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인성이 좋다는 뜻일까
2016년, 저는 딩루이 자매와 함께 몇몇 교회의 사역을 협력하여 맡았습니다. 협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부 리더는 딩루이에게 한 교회에 가서 투서를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딩루이는 금세 돌아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쪽 교회 문제는 굉장히 복잡한데 딩루이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문제는 모두 해결한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상부 리더는 딩루이에게 편지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아 새롭게 사람을 안배하여 파악하도록 했다면서 이번 일에 있어 스스로 반성하고 공과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편지를 본 딩루이는 침울해져서 말했습니다. “전 본분을 이행하면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교회 사역도 지체했어요.” 저는 속으로 ‘나도 그 투서에 대해 좀 아는데 꽤 복잡하고 연루된 사람들도 많아서 교제할 문제도 많았어. 관계자들을 한 명씩 만나보면서 사실 확인을 해야 하니까 짧은 시간 내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을 거야. 딩루이가 너무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딩루이에게 말해주어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하게 도와주려고 했지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또 문제를 꺼내면 더 힘들고 내적 상태가 더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내가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른다고 하면서 나와 갈등이 생기고 편견이 생기면 어쩌지? 협력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사이가 어색해지면 앞으로 잘 지내기 힘들 거야. 지금 내가 딩루이를 위로하고 격려해 준다면 분명 내가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잘 지내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래서 저는 딩루이를 타이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역을 하다가 실수하고 실패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저도 처음 투서를 처리할 때 자매님보다 더 심각하게 실패했었는걸요.” 저는 제가 사역을 하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딩루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 말을 들은 딩루이의 얼굴에서 근심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딩루이는 기뻐서 말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절 어떻게 볼 지 걱정했어요. 이렇게 제 마음을 잘 헤아려주실 줄 몰랐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뿌듯했습니다. 스스로 인성이 좋고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도 또 한 번은 딩루이가 예전에 한 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다고 얘기하면서 모두 그 자매의 문제였다고 했습니다. 말하면서 매우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딩루이가 조금 집착적이고 스스로 아무런 인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저 둘이 예전에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리더에게서 들은 적 있어. 그 자매 성품이 조금 교만하긴 하지만 딩루이가 워낙 사람을 주시하고 집착하며 어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해. 누구든 딩루이의 체면을 구기게 하면 딩루이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사람을 무시한다고 했어. 사역이 있어도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사역에 분풀이하는 바람에 결국 사역 진도가 지체되었다고 했어. 리더가 교제해 주어도 조금의 반성이나 인식은 없다고 했어. 물론 그 자매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딩루이의 문제가 더 심각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딩루이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딩루이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지적하면, 내가 자기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까? 그럼, 딩루이 마음속에 있던 나의 좋은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딩루이의 말에 동조하며 말했습니다. “자매님과 협력했던 그 자매님도 잘못한 부분이 있죠.”
그 후 딩루이는 다른 사역으로 본분이 조정되었고, 저는 다른 자매와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자매는 절 보자마자 “자매님과 파트너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부담됐었어요. 다른 형제자매들이 모두 자매님 인품이 훌륭하고, 모든 사람과 협력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제가 자매님과의 협력에서 실패한다면 전 완전히 드러나 버리고 말 거예요. 분명 제 인성이 나쁜 것이겠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뻐하면서 스스로 인성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딩루이와 협력하는 한 자매가 절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딩루이와 조화롭게 협력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딩루이는 늘 자매님과 함께 할 때 얼마나 조화롭게 협력했는지를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패괴되었나봐요.” 저는 속으로 ‘너는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 딩루이의 문제를 보고 그걸 바로 지적해버리면,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딩루이는 당연히 못 받아들이겠지. 난 딩루이와 같이 지내면서 딩루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내가 포용하고 참으면서 분쟁을 만들지 않았어. 사역에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딩루이와 상의했고, 딩루이 의견을 많이 물어봤었지. 이렇게 하면 마찰을 피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더는 딩루이가 교만한 편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줄곧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고, 교제를 해도 바뀌지 않아 본분 이행에도 계속 성과가 없어 교체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제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리더 일꾼으로서 경중은 차치하고라도 형제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한 번도 지적하거나 책망하여 폭로하지 않으셨어요. 늘 사람 간의 관계만 지키려고 했죠. 이는 사역에 책임지지 않는 태도입니다! 딩루이 자매와 지낼 때도 그랬어요. 딩루이 자매는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못하고 자매님과 협력하려고 하면서 무슨 자매님이 자기를 잘 이해하고 헤아려준다고 하더군요. 이 일에 있어서 자매님은 반성하셔야 해요!” 이때, 또 다른 리더도 말했습니다. “요즘 다른 형제자매들은 자매님을 칭찬하면서 사람을 잘 이해해 주고 사이좋게 지내기 좋다고 하더군요. 사람들 마음속에 자매님의 자리가 있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 것, 이 부분에도 문제가 있어요. 이렇게 사역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 말들을 들은 직후 저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고 속으로는 잘잘못을 가리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에 대한 형제자매들의 평가는 좋아. 