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병을 앓으면서 배운 공과

2023년 3월, 저는 자주 입이 마르고 시력도 떨어졌습니다. 어떤 때는 예배에 나가면 겨우 십여 분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도, 접대 가정에 도착하면 물부터 찾았습니다. 한 자매가 혈당 검사를 해 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자매의 조언을 들으니, 불현듯 예전에 임신했을 때 임신성 당뇨를 앓고 출산 후에도 혈당이 떨어지지 않아서,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젊으니까 그만한 병은 괜찮아. 당분만 섭취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있어.’ 그 뒤로는 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매와 얘기한 김에 집에 가서 혈당을 재 보았습니다. 이틀 연속 혈당 수치가 15mmol/L 이상이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가 당뇨인게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마흔 두 살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물을 자주 마셨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유전성 당뇨가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도 어머니처럼 일찍 세상을 떠날까 봐 겁이 절로 났습니다. 병으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당뇨가 감기도 아니고, 걸렸다 하면 평생 가는 건데!’ 한동안은 매일 본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고 민간 요법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혈당을 낮출지 고민했습니다. 한번은 사이트를 훑어보는데, 의사가 당뇨병은 합병증이 무척 심각하다며, 실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심하면 사지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무척 괴로웠습니다. ‘이제 겨우 삼십 대인데,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지? 나중에 더 심해져서 눈도 안 보이고, 사지도 잘리면 완전 폐인 신세인데, 그건 죽느니만 못하잖아? 아직 이렇게 젊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장기간 혈당 관리가 안 되면 생명도 위험해질 거야!’ 저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문득문득 발병 후의 모습이 생각나고,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세가 이렇게 심각한데, 본분까지 이행하느라 고생하고 지치면 몸이 더 힘들지 않을까? 건강도 안 좋은데, 본분 이행하면서 아무리 수고하고 대가를 치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죽을 텐데, 뭘 추구해도 다 헛수고인 걸!’

며칠 후에는 A형 독감이 유행했습니다. 아이 셋이 모두 독감으로 열이 나서, 매일 아이들을 데려가 주사를 맞힌 다음, 본분을 이행하러 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왔다 갔다 하느라 무척 피곤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뇨 때문인가? 이렇게 지치면 안 되는데. 그랬다가는 몸이 못 버틸 거야!’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 믿고 얼마 안 돼서 수고하고 헌신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은 왜 병이 낫게 해서 날 지켜주지 않으실까?’ 속으로 원망스럽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힘이 안 났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에서 리더로 있으면서,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했지만, 예배 드릴 때 마음은 늘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오로지 어떻게 병을 고칠까 하는 생각 뿐이었지요. 교회 사역을 할 때도 문제를 발견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고, 문제 해결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려니 속으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 이행할 때 나처럼 바쁘지 않아도 잘만 지내잖아? 너무 바쁘게 지내서 병세가 더 악화되면 안 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고, 죽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어. 내 몸이나 잘 돌보자.’ 며칠 후 아이들 상태가 차례로 좋아지자, 이번에는 제가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침을 하니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고, 예배에 나갈 힘도 없어서 그냥 집에서 쉬었습니다. 문득 본분도 이행하고 집안도 돌보는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지면서, 본분을 하기 싫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속으로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왜 내가 젊은 나이에 이런 병에 걸렸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지 않으시고 내가 이런 병에 걸리도록 놔두시지?’ 며칠 뒤 감기가 나았지만 저는 본분을 이행하러 나가지도 않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본분 관련 일은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지금은 병이나 열심히 치료하자. 원래 당뇨는 피곤하면 안 되는 병인데, 더는 이렇게 바쁘게 살면 안 돼.’ 그때는 하나님 말씀도 보고 싶지 않고, 오로지 병을 고칠 생각 뿐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터무니없는 생각만 하면서 흑암에 빠져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하루는 자오징 자매가 찾아와서, 윗선 리더가 저와 예배 약속을 잡고 사역을 수행하려고 편지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저를 찾았지만 못 만났다면서, 그 때문에 일부 사역이 시행되지 못하고, 일도 좀 지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요즘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예배도 나가지 않고, 본분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양심과 이성이 없을까?’ 저는 자오징에게 최근 내적 상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자매는 이 일에서 하나님 뜻을 많이 구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저는 구하고 고민했습니다. ‘병 앞에서 나는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깨달은 이치가 얼마나 되었든 질병에 걸리면 이겨 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근심과 염려, 걱정이 생겨 이 문제를 담담하게 직시할 수 없다. 오히려 마음속에 원망이 생겨 늘 ‘남들은 걸리지도 않는 병을 왜 나한테 걸리게 하시는 거야?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내 운수랑 팔자가 사나워서겠지. 누구에게 미움을 사거나 죄를 범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하늘도 불공평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가 보아라, 근심과 염려, 걱정 말고도 의기소침에 빠진다. 이런 부정적 정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병은 실질적인 병이라서 잘 가시지도 않고 완치되지도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순종하고 싶어도 순종이 되지 않는다. 오늘 순종했다가 내일 병세가 악화되어 고통이 심해지면 또 순종하고 싶지 않고 원망하게 된다. 늘 이런 식으로 반복되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여기 좋은 방법이 있으니 네게 알려 주겠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병세가 악화되거나 죽음이 닥치게 되면 한 가지만 기억하거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말기 암이거나 사망률이 높은 병일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했든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면 순종이 없는 것이다. “당신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게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죽음을 원한다면 좀 더 수월하게 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째서 죽음을 원하느냐? 죽음을 원하는 것은 극단적인 생각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이 병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죽을 수도 있고, 나이를 떠나 이 병에 걸린 사람의 사망률이 무척 높으며 발병에서 사망까지의 주기가 무척 짧다면 네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누구든 한 번은 죽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런 병에 걸린 김에 순종하는 훈련을 해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겠다. 