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외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패괴된 인류는 위장에 능하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패괴를 드러내든 항상 위장하려 한다. 문제가 생기거나 무슨 실수를 하면 늘 남에게 책임을 미루려 한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미루려 한다. 실생활에서 이렇게 위장하는 일이 많지 않으냐? 너무도 많다. 실수와 위장 중에서 어느 것이 성품에 관계되느냐? 위장이 성품에 관한 일이다. 위장에는 교만한 성품, 사악함, 간사함이 담겨 있어서 하나님은 아주 혐오한다. 사실 네가 위장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알아본다. 너는 남들이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생각해 애써 변호하고 변명하며 체면을 지키거나 사람들에게 네가 실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하는데, 이는 어리석지 않으냐? 다들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어떻게 느끼겠느냐? 역겹고 혐오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네가 실수해도 바르게 대할 수 있고, 모두가 그것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고 분별하게 할 수 있고, 너 스스로도 분석하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보겠느냐? 분명 다들 네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네 마음이 하나님에게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네 행동과 모습을 통해 너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자신을 위장하고 모두를 속인다면, 사람들은 너를 경시하며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네가 위장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모두에게서 정직하고 현명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현명함은 어디에 있느냐?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고, 누구든 결점과 약점이 있다. 모든 이의 패괴 성품은 사실 마찬가지다. 자기가 남들보다 고귀하고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들보다 선량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러면 너무나 비이성적이다! 사람의 패괴 성품, 인류의 패괴 본질과 진면목을 간파하고 난 뒤,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도 숨기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도 꼬투리를 잡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바르게 대할 수 있다면 비로소 사물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곧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늘 마음에 두는 까닭에 뒤에서 몰래 수작을 부리는데, 역겨움을 자아낸다. 사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남들은 보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린다. 그런데도 네가 거기서 대놓고 연기를 하면 사람들은 광대의 쇼를 구경하듯 할 것이다. 이는 어리석지 않으냐? 이런 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없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간파하지 못한다. 자신을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자신을 남다르다 여기고, 남들보다 존귀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영적인 이해력이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일에서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한다면, 너는 그 일에서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것이고, 쉽게 진리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을 포장하고, 늘 자신을 꾸미고 위장함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여 다른 사람이 그의 결점과 부족한 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늘 자신의 가장 훌륭한 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교만함, 위선, 외식으로, 사탄의 성품이고 사악한 것이다. 마치 사탄 정권에 속한 자들과 같다. 이자들은 배후에서 아무리 때려잡고, 싸우고, 죽여도 이를 보도하거나 폭로하지 못하게 하고, 국민이 그들의 악마 몰골을 볼까 봐 갖은 수를 써서 덮어 감추려 한다. 대중 앞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을 꾸며서 자기들이 국민을 아주 사랑하고, 아주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올바르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로 사탄의 본성이다. 사탄 본성의 두드러진 점은 바로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속이고 기만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바로 눈가림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모습과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해서 장기 통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도 지위도 없지만, 그들 역시 사람들이 자신들을 좋게 보기를 바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패괴 성품은 가장 인식하기 어렵다. 자신의 문제점과 결점을 인식하기는 쉬워도 패괴 성품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패괴된 내적 상태가 있는지 말해 본 적도 없다. 그는 늘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며 부지중에 자신을 뽐낸다. “저는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수많은 박해와 고통을 겪었어요. 제가 어떻게 그것들을 이겨 냈는지 당신들은 아세요?”라고 하는데, 이는 교만한 성품 아니겠느냐? 그가 자신을 뽐내는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들 마음속에 지위를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네가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그는 너와 함께 지낼 때 네게 공손히 굴고, 매우 정중히 말할 것이다. 또한, 늘 너를 우러러보고 무슨 일이든 너를 우선시하며 너에게 양보할 것이다. 너를 떠받들고 따르며, 무슨 일이든 구하며 의견을 물어보니, 너는 흐뭇해져서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이런 느낌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이다. 사람은 모두 이런 느낌을 즐기고자 하기에 지위를 다투고,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지위를 차지해 우러름과 숭배를 받고자 한다. 만약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위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네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아무런 지위가 없어서 그가 너와 같은 위치에서 대등하게 이야기하고, 맞받아칠 것은 맞받아치고, 너에 대한 예의와 존중도 없고, 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 버린다면 이런 경우 네가 매우 불편하게 느끼지 않겠느냐? 남에게 이런 대우를 받으면 너는 싫어한다. 너는 다른 사람이 어디에서나 너에게 알랑거리고,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네가 중심이 되어 모든 일이 다 네 위주로 돌아가고, 모든 사람들이 다 네 말을 듣고 너를 앙망하며, 네가 명령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왕권을 잡으려는 것 아니냐? 너의 말과 행동은 모두 지위를 추구하고 얻기 위한 것이며, 지위를 위해 다투고, 빼앗고, 쟁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은 바로 지위를 얻어 하나님의 선민이 모두 너의 말을 듣고 너를 옹호하고 숭배하게 하는 것이다. 일단 지위를 손에 쥐면 권력을 얻을 수 있고, 지위의 복, 다른 사람의 숭배, 지위가 가져다주는 모든 이점을 누리게 된다. 사람은 늘 위장을 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꾸미고, 포장하고, 미화하여 완벽하게 보이려 한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바로 지위를 얻어 지위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못 믿겠으면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너는 어째서 늘 다른 사람이 우러러봐 주기를 원하는 것이냐? 