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19)
제12조 하나님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 일, 사물을 제때 정확하게 발견하고 이를 저지 및 제재하여 상황을 전환시키며, 이와 동시에 진리를 교제하여 하나님의 선민이 그 속에서 분별력을 키우고 공과를 배우도록 한다(7)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 일, 사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자에 관한 처리 원칙
우리는 하나님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총 11가지로 나누었고, 전에는 여섯 번째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에 대해 교제했었다. 이 조항은 주로 무엇을 언급하고 있느냐? 함부로 꼬시고 육적인 정욕 관계를 맺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측면에서는 어떤 것들을 교제했느냐? 교회에 이런 부류가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해결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보고도 못 본 체하며 그냥 내버려두어야겠느냐, 아니면 진리 원칙대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느냐? 회피해야겠느냐, 아니면 사랑으로 감화시켜야겠느냐? 진리를 교제해야겠느냐, 아니면 경고하고 제명해야겠느냐?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적절하겠느냐? (경고하고 제재해야 합니다. 만약 제재할 수 없다면 제명해야 합니다.) 어떻게 제재해야겠느냐? 제재하기가 쉽겠느냐?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제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런 상황을 보고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또 말하기는 난처해하고, 어떤 사람은 빙빙 돌려 말하며 일깨워 주지만 당사자가 듣지 않을 수도 있다. 함부로 꼬시는 부류의 인성은 어떻겠느냐? 그런 자가 품행이 바르고 올곧은 사람이겠느냐? 성도의 품위를 갖춘 사람이겠느냐? 존엄이 있고 염치를 아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말로 한번 일깨워 주거나 정상적으로 진리를 교제해 주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일단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사실 그가 마음속으로 이미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통제하기가 쉽겠느냐? 사랑으로 도와주고 감화한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가장 좋은 해결법은 무엇이겠느냐? 다시는 사람들을 교란하거나 해치지 못하도록 이런 부류를 제명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다.
지금도 일부 교회에서는 남녀가 서로 꼬시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함께 시시덕거리고 몹시 방탕하게 구는데, 수치심도 전혀 없다. 듣기로는 어떤 남자가 여러 여자를 꼬셨는데, 진지하게 연애한 것도 아니고 이성만 보면 함부로 꼬시고 들러붙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은 정상적으로 어울린 거예요. 다만 어울리는 방식이 그런 것일 뿐이죠.” 그런 식으로 어울리는 것은 대다수 사람이 보기에 유익하지 않고 반감과 혐오감을 일으킨다. 이는 문제가 아니겠느냐? 이는 그들의 그런 관계가 부적절하다는 증거 아니겠느냐? 만약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데 자신의 본분 이행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본분 이행에까지 지장을 준다면, 그들이 교회 생활 내에서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풀타임 교회에서는 더더욱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제재해도 된다. 그들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고 교회 사역에도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 때 다시 풀타임 교회로 돌아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진지하게 연애하는 게 아니라 함부로 꼬시고 들러붙으며 정욕에 기대 장난치면서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주고 사람들을 교란한다. 이런 상황은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에 속하니 마땅히 원칙대로 해결하고 처리해 즉시 격리하고 제명해야 한다. 이 문제는 처리하기 쉽지 않으냐? 누구도 교회 생활과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되며, 이런 문제는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처분을 내리면 그가 이행하던 본분을 이행할 사람이 없어지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그에게 처분을 내리지 말고 그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꼬시고 싶은 대로 꼬시게 두는 거죠. 그가 어떻게 꼬시든 다 허락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하나님 집에 이런 규정이 있느냐? 지난번 예배 시간에 이런 부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관해 교제할 때 이런 원칙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교회의 리더나 책임자는 머리가 멍해지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그런 자들이 교회에서 함부로 꼬셔 대도록 내버려둔다. 대다수 사람은 그것을 보고 불편해하고 유익을 얻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반감을 갖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고 참아야 한다. 그들은 교회 사역에 그런 자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나님 집에 그런 자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만약 함부로 꼬셔 대는 자들을 내쫓으면 사역할 일손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이 논리가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어느 부분이 옳지 않으냐? (그런 자들은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사역할 마음도 없지요.) 정곡을 찔렀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함부로 꼬셔 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조금도 제약받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은 불신파이자 이방인이다. 그들은 단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또 믿음이 작고 나이가 어리고 토대가 약한 것에 그치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다 함부로 꼬셔 대겠느냐? 다 음란한 짓을 저지르겠느냐? 일부만 그렇다. 그중 소수는 인격과 존엄을 중시하고 체면도 차리며 처신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도 가지고 있다.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런 자들이 이방인만도 못하다. 그러니 그들을 이방인이나 불신파라고 하는 게 지나치겠느냐?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 집에서 힘을 좀 쓸 수는 있지만 본성을 볼 때 그들은 불신파이고 이방인으로, 어떤 일을 하든 원칙이 없고 처신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도, 존엄이나 염치도 없다. 이방인도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는 체면조차 차리지 않으면서 진리를 원할 리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리 있겠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리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그들은 순전히 힘만 쓰고 있는 것이다. 힘만 쓰는 사람은 진리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힘쓰는 것도 역시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에 속하며, 본분 이행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비록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지만 네가 원칙을 아무리 교제해도 전혀 듣지 않는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그들이 설교를 들을 때 보이는 모습이나 표정은 그들의 불신파 본질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들은 설교를 들을 때 반듯하게 자리에 앉아 엄숙하고 진지하게 듣는다. 그런데 그런 자들은 어떻게 듣더냐? 어떤 자는 책상에 엎드려 있고 기지개를 켰다가 하품을 했다가 하며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모습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다. 한 무리 ‘파충류’가 설교를 들으러 온 것을 보면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드느냐?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 무리를 보고 있으면 역겨워진다. 나는 그들을 보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진다. 나는 사람에게 말하지 ‘파충류’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설교를 듣는 자들이 본분을 이행할수록 내적 상태가 좋아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지며 진리를 환히 알게 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아무리 본분을 이행해도 분량이나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든 방탕하고 제약받지 않으며, 육적인 정욕이나 패괴 성품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각도 없고 책망과 징계도 받지 않는다. 이런 자들이 바로 비인류이다! 이 부류가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는지, 어떤 원칙을 위배하여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일을 저지르는지 등은 차치하자.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는 조항에만 근거해도 이 부류를 제명하기에 충분하다. 아주 간단한 일인데, 교회 리더나 책임자는 쩔쩔매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 예전에 교제했듯 이 일은 처리하기 아주 쉽다. 원칙대로 처리해야 하고 제명해야 할 사람은 제명하면 된다. 그리 많이 고민하지 마라. 하나님 집에서는 그들이 없어도 변함없이 사역을 할 수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어디에서 개똥이나 대소변을 발견하면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서둘러 깨끗이 치워야 한다. 제때 치우지 않으면 파리나 모기가 바로 날아오기 때문에 사람이 편안하게 지낼 수 없다. 내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하겠느냐? (교회 안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그 비정상적인 불신파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바로 그런 뜻이다. 만약 교회 안에 ‘역겨운 개똥’ 같은 자들이 있으면 분명 일부 ‘똥파리’를 끌어들일 것이다. ‘역겨운 개똥’을 깨끗이 치우면 그런 ‘파리’는 자연스레 잠잠해진다. 이것이 해결법 아니겠느냐? 이렇게 해결하면 합리적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 일부 교회 리더는 늘 염려한다. ‘함부로 꼬셔 대는 사람을 정리하면 사역하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게 문제가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왜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그런 염려는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그들이 염려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해도, 만약 사람에 대한 요구가 너무 엄격해서 어떤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정리한다면 그 사역을 할 사람이 없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대체하는 것이 쉽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설령 한동안은 그들을 대체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절한 사람이 생겼을 때 다시 사역하면 되니, 하나님 집 사역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는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 만약 회개하고 본연의 일을 한다면 계속해서 사역해도 되지만,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본분 이행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는 합리적이지 않으냐? 하나님 집에서는 힘쓰는 자를 먹여 살릴지언정 불신파나 이방인은 먹여 살리지 않는다. 이 원칙이 옳지 않으냐? (옳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옳으냐? 힘쓰는 자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힘을 쓰며 하나님 집에서 고분고분 착실하게 힘을 들인다. 힘을 들일지라도 그는 충성을 다하며, 최소한 사람이 나쁘지는 않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이어야 남겨둔다. 만약 사람이 나쁘고 이상하며 부정한 수단만 부리는 데다가 힘쓰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힘쓰는 자로서도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이방인이며, 하나님 집에서는 남겨두지 않는다. 따라서 힘쓰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집에서 그들을 남겨두지 않는 게 아니다. 그들은 힘쓰는 것도 기준에 맞지 않고 거래하려 하는 데다가 늘 악을 행하고 교란하려 하며 항상 교회에서 부정한 수단을 부려서 교회 사역의 질서를 교란하려 하기 때문에, 또 대다수 사람의 본분 이행에 영향을 끼치고 교회의 분위기를 망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을 정리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 어디에 ‘역겨운 개똥’과 같은 사람들이 있으면 서둘러 정리해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11.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한다
오늘은 이어서 리더 일꾼의 직책 제12조 ‘하나님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 일, 사물을 제때 정확하게 발견하고 이를 저지 및 제재하여 상황을 전환시키며, 이와 동시에 진리를 교제하여 하나님의 선민이 그 속에서 분별력을 키우고 공과를 배우도록 한다.’에 대해 교제하겠다. 제12조의 열한 번째는 무엇이냐?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것입니다.)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내용은 예전에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을 폭로할 때 어느 정도 교제한 적이 있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교회 선거라는 일에 대해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는 매년 한 차례 선거가 있고 일부 특수 상황에서 하는 선거도 있으며, 각 교회는 하나님 집에서 규정한 원칙대로 각급 리더 일꾼을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선거 규정에는 선거 원칙이 있는데, 어떤 사람을 선출해야 할지를 비롯하여 선거의 방식이나 방법, 선거 때 형제자매가 알아야 할 여러 주의 사항이 담겨 있다. 물론 매번 선거 전에 각급 리더 일꾼은 선거에 관한 여러 측면의 원칙을 교제해 하나님 선민들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선거의 성과가 좀 더 좋아진다. 선거의 세부 내용에 관해서는 교제하지 않겠다. 오늘 교제하려는 주요 주제는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모습들이다.
