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지난번 예배 시간에도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교제했다. 주로 어떤 내용을 교제했느냐?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과 패괴 성품의 차이를 교제했다. 그 밖에 선천적인 조건과 패괴 성품, 이 두 가지 방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교제했다. 교제를 통해 너희는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해 사람의 어떤 측면을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어느 정도 인식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번에 교제해 주신 덕분에 저는 하나님께서 사역하여 바꾸시려는 것이 사람의 패괴 성품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도록 하려는 것이지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들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할 때 다양한 사역 방식을 취하는데, 모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대상으로 한다. 하나님은 사역을 통해 사람이 의지해 생존하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벗어 버리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사람의 내면에 행사해 사람의 생명이 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역하여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성과이다. 이 방면의 내용을 교제할 때 너희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너희에게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무엇이었느냐? 한번 떠올려 보아라. (하나님께서 지난번에 교제하신 내용을 통해 일을 바라보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 하나를 바로잡았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고유한 자질과 능력, 성격을 바꾸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패괴 성품과 온갖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과 관점 등 사탄에 속하는 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함으로써 사람의 정상 인성은 회복되고 양심과 이성은 갈수록 정상화됩니다. 또한 저는 진리 추구의 중요성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해야만 우리의 패괴 성품이 해결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교제하신 이 두 가지 방면의 내용이 비교적 인상 깊었습니다.) 지난번 교제한 내용은 이상(異象)이라는 방면의 진리와 관련 있다. 즉, 하나님 사역의 일부 구체적인 내용과 하나님의 사역이 겨냥하는 대상, 나아가 이루려는 성과와 관련 있다. 교제한 내용들을 근거로 일부 구체적인 문제도 만들어 냈다. 일상생활 속 사람의 어떤 모습이 선천적인 조건에 해당하는지, 어떤 모습이 인품이나 인성의 본질,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성이 좋거나 나쁜 모습인지, 또 어떤 모습이 패괴 성품의 표출인지 등이다. 이런 것들이 구체적인 문제가 아니겠느냐? 비록 예전에 이런 방면의 주제를 교제할 때 일부 사례를 들기는 했지만 대상이 별로 뚜렷하지 않았고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교제하여 사람이 표출하는 어떤 모습이 선천적인 것이고 어떤 모습이 인품에 관한 것인지, 또 어떤 모습이 패괴 성품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 구분해 보자. 이 세 가지 방면의 구체적인 모습을 구분해 보자. 그러면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근거로 대조해야 하는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즉, 사람의 어떤 표출이 정상 인성의 선천적인 것에 해당하여 굳이 신경쓰거나 억누를 필요가 없는지, 어떤 것이 인성 방면의 문제를 표출하는 것에 해당하며 어떻게 그것을 바꾸고 바로잡거나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는지, 또 어떤 모습이 패괴 성품의 범주에 해당하며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 그것의 본질을 인식하고 해결하고 그것을 벗어 버려야 하는지 등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의 길도 있다. 사람이 보이는 서로 다른 모습에 따라 실행의 원칙과 길을 교제하여 사람이 어떻게 그런 문제들을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깨닫도록 하고, 여러 방면의 문제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태도와 실행 길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교제하면 좋지 않겠느냐? (좋습니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방면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예전에 이미 두 번이나 교제했다. 사람의 일부 모습과 표출이 어느 방면의 문제에 해당하는지 대상을 확정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각 방면의 문제를 교제할 때마다 몇몇 사례를 들었다. 지금까지 매번 교제할 때마다 이 세 가지 방면의 내용을 다루는 경우 이 문제들의 본질이나 실행 길, 실행 원칙도 교제했다. 그럼 내가 말한 세 가지 방면의 문제에서 선천적인 조건이란 무엇인지 먼저 말해 보거라.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할 수 있게 너희가 먼저 대략적으로 교제해 보거라. (하나님, 선천적인 조건이란 사람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타고난 성격과 본능 아닌가요?) 이 방면의 내용도 교제한 적이 있으니 너희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또 있느냐? 특기나 외모도 선천적인 조건 아니냐? (맞습니다.) 출신은 어떠냐? (출신도 맞습니다.) 또 생활 규칙과 생활 습관도 있다. 더 있느냐? (취미도 있습니다.) 취미는 특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니 추가하는 것이 더 구체적이다.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 첫 번째는 출신, 두 번째는 외모, 세 번째는 성격, 네 번째는 본능, 다섯 번째는 자질, 여섯 번째는 특기, 일곱 번째는 취미, 여덟 번째는 능력이다. 그 다음은 생활 습관과 생활 규칙인데, 이 두 가지는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차이가 좀 있다. 이렇게 총 열 가지이다. 읽어 보아라. (첫 번째는 출신, 두 번째는 외모, 세 번째는 성격, 네 번째는 본능, 다섯 번째는 자질, 여섯 번째는 특기, 일곱 번째는 취미, 여덟 번째는 능력, 아홉 번째는 생활 습관, 열 번째는 생활 규칙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이다. 선천적인 조건도 구체적으로 교제해야 하지 않겠느냐? 교제하지 않아도 너희가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겠느냐? (명확히 구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느냐? (때때로 사람의 어떤 모습을 보아도 그것이 사람의 성격이나 본능인지, 아니면 패괴 성품의 표출인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생활 습관과 생활 규칙도 후천적인 생활 조건과 배경에 따라 형성된다고 생각했지 선천적인 조건인 줄은 몰랐습니다.) 보아라. 큰 주제를 일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나누어 보니 겉보기에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 생활 속에서는 조금 헷갈리고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여전히 확실히 알지 못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교제해 봐야 한다.
방금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방면을 언급했는데, 선천적인 조건에 관한 몇몇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교제해 보자. 인성과 패괴 성품은 따로 열거하지 않겠다. 선천적인 조건의 구체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모습을 교제하면서 인성의 모습과 패괴 성품의 표출도 일부 다룰 것이다. 이런 것들을 교제할 때 그것이 선천적인 조건에 해당하여 사람이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인품이나 패괴 성품의 문제에 해당하여 사람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분별하고 구분해 보아라. 구체적인 사례와 구체적인 문제를 통해 구체적으로 교제하면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고 생활이 넉넉하지 않다. 늘 주머니 사정이 나빠서 무엇을 사고 싶어도 항상 계산하고 계획해야 하며, 돈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한 푼도 반 푼으로 쪼개어 쓰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런 조건은 우리가 교제하는 세 가지 방면의 내용 중 어느 것이냐? 선천적인 조건이냐, 아니면 인성이나 패괴 성품이냐? 이는 선천적인 조건 중 출신에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게 좋은 출신이냐?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좋지 않습니다.) 생활이 별로 넉넉하지 않고 가정 형편이 어려우며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여유롭지 않은 것은 사람의 출신 문제와 관련 있다. 이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산해진미를 먹어 본 적도, 명품 옷을 입어 본 적도, 다양한 사치품을 구경해 본 적도, 고급스러운 물건을 접해 본 적도, 부호나 유명인을 만나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고 남들과 접촉하고 어울릴 때 남의 이익을 차지하지 않는다. 누가 좋은 것을 누리거나 돈이 많은 것을 보면 속으로는 부러워하더라도 결코 남의 것을 훔치거나 가로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의 이런 표출은 어느 방면과 관련 있느냐? (인품과 인성입니다.) 인성과 관련 있다. 그의 인성 방면의 모습은 좋으냐, 나쁘냐? (인성이 좋고 정직합니다.) 정직하다고는 할 수 없고, 단지 작은 이득을 탐하지 않고 부자를 봐도 아첨하지 않으며 올바르게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인성은 어떠냐? (인성이 비교적 좋습니다.) 이는 객관적인 말이다. 인성이 비교적 좋다. 즉, 인품 방면에서 상대적으로 인격과 존엄을 갖추었다. 비록 출신은 가난하고 고귀하지 않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유함을 좋아하지 않고 남의 이익을 탐하지도 않는다. 반면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부류도 있는데, 이방인의 말로 표현하자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생활에 부족함이 없고 뭐든지 다 가지고 있으며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가정 형편도 특히 좋다. 게다가 부모도 그에게 유독 잘해 준다. 이는 어느 방면이냐? (이것도 그의 출신입니다.) 출신은 선천적인 조건이다. 비록 이 사람은 출신이 특히 좋고 경제적 조건도 나쁘지 않으며 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데다가 좋은 물건도 구경해 봤고 세상 물정도 잘 알지만 남들과 어울릴 때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능력 있는 사람을 보면, 혹은 어느 방면에서 두드러진 특기를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위신이 높은 사람을 보면 속으로 질투하며 갖은 방법을 동원해 깎아내리려 한다. 이는 어느 방면의 모습이냐? (패괴 성품과 인성, 이 두 가지 방면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인성과 패괴 성품, 이 두 가지 방면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미워하며, 억누르고 괴롭히고 배척하고 뛰어넘으려 한다. 만약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만 있을 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인성이 나쁜 것이다. 인성이 악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만약 악한 인성을 토대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불복하고 뒤에서 판단하며 심지어 몰래 수작을 부려 그를 억누른다면 그게 바로 패괴 성품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이 패괴 성품의 본질은 무엇이냐? 흉악한 것이다. 그의 이런 방면의 모습은 인성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패괴 성품과도 관련 있다. 이 사람은 비록 가정 형편이 나쁘지 않고 잘 먹고 잘 입어서 식견도 있고 남에게 너그러울 것 같지만 사람들과 교류할 때 늘 남의 이익을 차지하려 하고 항상 쩨쩨하게 따진다. 외출할 때면 누가 돈을 가장 많이 썼는지, 여비는 누가 냈는지 따지며 한 푼도 더 쓰려 하지 않는다. 다 같이 일할 때는 늘 누가 많이 일했고 누가 적게 일했는지 따지면서 게우름 피울 궁리만 한다. 이는 어느 방면과 관련 있느냐? (그의 인성과 관련 있습니다.) 인성의 어느 측면이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측면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남의 이익을 차지하기 좋아하는 데다가 인격의 존엄을 갖추지 않았다. 이는 인품과 관련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따지기 좋아하고 남의 이익을 차지하려 하는데, 한 푼어치의 이익이라도 챙기려 하고 모든 기회를 찾아 이익을 얻으려 한다. 공공의 것이든 개인의 것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누구의 이익이든 탐하며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기회만 생기면 이익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과 어울릴 때 유독 인색하고 계산적이다. 예를 들면, 지난번에 네가 도움을 요청해서 그에게 빚을 졌으면 그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네가 그를 돕게 만든다. 게다가 예전에 그가 준 도움보다 네가 더 큰 도움을 주어야만 수지가 맞다고 생각한다. 이는 쩨쩨하게 따지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쩨쩨하게 따지는 것이고 남에게 유독 인색하며 특히나 잇속에 밝은 것이다. 그는 먹고 입으며 치장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어느 방면에서나 남보다 잘 누리지만 누가 자기는 본 적 없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가져와 써 보고 구경하려 한다. 남이 가진 물건은 반드시 자신도 가져야 하고, 가지지 못하면 속으로 언짢고 불편해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잔다. 자기도 가져야만 그제서야 만족한다. 이는 어떤 문제이냐? (이 역시 인성의 문제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모습은 인성의 문제이지 그의 선천적인 조건이 아니다. 그의 출신 가정과 그가 누릴 수 있는 가정 환경은 선천적인 조건일 뿐이고, 그가 처신하는 방식들은 그의 인성과 관련 있다. 처신하는 태도와 수단, 출발점 등의 표출과 모습은 인품의 문제와 관련 있지 패괴 성품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의 인성은 이기적이고 인색하며 쩨쩨하게 따지는 데다가 잇속을 차리는 것은 물론 남의 이익을 차지하기 좋아하는데, 이는 인성이 좋은 모습이냐, 아니면 나쁜 모습이냐? (인성이 나쁜 모습입니다.) 전부 다 인격이 떨어지고 인성이 나쁜 모습이다. 인성이 나쁜 이런 모습들은 사람도 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선천적으로 초롱초롱한 큰 눈을 가져서 총기가 있고 말을 잘할 것처럼 보이며 어릴 때부터 모두의 호감을 산다. 이는 어느 방면으로 결론지을 수 있느냐? (이는 그의 외모입니다.) 외모는 선천적인 조건에 해당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단정하여 선천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패괴 성품이냐? (아닙니다.) 인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겠느냐? (관련 없습니다.) 인성이나 패괴 성품과 관련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다. 선천적인 조건은 타고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외모를 가진 것으로, 인위적인 가공을 거치거나 인위적으로 어떤 변화를 주지 않은 하나의 조건이다. 비록 선천적인 외모는 뛰어나지만 그는 일상생활 속의 복잡한 문제들을 대할 때 늘 흐리멍덩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며 사람, 일, 사물을 분별할 줄도 모른다. 어떤 사람과는 어울려도 되고 어떤 사람과는 어울리면 안 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악인인지, 어떤 사람과 어울리면 골치 아파지는지도 알지 못한다. 스무 살쯤엔 아예 몰랐고 서른, 마흔 살이 된 뒤에도 어느 정도 경력은 쌓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한다. 보기에는 눈도 크고 말도 잘하는 것 같지만 마음은 여전히 흐리멍덩하다. 이는 무슨 문제이냐? (선천적인 자질의 문제가 아닐까요?) 선천적인 자질 방면에서 그다지 좋지 않아서 인간관계에서 늘 원칙을 찾지 못하고 다양한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늘 남에게 속고 해를 입거나 우롱당한다. 이런 사람은 자질이 어떠냐? (자질이 비교적 떨어집니다.) 자질이 좋지 않다. 눈이 예쁘다고 해서 마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조건인 외모는 괜찮지만 자질이 별로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잘하는 게 있다. 그는 학창 시절 책 속의 지식을 잘 습득했고, 국어 교과서를 외우거나 수학, 물리학, 화학, 또는 언어를 익히는 속도가 꽤 빨라서 순조롭게 대학에 입학한 뒤 대학원도 진학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는 무엇으로 결론지을 수 있겠느냐? 