바로 다른 사람이 너를 숭배하고 앙망하게 하고자 하고, 최종적으로는 권세를 잡고 지위의 복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네가 전력을 다해 추구하는 그 지위는 너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사람이라면 다 이를 부러워하고 얻으려고 한다. 지위가 가져다주는 많은 이점을 누리게 되면, 홀리듯이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지게 되는데, 사람은 모두 그렇게 살아야 인생 헛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괴 인류는 모두 그것들을 즐기기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이 일단 지위를 얻게 되면, 일단 지위가 가져다주는 각종 이점을 누리게 되면, 사람은 무턱대고 죄악의 낙을 누리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영원히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목적은 바로 지위가 가져다주는 모든 이점을 누리기 위함이다. 왕권을 잡고,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고, 독립 왕국을 세워 지위의 복을 거저 누리고, 죄악의 낙을 누리려는 것이다. 사탄은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속이고 기만하고 우롱하며, 사람에게 허상을 보여 준다. 심지어는 협박이나 위협을 통해 사람이 그것을 숭배하고 두려워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 이루려는 목적은 사람이 그것에게 순종하고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바로 이것을 누리며, 그것이 사람을 놓고 하나님과 다투는 목적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럼 너희가 사람들 속에서 지위와 명망을 놓고 다툰다면, 무엇을 위해 다투는 것이겠느냐? 정말 명성을 위해서겠느냐? 그렇지 않다. 사실은 그 명성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놓고 다투는 것이다. 네가 늘 그런 이점을 누리려 하니 다퉈야 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그런 이점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저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저는 보통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저에게 그렇게 잘해 줄 가치가 없어요. 저 또한 다른 사람을 숭배하고 싶지도 않고요. 오직 하나님만이 제가 진정으로 경배하고 경외해야 하는 대상이시고, 저의 하나님이자 저의 주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능력과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아무리 위대하고 완벽한 이미지라 해도, 제가 숭배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진리가 아니고, 창조주가 아니고, 구세주가 아니기 때문이며, 그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지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가 경배할 대상이 아니에요. 제가 경배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진리에 부합하지 않겠느냐? 반대로, 네가 다른 사람을 숭배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너를 숭배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는 그가 그러지 않도록, 그가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너는 방법을 강구해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어 그에게 너의 추한 모습과 본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바로 네가 아무리 자질이 좋고, 교육을 많이 받고,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해도, 너는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 누구에게도 추앙받고 숭배받을 대상이 아님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우선 너는 자신의 자리에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 체면을 구기거나 실수해도 회피하지 말아라. 만약 네가 체면을 구기거나 실수한 후에 이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짓 이미지로 은폐하고 포장한다면, 이는 거듭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추해지고, 그 야심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사람은 본래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무소불능에 도달할 수 있느냐? 완벽함에 도달할 수 있느냐? 티 없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느냐? 모든 일에 정통하고 모든 일을 다 알고, 다 꿰뚫어 보고, 다 해내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느냐?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의 내면에는 패괴 성품과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사람이 기술 하나나 업무 하나를 배우면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 신분이나 몸값이 높은 사람, 전문가 등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능력이야 어떻든 자신을 위인이나 남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포장하여 꽤 유명한 인물이 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결함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 유명한 사람이나 강한 사람, 위인이 되어 위대해 보이고,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자신이 무능하고 약세에 처한 것 같으며 남들보다 못해 보일 거라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거라고 생각해서 늘 거짓되게 꾸미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 일을 시키면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안다고 말한 뒤, 뒤에서 몰래 자료를 찾고 공부한다. 며칠을 공부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거의 다 됐어요!”라고 하면서 속으로 고민한다. ‘아직 멀었는데. 갈피도 못 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들통나면 안 돼. 그래도 계속 아는 척해야지. 사람들한테 내 결점과 무지함을 들키면 안 돼. 남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안 돼.’ 이것은 어떤 문제이냐? 이는 체면 때문에 생고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성품이냐? 교만함이 극치에 달하여 이성을 잃은 것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정상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초인이나 뛰어난 사람, 재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러면 문제가 심각하다! 정상 인성의 약점과 결점, 무지함, 어리석음, 혹은 몰이해 등을 전부 포장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고 계속해서 위장한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든 꿰뚫어 보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는 속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데, 그에게 말해 보라고 하면 그는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자기도 같은 생각인데 미처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포장하는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들은 항상 뜬구름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냐?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정상 인성을 살아 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착실하게 살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뜬구름 속에서 살면서 어리석게 지내며, 착실하게 일하지는 않고 늘 상상에 기대 살아간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네가 선택한 그 인생의 길이 옳지 않은 것이다. 네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믿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너는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네 첫걸음의 시작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땅 위를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도 착실하게 한 발씩 내딛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걸을 수 있으면 걷고 뛰어가려 하지 마라.