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봉사자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의 첫 번째 단계였고, 지금은 정복 사역의 두 번째 단계이다. 정복 사역에서 왜 온전케 되는 것에 대해 말하겠느냐? 앞으로를 위해 기반을 닦기 위함이다. 지금은 정복 사역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 단계가 끝나면 대환난을 겪게 될 것이며,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람을 온전케 할 것이다. 지금은 주로 정복 사역을 하지만 온전케 하는 초기 단계로서 사람의 인식과 순종을 온전케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과 순종 역시 정복 사역을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네가 온전케 되고자 한다면 앞으로의 환난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하며, 다음 단계 사역의 확장을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온전케 되는 것이며,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 온전히 얻어지는 때이다. 현재 정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온전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온전케 되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다. 사람이 온전케 되려면 환난을 겪어야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정복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기반을 갖추지 못한다면, 즉 철저히 정복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 사역에서 굳게 서기 어렵다. 정복되기만 했을 뿐 최종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한 단계의 증거만 한 셈이다. 온전케 되는 것이야말로 최종 목적이다. 온전케 되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사람과 같다. 앞으로 환난이 닥치면 사람의 실제 분량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네 사랑의 순결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든 저희는 다 순종하겠습니다. 또한 저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성품이 더욱 돋보이도록 부각물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대하시든 저주하시든 심판하시든 상관없이 저희는 늘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네게 그저 인식이 조금 생겼음을 의미할 뿐, 그 인식을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네 인식이 실제적인지에 달렸다. 지금, 사람들이 이러한 깨달음과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정복 사역으로 얻은 성과이다. 그러나 온전케 될 수 있을지 여부는 환난이 닥치면 알 수 있다. 그때면 하나님에 대한 네 사랑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순결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너는 “우리는 부각물이자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피조물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도 “저는 봉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패괴 성품에 대해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해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하나님의 지혜를 느낄 수도, 이렇게 큰 구원의 은혜와 복을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네게 진정 이러한 체험과 인식이 있다면 된다. 지금 너는 수없이 많은 말을 인식 없이 내뱉으며 “우리는 부각물입니다.”, “봉사자입니다.”, “우리는 정복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것입니다.” 등의 공허한 구호를 외친다. 그러나 외친다고 해서 실제가 있는 것이 아니며, 네가 분량 있는 사람임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너는 참된 인식을 가져야 하며, 그 인식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
너는 마땅히 그동안 하나님이 했던 말씀들을 많이 보고 또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조해 보아야 한다. 영락없는 부각물일 것이다. 확실하다! 지금 네 인식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느냐? 네 마음과 생각, 처신, 언행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더냐? 너희가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한 패괴 성품 아니더냐? 너의 마음과 생각, 속셈,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패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거룩함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똑같이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조금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고, 똑같이 더러운 세상에서 생활하지만 그는 이성과 식견을 갖추었다. 그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며, 너의 언행과 너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더러운 것까지 모두 발견하고 짚어 줄 수 있다. 오늘날, 네가 지닌 낡은 것들, 교양도 식견도 이성도 없는 모습과 낡아 빠진 생활 방식들을 하나님은 전부 폭로하며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렇게 사역하기에 사람은 그의 거룩함과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너를 심판하고 형벌하여 인식하게 한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훤히 꿰뚫고 있기에 네게서 마귀의 본성이 드러날 때 그것을 짚어 줄 수 있다. 그는 너희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환경에서 살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를 드러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사람의 처세 철학이나 간사함, 교활함은 모두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사람의 육적인 왕래를 증오한다. 그는 사람의 처세 철학은 모르지만 사람이 드러낸 패괴 성품은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폭로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의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가르침을 주는 사역을 한다. 