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정직하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거짓을 행하지 않고, 다 털어놓으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으며,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정직하다는 것은 행동과 말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이 매우 쉬워 보이지만 너희에게는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정직한 말을 하거나 정직하게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나는 너희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너희는 너무도 ‘영악’하고,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에 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역도 한결 쉬워졌다. 너희는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좋다! 나는 너희 한 명 한 명을 모두 재난 속에 두어 불의 ‘가르침’을 받게 하겠다. 그러고 나면 너희는 ‘확고부동’하게 내 말을 믿을 것이다. 결국, 나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간교하구나!”라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울 것이다. 그때 너희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지금처럼 거들먹거리고 득의양양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처럼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은 더욱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착실하게 굴며 매우 ‘얌전’하지만, 영 앞에서는 매우 흉포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자들을 정직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가 위선자이고 ‘사교’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우롱하는 자일 것이다. 만약 네 말에 변명과 쓸데없는 설명이 많다면 나는 너를 진리 실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 만약 네가 진리의 도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면 늘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일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집에서 봉사자가 되기를 바라며, 토색하지 않고 묵묵히 근면 성실하게 공헌하기만 한다면 나는 너를 충성된 성도라 할 것이다. 너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정직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솔직하다면, 너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면, 하나님을 위해 목숨 바쳐 굳게 설 수 있다면,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고만 할 뿐 자신을 위하거나 무언가를 달라고 할 줄 모를 만큼 정직하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빛 속에서 윤택함을 얻고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살 자라고 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훈언 3칙> 중에서
지금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한 일을 하나님 앞에 내놓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의 육신을 속일 순 있어도 하나님의 영을 속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감찰을 통과할 수 없는 일은 모두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마땅히 내던져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기도할 때든, 형제자매와 대화하고 교제할 때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일을 처리할 때든 마땅히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네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때 하나님은 너와 함께한다. 네가 마음가짐이 바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일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네가 한 일을 열납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진심을 다해 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구해라. 이러한 마음이 있다면 기도가 결실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에서 기도할 때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거짓을 고하지 않고 네 속마음을 하나님께 털어놓는다면 반드시 결실을 볼 수 있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네가 한 일을 하나님의 영 앞에는 내놓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육신 앞에는 내놓을 수 없다면 이는 아직 하나님의 영의 감찰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이 누구더냐?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은 또 누구더냐? 그들은 하나가 아니더냐?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은 사람이라며 둘을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 아니겠느냐? 이 사람이 하는 일은 누구를 대신해서 하는 것이냐? 성육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하나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너를 잘 대해 주지 않는데 하나님의 영이 너를 잘 대해 주겠느냐? 네가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고, 성육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지 보아라. 네가 한 일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없다면 그것은 네가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악을 행하는 자가 온전케 될 수 있겠느냐? 너의 모든 행동, 일거수일투족, 모든 마음가짐과 반응 하나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 교회 생활을 하는 등의 영 생활, 나아가 협력하며 섬기는 일까지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실행해야 너의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과정은 사람이 정결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수록 너는 더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뜻에 더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방종함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항상 하나님 앞에 두고 살 수 있다. 또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수록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고 육을 저버릴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것은 사람이 실행해야 할 길이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눌 때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려고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더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인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요구대로 처신해야 하고,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경험해야 한다.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진리를 실행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면 정직한 사람이 된다. 어리석은 사람, 바보, 솔직한 사람은 절대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 간사함과 가식을 벗어 버리고, 거짓말하거나 속이지 말고,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정예병이 되라고 요구하는데,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란 무엇이냐? 반드시 진리 실제를 갖추고 그리스도와 한마음 한뜻이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건 하나님을 높이 받들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하고, 진리로 사탄과 전쟁을 치를 수 있어야 한다. 범사에 하나님 편에 서서 간증이 있고 진리 실제를 살아 냄으로써 사탄에게 수치를 안기고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승리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다. 그리스도의 정예병은 이기는 자, 사탄을 이기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간사한 사람이 되지 말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보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간사한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진리를 실행해서 이룰 수 있는 성과이다. 이것은 행동 방식의 변화가 아니고, 말 한 마디를 덜 하거나 더 하는 것, 혹은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속셈, 사람의 마음과 생각, 사람의 야심과 욕망에 관한 것이다. 패괴 성품의 표출에 속하는 것과 잘못된 것에 속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근본적으로 바꿔 진리에 부합하게 해야 한다. 