죽음을 두려워할 순 없어.’ 죽음은 삶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고통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감각이 사라지고, 눈을 한번 감으면 숨이 멈춘다. 그리고 유체가 이탈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죽음의 과정으로, 이토록 단순한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한 측면의 태도이다. 또 네 병이 악화하지는 않을지, 완치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지, 얼마 후면 죽을지, 죽을 때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네가 걱정해야 할 바가 아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니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이 되면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으며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네 운명이다. 네 운명이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고 안배한 것이다. 네 수명, 네가 죽을 나이와 시간을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았는데, 네가 무엇을 걱정하느냐? 네가 걱정한들 그 어떤 사실도 바꿀 수 없으며, 그 사실이 발생하는 것도, 그날이 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네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고 네 병에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병이 났을 때 죽음을 겁내고 걱정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그 일에서 하나님 주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언제 죽을지 정해 놓으셨고,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걱정해도 바꿀 수 없고, 자신에 더 큰 부담만 가져올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병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려는 생각과 태도가 없었습니다. 그저 당뇨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올까봐 그것만 걱정했습니다. 심하면 실명, 사지 절단,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어서 너무 겁이 났습니다. 또 마흔 두 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저도 어머니처럼 젊을 때 죽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완전히 병에 사로잡혀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없었고, 매일 민간 요법만 알아보며 치료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병이 어느 정도로 발전할지, 죽음으로 이어질지 말지는 하나님이께 달렸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기에, 제가 죽고 안 죽고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걱정하고 두려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이 병을 통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며, 죽음을 겁내서는 안 되고, 병이 있다고 본분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됩니다.

하루는 <한 번의 코로나 감염으로 나는 드러났다>라는 체험 간증 영상 한 편을 보았는데, 영상에서 인용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저를 크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날이나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 나아가 면류관에 마음속 깊이 한껏 기대를 품고, 큰 믿음을 갖는다. 또 그들은 이런 속셈과 포부를 갖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다. 그러니 그들이 이행하는 그 본분에 하나님이 바라는 진심과 참된 믿음, 충심이 있겠느냐? 이때는 참된 충심이나 믿음, 진심을 찾아볼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그는 거래하겠다는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익에 이끌리고 야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거래와 교환을 하려는 것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전제 조건은 ‘본분을 이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류에게 예비된 모든 복과 이점들을 다 얻어야 한다고.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속셈과 야심, 욕망을 품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얼마간 진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막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진실한 믿음과 충심이 없다. 그저 그 정도의 열정이 있을 뿐, 진심을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분 이행 태도를 통해 볼 때, 그의 내면은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으며,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면류관을 얻고 상을 받는 등 이점에 대한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교되기 전까지 본분을 이행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버린 것, 고생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을 때도 있다. 그들의 헌신과 그들이 치른 대가, 그들이 뛰어다닌 길은 바울보다 부족하지 않다. 이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의 폭로에 따르면, 적그리스도는 내면 깊은 곳에 앞날과 아름다운 종착지에 대한 사치스러운 욕망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이런 속셈을 품은 채 본분을 이행하며, 오로지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고, 일말의 진심과 충성심도 없습니다. 저 자신을 대조해 보니, 제가 추구하는 방식은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처음 하나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 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아이도 가정도 기꺼이 내려놓고 본분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혈당 수치가 높고, 합병증이 생기면 상황이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면서, 바로 본분을 구석에 내팽개쳤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한 속셈은 그저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되자, 저는 본분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증오하시는 것이 사람의 배반인데, 제가 그런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저는 크게 뉘우쳤습니다. 바울의 집착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그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하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 것은 모두 복과 면류관을 위한 것이었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옳지 않은 길을 가고, 언제나 하나님과 거래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징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한 것도 역시 복과 맞바꾸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과 똑같은 추구 관점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말세에 심판과 형벌 사역을 하시는 목적은, 말씀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로지 은총과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고, 제가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저를 지켜주셔서 병이나 화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관념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러한 추구 관점은 옳지 않고, 하나님 뜻에 맞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관점입니다. 