또한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을 심판하며, 그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보여 준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부각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인해 사람의 각종 패괴 성품과 사탄의 모든 추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너를 벌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함을 부각시키는 역할만 하게 해도 너는 스스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더럽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드러낸 것을 대상으로 말씀하며, 사람에게 있는 것들을 다 폭로한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의 지극한 거룩함을 알게 된다. 그는 사람에게 있는 더러움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나아가 사람 마음속의 더러운 생각이나 그의 뜻에 맞지 않는 언행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존재의 더러움도 남김없이 전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럴 때 너는 비로소 그가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며, 사람에게 존재하는 아주 작은 더러움까지 그가 극도로 혐오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은 왜 늘 화만 내십니까? 왜 사람의 연약함을 봐주지 않으십니까? 왜 사람을 조금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 왜 이리도 매몰차십니까? 인간이 얼마나 패괴되었는지 다 아시면서 왜 이렇게 대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죄를 혐오하며 증오하기에 네게 조금이라도 패역이 있으면 그것을 극히 혐오한다. 네가 패역한 성품을 보이는 즉시 그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낀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의 성품과 어떠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 너 자신을 비춰 본다면 비록 그가 사람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누리며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일상을 보낼지라도 사람과는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각물의 의의 아니겠느냐? 사람의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부각하고, 어둠으로 빛의 소중함을 부각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러 너희를 부각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사역의 결과가 나와야 사람의 패역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켜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희가 부각물이 되었기에 하나님이 지닌 공의로운 성품의 자연적 발로를 알게 될 기회도 생긴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패역으로 인해 심판과 형벌을 받았지만, 또 그 패역으로 인해 부각물이 되었고 하나님이 베푸는 크나큰 은혜를 얻었다. 너희의 패역이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부각시켰으며, 너희 또한 패역으로 인해 이토록 큰 구원의 은혜와 복을 얻게 된 것이다. 비록 너희가 수차례 나의 심판을 받았지만 너희는 과거의 어떤 사람도 얻지 못한 큰 구원을 얻었으니 이 사역은 너희에게 크나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따라서 ‘부각물’은 너희에게 있어서도 그 가치가 크다. 너희는 부각물이 됨으로써 구원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 그러니 이런 부각물이 되는 것이 값지지 않겠느냐? 그 의의가 크지 않겠느냐? 너희는 하나님과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살고 더러운 땅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었기에 부각물이 될 수 있었고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다.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가 너희를 긍휼히 여길 것이며, 누가 너희같이 비천한 자들을 돌보겠느냐? 또 누가 너희를 걱정하겠느냐? 성육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또 언제 그 누구도 얻은 적 없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느냐? 내가 성육신으로 임하여 너희를 걱정하지 않고 또 너희의 죄를 심판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진작에 타락해 음부에 떨어지지 않았겠느냐? 내가 자신을 낮추어 육신을 입고 너희 가운데 임하지 않았다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킬 자격이 주어졌겠느냐? 너희가 부각물이 된 것도 다 내가 육신을 입고 너희 가운데 임하여 이 크나큰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더냐? 너희가 이 구원의 은혜를 얻은 것도 다 내가 성육신한 덕분 아니더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너희와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자신이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 지옥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 너희가 형벌과 심판을 받는 이유도 육신을 입고 행하는 나의 사역을 부각시키는 데 있지 않더냐? 부각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없이 합당하다. 그런 역할을 함으로써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대로 부각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일생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너희는 단지 부각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 덕에 여태껏 한 번도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지금 부각물 역할을 하는 것은 너희의 본분이며, 앞으로 누리게 될 영원한 복은 너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상이다. 너희가 얻은 구원의 은혜는 오늘날에 얻은 깨달음이나 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욱 큰 축복이고 영원한 생명의 존속이다. 비록 내가 ‘부각물’이라는 형식을 빌려 너희를 정복했지만, 너희는 이 구원의 은혜와 복이 모두 너희를 얻고자 함이며 너희를 정복하는 것이자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부각물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너희는 자신의 패역 때문에 부각물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누구도 얻지 못한 복을 받게 되었다. 오늘은 너희에게 보여 주고 들려줄 것이며, 내일은 너희에게 얻게 하고 더 큰 축복을 이어받게 할 것이니, 이런 부각물은 무엇보다 값진 것 아니겠느냐? 