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모두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지만, 구원받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냐? 많은 사람들이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진리 얻기가 가장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만큼 얻든 상관없이, 진리를 얻기 위해 인간이 수많은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르는 것은 모두 그럴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진리를 얻기 위해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바로 심판과 형벌의 고통, 시련과 연단의 고통, 책망과 훈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따르면서 핍박과 환난의 고통, 옥고를 치르는 고통, 종교계의 비방과 정죄의 고통도 받아야 한다. 이런 고통들을 너는 모두 견뎌야 한다. 이를 견뎌 내면 너는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고, 다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을 중시하며,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행하는 연습을 하여 진리를 얻으려고 한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 이것이 인생의 바른길이다.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으로, 하나님께 가장 축복받는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자 축복이다. 어떤 사람은 본분 이행의 의미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늘 하나님과 거래를 한다. 무슨 일이 임하더라도 모두 구속과 교란을 받을 수 있고, 영향을 받고 좌우될 수 있다. 그 결과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심지어 본분을 내팽개치고 중간에 도망을 가버린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재난이 커지고 하나님의 사역이 종결되어 하나님이 상선벌악하기 시작하면, 그는 이 일의 결과를 알게 된다. 그러니 너희는 평소에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진리를 자주 교제해야 한다. 진리 추구와 상관없는, 지금 생각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은 일단 생각하지 마라. 인생의 대사는 결혼, 일, 진로 혹은 안신입명만이 아니다. 또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 생계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피조물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과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이 맡긴 일과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사람은 이런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며 매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고, 비교적 추구하는 사람은 본분도 이행하고 있다. 이는 인생의 방향의 시작점이 올바른 것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이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생명 진입의 길에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다. 진리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러면 진리 추구의 길을 갈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야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택하고 예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아직 뿌리가 약하다. 큰 재난이나 시련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소한 사탄의 시험에도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다. 이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으로, 매우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이 박해와 환난이 닥쳤을 때 넘어져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어떤 사람은 지위가 생기자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여 드러나 도태되었다. 너희는 이런 일들을 모두 똑똑히 보았다. 그러니 너희는 지금 우선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인생의 방향과 목표,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정해 놓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고, 공을 들이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밖에 다른 일들은 우선 생각하지 마라. 네가 그런 일들을 계속 생각하면 본분 이행에 영향받고, 진리를 추구해 구원받는 이 핵심적인 큰일이 영향을 받게 된다. 네가 직장을 찾고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는 것, 사회에서 입지를 굳히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 결혼과 배우자를 찾는 것, 그뿐만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여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등을 생각해야 한다면, 능력을 더 키워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이렇게 많은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겠느냐? 네 마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담을 수 있느냐? 사람이 평생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겠느냐? 인생의 황금기가 몇 년이나 되겠느냐? 사람이 평생에 걸쳐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기는 바로 20세부터 40세까지이다. 이 시기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진리를 모두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또한 어느 누가 연애나 결혼으로 너를 시험하고 유혹하더라도, 혹은 너에게 적잖은 명예, 지위, 이익을 준다 하더라도, 네가 본분을 포기하지 않고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설령 훗날 하나님이 너를 버려도 네가 여전히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기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이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그 세월이 헛되지 않게 된다. 네가 좋은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찾는 일을 고민하느라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며 육적인 삶에 대한 누림과 믿음 두 가지를 다 갖고자 한다면, 결국 몇 년 후에 배우자를 찾아 결혼해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이룰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하나도 없고 어떠한 진리도 얻지 못해 마음이 공허하여 가장 좋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고 느끼게 된다. 네 나이 마흔이 되어 돌이켜 보면,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어 혼자가 아니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이 족쇄를 벗어 버릴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도 가정이라는 족쇄를 차고 본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으니, 이행하려는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크다 한들 미처 신경을 다 못 쓰게 된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따르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세속을 모두 버리고 몇 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오히려 명예와 이익, 지위만을 추구하여 진리를 얻지 못했고 진실한 체험 간증조차 없다. 