그의 자질이 좋은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어느 방면으로 결론지어야 하느냐? (그의 선천적인 조건 중 특기로 결론지어야 합니다.) 그게 정확하다. 그는 책을 읽고 지식과 학문을 습득하는 데 능하다. 책 속의 지식과 규칙적이고 이론적인 것, 예를 들면 업무 기술이나 과학 기술 방면, 혹은 수학, 물리학, 화학 공식이나 규칙을 빨리 익히고 특히 확실하게 기억한다. 이런 부류는 이런 것들을 배우는 데 소질이 있고 이런 것들에 특히 밝아서 한 번 보면 바로 이해한다. 특히 시험을 보고 답안을 작성하는 데 재주가 있어서 유독 능숙하게 문제를 푼다. 이것이 그가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다. 이런 부류는 지식의 바다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면의 모습이 자질을 의미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그가 한 방면의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런 부류는 지식 분야에서 특히 능력을 잘 발휘하고, 자신이 그 방면에서 뛰어난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다. 그는 이런 방면에서 특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석사, 박사 과정도 밟아 고학력을 지니는 등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유식한 사람이자 학자, 급이 높은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읽은 책이 많을수록 그는 자신은 유명인이나 뛰어난 자이고 자신 이외에는 모두 평범한 사람이라 무식하고 그의 마음을 읽지도, 꿰뚫어 보지도 못하는 데다가 자신과 같은 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속으로 늘 자신이 일반인보다 뛰어나고 속세를 초월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모습이냐? (패괴 성품입니다.) 이는 패괴 성품의 어느 방면이냐? (교만한 방면입니다.) 교만한 패괴 성품으로 인해 그는 고학력자가 된 뒤 대중과 각 계층 사람들을 더욱 멸시하게 됐다. 그는 높은 학력과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뒤 교회에서 늘 결정권을 가지고 리더가 되려 한다. 선거 때마다 자신이 뽑히길 바라고, 일단 낙선하면 바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자포자기한다. 리더 일꾼이 뭐라고 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배척하려고만 한다. 그에게 어떤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해도 그는 반감을 품고 뒤에서 판단하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말도 논리적으로 못하는 당신이 교회 리더를 맡다니,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 용납할 수 없다고!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 노새인지 말인지 끌고 다니면서 한번 비교해 보자고. 누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외우는지, 누가 더 높은 수준의 인식을 이야기하는지 말이야. 당신이 나보다 교제를 못하면 나는 불복할 거야! 당신이 리더로 뽑혔지만 당신이 일을 시킨다고 해서 내가 전부 따르고 시행하고 복종할 필요는 없어!’ 이는 어떤 모습이냐? (패괴 성품입니다.) 이는 패괴 성품의 구체적인 표출이다. 이는 인성과 관련이 있느냐? 사람이 선천적으로 한 방면의 특기를 갖추어서 그것을 토대로 책도 많이 읽고 지식도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지위도 가지게 되면 그는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고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 말하며 유세를 떨려 하고 늘 무리에서 지도자가 되어 남이 자기 말을 듣게 하려 한다. 이런 사람은 양심과 이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문제이냐? 그는 특기 덕에 공부해서 쉽게 고학력을 얻었는데 그렇다면 그 특기가 문제이겠느냐? 특기 자체가 패괴 성품이냐? 인성이 나쁜 모습이냐?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이 방면에서 특기를 가지고 있어서 많은 지식을 얻고 고학력자가 되었으며 지위에 대한 이 사회의 평판과 정의에 순응하게 됐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교회에서 결정권을 가져야 하고 어느 무리에서든 출중한 인물이 되어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런 인성이 이성적인 것이냐? 이런 인성이 좋은 것이냐? (나쁜 인성입니다.) 인성이 어떻게 나쁜 것이냐? (비이성적이고 비양심적이며 늘 남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늘 남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패괴 성품이 초래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성 방면에서 조금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은 사회가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 리더를 뽑을 때 학력을 비교하느냐? (학력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은 무엇을 근거로 리더를 뽑느냐?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은 리더를 뽑을 때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하지 누구의 학력이 높은지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 그럼 그는 리더를 뽑는 원칙을 알겠느냐? 그도 알기는 하지만 원칙을 그저 틀에 박힌 말이나 이론으로 삼을 뿐 생활 속에서 실행하고 활용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학력이 높은 사람만이 자질이 좋고 진리를 깨달아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다고 항상 퍼뜨린다. 그는 학력이 높고 지식을 좀 갖추었으며 사회에서 지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집도 사회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을 갖추었고 학력이 높다는 것을 밑천 삼아 하나님 집에서도 결정권을 가지려 한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보고 사물을 대하는 방식, 사회의 신분과 지위를 대하는 방식이나 각도, 관점으로 하나님 집이 리더를 뽑는 원칙을 대체하려 한다. 이는 비이성적인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비이성적인 것을 달리 해석하면 무엇이냐? (뻔뻔스러운 것입니다.) 속된 말로 하면 뻔뻔스러운 것이고, 또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은 이성이 부족한 것이다. 그는 소위 고등 교육을 받았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책이나 그 어떤 교사, 교육자도 그에게 어떻게 해야 이성적인 것인지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는 책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운 뒤 오히려 자신이 밑천이 생겼고 보통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비록 그의 특기는 부정적인 사물이 아니고 선천적인 조건이지만 이 특기는 사람을 교만하고 방자하게 만들고 이성을 잃게 하며 후안무치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게 만들기 쉽다. 책을 그토록 많이 읽고 지식도 그렇게나 많이 습득했지만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력을 좀 쌓은 뒤에는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여기저기 자랑하고, 하나님 집에서 지위를 얻어 결정권을 가지려 한다. 그는 ‘나는 학력이 높고 새로운 것도 빨리 배우는데, 이게 바로 자질이 좋은 거야. 게다가 난 지식이 해박하고 식견도 높고 머리도 잘 돌아가잖아. 그러니 난 다른 사람을 이끌 자격이 있어.’ 그 뜻인즉슨 자신의 지식과 특기가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전부 비이성적인 모습이다.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인격이 있겠느냐? 존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인격도, 존엄도 없다. 이는 인성이 좋은 모습이냐, 아니면 인성이 비열하고 졸렬한 모습이냐? (인성이 비열한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성이 좋지 않다. 그는 자신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 몸값과 신분을 가장 사랑한다. 그는 이를 밑천으로 삼아 특히 교만하고 방자하게 굴며 결정권을 가지려 한다. 이는 인성이 비열한 모습이다. 이 문제는 두 방면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인성과 관련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패괴 성품과 관련 있다. 그가 문제를 바라보는 각도와 문제를 처리하는 태도나 관점은 그의 인성과 관련 있다. 그의 이런 인성으로 인해 일부 구체적인 행동 방식, 모습, 표출이 생겨나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말이 적고 어릴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쓰는 언어도 풍부하지 않고 단순하다. 많은 일이 닥쳐도 생각이나 언어적 표현을 많이 하지 않으며 설사 표현하더라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 이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성격 방면의 문제입니다.) 선천적인 조건 중에서 성격 방면의 문제이다. 성격상 선천적으로 과묵하고 쓰는 언어도 단순하며 별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들과 교제할 때도 말수가 많지 않고, 예배 시간에 진리를 교제할 때도 남의 말을 듣기만 한다. 남의 말이 끝난 뒤 그가 간단하게 대답만 하더라도 훌륭한 것이다.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인식하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과 비슷하게 인식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고 하면 그는 “당신과 생각이 같아요.”라고 답하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말을 많이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은 겉보기에는 말이 적고 늘 과묵한 것 같지만 뒤에서는 소문을 캐묻기 좋아한다. “아무개 형제자매는 어느 대교구 사람이에요? 듣자 하니 하나님을 8년이나 믿었다던데, 리더가 된 적이 있나요? 나이는 몇이죠? 이혼했고 아이도 하나 있다더라고요?” 이는 어떤 모습이냐? 겉으로는 말수가 적고 공공장소에서는 말을 잘 안 하며 쓰는 언어도 별로 풍부하지 않고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소통할 때는 말이 없다. 그러나 다른 방면에서는 말을 많이 하며 늘 남의 소식 캐묻는 것을 좋아한다. “저 사람은 쌍커풀 수술을 하지 않았나요? 피부가 참 하얀데 늘 관리를 받으러 다니겠죠?” “항상 신형 컴퓨터를 쓰고 비싼 명품 옷만 입는 걸 보니 저 사람은 집에 돈이 꽤 많은가 봐요? 저 집은 무슨 사업을 한대요? 아버지가 관직에 계신 거 아니에요?” 이런 모습은 어느 방면의 문제와 관련 있느냐? (인성 방면의 문제와 관련 있습니다.) 소문을 캐묻기 좋아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수집하며 걸핏하면 시비를 가리는 것은 인성 방면의 모습에 해당한다. 그럼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바람직하지 않으냐? 인성이 가진 어느 방면의 문제와 관련 있느냐? 그는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도 않았고 남의 이익을 침해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의 이런 모습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느냐? (그는 항상 남의 일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뒤에서 남의 일을 알아봅니다. 이 사람은 인성과 이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인성과 이성의 문제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그가 이런 문제를 스스럼없이 묻는다면, 예를 들어 “아무개 형제님은 올해 몇 살이에요?”라고 한다면 이는 인성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면 떳떳하고 정당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왜 어떤 사람들은 직접 묻거나 말하지 않느냐? 왜 뒤에서 수작을 부리느냐? 직접 묻고 말할 수 있는 주제라면 공개석상에서 이야기해야지 왜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냐? 이는 처신하는 일종의 태도와 방식과 관련 있지 않으냐? 이런 태도와 방식이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태도와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느냐? 뒤에서 캐묻기를 좋아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남의 사생활 캐묻기나 뒷담화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왜 뒷담화를 좋아하느냐? 질문이 있는데 왜 직접 묻지 않느냐? 직접 묻는 게 어려우냐? 그는 직접 묻기가 어렵고 직접 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뒤에서 캐묻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실 직접 물어도 되는 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나 되었나요? 대학은 다녔나요? 소양 수준은 어느 정도 되죠? 나이는 몇인가요?” 이런 것들은 모두 직접 물어도 된다. 만약 알려 주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묻지도 말고 뒤에서 캐묻지도 마라. 상대방이 알려 줄 의향이 있거나 너와 비교적 친하고 너를 신뢰해서 네게 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직접 물어도 되는데 왜 굳이 뒤에서 여기저기 캐묻고 다니는 것이냐? 그럴 필요가 있느냐? 이는 아주 비열해 보이지 않느냐? 그는 상대방이 알려 주지 않을까 봐 감히 직접 묻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특히 알고 싶어 하고 알아내려 하며 알아내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명확히 알아낸 다음에는 귀중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이는 어떤 사람이냐? 남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소식을 캐묻고 파악하는 것을 즐기는 이런 부류는 시비를 따지거나 남을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 생각에 상대방이 질문에 답할 의향이 있다면 직접 물어보고 알아봐도 된다. 상대방이 일부 질문이 지나치고 물어야 하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생각해 답변을 거부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상대방이 답하기 싫어하거나 네게 알리려 하지 않는 일은 너도 뒤에서 캐묻지 마라. 남의 소식이나 사생활을 기어코 알려고 한다면 한편으로 상대방은 너를 의심할 것이다. “왜 그런 일을 알려고 하죠? 왜 뒤에서 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냐고요. 저를 통제하고 괴롭히려는 건가요, 아니면 팔아넘기려는 건가요?” 이런 측면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에 대해 알아낼 필요가 있느냐? 무슨 자격으로 남을 알아내려고 하느냐? 모든 사람의 소식을 다 파악하려는 것이냐? 무엇이든 다 알려고 하는데, 네가 정보 수집가이냐? 네가 그런 사역을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 집은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늘 남의 사생활이나 남이 네게 알리려 하지 않는 일을 캐물으려 한다면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다. 남들이 싫어하는 사람의 인성은 어떠냐? 최소한 그 사람은 뻔뻔스럽다. 이방인은 뭐라고 부르느냐? 철면피라고 한다. 인성이 비열하고 존엄이 없으며 무슨 일이든 다 캐물으려 하고 처신이 올바르지 않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인성이 좋으냐, 나쁘냐? (인성이 나쁩니다.) 최소한 인성은 나쁘다. 이는 나쁜 인성의 범주에 포함되는 한 방면의 모습, 즉 올바르지 않고 늘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겉으로는 네게 상당히 정중하고 너를 존중하며 예의를 차리고, 우아하고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수작만 부리고 네 나이와 가정, 출신 등 여러 방면의 상황을 캐묻는다. 떳떳하게 직접 말하거나 묻지 않는다. 남들과 어울리고 대화할 때는 당당하게 굴지 못하면서 늘 뒤에서 수작만 부리고 떳떳하지 못한 일만 저지르며 속으로는 남의 사생활이나 남의 생각만 고민한다. 늘 이런 일들만 생각한다. 이런 부류는 인성이 나빠서 어떤 무리에서든 이런 사람이 있으면 다들 싫어한다. 개인적인 일을 알리고 싶지 않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성과 처신 방식을 싫어하는 것이다. 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네가 처신하는 방식이 다소 옹졸한 데다가 비열하고 야비한 수단을 쓰며 정직하고 반듯하지도, 떳떳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남과 직접 교제할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뒤에서 늘 남몰래 행동한다. 남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재빨리 그 사람의 컴퓨터를 켜고 그 사람이 누구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일기에 뭐라고 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핀다. 때때로 컴퓨터에 부팅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으면 넌지시 떠본다. “컴퓨터 비밀번호 바꿨어요? 저는 1234567로 바꿨어요. 