1)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모습
교회 선거에서는 반드시 하나님 집에서 규정한 선거 원칙을 엄격히 따라 리더 일꾼이 되기에 가장 적절한 인선을 선출해야 한다. 만약 선거 원칙을 위배해 또 다른 선거 방식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바로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의 소행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반드시 그런 규정 위반 행위를 금지해야 할 뿐 아니라 선거를 조작한 주요 인물을 조사하여 처분을 내려야 한다. 교회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이 드러나며, 사람의 여러 마음가짐도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리더로 뽑히려고, 혹은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이 리더로 뽑히게 하려고 뒤에서 온갖 허튼수작을 부린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리더로 뽑혀서 자기 지위에 위협을 가할까 봐 그들이 어떤 연약함을 가졌었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었는지 뒤에서 있는 힘을 다해 판단하며, 그들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졌다고 정죄하는 등 그들을 낙선시키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리더로 뽑히기 위해 선거 기간에 좋은 물건들을 사서 뇌물로 사람을 매수하거나 듣기 좋은 말로 약속을 내걸고, 누구를 뽑으라거나 누구를 뽑지 말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부추기기도 한다. 그들이 어떤 방식이나 수단을 쓰든 모두 선거를 조작하고 선거 결과를 좌우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회에서 선거의 원칙을 거듭 교제하며 인성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형제자매가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 수 있는 사람 등을 뽑으라고 해도 그런 자들은 귀담아듣지 않은 채 허튼수작만 부리려고 한다. 허튼수작을 부린다는 건 무슨 뜻이냐? 늘 부정을 저지르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평가할 때 항상 공식 석상에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고, 늘 뒤에서 허튼수작을 부리거나 음모와 계략을 쓰려고 한다. 심지어 선거 때 누구를 뽑아야 하고 누구를 뽑지 말아야 하는지 뒤에서 계략을 꾸미며 사람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도록 한다. 이런 것들이 허튼수작 아니겠느냐? 부정을 저지르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게 광명정대하게 진리 원칙대로 선거를 지키는 것이냐? 아니다. 그는 선거를 조작하려고 사람의 계략이나 수단을 쓰는 것이다. 그가 선거를 조작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선거의 결과를 조작하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당선되길 원하고, 만약 당선될 수 없다면 누구를 당선시킬지 자기가 결정하려고 뒤에서 허튼수작을 부린다. 그는 교회의 사역이나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은 염두에 두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나 형제자매의 이익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그 자신의 이익만 고려한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의도나 욕망을 최우선시한다. 그럼 그는 왜 선거를 조작하려고 하겠느냐? 만약 정말로 형제자매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진리 실제로 이끌고 싶다면 그렇게 하겠느냐? 그런 야심을 품겠느냐? 그런 모습을 보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오직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거나 야심과 욕망을 품은 사람들만이 교회의 선거를 조작하려고 할 때 그렇게 행동한다. 그들은 교회에서 자신들과 비교적 마음이 맞는 사람이나 관점이 일치하고 같은 의도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또 평소에 연약하고 잘 추구하지 않으며 어리석고 우매하여 쉽게 좌우되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구슬려 하나의 세력을 만든 다음 교회의 선거 사역을 교란한다. 그들이 교회에 대항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들이 그들을 선출하게 하고, 선거 결과를 자신들이 직접 결정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뽑으려는 사람은 그들이 미리 정해 놓은 사람,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뽑히면 그들의 음모는 실현된다. 그럼 그 선거 결과는 올바르겠느냐, 아니면 잘못됐겠느냐? (잘못됐을 것입니다.) 잘못됐음이 틀림없다. 악인이 조작한 선거에서 선출된 사람은 분명 악인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왜 악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하겠느냐? 악인이 교회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제멋대로 못되게 굴 수 있으며, 누구도 감히 폭로하거나 제재하지 못하고, 그들이 제명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배척당하고 억압당해 교회가 악인의 천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악인에 의해 조작된 선거의 최종 결과는 분명 올바르지 않고 민의와 원칙에 위배될 게 뻔하다. 이런 부류가 선거 때 보이는 모든 행동과 하는 일에 대해 교회 리더와 형제자매는 어느 정도 알아차리고 경계해야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낌새를 발견하면 즉시 조치를 취해 그들을 제재해야 하고, 제재받지 않는다면 격리해야 한다. 그런 자들은 특히나 난폭하고 제약받지 않으며 통제하기 어렵다. 선거를 교란하고 선거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분명 뒤에서 허튼수작을 부리고 수많은 말을 하며 숱한 일을 저지를 텐데,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 일은 처리하기 쉽다. 교회 리더가 문제를 발견했다면 그 일을 폭로하고 공개하여 형제자매가 그 일의 심각성과 결과 그리고 그런 일의 성질이 과연 무엇인지 교제하게 한 뒤 마지막으로 방법을 취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겠느냐? 누가 뒤에서 늘 허튼수작을 부리며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고 한다면 사정을 봐주지 말고 그의 선거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그의 한 표는 무효라는 뜻이다.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일에 여러 명이 가담했다면 그 여러 명의 투표도 무효이며, 그들을 선거에 참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미혹되거나 교란된 자가 어떤 사람이든 선거를 조작하는 자의 행동 방식을 따르고 악인과 한통속이 되어 일부러 선거를 망친다면, 하나님 선민들은 일어서서 그들을 폭로하고 그들의 선거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교회의 사역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너는 제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 하나님 집의 선거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려는 것 아니냐? 네가 결정권을 갖는 것은 사탄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 집이나 교회는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이므로 사탄이 결정권을 갖게 할 수 없다. 네가 허튼수작을 부리고 고의로 이번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한다면 처리하는 건 쉽다. 네 표를 무효로 하면 네가 누구를 뽑든 소용이 없고 너의 어떤 의견도 인정되지 않는다. 네가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고집해도 소용없다. 하나님 집에는 행정 법령과 규정이 있으며, 네 이번 선거 자격은 박탈되고 취소된다. 다음 선거 때도 이렇게 교란한다면 선거 자격이 철저히 박탈될 것이고, 절대 다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선거에 참여해 허튼수작만 부리며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부류는 마땅히 이렇게 처리해야 한다.
교회 선거 때만 되면 일부 악인이 행동을 개시하려고 준비한다.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허튼수작을 부려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과 리더 자리를 두고 경쟁하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다툰다. 심지어는 혈기를 부리거나 폭력을 쓰려 하고, 싸우려고 해서 형제자매가 누구 말을 들어야 하고 누구를 뽑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선거 때도 그는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자신이 교회 리더로 뽑히면 어떻게 사역할지, 어떤 길과 생각, 계획이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방의 단점을 폭로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기만 하며, 동시에 일부 사람들을 끌어들여 다른 사람들과 대립시켜 교회에 분열 상황을 만든다. 이런 선거는 무엇이 되겠느냐? 교회를 분열시키는 선거가 된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교회가 분열된다. 이게 선거 때 나타나야 할 현상이겠느냐? 정상적인 현상이겠느냐? 아니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되고 부담이 있으며 그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 집의 원칙대로 선거에 참여해도 된다. 물론 자신의 장점과 강점을 말하고 자신의 인식과 체험을 교제하여 형제자매가 네게 승복하고 너를 신뢰하며 교회 리더의 사역을 네게 맡길 수 있게 해도 된다. 그러나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당선 목적을 이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들을 미혹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가 쉽다. 분량이 작고 분별력이 없는 형제자매는 네게 쉽게 미혹되어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게 될 것이고, 교회 역시 교란되어 아수라장이 되고 사분오열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탄에게 파고들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요컨대, 원칙대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늘 야심과 욕망을 품은 채 비열한 수단으로 자신의 당선 목적을 이루는 것은 모두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성질이고 부당한 선거 행위이다. 물론, 적절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으므로 이것과는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이 복음 사역이나 문서 사역, 사무 사역 등 교회의 여러 사역을 어떻게 잘 하는지, 혹은 어떻게 교회 생활을 잘 영위하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관한 어려움을 해결하는지 등을 교제하는 것은 모두 적절하다. 적절하게 자신의 관점이나 인식, 자신이 교회 사역을 하는 사고의 방향이나 계획 등을 밝히는 것은 다 정상적인 말과 행동에 속하며, 교회에서 규정한 선거 원칙에 부합한다. 이런 것 외에도 선거 기간에 특히 명확하게 드러나는 기타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는 다들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경계하고 분별해야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 늘 일이 바쁘다는 둥, 집안일이 많다는 둥, 상황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둥 핑계를 대며 본분도 이행하지 않고 교회 생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리더를 선거할 때가 되면 그런 어려움은 다 사라지고, 특별히 공들여 치장하고는 선거에 참여한다. 오랫동안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다가 교회 선거가 있다는 중대하고 기쁜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 달려온다. 그가 무엇을 노리기 위해 오겠느냐? 선거와 교회 리더라는 자리, 즉 이 ‘관직’을 노리기 위해 오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일을 처리할 때 특히나 교활해서 자신이 교회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고 누가 의심할까 봐 선거에 관한 일은 언급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자 자신의 인식이나 체험을 교제하는 데만 중점을 둔다. 또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고, 자신의 체험 간증을 나눈다. 사실 그는 평소에 교회 생활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진리도 거의 교제하지 않으며 이렇다 할 체험적 인식을 얘기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오면 전과 달리 교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데다가 앞다투어 기도하고 찬양을 부르고 교제하는 등 특히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고 눈에 띄게 행동한다. 예배가 끝나면 기회를 틈타 형제자매와 수다를 떨고 인맥을 쌓는데, 교회 리더를 보면 “요즘 혈색이 별로 좋지 않으시네요. 저희 집에 대추가 있으니 좀 가져다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아무개 자매를 보면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제가 옷을 좀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그는 예배 때마다 평소와는 크게 달리 유독 적극적이다. 예전에는 예배 시간에 가끔 와서 얼굴도장이나 찍었고, 누가 예배에 참석하라고 하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는데, 선거 때가 되자 갑자기 튀어나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한다. 매번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가 선거에 관한 사항과 관련 원칙을 교제하는데, 당연히 그도 참여한다. 그리고 참여하는 동안 안간힘을 다해 형제자매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고, 몇몇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쓴다. 심지어 형제자매 앞에서 여러 차례 헌금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한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지 한참 됐지만 헌금하는 법이 없더니, 이번에는 왜 저렇게 통이 클까? 설마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어 돌아선 걸까?’ 무지몽매하고 일을 판단할 줄 모르는 일부 사람들은 그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예전에는 그를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저 사람은 집안 형편도 좋고 연줄도 있으니 만약 교회 리더가 되면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나 추적당해 어려움을 겪는 형제자매를 접대할 때도 해결법이 생기지 않겠어요? 계속 저렇게 적극적이면 정말 좋겠지만 그가 지속할 수 있을지, 우리 교회 리더가 되고 싶어 할지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미혹되고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느냐? 