성품이 변화되려면 사탄 성품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간사한 성품의 본질, 즉 간사함은 바로 사탄의 성품이자 마귀의 몰골이라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네가 사탄을 증오하고 버릴 수 있다면 패괴 성품을 쉽게 벗어 버릴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 간사한 내적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또 그것이 간사한 성품의 표출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간사한 성품은 쉽게 변화하지 못한다. 우선은 네가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측면의 패괴 성품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만약 네가 드러낸 그것이 간사한 성품이라면 속으로 증오하겠느냐? 만약 증오한다면 너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겠느냐? 자신의 속셈을 단속하고 자신의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이런 측면에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요구에 도달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도 사람도 속이지 않아야 하며, 설령 상대가 좀 바보 같거나 어리석더라도 속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바보 같은 자, 어리석은 자를 속인다면 그건 부도덕한 짓이니 그런 자는 곧 마귀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그 누구에게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탄, 마귀에게는 반드시 지혜롭게 대해야 한다.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사탄, 마귀에게 우롱당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쉽다. 지혜를 발휘하고 진리를 실행해야만 사탄을 이기고 그것에게 치욕을 안길 수 있다.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깨닫지 못할 것이고, 사탄에게 미혹되고 희롱당하며 짓밟혀서 결국 사탄에게 삼켜질 수밖에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여섯 가지 방면의 패괴 성품을 알아야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마음을 하나님께 활짝 열어야 한다. 활짝 연다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네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속셈이 있는지, 무엇에 지배받는지 등을 모두 하나님께 털어놓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말하든, 사실 하나님은 똑똑히 볼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할 수 있다면, 즉 사람들에게 숨긴 것도 하나님에게는 활짝 열고 분명히 말할 수 있고, 숨김이 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아무 속셈도 없다면, 이것이 바로 활짝 연 것이다. 가끔 네가 솔직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당신은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해서 저한테 큰 상처를 주는데, 그런 솔직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느냐? 없다. 가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네가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사과하며, 자신의 말이 지혜롭지 못했고 그의 연약함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는 네가 나쁜 마음을 품지 않은 정직한 사람이며, 그저 말하는 방식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뿐이라고 여겨 너에게 따지지 않을 것이며, 속으로는 이런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틈이 생길 리 없지 않겠느냐? 틈이 없으면 갈등이 생기지 않고, 문제가 금세 해결된다. 사람이 이렇게 살면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즐겁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바른대로 마음속 말을 해야 한다. 존엄과 인격, 인품을 갖춘 사람이 되고, 형식적인 말과 거짓말, 가식적이고 남을 기만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밖에,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한 가지 측면의 실행도 필요하다. 본분을 이행할 때 정직한 태도를 가져야 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적어도 양심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진리 원칙과 하나님의 요구에 공을 들여야 한다. 입으로만 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한 가지 태도를 가졌다고 해서 진리 실행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네 실제가 어디에 있느냐? 실제 없이 구호만을 외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감찰할 때 사람의 속마음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와 행동, 실행도 살핀다. 네가 입으로는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지만 일이 닥치면 거짓말도 하고 속일 수도 있다면, 이것이 정직한 사람의 행동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이것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이 다르고, 항상 입을 놀려 사람을 속이고, 경건한 척한다. 또 바리새인처럼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할 때는 막힘없이 줄줄 암송하지만, 일이 닥치면 성경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명리와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면서 지위의 복만 누렸다. 바리새인이 바로 그렇게 외식했다. 그들이 걸은 길은 옳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혐오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때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속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네가 오늘 거짓말을 한 마디 했는데 남들이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 보자. 모두에게 그 사실을 얘기할 용기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 성찰하고 발견한 잘못, 했던 거짓말과 기만의 말을 얼른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 반성하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또 제 이익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또 거짓말을 하면 저를 징계해 주세요.” 네가 이런 태도라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억할 것이다. 거짓말하는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이 몹시 어렵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며 네가 매번 난관을 넘길 수 있도록 인도하고 도울 것이다.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던 네가 용기 있게 거짓말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너는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할 뿐 아니라 어째서 거짓말을 했는지, 그 속셈과 목적은 무엇인지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용기 있게 이 난관을 뚫고 사탄의 속박과 통제에서 벗어나 차츰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면 너는 점차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네가 육의 통제라는 이 관문을 뚫고 진리에 순종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공개적으로 태도를 밝히고 아무 거리낌도 없을 수 있다면, 너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사람도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한다. 비록 네가 가끔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하거나 개인적인 속셈, 사심을 품을 수도 있고, 또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방법이나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너는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속셈과 실제 내적 상태, 패괴 성품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 털어놓고 하나님에게 진리를 구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너에게 실행의 길이 생길 것이다. 네가 실행하는 길이 옳고, 네가 나아가는 방향이 옳으면, 너의 앞날 또한 아름답고 빛날 것이다. 그럼 너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평안할 것이고 영적으로 윤택할 것이며 충실하고 즐거울 것이다. 만약 육적인 속박이라는 이 관문을 돌파하지 못한 채 늘 감정과 이익, 사탄의 철학에 속박되고, 언행이 늘 수상쩍고 떳떳하지 못하다면, 이는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육적인 속박의 관문을 돌파하고 진리를 실행하면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언행 모두 떳떳하고 당당해지고, 어떤 관점, 생각이나 잘못한 일도 모두 드러내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 줄 수 있다. 마지막에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투명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투명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느냐? 