당신도 바꾸세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내 비밀번호를 알려 줬으니 당신 비밀번호도 알려 줘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당신 컴퓨터를 뒤져 볼 기회가 생기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담하게 그 사람의 가방이나 물품을 뒤진다. 예를 들어, 남이 새로운 이어폰을 낀 걸 보면 그 이어폰의 음질이 어떤지 알고 싶어서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이어폰을 가져와 듣는다. 이런 경우 떳떳하게 그 사람에게 이어폰을 빌려달라고 하고 그 사람이 동의하면 당당하게 써 보고 동의하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된다. 이는 아주 정당한 일 아니냐? 상대방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사람 앞에서 행동해야지 뒤에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부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늘 수작을 부린다. 어느 정도로 수작을 부리겠느냐? 네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는 네 물건을 뒤지고 네가 묵상 노트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살핀 뒤 빠뜨릴까 봐 재빨리 베낀다. 겉보기에는 진리를 꽤 갈망하는 것 같지만 뒤에서 하는 짓은 몹시 야비하다. 그는 네가 새로운 컴퓨터를 산 것을 보면 질투하면서 새로운 컴퓨터가 좋고 속도도 빠르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빠르긴 뭐가 빨라! 언제 고장이나 나면 좋겠다!’ 어느 날 네가 새로운 컴퓨터가 별로라고, 반응이 느리다고 하면 그는 속으로 기뻐한다. ‘그러게 새 컴퓨터는 뭐 하러 샀는지! 나도 못 쓰는데 당신이 써서야 되겠어!’ 그의 마음속에는 떳떳하지 못한, 비열하고 야비한 생각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남이 가진 예쁜 옷을 보면 자기도 입어 보고 싶지만 직접 말하지는 않고 기어코 그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몰래 입어 본다. 거울에 비춰 보며 입어 보니 예쁘다고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면 재빨리 벗어서 제자리에 놓는다. 이런 부류의 수작과 일 처리 방식은 비록 패괴 성품과는 무관하고 패괴 성품만큼 심각하지도 않지만 그가 처신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상당한 반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느 정도로 심각하겠느냐? 그들은 처신이 올바르지 않고 뒤에서 온갖 수작을 부리는 데다가 문제를 처리할 때도 늘 옹졸하고 야비하다. 항상 몰래 움직이며 무슨 일이든 남이 보는 데서 하지 않고 뒤에서 몰래 한다. 남이 자리를 비우고 주목하지 않을 때나 아무도 보거나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슬며시 행동한다. 이런 부류는 인성이 나쁘고 늘 어두운 구석에서 산다. 어둠으로 뒤덮인 분위기 속에서 살며 빛도 사람도 보지 못한다. 인성은 아주 비열하고 야비하다. 이렇게 인성이 비열한 모습이 본능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행동하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뒤에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뒤에서는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이게 성격과 관련 있겠느냐? (관련 없습니다.) 만약 그가 이렇게 수작을 부리거나 인성을 표출하고 살아 내는 것이 어느 방면의 패괴 성품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그는 끊임없이 수작을 부려도 겉보기에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지 않다. 교회에서 그에게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하면 대다수 상황에서 그는 상당히 마음을 쓰고 말도 잘 듣는 편이며 겉보기에는 상당히 올바르다. 그러나 뒤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쥐새끼처럼,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을 때는 수작을 부리고 행동에 나선다. 이런 자는 쥐새끼 같은 부류가 아니겠느냐? 말해 보거라. 이런 부류는 이런 인성과 처세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인성과 품성, 인성 본질을 가진 그가 하나님과 진리를 어떻게 대하겠느냐? 사람을 대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또 뒤에서 수작을 부리지 않겠느냐? 갖은 방법을 동원해 리더 일꾼의 감독을 피하고 표리부동하게 굴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든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대하고 수작을 부리거나 겉치레나 하면서 겉으로는 남들이 아무런 문제나 잘못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겉보기에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이미 수작을 다 부려 놓았고 잘못도 저질렀다. 그는 하나님의 감찰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기 때문에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무엇과 관련 있느냐? 패괴 성품과 관련 있다. 그가 이런 인성과 처세 방식으로 하나님과 진리, 본분을 대할 때 그의 인성이 표출해 내는 일부 구체적인 모습은 패괴 성품과 관련 있다. 여기에는 어떤 패괴 성품이 있느냐? 최소한 간사함이 있고, 더욱 은밀하고 기만적으로 행동한다면 무엇과도 관련 있겠느냐? (사악한 수준에 이릅니다.) 패괴 성품 중에서도 간사함이나 사악함과 관련된다. 그 밖에도, 그는 진리와 하나님의 감찰을 대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시종일관 의심을 품는다. 이는 아주 뿌리깊은 의심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몰래 하는 일은 아무도 몰라. 하나님께서 어디 계신지 나는 볼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도 분명 모르실 거야. 오직 나만 안다고.’ 이 역시 패괴 성품과 관련 있지 않겠느냐? 어느 방면의 패괴 성품과 관련 있느냐? (강퍅함 아닙니까?) 그의 내면에는 강퍅한 성품이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그런 생각의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는 진리를 대할 때 반항하고 대적하는 태도를 보인다. 강퍅할 뿐만 아니라 유독 진리를 싫어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일단 패괴 성품과 관련되면 인성이 나쁜 것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 진리의 본질을 위배하는 것,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관련 있다. 패괴 성품과 관련되는 순간 진리 원칙과도 관련이 생기고, 진리로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키가 크고 몸매가 아름다운 데다가 이목구비도 단정하고 청순하여 남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무슨 옷을 입든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한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옷걸이네요. 너무 멋지고 아름답고 예뻐요!” 이는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방면 중 어느 방면에 해당하느냐? (선천적인 외모입니다.) 선천적으로 뛰어난 외모를 갖춘 것이다. 선천적으로 외모와 몸매가 뛰어나서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칭찬하고 친구들도 부러워하며 부모도 특히 예뻐해 온종일 치장해 준다. 세 살, 다섯 살도 되기 전부터 여자아이처럼 꾸몄다가 남자아이처럼 꾸몄다가 하며 마치 장난감을 좋아하듯 사랑해 준다. 어른이 된 뒤에도 예쁜 것을 특히 좋아해서 오늘날의 풍요로운 생활 환경 속에서 꾸미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생긴다. 특히 다양한 패션 정보를 접한 뒤 그는 옷의 색상과 스타일, 디자인을 맞춰 입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늘 단정하고 우아하게 옷을 입는다. 아무 티셔츠나 청바지도 그가 입으면 다르다. 이에 더해 잘 어울리는 색상의 신발도 맞춰 신으면 더욱 근사하고 아름답고 멋져서 보는 사람의 눈이 즐겁다. 그가 공공장소나 길거리에 나타나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이 쳐다본다. 선천적으로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갖춘 데다가 꾸밀 줄도 알기 때문에 어떻게 꾸미든 유독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동성이든 이성이든 모두 그와 접촉하고 어울리기 좋아하고, 그와 함께 앉아 말하고 대화하고 가까이에서 접촉하며 그의 미모를 즐기고 싶어 한다. 이것이 그의 잘못이냐? (아닙니다.) 그의 선천적인 조건이 훌륭해서 그에게 어떤 문제나 흠, 결함이 있든 사람들은 다 너그럽게 봐주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 그는 특히 환영받고 잘 풀린다. 그가 듣기 싫은 말을 한 마디 해도 사람들은 즐겁게 듣고, 짜증을 부리거나 정색해도 개의치 않으며 문제 삼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행동을 그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선천적인 조건은 그에게 일종의 우월감을 안겨 주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쁘게 생기고 분위기가 있는데 꾸밀 줄도 알면 어디에 가든 잘 풀리네. 너무 좋다! 이 사회와 이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먹히는구나.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이 선천적인 조건은 내 밑천이야. 취직하기도 편하고, 시험 때 베끼고 싶은 답안이 있으면 눈짓 한 번에 상대방이 넙죽 내놓을 거야.’ 수많은 이성이 그를 쫓아다니고, 동성 중에도 그에게 잘해 주며 온종일 예쁘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넘친다. 그러자 그는 점점 더 자신의 우위를 즐기게 된다. 그 우위는 그에게 수많은 편리한 조건과 이익, 특혜를 가져다 주고 그가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한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 그는 자신에게도 일정한 요구 사항을 가지게 된다. 매일 화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않고 얼굴에 여드름 하나만 나도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으며 음식도 가려 먹어서 매운 음식이나 간장을 못 먹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걱정한다. ‘여드름이 언제 없어지려나? 자국이 남을까 봐 짤 수도 없어. 하지만 짜지 않으면 예전에 나를 흠모하던 이성들이 여드름을 보고 내가 더이상 예쁘지도 않고 자신의 이상형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그럼 어떡하지? 그러니까 여드름이 없어진 다음에 외출하자. 절대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날 순 없어. 그러면 사람들 마음속의 내 완벽한 이미지를 잃게 될 거야.’ 또 어떤 사람들은 옷을 입을 때 반드시 색상, 스타일, 디자인을 맞춰 입는다. 외출하기 전에 거울 앞에서 전후좌우를 몇 번씩이나 비춰 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셀카를 찍어 자신이 바깥의 햇빛이나 불빛 아래에서도 완벽한지 확인한다. 피부, 혈색, 헤어스타일, 옷,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남의 눈을 즐겁게 하고 호감을 살 수 있어야만 외출한다.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이런 생활 스타일을 유지한다. 만약 오늘 특수한 상황이 있어서 씻지 못했다면 이성이 다가올 때 서둘러 피한다. 그는 씻지 않은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외모와 분위기에 대해 가지는 수많은 요구 사항으로 인해 일상생활도 영향을 받는데, 그는 씻을 수 없는 곳에 가면 괴롭고 힘들어하며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이렇게 생각한다. ‘씻을 수 없는데 어떡하지? 난 한 번도 3일 넘게 씻지 않은 적이 없어. 몸에서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내 완벽한 이미지가 타격을 입고 더이상 사람들의 이상형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어떡하지?’ 어느 곳에 갔는데 생활 조건이 좋지 않아서 식사를 해도 영양을 풍부하게 골고루 섭취할 수 없으면 그는 걱정한다. ‘내 피부가 상하지 않을까? 피부가 거칠어지고 늙지 않을까? 주름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런 곳에서는 못 있겠어. 얼른 떠나야 해!’ 선천적인 조건이 그에게 안겨 준 우월감으로 인해 그의 생활은 특히 복잡해지고 그는 유독 피곤하고 부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그는 그에 대한 남의 생각, 그의 차림새와 분위기, 표정에 대한 남의 평가, 남의 시선을 특히 신경쓴다. 심지어 어느 정도로 신경쓰겠느냐?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사역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외모가 그에게 안겨 준 우월감으로 인해 그는 허영심이 많아지고 자신의 겉모습과 남의 시선을 몹시 신경쓰게 된다. 무엇이 문제겠느냐? 이런 모든 모습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이 문제를 처리하는 올바른 태도이겠느냐? (아닙니다.)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 내는 일부 기형적인 관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그의 이런 방면의 모습은 무엇과 관련 있느냐? (인성과 관련 있습니다.) 인성 속 어느 방면의 문제와 관련 있느냐? 그의 이런 처신에는 어떤 문제가 있느냐? 허영심 아니냐? (그렇습니다.) 허영심은 인성에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또 어떤 문제가 있느냐? 허영을 좋아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며 남의 마음속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데다가 유독 나약하고 고생을 견딜 줄 모른다. 그 밖에도, 이기적이라서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그의 시중을 들고 그를 위해 봉사하도록 하고, 정작 자신은 조금도 고생하지 않는다. 선천적인 외모가 그에게 안겨 준 우월감으로 인해 그는 늘 사람들이 그 위주로 행동하게 한다. 그가 일상생활 속에서 중심에 놓는 일과 이루려는 목표는 바로 자신의 이런 표면적인 이미지를 잘 지키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사진을 찍다가 웃을 때 남들이 그의 이에 채소 잎이 낀 것을 발견하면 그 후로 그는 더이상 채소 잎을 먹지 않는다. 설사 음식이 그것 하나 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더라도 식사 후 재빨리 입을 가시고, 반드시 거울에 비춰 보아 치아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난다. 이는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는 모두 인성의 범주 안에 있는 문제에 해당할 뿐 패괴 성품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가 처리하는 문제들은 전부 인성 생활의 일부 범위와 관련될 뿐이다. 즉, 그의 겉모습과 마음속 요구 사항을 중심으로 그의 아름다운 외모와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행동들이 음식을 먹는 것이든 외모를 치장하는 것이든, 아니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든 그가 그런 문제들을 처리하는 관점과 태도는 모두 표면적인 이미지를 유지하여 한결같이 남의 눈을 즐겁게 하고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며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다. 이는 인성과 관련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은 모두 인성과 관련 있다. 이게 바로 허영심이 가득한 인성이다.