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을 수 있다면 두 걸음씩 걷지 마라. 착실하게 살아야 한다. 초인이나 위인,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바리새인’이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바로 외식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가 훌륭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드러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깊이 감춰둔 것이다. 겉모습은 전부 위장한 것이고 모조리 거짓된 것이다. 이는 사람만 속일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속이지는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다 진리 실제가 아닌 글귀와 도리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와 도리를 떠들어 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도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탄복하고 숭상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그는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따위 것들을 말하는데, 진리 실제가 전혀 없이 모두 사람의 관념에 맞는 사이비한 것들이다. 그는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 그런 것들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도 거짓된 것이다. 사람은 그를 성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진정으로 성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으로,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교회에서 개인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다는 기치하에 교회 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이런 자들이 바로 외식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다. 바리새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이방인 가운데서 생겨났겠느냐? 그렇지 않다.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났다. 그럼 그런 사람들이 왜 바리새인으로 변할 수 있었겠느냐? 어느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느냐? 분명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이 가는 길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거나 공밥을 얻어먹기 위한 도구로 삼는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머리와 혀를 무장하고, 거짓된 영적 이론을 전하여 자신을 성인(聖人)으로 포장함으로써 그것을 밑천으로 공밥을 얻어먹으려는 목적을 이룬다. 그들은 도리를 전했을 뿐, 진리를 실행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도를 준행한 적이 없으면서 글귀와 도리까지 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는 바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다. 그들의 그 소위 좋은 행위와 모습, 버림과 헌신 등은 다 사람의 의지로 억누르고 꾸며 낸 것으로, 전부 거짓된 것이며 위장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티끌만큼도 없고 참된 믿음도 전혀 없다. 나아가 그들이 바로 불신파이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런 길에 들어서서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아주 끔찍하지 않으냐? 바리새인들이 모여 있는 종교적 장소는 매매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그곳을 하나님의 교회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도 아닌, 종교로 본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글귀나 표면적인 도리를 아무리 많이 갖춰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사람들 앞에서 특히나 위장을 잘한다.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 무척 너그럽고, 인내심 있고, 겸손하고, 온화해서 누구에게든 그렇게 관대하고 너그럽게 보일 수가 없다. 문제를 처리할 때 그는 늘 높은 지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지극히 관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언제나 도량이 있고, 넓은 아량을 베풀고,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사람들 눈에 그는 무척이나 위대하고 인자하게 비춰진다. 사실 적그리스도가 이런 본질을 갖추었느냐? 그는 선의로 남을 대하고 사람들을 포용하고 언제나 남을 도울 수 있는데, 이런 행위의 이면에 숨은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 마음을 농락하고 매수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감춰진 민낯이 정말 그렇겠느냐? 정말 그가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는 겸손하고, 인내심 있고, 너그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돕는 그런 모습이겠느냐? 그에게 이런 본질, 이런 성품이 있느냐? 그에게 이런 인품이 있느냐? 전혀 없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위장한 것이다.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 마음을 매수해서 더 많은 이들이 속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의 도움을 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 적그리스도는 온갖 궁리를 하며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며 옳은 말, 옳은 행동을 한다. 말을 꺼내기 전에 속으로 몇 번을 걸러 내고 가공하는지 모른다. 어휘나 표현, 어조와 목소리, 심지어 시선과 말투를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한다.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지, 자기를 높이 평가하는지, 자기와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지, 자기와 성격이 맞는지, 상대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교회에서나 형제자매들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어떤지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열심히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생겨난다. 적그리스도가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를 떠나 어쨌든 그가 도달하려는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게 아니라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말할 때 더 많은 이가 그를 부러워하며 우러러보고, 그가 일할 때 더 많은 이가 그를 옹호하고 추종하고, 그가 잘못했을 때 더 많은 이가 그의 책임을 벗겨 주며 그를 위해 변호하고, 그가 드러나 버림받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그의 편을 들고 그를 위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그를 위해 일어나 하나님에게 따지고 대항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무너질 때 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성원, 보호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적그리스도가 온갖 궁리를 해서 교회에서 경영하는 지위와 권력을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심어 놓았다는 뜻이다. 그의 ‘고심’은 헛되지 않았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어떤 상황에서든, 또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항상 연약함 없이 강하고 자신감 넘치고 전혀 소극적이지 않은 자세를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실제 분량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태도를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든다. 