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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 (1)

과거에는 사람의 체험법에 치우친 면이 매우 많았고, 그릇되고 터무니없기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부분에서 사람은 모두 치우치게 겪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상생활에서 현대인의 방식대로 정장 차림을 해도 괜찮고, 현대 예술을 배워도 괜찮고, 여가 시간에 문화생활을 즐겨도 괜찮고, 의미 있는 기념 사진을 찍어도 괜찮고, 독서하며 지식을 배워도 괜찮고, 비교적 좋은 생활 환경이 있어도 괜찮다. 이런 것은 다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생활이지만 사람은 오히려 이런 것을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으로 여긴다. 사람이 실행하는 것은 단지 얼마간의 규례를 지키는 것뿐이어서 사람의 생활이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의의도 없게 되었다. 사실 하나님은 전혀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성정을 단속하려고 영 안에서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머리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을 궁리하고, 눈으로 계속 보면서 이 일을 관찰하고 저 일을 관찰하며, 하나님과 교제가 끊길까 봐 매우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다 사람이 스스로 총결해 낸 것이고, 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에게 정해 놓은 규례이다. 너 자신의 실질에 대해, 너 자신이 어느 정도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른다면, 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가 없고 매우 적절하게 실행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네가 계속 머리를 굴려 어떻게 해야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지를 온갖 방법을 다해 연구하고 모색하다가 결국 너 스스로 너의 진입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 일련의 실행을 총결해 냈기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실행해도 하나님이 너에게 도대체 어떻게 요구하는지를 모르고 마음 편히 자신의 일련의 것을 실행하는데, 효과가 어떠한지를 상관하지 않고 더욱이 치우치고 그릇된 부분이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너의 실행에는 많은 것이 부족할 것인데, 하나님의 칭찬, 성령의 검증, 도달하라고 요구하는 효과, 심지어 또 정상 인성, 정상 사람의 이지와 같은 것이다. 너의 실행은 단지 규례를 지키는 것이거나 일부러 부담을 가중시켜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을 억제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그것이 바로 제대로 실행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너의 그 실행은 대부분이 불필요한 과정이나 의식임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실행해도 성정 변화가 전혀 없고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진입이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야만성을 드러내게 되었고, 심지어 많은 경우에 이지가 없고 인성이 없는 그런 일까지 저지를 수 있었으며, 많은 경우에 또 깊이 생각하게 하고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그런 일까지 저지를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변화된 사람이겠느냐?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도가 이전보다 적어졌다. 왜냐하면 지금은 찾고 구하며 모색하는 시대가 아니라 뚜렷이 나타나는 시대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이고 눈에 보이는 삶이어서 모든 일을 다 사람에게 분명히 알려 주어 더 이상 모색하며 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인 방면, 세속 방면, 생활 방면, 의식주행, 대인 관계에 관해, 또 섬김 방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육체를 배반해야 하는지에 관해… 너희에게 알려 주지 않은 것이 뭐가 있느냐? 굳이 찾고 구할 필요가 있느냐?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 전혀 필요 없다! 네가 굳이 그렇게 한다면 한 가지 절차를 더하는 것이 아니냐? 필요 없다! 관건은 너에게 심지(心志)가 있는지에 달렸다! 어떤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고, 오늘날 세상 풍속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생명에 해롭고 생명 성장을 지체하게 되어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하려고 하고, 게다가 기도로 찾고 구한 후에 하는데, 이것은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을 보면 육체의 누림을 탐내고 돈을 탐하고는 “하나님, 당신은 제가 육체의 누림을 탐하고 돈을 탐하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이렇게 기도하면 합당하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면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이미 작정한 것이기에 기도로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자기의 것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자 하나님에게서 어떤 음성을 듣기 위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독립왕국을 세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속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낯가죽이 너무나 두껍다. 그렇게 행할 때에도 여전히 태연하고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정말로 뻔뻔스럽다! 세상 풍속을 따르는 이 일은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이라고 일찍이 말했는데도 “하나님, 제가 세상 풍속 따르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하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저의 마음가짐은 바릅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의 이름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고, 당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세상 사람들로 다 저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기도한다면 이런 기도는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냐? 