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깨달아야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다

2017.12.23

지린성 원원

저는 줄곧 무슨 일을 하든 방법이 적절하고 남들이 보았을 때 패괴 성품을 드러내지 않으면 변화가 생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제가 하는 방법의 옳고 그름을 무척 중시했고,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방식만 맞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책망 훈계를 받을 때는 제가 어떤 점을 잘못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제 어떤 방법이 부적절한지를 짚어 주면 저는 바로 수긍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패괴 본성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 부분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교제하는 자리에서 형제자매님들은 성품이 변화하려면 자신의 본성을 알아야 하는데, 제가 자신의 본성을 잘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저는 자기 본성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교통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행위는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라고 하면, 저는 “네, 저는 교만합니다. 제 본성은 교만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누군가가 “그런 절제함이 없이 방종하는 행위는 사람의 사악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라고 하면 저는 바로 대꾸했습니다. “네, 제 본성은 사악합니다.” 본성을 인식하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모습은 어떤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라고 일일이 외우면 그만이었으니까요! 만약 누군가가 “이것은 어떤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까?”라고 물으면, “교만한 본성, 사악한 본성, 이기적인 본성, 간사한 본성입니다….” 이렇게 일문일답 식으로 채워 나가면 되니 무척 간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이론에만 그치고 깊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신을 인식하는 데 관한 얘기가 나오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교만합니다.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너무나 사악하고,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전에 자신을 인식한 내용에 ‘너무나’라는 단어만 붙이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한층 더 깊어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듯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본성을 알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그저 형식적으로만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마치 앵무새가 말을 배우듯 자신을 인식하는 말만 몇 마디 내뱉을 줄 알았지, 사탄에 의해 자신이 얼마나 패괴되었는지를 마음으로부터 진실로 인식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증오하지도 않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지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설사 하나님께서 아주 호되게 심판의 말씀을 하시더라도 충격은커녕 쇠귀에 경 읽는 격이라 결과적으로 제 성품은 늘 제자리였습니다. 이렇게 우매하고 무감각하고 수준이 떨어지는 저였지만,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저를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를 깨우쳐 주시면서 제가 자신의 본질을 알고 성품 변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며칠 전, 한 형제님과 새로운 접대가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한번은 모여서 교제를 나누다가 접대가정의 자매님께서 과거에 접대했던 형제자매님들에 대한 선입견과 의견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별로 마음에 두지도 않았거니와 자매님과 진리도 교통하지 않은 채 그대로 넘어갔습니다. 그 후 저와 같이 본분을 이행했던 형제님 두 분이 그 집에 와서 며칠 지내다 갔습니다. 형제님들이 떠난 후, 자매님은 또 저희에게 그 형제님들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듣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매님이 한 말씀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대부분은 자매님 혼자 넘겨 짚으시는 거야.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들 사이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도우라 하셨으니 나는 진리를 실천해야겠어. 정직한 사람이 되는 면의 진리에 대해 자매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함부로 남을 추측하거나 의심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려야지.’ 교제를 나누고 이틀이 지난 후, 자매님께서 교제를 하자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매님은 제 어떤 말에 상처를 받고, 또 제 어떤 행동 때문에 힘들었는지,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모두 꺼내셨습니다. 자매님은 말씀 도중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상황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자매님은 의심이 너무 많아. 아무나 의심하더니 이번에는 내 차례네. 이건 아니지. 나에 대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자매님과 확실히 교제해야겠어.’ 저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의 그런 모습이 어떤 성질에 해당하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남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본인의 모습을 확실히 인식하도록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겉으로는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속으로는 수긍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자매님은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속으로는 부정하면서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시네. 그건 거짓이고, 남들을 기만하는 거잖아. 어디가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자매님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는 뜻이야. 여기저기 자꾸 아프신 걸 보니, 스스로 성찰 좀 하셔야겠어.’ 이런 생각을 하니, 또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매님께 어디가 아픈 것은 사람의 패역과 패괴 때문이니, 자신을 반성하고 제대로 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매님의 안색이 변하면서,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드리느라 매번 교제를 해 드렸는데, 자매님은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날 의심하시네. 