현재의 정복 사역은 너희의 패역 성품을 부각물로 사용하여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두 번째 형벌과 심판의 절정은 너희의 불결함과 패역을 부각물로 사용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희가 두 번째 심판과 형벌이 임할 때에도 역시 순종한다면 공의로운 성품은 전부 너희에게 공개되고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해, 너희가 정복되는 사역이 끝나는 시점은 너희가 부각물로서의 본분을 완수하는 때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에게 일부러 죄를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다. 너희의 봉사자 역할을 통해 첫 번째 정복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다음은 너희를 부각물로 세워, 다시 말해 너희의 패역을 부각물로 삼아서 두 번째 정복 사역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첫 번째 정복 사역에서 다 나타내지 않은 공의로운 성품까지 전부 공개하여 너희가 이 모든 공의로운 성품과 모든 어떠함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역사의 지혜와 기묘함, 그리고 흠 없는 거룩함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의 성과는 각기 다른 시기의 정복을 통해 이루어지며 또한 서로 다른 수준의 심판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심판이 절정에 달할수록 사람의 패역 성품을 더 잘 드러내고 정복의 성과를 더 잘 거둘 수 있다. 모든 공의로운 성품은 전부 이러한 정복 사역에서 나타난다. 정복 사역은 두 단계로 나뉘는데, 서로 시기와 수준이 다르며 그로 인한 성과 또한 당연히 다르다. 즉, 사람이 순종하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모든 사람을 온전케 되는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정복 사역이 끝나야(두 번째 심판이 최종 결과를 거두어야) 더는 사람을 심판하지 않고, 생명 체험의 정상 궤도로 인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심판은 곧 정복을 뜻하며 정복의 형식이 바로 심판과 형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가장 낙후되고 더러운 곳에 임해야 그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전부 드러낼 수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무엇을 통해 드러나겠느냐? 바로 사람의 죄와 사탄에 대한 심판, 죄에 대한 혐오,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원수에 대한 증오를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 내가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죄와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려는 데 있다. 사람의 간사함과 교활함, 사람의 언행 등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심판받아야 하며, 사람의 패역은 전부 정죄받아야 한다. 심판을 중심으로 말하는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며 사람의 모든 추한 면모를 밝혀냄으로써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함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상징으로, 그의 거룩함이 곧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오늘날 이런 말들을 하는 배경은 다 너희의 패괴 성품을 빌려 말하고 심판하며,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제적인 사역이며,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전히 부각시킬 수 있다. 만약 네게 패괴 성품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네게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나 더럽고 패역한데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의 불의로 인해 너를 형벌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존재는 근본적으로 죄를 미워하지 않을뿐더러 사람과 똑같이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너를 심판하는 이유는 너의 더러움 때문이며, 오늘 내가 네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너의 패괴와 패역 때문이다. 너희에게 위풍을 떨거나 일부러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러운 땅에 태어난 너희가 더러움에 너무 많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정말이지 인격도 인간성도 잃어버려 더러운 곳에 사는 돼지와 다름이 없다. 바로 너희의 이러한 더러움과 패괴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또 너희는 바로 이러한 말씀의 심판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며 거룩한 하나님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거룩하고 공의롭기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그는 인류의 패역을 보고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며, 인류의 더러움과 패괴를 보고 거룩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가 바로 흠 없이 거룩한 존재이자, 또한 더러운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사람과 더불어 더러운 것을 좇는 자라면 그에게는 거룩함의 요소도, 공의로운 성품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불의를 심판할 자격도, 사람을 심판할 자격도 없다. 똑같이 더러운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심판할 수 있겠느냐? 더러운 전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거룩한 하나님 자신뿐이다. 사람이 어찌 사람의 죄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또 어찌 사람의 죄를 볼 수 있겠으며, 사람을 정죄할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사람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면 그가 어찌 공의로운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사람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는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이렇게 해야만 사람에게 그가 거룩한 하나님임을 보여 줄 수 있다. 그가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드러내면 그 어떤 존재도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러운 것은 모두 그에게 심판을 받고,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어찌 명실공히 부각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은 오늘날의 사역과 크게 다르다. 여호와는 그들의 생활을 이끌어 주었을 뿐,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형벌과 심판으로 대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세상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패괴 성품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인은 여호와에게 무조건 순종했다. 