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

2019.12.19

허난성 진루

최근 들어 저는 형제자매들이 제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제 의견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 때면 못마땅해하거나 그 자리에서 반박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반성했지만, 막상 또 일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패괴 성품을 드러냈지요. 저는 이것 때문에 무척 고민했고, ‘나는 왜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에 그렇게 화를 내는 걸까? 하나님을 따른 지 8년이나 됐는데, 왜 내 패괴 성품은 변화되지 않는 거지?’라며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고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 여러 차례 기도했습니다. 제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 근본 원인을 알게 해 달라고 깨우침을 구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영 생활을 하다가 설교 교제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오만 방자함과 교활함, 간사함을 증오합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어느 정도 변화를 이루지만, 오만 방자하고 비이성적이며 교활함과 간사함이 몸에 밴 극소수의 사람들은 변해도 극히 일부만 달라지는 데 그칩니다. 그들이 드러내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지닌 본연의 모습이며, 오만 방자함과 교활함, 간사함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체험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성품 변화를 추구한 적이 없으며, 오직 다른 이의 생명 진입을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그 결과 정작 자신의 변화에는 지장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사람들은 너무 오만 방자해.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 마땅하지.’라고만 여길 뿐, 자신은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은 다른 사람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이렇게 특이하니 변화가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이 설교 교제를 읽고 저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따랐는데도 패괴된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했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다른 이의 생명 진입을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할 뿐 진리를 추구하지도, 자신의 생명 진입을 중시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교회에서 사역할 때 경솔하게 행동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을 제 내적 상태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고, 그들의 상태에 맞춰 보았지요. 또 예배할 때는 진리를 교제해도 다른 사람의 문제와 어려움 해결을 목표로 삼았을 뿐, 저 자신이 진입해야 할 진리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람의 패괴된 본질을 드러내는 하나님 말씀을 교제할 때면 늘 실패한 형제자매들의 사례를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하라고만 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저 자신의 상태에 비추어 인식하거나 진입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 또 한 해가 지났지만, 제 생명 진입은 거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저는 스스로 사랑이 있다고, 형제자매들의 생명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착각했지요. 이러한 점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교회에서 안배받은 본분을 이행할 때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저는 어린 자매님 한 분과 같이 협력하여 본분을 이행했는데, 이에 ‘부담’을 갖고 그 자매님의 생명 진입을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자매님이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을 드러낼 때면 얼른 하나님 말씀과 연관 지어 교제해 주었지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사람 정말이지 건방지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자매님이 앞날과 운명에 연연하며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으면, 저는 해당하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그 자매님과 함께 읽으며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소리를 하지? 복받겠다는 마음이 아직도 저렇게 크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자매님이 마음을 열고 자기는 사람을 너무 잘 의심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저는 입으로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교제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 자질구레한 걸 다 따지네.’라며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자매님이 부정적인 상태의 원인을 찾지 못할 때, 저는 자신을 성찰하고 본성을 해부하라고 알려 주었지만, 막상 제게 일이 임하자 제가 드러내는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 지어 스스로를 인식하고 해부하는 데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은 ‘사람들은 너무 패괴되었어. 그러니 마땅히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 해.’라고만 생각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하나님 말씀 밖에 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진입에만 신경을 쓰면서 저 자신의 진입은 그르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온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모두 같은 본성과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연관 지어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며 생명 진입을 이루는 것은 중시하지 않고, 시종일관 다른 사람에게만 눈길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교만한 행동 아니겠습니까? 해야 할 일을 회피한 것 아닐까요? 바로 그때, 저는 저 자신이 길거리의 거지처럼 가난하고 가련하며,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샌가 마음이 통회로 가득 차게 되었지요.

훗날,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앞날에 대한 미련은 내려놓고, 현실을 이야기하자.”라는 말을 한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복받으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 하면서 스스로는 어떠하냐? 설마 다른 사람은 단념시키면서 자신은 복을 구하겠다는 것이냐? 다른 사람은 복받지 못하게 하면서 자신은 몰래 바라다니 대체 무슨 인간이 그러냐? 정말 사기꾼이로구나! 그렇게 하면 양심에 참소를 받지 않느냐? 빚진 마음이 들지 않느냐? 그건 사기범이 아니냐? 다른 사람의 속말을 유도해 놓고 자신의 속내는 전혀 말하지 않다니, 정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천박한 존재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42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예리한 칼날처럼 마음을 찌르자 저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사기범의 행위였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듯 행동했지만, 사실은 열성으로 하나님께 신뢰를 얻어 내 죽음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또 겉으로는 진리를 교제하여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은 글귀와 도리로 형제자매들의 존경과 앙망을 끌어냄으로써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앉으려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지위의 복을 탐내거나 교만하게 굴지 말라고 교제했지만, 정작 저 자신은 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 했으며, 형제자매들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들이 제 부족한 점을 꼬집을 때면 못마땅한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이 밖에도 저는 사람들에게 복받으려는 속셈을 버리고, 장래나 운명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저 자신은 앞날과 퇴로를 생각하고 계산하며, 이해득실만 따졌습니다. 사람들의 간사함과 의심 많은 태도를 혐오하면서 정작 저는 수시로 남의 눈치를 보고, 저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신경 썼고요. 또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인식하라고, 생각을 다잡고 본성을 해부하는 데 집중하라고 했지만, 제 마음에는 티 나지 않는 악의를 품고 있었으며, 모든 언행에 있어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 일거수일투족을 반성하면서 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늘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면서 글귀와 도리를 가르치는 것에 만족했고,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것은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스스로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생명 성품도 이렇다 할 변화를 이루지 못했지요. 제 성품은 오히려 갈수록 교만해졌습니다. 『알고 있는 도리가 많을수록 성품은 교만해진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저는 줄곧 제가 지닌 도리를 제 밑천으로 여기면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과 제 생명 진입은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이런 체험이 어떻게 생명 성품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은 실질적인 사역과 말씀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를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본분 이행의 기회를 통해 그 진리들을 실생활로 가져가 체험하고 진입하는 한편, 형제자매들에게 공급할 수 있게 해 주시지요. 그런데 저는 글귀와 도리를 갖추는 것만 중시하며,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제 직책으로 여겼습니다. 남들에게는 진리를 실행하라고 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진입하지 않았지요. 그 결과,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는데도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으니, 남들에게는 물론, 저 자신에게도 해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글귀와 도리로 무장한 채, 다른 사람을 가르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데만 집중할 뿐,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거나 체험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자신의 진입으로 연결하지도 않았지요. 그 결과, 그는 오랜 세월 사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교만해져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심각하게 거슬렀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었지요. 제가 걸어온 길이 바울의 길과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대로 계속 회개하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 저 역시 마지막에는 바울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자 통회와 자책,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제가 사역하는 것, 글귀와 도리로 무장하는 것만 중시하고 생명 진입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음에도 성품이 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겠지요. 저는 제 교만과 무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증오합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진리에 진입하고 성품이 변화될 기회를 많이 놓쳤으니까요. 앞으로 저는 당신의 말씀 속에서 더 많은 진리를 구하고 깨달으며, 저 자신을 더 깊이 인식하도록 하겠습니다.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진리에 진입하고, 진정한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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