또 어떤 부류는 이성만 보면 유독 젠체하고 더욱 특별하게 옷을 입거나 더욱 요염하게 화장한다. 예를 들어, 유달리 친숙한 형제자매와 함께 있을 때는 태도나 차림새가 정상적이지만 일단 동년배인 이성이 나타나면 설레는 마음에 어떻게든 특별하게 단장하고 치장하려 한다. 어떤 여성은 재빨리 입술을 더 짙게 칠하고 눈썹도 덧그리며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볼 터치까지 한다. 평소에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지만 일단 자기 마음에 차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기면 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머리를 풀어 늘어뜨린다. 어떤 남성은 머리를 윤기 나게 손질해 한국이나 홍콩, 서양 스타일로 연출할 뿐 아니라 수염을 깎고 안경도 쓰며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여건이 되면 향수도 좀 뿌려서 이성을 사로잡으려 한다. 이성과 대화할 때는 수시로 문학적 표현을 섞어가며 으스대고 자신의 소양과 품격, 위트와 유머를 뽐낸다. 그의 이런 행동은 목적성이 강한데, 바로 이성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음에 들거나 동년배인 이성이 있을수록 더욱 활발해진다. 말이 많아지고 표현력도 나아지며 눈빛도 초롱초롱해지는 것은 물론, 굼뜨거나 과묵하지도 않으며 표정도 유난히 풍부해진다. 이는 어떻게 된 일이냐? 왜 이성만 보면 유독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이냐? 보통 이성 간에는 처음 접촉했을 때 서로 조금 쑥스러워하지만 몇 번 접촉하고 나면 더이상 낯설어하지 않고 태도도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성을 볼 때마다 특히 활발해지고 유독 흥분한다. 이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사람을 유혹하는 것으로, 패괴 성품의 수준에 미칩니다.) 이는 어느 방면의 패괴 성품이냐? (사악함입니다.) 인성에는 문제가 없느냐? (인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인성의 문제이다. 인성에 있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남녀 관계 방면의 문제이다. 이방인은 어떻게 말하느냐? 태도의 문제라고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패괴 성품과 관련 있다면 마지못해 사악함으로 결론지을 수 있겠지만, 더욱 적절하게 말하자면 인성 방면에서 남녀 관계에 대한 품행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성을 대할 때 특히 활발해지고 유독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변하는데, 이런 ‘특별함’은 인성 방면의 품행 문제를 드러낸다. 이런 품행은 정상적이냐, 아니면 비정상적이냐? (비정상적입니다.) 그럼 사악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악하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느냐? 조금 이상하다고 해도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이상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는 무리라면 어디든 찾아가고 한사코 이성 옆에 앉으려 하며 집적거리고 추파도 던진다. 이것이 바로 인품의 문제로, 올바르지 않고 정직하지 않으며 이상하다. 만약 그가 허영에 들뜬 사람이라면 동성 앞에서든 이성 앞에서든 그는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좋게 보여서 남들에게 호감과 부러움을 사고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허영에 들뜬 인성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남녀 관계에 대한 품행 방면의 문제이다. 만약 허영심이 가득해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면 그건 단지 인성이 가진 한 방면의 결함이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옷을 입고 치장하는 목적이 이성을 유혹하고 남에게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보여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악하고 이상하며 품행이 나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많은 장소에 있을수록 이상해지는데, 늘 이성과 접촉하려 하고 이성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며 이방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옷을 입는다. 특히 예배에 참석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 이성이 많을수록 더욱 열심히 치장한다. 어떤 여성은 끈 나시를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요염하게 립스틱을 바르고 볼 터치까지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코나 눈에 쉐이딩을 하고 온갖 장신구를 착용하는 등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어떻게든 꾸민다. 이는 허영심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허영심이 인성에 있는 한 방면의 결함이나 흠으로 사소한 문제일 뿐이라면, 남녀 관계에서 사악하고 이상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허영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음란한 것은 아니지만 사악한 데다가 이상한 사람은 음란하게 굴 확률이 90% 이상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남녀 관계 방면의 일을 특히 중시하고 이성 앞에서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는 것을 유독 좋아한다면 이런 사람은 이성을 쉽게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을 유혹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부당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이성을 유혹할 수 있다면 이런 부류는 남녀 관계 방면에서 아주 문란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존엄이 없고 아무렇게나 사통할 수 있는 데다가 적극적으로 접근하다. 많은 사람과 사통할수록 더욱 기뻐하고 자신 마음에 들기만 하면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사람이냐? 어떤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이게 좋은 인성이겠느냐? (나쁜 인성입니다.) 인성의 다른 방면에 어떤 장점과 결점이 있든 남녀 관계에 대한 품행 방면에서 유독 문란하고 경박하고 방종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성이 나쁘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언제 어디서든 잘못을 저지르고 탈선할 수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직스럽냐? (믿음직스럽지 않습니다.) 믿음직스럽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냐? 본성이 사악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음란한 마음이 동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이성을 유혹할 수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것들밖에 없다. 환경적인 조건이 여의치 않아 미처 꾸미지 못했더라도 그는 방법이 있다. 추파를 던지고 몸짓과 표정으로 아양을 부리며 눈짓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이런 사람은 쓸모가 없고 너무도 믿음직스럽지 않다! 경박하고 방탕하며 문란하여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유혹해 죄를 짓거나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인성에 염치가 없고 구제불능이다. 이런 부류는 끔찍하지 않으냐? (끔찍합니다.) 그는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곁에 사람이 얼마나 많든 공개적으로 치장하고 과시한다. 이토록 방종하게 사람을 유혹한다. 다른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정상적으로 사역하고 같이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눈짓을 보내며 사통하기 시작한다. 보아라. 이런 자는 얼마나 역겹고 끔찍하냐! 염치없지 않으냐? 염치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과오를 저지르다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느냐?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했느냐? ‘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따라서 인성이라는 관문에서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면 아주 위험하다. 어떤 사람이 가진 인성의 특정한 방면이 좋지 않은 것은 한 방면의 결함이고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진 인성의 특정한 방면이 좋지 않은 것이 선천적으로 염치가 없기 때문이라서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유혹할 수 있고, 두드러진 패괴 성품을 표출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과오를 초래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런 자는 처신에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없고 인품이 유독 떨어져서 몇 가지 과오만 저질러도 파멸에 이를 수 있다. 인성의 문제에서 그는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지옥에 갈 만큼 인성이 몹시 형편없고 과오를 너무 많이 저질러서 진리를 추구해 구원받는 길에 오를 기회도 없이 끝장난다. 염치없는 것은 인성 방면의 심각한 문제이다. 엄밀히 말하면 패괴 성품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단지 처신하거나 한 방면의 일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일 뿐이지만 이런 태도는 인성과 관련이 있고 과오를 저지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도 유독 빨리 배운다. 선생님이 세 번 가르쳐 주면 춤의 리듬과 동작을 대체로 다 파악하여 정석대로 춘다. 게다가 춤도 상당히 잘 춰서 상을 탄 적도 있으며 향후 춤과 관련된 사역에 종사하여 춤 선생님이나 댄서가 되고 싶어 한다. 이는 어느 방면과 관련 있느냐? (취미와 관련 있습니다.) 이는 특기와 취미이다. 그는 춤을 유독 빠르게 배우는데 이는 그에게 춤추는 재주가 있고 선천적으로 이 방면의 것을 정확하게 깨치고 깨닫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특기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는 이 방면에서 특기를 가지고 있고, 춤을 배운 뒤에는 추는 것을 좋아하고 추고 싶어 한다. 게다가 춤과 관련된 사역에 종사할 계획이고 앞으로 그의 생활과 인생을 춤과 함께하려고 한다. 이는 취미와 관련 있다. 춤은 그의 특기일 뿐만 아니라 취미이기도 하다.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가진 데다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뒤 춤 영상을 보는 것도 좋아해서 하나님 집에서 춤추는 본분을 이행한다.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본분 이행 과정에서 발휘하고 하나님 집에서 유용하게 써서 선행을 예비해 하나님에게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그는 춤에 기본기가 있고 다양한 춤을 상당히 빨리 배운다. 하나님 집의 요구대로 몇몇 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동시에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남김없이 가르쳐 주려 한다. 예전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종류의 춤을 배웠고 업무 방면에서도 남들보다 능숙하지만 그는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남들과 화목하게 어울릴 줄 알며 자신이 배운 것을 형제자매에게 참을성 있게 가르쳐 준다. 이는 어느 방면의 모습이냐? (인성 방면의 모습입니다.) 인성 방면이 좋으냐, 나쁘냐? (인성이 좋습니다.) 왜 좋으냐? (그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을 남에게 남김없이 가르쳐 주어 남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좋은 인성입니다.)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남김없이 가르쳐 줄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또 어떤 장점이 있느냐? 자신을 별로 과시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사람은 인성이 훌륭한 것이다. 그는 춤에 특기가 있어서 하나님 집에서 관련 본분을 이행하지만 얼마 뒤 하나님 집이 사역 필요에 따라 그에게 적절한 사역을 안배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20년간 춤을 배웠는데 다 물거품이 되었잖아? 내게 춤과 무관한 사역을 시키다니 내키지 않아! 왜 특기와 강점을 발휘하게 두지 않고 나보고 팀장이나 책임자를 맡으라고 거지? 이건 내 특기가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야.’ 그는 입으로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안배에서 비롯되었으니 저는 순종하겠어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리더가 뭐라고 하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고 귀담아듣지도 않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업무도 잘 모르면서 우리를 지도하러 와서는 도리만 늘어놓네. 당신들이 나보다 나은 게 뭐야!’ 이는 어떤 모습이냐? (속으로 수긍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패괴 성품 방면의 표출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인성은 그런대로 괜찮아서 남과 협력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하려 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데다가 방해하거나 교란하지도, 말썽을 부리거나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다. 주관적인 뜻에서도 그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 한다. 그러나 지위와 관련되거나 자신의 관념이나 뜻에 부합하지 않는 일과 관련되면 그가 순종하느냐? 진리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는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반항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 집의 안배에 불복합니다.) 그렇다. 그럼 이 몇 가지 방면의 모습은 어느 방면의 문제로 귀결되느냐? (패괴 성품으로 귀결됩니다.) 겉보기에는 인성이 상냥하고, 공개적으로 저항하거나 대들거나 리더를 판단하지는 않지만 이런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패괴 성품의 표출이다.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느냐? (교만한 성품을 표출합니다.) 그렇다. 교만함이다. 그는 자신이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고 인성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교회 리더의 안배에 순종하려 하지도,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이행하고 싶은 본분만 이행하려 한다. 교회에서 그에게 적절한 본분을 안배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는 일에는 설사 하나님 집에서 안배하더라도 순종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패역하고 교만한 성품의 표출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모습을 보면 그는 선천적인 조건인 특기에서부터 인성, 패괴 성품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선천적인 조건인 특기는 그가 타고난 것이므로 지적할 바가 못 된다. 그가 무엇에 소질이 있든 그에게 패괴 성품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그의 인품이 좋은지 나쁜지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부 선천적인 조건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우월감이나 세상의 여론이 그에 대해 내리는 정의와 규정은 사람의 인성을 비뚤어지게 한다. 여기서 비뚤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사람이 남들이 보기에 비교적 훌륭한 선천적인 조건을 좀 갖추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와 우러름을 받고 난 뒤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잘못 규정해서 자신이 훌륭하고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남을 멸시하기 시작하고 자신은 전부 옳고 좋다고 생각하여 남들이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은 모두 잘못됐다. 이런 잘못된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은 세상과 사악한 인류를 추종한다. 사악한 인류와 사악한 세상을 추종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이 사악한 세상과 사악한 인류에게서 비롯된 사상과 관점에 기대 살아가고, 그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과 관점, 주장을 근거로 어떤 일을 분별하고 규정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네가 외모가 뛰어나고 이목구비가 단정한 데다가 몸매도 좋다면 이는 선천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이 네게 준 것이다.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그저 사실일 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 사회나 사악한 인류의 잘못된 정의로 인해 너를 오만방자하고 허영에 들뜨며 건방지게 만든다. 선천적으로 우월한 조건을 갖춘 것에 더해 이 사회와 이 인류의 여러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과 관점의 영향, 오도, 가공을 거치면 네 인성은 비뚤어진다. 비뚤어진다는 것은 무엇이냐? 네가 자체적으로 선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은 정상이다. 외모가 잘났다고 대단할 것은 없다. 그것이 네가 진리를 깨달았고 고귀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외모가 잘나고 보기 좋게 생겨서 사람들의 눈길을 몇 번 더 받고, 사람을 언짢게 하거나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예쁜 것, 고급스럽고 격조 있고 세련된 것을 숭배하는 사상이 있는 사회 환경에서 이런 흐름은 너를 극단으로 몰고 가 네 인성을 거만하고 방종하고 허영에 들뜨게 만든다. 외모가 잘난 것은 선천적인 조건이다. 하나님이 네게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준 것은 너를 거만하고 방종하고 허영에 들뜨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정상적으로 이 일을 바라보도록 하려는 것이다. ‘내게 이런 선천적인 조건, 이런 외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이는 하나님의 은총과 하사이니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해. 사람은 딱히 칭찬할 게 없어.’ 이런 선천적인 조건하에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와 사탄으로부터 여러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아름답고 예쁜 것이 밑천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밑천을 가지고 여러 무리에서 모든 사람의 환심을 사려 한다. 이런 선천적인 기본 조건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통해 법률이나 도덕의 최저선을 저촉하거나 인성에 위배되는 일들을 저지른다. 