그가 한 모든 일이 초기 성과를 거둔 것 아니겠느냐? 벌써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고 곧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게 그가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밖에도 그는 이 사람에게는 옷 두 벌을, 저 사람에게는 채소 한 바구니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 보조제를 선물하는 등 모두를 챙겨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저 사람이 교회 리더가 되면 그야말로 좋은 목자가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기대고 싶어 하는 대상이 되지 않을까?’ 이러면 시기가 무르익은 것 아니겠느냐? 형제자매들이 쉽게 이 부류를 뽑지 않겠느냐? 그는 소양도 있고 언변도 좋으며 사회에서 지위도 있다. 그는 교회의 형제자매가 체포될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들을 보호할 수 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형제자매가 있으면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으며, 교회 사역에 일손이 부족할 때도 손을 내밀어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저 사람은 원래 추구하지도 않고 한참 동안 예배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더니, 선거 때가 되니까 급히 몇 번이나 예배에 참석하고 있네. 리더로 뽑힌다면 그가 진리를 깨달을까? 진리는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사람들을 지켜 주거나 사람들에게 이득을 줄 뿐이라면,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해 줄 수 있을까? 그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확실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야.’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그가 주는 이득에 감화되거나 포섭된 사람들도 있다. 이는 아주 위험한 상황 아니겠느냐? 그가 한 표만 더 얻으면 당선될 수도 있다. 최종 선거 결과가 어떻든 이 부류 사람의 행위와 모습이 적절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꼭 필요한 때에 베풀고 헌금하며 형제자매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사하는 형제자매를 위해 차를 제공해 주고, 집에 돈이 부족한 형제자매에게는 돈을 빌려주며, 휴대폰이 없는 형제자매에게는 휴대폰을 사 주고, 컴퓨터가 없는 형제자매에게는 자신의 컴퓨터를 주는 등 꼭 필요한 때와 중요한 순간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행위냐? 리더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이런 일들은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일찍도, 늦게도 아니고 하필 리더를 선거할 때 나타난 것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뻔하디 뻔하다. 여기에는 분명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는 양심이 깨어나서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의 목적은 교회 리더 선거에 입후보하는 것으로, 교회의 책임자가 되어 교회와 하나님 선민을 조종하려는 것이다. 그가 그들을 위해 일을 처리해 주려고 그들을 조종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는 무엇을 하려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선민과 교회를 통제하려는 것이고, 교회에서 지위를 하나 얻고 관직에 올라 결정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수단이나 행동 방식은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 선거 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득표수가 부족할까 봐 자신에게 투표한다. 듣기에 가소롭고 기이하지 않으냐? 자신에게 투표하는 것은 어떤 성질이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겠느냐, 아니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모습이겠느냐, 아니면 야심이 너무 큰 모습이겠느냐? 모두 해당한다. 그는 뽑히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자신에게 투표하는데, 이는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그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리더가 되려 하고, 남들이 뽑아 주지 않자 스스로 자신을 뽑다니,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또한, 그는 야심이 너무 커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파렴치한 데다가 인격도 존엄도 없다. ‘나를 안 뽑으면 안 돼. 나는 꼭 교회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리더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교회 리더가 되거나 관직에 오르려 하고, 지위를 얻어야만 흡족해하며 마음 편하게 사니, 야심과 욕망이 얼마나 크냐! 그는 지위를 몹시도 사랑하며, 하나님을 믿는 것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이다. 리더가 되면 무슨 장점이 있겠느냐? 만약 지위의 복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지위가 가져다주는 모든 특혜를 누리지 않는다면 과연 그 지위를 소중히 여기겠느냐? 스스로에게 투표하겠느냐? 야심과 욕망이 그토록 크겠느냐? 지위를 그렇게나 애지중지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는 늘 선거와 관련된 일에서 수작을 부리고 공을 들이며 어떤 비열한 짓도 저지르려 한다. 설사 자신도 속으로는 그렇게 하면 면목이 없고 광명정대하지 않으며 품위가 좀 떨어진다고 느낄지라도 고민 끝에 이렇게 생각한다. ‘상관없어. 일단 리더로 뽑히는 게 중요하지!’ 이게 바로 염치를 모르는 것이다. 그는 또 민주 국가에서 선거할 때 토론하는 방식을 모방해 서로 약점을 들추고 판단하고 공격하며 설전을 벌이는 선거 방식을 교회 선거에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적용할 곳을 잘못 선택한 것 아니겠느냐? 만약 교회에 와서 부정한 수단을 쓰며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한다면, 말하건대 너는 잘못 찾아왔다! 여기는 하나님 집이지 사회가 아니다. 누구든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면 정죄받지 않는 자가 없다. 교회에서는 어떤 이유나 핑계, 어떤 방식으로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고 하든 다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부 악행, 그것도 영원한 악행이다!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 정죄된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 집의 일원이나 형제자매로 인정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탄의 종으로 규정된다. 사탄의 종은 어떤 일들을 하느냐? 그들은 하나님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들만 한다.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이런 사람들은 부정적인 역할을 맡아 사탄의 종이 하는 일을 한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하든 이들은 나서서 교란하고 망치려 하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과 규정, 하나님의 행정 법령은 안중에 없고 하나님은 더더욱 안중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제멋대로 굴려 하며 교회의 여러 사무, 나아가 교회 사람들을 조종하려 하며, 심지어 교회의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한다. 어떤 경로로 교회의 인사를 조종하려 하겠느냐? 기회를 노려 교회의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한다. 이들 사탄의 종에 의해 조작되고 교란되면, 그 선거는 실패한 것이다. 사탄의 종이 목적을 달성해 교회의 리더가 되면 그 선거 결과가 옳겠느냐, 아니면 그르겠느냐? 당연히 그르다. 마땅히 진리를 교제하고 교훈을 종합해 다시 선거해야 한다.
2) 교회 선거를 조작하는 악인에 대한 처리 원칙
악인이 선거를 조작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다시 선거를 진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럼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선거 결과를 뒤엎고 다시 선거해야 합니다.) 그것도 방법 중 한 가지다. 해당 선거가 악인에 의해 조작된 내막을 공개하고 알려 그 선거 과정이 어땠는지, 선거 결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두가 알게 해야 하고, 내막을 알고 난 뒤에는 해당 선거의 결과를 부정하고 다시 선거해야 한다. 이런 선거는 대다수의 하나님 선민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누가 뽑히든 소용없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진리를 교제하고 내막을 폭로함으로써 해당 선거 결과가 부정되며, 다시 선거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특수한 상황이 있는데, 해당 선거 결과가 사탄의 종에 의해 조작되었고 뽑힌 사람은 결코 사역을 할 수 없는 꼭두각시임을 몇몇 사람이 알게 될지라도, 교회의 대다수 사람은 악인에게 미혹되어 사탄의 종 편에 선다. 오직 소수만이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고 그 내막을 알게 되지만, 누구에게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또 그 소수는 세력이 약해서 그런 국면을 전환할 힘이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가 조작된 내막을 폭로하려 해도 명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럼 윗선 리더 일꾼에게 보고하는 것 외에 또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 만약 계속 교회 생활을 한다면 따돌림을 당할 것이고, 다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거기서도 아무렇게나 낯선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선출된 교회 리더가 인성이 나쁜 마귀이고 교회 리더로 뽑혀서는 안 되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너는 그를 볼 때마다 화가 날 것이다. 예배에 참석하자니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참석하지 않아서 교회와 관계가 단절되면 교회 생활을 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은 없겠느냐? 지혜가 필요하다. 만약 경솔하게 그들을 폭로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그들은 한패가 되어 너를 억압하고 쫓아낼 것이고 여차하면 너를 제명할 수도 있다. 그럼 너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럼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분별력이 있는 형제자매와 연합하여 그자들이 밀실 조작으로 선거를 조작한 악행을 모두 수집한 다음 윗선의 리더 일꾼에게 보고하는 한편, 미혹된 형제자매에게 조속히 진리를 교제해 그들을 구해 내야 합니다.) 이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일을 할 때 서둘러서 되겠느냐? 서두르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괜히 잘못 건드려 상대방의 경계심만 높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일이 닥치면 너희는 두렵거나 긴장되느냐? 두려워하거나 긴장해야겠느냐? (그래선 안 됩니다.) 네 이성은 네게 도리대로라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실제 상황은 어떻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달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의지만 있다면 속으로 여전히 두려워할 것이다. 두려울 때는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 하든 성과를 내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두려울 때는 어떤 내적 상태에 놓여 있겠느냐? 그들의 세력을 두려워하고, 네가 그들을 분별하고 속으로 그들을 경계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챌까 봐 두려워하고, 너는 그들과 한패가 아님을 그들이 알아차리고 너를 억압하고 배척하며 교회에서 제명할까 봐 두려워한다. 너는 마음속에 이런 염려가 있을 것이다. 이런 염려가 있을 때, 그런 자들과 함께 지내거나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형제자매가 분별력을 갖고 미혹되지 않도록 그들의 악행을 폭로할 지혜, 용기,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적절하겠느냐? 두려울 때는 연약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겠느냐? 우선, 너는 연약하고 수동적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리 크지 않을뿐더러 ‘저 악인들은 결국 목적을 달성했어. 지금 이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왜 나밖에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나?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진실을 말하면 그들이 나를 믿어 줄까? 믿지 않으면 나를 폭로하지 않을까? 나는 혼자고 힘이 없는데, 그들이 다 같이 나를 상대한다면 그 악인들이 온갖 핑계를 찾아 나를 제명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염려가 있지 않겠느냐? 이런 염려가 있을 때 그들과 어떻게 대응해야겠느냐? 어떻게 해야 가장 적절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그들과 지낼 수 있겠느냐? 이때 너는 아무런 방향도, 길도 없지 않겠느냐?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두렵고 연약할 때 네게는 그들을 상대하고 그들과 지내고 그들의 문제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그럼 이때 네게 가장 좋은 행동 방식은 무엇이겠느냐? 능동적으로 공세를 취하고 맞서 싸우며 그들의 악행을 폭로해 자신을 보호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겠느냐? 이 방식이 적절하겠느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 적절하지 않겠느냐? 너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고,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도 못했으며, 어떻게 그들을 폭로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미혹된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여 돌아설 수 있을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여러 측면의 일을 다 알지 못하고, 네게 가장 유리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어느 정도까지 소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너는 지금 연약하고 두려워하는 상태이며, 속으로 염려하는 바가 많다. 그런 염려가 적절하든, 아니면 연약함과 두려움 때문에 생겨났든 결국 그건 사실이다. 그런 사실이 발생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속아 넘어간 사람들에게 선거의 진실을 서둘러 폭로하지 말고, 선출된 교회 리더나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한 자들과 서둘러 대립하지 말며, 그들을 폭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너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는 건 너무 수동적입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라고 묻는데,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구해라. 