족을 외면했습니다. 어머니는 입만 열면 저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집안의 체면을 세워야 해!”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공부해 항상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교통사고를 비롯한 여러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으며 외과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을 때마다 가족들은 인상을 찌푸렸고, 어머니는 제 수술 때문에 돈을 그렇게 많이 쓰지만 않았어도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가난하진 않았을 거라며 푸념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후 저는 명문 고등학교에 무사히 입학했습니다. 학업을 포기하고 일찍 돈을 벌어 가계의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시며 오히려 열심히 공부하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큰 감동을 받았고, 언젠가는 꼭 부모님께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학업은 줄곧 순조로웠습니다. 대입 후 순조롭게 4년제 본과 대학에 합격했고, 나중에는 명문 대학 대학원에도 진학했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은 몹시 어려웠고 부모님은 잦은 병치레로 힘든 일을 하실 수 없었으며, 집에는 늘 빚이 있었습니다. 매년 설에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저는 어머니께 친척, 친구들에게 빚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여쭈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저에게 아버지가 집안을 부양하고 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일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전부 육체 노동이라 매일 마른 옷을 입고 출근해 젖은 옷으로 퇴근하셨다며, 가족의 기대를 저버려선 안 되고, 훗날 양심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저는 깊은 밤 이불 속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며, 나중에 일을 하게 되면 매달 일정 금액의 급여를 부모님께 드려서 부모님이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졸업 후, 취업하고 난 다음달에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숨결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양육에 따라, 저는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써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었고,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가끔 부모님을 뵈러 두 분이 일하시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늘어만 가는 부모님의 흰머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무척 죄스러웠습니다.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어 두 분께 효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두 분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찾아갈 때마다 물건이나 건강식품을 사 드리며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했습니다. 2021년, 제가 속한 교회가 대대적인 체포에 직면했고, 저 역시 체포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로 저는 잡혀가지 않았지만, 이후 가족들과는 더 이상 연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저와 연락이 닿지 않아서 분명 걱정하고 계실 거라는 생각에 커다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여러 번 사고를 겪으며 부모님께서 나 때문에 애도 많이 태우셨고, 이때까지 고생스럽게 날 키우신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 돈 잘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지는 못할망정 나 때문에 걱정하고 마음 졸이게 만들다니, 나는 정말 불효자야!’ 마음이 찢어질 듯 괴롭고, 부모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울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형제자매가 교제해 주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연배의 형제자매를 볼 때면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연세도 있으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실 텐데,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아프면 치료할 돈이 없는 건 아닐까?’ 그 시기 저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부모님을 걱정하고 있었고 본분도 형식적으로만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제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길 때면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가면 잡혀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에 얽매이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고, 제 문제를 조금 인식하게 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너는 부모의 기대 속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느냐? (시험을 반드시 잘 봐야 하고 나중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꼭 성공해야 하고, 꼭 어머니의 사랑과 고생스레 치른 대가를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하고, 꼭 어머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너를 위해 전부를 바쳤으며, 생명으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치른 그런 대가와 그들의 교육, 그들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전부 무엇이 되느냐? 네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 되는 동시에 네 짐이 된다. 그 짐은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부모가 그러는 것이 본능 때문이든, 사랑 때문이든, 아니면 이 사회에서 필연적인 것이든 아무튼 부모는 그러한 방식으로 너를 교육하고, 대하고, 심지어는 네게 갖가지 생각을 주입한다. 결국 네 마음이 얻는 것은 자유, 해방, 위로, 기쁨이 아니다. 그들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느냐? 압박감, 공포, 양심의 가책, 불안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멍에와 결박이 있습니다.) 멍에와 결박이다. 그리고 바로 부모의 이러한 기대 속에서 너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기대를 위해 살아간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들을 실망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매일 열심히, 꾸준하게 모든 과목을 공부하고 그들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것은 바로 제 상태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저에게 부모님이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으니, 커서 양심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친척들과 이웃들도 우리 집이 가난한데도 부모님이 계속해서 제 학업을 지원해 주셨으니, 반드시 보답하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의 헌신을 직접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몇 차례 사고를 당했을 때, 부모님은 수술비 걱정으로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였고, 저를 공부시키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이러한 가르침을 주입받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집안 형편을 개선하고 부모님을 잘살게 해 드리는 것을 제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높은 학력을 얻고자 노력했고, 앞으로 삶이 어떻게 되든 매달 급여 일부를 부모님께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본분을 선택했을 때, 부모님께 면목이 없었습니다. 