사람의 인성에 일부 비뚤어지고 과격한 것이 있는 이유는 사회나 사악한 인류로부터 비롯된 일부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잘못된 여론에 선동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진리나 분별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회의 사악한 인류에게서 비롯된 여론과 주장, 이론을 받아들이고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올바른 것으로 여긴다.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으며 사악한 사상과 관점에 이끌리다 보니 사람의 양심과 이성은 발전하거나 정화되지 못하고 비뚤어지고 망가진다. 이 사회가 미남과 미녀을 칭찬하거나 치켜세우지 않고 외부에서 유입된 사상이 너를 유혹하거나 가공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네 외모가 예쁘다는 이유로 너를 치켜세우거나 특별하게 대우하는, 혹은 여러 일을 하도록 너를 유혹하거나 네게 강요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선천적으로 외모가 잘난 것이 아주 정상적이고, 큰소리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뜻인즉슨, 너는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조건하에서 네가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이고 그런 우월한 선천적 조건을 가졌다고 해서 네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 환경의 유혹과 패괴로 인해 너는 선천적으로 외모가 잘난 것이 대단하고 자신과 비할 사람이 없다고 여길 것이고, 자제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미모로 남을 유혹하고 양심과 이성의 구속을 벗어 버릴 것이다. 처신할 때 지켜야 할 최저선을 넘어 선천적으로 우월한 조건과 여러 수단을 이용해 자신이 얻고 싶은 이익을 얻을 것이며, 여러 환경에서 다양한 패괴 성품을 표출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이 세 가지의 관계이다. 때때로 이 세 가지 사이에는 일정한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때로는 앞의 두 가지나 뒤의 두 가지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을 수도 있다. 알아들었느냐? (어느 정도 알아들었습니다.)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 어떤 선천적인 조건도 잘못된 것은 아니고 단지 인성의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다. 사람의 인성 안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그렇다면 패괴 성품은 어떻게 생기겠느냐? 사람의 고유한 선천적 조건을 토대로 사탄의 여러 사상과 철학에 영향받으면 각종 잘못된 관점이 생겨나는데, 이런 잘못된 관점이 사람이 생존을 의지하는 생명 본질이 된다. 이게 바로 패괴 성품이다.
방금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방면의 서로 다른 모습을 교제했다. 선천적인 조건 열 가지를 열거했고, 인성 방면에 관한 다양한 모습도 교제했다. 이제 한번 정리해 보자. 인성 방면에서 어떤 다양한 모습을 교제했느냐? (인성 방면에는 인성이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금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주셨는데,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한 방면에 특기가 있거나 특정 방면의 기술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그것을 남에게 남김없이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의 이익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성이 비교적 좋은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성이 나쁜 모습에 대해서도 일부 사례를 들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인성이 비열하고 야비하며 늘 뒤에서 소문을 캐묻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남녀 관계에 대한 품행 방면에서 비교적 문란하여 존엄과 인격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남의 이익을 탐하기 좋아해 남들과 교제할 때 쩨쩨하게 따지고 양심과 이성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성이 나쁜 모습입니다.) 인성이 나쁜 모습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이냐? 너희는 어떤 사람을 가장 싫어하느냐? (염치없고 남녀 관계 방면에서 유독 문란한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문란하고 방탕하며 염치없는 것은 격조 있게 말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고 흔히 하는 말로는 뻔뻔한 것이며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고추를 자주 먹는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후 때문에, 또는 가정에서 습관적으로 고추를 즐겨 먹기 때문에 매일같이 고추를 먹고 평소에도 매운맛 위주로 식사한다. 이는 분명 선천적인 조건이다. 선천적인 조건의 어느 측면이겠느냐? (생활 습관 측면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식사할 때 매운맛을 빼놓지 못하며 무엇이든 맵게 먹으려는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로 맵게 먹겠느냐? 단 음식을 먹을 때도,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도 매운맛을 곁들여야 하고, 심지어는 차나 커피에도 고추를 넣어 마실 정도이다. 이는 일종의 생활 습관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이 있느냐? (없습니다.) 매운맛을 즐기는 것은 생활 환경과 생활 습관에 의한 것으로,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어떤 사람은 과할 정도로 매운맛을 즐겨서 매운맛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네가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그는 한사코 매운맛을 고집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바꿀 수 없다. 아무튼 고추를 즐겨 먹는 것은 일종의 생활 습관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진리와도 관련이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생활 습관은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비판하고 통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건강 상식을 보급하고 건강 위주의 식사 원칙과 생활 습관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고추나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나쁘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는 오랜 세월 그렇게 먹어 왔고, 어떤 사람들은 몇 대에 걸쳐 그렇게 먹어 왔지만 다들 상당히 건강하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고추를 많이 먹는다. 지나치게 맵게 먹는 그들을 보면 속이 불편해지지만 그런 지역 사람들은 몸이 상당히 건장하고 튼튼하며 일을 할 때도 끈기와 지구력이 있다. 이는 고추를 먹는 것이 폐해가 없고 건강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맵게 먹는 것은 건강 원칙에도 부합한다. 고추를 즐겨 먹는 것은 일종의 선천적인 생활 습관으로 남이 좋아하든 말든, 받아들일 수 있든 말든 개인이 좋아하고 남의 생활과 식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유지해도 되며,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이는 큰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집에서도 아무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고추를 먹는 것은 위에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에 안 좋을까 봐 걱정된다면 안 먹으면 된다. 계속 먹다가 위가 불편해지면 그도 스스로 깨닫고 알아서 선택할 것이다. 이처럼 누구든 개인의 취향이 있다. 단맛이나 신맛, 혹은 쓴맛이나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다. 어떻게 먹든, 어느 정도로 먹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조건과 환경이 허용하는 한 마음 놓고 과감하게 먹어도 된다. 나는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건 제 자유고 권리니, 당신이 간섭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한 끼 식사로 고추만 먹는다고 해도 당신은 관여할 자격이 없어요. 위가 다치든 말든 제가 스스로 책임질 거예요. 당신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요.” 이렇게 말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건 너와도, 나와도 상관없는 그의 개인적인 일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일은 진리나 패괴 성품과 무관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할 때 중점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 습관에 관한 문제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긍정적인 사물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사물도 아니며, 일부 사람의 기호일 뿐이다.
접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고추를 즐겨 먹어서 끼니마다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한다. 그래서 매끼 매운 음식을 준비한다. 고추를 먹어 본 적 없는 사람이 먹고 나서 몸이 견디지 못해 맵지 않은 음식을 해 달라고 해도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안 돼요. 저는 매운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해져서 이제 맵지 않은 음식은 맛이 없거든요. 당신도 매운 음식을 먹는 연습을 해야 해요. 한동안 먹다 보면 적응이 돼서 먹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무엇이 문제겠느냐? (그의 인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인성의 어느 측면에 문제가 있느냐? (남에게 강요합니다.)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남에게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냐? 무슨 일을 하든 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도 좋아하라고 하고 남들이 자신을 만족시켜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아니냐? 남에게 강요할 뿐 아니라 악독하기까지 한 이런 사람의 인성이 좋겠느냐? (인성이 나쁩니다.) 인성이 나쁜 사람은 남에게 유익을 주지 않고 상처만 주며, 심각한 경우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거칠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매운 음식을 즐겨 먹지만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식사를 준비할 때는 저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죠. 매운 음식도 좀 하고 맵지 않은 음식도 좀 하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만족시킬 수 있잖아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원칙은 모두가 잘 먹고 만족하는 겁니다. 제 생각만 하지 말고 원칙대로 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겠죠.” 이 부류는 어떠냐? (인성이 비교적 좋습니다.) 어떻게 좋으냐? (그는 자기만 만족하려 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돌볼 줄 압니다.) 비교적 선량하지 않으냐? 좋은 인성 안에는 선량한 면이 있다. 그것은 남을 이해하고 돌볼 줄 아는 것이다. 이는 인성과 관련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성격이 어떻든 그의 인성에 좋은 면이 있으면 그의 주위 사람이나 그와 교제하는 사람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에게서 붙들어 줌과 도움을 받고 어떤 사람은 생활 속에서 그의 보살핌을 받는다. 이는 좋은 인성이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어서 외출해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식사 시간만 되면 일부러 매운 음식이 있는 곳을 찾고, 한 끼라도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면 속으로 괴로워한다. ‘여기서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니 본분을 이행하는 재미가 없어.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면 끼니마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고추가 없으면 무엇을 먹든 맛이 없어. 돼지고기볶음을 먹어도 감칠맛이 안 난다고. 어쩌면 좋지?’ 그래서 그는 고추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얼마 후, 매운 음식 전문점이 있지만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멀어도 가야죠! 오늘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예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마음이 불안하다고요. 오늘은 꼭 먹어야겠어요!” 누가 그에게 “지금은 바깥 환경이 위험해요. 상당히 혼란스럽다고요! 우리 그 식당은 가지 맙시다.”라고 해도 그는 듣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뭐가 겁나요? 먹는 게 우선이죠! 평소에도 외출은 하잖아요? 걱정 마요. 아무 일 없을 테니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거라고요!” 그는 음식을 다 먹고 기뻐한다. 고추를 먹거나 자신이 바라던 맛있는 음식을 먹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고 너무 기뻐서 잠을 자면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성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객관적인 환경이나 조건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염원과 기호를 충족시킬 수만 있으면 그만이고, 먹고 싶은 음식을 한 입 먹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 상관하지 않는다. 설령 고생스레 먼 길을 가야 하더라도 어떻게든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이것이 그저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이겠느냐? 이는 제멋대로 구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아주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누구든 그와 함께 있으면 제멋대로 구는 그로 인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한다. 그는 자기 말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어느 날, 그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밥을 먹기 싫다고 한다. 왜 밥을 안 먹느냐고 물으면 “오늘은 화가 나고 기분이 안 좋아서 밥을 못 먹겠어요.”라고 말한다. 또 밤에 잘 때가 되면 자지 않고, 잠이 안 오니 노래를 불러 기분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누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이 잠을 못 자잖아요.”라며 말리면 그는 “저는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요. 당신들이 잠을 자든 못 자든 저와는 상관없잖아요. 저는 지금 기분이 안 좋은데 아무도 위로하거나 관심을 가져 주지 않네요. 당신들은 너무 이기적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는 제멋대로 구는 것 아니냐? 너무 제멋대로 구는 것이고 규율을 지키지 않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면 남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저는 너그러운 사람이라서 따지는 걸 싫어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기분이 나쁠 때 사람들은 유독 말을 조심해야 하고 그를 건드려선 안 된다. 그를 건드리면 야단이 난다. 그는 떼를 쓰고 행패를 부리고 물건을 부수며 식음을 전폐한다. 심각한 경우, 본분을 포기하고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모두 제게 못되게 굴고 저를 괴롭혀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요!” 이는 제멋대로 구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제멋대로 구는 것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몹시 제멋대로 굴어서 남들이 다 그 위주로 행동해야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태도가 돌변해 불같은 성격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고, 모두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는 나이도 적지 않지만 늘 인성이 미성숙하여 마치 어린아이 같다. 또 그는 어디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결코 공공 규칙을 준수할 줄 모른다. 그가 신이 나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은 듣고 있어야 하는데,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앙심을 품는다. 그와 대화할 때는 웃는 얼굴을 해야 한다. 무표정한 채로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는 화가 나서 성을 낸다. 교회에서도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을 때 행동한다. 