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한 바리새인의 참회

한국 신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섬기기란 불가능하다. 너의 성품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성품은 여전히 사탄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너의 섬김은 선의에서 나온 것임을 말해 준다. 이는 사탄의 본성으로 섬기는 것이다. 너는 타고난 개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의 취향대로 하나님을 섬긴다. 그러면서 네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할 것이고,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도 싫어할 것이라고 여기며 완전히 자기 취향대로 사역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냐? 계속 그렇게 한다면, 너의 성품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채 도리어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더욱 완고해지고 패괴 성품이 더 깊이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 내면에는 네 개성을 위주로 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들과 네 성품대로 섬기면서 정리된 경험이 형성될 텐데, 이는 사람이 경험으로 얻게 되는 교훈이고, 또 사람의 처세술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과 종교 관원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이 각성하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면, 반드시 말세에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된다. 이른바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부류에서 나온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반드시 없애야 할 종교적 섬김> 중에서) 예전에 이 말씀을 보면,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목사 장로들, 또는 교회에서 지위욕이 강하고 악독한 인성을 가진 적그리스도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내적 상태를 드러낸 것이고, 제게도 이런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도리상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었기에 바리새인이나 적그리스도, 미혹하는 자는 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 지경까지 갈 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고, 그동안 행실이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본분에서도 고난을 감내하고 대가를 치렀고,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겨도 순종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스스로 자질이 부족한 것을 알고 리더 자리에 욕심도 없었고, 지위가 있든 없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적그리스도나 미혹하는 자가 될 수 있겠어?’ 저는 계속 이러한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사실의 드러남을 통해 이런 관념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지역 교회로 파견되어 복음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사역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리더 또한 다른 사역에 관해서도 저와 의논하거나 저의 의견을 묻기도 하는 등 저를 크게 신임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도 오래고, 본분에서 고난도 잘 견디니 형제자매들까지 저를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내가 하나님도 더 오래 믿었고, 사역도 담당하고 있으니 다른 형제자매들과 같으면 안 되지.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못하면 안 되고, 패괴 성품도 남들보다 덜해야 해. 사람들이 의기소침하고 연약해져도 나는 그러면 안 돼. 안 그러면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하나님도 오래 믿었으면서 분량은 작다고 무시하겠지?’ 가끔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리더로부터 신앙생활도 오래 한 사람이 아직도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진리 실제가 없다고 훈계와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몹시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신의 패괴함과 부족함을 반성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그것을 보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리 실제가 없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공허한 이치를 떠들고 자신을 인식한 척하면서 영적인 사람처럼 굴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교파의 사역자가 참도에 관해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리더가 얼른 그에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라고 했고, 저는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관념이 많아서 쉽지 않은 데다가 다른 일에 신경 쓰다 보니 이 일을 방치했습니다. 보름 후, 리더가 그 사람의 상황을 물어보았고, 저는 아직 증거해 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리더는 저를 나무랐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까지 증거를 못 했나요?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밑에 주의 재림을 바라는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째서 바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지 않은 겁니까?” 순간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많이 밀려서 제대로 신경을 못 썼다고 변명했습니다. 화가 난 리더는 제가 본분에 무책임해서 중요한 일에 늑장을 부리다가 복음 사역을 크게 지체시켰다고 책망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있는 자리에서 크게 야단을 맞으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제대로 망신을 당한 것 같아 책상 밑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 입에서 원망이 쏟아졌습니다. “체면 좀 세워주면 어디 덧나나요?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도 제가 잘못한 거 안다고요. 빨리 가서 복음 전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호되게 질책합니까? 솔직히 제가 가만히 앉아서 논 것도 아니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복음 전하러 돌아다닌 사람한테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일한다고 하면 저더러 어쩌라는 건가요? 이 본분 정말 쉽지 않군요!” 예배를 마친 후 방에 틀어박혀 펑펑 울었습니다. 억울한 생각에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었습니다. 가슴 한가득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들어차서 배반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리더가 나를 그렇게 책망했으니 하나님도 분명 나를 미워하시겠지. 나도 이 일을 못 하겠으니 차라리 그만두고 떠나버릴까? 그것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나도 고생만 실컷 하고 좋은 소리도 못 들을 바에야 그게 낫지.’ 한참 울다가 갑자기 저의 내적 상태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가 얼마인데, 책망과 훈계가 조금 호되다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하나님께 대들고 집어치울 생각까지 하다니 말입니다. 참으로 분량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하늘이 무너져도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라 무척 격려가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리더가 나를 어떻게 보든 무너지지 말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자고 다짐했습니다. 