너는 부끄럽지 않으냐? 게다가 그것을 귀중한 것으로 여기는데, 너는 가장 미련한 사람이 아니냐? 네가 밝은 삶을 체험하기 싫어하고 일부러 그 흑암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맛보겠다면 고생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 너의 영 생활과 정상 인성의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 방면의 진리를 다 알려 주었으니 네가 모르면 직접 보면 되는데, 또 눈을 감고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 만일 네가 또 하늘을 바라보며 찾고 구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막연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냐? 이전에는 네가 찾고 구하면서 기도하면 그래도 효과가 있었고, 성령이 영 안에서 너에게 얼마의 감동을 주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은혜시대여서 네가 하나님을 볼 수 없었으니 그렇게 모색하고 찾고 구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왔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 네가 하나님을 보게 되었으니 성령은 더 이상 이전처럼 그렇게 역사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천되었고 성령의 역사 방식도 바뀌었다. 지금은 비록 기도가 이전보다 적어졌지만 하나님이 땅에 있음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가 있게 되었다.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로 들어가면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정상적으로 가까이하게 된다. “하나님, 당신은 정말 너무나 좋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몇 마디 간단명료한 말만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마음속의 사랑을 토로할 수 있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사랑이 깊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때는 자신이 패역을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패괴되었습니까?”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몇 대 때리고 싶고, 눈에는 또 눈물을 머금게 된다. 그때 너는 마음속으로 통회하고 괴롭겠지만 또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지금 하고 있는 역사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직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이 너를 특별히 사랑한다고 느끼게 되어 한 가지 특별한 느낌이 있고, 말로 하는 뚜렷한 기도는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늘 하나님의 사랑이 바다처럼 깊다고 느끼게 되는데, 그런 정형은 표현할 수가 없다. 늘 마음속에 느낌이 있지만 적합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이것은 영 안에 자주 있게 되는 정형이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이런 기도와 교제는 그래도 정상이다.

비록 지금은 모색하고 찾고 구하는 생활이 지나갔다고 하지만 사람이 영원토록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사역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편견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의 빛이 되고,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의 길이 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하나님이 땅에 오면 반드시 사람에게 사람의 분량에 적합한 현실의 도와 생명을 가져다주어 누리도록 공급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실행법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지금 모색하고 찾고 구하면서 생활하지 않게 된 것은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고 말씀함으로 사람이 모색하고 찾고 구하는 것을 대체해 사람을 막막한 흑암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에게 밝은 인생이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역사는 밝히 지적하고, 밝히 말하고, 직접 알려 주고, 명문으로 규정하여 사람에게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할 때 어떻게 제물을 바쳐야 하고 어떻게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지를 그들에게 알려 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는 이전에 예수가 떠난 후 사람들이 찾고 찾으면서 생활했던 것처럼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이후의 복음 전도 사역을 너희가 모색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색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너희의 본분을 해야 하는지 모색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증거해야 하는지 땅에 엎드려 찾고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옷차림을 하고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금식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정복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늘의 하나님께 계속 꾸준하고 간절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또 밤낮 끊임없이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전혀 오늘날의 역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내가 일찍이 많은 말을 하였지만 너희는 전혀 보기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너희가 모르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물론, 오늘날 이 시대에도 성령이 여전히 사람에게 얼마간의 감동을 주어 누리게 하고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데, 그것은 너의 삶 속에서 늘 특별히 누리게 되는 얼마간의 느낌이다. 