이후 중공의 박해와 체포 위협 때문에 가족과 연락할 수 없게 되자, 저는 더욱 저 자신을 탓하며 제가 불효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학교에 보내 주셨는데, 지금 저는 간신히 졸업하고도 돈을 벌어 부모님께 보답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걱정만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깊은 죄책감과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부모님 연배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모님이 떠올라서 본분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본분을 내버려 둔 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가정과 사회가 저에게 주입한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와 같은 전통 사상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려 마치 굴레처럼 저를 옥죄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인생의 바른길이며 마땅한 도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분에 전념하지 못했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곧 양심 없고 배은망덕한 자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또다른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지금까지 저를 향한 부모님의 헌신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말해 보자.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일을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가 너를 낳은 것에 대해 살펴보자.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이냐, 아니면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이냐? 누가 누구를 택했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아니다.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도 아니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운명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일은 사람이 이해하기 쉬우니 이 주제는 일단 제쳐 두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네 관점에서 보면 너는 수동적으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들에 의해 태어났다. 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주관적으로 너를 낳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본다면 네가 태어난 일에서 주도권은 부모에게 있다. 그들이 너를 낳기로 했으니 그들에게 주도권이 있다. 너는 그들에게서 태어날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태어났다. 너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 부모가 주도권을 가지고 너를 낳기로 선택했다면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고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너를 공부시키든, 먹이고 입히며 돈을 쓰든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이다. 하지만 너는 양육받는 동안 늘 수동적인 입장이다. 네게는 선택권이 없고 그들에게 양육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는 어리고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손에 수동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너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난다. 부모가 네게 좋은 것을 먹이면 좋은 것을 먹고, 부모가 네게 제공하는 생활 환경이 고달프고 빈곤하면 너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양육받는 동안 너는 수동적이고, 부모는 책임을 다한다. 부모가 꽃을 키우는 것과 같다. 화분의 꽃을 키우기로 했으면 비료와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채권자가 아니며,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부모의 자발적인 선택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기로 했다면, 자녀를 양육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얼마나 희생했든, 그것은 부모로서의 당연한 책임이며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예정하신 규율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자연계에서 새끼를 낳고 기르는 수많은 생물들도 단지 조물주가 정해 놓은 규율과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기로 결정했다면 자녀를 키워야 하고, 자녀에게 자유를 주어서 본인 인생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길러준 것을 내세워 보답을 요구하거나, 자녀가 인생의 길을 선택할 자유를 희생시켜 가며 자신이 잘살고자 하는 바람을 실현한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이며, 그런 부모는 너무나 이기적인 부모입니다. 저는 제가 왜 돈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희생과 보살핌을 은혜로 여기고, 부모님을 마치 제 채권자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돈을 벌 능력이 생기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효자이고, 배은망덕하고 인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물을 바라보는 저의 이런 관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기르고 보살핀 것은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한 것이고, 저는 부모님께 무엇을 빚지지도 않았고, 부모님의 기대를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어떤 인생길을 가야 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고, 이른바 은혜에 매여 인생의 자유를 잃거나, 심지어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걸어온 삶의 각 단계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 예기치 못한 사고들을 여러 차례 겪었지만 모두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질주하는 승용차에 부딪혀 도로 건너편으로 튕겨 나가 의식을 잃었지만, 깨어나 보니 뼈에 약간 금이 가고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었습니다. 또 한번은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상황은 매우 참혹하고 폭력적이었지만 뇌 손상도 없었고, 얼굴도 다치지 않았으며, 머리를 몇 바늘 꿰매고 뼈 한 군데가 골절되었을 뿐 큰 이상은 없었습니다. 제가 성장하면서 겪은 일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를 두고 운이 정말 좋다고 했으나, 사실 그것은 제가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 덕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인생의 길이 있고,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부모님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기대라는 문제에 있어서 너는 어떠한 짐도 짊어지지 말아야 한다. 네가 부모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도 네 운명은 이렇고, 네가 부모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려도 네 운명은 이렇다. 네 앞에 펼쳐진 길은 정해진 그대로다. 하나님이 이미 예정해 두었다. 마찬가지로, 네가 부모의 기대에 미쳤고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으며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해서 과연 그들을 호강시켜 줄 수 있겠느냐? 고생하고 모욕당할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겠느냐? (바꾸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가 자기를 키워 준 은혜가 너무나 크고, 자기를 키우는 동안 부모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일자리를 얻은 다음 고생을 견디고, 괴로움을 참으며, 근면하게, 열심히 일해서 큰돈을 벌고 부자가 되어 나중에 부모를 떵떵거리며 살게 해 주려고 한다. 양옥에 살며 세단을 타고 좋은 것을 먹고 마시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몇 년 바쁘게 일해서 생활 환경과 조건이 좋아졌지만 부모는 하루도 복을 누려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만약 네가 흘러가는 대로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고 그 짐을 짊어지지 않았다면 어느 날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었을 것이다. 부모에게 보답하려고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서 잘살게 됐는데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면 네 심정이 어떻겠느냐? 본분을 이행할 시간도 허비하고 진리를 얻을 시간도 허비했는데 남은 생을 잘 보낼 수 있겠느냐? (잘 보낼 수 없습니다.) 네 인생이 영향을 받게 되고, 너는 영원히 ‘부모를 저버렸다’는 짐을 진 채로 남은 생을 살게 된다. … 부모가 자녀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는 자신의 여건과 하나님이 예비한 조건 및 환경을 근거로 해야 한다. 자녀도 부모를 대할 때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조건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근거로 해야 한다. 단지 그뿐이다. 