다짐을 하고 나니 괴로운 마음도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눈물을 닦고 서둘러 형제자매를 찾아가 의논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사역자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저는 열심히 진리를 구하여 스스로를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양심과 의지로만 버티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도 분량이 생겼으니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고, 어느 정도 진리 실제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리더가 ‘본분에 무책임해서 중요한 일에 늑장을 부리고 실제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모두 심각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저는 복음 사역을 책임지고 있는데도 복음 대상자에게 관념이 많은 것을 보고는 애를 써 가며 증거하기가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고 보름가량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참도에 대해 알아보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을 늦추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제가 본분을 소홀히 대하여 하나님나라의 복음 확장을 지체시킨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겉보기에 저는 바삐 움직이고 본분에도 기꺼이 고난을 감내하고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고 해결하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중간에 손을 놓아 버렸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함부로 방치한 것입니다. 본분에 대한 충성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리더가 책망한 것은 본분을 가볍고 무책임하게 대하는 저의 태도와 간사한 사탄 성품이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리더가 저를 폭로하며 꾸짖은 것은 반성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고, 참된 회개와 변화에 이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아예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저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만 저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었던 까닭에 예배 시간에는 허울 좋은 말과 이치만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제가 무책임하여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체시켰으니 리더가 책망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리더가 저의 본성 안에 들어있는 것, 저의 사탄 본성을 책망한 것이니 저는 이 일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교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렇게 행한 일의 성질과 결과가 어떤 것인지, 본분을 가볍게 대하는 태도는 어떤 패괴 성품에 속하는지, 어떤 그릇된 생각과 관점이 있는지 등 구체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그저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갔습니다. 반대로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했는지, 어떻게 실행하고 진입했는지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인식은 교제를 많이 했습니다. 책망을 받았을 때는 의기소침해지고 원망도 하고 나름의 이유를 내세웠다, 심지어 본분을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격려를 받아 절대 무너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토록 많이 역사하시고,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으니 나는 양심적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아무리 책망과 훈계를 받고 본분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본분을 완수해야 한다, 리더가 책망한 것도 나 자신을 인식하여 회개하고 변화에 이르라고 그런 것이다…. 형제자매들은 제 교제를 듣고 저의 문제점이나 패괴함에 대해 분별하거나 인식하지 못했고, 제가 하나님 집 사역에 크게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본분에서 문제만 생기면 훈계 책망하다니 리더가 너무했다며 저를 동정하고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망을 받고도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평소대로 본분을 책임진 것은 정말 진리를 알고 분량이 있는 모습이라며 저를 존경하고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렇게 호되게 책망과 훈계를 받고도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고 계속 본분을 이행하다니 참으로 대단하네요!” “그 본분이 정말 쉽지 않네요. 고생하는 건 둘째 치고 무슨 문제가 조금 생겨도 책망을 받아야 하다니. 그래도 자매님은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서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잖아요. 저 같으면 벌써 무너졌을 거예요. 그만한 분량이 안 되거든요.” 당시 이렇게 위로해 주는 형제자매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교제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책망과 훈계를 받았을 때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제 경험으로부터 책망도 하나님의 사랑이자 구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고 거리를 두면서 저와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몇 번 더 책망을 받았지만 매번 똑같은 식으로 겪어 나갔습니다. 늘 이론적으로만 교제하면서 영적인 척하고, 자신을 인식한 척하고, 분량이 있고 실제가 있는 척하면서 형제자매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책망을 받고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저는 제가 정말 믿음의 분량이 크고, 진리 실제가 있다고 착각하고 갈수록 더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으로 변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형제가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드러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오지랖이 넓고 공연히 트집을 잡는다며 원망하고 반감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여전히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며 형제가 저를 안 좋게 볼 것도 걱정되고, 리더가 알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저를 책망할 것도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터져 나오려는 불평을 억누르고 겉으로 침착한 체하며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문제점을 하나씩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하나씩 교제해 봐요. 해결이 안 되는 건, 다시 리더에게 물어보고요.” 그런 다음 저는 형제가 이야기하는 족족 이유를 대면서 반박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식으로 교제를 하다 보니 형제가 꺼낸 많은 문제점들이 저한테 와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문제가 이렇게 해결된 것을 본 저는 매우 흡족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형제는 리더를 찾아가 다시 물어보았고, 형제가 제기한 내용 중 몇 가지는 확실히 문제가 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리더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호되게 나무라고 폭로했습니다. 제가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에 원칙이 없고, 진리 실제도 전혀 없어서 실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하는데, 그러면서 쓸데없이 교만하기만 하고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에 마음이 찔렸지만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교만한 성품을 가진 것도 맞고, 가끔 독선적일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제안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 그 정도까지 형편없는 건 아니잖아?’