사실 그가 정말 속으로 자신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정말 자신에게 연약함이나 소극성이 없고, 패괴 표출이 없다고 생각하겠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위장과 은폐에 능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강한 면과 자랑스러운 면을 보여 주기 좋아하고, 연약하고 진실한 면은 보여 주기 싫어한다. 이 목적은 분명한데, 바로 자신의 허영과 체면을 지키고,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소극성과 연약함을 내보이고 자신의 패역이나 패괴된 면을 공개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커다란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도 연약함과 패역, 소극적인 면이 있다고 죽어도 말하지 않는다. 설령 어느 날 모두에게 자신의 연약하고 패역한 면이 보여지더라도, 그가 패괴된 사람이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위장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패괴 성품을 지닌 평범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사람들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사라지게 되고, 그에 대한 다른 사람의 숭배와 앙망을 잃게 되며, 그러면 완전히 실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권력과 지위를 순순히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 대신 안간힘을 다해 쟁취하려 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는 능동적으로 나서서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다가 문제가 생겨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서둘러 피하거나 책임을 회피한다. 만약 자기가 잘 아는 일을 만나면 잽싸게 남들에게 솜씨를 보여 주며 기회를 잡아 남들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에게 은사와 특기가 있다는 걸 보여 줘서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만든다. 또 어떤 큰일이 닥쳐 누군가 그에게 그 일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물어보면 그는 쉽게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지 않고 모두에게 먼저 말하라고 한다. 그가 쉽게 말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편으로는, 자기 관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관점이 틀릴까 봐, 말했다가 반박당하고 망신당할까 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관점이 없고 그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해 함부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잘못 말했다가 비웃음을 살까 봐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가 자기 관점을 쉽게 말하지 않는 것은 자기 본모습이 드러날까 봐, 자신이 빈곤하고 가련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어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서다. 그렇기에 모두가 자신의 관점과 생각, 인식을 교제한 후, 그는 고매한 말, 상대적으로 근거 있는 말을 가져다가 자기 관점과 인식인 양 종합한 뒤 모두에게 교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 마음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다. 적그리스도는 아주 교활하다. 그러니까 정말로 관점을 발표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는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를 모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자신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자질이 어떠한지, 인성은 어떠한지, 이해 능력은 어떠한지, 진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지 등을 알게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허풍과 큰소리를 치며 영적인 사람이나 완전한 사람인 척하는 동시에 자신의 진짜 모습과 실제 분량을 애써 숨긴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형제자매들에게 드러낸 적도 없고, 자신의 부족함과 결핍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극력 숨겨 왔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으면서 하나님께 의혹을 품은 적이 없었습니까?”라고 하면 그는 “없었습니다.”라고 답하고,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는데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몸이 아플 때 괴롭고 집이 그립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립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보아라,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더없이 굳세고 의지력이 강하며, 버리고 고난받을 수 있는 사람, 그야말로 단점과 문제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포장한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어떤 패괴나 부족함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를 형제자매로 여겨 평등하게 대하고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면 그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애써 변호하고 변명하여 자신은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그에게 문제가 없고, 그를 완전한 사람,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게 할 것이다. 이는 거짓으로 꾸미는 것 아니겠느냐? 자신이 완전무결하거나 성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부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부류는 능력이 좀 있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신비화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하여 남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다. 이런 사람은 장점이나 은사가 좀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남을 지도하려 한다. 누가 그에게 문제를 물어보면 그는 지위에 서서 남을 훈계하며, 훈계한 뒤에도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사실은 그 자신이 알아듣게 말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또 못 고치죠? 다 알려 주지 않았나요? 제가 얼마나 명확하게 말했는데요. 그렇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자질이 너무 떨어지네요. 매번 가르쳐도 못하잖아요.” 남이 그에게 처리하게 하면 그는 한참을 보고도 어떻게 고치는지 모르면서 그가 못 고친다는 걸 남이 알지 못하게 숨긴다. 그는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게 한 다음 혼자 몰래 궁리하고 연구하지만 여전히 고칠 줄 모르고, 결국 엉망으로 해체해 놓고는 다시 조립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누가 볼까 봐 두려워 물건들을 숨겨 놓는다. 어떤 일을 못 하는 게 창피한 것이냐?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어떤 일을 못 하는 건 창피한 것이 아니다. 넌 보통 사람이고 아무도 너를 우러러보거나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라.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일 뿐이다. 못 하면 못 한다고 하면 되지 왜 위장을 하느냐? 늘 위장하면 사람들을 역겹게 하고 언젠가는 결국 탄로 난다. 그때가 되면 네 존엄과 인격은 사라질 것이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그는 늘 자신이 만능이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할 줄 모르는 것이나 불가능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면 골치 아프지 않으냐? 그가 정직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도 이 분야의 기술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경험만 조금 있을 뿐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직면한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라요. 우리가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업무 지식을 좀 배워야 해요. 