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더 이상 과오에 얽매이지 않아요

2006년 7월 어느 날, 저는 동역자 모임에 가던 길에 돌연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날 저녁 비밀 취조실에 끌려갔는데, 저에게서 교회 자산 증서를 발견한 경찰에게 돌아가며 취조를 당했습니다. 경찰은 교회 자산을 보관하는 집과 윗선 리더의 이름을 대라며 저를 다그쳤습니다. 제가 대답하지 않자 경찰은 가죽 벨트로 저를 때렸습니다. 또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로 저를 매달더니 그렇게 일주일간 괴롭혔습니다. 저는 갈증과 굶주림에 기진맥진해서 자기도 모르게 실신했습니다. 깨어나 보니 그들이 저에게 무얼 마시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온몸이 뼛속까지 아팠습니다. 당시 제 몸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들이 이제 또 저를 어떻게 대할지 알 수가 없어서 무척 겁이 났습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서 유다가 될까 봐, 속으로 제가 굳게 서서 증거하도록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고문으로 이 지경이 되어도 교회 리더와 자산을 발설하지 않자 그들은 방식을 바꿔 혈육의 정으로 저를 유혹했습니다. “집에 못 간지가 벌써 몇 년이야? 가족들도 걱정하고 아이도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고. 교회 돈 어디다 뒀어? 대답만 확실히 하면 보내 주지.” 게다가 돈을 보여 주면서 교회에서 자산을 보관하는 집을 이미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보관 중이던 교회 돈이 이미 경찰 손에 들어간 이상 내가 입을 여나 안 여나 똑같아. 조금만 얘기하면 아마 고문은 면할 수 있겠지.’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재산을 보관하는 집 한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경찰이 저를 앞세워 돈을 가지러 가자고 했을 때 비로소 저는 제가 그들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그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려 한계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보관 가정까지 얘기한 마당에 저들을 데려다 주지 않으면 분명 나를 더 고문하겠지. 게다가 내가 잡혀간 지 이미 일주일이 다 되었는데 지금쯤 교회 자산도 옮겨 놓았을 거야.’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저는 경찰과 함께 보관 가정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교회에서는 제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뒤 교회 자산을 즉시 옮긴 뒤였습니다. 하지만 보관 가정의 형제님이 하마터면 경찰에 잡혀갈 뻔했다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겨우 고비를 넘겼습니다. 경찰은 교회 자산을 찾지 못하자 저에게 아무렇게나 죄명을 씌우고 1년 9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감옥 안에서의 나날은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이 떠오를 때는 더욱 괴로웠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저는 제가 형제 자매를 팔아 넘겨서 유다가 된 일이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고, 이미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저질렀고, 하나님은 분명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 삶은 완전히 끝인지도 모릅니다. 그 뒤로 저는 의기소침해졌고, 하루하루를 무척 고통스럽게 보냈습니다. 마음의 괴로움은 배가 되고, 사는 게 죽느니보다 못했습니다. 어서 죽는 날이 와서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지만 제 과오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저를 원하지 않으실 것만 같고, 제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출소하고 2년이 난 후 형제자매들이 찾아왔고, 제가 자신을 조금이나마 인식하는 것을 보고 저를 교회로 복귀시키고 본분도 안배해 주었습니다. 저는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하나님께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펑펑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당신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상황이 닥쳤을 때 조금도 증거하지 못하고 형제를 팔아 유다가 되고, 치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께서 저에게 교회로 돌아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긍휼을 보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열심히 본분을 이행해서 제 과오를 만회하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속으로 남몰래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기든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제게 닥친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어려움에 얽매이지 않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제 과오를 만회하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 천화가 잡혀간 뒤 유다가 되어 많은 리더 일꾼과 보관 가정을 팔아넘겼고, 그로 인해 제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저 자신이 연상되었습니다. 저 역시 정보를 발설했습니다. 그래서 하마터면 교회 자산을 경찰에게 빼앗길 뻔하고, 보관을 담당한 형제도 그 일로 인해 밖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정보를 발설한 일의 성질은 천화의 경우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오점이고, 하나님도 제 과오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현재 천화는 교회에서 제명되었는데 나도 언제 제명되어 도태될지 장담할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무척 의기소침했습니다. 그 뒤로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안배하면 비록 이행은 했지만 속으로는 예전처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욕이 없었습니다. 가끔 대가를 치르고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할 때도 저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정해진 대로 일하고 힘을 좀 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고, 사역이 성과를 이루었는지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양심에 따라 겨우 본분을 이어 나갈 뿐이었습니다. 당시 한 자매가 잡혀갈 것이 두려워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를 붙잡아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부터가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인데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제를 해 주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교제해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려는 마음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이론적인 인식만 얘기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제 내적 상태를 좋은 방향으로 돌이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커다란 과오 때문에 이미 구원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의욕이 사라졌고, 매일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패괴 성품이 표출될 때도, 진리를 구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사역을 위해서도, 자신의 생명 진입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제가 용서받지 못할 과오를 저질러 앞으로 제명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손에 들고 있는 일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일에는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머리도 자주 아프고, 위장병도 자주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정상적으로 대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병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병이 하나님의 징벌인가? 