이는 세월을 헛되이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재 본분을 이행하지만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일이 임했을 때 체험할 줄도 모르니, 너는 그제서야 울기 시작하고 깊이 후회한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교회생활을 하며 본분을 이행하고, 함께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하던 그 나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고, 시간은 되돌리고 싶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되돌아가 다시 살 수는 없는 것이니,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사람의 일생은 고작 몇십 년에 불과하며, 진리를 추구할 이 최적의 시기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아직까지도 어리석어 하나님 사역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대재난이 닥친 후에도 여전히 꿈속에서 살며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려면 아직 일러! 지금 모든 일상이 정상이니, 서둘러 인생을 즐겨야지, 놓칠 수 없어!’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니, 그는 여전히 육체의 안락함을 즐기다가 이렇게 그냥 천재일우의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버린다. 사실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은 그 구원 사역이 끝날 때 설령 단 한 사람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적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만을 데려가고 다른 사람은 버릴 것이다. 이는 인간이 밝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려 했을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였다.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노아의 일가족 8명만이 방주에 들어가 하나님께 구원받았는데, 다른 사람은 모두 어떻게 되었느냐? 모두 홍수에 잠겨 버렸으며, 모두 재난으로 죽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보고도, 하나님이 와서 구원 사역을 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관념을 품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이런 사람은 그러고도 의기양양해하지만 대재난이 닥쳤을 때 멸망하게 되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빈대와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이며 짐승만도 못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은 긍휼, 자비, 관용의 성품을 갖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끝나면 하나님은 관용을 거두고 더 이상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진노와 위엄만을 직면하게 된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이 말세 심판 사역을 하는 좋은 시기를 만났으니,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유일한 단 한 번의 기회이다. 하나님이 하나님나라 복음을 확장하는 중요한 순간에 너희는 모두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으니, 이는 진정 하나님이 예외적으로 높여 준 것이다. 네가 어떤 업무를 공부했든, 어떤 지식을 가졌든, 어떤 은사와 특기를 가졌든, 결국 이 특기로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매우 갖기 힘든 기회이다.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혐오하여 버린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의롭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의 과거의 과오를 따지지 않고 너에게 은총을 베푼다. 하나님이 너에게 어떤 출로를 열어 주든, 어떤 은총을 베풀든, 결국 하나님의 마음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너의 생명이 성장하기 적합한 환경에서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공과를 배우고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진리가 네 내면에서 생명이 되고, 네가 하나님을 너를 거듭나게 해 준 부모로 여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외하게 되면,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너희 대부분이 나이는 어려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달아 모두 의지가 생기고, 생명 또한 성장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시련과 환난이 임했을 때 굳게 설 수 있다면, 이는 분량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만족해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여 너에게 은총을 베푼 대가가 헛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수확을 거두고, 너에게서 그 성과를 보고, 이에 기쁘고 즐거워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룬 성과로, 사람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수십 년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이 세상에 몇 번이나 왔는지, 네가 몇 번이나 환생했는지 모른다. 이 일은 누가 주관하느냐? 바로 하나님이 주관하며, 너는 이 일들을 알 도리가 없다. 네가 세상에 한 번 올 때마다, 하나님이 친히 안배를 한다. 네가 이번 생에 몇 년이나 살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언제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이룰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으로 먹고살지, 하나님은 네가 이번 생에 순조롭게 너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네 삶의 출로를 안배한다. 네가 다음번에 환생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하나님은 네가 가져야 할 것과 너에게 주어야 할 것에 맞춰 너의 삶을 안배하고 실현한다…. 이렇게 몇 번을 안배하다가, 마지막에 너는 말세의 이 시대에 태어나는데, 현재 너의 가정에서 태어난다.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을 믿는 환경을 안배하여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며, 네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도가 있었기에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네가 몇 번이나 인간 세상을 왔었는지, 너의 모습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몇 개의 가정을 거쳐 갔는지, 얼마나 많은 시대와 왕조를 겪었는지, 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은 줄곧 너를 받치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줄곧 너를 보살펴 주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냐! “내가 60세인데, 하나님은 60년 동안 나를 보살피고 지켜 주시며 60년 동안 인도해 주셨습니다. 만약 내가 늙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래도 여전히 보살펴 주실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바보 같은 말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사람을 보살피고 지키는 것은 한 번의 생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단지 한 번의 생애와 한평생에 국한된 일이라면, 하나님이 전능하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울인 공과 치른 대가는 단지 사람이 이번 생애에 무엇을 하는지를 안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생애를 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환생한 모든 영혼을 끝까지 책임진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 일하고, 그의 생명을 대가로 일하며 모든 사람을 인도하고, 모든 사람의 일생을 안배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들이는 이런 정성과 하나님이 치르는 이런 대가,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이 모든 진리와 생명에도 불구하고, 만약 마지막 이 시간에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창조주 앞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여러 번 환생했고 여러 시대를 살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는 것 아니냐? 