업무 지식을 파악하면 본분 이행에서 성과를 이룰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 본분을 우리에게 맡기셨으니 우리는 그걸 잘 이행할 책임이 있어요. 우리는 본분에 대해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지고 업무 지식을 학습해야 해요.” 이것이 진리 실행이다. 사람이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이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는 이 정도밖에 못 해요. 그러니까 저를 우러러볼 필요 없어요. 저도 거만 떨 필요 없죠. 그럼 마음이 홀가분하잖아요? 늘 외식하고 위장하면 너무 괴로워요. 우리 못 하는 건 같이 배우고 조화롭게 협력해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요. 우리 모두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요.” 이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낫네. 일이 생겼을 때 무턱대고 억지를 쓰지도, 남에게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고 스스로 짊어진 채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행동하잖아. 좋은 사람이야. 사역이나 본분을 진지하게 책임지니까 믿을 만해. 하나님 집에서 이 중요한 사역을 그에게 맡긴 건 옳아. 하나님은 정말로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시는구나!’ 그가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기술도 향상되고 다들 그를 칭찬한다. 무엇 때문에 칭찬하겠느냐? 첫 번째, 그는 본분을 대할 때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지녔다. 두 번째, 그는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며 배우기 좋아하는 태도를 지녔다. 세 번째,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이 있다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이는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는 패괴 성품과 결점이 있고 할 줄 모르는 일도 많지만 그의 실행 길은 옳다. 그는 위장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며, 갈망하는 태도, 경건한 태도로 진리를 대한다. 적그리스도의 부류는 영영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은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의 생각과 영원히 다르기 때문이다. 왜 다르겠느냐? 그의 내면에는 사탄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탄 성품에 기대 살아가는 것은 권력을 잡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는 늘 여러 방식으로 음모와 계략을 쓰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을 미혹해 남들의 숭배와 추종을 받으려 한다. 따라서 그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위장하고 기만하고 거짓말하며 남을 속인다. 이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는 뭐든 옳고 뭐든 할 줄 알며 뭐든 가능하다고, 남보다 똑똑하고 지혜롭고 더 많이 안다고, 무슨 일에서든 남보다 낫고 남보다 뛰어나다고, 나아가 어떤 무리에서든 그는 출중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에게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그래서 그는 사칭하는 것을 배우고 다양한 행동 방식과 모습을 보인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3)> 중에서
패괴된 인류에겐 일반적으로 이런 병폐가 있다. 지위가 없을 때는 누구와 접하거나 이야기할 때 허세를 부리지 않으며, 특정한 방식이나 어조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스스로를 포장할 필요도 없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심리적 압박감도 없으며 다른 사람과 털어놓고 교제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는 친화력이 있어 접근하기 쉽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그는 거만해지고 평범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누구도 그를 가까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존귀하고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일반인을 업신여기고 말할 때 거드름을 피우고 다른 사람들과 터놓고 교제하지도 않는다. 왜 그는 터놓고 교제하지 않겠느냐? 그는 자신이 지위가 있고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하며, 더 큰 분량을 갖고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은 고생을 하고 더 많이 헌신해야 하며 어떠한 사탄의 시험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리더는 부모나 다른 가족이 죽더라도 울음을 억제해야 한다고, 혹은 앞에서는 울지 않고 몰래 울어 아무도 그들의 단점이나 결점, 연약함을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극적이 될 때도 어떤 사람도 알게 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모든 것을 숨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이 지위를 가진 후 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 정도로 자신을 통제한다면, 지위가 그의 하나님, 그의 주님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그가 아직도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겠느냐? 사람이 일단 그런 생각을 갖고 자신을 그러한 범위 안에 가두어 규정하고, 자신을 그런 인물로 포장한다면, 그는 지위를 매우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남이 그보다 더 강하고 훌륭하다는 사실이 그의 치명적인 곳을 건드린다면, 그가 육을 이길 수 있겠느냐? 남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지위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먼저 어떻게 해야겠느냐? 너의 속셈과 생각, 마음에서 그것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어떻게 제거하느냐? 원래 지위가 없었을 적 너는 어떤 사람들이 눈에 거슬리면 그냥 상대하지 않았다. 현재 지위가 생긴 너는 누군가 눈에 거슬리거나 문제가 있으면 그를 도와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껴 그와 많이 교제하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렇게 실행하면 마음속에 어떤 기분이 드느냐? 기쁘고 평안한 기분이 든다. 네게 어려움이 있거나 네가 실패했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추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어려움과 연약함,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거역했는지, 그 후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왔는지, 어떻게 하나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교제해야 한다.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효과는 어떠하냐? 틀림없이 매우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절대 너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고, 네 체험을 부러워할 것이다. 어떤 자들은 사람에게 지위가 있으면 관리다운 모습을 갖추고 말도 점잖게 해야 남들의 존중과 우러름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생각이 맞느냐? 만약 네가 지금 이런 생각이 옳지 않음을 의식할 수 있다면 너는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육적인 것을 저버려야지 허세를 부리거나 외식하는 이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진리를 구하지 않아 그 사상과 관점이 네 안에서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리면 너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게 된다. 그럼 아무도 너를 꿰뚫어 보거나 네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게 빈틈없이 포장할 것이다. 남을 대할 때는 가면을 쓰고 말해 남들이 네 마음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네 마음을 보이는 법을 배우고, 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사람과 가까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너는 육적인 기호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해야 한다. 