예전에는 제가 무척 열심히 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병을 앓으면서, 제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역시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복을 받지 못하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했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일말의 진심과 충성심도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의 이런 비열한 추구를 혐오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번에 병으로 인한 드러남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고, 제 이런 추구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커다란 유익을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과 하나님의 주재를 사람이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며 받아들이지도 순종하지도 못할 때,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여러 난관에 부딪히거나 여러 난관이 정상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 사람에게 갖은 걱정과 염려, 근심이 무의식적으로 생겨난다. 내일은 어떨지, 모레는 어떨지, 몇 년 후는 어떨지, 미래는 어떨지 모르니, 다양한 일로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일로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게 되는 배경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고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령 사실을 직접 목격한다 해도 인식하지 못하고 믿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도, 사람의 일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불신하게 되고, 그 후에는 원망이 생겨 불순종하게 된다. 원망과 불순종 외에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관하고 주도하려 한다. 그렇게 스스로 주도하는 현실 상황은 어떻겠느냐? 사람이 자기 자질과 역량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기 자질과 역량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이룰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늘 제 병 때문에 근심하고, 고민하고, 걱정했습니다. 늘 혼자서 고민하고 계획할 뿐, 기도로 하나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 출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저는 정말 크리스찬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방인은 병에 걸리면 절망적이고, 무력하고,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스스로 온갖 방법을 찾아 치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시기에 저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치료에 협조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본분도 잘 이행해야 합니다. 돌아보면 저는 2년 넘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동안 하나님의 은총만 누렸고, 매일같이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번에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환경을 안배하신 것은, 제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음을 깨달으라는 뜻이고, 복을 받고자 하는 제 속셈을 정결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제 육을 위해 출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저에게는 진리 실제가 전혀 없었고, 정말 너무나 눈이 멀고 어리석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에 심장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한 자매가 떠올랐습니다. 의사도 가망이 없다고 해서 가족들도 뒷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매는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자매는 병세가 기적적으로 좋아졌고, 얼마 후에는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며 약도 끊고,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했습니다. 나이 든 자매가 병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굳게 섰는데, 제 병은 그만큼 심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무서워하다니, 제가 자매만큼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걱정하고 두려워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제게 마련해 주신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겪어 내기로 했습니다.

그 후, 또 다른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고 질병이라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무척 단순하다. 바로 진리 추구의 외길을 걷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것,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네가 체험한 이 일들에서 네가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바탕으로 얻은 인식과 깨달은 진리 원칙을 모두 실행하여 너의 실제, 너의 생명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한 측면이다. 다른 한 측면은 본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질병 속에 있든 아니면 고통 속에 있든 네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네가 살아 있는 한, 네가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럼 너는 고분고분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해야지, 피조물의 본분과 창조주가 네게 맡긴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죽지 않는 한 너는 너의 본분을 완수해야 하고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숨이 붙어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하고,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본분은 피조물의 천직이자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부탁이기 때문입니다. 제 처지가 어떻든, 저는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이것은 당연히 완수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저는 또한 본분 이행이 복을 받고 화를 입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은 후 성품이 변화해서 얻는 복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아야 하나님께서 열납하고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성품에 변화가 있느냐를 근거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본분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하여 복과 맞바꾸려 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반드시 넘어지고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병이 없더라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고 멸해지지 않을까요? 저에게 병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병에 얽매이지 않으며,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할 때는 약을 먹고, 음식도 조심합니다. 행여나 죽을까 봐 늘 걱정하는 대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병을 앓으면서 너무나 커다란 유익을 얻었고, 하나님 믿는 제 그릇된 추구를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병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아직도 복을 받으려는 속셈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평생을 믿어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상황은 너무나 훌륭하고, 언제나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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