이런 환경에서, 가장 두렵고 연약할 때 네 기도는 가장 진실하고 가장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필요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것이다. 기도하는 과정에서 네 두려움은 점차 줄어들고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연약함도 줄어들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 염려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그런 두려움과 연약함, 염려는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네가 점차 어떤 일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들을 깨닫겠느냐? 그런 자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누구를 먼저 폭로해야 할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나님 집 사역에 이로울지 알게 되는 한편, 그런 자들의 행위가 어떤 성질인지 알게 된다. 그런 일들을 어떻게 깨닫겠느냐? 기다리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하면서 점차 깨닫게 된다. 그 일을 꿰뚫어 보게 되면 어떻게 지혜를 운용해야 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적절할지, 어떻게 말해야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에게 악인이 선거를 조작한 실정을 알려 그를 돌아서게 할 수 있을지, 그가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사람의 낯짝을 분별하게 할 수 있을지, 선출된 소위 리더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게 할 수 있을지 자연스레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지혜가 생기는 동시에 절차 있게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런 긍정적인 수확은 어떻게 얻겠느냐? 모두 기다리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베푸는 것이다. 일부는 성령이 역사하여 깨우쳐 주고, 일부는 하나님이 네가 말씀 속에서 보고 깨닫게 한다.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싸움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느냐? 사탄과 싸우든, 사탄 종의 악행을 폭로하든, 사탄과 어떻게 싸우든 간에 너 자신이 강인해야 하고 진리 원칙을 깨닫고 사탄과 악인의 본질 및 악행을 꿰뚫어 본 다음 그를 폭로해야 한다. 그래야 결국 좋은 결과를 맺는다. 이런 것을 깨달으면 너의 두려움과 연약함, 염려는 그렇게 강렬하지도, 뚜렷하지도 않게 되지 않겠느냐? 너는 더 이상 그렇게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서서히 변화할 것이고, 너는 자신이 처음에 일이 막 발생했을 때처럼 그렇게 연약하지 않고 그때보다 좀 더 강인해졌다고, 자신감이 생겼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느낄 것이다. 이때 다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좋은 기회를 예비해 달라고 구한 다음 행동을 개시하면 된다. 윗선의 리더 일꾼에게 보고하는 한편, 인성이 좋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해 속아 넘어가고 미혹된 사람들을 찾아 교제하여 악인이 선거를 조작한 내막을 폭로해라. 그런 사람들을 한두 명 얻고 나면 네 마음속 두려움은 대체로 사라질 것이고, 이 모든 일을 할 때 사람의 힘에 기대서는 안 될 뿐 아니라 혈기나 순간적인 충동, 분노에 기대서도, 일시적인 소위 정의감에 기대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소용없다. 하나님은 네게 시간을 예비해 주고 네가 해야 할 말을 깨우쳐 주며 네가 깨달은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길을 마련해 줄 것이다. 초반에 연약함이나 두려움을 느끼다가 원칙과 길을 구하여 깨달을 때까지, 그 기간에도 너는 그들과 정상적으로 함께 지낼 수 있다. 정상적으로 함께 지내는 동안 사람의 뇌는 텅 비어 있지 않고, 모두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너는 구하고 기도하면서 그 사람들을 관찰할 것이다. 무엇을 관찰하겠느냐? 그들이 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그들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 살필 것이다. 만약 그들의 말이 옳고 교회의 사역 원칙에 부합한다면 들어도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다면 핑계를 찾아 듣지 않거나 미루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도 된다. 다만 괜히 잘못 건드려 상대의 경계심을 높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동시에 그들의 악행을 수집하고, 진리 원칙을 위배하는 그들의 온갖 행동 방식과 황당한 이론을 근거로 그들을 분별하면, 그들이 사탄의 종임을 한층 더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그들에게 속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본분도 이행할 수 있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다. 인성과 지혜가 있고 진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바른길에 오를 수 있다. 지혜가 없는 데다가 행동이 거칠고 서툴다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환경에 임하든 늘 혈기나 감정에 휘둘린다면, 그런 사람은 일 처리 성과가 별로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불필요한 골칫거리와 성가신 일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반면,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기다리고 관찰하고 구한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안배와 배치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 원칙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혈기에 휘둘려 남들과 싸우고 설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로 아름다운 싸움을 하며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
악인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일이 닥치면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사람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지, 그 사람들을 어떻게 폭로할지가 아니라 제때 윗선에 보고하고 지혜를 적용해 그들을 상대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 원칙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본분 이행도 지체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결국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게 된다. 윗선에 보고하고 답을 구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너 스스로도 식견이 넓어지고 분별력이 커지며 지혜도 쌓이고 분량도 자라는 데다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커진다. 사탄과 한 번 겨루고 나면 사람은 무수히 많은 것을 얻게 되며, 사람에게 이로운 점이 많다. 반대로 혈기나 감정에 기대어 일을 처리하고 그런 자들과 크게 싸우고 직접 맞서며 “당신들은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고 있어요. 당신들 세력이 크지만 저는 불복할 거예요. 당신들이 두렵지 않다고요!”라고 말한다면 결국 그런 자들에 의해 교회에서 쫓겨날 것이고, 집에서 훌쩍이며 몇 개월간 고통받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지? 하나님, 이제는 저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저를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건가요?’ 몇 개월간 새로운 설교나 찬양을 듣지 못하고,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하려는지도 알지 못하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한 채 완전히 고립되어 철저히 어둠 속에 빠진다. 매일 울거나 걱정만 할 뿐 그 환경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거나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복잡한 일 속에서 진리 원칙을 구하는 법은 더더욱 배우지 못하고, 지혜는 조금도 자라지 않는다. 몇 개월간 울다가 어느 날 드디어 누군가 그를 교회로 받아들여 그동안의 체험을 얘기해 보라고 하면 그는 울면서 하소연만 한다. “너무 억울해요! 저는 교회를 교란하는 사람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에요. 악인에게 모함을 받은 거라고요.” “그럼 그동안 어떤 공과를 배웠나요? 무슨 수확이 있었나요?” “무슨 수확이 있겠어요? 그들은 저를 격리시키고 하나님 말씀 책과 찬송가 책을 다 거두어 갔어요. 저는 설교도 듣지 못하게 됐고요.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말이나 좀 하거나 기억나는 찬양 몇 곡을 가끔 불렀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요. 다행히 하나님께서 시간을 예비하시어 저를 다시 찾아 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나가서 장사로 돈이나 벌려고 했을 거예요. 어쨌든 구원받을 희망은 사라졌고 하나님께서도 저를 원하지 않으시니 저도 계속 믿을 수가 없었어요. 마음이 완전히 어두워진 거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양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시지 않을 거예요.”라고 결론짓는다. 그토록 크고 특별한 일을 겪고도 고작 그런 것들을 얻었으니 좀 가련하지 않으냐? 그래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그토록 큰 일이 닥쳤는데 공과도 배우지 못하고 지혜와 믿음도 늘지 않았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만 사탄 마귀나 적그리스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믿지 않게 될 뻔했으니 그럼에도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겠느냐? 이는 못난이가 아니냐? 집에서 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눈이 멀도록 운들 소용이 있느냐? 적그리스도를 해결할 수 있느냐? 상대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너는 결국 “하나님의 양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시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지혜도 없고, 일을 처리하는 데 절차도 없으며, 하나님이 준 방법대로 하나님에게 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로 사탄과 싸울 줄도 모른다. 평소에 얘기하던 그깟 도리는 전혀 쓸모가 없고, 그런 일이 닥치면 울거나 억울해하고 원망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못난이다. 못난이는 흔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그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첫째는 우는 것, 둘째는 억울해하는 것, 셋째는 속으로 원망하는 것이다. 그는 또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어째서 저를 신경 쓰지 않으시죠? 저는 사탄에게 처참히 당해서 계속 살아갈 수가 없어요. 어서 저를 구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한다. “너는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못난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뭘 두려워하느냐! 사탄이 뭐가 두려우냐?” 사탄이 어떤 음모와 계략을 가지고 행동하든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고 진리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는데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운다는 것은 네가 못나고 무능하다는 뜻이다. 너는 쓸모없는 놈이고 밥통이다! 우는 것은 사탄과 타협하고 사탄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못난이를 좋아하겠느냐?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못난이에다 바보이고 쓸모없는 놈이며, 증거와 지혜도 전혀 없다. 네가 깨달은 진리는 어디로 갔느냐? 하나님이 적그리스도나 사탄의 모습을 폭로하는 것을 그렇게 많이 듣고도 아직 부족하냐? 너는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느냐? 그가 사탄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그가 사탄임을 알면서도 왜 그를 두려워하느냐? 너는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느냐? 사탄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에게 죄짓는 것은 두렵지 않으냐? 이는 비정상이 아니냐? 일이 닥치면 두려워하기만 하고 대책도 없고, 아무런 지혜나 대응 조치도 없으니, 네가 그동안 설교를 들으며 얻은 수확이 무엇이냐? 다 헛들은 것 아니냐? 이런 못난이가 굳게 설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탄이나 악인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일이 닥치면 네 세력이 미약하더라도, 너와 한마음인 형제자매가 정말로 몇 명 있더라도 성급하게 행동하지 마라. 첫째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둘째로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기다리고 구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본분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그럼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하나님이 시간이나 시기를 예비해 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무엇을 구해야겠느냐?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실행해야 할 원칙과 길을 구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사탄이나 적그리스도 세력과 싸워서 결국 사탄 세력을 이기고 이긴 자가 될 수 있는지 구해야 한다. 만약 너 혼자뿐이라면 하나님에게 많이 기도하고 기다리며 구해야 한다.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이 두세 명 있다면 함께 교제하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구해도 된다. 하나님이 적절한 시기를 예비했을 때는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모든 말이 다 적절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더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한편 사탄을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폭로해 사탄의 종이나 적그리스도 무리의 음모를 철저히 까발리고 망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냐? 이런 방식과 방법, 길, 원칙을 모두 알려 주었으니 어떻게 적용할지는 너희 자신에게 달렸다. 이 길은 충분히 분명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이런 일을 마주할 때 이 원칙대로 실행해라. 이는 쉽게 해낼 수 있다.
