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병마가 다시 덮쳤을 때

중국 양이(楊夷)

1998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재림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 말세에 진리를 발표하시고 심판하시는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어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데리고 가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많이 헌신하고, 힘든 대가를 치르며 선행을 많이 예비해야만 좋은 종착지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접대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려고 했고 절약한 돈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복음을 전하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잔혹한 고문을 받은 것도 모자라 징역형까지 선고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유다처럼 하나님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간 많은 선행을 베풀어 왔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했기 때문에 분명 좋은 종착지를 얻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018년, 전 갑작스러운 심장병과 고혈압까지 얻어 두 번이나 입원했습니다. 저는 제 병세가 어떻든 불평하면 안 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보름 만에 퇴원했고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렇게 큰 병 앞에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퇴원 후에도 계속 본분을 이행하는 제가 하나님께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2019년 2월, 심장병과 고혈압이 재발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전에 입원했을 때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게다가 당뇨까지 발견되었고, 디스크까지 심각한 상황이어서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밥도 누워서 먹어야 했고, 화장실을 갈 때도 며느리가 저를 업고 갔습니다. 저는 매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말할 기운도, 눈을 깜빡거릴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제 병세가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심장이 너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마치 숨을 쉬면 그 호흡이 없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30분가량을 고통과 씨름하다 보니 언제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병세가 이 지경까지 되다니.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들다니, 곧 죽으려는 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천국의 복도 나와 관련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없다니, 이제 모든 것인 끝난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고통스러웠습니다.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매일 병마의 고통을 받고 있자니 더는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죽음 역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자 저도 모르게 하나님께 바라게 되었습니다. “제 병세는 언제쯤 좋아지나요? 저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자매들은 모두 저보다 건강한데, 제가 그들보다 덜 헌신한 것도 아니고, 전 체포되어 징역을 살며 힘들 때도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저를 지켜주지 않으시나요? 왜 제게 건강한 신체를 주지 않으시나요?” 저는 원망으로 가득한 내적 상태에서 살았고 마음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그 후 심장이 너무 아파서 심각해지자, 저는 하나님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하나님! 갑자기 심장병이 너무 심각해졌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도 없고, 어떻게 겪어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거역하거나 대적하기는 싫습니다. 제가 공과를 배울 수 있게 제게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주세요.”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병이 찾아오면 어떻게 겪어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구하고, 자신이 한 어떤 일이 진정 진리에 어긋나는지, 자신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패괴가 어떤 것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단련받아야만 방종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 고통이 생기면 늘 기도하느라 옷이나 음식, 즐거움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마음속으로 내내 기도만 하면서 그동안 잘못하거나 진리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는지 성찰하기 마련이다. 대개 큰 병이나 희귀한 질병으로 크게 고통받는 경우, 그건 우연이 아니다. 네가 병이 나거나 건강한 것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병마를 통해 제 생명을 취하려고 하지 않으셨으며, 아무 이유 없이 제가 이런 고통을 겪도록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병마를 통해 저의 패괴된 성품을 드러내려 하셨으며 이를 통해 제가 공과를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절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므로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잘 반성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면서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외면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예로부터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매우 엄격했다. 네 충성심에 다른 속셈이나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충성심을 차라리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의를 지닌 채 나를 기만하고, 조건을 내밀며 뭔가 얻어 내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믿음’을 위해, 그리고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하나님 심판의 말씀은 날카로운 칼처럼 제 마음에 박혔습니다. 저는 너무 부끄러웠고, 그 즉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지난 수년간 하나님을 믿은 목적이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생활이 힘들어하는 형제자매가 보이면 도와주었고, 교회에 본분이 있으면 최대한 이행하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공산당에 체포되어 징역을 살며 고문 받을 때도 저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많은 선행을 예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사실의 드러냄으로 저는 그간 대가를 치르고 헌신한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건강한 몸을 갖고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함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병마가 저를 덮쳤을 때 저는 제가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바쳤으니, 병에 걸려도 하나님을 절 죽게 하지 않으실 거로 생각했고,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병세가 악화하였을 때는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랜 병마의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저는 복을 얻고자 했던 희망이 물거품이 되었으며 천국의 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과거 제가 바쳤던 것들을 후회했고, 심지어 과거 제가 바쳤던 것들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고 대적하며 흥정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저의 행동들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만하며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 속에는 그릇된 관점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제게 건강한 몸과 좋은 종착지를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한 만큼 받아야 공평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받은 고통을 대가삼아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종착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걸 받지 못하자 원망하고 적대심을 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인성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바치는 모습입니다. 