얼마 후 사역 회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맡은 사역의 진도가 더딘 것을 알고, 리더가 본분의 효율이 왜 그렇게 떨어지는지,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효율을 더 끌어올릴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이미 최선을 다했으니 더는 힘들다고 답하면서 리더가 우리의 실제 상황은 모르고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리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다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의미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촉박하니 본분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의 경험과 상상에 의존해 더는 효율을 높이기 어렵다고 단정 짓고, 작은 소리로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물었습니다. “다들 가능하시겠어요?” 사실 그 말속에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들 제 편이 되어 한목소리를 내며 하나님 집의 요구에 저항하고 사역 진도를 늦추고자 하는 의도 말입니다. 이렇게 뚜렷한 문제를 당시에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고, 형제자매들도 저에 대해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분별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저를 따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 후 저는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한 점, 본분 효과가 좋지 않은 점, 팀 사역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저해한 점 등을 이유로 본분에서 교체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임자를 다시 뽑을 때, 다들 저에게 투표를 했고 그것도 만장일치였습니다. 심지어 저를 교체시키면 팀 자체가 해체될 것이라며 제가 아니면 누가 그 자리를 맡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제가 사역을 마비시킨 장본인인데도 다들 저의 말을 따르고 저를 두둔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저를 교체시켰는데도 다시 저를 뽑고, 저 때문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형제자매들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 모두를 놓고 볼 때, 너희에게 교회를 맡기고 반년 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너희는 곁길로 샐 것이고, 1년 동안 내버려 둔다면 사람들을 잘못 이끌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이끌 것이며, 2년 동안 방치한다면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이끌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너희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는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너희의 인식은 다른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 공급할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똑같은 것만 말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네가 너무 얄팍하여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 너는 어쩔 수 없이 도리를 말해 사람들을 미혹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아래 있는 사람들도 네 방식과 절차, 형식에 맞춰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면서 그러한 글귀와 도리들을 행하게 된다. 네가 그렇게 거듭 설교하면 결국 사람들은 모두 너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네가 사람들을 이끌며 도리를 가르치면, 아래 있는 사람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면 사람들이 곁길로 새게 된다. 네가 가는 길이 곧 아래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니, 그들은 너를 보고 배우고 너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 너는 속으로 ‘이제 내게 권력이 생겼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내 말을 듣다니, 뭐든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 배반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배척하고 스스로가 어떤 종파나 파벌을 형성하게 한다. 각 종파나 파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바로 이렇게 생겨났다. 각 종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전부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성경을 제멋대로 끊어 해석하고, 자신의 상상에 따라 설명하며,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따르겠느냐? 어쨌든 그들에게는 지식이 좀 있기에 도리를 가르치거나 사람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고, 이러저러한 수법을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오고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고 있다. 참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일은 리더에게 물어봐야 합니다.”라고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다른 이를 통해야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럼 그들의 리더는 어떤 존재가 되었느냐? 바리새인, 거짓 목자, 적그리스도가 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참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느냐? 이런 자들이 바로 바울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니 제가 바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간사하고 사악한 사탄 성품뿐만이 아니라, 제가 한 짓은 이미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목사 장로들이 연상되었습니다. 늘 이론을 들먹이며 좋은 행실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항상 말끝마다 하나님께 빚을 졌다며, 몹시 겸손하고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합니다. 