간혹 어느 날, 하나님이 아주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당신의 형상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저는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기 원하고, 자신을 완전히 바쳐 저의 일생을 헌신하기 원합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치기 원합니다. 저로 당신을 사랑할 수만 있게 하신다면…”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 이것은 성령이 너에게 누리도록 준 느낌인데, 깨우침이 아니고 빛 비춤도 아니라 감동이다. 이와 같은 체험은 자주 생기게 된다. 출근하는 길에서도 기도하며 가까이할 수 있고, 그러다가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자신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되어 적합한 장소를 찾아 마음속의 격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공공장소에서도 자신이 누린 사랑이 너무나 많다고 느껴지고, 자신의 출신이 매우 평범치 않다고 느껴지며, 더욱이 자신이 누구보다 더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하나님의 높여주심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깊이 알며, 하나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사랑이 있음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는데, 알 것 같으면서도 표현할 길이 없고, 늘 깊이 음미할 가치가 있으며, 전부 다 표현해 낼 수 없게 된다. 그때는 자신이 어떤 장소에 있는지조차 잊을 정도이고, “하나님, 당신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고 또한 너무나 사랑스러우십니다!”라고 말할 정도가 될 것이다. 어떤 때는 괴상한 동작까지 좀 하게 되어 사람들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게 되는데, 이것은 다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생활은 너희의 체험 중에 너무나 많다. 이런 것은 다 오늘날 성령이 너에게 준 생활이자 또한 지금 너에게 있어야 할 생활이다. 너에게 생활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 바뀐 것인데, 사람이 형용할 수가 없고 표현할 수가 없는 심정이자 또한 사람의 진실한 감정이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이다. 너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깨닫게 해도 아무에게도 그것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네가 말주변이 없기 때문이 아니고 말을 더듬기 때문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네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한 가지 심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로 이런 것을 누리게 하는데, 이것은 너에게 있어야 할 생활이다. 물론, 너의 다른 생활도 공허하지는 않지만 이런 감동은 네 생활의 한 가지 즐거움이 되어 너로 늘 성령의 이런 감동을 누리고 싶게 한다. 하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이런 감동은 너로 하여금 육체를 초탈하여 셋째 하늘에 올라가게 하거나 세계 각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오늘날의 하나님 역사의 의의를 체험하게 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새롭게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다 너에게 오늘날의 하나님 역사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네가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느끼고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이 사역의 목적이다.

찾고 구하고 모색하는 생활은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을 때에 했던 것이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없었으니 찾고 구하고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 너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이 네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모두 직접 알려 주었으므로 더 이상 모색하고 찾고 구할 필요가 없다. 그가 인도하는 길은 진리의 도(道)이고, 사람에게 알려 준 것, 사람이 받아들이게 된 것은 생명과 진리이다. 너에게 길이 있고 생명과 진리가 있는데, 또 계속 여기저기서 찾고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성령이 동시에 두 단계 사역을 할 리는 없다. 만약 내가 말을 다 하였는데도 사람이 여전히 기도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면, 나의 이 단계 사역은 헛되이 한 것이 아니겠느냐? 비록 내가 말을 다 하였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람의 소질이 낮은 까닭이다. 이 문제는 교회 생활이나 서로의 교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전에는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역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성령은 그렇게 하여 사역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때는 성령이 하였고 지금은 성육신 하나님 자신이 하는데, 이것은 성령의 사역을 대체한 것이다. 이전에는 기도하면 사람 안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책망이 있고, 징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 성령이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형이 아주 드물다. 왜 베드로가 기도할 때도 평안한 느낌이나 책망받는 느낌이 있었고, 바울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도해도 그런 느낌이 있었겠느냐? 그것은 그때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지 못했을 때였고 또한 은혜시대여서 하나님의 사역이 달랐기 때문이다. 성령은 시대마다 한 가지 사역만 한다. 만약 동시에 두 가지 사역을 한다면, 즉 육신이 한 가지 사역을 하고 또 성령이 사람 안에서 한 가지 사역을 한다면, 육신이 말한 것은 무효로 하고 반드시 영이 한 것만 유효하다고 인정한다면, 그리스도가 진리, 길, 생명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 자체 모순에 빠진 것인데, 근원이 잘못된 것에 속한다.