그런데 어떻게 내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이때, 협력하는 다른 자매 역시 저에게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고, 그제야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제가 자신을 알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서로 왕래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이로움을 얻을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더더욱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는 가장 먼저 네 진심과 진솔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교류할 때 언제나 무성의한 말, 상투적인 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무책임한 말, 상상하는 말, 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만 한다면, 이는 진실한 것도, 성의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정직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 어떤 사람이 네게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어쩌다가 소극적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사실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괜찮아요. 그건 소극적인 것이 아니죠.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상대는 이 말을 듣고 무척 위안이 되었겠지만 네 태도는 진실한 것이 아니다. 너는 상대를 건성으로 대했고, 상대가 마음이 편하고 위로를 얻게 하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너는 진심으로 그를 돕지 않았고 그의 문제를 분명히 말해 주어 그가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으며, 정직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너는 그저 그를 위로하고, 그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성의하게 대했을 뿐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정직한 사람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는 자신이 보고 정확히 판단한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체험했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보십시오. 맞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맞는다면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제 말이 귀에 거슬려 상처가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제 목적은 당신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은 거죠. 당신은 여태까지 이런 억울함을 당해 본 적이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극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것 아닙니까?” 그는 듣고 네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네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저도 늘 소극적이 됩니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그럼 상대는 모두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소극적인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고, 결국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태도와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돕는다면, 그가 진리를 깨닫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세상에 있는 수많은 소위 좋은 사람들이 매우 고상하게 말을 하고 겉으로는 별로 큰 악을 저지른 것 같지 않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매우 간사하고, 교활하며,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데 아주 능하고, 말할 때는 처세술이 뛰어나다. 그런 자는 좋은 사람인 척하는 위선자로, 외식하는 사람이다. 중용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제일 음험하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세상 물정에 밝아 처세술이 능란하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아무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패괴된 성품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전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지낼 때 아부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해주며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진심으로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며 좋은 점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중용의 길을 걸으며 늘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매우 교활하고 말이나 행동이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며 누구의 미움도 사기 싫어하는 살아있는 사탄과 다름없습니다. 자신의 유로와 행동을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이런 유형의 사람입니다. 딩루이가 투서를 처리하면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돌아온 모습을 보며 전 딩루이가 눈앞의 성공에만 급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그 문제를 지적해서 딩루이가 스스로 반성하고 자신을 인식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딩루이가 저를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인성이 나쁘다고 말할 것이 두려워 격려의 말만 했고, 심지어 제가 실패했던 경험을 통해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제 말을 듣고 딩루이는 힘들어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패괴된 성품에 대해서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교제할 수도 있지만, 주로 자신의 실패에서 스스로 문제를 인식했던 경험을 통해 상대방이 반성하고 자신을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했던 저의 실패 경험은 그런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로해 주고, 우리 모두 패괴되었으니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결국 암묵적으로 상대방이 자기합리화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제 행동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딩루이가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고 종종 사람을 지켜보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좋은 이미지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딩루이를 지적하지 않았고, 딩루이가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수긍했으며 평소 성질부리는 모습을 봐도 전 내버려뒀습니다. 결국 딩루이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여 패괴된 성품에서 살며 자기합리화했습니다. 이런 제 행동이 사람을 해치는 행동이지 않겠습니까?