틈만 나면 자신이 주님을 위해 어떻게 헌신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를 드러내고 자랑합니다. 그 결과는 신도들이 모두 그들을 숭상하고,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들을 분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곧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고, 형식적으로는 주님을 믿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을 따릅니다. 제가 행한 모든 것과 제가 걷는 길도 바리새인이나 목사 장로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저도 이론에만 치중하고, 본분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겉으로 보여지는 고난과 헌신에만 신경 썼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 이론과 틀에 박힌 말에 미혹된 사람들은 저를 순종적이고 분량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앞으로 이끌려 와서 저를 숭배하고 따르고, 심지어 저와 함께 하나님의 요구에 저항했습니다. 저는 진짜 교회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적그리스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리더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자리에 앉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두 자매와 협력하면서 한 가지 사역을 맡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리더의 감독 아래 있었는데도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정말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혼자 사역 하나를 총괄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지르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도 오래되고, 어떤 고통과 시련이 닥쳐도 본분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인성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리더 자리에도 욕심이 없으니 바리새인이나 적그리스도가 될 일은 결코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적나라한 사실을 마주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처참하게 무너졌고 완전히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제야 그동안의 관점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제 성품이 너무 사악하고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책망과 훈계를 거부하고, 이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사탄 본성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단지 외적으로 순종하고 이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아무리 인성이 좋고, 규례를 잘 지켜도, 조건만 허락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탄의 본성이 완전히 드러나 부지불식간에 생각하지도 못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정말 “너희가 나를 배반할 가능성은 여전히 백 퍼센트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너무 깊이 패괴되고, 무감각하고, 강퍅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자신을 조금 인식하는 정도로는 변화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도 형제자매를 통해 저를 책망하고 폭로하셨습니다. 한번은 한 자매님이 거침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자매님에 대해 조금 분별이 생겼어요. 자매님은 교제할 때 진짜 생각은 거의 얘기하지 않고, 자신의 패괴 성품도 폭로하지 않아요. 그저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진입한 것만 말하는데, 마치 본인은 패괴 성품이 다 해결돼서 이제는 패괴함이 없다는 것 같아요.” 자매는 줄곧 저를 존경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니 진리도 잘 알고, 어떤 일이 닥쳐도 잘 헤쳐 나가고, 본분에서 고생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강한 책망과 훈계도 잘 견디는 것 같아 참 대단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은 다 옳다고 생각해 무조건 따르고 분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저를 거의 하나님처럼 대했다는 것입니다. 자매가 저를 하나님처럼 대했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속으로 자매를 원망했습니다. ‘나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적그리스도가 되잖아요? 왜 그렇게 어리석고 분별이 없으세요? 나도 패괴된 사람인데, 어찌 날 그렇게 생각하나요?’ 자매의 말을 들으니 겁도 나고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또 방으로 뛰어 들어가 엉엉 울었습니다. 며칠 동안, 자매가 했던 말만 떠올리면 가슴에 칼이 꽂힌 것처럼 아프고, 당장 화를 입을 것 같은 느낌에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향해 노하시고, 그분의 공의 성품이 제게 임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 악행을 저질렀으니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께 정죄받았다는 생각에 계속 눈물이 났고, 내 신앙생활도 이제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평소에 큰 악행도 저지르지 않고 큰 잘못도 범하지 않은 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치로 사람들을 미혹한 것은 그렇다 쳐도, 무엇보다 사람들이 저를 하나님처럼 여길 만큼 추앙하게 만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을 기만하고 배척한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심각하게 거스른 것입니다. 한동안 저는 몹시 풀이 죽어 지냈습니다. 제가 저지른 과오와 악행이 가슴에 낙인처럼 새겨졌습니다. 저는 바리새인이자 적그리스도, 사탄에게 속한 존재라 봉사가 끝난 후에는 도태될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며 참회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큰 악행을 저질러 당신의 성품을 거슬렀습니다. 저주받고 벌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저의 사탄 본성을 제대로 알고, 패괴된 저의 진면모를 볼 수 있도록 깨우쳐주십시오. 회개하고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기 원합니다.’