지난날 사람의 체험에는 치우치고 그릇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본래는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것과 정상 인성에서 해야 할 것이었고, 혹은 사람의 생활 속에 당연히 있게 되는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착오였는데, 사람이 잘하지 못하고는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한 자매가 집에 손님이 오자 소가 없는 찐빵을 찌게 되었는데 잘 찌지 못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이건 아마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내 허영심을 훈계하시는 걸 거야. 난 허영심이 너무 강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 머리의 정상적인 사유에 따라 볼 때, 집에 손님이 오면 마음이 흥분되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무엇을 하든 순서가 없다 보니 결국 밥을 태우거나 반찬을 너무 짜게 하게 된다. 평소에 손님이 오지 않으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손님이 오면 그렇지 않은데, 그것은 마음이 흥분되어 초래된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은 거기에 ‘하나님 징계’라는 누명을 씌운다. 사실, 그것은 다 인성 생활 방면의 실수에 속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그 방면의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것은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냐? 많은 일은 다 사람의 실수로 착오가 생긴 것이지, 성령이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련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밥을 먹을 때 혀를 씹는 것과 같은데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이겠느냐? 하나님이 징계하는 것은 원칙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네가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저지를 때 징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징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련되고,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사역에 관련된다. 지금 사람이 깨달은 진리만 해도, 어떤 일을 하든 사람 안에 지각은 있다. 예컨대, 네가 교회의 돈을 횡령하고 교회의 돈을 마구 쓰면 너에게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느냐? 그 당시에 너에게 느낌이 있다. 일을 저지른 다음에야 느낌이 있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 자신이 한, 양심에 거리끼는 일도 너 자신이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다. 사람은 모두 자기의 취향이 있어 진리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과 타협하기 때문에 저지른 후에도 별 뚜렷한 책망이 없는 것이다. 저지를 당시에도 징계가 없었는데 그 후에 무슨 징계가 있겠느냐? 돈을 다 썼는데 또 무슨 징계가 있겠느냐? 모두 그 당시에 행할 때 지각이 있고 책망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듣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상관하지 않고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때를 기다렸다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각 사람에게 보응할 것이다. 정상적이고 이지가 있는 사람, 양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할 때, 특히 일을 잘못했을 때 다 지각이 있다. 지금 교회에 돈을 횡령한 사람이 적으냐? 남녀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적으냐? 뒤에서 논단하고, 대적하고, 파괴하는 사람이 적으냐? 왜 너희가 아직 평안 무사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속에 모두 지각이 있고, 느낌이 있고, 책망이 있어 때로는 그로 인해 형벌을 받고 연단을 받지만, 그저 사람이 너무나 뻔뻔스러울 따름이다! 만약 정말로 징벌이 임한다면 사람이 그래도 감히 그렇게 실행할 수 있겠느냐? 양심이 있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양심에 조금이라도 가책을 받으면 평안하지 않기에 육체를 배반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간통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모두 지각이 있지만 정욕이 너무 크다 보니 스스로 억제할 수가 없어 성령이 아무리 징계해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성령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성령이 별로 징계하지 않고, 책망하지 않고, 육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후에 또 무슨 책망이 있겠느냐! 일을 다 저질렀는데, 또 무슨 징계가 있겠느냐! 다만 너 같은 사람이 너무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너무나 저속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너 같은 자는 천한 놈이다! 성령은 쓸데없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네가 진리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협력하지 않고 어떤 일이나 다 저지르니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악한 자와 함께 징벌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너의 가장 좋은 결말이다! 지금 거듭 양심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사람에게 양심이 없으면 바로 성령의 징계를 잃게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된다. 사람에게 정말로 양심이 있다면 성령이 책망할 때 내면에 싸우는 과정이 있게 되어 너무 심각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성령이 어떻게 징계하고 형벌하든, 아무튼 일을 저지를 당시에는 사람마다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금 어떤 진리든 다 깨닫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어떤 희망도 품지 않으니 너 자신이 마음대로 하거라!