하나님이 치른 모든 대가에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그럼 사람은 너무 양심이 없으니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하나님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일생 동안, 전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현생만 논하더라도, 만약 자신의 사명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물질적 누림과 화목한 가정과 같은 몸 이외의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치른 대가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육적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너무 비양심적이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해도 모두 가치가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치른 대가에 비하면, 사람이 바치고 헌신하는 것이 뭐 얼마나 되겠느냐? 그 정도의 고통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알기나 하느냐? 사람이 받는 그 정도의 고통은 하나님이 받은 고통에 비하면 거론할 가치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 네가 본분을 이행해 얻게 되는 것은 진리와 생명이고, 마지막에 살아남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니, 이 얼마나 대단한 복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기간에 네가 고통을 받든 대가를 치르든 사실 이는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슬프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협력하면 네가 약간의 고통도 받아야 하고,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기도 해야 한다. 명리, 지위, 금전, 세속의 즐거움, 그리고 결혼, 직장, 세상에서의 진로 등등,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네가 이런 것들을 포기하면 하나님이 아느냐? 하나님이 볼 수 있느냐?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기뻐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기뻐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치른 대가가 효과를 보았다. 사람이 나와 협력하기를 원하고, 사람이 이러한 의지를 가졌으니 나는 사람을 얻었다.” 하나님이 기쁘고 즐거워하든 혹은 만족해하고 위안을 얻든, 하나님은 이런 태도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일을 하고 그의 사역으로 이룬 성과도 보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사랑, 긍휼은 태도일 뿐만 아니라 사실이기도 하다. 무슨 사실이냐? 바로 하나님이 네 내면에 하나님 말씀을 더하여 네가 내면에서 깨우침 받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보게 하고, 네 마음을 밝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얻게 된다. 하나님은 너에게 실제적으로 매우 많은 사역을 하여 네가 진리를 얻게 한다. 네가 진리를 얻고 가장 귀중한 것, 즉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할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기뻐하고 만족해한다. 또한 하나님의 태도가 생기고, 하나님은 태도가 생기는 동시에 일을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정하고 축복한다. 하나님이 “나는 너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이는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이다.”라고 하면, 너는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된다. 네가 창조주를 알게 되고 창조주의 상을 받는데 네 마음이 여전히 공허하겠느냐? 공허함이 사라진다. 너는 충실함과 즐거움만 느낀다. 이는 가치 있는 삶 아니냐? 이것이 바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다.

욥을 보아라. 욥이 온 산의 소와 양과 많은 재산을 달라고 하나님에게 간구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는 무엇을 추구했느냐?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다고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자 하나님께 축복받는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끝이었느냐? 하나님은 욥에게 또 어떤 일을 하였느냐? (욥에게 시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보내 욥을 시험하였다. 온 산의 소와 양, 수많은 재산, 자녀, 하인을 빼앗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시련을 준 것이다. 욥에게 시련을 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원한 것은 욥의 간증이다.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은 욥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었느냐? 사람들은 ‘욥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었냐고? 소와 양 등 수많은 재산을 모두 빼앗겼는데, 뭐가 더 남아 있겠어? 아무것도 베풀어 주지 않았잖아!’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을 도로 박탈당했으니 마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박탈은 더 큰 상이며, 하나님이 욥에게 어떤 상을 내렸는지 명확하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욥의 간증을 원해 욥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것은 어떤 기회였느냐? 바로 욥이 사탄 앞에서,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의 실제를 증거하고,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실을 증거하며, 욥이라는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며 정직한 사람임을 증거하는 기회였다. 이는 하나님이 준 것 아니냐? 만약 하나님이 욥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사탄이 감히 욥을 건드렸겠느냐? (건드리지 못했을 겁니다.) 사탄은 절대 그러지 못한다. 이는 100% 확실하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지 않았다면, 욥에게 그런 기회가 또 있었겠느냐? 욥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욥에게 준 기회는 바로 욥이 걸은 길인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 옳고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욥이 정직하고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인들에게 증명해 보여 주는 그런 기회였다. 이 모든 것을 만인이 다 보았고, 하나님도 보았다. 욥은 이 기회에 하나님을 실망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사탄을 이겼으니,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욥에게 상을 주었느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욥에게 준 두 번째 상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하였고, 욥이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한 것을 하나님은 모두 좋게 보았다. 하나님이 매우 흐뭇해하고 기뻐해서 하나님은 또 태도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이런 태도를 갖게 된 후, 하나님이 다른 일을 더 하지 않았겠느냐?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너희가 욥기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욥의 말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이냐? 바로 하나님이 그에게 한 말씀을 듣고 나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욥은 그 이전에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느냐? (뵌 적 없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았으니, 이는 피조물로서 가장 갈망하는 복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욥은 이를 얻었다. 그렇다면 너희는 부럽지 않으냐? (부럽습니다.) 