그 후 왜 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거짓으로 꾸미겠느냐? 무엇을 거짓으로 꾸미겠느냐? 물론 그의 거짓된 꾸밈은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위한 것이며, 이것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는 거짓으로 꾸미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행위가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혐오감을 일으키며 증오받는데 왜 그렇게 하겠느냐? 거기에는 분명 그의 목적과 동기가 있으며, 동기와 속셈이 들어 있다. 적그리스도가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얻으려면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느냐? 그는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행위와 모습을 꾸며 내는 것 외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꾸며 남들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한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어느 곳에 가든, 어디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믿음이 가득하고 결코 소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어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을 대하는 그의 마음속 진실한 태도와 관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실, 그가 정말 진심으로 자기는 못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겠느냐? 정말 자기에게는 연약함이 없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럼 그는 자신에게 연약함과 패역,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겠느냐? 그 목적은 분명하다.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연약한 말을 하며 패역을 드러내고 자신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해가 되고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연약함과 소극적인 모습이 있으며, 자신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말을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자신 역시 패괴 성품이 있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고분고분 그 지위를 버리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쟁취하려 한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임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지만, 그랬다가 밑천이 드러나고 남들이 자신을 꿰뚫어 볼 것 같으면 급히 물러선다. 그 일에 여지가 있고,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있으며, 전문가인 양 굴 수 있고, 그 문제를 알고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는 재빨리 그 기회를 잡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자신이 그 부분에 특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영적인 사람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고,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남다른 사람의 역할, 진리가 있고 진리를 깨닫고 연약하고 어린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런 역할을 하려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먼저 그들은 자신이 육체와 세상을 초월하고, 정상 인성의 연약함을 벗어 버렸으며, 정상 인성의 육적인 필요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 집에서 중임을 맡을 수 있다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그들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렀고 하나님을 만족게 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하나님이 약속한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다고 자처한다. 그래서 늘 득의양양하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기억할 수 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그 글귀들로 남들을 훈계하고 정죄하고 규정하며, 자신이 관념 속에서 상상한 행동 방식이나 말로 남들을 규정하고 지도하고 남들이 그것을 지키게 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원하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의 지위를 얻는다. 그는 옳은 글귀와 도리를 말하고 구호를 외치면, 하나님 집에서 책임을 지고 중임을 맡으면, 또 앞장서기를 원하고, 사람들 속에서 정상적인 질서를 지키면,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자신의 위치도 공고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인 양 가장하고 자만하는 한편, 못하는 게 없고 불가능한 것도 없는 완벽한 사람인 척 행동하면서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제가 왜 계속 위선적이고 가식적이었는지, 왜 자신의 좋은 면만 교제하고 추하고 악한 면은 어떻게든 감추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바로 사람들 마음에서 차지한 저의 자리를 지키고, 신앙생활을 오래 한 ‘고참’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오래 믿은 사람이라 뭔가 남다르고, 다른 형제자매와는 다르게 진리를 벌써 이해하고 분량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너무도 교만하고, 간사하고, 사악했습니다. 다년간 신앙생활을 했고 이치를 조금 깨달은 점을 밑천으로 여겨 속으로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영적인 사람인 체했던 것입니다. 원래부터 진리 실제가 없었기에 어떤 일이 생기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행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치를 따지고 겉보기에 좋은 행동, 수고와 노력으로 진리 실제가 없는 추한 모습을 감추려 했습니다. 책망과 훈계에도 자신을 알고 반성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문제점과 패괴함을 해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속에 품은 비열한 속셈과 패괴 성품을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꽁꽁 감추고 자신의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저의 이런 외식하는 모습은 예수님을 대적했던 바리새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 23:24) 저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외적으로는 저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그저 모두가 볼 수 있는 내적 상태만 이야기하고 공허한 이치만 말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생각과 패괴함, 사악함은 가리기 바빴고,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나도 문제가 있고 패괴된 면이 있지만 당신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자들처럼 겉으로는 경건한 척했지만 속내는 늘 저의 자리와 명예를 생각하고, 형제자매들 마음에 있는 저의 이미지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정말 위선적이고 간교하게 굴면서 형제자매들을 미혹하고 속였습니다. 