전에 하나님을 배반해서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를 받았는데, 지금 또 이렇게 아픈 걸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지 않으시는 게 분명해.’ 가끔 본분에 성과가 없을 때면 하나님께서 내게 사역하지 않으시니 아무리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배반한 일이 정말 후회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좀더 견뎠더라면 굳게 서서 증거하지 않았을까? 왜 정보를 발설했을까?’ 육을 너무 돌보느라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도 없었던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만약 그때 굳게 서서 증거했더라면 그런 마음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생각할수록 마음이 좋지 않아서 저는 늘 소극적인 정서로 지냈습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에게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 자매는 저에게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보여 주었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설교를 듣거나 진리를 교제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의기소침함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힐책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떤 인간인데? 과거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인간이었으니 나는 구제 불능인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해 주실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진리 추구를 무엇보다 올바르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직시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범한 잘못, 혹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몹시 안 좋거나 남들에게 정죄와 버림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도 자기를 정죄하리라 여긴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든, 그는 줄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올바르게 마주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체험한 뒤에 최종적으로 얻는 결론이다. 그는 올바른 결론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이것은 저의 내적 상태에 꼭 알맞은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최근 몇 년간은 누군가가 유다가 되어 출교될 때마다 저 자신이 연상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형제자매를 팔고 유다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과오를 남겼는데,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를 원하실까? 그래도 내게 구원의 희망이 있을까?’ 이런 생각만 하면 저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참된 부담이 없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더더욱 나와 무관하게 느끼며 언제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열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을 인도하고 격려하고 권면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감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말씀은 저 같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할 자격도 없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을 자격은 더더욱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유다가 된 천화가 제명된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제가 천화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교회 자산을 팔아넘기고 형제를 팔아넘기는 바람에 형제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집에도 못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보전하기 위해 형제에게 그토록 커다란 재난을 몰고 오다니, 저는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인성이 없었습니다! 제 행동은 유다와 성질이 같습니다. 제 행위를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셔도 되고, 설령 지옥에 떨어뜨린다고 하셔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과오에 따라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 제가 그나마 살아 남아 본분을 이행하는 것부터가 하나님의 은총이요, 높여 주심입니다. 저는 마땅히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패괴를 해결해야 하고, 열심히 회개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과오에 얽매여 제 앞날의 운명을 걱정하느라 의기소침하고 부정적인 정서로 지냈습니다. 갈수록 본분을 수동적으로 이행하며 사역에 손실을 입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명 진입도 지연시켰고,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저와 독대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과오를 저지른 후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반성하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추구하기를 바라시고, 언제라도 진리 추구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깨닫고, 저는 진리를 구해 부정적인 정서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모두 속셈과 목적이 있다고 폭로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앞날의 운명에 관계되어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믿는 일을 무의미하게 생각하고 의기소침한 정서 속에서 지내면서 노력하려는 마음도 갖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때 잘못 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처음 현 단계 사역을 막 받아들였을 때는,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헌신과 대가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잡혀간 뒤에는, 고생하거나 괴롭힘을 당할 것이 두려워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저는 더 이상은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고 믿고 의기소침한 정서로 지내면서 스스로를 규정했습니다. 출소한 뒤로 제가 어떤 본분도 받아들이고 순종하고자 한 것은 속죄하기 위한 것,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지 결코 참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소극적으로 변해서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한 목적은 단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고, 저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바울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초기에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하고 주님의 제자들을 잡아가고 박해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큰 빛으로 그를 치셨는데, 바울은 단지 자신이 죄의 원흉이라고 인정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그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한 것도 속죄를 위한 것이었고, 참된 회개와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역에서 조금 성과를 내자 자신에게 밑천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대놓고 하나님과 거래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8) 바울의 이 말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저주받고 징벌받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 자신이 더욱 미웠습니다. 그토록 커다란 악을 행하고도 하나님과 거래를 하다니, 저는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없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고,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저 자신이 만든 결과입니다. 