그러면 네 마음은 평안해질 것이며, 내면에 기쁨이 깃들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든 먼저 자신의 의식과 생각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만약 또다시 자신을 포장하고, 꾸미고 싶어진다면 너는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 저는 또 포장하려 했고, 음모와 간계를 꾸미려 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마귀입니다! 정말이지 당신의 혐오를 받는 존재입니다! 지금 저는 저 스스로가 역겹습니다. 바라옵건대 저를 질책하고 징계하고 징벌해 주십시오.’ 너는 자신의 태도를 꺼내 놓고 기도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에게 의지해 그것을 폭로하고 해부하고 제약해야 한다. 네가 이렇게 해부하고 제약한다면 네가 행하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패괴 성품이 위축되어 드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네 마음이 어떤 기분이겠느냐? 적어도 어느 정도 해방감을 느끼고 평안하고 기쁜 기분이 들 것이며, 고통도 줄어들고 연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잠깐 상실감이 들 뿐, ‘나는 리더이고 지위와 신분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보통 사람과 같을 수가 있겠어? 어떻게 보통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순수하게 털어놓을 수가 있겠어? 이 얼마나 위신이 떨어지는 일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 봐라. 또 작은 문제가 있다. 사람에게 있는 패괴 성품은 단번에 깨끗이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단시간에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네가 패괴 성품을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진리를 명백하게 교통하고 패괴 성품을 인식하게 되면 그 즉시 패괴 성품을 없앨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은 곧 패괴 성품과 싸우는 과정이다. 사람 자신의 생각과 상상, 사치스러운 욕망 같은 것들은 기도를 통해 저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이겨 낸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 반복된 싸움을 거쳐야만 완전히 포기할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진정으로 효과에 다다를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지위의 시험과 결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중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고, 절대 남에게 거짓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게 자신의 결점이든, 단점이든,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이든, 혹은 패괴 성품이든 모두 솔직히 교제하고, 포장하지 마라.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자 가장 공략하기 힘든 첫 번째 관문이다. 이 관문을 공략한다면 진리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그 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마음을 열고 너의 모든 것, 즉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것을 모두 드러내 남들에게, 또 하나님에게 모조리 보여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숨기거나 가리거나 위장하지 않고, 간사하게 행동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너는 빛 속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이 감찰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네가 원칙 있고 투명하게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거나 자신이 잘못한 일을 위해 감추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면 너는 아주 홀가분하게, 속박도 고통도 없이 온전히 빛 속에서 살 수 있다. 솔직하게 교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다. 그다음 너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어떤 것들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싫어하는지 등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하고, 그때그때 돌려놓으며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잡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네 내면의 것들을 없애고 진리로 대신하기 위함이다. 지난날, 네가 거짓말과 기만 같은 간사한 성품으로 일하며 거짓말하지 않고서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리를 깨닫고 사탄의 그런 수법을 혐오하여 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직함과 순수함, 순종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매사에 마음을 열고 솔직히 털어놓아 감싸거나 꾸미거나 은폐하지 않고 숨김없이 형제자매들과 교제하여 그들에게 네가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보여 주고 네 정직한 태도를 보여 주면, 진리는 서서히 네 내면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조금씩 성과가 드러날 것이다. 네 마음이 점점 정직해지고 하나님을 향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줄 알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양심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너에게 작용했고 이미 네 생명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것은 훈련받을 좋은 기회를 얻은 것으로, 이는 좋은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자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 하느냐? 우선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은 바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진리를 구해야 한다. 스스로 구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교제하며 구하면 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좀 더 빠르고,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혼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묵상하는 데만 집중하여 진리를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너무 느리다. ‘먼 곳의 물로는 당장의 갈증을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리에 있어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 많이 묻고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제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다 지체하지 않을 수 있다. 너는 그저 이제 막 발탁되었고 수습(修習) 기간에 있는 것이지 정말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를 갖춘 것은 아니다. 너에게는 아직 그런 분량이 없다. 그러므로 발탁되었다고 해서 진리 실제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사역에 부담을 갖고 있고,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췄기에 너를 발탁하여 양성하는 것뿐이다. 너는 이런 이성을 갖춰야 한다. 발탁되어 리더 일꾼이 된 후, 너는 높은 자리에 서서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진리 실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아는 척, 영적인 척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꼴이다. 너는 사실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상부에 물어보고 교제하면 된다. 이는 체면 깎이는 일이 아니다. 네가 물어보지 않아도 상부에서는 네 실제 분량을 알고 있고, 또 네게 어떤 진리 실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구하고 교제하는 것은 네가 해야 할 일이고,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이성이며, 리더 일꾼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 아니다. 