매번 교회 선거 기간이 되면 리더 일꾼이든 하나님 선민이든 모두 선거 사역을 잘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리더 일꾼은 진리와 선거 원칙을 교제하는 사역을 책임져야 하고, 하나님 선민은 무슨 문제든 다 제기한 다음 진리를 교제해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확실히 선거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리더 일꾼은 한편으로는 하나님 집의 선거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고 원칙을 근거로 매번 하나님 집의 선거 사역을 시행해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 그런 자들은 사탄의 종에 속하고 모두 사탄과 한패이므로 단단히 방비해야 하고, 그들이 선거 기간에 검은손을 뻗거나 음모를 꾸미고 밀실 조작을 벌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정말로 악인에 의해 선거가 조작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진정 선출돼야 할 사람이 배척당한다면, 대다수 사람이 미혹되어 선출된 리더가 옳은 사람이 아니고 리더가 되기에 부적합하다면, 그런 결과가 생기더라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선출된 사람의 실상을 폭로해야 한다. 대다수 사람이 동의하면 다시 선거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사탄이나 악인에 의해 조작된 선거의 결과는 교회에서 진리 원칙을 근거로 정상적으로 선거해 얻은 결과가 아니다. 그건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며, 언젠가는 까발려지고 폭로되고 취소될 것이다. 이 점을 믿는다는 바탕 위에서 만약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언제 어디서든 사탄과 싸울 준비를 해야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겁쟁이이고 바보에다 못난이라면 아마 그들과 타협하여 함께 나쁜 짓을 저지를 수도 있고, 그들의 공격에 쓰러지고 소극적으로 변해 일어서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수수방관하며 말한다. “어차피 저는 교회 리더가 될 수 없으니 누가 되든 다 똑같아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적그리스도가 리더가 된다고 해도 저랑은 상관없어요. 저를 제명하지만 않으면 돼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그다지 좋은 인간은 아니다. 그는 적그리스도가 리더가 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하지 못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이 일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교회 리더가 된다면 피해를 입는 건 바로 하나님 선민이에요. 특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정의감을 가진 사람,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억압받고 배척을 받게 되죠. 오직 바보나 무골호인만이 환영받고 적그리스도의 권력 아래에 속박되고 통제받을 거예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건 구원받기 위해서야.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거라고. 적그리스도가 리더가 된다고 해도 내게는 영향을 주지 않아. 내가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적그리스도도 나를 억압하거나 배척하며 교회에서 제명할 수는 없을 거야.’ 이 관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 선민이 다 교회 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는다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겠느냐? 정말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교회 생활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겠느냐? 이는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으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그렇게 되면 교회는 진리나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는 게 아니라 불신파나 사탄이 권력을 잡는 것이다. 비록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적그리스도가 발언권을 통제하고 있는데, 그가 진리를 분명하게 교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선민이 자유롭게 진리를 교제하도록 허락할 수 있겠느냐? 그건 불가능하다. 적그리스도가 일단 권력을 잡으면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교회 생활의 효과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하나님 선민들이 매번 예배 시간에 얻는 수확도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도 어려움이 생길 것이고,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도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일부 사람도 방해를 받을 것이며, 마치 먹구름이 드리우고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교회 생활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 생활에 누림이 있겠느냐? 분명 누림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교회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원래 소수인데 그 소수의 사람들이 억압받고 배척을 받는다면 교회 생활 자체가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선거를 중시하지도 않게 되고 선거에 관심을 갖지도 않게 된다. 만약 대다수 사람이 선거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원칙도 견지하지 않은 채 이렇게 소극적으로 선거를 대하고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여 악인이나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 리더를 하게 한다면 대다수 하나님 선민은 생명 진입에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 선거 결과의 좋고 나쁨은 하나님 선민의 생명 성장이나 교회의 앞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하나님 선민은 이 일을 똑똑히 알아야지 절대 소극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늘 개인의 상상에 따라 이렇게 생각한다. ‘교회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있으니 누구를 뽑든 상관없어. 형제자매이기만 하면 모두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교회 선거라는 일을 너무 간단하게 보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그릇된 생각이나 관점이 이토록 많이 생겨난다. 만약 정말로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를 리더 일꾼으로 뽑게 된다면 교회 사역은 망가지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은 필연적으로 해를 입을 것이다. 그때면 원칙대로 선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교회마다 일부 무골호인이 있다. 이들은 악인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며, 설령 얼마간 분별했다고 할지라도 방임한다. 그는 교회 선거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내 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말자.’라는 태도로 대하며, 또 누가 리더가 되든 똑같다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 매일 즐겁게 잘 지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어떠하냐? 이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바로 무골호인이다. 또한, 불신파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고 좋은 삶을 탐내고 육적인 안일만을 누리는, 몹시 이기적이고 교활한 사람들이다.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으냐?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어떤 사람이 관직에 오르든 다 잘 지내며, 팔방미인으로 아주 편안하게 살아간다. 어떤 정치 운동이 일어나도 그들은 전혀 연루되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다. 이런 자를 가리켜 능구렁이나 미꾸라지 같다고 한다. 그는 사탄 철학으로 살아가면서 전혀 원칙을 따지지 않고, 누가 권력을 잡든 아부하고 아첨하며 그의 공덕을 찬양한다. 직속 상사를 대할 때는 오직 옹호할 뿐 절대 미움을 사지 않으며, 직속 상사가 아무리 많은 악행을 저질러도 반대하지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며 누가 권력을 잡아도 잘 지낸다. 사탄 마왕은 바로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마왕이 왜 이런 부류를 좋아하겠느냐? 그는 마왕의 일을 망치지 않고, 마왕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처신할 때 원칙도, 마지노선도 없고, 인격과 존엄도 없으며, 그저 사회의 흐름을 따라 마왕에게 머리 숙여 굴복하고 비위를 맞춘다. 교회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 않으냐? 이런 사람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겠느냐? 그가 그리스도의 정예병이겠느냐? 하나님의 증인이겠느냐?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교회 사역을 교란할 때, 이 부류가 나서서 그들과 싸우고, 그들을 폭로하고 분별하고 저버리고, 그들의 악행을 저지하며,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이 능구렁이들은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대상도 아니고, 구원받을 대상도 아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거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눈에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마구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고 사탄과 한패인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도태될 대상이다. 하나님은 이런 천한 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도, 생명도 없는 짐승이자 마귀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도,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자격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손쉽게 버리고 도태시킨다. 교회는 마땅히 그들을 불신파로 간주하여 즉시 제명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진심을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참된 공급을 하겠느냐? 깨우침과 도움을 주겠느냐? 그럴 리 없다. 교회에 선거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이 생겨 선거 결과가 악인에게 통제되고 지배될 때, 이 부류의 사람은 절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을 것이며, 절대 진리 원칙을 고수하며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와 싸우지 않을 것이고, 사탄 세력과 끝까지 싸우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럴 용기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부류를 분별해야지 자신이 깨달은 진리나 사탄에 대한 분별을 이들과 교제해서는 안 된다. 네가 교제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는 진리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사역자나 파트너를 선택할 때 그를 제외하고, 그런 사람을 뽑지 마라. 왜 그를 뽑지 말아야겠느냐? 그는 능구렁이라 하나님의 편이나 진리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고, 너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일어나 사탄과 싸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 너는 어리석은 자이고, 사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는 진리를 교제하거나 권면하지 말고, 어떤 희망도 품지 마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부류를 절대 구원하지 않으며, 그들은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들이고, 능구렁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는 단순히 구경하고 마구 소란을 피우려고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다. 그들에게는 정의감도, 책임감도 전혀 없으며, 심지어 좋은 사람이 악인에게 해를 당해도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마귀 사탄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악인을 폭로한다면 그는 성원이나 응원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절대로 이 부류의 사람을 믿지 마라. 이 부류의 사람은 능구렁이, 카멜레온, 미꾸라지들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종에 속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은 그들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아마 대부분의 교회에 이런 부류가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누가 이런 부류인지 살펴보아서 일이 닥쳤을 때 절대로 그와 진리를 교제하지 말고, 그가 네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라. 또 그런 사람은 상대하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 누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정의감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하나님 집의 이익이 해를 입거나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의 질서가 방해받거나 조종당할 때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하는 사람, 교회를 교란하는 이 악인들을 마음속으로 몹시 증오하여 일어나 폭로하고 싶어 하는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찾아 연합하여 악마와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찾아 교제하고 함께 사탄과 싸워라.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기는 자이자 그리스도의 정예병이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동참할 수 있는 자이다. 그 무골호인, 미꾸라지들, 카멜레온, 무감각하고 어리석어 반응이 없는 자들은 모두 드러나게 될 것이며, 도태될 대상에 속한다. 그들은 형제자매도, 하나님 집의 사람도 아니라 불신파이고 투기꾼들이니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만약 그가 악을 행한다면 정리해라. 반면, 그가 악인도 아니고, 악인을 따라 교회를 교란하지도 않는다면 당분간 교회에 머물게 하며 회개하기를 기다려도 된다. 이 부류 사람의 성품과 인성, 그리고 그들이 각종 일에 보이는 관점과 태도를 관찰하고 파악하며 분별해야 하고, 이 부류 사람의 본질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악인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할 때 악인 편에 서서 악인의 앞잡이나 공범 노릇을 하는 이 무골호인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악인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각종 부적절한 행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해야 한다. 그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면 어떻게 원칙대로 처분을 내려야 적절할지 알게 될 것이다.