어떤 사람들은 함께 모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늘 이 사람이 어떻고 저 사람이 어떻다고 말한다. 물론 어느 정도 분별이 있는 것도 좋다. 그러면 어디에 가든 쉽게 미혹당하지 않고 쉽게 속임수에 빠지지 않게 되는데, 이것 역시 사람에게 있어야 할 한 방면이다. 하지만 너는 이 방면만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소극적인 것에 속한다. 너는 눈길을 늘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지금 너는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하는 방면에 대해 인식한 것이 너무 적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너무나 천박하고, 적극적인 방면의 것이 너무나 적다. 네가 믿는 분은 하나님이고 알아가는 분도 하나님이지 사탄이 아니다. 네가 만약 사탄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악령의 갖가지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의가 있겠느냐? 네가 오늘날 믿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냐? 왜 너의 인식에 이런 적극적인 방면의 것들이 없느냐? 네가 적극적인 방면의 진입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고 파악하지도 않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냐? 너는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를 모르느냐? 너에게 부정적인 ‘교재’는 적지 않지만 적극적인 방면의 진입이 전혀 없으니 너의 분량이 어떻게 자랄 수 있겠느냐? 사탄과 싸우는 것만 말한다면, 이런 사람에게 무슨 발전성이 있겠느냐? 너의 진입은 너무 뒤떨어진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네가 지금의 역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지금 너에게 관건적인 것은 하나님이 오늘날 하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성령 역사를 인식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오늘날 한 모든 말씀에 대해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께 철저히 정복되고 하나님 앞에 순복해야 하는지… 너는 마땅히 이런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진입해야 할 것이다. 너는 깨달았느냐? 사람을 분별하는 것만 중요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사탄을 분별해 내고 저 악령을 분별해 내면서 많은 것을 분별해 내고, 악령에 대해 100% 인식이 있어 악령을 보자마자 알 수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조금도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체할 수 있겠느냐? 내가 전에 일부 악령 역사의 표현에 대해 교통한 적은 있지만 그것이 주요 부분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사람에게 어느 정도 분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우매한 일을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한 방면이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이 단계 역사에 대해 안에 어떤 인식이 있는지, 하나님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느냐? 자기의 부족함과 장비(裝備)해야 할 것을 말할 수 있느냐? 너는 네가 가장 새롭게 진입한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느냐? 너는 이전의 어떤 진입들이 치우치고 그릇된 것에 속하는지, 어떤 진입들이 뒤떨어진 것인지 알아야 한다. 너는 새로운 진입에서 수확이 있고 인식이 있어야지 멍청한 척해서는 안 된다. 너는 새로운 진입에 많은 공을 들여 너 자신의 체험과 인식이 깊어지게 해야 한다. 특히 너는 지금의 가장 새로운 진입과 가장 정확한 체험법을 더더욱 파악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너는 어떻게 너의 그 뒤떨어진 실행법들을 벗어 버림으로 새로운 체험에 진입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너는 더욱이 이런 새로운 역사와 진입에서 너에게 이전에 어떤 뒤떨어지고 치우치고 그릇된 실행들이 있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이런 것은 다 네가 지금 급히 알아야 할 것이자 진입해야 할 것이다. 너는 신구(新舊) 진입의 구별과 연계를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을 파악하지 않으면 너는 자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네가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너의 진입과 체험은 많은 것이 치우치고 그릇된 실행법에 속하고, 많은 것이 뒤떨어진 체험법에 속하였는데, 너는 그런 것들을 다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알아야 한다. 너는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며 교통하는 것을 통해 지난날의 뒤떨어진 실행법과 전통 관념들을 바꾸어 새로운 실행에 진입하고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은 다 네가 해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너 자신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알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진지하게’ 따지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면의 진입과 인식을 ‘진지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네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꼭 너의 진실한 분량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만약 새 역사의 실행과 진입을 체험할 줄 알고, 나아가 과거의 어떤 것들이 너 자신의 관념이나 잘못된 해석이었는지를 분별할 줄 알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너의 진실한 분량이고 네가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은 다 너희들 각 사람이 해내야 할 것이다.