네가 만약 리더가 되었는데도 아직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상부에 물어보면 너무나 체면이 깎이는 일 같고 남들이 우습게 볼까 봐 두려워서 본인은 뭐든 이해하고 뭐든 아는 것처럼 위장하고, 본인에게 사역 능력이 있어서 교회 사역은 뭐든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일깨워 줄 필요도, 교제해 줄 필요도 없고, 어느 누가 공급해 주고 붙들어 줄 필요도 없는 것처럼 위장한다면 이것은 위험하다. 이는 너무도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비이성적이다! 자신의 주제조차 모르니, 이런 자는 바보 아니겠느냐? 이런 자는 사실상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며, 교체되고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따라서 갓 발탁된 리더 일꾼은 누구나 자신에게 진리 실제가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하고,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리더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리더 일꾼이 발탁한 것이고, 하나님 선민들이 선출한 것이며, 이것이 너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거나 참된 분량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일을 이해하면 너에게 이성이 조금 생길 것인데, 이것은 리더 일꾼이 반드시 갖춰야 할 이성이다. … 너는 훈련, 양성 과정에 있으며, 패괴 성품이 있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이 이런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아십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위장하는 것이 아주 미련하게 보이지 않겠느냐? 너희는 미련한 자가 되기를 바라느냐? (아닙니다.) 미련한 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면 마땅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이성이 있는 사람, 겸허하게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위장해서도 안 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네가 할 줄 아는 것은 단지 약간의 업무 지식에 불과할 뿐, 진리 원칙이 아니다. 너는 진리 원칙을 깨달은 바탕 위에 너의 업무적인 특기와 네가 숙지한 학문과 지식을 적절히 발휘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 아니겠느냐? 실행의 길이 아니겠느냐? 네가 이렇게 하는 법을 배우면 너는 실행할 길이 생기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절대 고집부리지 말고 위장하지도 마라. 고집과 위장은 모두 이성적인 행동이 아닌 가장 미련한 행동이다. 패괴 성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은 다들 가장 미련한 사람이다. 진리를 구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피조물 본연의 위치에 서서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쉬우냐? (쉽지 않습니다.) 어떤 면이 어렵겠느냐? 사람은 항상 자기 머리에 많은 후광과 감투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자처하고 있는 위인과 초인의 신분과 지위 및 위선적이고 거짓된 행동과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않고 언행이 항상 이런 것들에 속박받고 통제받는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서 급히 알려고 하지 않고 자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고 진실한 마음을 바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네 지위와 감투, 신분과 같은 것들이 바로 거짓되고 실속 없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과 어긋나고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너를 결박하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다. 이런 것들이 네게 무엇을 가져다주느냐? 위선에 능하게 만든다. 남들이 우러러보고 탄복하도록 이해한 척, 똑똑한 척, 위인인 척, 유명인인 척, 능력 있는 척, 지혜로운 척, 심지어 무엇이든 알고, 무엇이든 할 줄 알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척하게 만든다. 다들 일만 생기면 널 찾고, 의지하며, 앙망하게 되니 이렇게 하는 것은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기분이 좋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못하고, 간파하지 못했으면서 간파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분명 자신이 잘못했으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속으로는 죽도록 괴로우면서 “이번엔 정말 제 잘못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죄송하고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쳤고 하나님 집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어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인정할 용기가 나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어째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느냐?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내게 준 명성, 후광, 나에 대한 그들의 우러름, 신뢰, 더욱이 오랫동안 쌓아 온 간절한 기대를 헛되게 할 수는 없어. 그러니 나는 계속 그런 척해야 해.’ 이렇게 가식을 떠는 게 어떠냐? 위인이나 초인이 되었기에 형제자매가 무슨 일이든 너를 찾아와 상담하고 자문을 구하며 심지어는 네게 간구까지 하려 할 것이다. 마치 네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너는 속으로 괴롭지 않겠느냐? 물론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괴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지위가 있으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대단히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 정상적인 사람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같으면 괴로워한다. 자신이 남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을 지체하고 하나님의 선민에게 지장을 주어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성적인 사람이다. 이것이 해결하기 쉬운 문제겠느냐? 이성적인 사람은 쉽게 해결하겠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지위만 차지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지위의 복만 누리려 하다가 결국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 드러나 도태된다. 이는 화를 자초한 것으로, 당연한 것이다! 그를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할 가치가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왜냐하면 기어이 스스로 높은 자리에 서서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으니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다면 이런 감투와 후광을 모두 버리고 마음속의 진실한 내적 상태와 생각을 형제자매에게 말해야 한다. 그러면 형제자매들이 너를 올바르게 대할 것이니 너도 가식을 떨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 네가 자신의 진실한 내적 상태를 숨김없이 밝힌다면 한결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해지지 않겠느냐? 왜 굳이 그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길을 가려 하느냐? 자신의 실제 사정을 밝히면 형제자매들이 정말 너를 무시하겠느냐? 정말 너를 버리겠느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형제자매들이 찬성하고 네가 속 얘기를 털어놓은 용기에 탄복하며 네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고 있는 교회 사역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형제자매들이 정말 네 고충을 알게 되면 그들이 나서서 너를 도와주고 너와 협력할 것이다. 너희 생각에도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남들의 우러름을 받으려고 늘 위선을 떠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평상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민과 속 시원하게 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누가 너를 우러러보고 칭찬하거나 부추기며 추켜세우는 말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말고 거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님이시잖아요? 