제가 보여준 거짓되고 꾸며낸 모습, 수고와 헌신은 지위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성실한 사람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에 의해 패괴를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본분 이행을 기회로 삼아 자기를 드러내고 입지를 굳혀 사람들을 미혹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다투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고, 하나님은 이런 저를 정죄하고 저주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조금 오래된 것 외에 자질 면에서나 진리를 추구하는 면에서나 다른 사람보다 많이 부족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지금껏 진리 실제가 전혀 없고, 생명 성품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교만하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탄의 모습으로 살면서, 본분에도 원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거나 하나님을 증거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 사역을 지체시키고 가로막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었다고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인데, 저는 오히려 그것을 밑천으로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서 다들 저를 우러러보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무지하고 뻔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루는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글귀는 수만 번 되뇌어도 글귀일 뿐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말을 만 번 되뇌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 너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어째서 그리스도를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겠느냐? 체험으로 인한 인식을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진리, 길, 생명의 실제에 진입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체험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글귀만 말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입해야 너 자신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는 자신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진리가 있어야 분별을 할 수 있고, 진리 없이는 분별도 불가능하다. 진리가 있어야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진리가 없으면 일을 꿰뚫어 볼 수 없다. 진리가 있어야 자신을 알 수 있고, 진리가 없으면 자신을 알 수 없다. 진리가 있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진리가 없으면 성품도 변화되지 않는다. 진리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대로 섬길 수 있고,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섬길 수 없다. 또 진리가 있어야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진리 없이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또한 종교 의식의 수행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얻는 것에 달려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더욱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의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은 오랜 신앙생활에도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경험하지 않았으니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교제를 해도 이론에만 그쳤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갈망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어느 방면의 진리를 밝히셨는지, 그 진리를 진정으로 깨닫고 실행은 했는지, 얼마나 진입했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그 말씀이 나에게서 효과를 이루었는지 헤아려 보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일이 생기면 하나님 말씀에 결부해 자신의 내적 상태를 비추어 보고, 자신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자신이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고, 어떤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겉으로만 바쁘고, 그저 바울처럼 사역에서 고난받는 것만 중시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시어 그토록 많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지금은 또 진리에 관한 세부적인 부분을 많이 교통해주신 것은 모두 우리가 진리를 이해해서 패괴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고 회개하고 변화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대하고, 그것을 갈구하거나 묵상하지도 않고, 진리를 실행하고 진입하는 것에는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닌가요? 바리새인이나 목사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요? 바리새인은 바로 사역과 설교에 힘쓰고 수고와 헌신을 마다하지 않지만, 자신의 지위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실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오랫동안 설교를 해 왔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참된 경험과 인식을 교제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진리 실제로 이끌지 못합니다. 오로지 성경의 글귀와 지식, 이치로 사람을 미혹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저도 진리를 실행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관념과 상상에 따라 규례를 지키면서 큰 잘못이나 악행 없이 좋은 행동을 하고, 예배 때에 옳은 이치를 조금 말할 수 있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것은 외식하는 것일 뿐,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믿다가는 종국에는 진리 실제도 전혀 얻지 못하고, 성품도 전혀 변화가 없어서 결국 도태될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더는 당신이 혐오하시고 증오하시는, 외식하는 삶을 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너는 지위가 있으면 그에 맞는 풍모를 보이고 말할 때도 점잖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는 저버리고 이 길을 걷지 마라. 