그 후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 이런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겠느냐? 하나님을 대할 때나 진리를 대할 때 순종할 수 있고, 본분이나 각종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모두 원칙이 있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모두가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모든 사람의 실제 상황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속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다른 이의 험담을 하는 법도 없고, 다른 이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도, 다른 이의 재물을 탐하지도 않는다고 내세운다. 심지어 이해 갈등이 생길 때면 자신이 손해를 보면 봤지 남에게서 이득을 챙기지 않아,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분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린 적이 없고 심지어는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으며, 어떤 원칙도 없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이는 인성이 좋은 것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으며 부담과 책임감을 갖고 본분을 이행하고 원칙을 견지하며 교회 사역을 지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하며 형제자매의 문제나 부족한 점을 발견했을 때는 교제를 통한 도움이 필요하다면 교제를 통해 도와줍니다. 누군가 일을 하면서 원칙을 위반하거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문제가 심각하다면, 훈계하고 폭로할 것은 훈계하고 폭로하며 감정에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미움 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원칙을 고수하고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것입니다. 과거 저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그 사람의 문제점을 훈계하거나 폭로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인성이라고 생각했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누구와 지내든 듣기 좋은 말만 해주려고 했고, 제가 합리적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도록 하고 싶어 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발견해도 저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해 주며 형제자매들을 기만했고, 별 타격이 없는 완곡한 말로 문제에 대해 살짝 언급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제가 인성이 좋고 잘 지내기 좋다고 칭찬했고, 저도 좋은 사람을 자처하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로 저는 지난 몇 년간 제가 좋은 사람을 지키려던 방법은 사실 사탄의 처세 철학임을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인성이 좋고, 완곡하게 말하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것으로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는 조금도 책임지지 않는 행동으로 진정한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하고 간사한 무골호인이자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제가 스스로 인성이 좋다면서 좋은 사람을 자처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부끄러움을 몰랐었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한 전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으로 저는 진정으로 좋은 인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천하여 인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얼마 후 교회에서는 저와 천린, 리웨에게 함께 협력하여 새신자를 양육하도록 안배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전 리웨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감이 없으며 개인적인 일로 사역을 지체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와 천린은 리웨와 교제하여 일의 경중을 분별하도록 했고, 교회 사역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리웨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치를 따지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천린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리웨의 문제를 분석하여 교제했습니다. 리웨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고 분량이 작아 실천할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여기서 내가 더 리웨 문제를 꺼낸다면, 분명 내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고 인성이 나쁘며 자신을 통제하려고 한다고 말할 거야. 나는 리웨를 폭로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그래야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완곡한 말로 위로하며 “분량이 작은 것은 우리도 이해해요. 앞으로는 사역을 지체하지 않도록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리웨는 찡그렸던 미간을 폈고,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지난 후 절 대하는 리웨의 태도는 굉장히 다정했고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저의 이런 교제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도 지적했고, 리웨도 저를 나쁜 시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리웨는 본분을 하는 데 또 책임감 없이 했습니다. 리웨는 천린에게 편견이 생겨 천린은 요구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말했습니다. 천린은 제 문제를 지적하며 말했습니다. “그날 리웨와 그렇게 교제한 본질이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가 협력하며 리웨에게 교제해 주는 건 리웨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하며 회개할 수 있게 해주려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 마지막에 했던 말은 리웨의 반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리웨에게 자매님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저는 요구 조건이 까다롭다는 생각을 심어준 거예요. 그런 행동은 방해하고 근간을 흔드는 본질로 리웨에게 조금도 도움 되지 않아요.” 천린의 말은 제 마음에 깊이 박혔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책망과 훈계에 다다랐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매일 우리가 맞닥뜨리는 사람과 일에 당신의 허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저에게 깨우침을 주시어 제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그 후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첫 번째 수법은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는 데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느냐? 작은 선심으로 사람을 회유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때로는 좋은 것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본분, 또는 도움이 되고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만한 본분이 있을 때 그런 본분을 자기가 구슬리려는 사람에게 배정하기도 한다. … 어떤 사람들은 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정에 속박받는다. 그러면 리더는 “분량이 작아 그런 것이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게을러서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데도 리더는 질책하지 않고, 늘 비위를 맞추며 좋은 말을 해서 상대가 그를 좋게 보고, 남을 이해하는 사람,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한다. 