너무 정직하지 못해! 스스로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난들 무슨 수가 있겠어? 관두자. 나도 이제는 두손 두발 다 들었어. 마음대로 하시라지 뭐.’ 저는 모든 책임을 자매님에게로 돌렸습니다. 자매님은 너무 간사한 사람이고, 저는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 다른 형제자매들을 돕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자 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속으로 자매님에 대해 선입견을 잔뜩 품었고, 자매님 또한 제 교통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저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난 잘못하지 않았어. 자매님의 단점이 보이니 사랑으로 자매님을 도와준 거라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야. 매번 자매님과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어. 내 방법은 틀림없다니까! 게다가 예전에 다른 형제자매를 도울 때에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어. 그러니 자매님한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아. 자매님이 너무 까다로워서 그런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매님이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일종의 죄책감이 들면서 속으로는 자매님을 돕고 싶었지만 어떻게 실천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답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 입술은 비둘기보다도 선량하지만, 네 마음은 옛 뱀보다도 음험하다. 더 나아가 네 입술은 레바논의 여인처럼 아름답지만, 네 마음은 가나안 사람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여인만큼도 선량하지 않다. 네 마음은 너무나 간사하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단번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고, 며칠 동안 제가 했던 행동과 그 뒤에 가려진 생각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께서 다른 형제자매들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셨을 때 저는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저와 아무 상관 없고, 저한테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매님이 저와 친한 두 형제님 이야기를 하셨을 때는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자매님과 교제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님들을 오해하도록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매님께서 제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저에 대한 어떤 불만도 갖지 않도록 자매님께 확실하게 교제해 드릴려고 했습니다. 저는 말끝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매님을 돕는다고 했지만, 사실 진리를 빙자해서 자매님을 굴복시켜 쓰러뜨리고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자매님이 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특히 저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자매님께서 저의 교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안 그래도 힘들어 하는 자매님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더 나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이 아픈 것을 보면서도 동정심은 고사하고, 자매님의 패역으로 생긴 일이기에 반성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드러낸 모습을 떠올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자매님에 대해 일말의 애정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털끝만큼의 이해나 헤아림도 없었으니 이 얼마나 악독한 본성인지요! 자매님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 줄곧 접대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게다가 본분을 더욱 잘 이행하기 위해 본인 돈으로 집을 사면서도 단 한 마디 원망도 없으셨습니다. 평소에 예배나 교제를 자주 못 하시다 보니 생명 진입도 얕은 편이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매일 틈만 나면 말씀을 보셨습니다. 다만 진리를 밝지 알지 못한 탓에 뒤에서 형제자매님들을 판단하고 남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인이 형제자매들에 대해 책임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순하게 내뱉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상상이고 추측인지, 어떤 것이 사실을 과장한 것인지, 자매님은 명확히 분별하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자매님을 전혀 이해하거나 헤아리지도, 자매님의 분량을 살피지도 않고, 자세한 사정이야 어떻든 자매님이 제 이익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강압적으로 자신을 인식하라고 하면서 원리원칙대로 자매님에게 반격했습니다. 제가 그런 목적과 인성으로 그런 행위를 저질렀으니 다른 사람들이 비판하지 못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살아 낸 것은 모두 사탄의 성품 아닙니까? 그제서야 저는 왜 자매님께 진리에 대해 교제해 드려도 효과가 없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제 교통의 출발점이 제 자신을 위해 말하고, 자신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이익이 손해받지만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전혀 입장을 바꿔 자매님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야기한 내용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지는 않을지, 상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지 않을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사탄 본성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상처와 타격만 입혔습니다. 이런 식의 교통으로 어떻게 남에게 유익이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면목은 당연히 사람의 본성이다. 네가 말을 빙 돌려 하는 사람이라면 교활한 본성을 가졌을 것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본성을 지녔다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손쉽게 사람들을 기만할 것이다. 네가 악랄한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이 듣기에는 그럴싸해도 너의 행동은 너의 악랄한 수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네가 게으른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모두 건성과 게으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네 행동은 매우 굼뜰 것이며 또한 상황을 모면하고 진실을 감추는 데 능할 것이다. 네가 이해심이 많은 본성을 지녔다면 너의 말은 아주 합리적일 것이며 네 행동 또한 진리에 부합할 것이다. 네가 누구에게나 매우 충성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분명 진정성이 넘칠 것이다. 