이런 생각이 든 순간 그 내적 상태에서 나와야지, 그 안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 안에 빠져 그 사상과 관점이 네 안에서 형태를 갖추면 너는 스스로를 위장하고 포장하게 된다. 그럼 아무도 너를 꿰뚫어 보거나 네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게 빈틈없이 포장하고, 남을 대할 때는 가면을 쓰고 말해 남들이 네 마음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너는 남들에게 마음을 보여 주는 법, 남들과 마음을 나누고 가까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 기존의 방식과 반대로 행하면 된다. 이것이 원칙 아니겠느냐? 실행의 길 아니겠느냐? 먼저 사상과 의식 면에서 시작해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을 때면 이렇게 기도해라. ‘하나님, 저는 또 스스로를 포장하려 했고, 음모와 간계를 꾸미려 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마귀입니다! 정말이지 당신의 혐오를 받는 존재입니다! 지금 저는 저 스스로가 역겹습니다. 바라옵건대 저를 징계하고 질책하고 징벌해 주십시오.’ 네 태도를 꺼내 놓고 기도해야 한다. 이는 실행과 관련되어 있다. 이 실행은 사람의 어떤 측면에 관한 것이겠느냐? 사람이 어떤 일을 대할 때 드러내는 마음과 생각, 속셈, 네가 걷는 길과 나아가는 방향에 관한 것이다. 네가 이런 생각을 갖고 이렇게 행동하려 한다면 그것을 통제하고 해부해야 한다. 일단 해부하고 통제하면 네가 행하고 드러내는 것이 많이 줄어들지 않겠느냐? 네 내면의 패괴 성품이 꺾이지 않겠느냐?』(<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하려면 구체적인 실행의 길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거짓과 가식을 없애고 간악한 사탄 성품을 뿌리 뽑으려면, 진리를 행하며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놓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진심을 이야기하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에는 자신의 진짜 생각과 관점을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꾸며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자신을 저버리고 그 길로 나아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패괴 성품을 털어놓고, 폭로하고 해부하여 사탄 성품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너는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일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훈언 3칙> 중에서) 그때,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수년이 되었지만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도 진입하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가련합니까! 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천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로는 누군가 저에게 진리를 알고 믿음의 분량이 있다고 칭찬하면, 자랑스럽고 뿌듯한 게 아니라 몹시 불편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와 만났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고, 감옥에서 고난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 부러웠다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믿은 지도 오래됐고, 말씀도 많이 들어서 진리도 많이 알겠네요. 정말 부러워요.” 자매는 제 앞에서 거리낌없이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진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자매님, 그렇지 않아요. 저의 겉모습만 보시면 안 돼요. 제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자질도 부족하고 또 진리를 사랑하지도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못했어요. 겉보기에만 고생하고, 이치를 조금 이해한 것뿐이에요. 지금까지 본분을 이행하는 데도 원칙이 없고, 성품 변화도 없어요. 하나님 집에서 맡겨준 본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증거할 수준도 못 돼요. 심지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대적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교제를 했습니다. “사물을 보는 자매님의 관점은 잘못되었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아요. 맹목적으로 사람을 대단하게 보고 추앙하면 안 돼요.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따라 사람과 일을 판단하셔야 해요.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나요? 믿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이치를 얼마나 잘 말하는지를 보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지를 보세요. 어떤 형제자매들은 비록 믿은 시간은 길지 않아도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깨달으면 바로 진입하려고 노력하니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저보다 훨씬 뛰어나답니다. 자매님은 제가 하나님을 오래 믿었고, 고난을 많이 받은 걸 부러워하지 마시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을 부러워하셔야 해요.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오래된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니까 부러워할 게 못 돼요.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품에 변화가 없고, 겉에 드러나는 좋은 행실에만 치중한다면 그저 사람을 미혹하는 바리새인일 뿐이에요. 그래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렇게 교제하니 마음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리고, 예배 모임에서도 장황한 이론을 읊어 대며 큰소리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자신에 대한 인식을 조금 이야기하면서 아직은 이 정도밖에 인식하지 못해서 변화가 생기거나 진리 실제에 진입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비록 교제가 얕기는 하지만 마음은 더 편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똑똑히 깨닫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고, 인성이 좋고, 착한 행실을 많이 하고, 고생을 많이 하고, 사역을 많이 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거부하고 이에 순종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려 하지 않고, 사탄 성품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길을 걷는 것이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상황이나 조건만 허락되면 얼마든지 적그리스도나 미혹하는 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필연적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품 변화에 이르고 구원받으려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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