부모 혹은 자녀가 하는 모든 일은 개인의 힘이나 사욕으로 상대방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노력으로 상대방을 더 잘 지내게 하고, 더 행복해지게 하고, 더 뜻대로 풀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모이든 자녀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 속에서 순리를 따라야 한다. 자기 노력이나 자신의 그 어떤 의지로 무언가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부모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부모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이 오래전에 예정해 두었다. 하나님은 네가 그들의 생활 범위 안에서 살고, 그들에게서 나고, 그들에게 정성껏 길러지도록 예정했고 너와 그들 사이가 그런 관계가 되도록 예정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너의 책임은 그저 자신의 여건에 따라 그들과 함께하고 약간의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다. 네가 부모의 현황을 바꾸려 하고 부모를 더 잘 살게 해 주려는 것은 전부 쓸데없는 짓이다. 혹은 이웃과 친척들이 우러러보게 하고, 부모의 면목이 서게 하며, 집안에서 부모의 체면을 세워 주려 한다면 이는 더 불필요한 일이다. 또, 홀어머니나 홀아버지가 버림받은 뒤에 혼자 너를 어른으로 키워 낸 경우, 너는 더욱더 그들이 어려웠으리라 생각하기에 평생을 바쳐 은혜를 갚고 보답하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그들이 네게 요구하는 것, 그들이 네게 기대하는 것, 거기다가 네가 하기를 원하는 것까지 모조리 네 이번 생의 짐이 된다. 이는 전부 옳지 않은 일이다. 창조주 앞에서 너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네가 이번 생에 해야 할 일은 그저 부모에 대한 책임만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더라도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해야지 네 감정 혹은 양심상의 필요에 근거해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묵상하면서,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이 평생 얼마나 고생할지, 좋은 나날을 보낼 수 있을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며, 저와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높은 학력을 가졌다고 해서 돈을 벌어 부모님의 운명을 바꾸고 잘살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인생의 운명이 어떨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지, 어떤 학력을 얻게 될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며, 이는 부모님의 공로가 아닙니다. 제가 높은 학력을 갖고도 일해서 돈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 것도,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며, 높은 학력을 얻고 좋은 직장을 가지면 부모님의 운명을 바꾸어 좋은 나날을 보내게 해 드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부모님의 운명을 정말 바꿀 수 있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제 고모부는 반평생 고된 노동을 하며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애쓰셨고, 결국 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해 대도시에 집도 마련하여 이제 막 가족이 잘살게 되었는데, 고모부는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또 제 외숙모는 힘들게 사촌오빠를 대학에 보냈고, 오빠가 좋은 직장을 가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본연의 일을 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건 고사하고 사기까지 당했습니다. 집에서 십여만 위안을 가져다 투자했다가 몽땅 날린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제 주변에 얼마든지 있으며, 이는 부모와 자녀도 정말 누가 누구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잘살 수 있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저 역시 세상의 흐름을 따라 결혼하고, 집과 차를 사고, 아이를 낳고, 주택 대출과 차량 할부금을 갚으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다면 부모님께 효도할 에너지나 여윳돈이 또 얼마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생활하는 데 압박이 크면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느라 직장을 다니지 않고 돈을 벌지 못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고, 그래서 부모님이 좋은 삶을 누리지 못했다고 여겼는데, 이는 참으로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삶이 어떠할지, 평생 어떤 상황을 겪고 어떤 고생을 할지는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더 이상 사회나 가정이 주입한 그릇된 관점대로 살며 무턱대고 부모님을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모두 어리석고 무의미한 걱정입니다. 저는 하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생명을 주셨고, 은사와 특기를 주셨으며, 다양한 환경을 마련해서 제 식견을 넓혀 주시고 경험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저는 창조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긍정적인 사물을 추구하는 데 제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며,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을 얻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것이며, 피조물인 제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자 본분입니다.

저는 또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았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네가 만약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올바른 진리 원칙, 사상 관점을 준수한다면 삶이 아주 홀가분해질 것이다. 사회 여론이든, 양심의 지각이든, 감정적 짐이든 네가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데 더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모와의 관계를 이성적이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진리 원칙대로 하면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네 마음 깊은 곳은 그 영향을 받지 않고 평안하고 잠잠할 것이다. 적어도 너 자신만큼은 속으로 스스로를 배은망덕하다고 자책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했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는 것은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양심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한다면 너는 배은망덕한 놈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이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고 저는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정과 사회로부터 온 온갖 사악하고 그릇된 사상과 관점에 미혹되어 해를 입고, 마음이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에, 진리를 선포하시고 우리가 점차 이러한 일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올바른 사고방식과 관점을 이용해 이성적으로 그 일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는 창조주의 음성을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가장 정의롭고 의미 있는 일이자, 저의 책임과 사명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제가 상황이 되는데도 일부러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거나 자식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달은 뒤, 저는 더 이상 죄책감과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아야만 치우치거나 그릇된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저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고, 피조물의 책임과 사명, 그리고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훌륭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전통문화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셨고, 제가 마음의 짐을 덜고 자유를 얻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평소 시간이 있을 때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묵상하며 제 부족함을 인식할 수도 있고, 속으로 본분과 관련된 일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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