사람들의 정상적인 생활 규칙에 영향을 끼쳐도 개의치 않으며, 그저 자신이 편안하고 기분 좋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은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다. 만약 누가 의견을 제시해 반감이나 불쾌감을 표시하면 그를 건드린 것이 되며, 그는 상대와 끝장을 보려 한다. 이런 부류 중 일부는 나이가 어리고 인성이 미성숙하지만, 일부는 40~50세, 심지어 70~80세로,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인성을 가진 채 유독 제멋대로 군다. 환경과 조건이 허용하든 허용하지 않든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그는 씻을 여건이 안 되는 곳에 가서도 기어코 씻으려 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집에서 매일매일 씻어요. 씻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하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는 그럴 여건이 안 되고 일주일에 한 번 씻는 것도 쉽지 않다면 어떡해야겠느냐?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할지 안다. 날씨가 습하고 무덥다면 밤에 물을 한 바가지 퍼서 간단히 닦고 잘 수만 있으면 된다. 사람은 이 정도 어려움은 견딜 수 있으며,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부류는 그러지 못한다. 씻지 않으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며 심지어 엄청난 굴욕을 견디기라도 하듯 못 살겠다고 한다. 이는 어느 정도로 제멋대로 구는 것이냐?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남들과 정상적으로 어울리거나 왕래하지 못할 정도로, 심지어 정상인처럼 살 수도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이런 사람은 정신병자 같지 않으냐? 그는 사이가 좋은 사람과는 마치 한 몸처럼 잘 지내지만, 사이가 나쁘거나 자신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는 사람과는 평생 말도 섞지 않을 수 있다. 만나면 눈을 흘기고 바로 얼굴을 굳히며 마치 원수라도 만난 듯 유독 극단적으로 구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성이 정상적이겠느냐? (비정상적입니다.) 이런 부류는 몹시 제멋대로 구는 데다가 인성이 비정상적이다.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남들과 정상적으로 교제하고 협력할 수 있겠느냐? 무리 속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 예를 들어 한 끼 식사를 하거나 좋은 대우를 누리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반드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듯 속으로 불안해하고 불평하며 타인과 환경을 원망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환경을 마련해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거예요! 왜 다른 사람은 이런 환경을 맞닥뜨리지 않고 이런 고생을 하지 않죠? 왜 저만 고생하나요?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시네요!” 보아라. 마귀의 본성이 나오지 않았느냐? 이 인성이 기준에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일반 교회로 쫓아내야 합니다.) 만약 그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정도에 이르러 본분을 이행할 때 방해하고 교란하는 데다가 모두가 그에게 반감과 혐오감을 품고 함께하지 못한다면, 서둘러 쫓아내야 한다. 이런 자는 ‘개차반’이다. 제멋대로 군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거칠다는 것이고, 때로는 쩨쩨하게 굴거나 남에게 모질게 대하며 심지어 흉악하고 악독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한동안 본분을 이행하면 다들 큰 피해를 입고, 보는 사람마다 그를 두려워한다. 그를 피하면서 건드리지 않아도 그는 이렇게 트집을 잡는다. “도둑을 피하나요? 제가 당신한테 뭘 어쨌다고 저를 피하죠?” 그에게 접근해 한마디 나눌 때도 그는 너와 정상적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그는 정상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와 어울리는 사람은 말로 인해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인격이나 마음도 다치고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해를 입는다. 이런 부류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그들을 인성이 나쁜 범주 안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는 인성이 나쁘고 제멋대로 군다. 제멋대로 구는 사람은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혐오감과 반감을 일으키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말해 보아라.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그의 안에는 어떤 성품이 있겠느냐? (강퍅함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강퍅함이 있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진리를 싫어합니다.) 그렇다. 강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은 제멋대로 구는 부류가 가진 두 가지 측면의 특징이다. 이 부류는 제멋대로 굴 뿐 아니라 이기적이고 거칠며, 거칠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와 교제할 때는 좋게 말로 해도 안 통한다. 그러면 그는 네게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날카롭게 말하면 그는 네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제멋대로 구는 바람에 남이 해를 입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일부러 당신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니에요. 상처받았다고 느낀다면 사과할게요.” 이 말이 듣기는 좋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이 그를 용서하지 않고 지적하는 말을 하면 그는 성을 낸다. “그만 좀 하세요. 잘해 줬더니 기어오르는 건가요? 사과했더니 제가 만만해 보여요? 제 흠까지 지적하는군요! 제가 흠이 있다고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저를 지적하죠?” 이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는 패괴 성품과 관계된다. 인성의 이런 특징은 당연히 일부 패괴 성품의 특징도 드러내며, 둘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 이런 부류가 가진 패괴 성품의 특징은 바로 강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것으로, 흉악함도 조금 섞여 있다. 그들이 가진 패괴 성품은 이 몇 가지 측면의 특징을 보인다.
선천적인 조건에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나서 중국 공산당 정부가 하나님 선민을 광적으로 탄압하고 체포하고 박해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무서워하고 안절부절못하고 겁먹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다리에 힘이 빠져 자꾸 화장실에 가려 할 때도 있다. 이는 어떤 모습이냐? (본능입니다.) 이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은 일부 공포스러운 일, 자신의 목숨과 관련된 일,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일에 대한 소식을 듣거나 그런 사실이 닥쳤을 때 몇몇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겁먹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신체도 자연스레 정상적인 반응들을 보이는데, 예를 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일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거나 시력이 흐려진다. 입이 마르고 다리가 풀리고 온몸에 땀이 나거나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는 등의 반응도 보인다.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반응은 신경 지배에 의한 것이든, 다른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든 결국 외부적인 요소가 사람의 육체에 일으킨 반응으로, 이런 반응을 통틀어 본능이라고 부른다. 육체는 감내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사람의 담력이 견딜 수 있는 극한을 초월하면 신체는 일부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남들에게는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우습고 불쌍해 보이거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런 반응은 사람이 선천적인 본능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위험에 맞닥뜨리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또는 캄캄한 구석에 웅크려 숨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렇다면 울든 웃든, 크게 놀라 한심한 일을 저지르든 사람의 이런 본능적인 반응들에 옳고 그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럼 정부가 신도를 체포하는 일을 듣고 두려워하는 부류를 두고 나약하며 인성이 없다고 말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라는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그건 연약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모습이에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 의지할 줄 모르니 승자가 아니라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왜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느냐? (그건 외부 환경을 마주하여 신체에서 나타나는 생리 반응일 뿐입니다.) 그건 일종의 정상적인 생리 반응이지 패괴 성품의 지시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다. 즉,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그런 모습을 표출할 때는 패괴 성품에 영향받은 것도 아니고, 인성의 특정한 사상과 관점에 지배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전에 구상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런 환경이 닥치자 갑자기 특이한 생각이 떠올라 곱씹다 보니 속으로 안절부절못하고 몸에 경련이 일어나며 심지어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게 된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과 소식들을 듣고 나서 머리로 사색하지도, 아무런 생각의 여과나 가공도 거치지 않고 일부 본능적인 생리 반응이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연스러운 반응은 선천적인 육체의 본능에 따른 것이고 옳고 그름이 없으며 강인하거나 연약하다고 할 수도 없는 데다가 긍정과 부정의 구분은 더더욱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정부가 어떻게 체포하든 저는 두렵지 않아요!” 말하건대 이런 자는 얼간이다. 큰 붉은 용이 고문을 가하는데 두려워하지 않는지 두고 보겠다. 그때가 되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죽는 게 낫겠어. 죽으면 벗어날 수 있고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 이는 모두 육체의 본능적인 반응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저는 두렵지 않아요. 때리면 반격할 거고, 이길 수 없으면 도망갈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도망갈 때 상대방이 총을 겨누면 다리가 풀리고 겁이 나서 “저는 두렵지 않아요.”라고 다시는 외치지 못할 것이다. 생사가 걸렸을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본능적인 반응이라면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어떤 인성의 연약함을 표출하든 잘못됐다고 할 수 없고 창피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도 정죄하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억제해서도 안 되고, 방관자라고 하더라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두 다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한다. 너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다. 늑대를 맞닥뜨렸을 때 사람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이냐? ‘어서 도망가야 해! 빨리 도망갈수록 좋아!’라고 생각한다. 도망가는 동시에 늑대가 쫓아오는지도 살펴야 해서 이렇게 걱정한다. ‘늑대가 쫓아오면 어떡하지? 목을 물리면 난 죽지 않을까? 총이나 쇠몽둥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도망가면서 그제서야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든 본능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틀림없이 쫓아오는 늑대에게서 얼른 벗어나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야 한다. 늑대에게 물려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이는 모두 본능적인 반응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무엇이냐? 스스로를 구하는 것이다.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본능적인 반응은 방관자의 눈에는 나약하거나 한심하거나 창피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창피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두 평범한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이고 자연스러운 표출이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자연스러운 표출이므로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웃긴 이야기를 들으면 웃게 되는데, 입에 밥을 물고 있거나 물을 머금고 있어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능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바로 하나님이 준 태생적인 기능이다. 그것은 적절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반응하여 그 기능을 발휘한다. 따라서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하면 자연스러운 표출을 말하는 것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인성의 약점이나 결함을 표출할 수도 있고 육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표출할 수도 있는데, 어찌됐든 본능적인 반응이기만 하면 옳고 그름은 없다. 본능적인 반응이 창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식견이 없고 인성이 허영에 들떴으며 남의 마음속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다. 본능적인 반응을 억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주 어리석고 이성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특별히 위험한 환경이나 위험한 장소에서는 설사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리더라도 그것을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은 정상 인성의 모습에 해당하며 어떤 사람도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 그런 모습을 보인다. 설사 유명인이나 위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열악한 환경이 닥쳤을 때는 초인이 없다. 너는 평범한 사람이고 대단하지 않으며 칭찬할 것도 없다. 설사 네가 놀라서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을 남에게 들켰다 해도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보거나 숭배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너는 안전해졌으니 말이다. 이런 ‘눈부신’ 역사를 가진 사람은 체포당할 때 놀라서 바지에 오줌까지 지린 사실이 알려졌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에요. 한낱 범부에 불과하죠. 칭찬할 게 없어요.” 이 방면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은 아주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 예를 들면, 사람은 머리가 더러워져서 두피가 간지러울 때 설사 긁고 나서 손톱에 때가 끼더라도 본능적으로 머리를 긁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머리가 더러워지면 때가 끼기 마련이다. 너는 흙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네게 머리가 더러워졌으면 감아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이다. 두피가 가려울 때 긁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반응이며, 하나님이 만든 선천적인 조건과 신경의 작용에 따라 나타나는 정상적인 모습이다. 비록 가끔씩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창피하거나 체면이 서지 않거나 보기 흉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꾸거나 억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사람의 본능을 올바르게 대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처신하는 데 도움과 유익을 얻는다. 