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안락을 추구한 결과

스페인 클로에(Chloe)

저는 교회에서 영상 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하면서 조금 어려운 작업의 경우, 제작할 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각각의 화면 효과를 반복적으로 테스트하고 수정해야 하며, 또 많은 실패를 겪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제작이 간단한 작업의 경우, 그런 문제가 적어 신경을 덜 써도 되고 성공률도 높은 편이었죠. 저는 ‘난이도가 있는 작업은 기술적인 요구치가 높고, 신경도 많이 써야 돼. 자료를 찾아가면서 분석하고 공부해야 하지. 제작 주기도 긴 편이고. 하지만 간단한 작업은 그렇게 번거롭지 않아. 몇몇 기술적인 부분만 잘 처리하면 되니까. 게다가 제작 주기도 짧은 편이고 결과물도 빨리 나와. 역시 간단한 작업을 하는 게 덜 고생하고 신경도 덜 쓸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할 때, 먼저 어떤 작업이 어렵고 어떤 작업이 쉬운 편인지 살펴본 후에 쉬운 걸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간단한 작업을 고르고 복잡한 작업은 다른 형제자매에게 줬는데, 그는 흔쾌히 그 일을 맡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양심에 가책을 약간 느꼈습니다. ‘나는 어려운 일을 보고 물러섰어. 나한테는 어려움을 이겨 내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니, 난이도가 있는 작업을 맡는다면 시간과 정력을 많이 투자해야 할 테고 몸도 마음도 고생할 게 뻔했습니다. 역시 쉬운 걸 선택하는 게 좋아 보였죠. 또 한번은 제작을 마쳤을 때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가를 치르면서 수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검토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자 수정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갔죠. 평소에도 문제가 생기면 잠깐 고민한 후에 형제자매들한테 물어보러 가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도 안 힘들고, 임무도 쉽게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자책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면한 문제들은 사실 아주 간단한 것들이었고, 조금만 신경 쓰면 해결할 수 있었는데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봐서 그들의 본분 이행 시간을 빼앗았으니까요. 하지만 반성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 잇속을 챙기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는 것 외에도 형제자매들과 공부하면서 업무와 관련된 기술 수준을 향상시켜야 했죠.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요. 저 혼자 업무 관련 기술을 익혀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한 것, 부족한 점을 파악해 자료를 찾고 수업을 준비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시간을 절약하고 힘도 안 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굴리던 저는 수업 내용을 형제자매들한테 주고 알아서 보라고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수업을 준비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 방법은 더없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어떤 형제자매들은 수업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는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좀 미안해졌고, 마지못해 다시 자료를 찾아 모두에게 건넨 다음 간단히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어쨌든 다 같이 공부하기는 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얼마 후, 팀장이 최근에 제작한 영상 하나가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진도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식하기는커녕 그 본분을 이행하려면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는 건 물론이고, 제대로 못 해내면 책임까지 져야 하니 고생만 실컷 하고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본분을 더욱 이행하고 싶지 않았죠.