또한 너는 착실하게 일을 하여 주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네가 호색하거나 금전을 탐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네 마음은 항상 그런 것으로 가득할 것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넘거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를 항상 기억하고 역겨워하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패괴된 인간이 드러내고 살아 내는 것은 모두 사람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결과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본성은 반드시 밖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필연입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처음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심하며 살피다가, 나중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 상대가 그것을 느끼고 깨닫게 할 것입니다. 만약 제 내면에 자매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면 자매님에게 충분히 마음을 썼을 것입니다. 자매님의 힘든 점을 충분히 헤아리고 자매님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적당한 방식, 적절한 언어와 말투로 자매님과 교제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설령 제가 교제로 자매님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자매님께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탄 본성에 장악된 제 내면에는 사랑이 없었기에 자신만을 위해 말을 하면서 자매님을 지적하고, 꾸짖고, 반성을 강요했습니다. 제 목적, 말, 행동에서 흘러나온 것은 모두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악독한 사탄의 본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에게 상처와 고통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시든 그것은 모두 사랑의 표출이자 사랑의 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말해야만 비로소 가장 좋은 효과에 이를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고심이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역사의 지혜에서도, 하나님 역사의 절차와 방식, 혹은 역사하는 시간의 길이에서도, 정성들여 안배한 계획에서도, 그의 사랑이 그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누구나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바른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자녀의 결점을 발견했을 때, 가볍게 이야기하면 자녀가 듣지 않아서 고치지 못할까 걱정하고, 엄하게 이야기하면 자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자녀가 견뎌 내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의 지배를 받아 이루어지고,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다. 자녀 된 너희는 모두 부모의 사랑을 경험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보살핌도 사랑이지만, 엄한 채찍질도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한 모든 일은 더더욱 사랑의 지배 아래서 행해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전제로 하기에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대충대충 끝내는 게 아니라 정성스레 계획하고 단계적으로 행한다. 시간과 장소, 말하는 어투나 방식에서 모두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나하나가 인류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많은 사람이 시련 가운데서 패역의 말을 내뱉고,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런 것을 따지지 않고, 그것 때문에 어느 누구를 벌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에게 사랑 없이 미움만 있다면 벌써 사람을 정죄했겠지만, 하나님께는 사랑이 있기에 따지지 않고 관용을 베풀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핀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지배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본질은 바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것 역시 사랑입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으로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서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분 사역의 모든 단계와 방식에서, 각자에게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행하시고, 어떤 사람과 일을 배치하시고, 사람을 얼마나 오래 연단하시는지 등에서 나타납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안배와 심혈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사람에 대한 그분의 티 없고 순수한 사랑이 구석구석 스며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패괴와 패역, 대적을 모두 포용하고, 사람과 그런 것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대함과 고상함이 더욱 돋보입니다. 그에 비해 제 내면에는 선량함과 사랑의 성분이 조금도 없고, 마음은 너무나 악독했습니다. 사탄 마귀에 속한 추하고 비열한 인간일 뿐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깨달은 후, 저는 자신이 드러냈던 패괴 성품을 자매님에게 숨김없이 털어놓았고, 우리 사이에 있던 벽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는 제 자신에 대한 인식을 입으로만 떠들었습니다. 말로만 흉내내고, 형식적으로만 인식했을 뿐입니다. 자신이 드러냈던 생각에 근거해 매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잘 포착하고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탄에게 얼마나 깊이 패괴되었는지를 알지 못했고, 진실한 회개와 변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사람의 본성은 사탄의 본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말과 행동, 목적과 생각 할 것 없이 모두 사탄 본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알아야 이에 대한 진리를 찾아 실천하고 진입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점차적으로 성품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과거의 잘못된 체험 방법을 바꾸겠습니다. 더 이상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공을 들이거나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성실하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사람의 본성을 밝혀 주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고, 자신을 진실로 인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구원받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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