매우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그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그가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할지라도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고 용서해 준다. 그 자신 역시 그것을 의식하면 바로 사과하고 시정한다. 이것이 바로 투명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가 좋아하고 신뢰한다. 네가 이런 정도에 이르러 하나님의 신임을 얻고 사람들의 신임도 얻는다면, 이는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엄이며, 이런 사람이 바로 자존감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도 너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구차하게 살아가며 온종일 거짓말하고, 일을 처리할 때 건성으로 대충 임하며 조금도 책임지지 않고, 책망과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늘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누구에게나 밉살스럽게 보이고 뻔뻔하게 산다. 그들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남에게 싫어하는 감정을 일으키고 신뢰할 수 없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인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사람들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신뢰할 수 있겠느냐?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싫어한다. 이런 사람은 100% 도태될 대상이다. 사람됨이 정직하고 신용을 지켜야 한다. 사람을 위해 일하든, 하나님을 위해 일하든 신용을 지켜야 한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하나님이 안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자는 비교적 정직한 사람이다. 믿음직스럽게 일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뿐 아니라 틀림없이 하나님도 좋아할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고, 존엄 있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됨을 갖추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우선 마음을 터놓고 모두가 네 마음과 생각, 진실한 면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거짓으로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신뢰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자 전제 조건이다. 늘 성결한 척, 고상한 척, 위대한 척, 인격이 고매한 척 꾸며 다른 이들이 너의 패괴와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너를 올곧고 위대하고 헌신적이고 공정하고 이타적이라고 여기게 거짓된 모습만 보여 준다면, 여기에 간사함과 기만이 있지 않겠느냐?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들이 너를 꿰뚫어 보지 못하겠느냐? 그러니 너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말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라. 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고, 속으로 생각한 것, 계획한 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다 보여 준다면, 그것이 바로 정직한 것 아니겠느냐? 네가 다른 이에게 네 속내를 드러낼 때는 하나님도 지켜본다. 하나님은 “너는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구나. 그렇다면 너는 내 앞에서도 분명 정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만 네 본모습을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 고상한 척, 공평무사한 척 거짓된 모습을 보여 준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겠고, 뭐라고 말씀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는 영락없이 간사한 사람이자 위선자이며, 소인배구나. 너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자신의 내적 상태나 속마음을 단순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쉽겠느냐, 쉽지 않겠느냐? 이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며, 또 수시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해야 한다. 매사에 단순하게 마음을 열고 솔직한 말을 하는 훈련을 한다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큰 난관에 부딪히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으로 전쟁을 벌이고 육을 이겨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훈련하면 점차 마음이 열리고 단순해져서 말과 행동 모두 전과 다른 성과를 보일 것이다.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은 주로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실행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네가 스스로 거짓말을 하며 남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면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실행 방법은 사람이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네가 누군가를 속였거나 네가 그에게 한 말에 불순물과 자기만의 속셈이 있었다면, 너는 그를 찾아가 너 자신을 해부해야 한다. “제가 그때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그랬는데 나중에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지금 이렇게 사과드리니 용서해 주세요.” 그 말이 상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거짓말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이 다 있지?’ 상대는 그 용기에 무척 감탄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느냐? 다른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자제하고 억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한 후에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이렇게 해부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사과한다면, 훈련을 거듭할수록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고, 갈수록 거짓말도 줄어들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자제하고, 해부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중에 사과까지 하는 것은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1~2년 혹은 3~5년 훈련하면 반드시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고,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된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3~5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말하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 두 번째 단계는 간사함과 기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간사함과 기만은 거짓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행동만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겉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간사함과 기만을 품고 있다. 그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왜냐하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반성해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 간사함과 기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간사한 수작을 부리고 남을 속이는 것은 모두 속셈에 지배받은 행동이라서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 봐서 알 수도 없고, 분별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감찰하고 알 수 있다. 따라서 간사함과 기만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간사함과 기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인정하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부하든 네가 당시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말했고, 어떤 속셈이 있었고 어떻게 간사한 수작을 부렸는지를 모두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하면 너는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을 것이다. 체면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솔직하게 털어놓기는 무척 어려워진다. 어쩌면 너는 가끔은 본인의 말과 일 처리에 속셈과 목적이 담기기도 하고, 간사함과 불순물이 섞이기도 하고, 본인이 거짓말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간단하게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너에게 본인을 해부하도록 한다면, 그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일어났으며 본인이 했던 어떤 말이 기만이었는지, 어떤 속셈이 있었고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음험하고 악독한 면은 없었는지 폭로하도록 한다면, 너는 그렇게 자세히 폭로하거나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두 마디 언급에 그친다. “그렇게 된 겁니다. 