이 방면에서 어느 정도 식견과 인식이 생긴 뒤에는 남과 어울리고 교제할 때 사람의 육체적인 본능에 해당하는 것들이 자연스레 나타나고 표출되어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된다. 때때로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해명하거나 위장하고 포장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것은 정상 인성의 표출이자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정상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이다. 예를 들면, 사람은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몸안에서 자연스레 가스가 생기므로 본능적으로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낀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젊은 남녀는 이런 모습이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창피할 것 없다. 이는 신체의 본능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 일은 처신하고 행동하는 원칙과는 무관하다. 비록 어떤 사람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에 대해 불만을 품지만 이는 결코 처신에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없거나 교양이 없는 것, 처신할 때 규율을 잘 지키지 않는 것, 제멋대로 굴고 이기적이며 인성이 나쁘거나 악한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아니다. 이 일은 처신과 무관한 것은 물론 패괴 성품과는 더더욱 관련이 없으니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되고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낙후된 국가나 환경, 혹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생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느다. 음식을 만들 때도 위생을 중시하지 않고 옷을 오래 입어도 씻지 않으며 옷에서 땀냄새가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어느 방면의 모습이냐? (생활 습관입니다.) 이는 생활 습관으로, 위생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수건 한 장으로 얼굴과 발을 다 닦고 낮에 밖에 나가 일할 때도 그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어쩌다 누가 다친 걸 봐도 그 수건으로 상처를 감싸 준다. 이처럼 전혀 위생을 신경쓰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겠느냐? 이는 선천적인 가정 형편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가정 형편이 좋아서 한 사람당 여러 장의 수건과 목욕 타월을 가지고 있고 얼굴을 닦는 수건과 발을 닦는 수건도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매일매일 샤워하고 세수하며 목욕 타월과 수건도 날마다 세탁해서 상당히 위생에 신경쓰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이런 습관이 생겼겠느냐? 가정에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과 경제적 여건이 갖춰져 있어서 여유 있는 생활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겉보기에는 위생에 신경쓰고 체면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 이면에는 선천적인 조건의 영향이 있는 것이다. 그럼 이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왜 그런 것이냐?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그런 것들에 신경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설사 여건이 되더라도 그런 것들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가정 형편이나 환경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한 집에서 수건 한 장으로 일고여덟 명이 세수하고 발을 씻으며, 한 사람이 쓰고 나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쓴다. 또 어떤 사람은 밤에 발을 씻지 않아도 잠을 잘 자며 일상생활이나 처신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위생에 신경쓰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발에 세균이 있을 텐데 얼마나 더러워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한다. “발은 더럽지 않아요. 온종일 싸매고 있어서 외부와 접촉하지 않으니 땀이 좀 날 뿐 세균은 없죠. 사람의 관념 속에서는 발에 난 땀이 더럽지만 사실은 더럽지 않아요. 어떤 지역에서는 발로 음식을 만들기도 해요. 어쩌면 백화점에서 산 식품 중에도 발로 반죽해서 만든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런 식품을 먹었더라도 자기는 꽤 위생에 신경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위생을 중시하든 중시하지 않든 모두 선천적인 조건에 의해 생겨난 일종의 생활 습관이나 생활 방식일 뿐 처신과는 무관하다. 그럼 어떤 모습이 처신과 관련 있느냐? 예를 들면, 위험한 환경이나 큰 붉은 용의 체포가 닥치면 사람들은 모두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일부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아무리 긴장되고 두려워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환경에 생긴 문제를 처리해야 해요. 우선 리더 일꾼과 외지의 형제자매가 서둘러 떠날 수 있게 엄호합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을 엄호하라고? 그럼 나는? 결국 나는 도망가지 못하면 어떡해? 나 먼저 도망가야지! 먼저 도망가는 사람은 잡히지 않을 테니 형을 선고받거나 고문당하지도 않을 거야.’ 보아라. 위험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똑같지만 어떤 사람은 타인을 먼저 보호하고 자신의 생명과 안위는 뒤로 미룬다. 이런 사람은 자애롭고 선량하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혼자 발을 빼서 도망가며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이기적인 것이다. 사실 인성과 양심의 측면에서는 그도 리더 일꾼과 외지의 형제자매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않겠느냐? 그도 이런 도리는 알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똑같이 이런 도리를 알고 똑같이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이 사람마다 인성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고 남은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마음씨가 선량해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고려할 줄 알며 남을 먼저 보호하고 이기적이지 않다. 이는 인성이 다른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그럼 이 두 가지 인성을 가진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겠느냐? (인성이 좋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쉽게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럼 이기적인 사람은 어떠냐? (쉽게 진리를 실행하지 못합니다. 그는 진리를 깨달아도 실행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패괴 성품도 쉽게 벗어 버리지 못합니다.) 그렇다. 따라서 똑같이 패괴 성품을 표출하더라도 인성이 다르다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에서 차이가 난다. 인성이 다르면 같은 일을 대할 때도 서로 다른 태도와 방식을 보이는데, 이것이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진리 추구의 길에 오를 수 있을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인성은 아주 중요하지 않으냐? 위험이 닥치면 모두가 어느 정도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들 두려워하고 당황하고 겁먹고 자신감을 잃으며 죽음을 걱정하고 도망가려 한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인성이 좋고 선량한 사람은 리더 일꾼과 외지의 형제자매를 보호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비록 그도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며, 두려워하고 당황하고 겁먹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자신을 먼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먼저 보호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인성이 선량한 사람의 처신 방식이다. 반면 이기적인 사람의 처신 방식은 무엇이냐? 그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보호하지 않고 우선 자신을 보호한다. 따라서 인성이 선량해 남을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는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고, 그의 인성 안에 있는 양심과 이성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는 조건에 부합한다. 반면 이기적인 부류는 진리를 깨달아도 받아들이거나 실행하지 않으며 위험이 닥쳤을 때 그의 인성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그가 보이는 인성으로 보아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즉,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양심과 이성은 기능을 잃고 그는 양심과 이성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 진리를 구해 자신이 해야 할 정의로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이성, 심지어 도의와 진리를 위배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이익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 자신을 온전히 보호하고 자신의 모든 이익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진리 추구의 길과 구원받는 길에 오르기 쉽지 않다. 그 뜻인즉슨 이런 부류는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어렵다. 조금 여지를 두고 말하자면 이런 부류는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없다기보다는 벗어 버리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보니 한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가 오롯이 그의 선천적인 조건에 달려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에 달려 있겠느냐? (인성입니다.) 그의 인품에 달려 있고 다양한 사람, 일, 사물을 마주했을 때 그의 인성에 있는 양심과 이성이 발휘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즉 일이 닥쳤을 때 그가 양심에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만약 그가 양심과 이성에 지배받아 행동한다면 그는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선택할 것이다. 반면 양심과 이성을 위배해 행동한다면 그가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든, 자질이 높든 낮든 그는 도의와 진리 원칙을 위배할 것이고 심지어 인성을 상실할 것이다. 이런 점을 통해 무엇을 확실히 알았느냐? 인성이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 만약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에 관한 한 양심과 이성, 도의를 위배해 행동한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은 인성을 상실할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얻고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도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일이 닥쳤을 때 양심과 이성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심과 이성을 위배할 수 있으며 인격과 존엄을 상실하는 대가로 목적을 이룰 것이다. 평소에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이든 이런 방면만 봐도 이런 부류는 오직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어렵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사실이 닥쳐올 때일수록 더더욱 양심과 이성, 진리를 위배하는 선택을 한다.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그는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과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어렵다. 이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려면 사람의 인성이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한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는 그가 최종적으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최종적으로 진리 추구의 길에 오를 수 있는지,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말수가 적고 성격이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남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논쟁하는 일도 적다. 또한 소란을 피우거나 과장되게 말하지도 않고 목소리도 부드럽다. 겉보기에 특히 상냥하고, 일도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처리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수줍음을 타서 남과 언어적으로 지나치게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많이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어디에 가든 기본적으로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이런 모습은 어느 방면의 문제에 해당하느냐? (성격 방면의 문제입니다.) 이는 타고난 성격의 문제이다. 이런 부류는 표면적인 성격도 이와 같을 뿐 아니라 속마음도 아주 단순해서 남들에게 비교적 다정하고 대인 관계도 공평한 편이다. 남에게서 이익을 보려 하지 않고, 남에게서 은혜나 도움을 받으면 그것을 갚고 마음속으로도 타인의 은혜를 기억한다. 겉으로 보면 이런 부류는 인성이 좋고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무해하며 남에게 너그럽고 이해심도 깊다. 계산적이지 않고 시비도 별로 일으키지 않으며 이러쿵저러쿵 남의 흉을 보지도 않는다. 뒤에서 남을 판단하지도 않고 결코 남을 먼저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도울 수만 있다면 결코 돕기를 거절하지 않는 데다가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대다수 사람은 이 사람을 보고 유순하다고 한다. 그럼 이런 부류는 겉보기에 인성이 좋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집에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당신네 교회의 리더 일꾼은 사역을 잘하나요? 형제자매는 그에 대해 어떻게 보고하나요? 요즘 복음 사역에 성과는 있나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고민한다. ‘이 일을 왜 나한테 묻지? 나한테 묻는 의도가 뭐지? 나보고 리더가 별로라고 말하라는 건가? 우리 리더를 교체하려고? 이건 나를 떠보는 거야. 나를 통해 확인하려는 거라고. 내가 어디 말하나 봐라. 만약 언젠가 리더가 파면되고 나서 내가 자신의 문제를 보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게 앙심을 품지 않겠어?’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리더가 요즘 사역을 꽤 잘하고 있어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대답하고 끝이다. 또 “정말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개 자매에게 물어보세요. 리더와 자주 접촉하고 많이 왕래하니까 리더를 잘 알 거예요. 저는 잘 몰라요.” 사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알아도 말할 수 없어. 괜히 말했다가 나중에 리더가 파면되기라도 하면 내게 앙심을 품을 거 아니야? 파면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는 걸 알면 나를 못살게 굴지 않겠어?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내 본분도 교체되지 않을까? 말하면 안 돼!’ 이는 어떤 모습이냐? (간사한 모습입니다.) 이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패괴 성품이다. 이 사람은 겉보기에는 타고난 성격이 좋고 인성도 나쁘지 않지만 남을 평가하거나 문제를 보고하라고 하면 모른다고 한다. 자신은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아서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어리석어서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한다. 누구의 문제를 발견하든 보고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누가 뒤에서 리더를 판단하거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도 못 본 척, 모른 척하며 결코 보고하지 않는다. 리더가 “당신은 아무개와 오래 접촉했는데, 그는 평소에 본분을 잘 이행하나요?