제단을 세우라고 하면 즉시 제단을 쌓았으며, 제사장 성의를 입으라고 하면 그대로 따랐다. 그들에게 여호와는 목자와 같았다. 여호와는 그들을 목양했고, 그들을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꼴을 먹였다. 여호와는 그렇게 그들의 생활을 인도하고 그들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때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시기가 아니었다. 당시의 인류는 처음 난 인류였기에 패역과 대적이 매우 적었고 더러움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부각시킬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더러운 땅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 하나님은 더러운 땅에 사는 자들이 드러내는 더러움에 따라 심판하며, 그의 어떠함은 모두 심판 속에서 흘러나온다. 그는 왜 심판을 하겠느냐? 죄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심판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인류의 패역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노할 수 있겠느냐? 그가 조금의 혐오도, 반감도 느끼지 못하고 사람의 패역을 보고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면, 사람과 똑같이 더럽다는 의미가 된다. 그가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더러움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가 혐오하는 것은 모두 그에게는 없는 것들이다. 만약 그에게도 대적하고 거역하는 면이 있다면 자신과 똑같이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를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말세의 사역을 계속 이스라엘에서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가장 어둡고 낙후된 중국이라는 곳에서 말세 사역을 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요컨대 어두운 곳일수록 하나님의 거룩함이 더 잘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이다. 너희는 이제야 비로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와 너희 가운데 서 계시는데, 그가 너희의 더러움과 패역으로 부각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크게 높임 받은 것 아니겠느냐? 사실, 너희가 바로 중국에서 택함 받은 자들이다. 너희는 이토록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는데도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크게 높여 주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나타나 모든 거룩한 성품을 보여 주었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어 너희가 부족함 없이 모든 복을 누리게 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체험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구속,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체험하게 했다. 가장 더러운 너희가 이토록 많은 은혜를 누렸으니 복 있는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높여 주심 아니겠느냐? 누구보다 지위가 낮은 너희는 본래 이렇게 큰 복을 누릴 자격이 없었음에도 하나님은 그것을 깨고 너희를 높여 주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부끄럽지 않으냐?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수치스러움에 자신을 형벌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너를 징계하지도 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네 육은 무탈하겠지만,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너는 지금의 말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형벌한 적이 없다. 비록 말은 엄하게 했지만 사람을 어떻게 대하였느냐? 위로해 주기도 하고, 권면해 주기도 하고, 일깨워 주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이냐? 너희는 내가 한 말을 모두 알아듣고 그 말에 고취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제야 비로소 이 복은 부각물이 되었기에 얻은 것임을, 부각물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복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너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전형적인 부각물입니다.”라고 하면 듣는 이는 “전형적인 부각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네가 “하나님의 사역과 크신 능력을 부각시키는 존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공의로운 성품은 우리의 패역을 통해 부각되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말세 사역의 봉사자이자 부속품, 그리고 도구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계속해서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온 우주의 사역을 이루고 전 인류를 정복하는 사역의 모델이자 표본입니다. 우리가 성결하든 더럽든 어쨌든 우리는 당신들보다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았고, 정복되는 것을 기회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부각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움과 패괴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이렇게 증거할 수 있습니까? 당신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이는 완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큰 약속과 복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이토록 더러운 인간들이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서 부각물의 역할을 할 수 있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또 그들이 “그러면 모델과 표본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너는 “우리는 가장 패역하고 가장 더러운 인간들입니다. 사탄에 의해 극도로 패괴된 존재이며 가장 뒤떨어지고 비천한, 육에 속한 자들이지요. 또한 사탄에게 이용당한 전형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인류 가운데서 가장 먼저 정복되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깨닫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복하심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정복하시기에 우리는 정복된 인류의 모델이자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라. 이것이 바로 너의 가장 훌륭한 간증이며 최고의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