어쨌든 저는 너무 간사하고 음험한 사람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는 자신의 패괴 본질, 자신의 간사함과 음험함을 올바르게 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늘 도피하는 상황, 도피하는 내적 상태에 있고,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과 타협하면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고생과 대가는 치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글귀와 도리를 얘기하며 늘 이렇게 말한다. “저라는 사람은 무척 간사하고 음험해서 언제나 행동에 속임수가 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전혀 진정성이 없습니다.” 몇 년째 이 소리를 떠들지만, 지금까지도 그는 변함없이 간사한 사람이다. 한 번도 그가 자신이 드러내는 간사한 내적 상태를 진실로 해부하고 뉘우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껏 거짓말하거나 남을 속인 뒤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사과해 본 적이 없고, 나아가 예배 때 자신을 해부하고 인식하는 체험 간증을 교제한 적도, 그 일에서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고 뉘우쳤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 적이 없다. 이런 것을 그는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을 알지 못하고, 그에게 진실된 회개도 없다는 뜻이다. 그가 자신은 간사하다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건 그저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읊는 것에 불과하다. 그가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말하는 것은 아마도 유행을 좇고, 대세를 따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아마도 교회 생활이라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형식을 거치거나 구색을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읊어 대는 사람은 영원히 진실된 회개가 있을 수 없고, 절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실행할 때는 길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먼저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거짓말하는 본질을 알아야 하며, 거짓말하는 속셈과 동기가 무엇인지, 자신이 왜 그런 속셈을 갖고 있는지, 그 속셈은 어떤 성질인지 해부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확실히 하게 되면, 거짓말하는 문제를 철저하게 간파하게 되고, 다시 일이 닥쳤을 때는 실행 원칙이 생길 것이다. 네가 이렇게 실행하고 체험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너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쉽구나. 간사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야! 나는 더 이상 간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항상 거짓말하고 둘러대기 위해 고민해야 해. 정신병자처럼 하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럼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지!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피곤해.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 진정으로 정직한 사람이 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는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측면에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하나의 돌파이다. 물론 처음 실행할 때는 정직한 말을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힘을 달라고 구해야 한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고 나면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봐 두렵습니다. 제가 패괴 성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구원해 주시고, 제가 당신 말씀대로 살며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 내면이 점점 밝아져서 ‘이렇게 실행하니 좋구나. 나는 오늘 진리를 실행했어. 드디어 정직한 사람으로 한 번 산 거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줄 것이다. 하나님은 네 마음속에서 역사하여 너를 감동시킬 것이며,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할 것이다. 진리를 실행할 때는 이렇게 실행해야 한다. 처음에는 길이 없지만 진리를 구하면서 길을 찾게 된다. 진리를 구하기 시작할 때 꼭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이 없을 때 사람의 마음은 몹시 고통스럽지만 일단 진리를 깨달아 실행할 길이 생기면 마음에 누림이 생긴다. 그 상태에서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면 마음에 위안을 얻을 것이며, 자유와 해방을 얻을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것은 많은 방면과 관계가 있다. 즉,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느 한 방면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준에 이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방면에서 기준에 이르러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관점은 옳으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단순히 거짓말을 안 하는 것과 관계되느냐? 아니다. 이는 다른 여러 방면과도 관계가 있다. 우선, 어떤 일을 대하든, 그것이 네가 실제로 본 것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알려 준 것이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든 아니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든 아니면 하나님이 네게 직접 맡긴 일이든 모두 정직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말하되, 빈말이나 상투적인 말이나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위선적인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의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속의 진짜 생각과 관점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영원히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며,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는데, 누군가 너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다고 하자. 너는 “저도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너는 속으로 네가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너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 핑계를 대며 사실의 진상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말하면 속이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네 내면에 있는 것과 속셈의 본질은 패괴 성품이다. 그것을 꺼내서 분석하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다면 정결케 될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너는 이렇게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그동안 제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꾸물거리며 마음 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대가를 치를 수 있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해이해져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했습니다. 그래서 본본 이행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이를 바로잡아 최선을 다해 효율을 높이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속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은 마음속 말이 아니라, 책망받거나 문제가 들키거나 책임을 추궁당할까 봐 두려워 갖가지 원인과 이유, 핑계를 대며 사실의 진상을 감춘 것이다. 먼저 사람의 입을 막은 뒤 책망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 생겨난 근원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든 그중에 솔직한 말과 실제 상황도 있겠지만, 일부 핵심적인 말에는 거짓과 속셈이 섞여 있다. 그래서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분별하고 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말에는 불순물과 과장이 섞여 있고, 어떤 말은 사실에 부합하며, 어떤 말은 사실에 위배된다. 거짓과 진실을 함께 사용해 진위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람이 가장 간사하고, 분별하기 가장 어렵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수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도태될 대상이다.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겠느냐? 어떤 것이 정직한 사람의 실행 방식이겠느냐? 너희는 사실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활짝 열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와 실제 문제를 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의 실행 방식이며, 이렇게 실행해야 옳다.