저처럼 비열한 속내로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며 회개하여 바뀌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낸 모습이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며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었고, 사상과 관점이 모두 사탄의 독소에 물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잇속만 차리면 손해 볼 일이 없다.”와 같은 사탄의 논리 법칙으로 살았고, 제게 이득이 되는 것만 하려고 했으며 하나님을 믿으며 포기하고 바쳤던 것도 모두 계산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얻고, 소소하게 헌신한 것으로 커다란 은혜와 축복을 얻고자 했습니다. 저는 사탄의 독소로 살며 이기적이고 비열해졌고, 이익만을 좇았습니다. 복이나 이익을 얻지 못하면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인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처음 성육신하셨을 때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큰 붉은 용의 나라로 성육신하시어 공산당의 핍박과 종교계의 정죄, 그리고 배척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고통과 굴욕을 견뎌 내시며 진리를 발표하시어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인류를 위해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았을뿐더러 하나님께 평안을 바랐고,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원했습니다. 이를 얻지 못하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런 제게 양심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전 정말 사람답지도 못했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제 자신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는 감사하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병마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죽음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저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하나님께서 혐오하신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계속 이런 믿음을 이어가면 영원히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심판과 드러냄, 그리고 병마를 통해 제가 스스로 반성하며 다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며 사랑입니다. 저는 크게 감동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병마가 저를 덮친 것이 당신의 사랑이고 구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겪고 나서야 저는 하나님을 믿는 제 그릇된 속셈을 알게 되었고, 패괴 성품도 그제야 바뀔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잘못된 저의 추구 관점을 바꾸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자 제 본분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조건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저는 비열한 속셈으로 제 헌신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종착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정말 비이성적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가졌든 못 가졌든, 좋은 종착지가 있든 없든 저는 마땅히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어떻게 하든, 재산을 나눠주는 것과는 관계없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아직 제 병세가 호전되진 않았고, 매우 고통스럽지만,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앞으로 제 병세가 어떻게 되든 전 기꺼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 후 전 다시 생각해 본 끝에 사실 제가 어떤 것이 선행이고 어떤 헌신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잘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이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드러내는 것, 행하는 것에 진리를 실행한 간증, 진리 실제를 살아 낸 간증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네게 그러한 실제가 없고 그러한 살아 냄이 없다면, 너는 의심할 나위 없이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겠느냐?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겉으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거나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어디서나 하나님을 욕보이는 표가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도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정확하게 말하면 사탄을 위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하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행한 것이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이어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죄받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믿어도 결국에는 전부 허사가 되지 않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참도라고 확신했다면 끝까지 가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야 하며, 하나님이 친히 너를 온전케 하려고 이 땅에 왔음을 알았다면 마땅히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혹여 마지막에 네게 나쁜 결말을 주더라도 네가 계속 따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을 지킨 것이다. 거룩한 영체, 정결한 동정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진심이 곧 정결함이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정결을 지키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사람의 진심이며 기꺼이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야말로 선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저는 선행에 대해 너무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많이 바치고 헌신하며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선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혜시대 주 예수께서 가난한 과부의 기부를 칭찬하신 이유를 돌이켜 보면, 사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과부는 아주 적은 돈을 기부했을 뿐이고 많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부한 금액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비록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느 정도 헌신하고 많이 바쳤지만, 하나님을 향한 제 마음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바쳤던 것의 이면에는 거래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건 선행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앞으로 제 병세의 호전 여부나 좋은 종착지와는 관계없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노라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더는 병마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복을 얻고자 하는 속셈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고, 할 수 있는 한 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제 병은 점차 호전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타자를 칠 수 있게 되었고, 간증문 쓰는 훈련을 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혼자서 생활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병마를 통해 공과를 배우게 하신 하나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병마와 고난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었고 모든 것은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과 연단으로 해결받아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패괴 표출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 본성에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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