너희는 많은 일에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더욱이 성령이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때에는 네가 일을 할 때 성령께 순복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분명히 보인다. 그것은 네가 먹고 마심을 통해 그 일에 대한 원칙을 이미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네가 속으로 책망받고 평안하지 않게 되는데, 물론 그것은 사람이 진리를 안 기초에서 있게 되는 느낌이다. 사람이 협력하지 않고 오늘날의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은 성령 역사를 가로막는 것이므로 반드시 속이 평안하지 않게 된다. 네가 이 방면의 원칙을 알고도 그렇게 실행하지 않으면 속으로 책망을 받는다. 하지만 네가 이 원칙을 모르고 이 방면의 진리를 아예 먹고 마시지 않아 전혀 모른다면, 이 일에서 너에게 책망이 없을 수도 있다. 성령의 책망이 생기는 것은 다 조건이 있는 것이다. 네 편에서는 네가 기도하지 않고, 성령께 협력하지 않고, 속에 있는 부담을 꺼내 놓지 않아 성령 역사를 지체시켰다고 여기는데, 사실 지체시킬 수도 없다. 네가 말하지 않으면 성령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 말하게 한다. 성령은 너에게 구애받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느끼는 것은 너에게 있어야 할 느낌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별 문제로 여기지 않고 지나간다. 네가 얻을 수 있는지는 다 너 자신의 일이다. 어떤 때는 너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받는 느낌이 있지만 그것은 성령이 그 당시에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준 것이 아니고 성령이 책망한 것도 아니라 사람의 양심적인 느낌이다. 만약 하나님의 이름에 관련되고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사역에 관련되는 일에서 네가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도가 있는데, 성령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일에서는 너를 상관하지도, 상대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네가 양심으로 느껴야 한다. 어떤 것은 인성으로 해야 할 것으로, 정상적인 인성 생활이다. 네가 소가 없는 찐빵을 잘못 찌고는 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엉터리 논법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지 않았느냐? 설마 그때는 사탄이 너를 징계한 것이란 말이냐? 사실 네가 그런 일들을 많이 훈련하면 실수가 생길 정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너의 머리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네가 스스로 성령의 징계인 것 같다고 느낀 것이지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극소수의 특수 상황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그 일은 성령이 한 것이 전혀 아니라 사람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 방면으로 생각하는 것도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을 리가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 그 방면에 공을 들이다 보니 부지중에 그 방면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상 사람의 사유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사람의 정신 작용에 속한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알려 주는데,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는 범위 내의 일이 아니다. 이 방면은 성령이 사람의 사유를 통해 사람에게 정상적인 반응을 준 것에 속한다. 하지만 너는 이것이 성령 역사의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에게 그런 ‘인식’이 있다고 해서 너에게 성령 역사가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너의 인식은 성령의 깨우침에 속하지 않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의 정상적인 사유의 반응일 뿐이지 성령의 깨우침, 빛 비춤과는 전혀 연결시킬 수 없고 서로 별개의 일이다. 그것은 성령이 한 것이 전혀 아니다. 성령이 역사하여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 사람에게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게 하고, 사람의 진실한 진입과 진실한 정형에 대한 인식이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心志)가 있게 하고, 지금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과 사람에 대한 요구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갈 길을 개척하려 하고, 피를 흘리며 희생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하고, 핍박과 환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후회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려는 심지가 있게 한다. 너에게 이런 심지가 있으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역사에 속한다. 하지만 너는 그런 감동이 시시각각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예배드릴 때 특별히 감동과 격려를 받아 크게 찬양하고 춤을 추며, 다른 사람이 하는 교통이 특별히 깨달아지고 매우 새롭다고 느껴질 뿐만 아니라 마음이 환해져 공허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것은 모두 성령 역사에 속한다. 네가 인솔자라면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사역할 때 성령이 특별히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어 참답고, 책임감 있고, 진지하게 사역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 역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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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② 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 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 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⑤ 본분(本分): 피조물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천직.

⑥ 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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