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려고 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마음이 진실로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는 가장 먼저 네 진심과 진솔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교류할 때 언제나 무성의한 말, 상투적인 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무책임한 말, 상상하는 말, 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만 한다면, 이는 진실한 것도, 성의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정직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 어떤 사람이 네게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어쩌다가 소극적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사실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괜찮아요. 그건 소극적인 것이 아니죠.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상대는 이 말을 듣고 무척 위안이 되었겠지만 네 태도는 진실한 것이 아니다. 너는 상대를 건성으로 대했고, 상대가 마음이 편하고 위로를 얻게 하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너는 진심으로 그를 돕지 않았고 그의 문제를 분명히 말해 주어 그가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으며, 정직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너는 그저 그를 위로하고, 그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성의하게 대했을 뿐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정직한 사람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는 자신이 보고 정확히 판단한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체험했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보십시오. 맞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맞는다면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제 말이 귀에 거슬려 상처가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제 목적은 당신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은 거죠. 당신은 여태까지 이런 억울함을 당해 본 적이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극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것 아닙니까?” 그는 듣고 네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네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저도 늘 소극적이 됩니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그럼 상대는 모두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소극적인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고, 결국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태도와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돕는다면, 그가 진리를 깨닫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바이고, 사람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진리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들을 준수해야 하겠느냐? 서로 진솔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할 때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환심을 사고 아첨하는 이방인들의 행위를 신봉하지 마라. 하나님은 사람이 아첨하고 맞춰 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솔하게 대하면 된다. 진솔하게 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포장하지도 감추지도, 숨기지도 가리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단순하게 마음을 열어야 하며, 거리낌이 없고 그릇된 심보나 심술도 없이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다. 진솔하게 대하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개인적인 바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고 네가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네가 한 말이 어떤 결과가 생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고려할 필요도 없다. 생각한 것을 바로 말하되 속셈을 갖지 말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뜻이나 불순물이 너무 많으며 말을 할 때 늘 잔머리를 굴리며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일은 말하고, 어떤 일은 말하지 말아야겠다. 골라서 말해야지. 나한테 유리하고, 내 결점을 가릴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야겠어.’ 이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말하기 전에 마음속에는 온통 나쁜 생각뿐이며, 하고 싶은 말을 몇 번이나 가공했다. 그러니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렇게 순수하지도, 조금도 진실하지도 않으며, 개인의 속셈과 사탄의 간계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는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꿍꿍이나 불량한 저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말을 할 때 늘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데, 안색이 좋아 보이면 계속 말을 하고, 안색이 안 좋아 보이면 참고 말하지 않는다. 상대의 눈빛이 좋지 않아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으면 ‘그럼 당신이 관심을 보이고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말을 해야겠다. 나한테 호감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야.’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누가 악행을 저지르고 교란하는 것을 보고도 고발하지 않는데, 그의 마음은 이렇다. ‘이 일을 내가 미리 보고하면 아마 미움을 살 거야. 만일 잘못 보고했다가는 책망도 받아야 해. 다른 사람이 먼저 보고하고 나서 나도 사람들을 따라 같이 보고하면 설사 잘못 보고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여럿이 잘못하면 죄가 아니잖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는데 내가 모난 돌이 될 수는 없지. 바보나 기를 쓰고 앞으로 나서는 거야.’ 이것이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냐? 분명 아니다. 이런 사람은 너무나 교활하다. 그가 만약 교회 리더나 책임자를 맡는다면 교회 사역에 손해를 가져오지 않겠느냐? 분명 그럴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느냐? 가령 어떤 리더가 나쁜 짓을 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했지만 다들 아무도 이 사람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상부에서도 이 사람이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 혼자만 그 실체를 알고 있다고 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너는 사실대로 문제를 상부에 보고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일이다. 너는 이 일을 숨긴 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이 리더는 악행을 많이 저질러 사역을 망가뜨리고 다들 그를 폭로하고 처리한다. 너는 그제서야 일어나서 입을 연다. “저는 일찍부터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닌 걸 알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제가 만약 얘기했더라면 다들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얘기하지 않았죠. 그가 나쁜 짓을 해서 모두들 분별이 생겼으니 제가 그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이게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매번 누구의 문제를 폭로하고 어떤 문제를 보고하든 항상 대세를 따르고 끝에 가서 일어나 폭로하고 보고한다면 그것이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냐? 그건 전혀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네 눈에 거슬리거나 혹은 네 심기를 건드린 사람이 있는데, 네가 보기에도 악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속이 좁아서 그를 미워하게 된 너는 보복하고 싶고 망신을 주고 싶은 마음에 온갖 방법을 짜내고 기회를 찾아서 상부에 그에 대해 안 좋게 얘기했다. 너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 그 사람을 정죄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네 속셈은 이미 밖으로 드러났다. 즉, 상부의 손을 빌려서, 혹은 하나님이 한마디 하게 해서 그를 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너는 상부에 문제를 보고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분명 개인의 사심, 불순물이 들어 있고, 진솔하게 대하는 것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만약 악인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네가 교회 사역을 지키기 위해 상부에 문제를 보고했다면, 더군다나 보고한 문제가 완전히 사실이라면 그런 경우는 사탄 철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그건 정의감과 책임감이 있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 해당하는데, 그게 바로 진솔하게 대하는 모습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2)> 중에서