이 복은 얻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기회, 이런 은총과 상을 얻을 수 있느냐?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즉, 네가 사탄의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걸어서 하나님 입에서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흐뭇해하고 기뻐하며 네가 한 일과 네가 증거한 것을 좋게 보아 하나님이 너를 완전한 사람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하나님은 또 무엇을 하였느냐? 욥에게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즉, 원래는 천만장자였는데 지금은 억만장자일 수 있는 것처럼, 욥은 예전보다 더 부유해졌다. 보아라,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면 아주 쉽게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에게는 말씀 한 마디면 되는 일로, 이를 하나님의 은총이라 한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사람에게 준다. 하지만 네가 자신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를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대가는 헛되지 않으며 보상이 따른다. 하나님은 항상 같은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며 늘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냐? 그렇지 않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의 부모와 같다. 네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분별력이 있고, 바른 일을 하고, 정도를 걷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는다면, 그럴 경우 부모는 어떤 마음이겠느냐? 부모는 마음이 아프다. 부모는 기꺼이 자녀를 위해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녀의 고통을 덜어 주려 할 것이다. 자녀가 잘 먹고 잘 입고 잘 즐기게 하려 할 것인데, 그러면 부모는 만족한다. 부모는 너희가 털끝만큼의 고통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보다 더 좋고 더 아름다우며 더 선량하다. 부모의 마음보다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너희는 다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부모가 너희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마음속으로 다들 잘 알고 있기에 모두 부모에게 효도하려 한다. 그렇다면 먼저 효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다. 자녀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땅히 더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람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안배하고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다. 적어도 부모는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육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어서, 사람을 패괴에서 벗어나도록 전혀 구원할 수 없으며 사람의 생명이 자라도록 전혀 공급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인생의 정도를 걷도록 인도하고 공급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크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말 세심하게 돌본다! 너의 부모가 너를 낳아 너희를 혈육으로 여겨 너를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네가 대답해 보아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람을 만든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무엇이라고 여기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자녀처럼 아끼니,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혈육이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를 낳고 혈연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개념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손으로 사람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숨결을 사람에게 불어넣었고, 사람에게 기대가 있었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희망을 걸었기에 사람에게 요구와 바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사람을 만들고 숨결을 불어넣어 사람이 살아나게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능력이 있고 전능하니까 만약 사람이 좋지 않으면 다시 하나를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후 계속 마음속으로 염려하였다. 인류는 하나님의 뼈와 살이며 그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경륜에서 그가 걸고 있는 모든 희망의 수탁자이자 담당자이다. 마지막에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은 희망을 보고 결과를 얻고자 하였다. 너희는 이런 의미에 근거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좀 이해해 보면 더 깊게 체득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마치 자녀가 공부해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자녀가 공부할 때 앞에서 부채질을 해 주고 차와 물을 대접하고 밥을 먹을 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어떻게 해야 더 좋은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마음은 줄곧 너를 중심으로 돈다. 부모가 이렇게 너를 대하는 것은 네게 기대와 희망을 걸었기 때문 아니냐? 네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늘 거역하면, 그들은 상심하지 않느냐? 괴로워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는 이 의미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 보아라.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이일 뿐이다. 네가 “나는 80세입니다.”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너도 아이라고 말하고, 네가 “나는 20세입니다.”라고 말하면 그건 더 어린아이일 뿐이다. 80세이든 혹은 800세나 8,000세이든,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모두 아이일 뿐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나이의 구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모두 젖먹이 아기와 어린이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류를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 너는 그의 뼈와 살이며, 그의 동반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꼭 들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하나님의 뼈와 살, 그리고 동반자가 될 자격이 생기겠느냐? 이것이 사람이 고려하고 고민할 가치가 있는 문제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혈육으로 여기고, 동반자로 삼았으며, 하나님이 기울인 심혈의 대가를 받는 자로 삼았으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이냐? 어떤 마음가짐이냐? 하나님이 그 사람들과 이런 관계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사랑인지 사람이 약간이나마 체득할 수 있느냐?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여러 번의 전생에서 하나님이 저에게 하신 일도 느낄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네가 지금 살아 있으니 너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이 치른 대가는 느낄 수 있지 않느냐? 네가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이해할 수 있으면 됐다. 이는 네가 마음이 있고 영이 있다는 증거이니, 이것만 이해할 수 있으면 이미 충분하다. 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가치가 있는 것이다.

2017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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