아는 게 많으시니 진리도 잘 깨달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이렇게 대답하여라. “대학교수는 뭘요. 아무리 아는 지식이 많아도 진리를 대신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지식 때문에 제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걸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절 너무 과대평가하지는 마세요. 저도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물론 지위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역시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되어 피조물 본연의 위치에 서고 싶고 이렇게 괴롭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게 마음 같지 않아서 항상 높은 자리를 자처하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곤란해진다. 그는 남들이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숭배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무슨 일이 생기든 그를 찾아오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남들이 그를 의지하고, 그의 말을 따르며, 그를 우러러보는 것을 즐긴다. 그를 만물박사,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가 모르는 것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여기고, 나아가 그를 이긴 자로 여기면 좋아하고 흡족해한다. 이는 구제 불능이다.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칭찬과 면류관을 받아 한동안 초인이나 위인이 되면 괴로워하며 힘들어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너를 치켜세우는 사람은 너를 불구덩이로 몰아넣는 사람이니 그를 멀리하거나 기회가 되면 그에게 자신의 패괴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진실한 내적 상태를 털어놓고 자신의 결점이나 흠을 폭로하면 그가 너를 숭배하지 않고 우러러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겠느냐? 사실 손쉽게 할 수 있다. 네가 정말로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네가 오만 방자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네가 정말 초인이나 위인을 자처하면서 이런 성품을 조금도 혐오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면 그저 남들 앞에서 망신살이 뻗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정말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늘 초인이나 위인이 되고자 하는 패괴 성품에 대해 혐오와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최소한 이런 감정을 느껴야만 자기를 혐오하고 육을 저버릴 수 있다. 그럼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정상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먼저 자신이 지키고 있는 것 중 좋고 값지게 여기는 것 그리고 남들이 네게 탄복하고 칭찬하는 헛된 미사여구를 모두 부인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지, 어떤 결함과 패괴 표출이 있는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면 솔직히 마음을 열고 남들과 교제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네 실제 내적 상태와 사상 관점을 보게 하고, 네가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해야 한다. 절대 스스로를 위장하거나 포장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패괴와 결함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숨겨서도 안 된다. 이런 거짓된 행동이 바로 심리적인 장애물이자 패괴 성품이다. 그것은 사람이 회개하고 변화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너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너에 대한 남들의 찬사와 네게 안겨 주는 후광, 그리고 면류관 등 거짓된 것들을 가져와 반성하고 해부하고, 그것의 위해를 간파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실제 분량을 알고 스스로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어 자신을 초인이나 위인으로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제대로 파악하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다. 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너에 대한 창조주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착실하게 평범한 사람, 진실한 사람이 되어 너라는 피조물과 창조주인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로, 사람이 완전히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그의 앞에 나아오는 것만을 받아들이지 위선적이고 거짓된 유명인이나 위인, 초인의 경배는 받지 않는다. 네가 이런 거짓된 후광을 내려놓고 자신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임을 인정하여 하나님을 향해 진리를 구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에 대한 네 마음은 훨씬 진실해질 것이고,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럴 때 너는 하나님의 붙들어 줌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자주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위인이나 초인이 되는 것이 쉽겠느냐, 아니면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쉽겠느냐?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우나 위인이나 초인이 되는 것은 어렵고 늘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고 실행해 보라고 하면 사람은 저도 모르게 초인이나 위인이 되려 한다. 이는 사람의 본성 본질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사람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너희에게 “어떻게 하면 초인이나 위인이 되지 않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말한 방법대로 실행하여 평범한 사람이 되고 위장하지 마라.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남들과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성과가 생길 것이다. 너는 차츰차츰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으며 괴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게 된다. 모든 사람은 평범하다. 사람 간에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인의 은사가 다르고 자질의 수준 차가 조금 있을 뿐이다. 만약 하나님의 구원이나 보호가 없다면 모두 악을 저질러 징벌을 받을 것이다.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사람의 상상과 허무맹랑한 것에서 빠져나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정직한 일을 하는 것을 추구하고 성실히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고 사람다운 모습을 온전히 살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쉬운 일이거늘 어째서 길이 보이지 않겠느냐? 지금은 내가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사실 또한 그렇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에요. 전부 사람의 양심과 이성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마음을 다해 하고 의지와 바람을 가지고 실행한다면 쉽게 해낼 수 있답니다.” 하지만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늘 야심과 욕망을 품고 초인과 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해도 쉽지 않다. 그들은 항상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고 강하다고 생각하여 오로지 초인이나 위인이 되려는 생각뿐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되어 피조물 본연의 위치를 지킬 마음이 없을뿐더러 초인이나 위인이 되는 것을 기어코 추구하려 하니 구제 불능인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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