사람이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마음과 영을 하나님께 완전히 열어 놓았고, 숨길 것도, 피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또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털어놓았으니 이것은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간격이 있겠느냐?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 쉽게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를 가리켜 간사하다고 해도, 교만하고 독선적이라고 해도 그는 다 인정한다. 그는 인정하기만 하면 끝인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진리 원칙을 향해 노력하며,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치고,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시정할 수 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수많은 잘못된 행동 방식을 고치게 되고, 간사함, 기만, 대충 임하는 것 등이 점점 줄어들며, 살아갈수록 점점 더 광명정대해지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목표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면 빛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사람이 빛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행한 일이므로 사람이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사람이 빛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며, 일이 닥칠 때마다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법을 알고 양심과 이성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록 의인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제법 어느 정도 사람다운 모습을 갖춘 것이다. 최소한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일이 닥치면 진리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으니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게 된다. 비록 진리를 깊이 깨닫지는 못했지만 말을 듣고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고, 악에서 떠날 수 있다. 그에게 맡긴 임무나 본분을 마음과 뜻을 다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신뢰할 만하며, 하나님도 마음을 놓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숨길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여전히 뒤에서 떳떳하지 못한 꼼수를 부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그의 마음은 완벽하게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감추고 숨긴 게 없다. 그는 하나님에게 마음속 말을 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이든 다 하나님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조금도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도달하면, 사람의 삶이 수월해지고 자유로워지며 해방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입으로 말만 하면 정직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이 주어졌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가 이행하도록 제안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자신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육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너의 마음과 사랑을 전부 본분에 사용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보여 줘야 하는 모습이다. 만약 네가 깨닫고 알게 된 것을 행하지 않고, 50~60%의 힘만 쓴다면 이는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사리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며 몸을 사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을 쓰지 않으며, 반드시 도태시킨다. 하나님은 오직 정직한 사람에게만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라 해도 반드시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언제나 건성으로 임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은 전부 간사한 사람이자 마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 도태될 대상이다. 혹자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돼. 사실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건 쉬워.’라고 생각하는데, 이 주장이 어떠하냐?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좁은 범주의 일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너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다. 그러므로 정직한 마음이 더없이 귀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무엇이겠느냐? 그 마음은 네 행위를 지배하고 네 내적 상태를 바꿔 놓으며, 네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게 한다. 이 마음은 더없이 귀하다. 네가 그렇게 정직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내적 상태로 살 것이고, 그러한 행위와 노력이 있을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정직한 사람으로 살려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절대 교활한 사람이 되지 마라. 문제가 닥쳤을 때 책임을 회피하며 본인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이런 행동은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비난을 받는데 하나님 집에서는 오죽하겠느냐! 이것은 하나님에게 정죄되고 저주받는 짓이고, 하나님 선민들에게 혐오받고 버림받는 짓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며, 간사한 사람, 교활한 사람을 혐오한다. 네가 교활한 사람이 되어 농간을 부리는데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지 않을 리 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너를 가만둘 리 있겠느냐? 언젠가는 너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교활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더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한순간 어리석게 군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다. 만약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고집불통이다. 정직한 사람은 책임을 질 줄 안다. 그는 자신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이익을 지킨다. 또 마음이 정직하고 선량하며, 한 그릇의 맑은 물처럼 한눈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런 사람은 일 처리도 투명하다. 간사한 사람은 온갖 농간을 부리며 늘 꾸미고 숨기고 가리면서 자신을 아주 빈틈없이 포장해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한다. 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감찰할 수 있다. 하나님 눈에 네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교활한 인간이고, 좀처럼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간사한 수작을 부리며 마음을 보여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를 좋아하지 않고 혐오하고 포기할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형통하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냐? 하나같이 꿍꿍이가 가득한 사람, 몹시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고, 영락없는 마귀 사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하겠느냐?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자는 바로 마귀이고,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 부류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너희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마라. 말을 할 때 항상 눈치를 살피고, 일을 처리할 때 늘 분위기를 보면서 처세에 능한 사람, 내가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인 사람이다.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을 해도 그것은 전부 사람을 기만하는 마귀적인 말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마귀 사탄이다.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자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말해 보아라. 