발에 잡힌 물집도 제가 걸어서 생긴 것이고, 다 자업자득입니다. 결말이 어떻든 저는 마땅히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제 본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제가 지녀야 할 이성과 실행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믿은 것은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한 것이었고, 버리고 헌신하면서 당신과 거래를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은혜를 알고 주인을 위해 집을 지키는데 저는 어땠습니까? 당신께서 저를 양육하시며 그토록 많은 진리를 공급하시고, 저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푸셨는데, 저는 오히려 당신과 거래를 하며 좋은 종착지가 없으면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개만도 못합니다! 하나님, 회개합다.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하든 본분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더 이상 복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그분의 공의 성품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오와 오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말을 했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거부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시험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배반했고, 어떤 사람은 체포된 후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했다. 또 어떤 이는 몰래 제물을 훔쳐먹거나 낭비했고, 어떤 이는 늘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해하였으며, 어떤 이는 패거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어떤 이는 수시로 관념과 죽음을 퍼뜨려 형제자매들을 해하였고, 어떤 이는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맺고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과오와 오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도 회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본성 본질 그리고 일관된 태도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해야 한다. 회개할 수 있는 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한다. …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처분을 내릴 때 당시의 환경과 배경 등 실제 상황에 근거하고, 사람의 모든 행동과 본성 본질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억울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면이다. … 하나님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에게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 혐오하거나 반감하는 태도를 보일 때, 혹은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말을 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내적 상태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감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는 신성뿐이야.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사람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도 않으시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그를 징벌하실 거야.’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역, 사람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단단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근거하며, 각각의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나님은 공의롭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깊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실 때는 원칙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시는 근거는 그 사람의 일시적인 과오가 아니라 그가 행동하는 배경과 성질, 앞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진실로 회개했느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여기까지 묵상하고 나니 머릿속이 확 트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공의의 심판만으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로도 대하시며, 사람을 칼같이 대하지 않으십니다. 당시 육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저질렀을 때, 저는 제가 그런 일을 저지른 이상 하나님께 정죄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고, 아무리 회개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제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천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집 이익을 팔아넘기는 일을 저질렀는데도 교회에서 저에게 본분 이행할 기회를 준 것은, 주로 제가 배신한 배경과 성질, 본분을 이행하는 일관된 모습을 근거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꼬박 7일 밤낮을 경찰의 고문에 시달려 몸이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간계를 눈치채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연약해져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큰 손실을 입힌 것은 아니고, 그 뒤로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미워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과오에 해당하기에 하나님 집에서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천화는 잡혀간 후 경찰의 단 몇 마디 심문에도 큰 붉은 용의 위세에 굴복해서 많은 리더 일꾼과 서적을 보관하는 집을 팔아넘겼고, 그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많이 잡혀가고, 교회 사역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습니다. 천화는 일시적으로 연약해진 것이 아니라 본질이 바로 유다였습니다. 그녀가 행동한 성질과 그녀가 초래한 결과를 근거로 교회에서 그녀를 제명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점을 깨달은 뒤 저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조금 인식했고, 하나님의 성품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경계하고 넘겨짚었으니 속으로 더욱 하나님께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변화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만약 또다시 잡혀가 박해받게 된다면 육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설령 죽는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고 사탄에게 치욕을 안기자고,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이는 네 마음에 달렸다. 네가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잘못과 문제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네가 범한 과오가 됐든 죄업이 됐든, 그 죄를 진실로 인정하는 태도가 네게 있고 네가 정말 그 일을 증오하고 돌아설 의사가 있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하나님에게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네가 과거에 범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일을 바탕으로 네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는지 알 수 있나요?” 그 일이 더는 너를 참소하지 않고 네 내면이 더는 그 일로 인해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면 결실을 본 것으로, 하나님이 너의 죄를 사하였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힘도, 그 어느 외부 세력도 너를 방해하지 못하고, 네가 그 어떤 사람, 일, 사물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면 결실을 본 것이다. 