하루는 리더가 저를 찾아와서, 제가 본분 이행 과정에서 늘 건성으로 임하고 제 잇속만 챙긴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뉘우치지 않는다면 저를 교체하겠다고 덧붙였죠. 그 말에 저는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전혀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또 배우는 과정에서 그 문제와 난관을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는 공부 모임을 담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좀 홀가분할 것 같았죠. 다음 날, 리더를 찾아간 저는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공부 모임을 맡으면 안 될까요? 저는 잘 못하겠어요.” 제 말을 들은 리더는 저를 나무랐습니다. “정말 못하겠어요? 노력은 해 보셨어요? 자매님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쉬운 것만 하고 어려운 것은 피하려고 해요. 늘 건성으로 임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죠. 그건 인성이 좋지 않은 거예요. 자매님의 태도를 보니 이 본분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네요. 우선 영 생활을 하면서 반성하고 교회 안배를 기다리도록 하세요.” 리더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자매들 모두 바쁘게 본분을 이행하는데 저는 교체되어 본분을 잃게 되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본분을 잃게 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재하시니 교체된 것도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순종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식해야 할 테고요. 그 후 며칠간, 리더가 저를 교체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한번 또 한번 재생됐습니다. 리더가 한 말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몹시 괴로웠죠. 특히 제 인성이 좋지 않다고 했던 걸 떠올릴 때면 더 그랬습니다. 저는 어떻게 반성하고 인식해야 할지 몰라 고통 속에서 제가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모든 일을 대하는 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다. 그것은 사람이 흔히 말하는 건달 기질이다. 모든 일에서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세밀함을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이를 교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아주 적합하지만, 가장 알맞게 표현하는 어휘는 ‘건달’이다. 건달 기질은 대다수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데, 그저 경중 정도가 다를 뿐이다. 모든 일에서 대충 건성으로 하려 하고, 기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시간을 적게 들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질 일이 없다면 얼렁뚱땅 넘어가면 돼.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어. 그러면 너무 번거롭잖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거나 고생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피상적으로만 배워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그걸로 때우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냐? 이것이 옳은 태도겠느냐? 아니다. 한마디로 ‘때우는 것’이다. 그러한 건달 기질은 패괴된 인류에게 다 존재한다. 인성에 불량 기질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어물쩍 때우면 된다는 관점과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 사람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다.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사람의 귀천을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본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보면 된다. 즉, 일이 임했을 때 그가 어떻게 대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보라는 것이다. 인격과 존엄이 있는 사람들은 일할 때 세심하고 진지하며 마음을 쓰며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인격과 존엄이 없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무성의하며 항상 속임수를 쓰려 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려 한다. 어떤 기술을 배우든 마음을 다하지 않고 배우지 못하며, 아무리 오래 배워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람은 인격이 비천한 사람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특히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운다’, ‘인격과 존엄이 없다’, ‘인격이 비천하다’라는 구절은 한 자 한 자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와 인성을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제 본분 이행은 정말 그랬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대충이었고, 항상 그럭저럭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언제나 어떻게 고생을 덜 하고 일을 조금 할까만 생각할 뿐, 어떻게 해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작업을 할 때는 육적인 안일을 위해, 그리고 고생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쉽고 공이 덜 드는 작업을 골랐습니다. 작업을 마친 후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도 제 잇속만 챙기며 수정하지 않은 채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죠. 업무 관련 기술을 배워야 할 때는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함께 공부하는 것이 너무 귀찮다고 싫어했습니다. 육적인 안일을 위해 교활하게 제 이익만 챙기면서 형제자매들한테 알아서 수업 내용을 공부하라고 했죠. 이로 인해 형제자매들의 업무 능력은 향상되지 않았고, 본분 이행의 효율은 떨어졌으며, 사역 진도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꾀를 부리고 남을 기만했으며, 교회의 사역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인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요? 저는 정말 너무도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인격이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반성하게 되자 몹시 후회스럽고 자책이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큰 문제가 없이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 눈에 띄는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고, 방해하거나 교란하지도 않았으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지도 않았다. 본분 이행에도 이렇다 할 큰 잘못이 없고, 원칙적인 문제도 없지만, 몇 년도 안 돼 그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파로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다. 이는 어떻게 된 것이겠느냐? 사람은 문제를 간파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므로 문제를 간파할 수 있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줄곧 대충 건성으로 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니 드러날 때가 된 것이다. 줄곧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그가 본분을 계속 이행하고 있었지만 늘 잘못된 태도, 대충 건성으로 넘어가는 태도로 계속 본분을 대했다는 것이다. 공을 들이는 법이 없고, 마음을 다하는 법은 더더욱 없으며 힘을 좀 쓸 때도 그저 과정만 밟았을 뿐, 온 힘을 다하는 법이 없어 과오가 끊임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그는 계속 회개하지 않았고 대충 건성으로 하는 태도를 바꾼 적이 없다. 즉, 그는 손으로 행하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서 회개하는 태도를 본 적도,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는 늘 이런 태도와 방식으로 자신의 본분을 대하고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했다. 이렇게 완고하고 강퍅한 성품을 시종일관 고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죄스럽다거나 이렇게 대충 건성으로 하는 것이 과오이자 악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마음속으로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으며, 가책받거나 참소받지도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하든, 그가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들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든, 그의 마음은 감동받지 못하고 마음가짐의 변화나 전환도 없다. 하나님은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가망이 없다. 아무리 말해도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 이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자격도, 내 집에서 봉사할 자격도 없다.” 