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치를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어쨌든 아침에 꽤 일찍 일어났다가 밤에 아주 늦게 자요.” 사실 그는 그 사람이 늘 이방의 영상을 보고, 본분 이행을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발견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누구와도 사이 좋게 지내려고 한다. 겉보기에는 타고난 성격도 좋고, 인성도 좋아 보이지만, 좋은 인성의 허울 아래 감춰진 것은 무엇이냐? 무골호인이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며,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그 어떤 적도 만들지 않는 무골호인 말이다. 그의 처신 원칙은 무엇이냐?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거나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고, 오직 자기를 보호하려고만 한다. 이는 교활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남이 진심을 다해 그와 교제하며 “우리 둘이 같이 본분을 이행한 시간이 가장 기네요. 제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반드시 받아들이고 고칠게요. 이 방면의 실행 원칙도 더 교제해 주세요.”라고 말해도, 설사 상대방이 이렇게 간절해도, 그는 솔직히 말하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당신이 저보다 훨씬 낫죠. 사실 다들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저는 아주 연약한 데다가 소극적이고 하나님을 거역하기도 해요.” 남이 아무리 간절하게 요구해도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절대 어느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결코 한 마디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할 말이 있으면 마음속에 묻어 둔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는 마음속에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로봇이 아니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지도 않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일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결코 겉으로 밝히지도, 공유하거나 표현하지도 않고 마음속에 묻어 둘 뿐이다. 한편으로는 남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의 처신 원칙은 무엇이냐? 원칙이 없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원칙이 없다. 즉, 결코 진리를 구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보전하기만 한다. 자신이 다치지만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처신할 때 원칙도, 최소한의 기준도 없고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무골호인이다. 따라서 사람들 눈에는 이런 부류도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와 접촉하는 사람은 늘 그에게 도움을 받고, 남이 그에게 무엇을 요구했을 때도 그는 결코 거절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처신 원칙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부류는 처신에 원칙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 패괴 성품에 관한 문제의 경우 그가 진리를 구해 해결하겠느냐?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답은 ‘결코 그럴 리 없다’이다. 이런 부류는 자신의 주관적 인식을 고집한다. 자신은 인성이 좋고 마음씨가 선량하다고, 남에게 결코 악의가 없고 최소한 먼저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손실을 입히지 않는다고, 남이 무엇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면 요구대로 다 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의 인식 속에서 그는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적도 만들지 않는다면 자신은 어떤 위험한 처지에도 놓이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자신을 적으로 삼지 않을 테니 자신은 다치지 않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처신 목적은 무엇이냐? 오직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가장 안락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안식처나 안전지대에서 살아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처신 원칙이나 처신의 최소 기준, 혹은 처신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바로 영락없는 중재자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진리 원칙과 처신의 최소 기준, 처신 원칙을 교제해도 그는 자신의 처신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그럼 이런 부류는 인성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원칙을 지킬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진리 원칙을 지킬 수 없겠느냐? 그의 마음속 처신 기준은 무골호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과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냉정하게 처리하며, 남의 일처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는 처신하고 행동할 때 마치 매끈한 돌처럼 전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주위의 사람과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든, 누구에게 얼마나 큰 문제가 발생하든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고, 알아보려 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와 관계만 없으면 된다고,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으냐? “공은 바라지도 않고 잘못만 없기를 바란다.” 이 또한 무골호인의 처신 원칙이다. 이런 부류의 패괴 성품은 어떤 특징을 보이느냐? 간사하고, 사악하고, 강퍅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패괴 성품의 특징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악을 행하지도 않고 과오도 거의 저지르지 않지만 그의 처신 원칙과 처신 방식을 관찰해 보면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진리 원칙을 결코 지키지 않고 처신에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없는 것이다. 누가 그를 욕하고 그의 존엄성을 해쳐도 그는 포용하고 웃어넘길 수 있고,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꽤 너그럽고 인성도 상당히 선량하며 남을 공격하거나 보복하려는 뜻이 없는 것 같지만, 그가 속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속으로 너를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나서서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며 너에게 반격할 것이고, 그것도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는 진리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가 처신하는 원칙과 최소한의 기준은 단지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과 안전, 체면을 지키는 것뿐이다. 이런 부류는 사악하다고 해도 맞고, 강퍅하고 간사하며 진리를 싫어한다고 해도 맞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사람은 남의 이익을 해치지도 않고 악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이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그의 사상과 관점, 태도를 근거로 알아차린 것이다. 너희도 알아차리지 않았느냐? (이제는 알아차렸습니다.) 예전에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느냐? 그의 어떤 부분에 미혹되었느냐? (그는 말하고 행동할 때, 남과 접촉하고 협력할 때 꽤 유순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인성이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의 표면적인 허상에 미혹된 것입니다.) 겉보기에 성격이 온화하고, 결코 남을 공격하거나 짐승을 해치지 않는다고 해서 인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인성이 드러나야 정말로 인성이 좋은 것이냐? (한편으로는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이 닥쳤을 때, 우선 리더 일꾼과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를 보호할 생각을 하고, 자신의 안위는 고려하지 않으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좋은 인성의 모습입니다.) 마음씨가 선량하며 사랑이 있고, 인내와 관용을 베풀며 남을 존중할 줄 알고, 기꺼이 남을 위하며 남의 이익을 차지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정직한 데다가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며 건방을 떨지 않는 등의 인성 특징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진리 원칙을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성이 좋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겉보기에는 너그럽고, 인내심 있고, 선량하고,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 않고, 이해심도 깊고, 남을 돌볼 줄 아는 등의 인성 특징을 갖추었지만,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이 되었을 때 순순히 양보하고 자진해서 배신한다면, 이게 인성이 좋은 것이냐? (아닙니다.) 이게 바로 인성이 나쁜 것이다. 인성이 좋은지는 어떻게 판단하느냐? 최소한 무엇을 갖추어야 하느냐? (최소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남과 조화롭게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선량하고 너그러우며 남의 이익을 차지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인내할 줄 알고, 타인의 연약함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며, 이해심도 깊어야 한다. 남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도와주고 붙들어 줄 수 있어야 하고, 연약한 사람을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 모두 좋은 인성의 특징이다. 반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탐욕스러운 것, 남에게 야박하게 굴고 쩨쩨하게 따지는 것, 툭하면 시비를 가리고 남을 억누르기 좋아하는 것, 제멋대로 굴고 수시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 허영심이 가득하고 사악하며 방탕한 것,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는 것, 이런 것들은 어떤 모습이냐? (인성이 나쁜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겠느냐? (지킬 수 없습니다.) 인성이 좋은 모습을 갖춘 데다가 하나님 집의 이익도 지킬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겉보기에 특히 선량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내와 관용을 베푸는 등 좋은 인성의 특징들을 다 갖추고 있지만 교회의 사역, 하나님의 제물,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되면 배신할 수 있다. 너희가 보기에 이런 사람의 인성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에게는 품질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실용적인 물건을 사 주지만, 제물을 써서 물건을 살 때는 꼭 비싼 것을 사려고 한다. 트랙터를 사더라도 네비게이션이 달린 트랙터를 사려 하고, 무엇을 사든 가장 좋은 것, 가장 비싼 것, 첨단 기술이 탑재된 것을 사려 하지 싼 것은 사지 않는다. 평소에 보면 그는 남들과 정상적으로 잘 지내고,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아주 너그럽고, 남들에게 모든 면에서 괜찮다. 그러나 제물을 쓰는 것과 관련되었다 하면 독기를 품고 흉악한 낯짝을 드러낸다. 이를 인성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의 좋은 인성이 진정 좋은 인성이냐? 그건 겉으로 위장하고 꾸민 것이고, 전부 포장해 낸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닥치면, 특히 제물을 써야 할 때는 탐욕이 드러나고, 흉악한 낯짝과 흉한 마귀 몰골이 드러난다. 이게 인성이 좋은 것이냐?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의 판권을 신청할 때 이렇게 말한다. “교회라는 기구의 명의로 신청하면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지만, 성육신 그리스도의 명의로 신청하면 돈이 많이 들어요. 돈을 아껴 가며 일을 처리해야죠. 제물을 함부로 쓸 수는 없다고요!” 이 말이 옳으냐? 이렇게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그에게 원칙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포한 것이냐, 아니면 교회가 선포한 것이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 판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게 적절하겠느냐, 아니면 교회에 귀속되는 게 적절하겠느냐? (하나님께 귀속되는 게 적절합니다.) 이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 중요한 문제에서 돈을 아끼려고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어떤 문제가 생기겠느냐?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단지 돈을 아끼느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에게 양심이 있느냐? 인성이 있느냐? (인성이 없습니다.) 겉보기에 아무리 선량하고 남에게 아무리 너그럽다 한들 이런 자에게 정말로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쓰는 비용은 전부 하나님의 제물로 지출하는데, 그걸 가지고 너희에게 따진 적이 있느냐? 너희에게 낭비하지 말라고 할 뿐이지 정상적인 비용을 가지고 너희에게 따진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언제나 너희를 위했고 따진 적도 없는데 너희는 오히려 나에게 기어오르며 따지는구나. 이는 인성이 없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인성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 아무리 선량하고 너그러워도 다 겉모습일 뿐, 정말로 양심과 이성이 역할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조금도 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자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이런 자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나도 물건을 살 때 언제 세일을 하는지, 어떻게 사야 적절한지 알뜰살뜰 계획한다. 실용적이고, 적절하고, 가격도 합리적인 물건이라면 구매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사지 않고 쓸데없는 돈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아낄 수 없고 반드시 써야만 하는 비용은 원칙에 따라 쓴다. 내 자신의 생활비도 최대한 아끼고, 사고 싶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생각한다. 보다시피 나는 옷도 평범하고 단정하고 격식에 맞게 입는다. 나는 씀씀이에 원칙이 있다. 꼭 사야 하는 것이나 실용적인 것은 사지만, 사지 말아야 하는 것이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사지 않는다. 흥청망청 낭비하지도 않고 쓰면 안 되는 돈은 쓰지 않으며 절약해야 할 때는 절약하고 불필요하게 지출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원칙이다. 그러나 일부 인성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제물을 쓸 기회만 보이면 혈안이 되고, 의식주에 관련되기만 하면 집행하지 못해 안달이다. 특히 남에게 옷을 사 주거나 생활비를 지급할 때는 유독 통 크고 후하게 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잖아. 하나님의 돈을 쓰면서 좋은 명성도 챙길 수 있으니 안 쓸 이유가 없지!’ 그는 이 틈을 타 돈을 펑펑 쓴다. 속으로 나쁜 마음을 품고, 하나님 집에 해를 끼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바로 계산을 하면서 한 푼도 더 쓰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람은 평소에 아무리 선량한 모습을 보여도 인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제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만 봐도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제물을 함부로 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그가 선량하지 않고 비열하며 인성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에는 여러 방면의 모습이 있는데 우리는 일부분만 대략적으로 다루었다. 아직 몇 가지 모습이 더 있으니 나중에 이어서 교제하기로 하자. 오늘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또 보자!
2023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