이것이 네가 첫 단계로 해야 할 일이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에게 사함 받기를 부단히 간구하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원칙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네 과오를 만회하고, 네가 회개하고 돌아섰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실제 행동이자 실제 모습이고 태도이기도 하다. 이는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과 네 손에 맡겨진 본분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느냐? 의기소침한 태도로 대하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는 원칙대로 대하고 있느냐? 너는 충성심을 바쳤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근거로 네 죄를 사해야겠느냐? 네게 회개하는 태도가 있었느냐? 네가 무엇을 보여 줬느냐? 하나님에게 사함 받고 싶다면 우선 네 진심을 꺼내 보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성실하게 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을 보이며 네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정말 네 진심과 성의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네 죄를 사해 주도록 한다면, 너도 남들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관점으로 너를 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네게도 행하고, 너를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생길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너를 깨우치고,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네게 이러한 진심과 간절한 태도가 생겼으니 하나님이 너를 불공평하게 대할 리가 없다.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과오가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충성을 다하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말입니다. 다윗이 간음을 저질러 우리야의 아내를 차지하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그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를 저질렀음을 알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뉘우치면서 눈물로 침상이 떠내려갈 정도로 울었습니다. 만년에는 젊은 처녀가 그를 따뜻하게 덮어 주어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깊이 뉘우치는 동시에 실제적인 행동으로 자기 본분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다윗이 과오를 대하는 태도는 의기소침한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는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했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세 번 부인해해서 증거를 잃었지만 역시 의기소침한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주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힘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저도 다윗과 베드로를 본받아 자신의 과오를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의기소침한 정서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지녀야 할 태도와 실행입니다.

그 후로 저는 잡혀갔을 당시에 내가 왜 하나님을 배반했는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육을 지나치게 돌보고 목숨을 너무 아끼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4) 사실 제가 죽고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지배하십니다. 정말 경찰에 잡혀 박해받다 죽음에 이른다고 해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죽음입니다. 지금 저는 하나님을 배반해서 육의 고통은 면했지만 마음의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 형제와 교회 자산을 팔아넘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칼로 찌르듯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사실은 영원한 오점, 영원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사실 육의 고통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조금 견디면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그야말로 영원한 고통입니다. 저는 육은 보전했지만 오히려 평안과 기쁨을 잃고 산송장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굳게 서서 증거한 형제자매들을 떠올렸습니다. 비록 육은 많은 고통을 받고, 심지어 경찰에게 맞아 죽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의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런 죽음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죽음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념하는 죽음입니다. 저는 제가 배신한 데는 또다른 원인이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바로 경찰의 간계에 대해 분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교회 자산을 압수했다는 그들의 말에 저는 이미 돈을 빼앗겼다면 제가 입을 여나 안 여나 마찬가지인데, 일부만 얘기하면 고문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증거를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교회 돈을 압수당하든 말든 제 입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제 충성심과 증거입니다. 제가 실패한 원인을 찾고 저는 굳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만약 또 잡혀간다면 만약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하나님 집 이익을 팔아넘기지 않으리라.’ 최근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저는 언제나 이 문제를 회피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며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을 미워하긴 했지만 끝까지 자신을 참되게 인식하지 않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비로소 하나님과의 벽과 오해가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제가 새신자를 양육하는 본분을 이행하도록 저에게 은총을 베푸셨으니 제가 해야 할 것은 원칙을 따르며 양육 사역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깨달아 가능한 한 빨리 참도에 뿌리를 내리고 선행을 예비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제 저는 제 과오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고, 속으로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경계하지 않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에게 최근에 체험한 실패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팀 예배에서도 적극적으로 교제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도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한동안의 실행을 통해 제 내적 상태는 눈에 띄게 달라졌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하나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과오 때문에 저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이끌고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과오가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원칙대로 진리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긍휼과 이끄심을 얻을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얻기 힘든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이 아닌 사람의 참된 회개.(<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제가 이런 인식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든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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