어째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는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을 할 때 일관되게 대충 건성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망과 훈계를 하며 관용과 인내를 베풀어도 효과를 볼 수 없고, 진실한 회개를 하게 할 수도 없고, 그가 진실로 변화하게 할 수도 없다.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게 할 수도,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는 구제 불능인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이를 구제 불능이라고 정할 때, 그 사람을 단단히 잡고 놓지 않겠느냐?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은 손을 놓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이 맡긴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일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겉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 같았을지 몰라도, 사실 마음은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쉬운 것을 고르고 어려운 것을 피했으며, 언제나 제 육을 좇으면서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늘 건성으로 임하면서 제 잇속만 챙겼고, 몇몇 업무의 경우 분명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잘하지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는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저는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반성하는 법도 없었습니다. 리더가 저를 폭로하고 제게 경고해 주었는데, 저는 조금도 뉘우치지 않은 채 제 육적인 이익을 생각했습니다. 그 본분을 이행하려면 노력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거부하고 싶었죠. 제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무감각하고 강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한번 또 한번 제게 회개하고 변화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었죠. 하지만 저는 매사에 제 육만 생각할 뿐, 진리를 구하거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늘 고집스럽게 하나님께 대항했으니 저는 정말 너무도 패역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자 책임이므로 당연히 완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것은 피하고 쉬운 것만 골랐으며, 건성으로 임하면서 하나님을 기만했습니다. 심지어는 낯짝도 두껍게 쉬운 본분을 요구하기까지 했죠.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행위 아닐까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제 행동은 진작에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샀죠. 교체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이 너무도 죄송스러웠죠. 더는 이렇게 건성으로 임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한시바삐 회개하고 변화해야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형제자매와 함께 복음을 전하게 됐습니다. 원칙을 파악하지 못한 데다가 남들과의 교류에 약한 저는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열심히 노력하며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본분 이행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던 예전의 저를 떠올리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크나큰 긍휼임을 깨달았습니다.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어려움이 임했다고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적극적으로 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반성했습니다. ‘왜 나는 본분을 이행하다가 난관에 봉착하기만 하면 뒷걸음질 치고 회피하려 할까?’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질문은 한 마디 한 마디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마주하고 저를 질책하시는 것 같았죠. 저는 하나님께 너무도 죄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어 우리를 양육하고 또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얻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며,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이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더없는 축복입니다. 진실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진리 추구에 박차를 가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합니다. 또 본분 이행 과정에서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여 마지막에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구원받는 사람이 되죠. 반면, 눈멀고 어리석은 사람은 오직 육적인 누림만을 탐하며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진리 추구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본분 이행은 늘 형식만 거치며 마음을 다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든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생명 성품에도 일말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께 내쳐지고요. 제 태도를 돌아보니 제가 바로 이런 어리석은 부류였습니다. 저는 “하루 중이 되면 하루 종을 친다.”, “게으른 사람은 게으른 대로 자기 복이 있다.” 등 사탄의 철학을 생존 수칙으로 여겼습니다. 매일 현실에 안주하며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가고 육적인 안일을 탐했죠. 하나님을 이렇게 오래 믿었음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제 성품에 변화가 생겼는지, 제가 이행한 본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며 돌아본 적도 없습니다. 육적인 누림을 진리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고요. 그래서 본분을 이행할 때면 늘 어려운 것은 피하고 쉬운 것을 골랐고, 대충 건성으로 임하면서 제 잇속만 차렸으며, 무슨 일을 하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본분 이행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교회 사역에 지장을 초래하고 악영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전혀 죄스러워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너무도 무감각했던 겁니다. 저는 그제야 제가 사탄의 그 궤변 같은 법칙으로 살아가면서 안일만을 추구하고 발전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타락하면서 양심은 점점 더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을, 어떤 인생 목표도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폐인이 되지 않을까요? 본분을 잃게 된 것은 제가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게을렀기에 제 인격을 비천하게 만들고, 전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 채 형제자매들의 반감을 샀으며, 나아가 하나님께 혐오받은 거죠. 예전에 저는 이행하는 본분이 많고 요구치가 높은 것은 고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본분 이행으로 고생하는 것이겠습니까? 제 본성이 너무도 나태하고 이기적이어서 늘 육만 좇은 탓이지요. 본분 이행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가끔 노력을 하고 얼마간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것은 전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지 않으시니까요. 또한, 하나님은 그 난관을 통해 제 패괴 성품과 부족한 점을 드러내셨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며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말이죠. 또 제가 난관 앞에서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기대며 진실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시려는 거였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눈멀고 어리석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진리를 얻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수도 없이 놓쳐 버렸고, 좋은 시기를 헛되이 흘려보냈습니다. 제 육은 편했습니다. 그다지 고생을 하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대가를 치르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어떤 진리 실제도 없었고, 패괴 성품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선행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줘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샀죠. 계속 이런 식으로 흐리멍덩하게 살아간다면,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자 너무도 후회스럽고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죠.