방금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몇몇 현상과 일부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 교제했다. 비록 모든 측면을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교제를 마쳤다. 너희는 교회에서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행동 방식을 발견하면 나서서 제재해야지 순응하는 자나 무골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늘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려 한다면, 일단 그런 낌새가 보인다면 형제자매가 단체로 나서서 그를 저지하고 폭로해야 한다. 만약 그가 흐리멍덩하게 행동하면서 그것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다면 너희가 명확히 말해 주면 된다.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거예요. 사탄의 종 역할을 하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교회 리더를 선출하는 것이지 시장이나 면장을 선출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집에는 하나님 집만의 규정이 있고, 하나님 집에서 이 사역을 하는 원칙이 있어요. 여기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서는 안 되고, 엄격히 진리 원칙대로 이 사역을 해야 해요. 자질이 부족해서 진리 원칙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혹은 나이가 많아서 정신이 흐리거나 지능이 낮아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기권하고 결과를 기다려도 돼요. 하지만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마세요. 방해하고 교란하지 말라고요. 그건 악행이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일이에요. 그런 악행은 영원히 정죄되니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그런 길을 걷지 마세요. 당신이 사람이라면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일을 하지 마세요. 일단 그게 사실이 되면 사탄의 종으로 규정되고 교회에서 제명될 테니까요.”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이런 부류를 발견하면, 그중 자질이 부족하거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제하고 붙들어 주고 공급하고 도와주어도 된다. 하지만 진리 원칙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며 심지어 말려도 듣지 않는 자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여기에도 해결 방법이 있다. 즉, 그가 다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그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아무튼 선거를 조작하고 교란하는 각종 행태는 예외 없이 분별하고 저지하고 제재하여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 그릇된 선거 결과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지 않도록 그런 행위나 행동 방식은 교회 내에 존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 일, 사물에 대한 총정리
리더 일꾼의 직책 제12조는 하나님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 일, 사물과 관련된다. 우리는 열한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교제했다. 각 항목에서 열거한, 방해하고 교란하는 문제나 사건은 모두 사람이 이행하는 본분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믿음과도 관련이 있다. 그럼 왜 이렇게 세세하게 나누겠느냐? 왜 모든 항목을 일일이 꺼내 교제하고 분석하겠느냐? 각 항목의 제목을 보면 각각의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인성이 다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인 ‘진리를 교제할 때 자주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의 상황이 그나마 심각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조항은 모두 성질이 심각하다. 그런 모습들은 모두 방해하고 교란하는 성질을 띠고 있으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일이 꺼내 교제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교회 생활이나 사람의 본분 이행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면 사람은 특히 경계해야 하고, 분별하고 꿰뚫어 봐야 한다.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이 발생한 것을 보았을 때는 마땅히 나서서 저지하고 제재해야 한다. 첫 번째인 ‘진리를 교제할 때 자주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그럴 때가 있고 상황이나 성질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더라도 자주 주제에서 벗어나 뒤죽박죽으로 말하여 듣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하면 교회 생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그러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나머지 항목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의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은 어느 하나라도 세세하게 교제하고 분석하고 해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질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교회를 교란하는 악행을 분별하고 인식했다면 마땅히 나서서 저지하고 제재해야 한다. 크게 보면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작게 보면 최소한 교회의 일원으로서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겠느냐? 여기서 ‘하지 못한다’를 어떻게 규정해야겠느냐? 최소한 너는 바보이고, 게다가 사탄을 두려워하는 못난이이다. 또한, 사탄 마귀가 하나님 사역과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교란할 때 너는 무관심하고 무력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네게는 나서서 사탄과 싸우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그 어떤 믿음이나 용기도 없다. 그렇다면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될 자격이 없다.
리더 일꾼의 직책 제12조에서 열거한,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여러 사건은 모두 리더 일꾼과 일반 형제자매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이나 책임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는 부정적인 사물을 대하는 입장이나 관점과 관련이 있다. 물론 그런 부정적인 사물이 나타났을 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설교를 들은 사람이 사탄과 싸우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충분한 분량이나 믿음을 가졌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이것은 핵심적인 문제와 관련되지 않느냐? 이는 사람의 입장과 사람이 걸어가는 길, 그리고 하나님이나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 본분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너희는 이런 말을 다 들은 후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도리나 규례, 혹은 규정으로 여겨 집행하거나 시행하지 말고, 많이 묵상하고 진리를 깨달은 다음 실행하고 진입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러야 한다. 악인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때는 수수방관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느니, 분량이 작다느니, 아직 어리다느니 하면서 온갖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공사를 검증할 때, 네게 환경을 마련해 네 태도를 요구할 때 하나님은 네 나이의 많고 적음도, 네가 하나님을 몇 년 믿었는지도, 네가 어떤 대가를 치렀었고 네게 어떤 공로가 있었는지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당시의 네 태도를 요구한다. 만약 네가 평소에 그런 일을 한 번도 묵상한 적 없고 구한 적도 없으며 일이 닥칠 때마다 흐리멍덩한 상태로 그냥 넘겨 버린다면,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공과를 배우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마련한 여러 환경을 진지하게 대하지도 않는다면, 악인이 방해하고 교란하는 걸 보면 도피하고 결코 하나님 집에 보고하지 않는 데다가 자신의 태도도 밝히지 않는다면 비록 너는 악을 행하는 데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일에서 네가 보인 모습은 이미 네 입장과 관점을 드러냈다. 바로 너는 방관자이자 사탄을 응원하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기에 너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부정적인 사물에 직면했을 때,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의 질서를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발견했을 때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너는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거나 나이가 많지 않거나 분량이 작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원칙대로 행동하여 악인을 저지하고 제재하고 심지어 폭로하려 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나서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려 한다면, 네게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하는 네 태도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 사탄과 싸우려는 네 결심은 이미 사람의 눈에도 보이고 하나님의 눈에도 보이는 증거가 된 것이다. 사람의 악행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기만이나 숨김, 책임에 대한 회피, 그리고 사탄이 악을 행할 때 사탄에 대한 사람의 굴복과 타협 등 이런 것도 하나님은 볼 수 있다. 그런 악행은 결국 언젠가는 상응하는 처분과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나서서 하나님 집과 형제자매를 위해 말하고, 사탄과 싸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며,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려는 의지에 입각해 진리를 구한다면, 비록 때때로 힘이 역부족이고 지혜가 부족하며 깨달은 진리가 얕다고 느껴지고, 진리를 교제하고 싶어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해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무시를 당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네 진심을 볼 수 있고 네 그런 행위와 모습을 선행으로 규정할 것이다. 악행은 하나님에게서는 언젠가 판결과 결론이 내려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행도 하나님에게서는 판결과 결론이 내려질 것이다. 다만 이 두 가지 행위의 최종적인 결론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악행은 악한 보응을 받고 선행은 선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사람에게 이를 구분해 놓았으니, 하나님의 사역 기간에 사람의 여러 모습이 기정사실이 되고 나면 상선벌악할 것이다.