마음속으로 ‘우리 리더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아. 정말 남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사람이라니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 뜻은 그가 하나님의 선포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이것이 아니겠느냐? 어쩌면 이렇게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한 가지 목적은 분명하다. 즉, 사람들이 그 리더가 무척 훌륭하다고, 남의 마음을 보살피고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며 남들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 입는 것을 보아도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사탄 철학을 지키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하면,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하는 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사람들이 항상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폭로하거나 해부하는 법이 없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그릇된 행동 방식과 패괴 표출을 항상 눈감아 주며, 사람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고 격려의 말 몇 마디로 대충 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뿐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해도 해결하지 못하며, 글귀와 도리,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줘.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우리는 리더의 요구에 맞출 수 있기만 하면 돼. 우리가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하겠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해. 리더가 교체되지 않도록 상부와 협상하고, 상부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해야지. 그러면 리더에게도 면목이 설 거야.’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음에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의지, 부러움, 숭배가 생기면 갈수록 리더를 믿게 되고, 리더의 말을 듣기 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선민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 관계를 즐기며 하나님 선민이 응당 자신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바울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분별력이 전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매우 비열하고 사악하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 마음속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미움을 사지 않고, 누군가 일을 할 때 원칙을 위배하더라도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어 제지하는 일은 더욱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며 자신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헤아린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는 거부감과 반감을 품어 진입을 실천하지 않고 사람들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옵니다. 제가 했던 일의 본질을 돌이켜보니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저는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일부 문제는 매우 심각하여 사역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저는 즉각 이를 지적하여 형제자매들이 문제의 본질과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를 알게 하고, 즉시 회개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면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이 두려워 사람의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좋은 말 몇 마디로 사람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교제를 통해 리웨의 문제를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천린과 협력하여 같이 교제하고, 리웨가 자신을 알도록 이끌지 않았습니다. 세게 얘기하면 리웨가 저에게 편견이 생길 것을 두려워하며 상황에 맞게 좋은 말을 늘어놓았고, 제가 천린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리웨의 나약함을 헤아리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결국 리웨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여 천린에게 맞섰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딩루이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딩루이의 문제를 보고도 교제를 통해 도와줌으로써 딩루이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하지 않았고, 오히려 딩루이에게 영합하였습니다. 이렇게 이행하는 제 본분은 하나님을 드높이지도, 하나님을 증거하지도 않았으며 제 책임을 다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저는 리더 일꾼으로서 형제자매들이 패괴된 성품으로 살며 일을 할 때 원칙을 위배한 모습을 보고도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사람의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사람들을 기만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패괴된 성품에서 살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용서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한 일의 본질은 형제자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반발심과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모두 저를 좋다고 생각하고 제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릴 줄 안다면서 저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제 이런 행동은 사람을 미혹하는 행동 아니겠습니까? 사탄의 철학으로 살며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제가 했던 모든 것들이 악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에게 잘해준 것이지만, 사실은 형제자매를 곤경에 빠뜨리고 교회 사역을 지체했습니다. 전 너무 위선적이었습니다! 저는 더 교묘한 방법으로 형제자매들이 저를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했습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보면, 저는 가정과 일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사역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것으로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전 너무 두려웠고, 저 자신이 역겹고 혐오스러웠습니다. 저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늘 지위만 좇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이런 제 성품은 당신의 혐오를 사기에 충분합니다. 징벌을 받더라도 그건 당신의 공의로움입니다. 하나님, 전 회개하고 싶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리웨는 본분을 대충 이행했고 성과가 없었습니다. 리웨와 교제해도 바뀌지 않아 리웨의 문제를 리더에게 얘기했습니다. 