한번은 영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오늘날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모두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이것을 목표로 추구한다면 성령이 함께할 것이다. 추구하는 목표가 높을수록 더 온전케 될 것이며, 진리를 추구할수록 성령이 더욱 많이 역사할 것이고, 추구하는 힘이 클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성령은 사람 내면의 상태에 따라 온전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거나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으며, 그저 육적으로 평안하고 재앙만 없으면 된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고 무저갱에 내려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것도 이루어 준다. 하나님은 네가 추구하는 것에 맞춰 이뤄 줄 것이다. 지금 너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느냐?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느냐? 지금 네가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 위함이냐? 일상생활 속에서 너는 늘 이렇게 스스로를 가늠해 봐야 한다. 네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 마음으로 추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이는 성령이 가는 길이다. 성령이 인도하는 길은 추구해야 들어설 수 있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를 갈망할수록 성령은 네 내면에서 더 많이 역사할 것이고, 네가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물러날수록 성령은 역사할 기회가 없기에 차츰 네게서 떠나갈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느냐? 너희의 모든 행동은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며 쓰임 받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 만유에게 하나님의 행사가 너희에게 나타났다는 것과 만물 가운데서 너희가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게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만유 가운데에서 너희로 인해 증거와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가장 복받은 세대임이 증명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를 얻고 싶다면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해야 하고, 그래야 마지막에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한순간의 육적인 누림을 위해 진리를 포기한다면, 그런 삶에는 패기도 존엄도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성령 역사도 잃게 되고요. 또 마지막에 하나님께 버림받고 내쳐져 구원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이 밖에도 저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닥친 일에서 늘 스스로를 돌아보고 본분 이행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또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육을 좇지 말고 자신을 저버리며 교회 사역을 지켜야 하고요. 이렇게 해야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얻을 수 있죠. 이러한 것들을 깨닫자 마음속이 환해졌습니다. 저는 육을 저버리고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떻게 해야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지 의식적으로 고민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원칙이 있으면 형제자매들에게 구했으며, 평소에도 그들과 함께 자주 공부했죠. 그러자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제가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졌지만 더는 그 일들이 번거롭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죠. 하루하루가 무척 바쁘기는 했지만, 아주 보람찼습니다.

하루는 뜻밖에도 리더가 찾아와 다시 영상 제작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죠. 육을 좇으며 본분을 소홀히 하고 건성으로 이행하던 과거의 저를 떠올리자 하나님께 너무도 죄스러웠습니다. 지나간 잘못을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앞으로의 본분은 마음을 다해 대가를 치르며 이행하고 싶었습니다. 본분을 훌륭히 이행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죠. 그 후, 본분 이행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제작한 영상의 성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팀장과 책임자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몰랐죠. 저 역시 난관에 부딪혀 수정 방향을 잡지 못했고요. 저는 ‘계속 수정한다면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건 물론이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어. 다른 사람한테 제작하라고 하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또 난관에 부딪혀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본분이 주어졌을 때, 그 일을 너에게 맡겼을 때, 어려움을 회피하려고 고민하지 말고 처리하기 힘들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 너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니 사람이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면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너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닥치든 하나님께 기대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육적인 고통이 두려워 회피하고 본분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자 본분에 충성심이 없는 행동이죠. 이것을 깨달은 저는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의지해 그 작업을 제대로 해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조금씩 수정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의외로 문제가 빨리 해결됐고, 다른 사람들도 결과물이 아주 좋다며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마음이 아주 평안하고 안심되었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야말로 인격이 있는 것임을 깨달았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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