리더 일꾼의 직책 제12조에서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 일, 사물에 대해 열한 가지 항목을 열거했는데, 이 열한 가지 항목은 아주 중요하지 않으냐? 사람을 잘 드러내지 않느냐? 각 항목의 내용을 교제할 때 너희는 공을 많이 들여 진리를 환하게 깨달아야 한다. 이는 사람이 어떻게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 하나님의 증거를 수호해야 하는지와 관련이 있고, 사람이 어떻게 나서서 사탄과 싸우고 사탄의 민낯을 폭로하고 까발리며 사탄의 악행을 저지하고 제재해야 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사탄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때 너는 네 역할을 했느냐?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나님이 네게 요구한 것을 행했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다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했느냐?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너는 타협하거나 적당히 절충해 중용의 길을 걷는 무골호인이 되었느냐, 아니면 나서서 사탄의 악행을 저지하고 제재하며 더 많은 진정한 형제자매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켰느냐? 너는 무엇을 지켰느냐? 악인과 사탄의 이익을 지켰느냐, 아니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켰느냐? 만약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그 어떤 일이 발생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골호인이 되어 자신을 지키기만 한다면, 매우 능수능란하게 자신이 조금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기만 하고 교회 사역이 교란받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마음을 졸이거나 걱정하지도 않는다면, 마음속에 악인의 악행에 대해 아무런 증오나 분노도 없고 하나님 집과 모든 형제자매의 이익에 대해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면 너는 위험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철두철미한 무골호인이고, 어떤 일이 닥치든 수수방관하고 회피하며 조금의 책임이나 의무도 다하지 못한다면 너는 정말로 위험하고, 하나님에게 도태되기 쉽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생각이 든다면, 즉 너를 힘쓰게 하려는 마음조차 없어지고 너를 싫어하게 된다면 그때 너는 도태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말이지 몹시 위험하다! 하나님이 너 같은 사람은 보고 싶지 않고 너 같은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그 어떤 본분을 이행하거나 힘쓰는 것도 탐탁지 않다고 한다면 너는 머지않은 어느 날 어느 때 교회에서 도태될 것이고, 네 운명도 그에 따라 바뀔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변했거나 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했기 때문에 이미 어떤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너는 이 사실을 볼 수 있느냐?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 네가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네 마음속에 품었던 아름다운 기대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모두 열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의 종착지나 앞날을 볼 수 없더라도 늘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항상 아름다운 사물이나 긍정적인 사물을 동경한다. 이런 힘은 어떻게 생겨나겠느냐? 사람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다 똑같이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받으며 사는데 왜 저 이방인들의 마음속에는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있을까?’ 이는 비밀이 아니겠느냐? 이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몹시 진귀하고, 사람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것이고, 이 인류는 귀천이 나뉘지 않을 것이며,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간에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없는 것을 너는 가지고 있으며, 네가 가진 그것은 인류 가운데에서 가장 소중하다. 왜 가장 소중하다고 하겠느냐?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는 착실하게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런 기대가 네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려는 의지를 조금이나마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이점은 이토록 크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비롯되었겠느냐?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고, 하나님이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내칠 때 사람은 그런 것들을 빼앗겨 더 이상 아름다운 사물을 동경하거나 기대하지 않으며 그 어떤 희망도 걸지 않는다. 사람은 마음이 암울해지고 가라앉으며, 그 어떤 아름다운 사물이나 긍정적인 사물, 혹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에 대해서도 추구할 힘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방인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일단 사라지면 네가 하나님 집에 남아 계속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길이 끝난 것 아니겠느냐? 추구하려는 의지라는 이 선결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너는 산송장이 된다. 산송장이란 무슨 뜻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갖추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기대를 품게 되며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동력을 줄 수 있지만, 그런 기본적인 조건을 잃으면 그 동력도 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의욕이 없고 관심도 없으며, 어떤 약속과 기대를 주든 관심이나 동력을 갖지 못한다. 너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차원적인 이론으로 변하고, 너는 노력도 하지 않으며, 하나님도 더 이상 너를 깨우쳐 주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길이 끝난 것 아니겠느냐? 이 지경에 이르면 하나님은 이미 너를 내친 것인데,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느냐? 쉽지 않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내치기로 결심했을 때 사람은 속으로 이런 느낌을 받는다. 그런 것들을 빼앗기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고 구원받는 것 등에 관한 여러 측면의 일에 대해 사람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너는 예전에 열성적으로 추구했던 것을 회상하면 의아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그것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불가사의하다고 느낄 때, 지금의 너는 예전의 너와 비교해 보면 내적 상태에 질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이고, 예전의 너와는 다른 사람이다. 지금의 너는 예전의 네가 아니다. 왜 그렇겠느냐? 환경이 변했기 때문도 아니고, 네가 나이가 들어 잔꾀가 늘어났기 때문도 아니며, 많이 체험하고 경험해서 사상 관점이 바뀌어서도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너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기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너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보면, 사람이 만약 하나님이 주었지만 사람 스스로는 가장 보잘것없고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잃게 된다면 고통에 빠져 행복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절대 그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그 지경에 이르면 너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자유롭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또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고 본분을 이행할 필요도 없으니 이방인처럼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할 수 있다고, 마치 새장을 벗어난 새와 같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위로와 기쁨, 자아도취일 뿐이다. 더 앞으로 걸어가 앞에 놓인 길을 보았을 때도 네가 그렇게 기쁘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고생길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면서 창조주가 어떻게 배치하고 네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든, 네게 얼마나 많은 시련과 환난을 가져다주든, 네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 심지어 몰이해와 오해 등이 생기더라도 최소한 너는 네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은 네 버팀목이며 네 마음은 평안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내치고, 하나님이 대체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 느끼지 못하고 네 버팀목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네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사람이 어린 시절에 마음속으로 오로지 ‘엄마가 제일 사랑스러워. 엄마는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 엄마는 죽으면 안 돼.’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다. 그때는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말만 들어도 견디지 못하고, 엄마가 정말로 죽으면 하늘이 무너지고 자신은 살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같은 이치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 데서 가장 큰 평안과 기쁨이 비롯된다. 사람에게 그런 안정감이 있는 것은 그런 진실한 믿음과 의지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과 의지함이 사라지고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마음이 텅 비어 있다고 느낀다면 네 하늘은 무너진 것 아니겠느냐? 네 버팀목이 사라졌는데 살아가면서 기운이 나겠느냐? 이런 부류는 그저 산송장으로, 배만 채우며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시종일관 태도가 좋지 않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계속 악을 행하며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망친다. 심지어 하나님 집의 이익에 커다란 손실을 입히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나 충성심을 드러낸 적이 없고 순종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인정한 적 없다. 그들은 복받으려는 속셈을 품은 채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악한 자이다. 하나님이 그들이 들어오게 허락한 것은 하나님 선민이 공과를 좀 배우고 분별력을 좀 기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그들도 청함을 받은 사람이긴 하지만 일관된 태도 때문에 그들은 택함을 입지 못했다. 그럼 그들의 상태는 어떻겠느냐? 알아보면 알겠지만 누구나 힘들게 살아간다.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공급을 받는 사람과 어떤 일이 닥치든 하나님의 공급과 도움을 받지 못해 늘 무저갱에 빠져 있는 사람은 생활의 질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평안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온종일 두려움과 불안, 초조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어떤 생활이겠느냐? 무저갱에 빠져 사는 생활이 좋겠느냐? 괴로울 것이다. 무저갱은 말할 것도 없고 며칠간 연달아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기만 해도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 기간에 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네게 영광이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영광이지 굴욕적인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얻은 이 영광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그것에 보답하는가이다. 하나님이 높여 주었으니 너는 그 호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보답해야겠느냐? 하나님은 네 돈이나 네 목숨을 원하지 않는다. 네 집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어떤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겠느냐? 하나님은 네 진심과 충성심을 원한다. 그 진심과 충성심은 어디에서 드러나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너는 최대한 노력하고 자신의 진심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 바로 진리이다. 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다음 어떻게 적용해야겠느냐?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절대로 입으로는 진리를 실행하겠다고 말하면서 일이 닥치면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는 핑계를 찾아 위장하거나 기만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진심도 없고 충성심도 없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런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진심이다. 진심이 있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하나님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것이다. 설사 규례를 지키는 것처럼 지나치게 행동하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바보 같더라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이런 진심이다. 만약 늘 잔꾀를 부리고 교활하게 행동한다면, 항상 남의 눈에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너는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네게는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진심도 없는 데다가 간사하게 굴려고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영리해서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골라서 실행하는데,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만 실행하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다. 평소에 말할 때는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큰소리치지만 문제가 닥치면 그림자도 찾지 못하게 숨어 버리고, 다른 사람이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면 그제서야 나타난다. 대체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이냐!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자발적으로 나서며 남들보다 적극적이지만,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련되면 바로 뒤로 물러서고 소극적으로 변해서 듣기 좋은 말도 한 마디 안 하고 자신의 입장이나 관점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차라리 남들 눈에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을 원하지 이런 요령꾼은 원하지 않는다.