며칠 후 리더가 저희 팀의 예배에 참석해 리웨의 문제에 대해 교제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리웨는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리더는 저와 천린에게 “이런 리웨이 상태를 봤을 때 교체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리더의 말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속으로 ‘리웨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진실을 얘기해서 리웨가 교체된다면 내게 앙심을 품지 않을까? 그냥 아무 말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전 엄청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속의 제 지위를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또 사탄의 철학으로 살며 제 이미지를 지키고 좋은 사람인 척을 하려고 했습니다. 부디 제가 그릇된 속셈을 저버리고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기도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네 마음이 점점 정직해지고 하나님을 향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줄 알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양심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너에게 작용했고 이미 네 생명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진리가 네게서 생명이 되었을 때, 만약 누군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 누군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 누군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진리 원칙대로 대할 수 있다. 분별해야 할 것은 분별하고, 폭로해야 할 것은 폭로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야 하고 교회 사역을 지켜야 합니다. 누군가 원칙을 위배하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며 교란한다면 이를 비호할 것이 아니라 진리 원칙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살아내라고 하신 진정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리웨의 모습에 따르면, 지금 리웨는 계속해서 이 사역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회 사역을 지키며 정직한 사람으로 제 생각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리더는 전반적으로 고려한 후 리웨를 교체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왕지아 자매와 협력하여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지내면서 왕지아 자매가 가끔 개인적인 일로 사역을 지체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전 교제를 통해 사역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더가 왕지아 자매를 발탁하여 다른 사역을 맡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왕지아는 소질도, 사역 능력도 있으니, 사역을 담당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가끔 사적인 일과 본분이 겹칠 때 본분을 우선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이와 관련한 인식이 없다면 앞으로 사역을 담당하면서 사역을 지체하진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파트너로서 다시 왕지아 자매에게 교제를 통해 일깨워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은 입가에만 머물렀고 저는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문제는 예전에도 교제해 준 적이 있어. 내가 또 말하면 괜히 내가 자신의 문제점을 잡고 늘어지고 끝없이 자신의 단점을 폭로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저는 제 내적 상태가 또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봤던 하나님 말씀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실한 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되 남을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지 말라고, 또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말라고 요구했다. 이는 말을 할 때의 원칙 아니겠느냐? 여기에서 ‘단점을 들추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사람의 약점이나 잘못, 혹은 단점을 잡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점이다. 그럼 긍정적인 면에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주로 격려하고 일깨우고 인도하고 권면하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 요컨대, 말을 할 때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마음속에 있는 것, 진실한 체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게 가장 이로운 말이고, 공급과 도움이 되는 말이며, 가장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이다. 거짓된 말, 상대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지 않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그랬다간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상대를 쓰러뜨려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릴 수 있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최대한 상대를 도와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도움과 공급을 주고,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생기게 하며,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네 체험과 문제 해결 방식, 방법을 통해 도움을 얻고 큰 수확을 거두게 해야 한다. 또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길을 깨달아 생명 진입과 생명 성장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칙 있게 말해 상대에게 도움을 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에게 실천의 길을 주셨습니다. 사람과 지낼 때 비난하거나 헐뜯거나 비웃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고 실질적인 말을 함으로써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성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부족한 점을 폭로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실수를 잡아 논단하고 정죄하면 안 된다는 뜻이며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여 그 사람이 교훈을 얻게 하는 것은 부족한 점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도움임을 깨달았습니다. 왕지아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왕지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에게 안 좋은 편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자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나중에는 진리를 구하고 인식하여 바뀔 것입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저는 왕지아에게 그녀의 문제에 대해 일깨워주었습니다. 얼마 후 왕지아는 자신의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만약 파트너 자매님이 제 문제를 폭로하지 않으셨다면, 전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며, 회개하고 바뀌지도 않았을 겁니다.’ 왕지아에게 이런 인식이 생긴 것을 보고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에게 ‘좋은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하셨고 저의 그릇된 추구 관념을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