간사한 사람,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혐오하고 버리며, 한쪽으로 제쳐두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짐승과 같은 부류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눈에, 이런 자들은 사람의 탈을 썼지만 본질은 마귀 사탄 부류의 자들이고,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절대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이행하거나 어떤 사역을 할 때에는 반드시 마음이 순결해야 한다. 너의 마음이 맑은 물처럼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고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가짐이 옳은 것이겠느냐? 바로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든 모두 꺼내 놓고 다른 사람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너의 방법이 틀렸다며 다른 의견을 제시해 주었을 때, 네가 그 방식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것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실행하면, 다른 사람들이 네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고, 바른길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일을 함에 원칙이 있고 맑아서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성이 있으며, 마음속에 어두운 부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진심과 정직한 태도로 일하고 말하고,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맞으면 맞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며 별다른 수단을 부리지 않고 감추는 것이 없고, 네가 매우 투명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일종의 태도 아니겠느냐? 이는 사람이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일종의 태도이며, 이런 태도는 그 사람의 성품을 대표한다. 반대로,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전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소통하지 않으며, 일을 할 때도 상의하지 않고, 늘 마음을 닫고 있어 마치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것처럼 자신을 꽁꽁 숨긴다면, 이런 자는 매우 간사한 자 아니겠느냐? 예를 들어 보자. 자신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에 그는 ‘일단 말하지 말아야지. 말했다가 당신들이 사용해 버리면 내가 돋보일 수 있는 기회를 뺏기는 거니까 그러면 안 돼. 일단 비장의 카드로 남겨 두겠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짐작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는 ‘일단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지. 만일 말했다가 더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오면 망신이잖아? 그러면 다들 내 실제 실력을 알게 되고, 내가 이 측면에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잖아. 말하면 안 돼.’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엇을 고려했고 어떤 속셈이 있든 상관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늘 이런 관점과 태도로 자신의 본분을 대하고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데,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것이 바로 교활하고 간사하며 사악한 성품이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말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뒤로 몰래 남겨 놓는 것이 있다. 무엇을 남겨 놓느냐? 자신의 체면과 이익에 관련된 것을 남겨 놓는다. 그는 그것들이 프라이버시라서 절대 말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러면 문제가 된다! 네가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은 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고 계셔. 비록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감찰하고 계시니 분명히 알고 계셔. 하나님께 감추면 안 되니까 반드시 이 일을 말해야 해. 형제자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교제해야 해. 나의 생각과 사고가 좋든 나쁘든 사실대로 말해야 해.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 나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야 해.’ 사람은 전혀 이렇게 의식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것이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잔머리는 쓸 줄 알지만 진리를 구할 줄 모르는데, 자신의 이익과 체면, 다른 사람 마음속의 자신의 위치 또는 무게를 특히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유일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의 목숨줄로 여기고 꽉 움켜쥐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볼지, 어떻게 대할지는 그 다음이라 일단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 무리에서 우두머리인지,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자신의 말이 무게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이 위치를 선점하려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무리에 오게 되면 다들 이런 위치와 기회를 차지하려 한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려 하고, 능력이 평범해도 무리 속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무리 중에서 능력이 낮은 편이며 자질과 재능이 보통이어도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체면과 존엄, 이 최후의 보루를 반드시 굳게 지키려 하는 것이다. 설령 인격을 잃고 하나님의 인정과 열납을 잃더라도, 무리에서 쟁취하려는 체면, 지위, 남들의 우러름은 절대 잃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헛된 것들을 완전히 버리고 포기해야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버려야 할 이런 것들을 생명처럼 지키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그는 이런 이해관계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비장의 카드를 남겨 놓는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전부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자신을 위해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영예로운 일에는 늘 앞으로 나서 자신도 한몫했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 일은 그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는 늘 뒤처지기 싫어하고, 늘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그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재능도 없다고 말할까 두려워한다. 이는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 네가 체면과 지위와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네 삶이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워지며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화면을 통해 얼굴을 알릴 때, 사람은 다들 앞다투어 나선다. 다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해 많이 알려질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얼굴 알릴 기회가 적을까 봐 걱정한다. 얼굴 알릴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 이는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네가 얼굴이 알려진들 뭘 어쩌겠느냐?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본들 뭘 어쩌겠느냐? 사람들이 너를 숭배한들 뭘 어쩌겠느냐? 이것이 네게 진리 실제가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겠느냐? 이는 가치가 별로 없다. 사람이 이것들을 이겨 낼 수 있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을 때, 체면, 허영심, 지위, 사람들의 우러름이 더 이상 너의 생각과 행위를 좌우하지 못할 때, 더 나아가 너의 본분 이행 방식을 좌우하지 못할 때, 너의 본분 이행 성과가 나날이 좋아질 것이며, 순결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네가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된다. 너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이 한결 수월하다고 느낄 것이다. 체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음험함과 간사함, 악독함, 그리고 사람의 비열한 속셈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패괴 성품이 존재하는 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이 너무 어렵다. 