12. 정치를 논의한다
리더 일꾼의 직책 제12조의 열한 가지 내용에 관해 교제를 마쳤다. 이제 이 열한 가지 외에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하겠다. 이 항목은 교회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열두 번째 항목으로 볼 수 있는 ‘정치를 논의한다’이다. 교회 생활에서 정치에 관한 주제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이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적 인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정치 형세, 정치인, 정치 구도, 정치적 관점, 정치적 입장 등 정치에 관한 일을 열 올리며 논의하는데 그게 적절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물과 인류를 주재하는 것에 관한 주제를 논의할 때, 정치인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묵상 노트 같은 것을 작성하는 정치인도 있다고 무리하게 끼워 맞춰 말한다. 이는 혼란을 주는 것 아니냐?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아무개 정치인을 옹호해야 해요. 그 사람은 신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신도들의 이익까지 지켜 주니까요. 우리와 한마음이니 그를 지지하고 선출해야죠.” 또 그는 교회 생활에서 그 정치인을 많이 홍보한다. 이것이 적절하겠느냐? 크리스천이 정치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참여하지 않는 것이냐? 우선 네가 어느 당파를 지지하든, 네 정치적 관점이 무엇이든 그것을 교회 생활 속으로 끌어와 논의해서는 안 된다. 물론 교회 생활에서 정견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과 논쟁하는 일은 더더욱 발생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너희 둘의 관점이 다르고 서로 다른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해 보자. 둘이 만났을 때 논의하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절대 예배 시간에 논의해서는 안 된다. 둘이 사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든, 만나서 이야기하든,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이든 다른 사람들은 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 제도하의 시민이 갖는 권리이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할 때 너는 단지 한 국가의 시민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는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인 주제와 정치인에 관한 주제를 교회에 들여오지 마라. 그것은 네 개인의 입장과 관점을 대표할 뿐 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다. 교회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또한 어떤 정치 제도나 정치인, 정치 지도자, 정치 단체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일들은 다 진리와 관련이 없고 하나님을 믿는 것과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관련된 어떤 주제도 교회 생활에 들여와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 교회 생활 외에 여럿이 모여 있을 때는 그런 일을 논의해도 되나요?”라고 말하는데, 논의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만약 이방인 중 정치적 관점이 다른 여러 사람이 같이 논의하고 있을 때 참여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그것은 네 자유이며, 하나님 집에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구성원이 모여 있는 시간이나 정규 예배 시간에는 그런 정치적 관점이나 논점을 주요 소재 삼아 말해서는 안 된다. 네 정치적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 혹은 하나님의 주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대도 안 된다. 그것은 진리와 전혀 관련이 없고 아예 동떨어져 있으니 거짓으로 꾸며 대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정치를 논의하고 싶어도 집에서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논의하지 못하다가 형제자매가 모두 성인인 것을 보고는 정치를 논의하고 정치적 관점을 털어놓을 출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좋은 기회를 찾자 흥이 나서 정치적 관점이나 시사, 국제 형세를 논하려고 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논할 때 먼저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예요. 인류의 정치나 정치인들도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죠. 그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요.” 이렇게 서막을 열고는 정치적인 일이나 시사를 열 올리며 실컷 논하고, 논의가 끝나면 이렇게 정리한다. “정치도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날 수 없어요.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죠.” 그런 일을 꿰뚫어 보지도 못하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진리를 교제하는 것은 진리를 교제하는 것이지, 정치나 정치인은 논하지 마라. 정치에 관한 일을 논하는 것은 진리를 교제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미혹하는 짓이다. 정치를 논의하고 싶다면 따로 정치를 좋아하는 무리를 찾아가 논해라. 그러면 아주 신나게 논할 수 있을 텐데 무슨 의도로 자꾸 교회에서 그런 주제를 논하는 것이냐? 모두에게 숭배받고 리더로 뽑히고자 하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 그건 다른 속내를 품고 있는 것이다! 정치를 논의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 결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회 예배 시간에는 절대 정치적인 주제를 논의하지 마라. “그럼 자유 국가의 민주 선거, 정치 제도, 시행되는 정책은 논의하지 않고 큰 붉은 용 나라의 정치나 고위 공직자에 관한 스캔들, 예를 들어 어느 부패한 공직자가 황금을 얼마나 횡령했고 내연녀는 몇 명이나 되는지 등을 논의하는 건 괜찮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겹지도 않으냐? 왜 그런 역겨운 일들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이냐? 나는 왜 그런 일에 관심을 갖거나 그런 일을 보는 게 이토록 역겹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특히나 관심을 갖는다. 전혀 역겨워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그런 일을 보려고 하는데, 한가할 때마다 본다. 그는 그런 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며 충만해진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는 그렇게 충만해지지 않는 것이냐? 조금 이상하지 않으냐? 이는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것 아니냐? 그 좋은 시간에 마당에서 거닐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거나 먼 곳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텐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는 않고 틈만 나면 컴퓨터로 어떤 뉴스가 있는지 주시하면서 항간의 소문을 서둘러 수집한다. 그는 평소에도 어느 부패한 공직자에게 내연녀가 몇 명 있었는데 발각됐다느니, 어느 부패한 공직자 집에 재산이 얼마 있었는데 몰수됐다느니, 큰 붉은 용의 윗선에서 누가 누구를 끌어내리고 누가 누구를 암살했다느니 하는 일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일들을 수집하고 나면 자신이 높은 학식과 경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예배 시간에 털어놓으려고 한다. 이는 독을 퍼뜨리는 것 아니냐? 그 악마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은 너무도 정상적이지 않으냐? “그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건 정상이지만 그중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나쁜 짓들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것들을 상상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들이 어떤 사악한 짓을 벌이는지 상상하려고 머리를 달고 다니는 것이냐? 그건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것 아니냐? 상상도 못 할 사악한 짓에 대해 좀 안다고 해서 네가 대단한 것 같으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혐오감만 더해지지 않겠느냐?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계의 외설적이고 이상한 일에 늘 관심을 갖는데, 좀 모자란 것 아니냐? 자기 삶은 살지 않고 늘 그들의 일에 신경을 써서 뭐 한단 말이냐? 어리석지 않으냐? 밥 먹고 할 일이 없는 것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큰 붉은 용에게 박해받았으니 분명 다들 큰 붉은 용을 증오할 거예요.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분명 큰 붉은 용의 윗선에서 발생한 스캔들, 즉 탐관오리에 관한 일이나 음란한 일, 그리고 어두운 내막에 관심이 있을 테니 그런 스캔들을 폭로하면 박수 치며 쾌재를 불러야 하지 않나요?” 너는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냐? 교회에서 정치적인 일을 논의하는 것, 특히 큰 붉은 용 윗선의 고관이 폭로되어 드러나는 스캔들을 논의하는 것은 가장 역겨운 일이니 절대 논하지 마라! 내게도 말하지 마라. 역겹다! 네게 말하건대, 논하지도 말고 보지도 마라. 그런 것들을 보다 보면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게 될 때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역겹기 그지없다. 그런 일들은 많이 듣고 많이 본들 좋을 게 없다. 왜 좋을 게 없다고 하겠느냐? 마음에 역겨운 일을 많이 담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주제도 정치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그런 일은 더욱 역겹다. 네가 즐겨 말한다면 이방인을 찾아 실컷 털어놓고 원하는 대로 말해라. 절대 교회 생활 속에서, 혹은 형제자매 사이에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큰 붉은 용 윗선의 더러운 일이나 사악한 일들을 말해서 형제자매의 분별력을 길러 주고 분을 풀어 주는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분을 풀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분풀이를 하는 게 증거하는 것이냐? 네 의무나 본분이냐? 그런 것들은 말해 봤자 소용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 네가 큰 붉은 용의 사악한 일을 얼마나 폭로하든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반면, 네가 큰 붉은 용 나라에서 어떻게 박해를 겪었는지, 큰 붉은 용의 공갈과 협박을 어떻게 벗어 버리고 극복했는지, 또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에게 의지해 굳게 섰는지 얘기한다면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정치를 논의하는 건 생명 진입과 무관하니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큰 붉은 용의 공직자가 횡령하고 한 끼 식사에 몇만 위안을 썼다거나 호화로운 호텔에 묵으며 몇 달러를 썼는지 폭로하는 것도 안 되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너와 털끝만큼이라도 관련이 있느냐? 이 세상과 사회는 원래 그렇지 않더냐? 누구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 주려는 것이냐? 그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도 아니고 큰 붉은 용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도 아니며 큰 붉은 용을 저버리는 모습도 아니다. 혼란을 초래하지도 말고 외식하지도 마라. 그런 것들은 다 진리 실행이 아니다. 탐관오리나 정치꾼이 얼마나 횡령하고 부패했든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폭로해야 할 일이 아니니 그런 일에 관심 갖지 마라. 사탄 정권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늘 존재해 왔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니 그런 주제를 ‘큰 붉은 용을 저버리고 폭로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주제에 뒤섞지 마라. 절대 그런 기괴하고 역겨운 일과 사악한 일을 교회 생활 속에서, 혹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정치를 논의하고 싶다면 이방인을 찾아 논의해라. 그런 기호나 취미를 가진 사람과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논의하든 상관없다. 그것은 네 개인적인 기호와 취미이고 네 자유이자 권리이니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배 시간이나 형제자매 앞에서는 그런 일을 논의하지 마라. 설사 누가 듣고 싶어 하더라도 말하지 마라. 그런 일을 말하면 교회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깨닫는 데도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정치인의 사생활 스캔들에 관한 것이든 교회 생활에 가져와 논의하지 마라. 만약 누군가 교회 생활의 예배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늘 그런 일을 얘기하는 것만 좋아하며 예배 시간마다 그런 일을 얘기하려 한다면 형제자매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를 제재하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지금은 예배 시간이니 그런 쓸데없는 일은 말하지 마세요. 얘기하고 싶으면 집에 가서 하라고요!” 제재하지 못해서 그가 계속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를 내쫓은 다음, 그런 얘기를 안 하게 되면 다시 오라고 알려 줘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그가 정치라는 주제를 논의하는 순간, 형제자매들이 일어서서 다른 방으로 가 버리고 그 혼자 말하게 두는 것이다. 어쨌든 정치를 논의하기 좋아하는 부류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 자들은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 교회 사역이나 형제자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자신에게 해결해야 할 어떤 실제 문제가 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올바른 일들은 고민하지 않으면서 이상하고 비뚤어진 일들만 고민하며, 그런 일들을 고민하는 데 유독 열중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정보가 발달하여 다양한 경로로 그런 정보를 알 수 있으니 그런 자들의 기호와 취미를 충족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기호나 취미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집에는 예배 시간에 정치에 관한 주제를 논의하는 것은 다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문제로 귀결시킨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교회 생활을 하거나 형제자매가 모여 있을 때는 그런 주제가 엄격히 금지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주제가 금지된다면 정치에 대한 우리의 다양한 관점, 예를 들어 우리가 어느 당파를 좋아하고 어느 당파를 싫어하는지, 누구를 뽑고 누구를 뽑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교회에서 간섭하나요?”라고 말하는데, 명확히 말해 두겠다. 뽑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뽑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해라. 교회에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은 네 자유다. 간섭하지 않는 범위가 아주 넓지 않으냐? 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인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미 존중받은 것 아니냐? 이만해도 괜찮은데 교회에서 아무렇게나 실컷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것은 규율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 부류를 만나면 너희는 제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우선 그에게 알아듣게 교제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죠? 처음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 집의 규율을 잘 모르겠네요? 그럼 제가 알려 줘야겠군요. 이곳은 예배드리는 장소이고, 지금은 예배 시간이에요. 어떤 정치적 관점과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든 교회에서 퍼뜨리는 건 금물이에요. 예배 시간에 다뤄서도 안 되고요. 저희는 듣고 싶지도 않고 당신의 그런 얘기를 들을 의무도 없어요. 장소를 잘못 골랐다고요. 하지만 예배가 끝나고 여기를 떠난다면 마음껏 말해도 됩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요. 그것은 당신의 자유니까요.” 만약 그가 명확히 알아듣고 기억해서 다음번에는 말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다. 그는 그래도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교제해 주었는데도 계속 말하고 예배 시간만 되면 정치적 관점을 밝힌다면 그가 말하는 걸 제재해야 하지 않겠느냐? (제재해야 합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정치에 관한 주제를 논의한다면, 편을 가르고 지위를 다투고 소극성을 퍼뜨리는 등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범주로 구분해야 한다. 그런 자들은 봐주지 말고 반드시 저지하고 제재해야 한다. 물론, 정치를 논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악한 사람이거나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런 사물이나 주제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그 부류는 진리를 그다지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부류를 대하는 원칙에 대해 우리는 명확히 교제했다. 즉, 그에게 하나님 집의 규정을 알려 주는 것이다. 명확히 말했음에도 계속 정치에 관한 주제를 논의하려 하고 말려도 듣지 않는다면 그를 격리해야 한다. 회개한 다음에야 계속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해라. 이 일은 이렇게 간단히 처리해야 한다.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그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2021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