너희는 다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체험들이 있는데, 어떻게 체험했느냐? (매일 제가 내뱉은 쓸데없는 말, 거짓말을 모두 기록한 뒤 성찰하고 해부했더니 대부분은 속셈을 품고 한 말, 허영과 체면을 위한 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했지만 여전히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가장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어려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의식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허영과 체면을 위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모두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으로, 의식하지 못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관건은 사람의 속셈과 동기를 해결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야 거짓말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 즉 본인이 이익을 얻고 덕을 봐서 자기 체면이 서고 남들에게서 칭찬받기 위한 것, 이것이 바로 거짓말을 하는 속셈과 목적이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드러내는 것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거짓말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분별해야 한다. 그렇다면 패괴 성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바로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봐야 한다.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위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의 사역, 하나님의 뜻만을 고려하고, 하나님 선민의 이익만을 고려한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 진실만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런 분량이 없어서 아직 진실만을 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는 네 분량이 너무나 작아서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진리를 깨닫는 과정, 분량이 자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은 8~10년 정도는 체험해야 한다. 8~10년이라는 이 기간은 사실 생명이 자라는 과정이고, 진리를 깨닫고 얻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해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입니까?” 사실 이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에서 거짓말을 포기할 수 있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포기하는 일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렵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매우 중요하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때 많은 실패를 겪고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때 어떻게 해야겠느냐? 소극적으로 물러서서 진리 실행을 포기해야겠느냐? 이는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여부를 가장 잘 드러낸다. 어떤 이들은 얼마 동안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한 후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내 허영과 체면, 명예가 항상 손상되어 견딜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고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싫어한다. 사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체험하지 못하고 여기에서 막혀 버린다. 그러면 무엇을 갖춰야만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까? 우선으로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이들은 몇 년 동안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체험하여 정말로 성과를 거두었다. 거짓말이 점점 줄어들고 속이는 일도 점점 줄어들어 확실히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설마 그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체험할 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겠느냐? 고통스럽지 않았겠느냐? 틀림없이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 고통을 겪을 수 있었고, 진실한 말을 하고 실질적인 일을 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가 매우 쉽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어떤 고통이든 겪을 수 있다. 진리를 실행하다가 치욕을 겪거나 좌절하고 실패했을 때,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치욕과 고통을 견딜 수 있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측면의 진리를 실행하든 어느 정도 어려움은 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특히 더 어렵다. 패괴 성품이 가장 큰 장벽이다.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이런 것들이 사탄의 철학이자 패괴 성품이다. 사람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또 이익을 얻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런 패괴 성품이 있으면 확실히 정직한 사람이 되기가 어렵다.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고, 항상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만 차츰 육을 저버리고 이익과 허영,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다. 또한, 온갖 비방과 판단을 참아 내야만 정직한 사람이 되어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훈련하고 실행하는 기간, 많은 실패가 있고 패괴 표출이 있을 때도 있고, 겉과 속이 다를 때도 있고 또는 위장하고 속일 때도 있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든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체면과 허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해 못 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얕보고 무시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늘 이렇게 솔직한 말, 진실한 말을 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고 해방되고 자유로워 허영과 체면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누구와 지내든 속으로 생각한 바를 표현할 수 있고, 상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모르는 일은 절대 아는 척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정직한 태도이다. 가끔 늘 진실하게 말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너를 깔보며 바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모두가 나를 바보 같다고 해도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될 거야. 간사한 사람은 되지 않아. 난 있는 그대로 말할 거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더럽고 패괴된 사람이라 한 푼의 가치도 없겠지만, 난 위장하지도, 거짓으로 꾸미지도 않고 진실하게 말할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편하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허영과 체면을 내려놓아야 하고, 진실한 말, 솔직한 말을 하려면 남들의 조소와 무시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해도 말다툼하며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네가 육적인 취미, 허영, 체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항상 사람들이 너를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라며,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허영과 체면을 위해 산다면, 너는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실제적인 어려움이다. 사람은 마음이 항상 허영과 체면에 통제되어 거짓말하거나 위장하기가 쉽다. 또한, 다른 사람이 너를 비하하거나 네 실정을 폭로해도 너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큰 수치와 모욕을 당한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안절부절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많은 고통과 연단을 겪을 수밖에 없고, 병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을 꿰뚫어 보면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언젠가 이런 패괴 성품을 철저히 꿰뚫어 보고 허영과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정직한 사람이 되기가 쉬울 것이고, 진실한 말을 하고 속마음을 얘기하며 남들이 어떻게 비웃든 개의치 않을 것이다. 또 남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고 대하든 모두 감당할 수 있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면, 너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고 항상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우며 자유로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패괴에서 벗어나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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