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믿으며 종교 의식을 행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너희 중에 대다수의 사람은 다 종교에서 탈출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날마다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을 먹고 마시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참도에 기초를 다졌고,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개념에 대해 어떤 인식과 깨달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한 너희의 종교적 이해와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 지금 너희는 과연 무엇이 종교를 믿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정말 알고 있느냐?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어떤 점이 다르겠느냐? 이 문제들을 확실히 알고 있느냐?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그들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 종교를 믿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겠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행위 면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을 때리거나 욕하거나 나쁜 일을 저질러 사람을 해하는 등 각종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고, 일요일에 교회당에 가서 예배하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좋은 행위를 보이고 또 항상 예배한다면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한 사람이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범죄나 나쁜 일을 저지르지만 않으면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좋은 결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이 있기에 정신적인 측면에서 의지처가 있다. 그러므로 종교를 믿는 것은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다. 즉, 종교를 믿는 것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죽어서 천당에 갈 것을 믿고 정신적인 지주가 있는 것이다. 또 행위 면에서 얼마간 변화가 생겨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뿐이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지,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성경의 교리에 근거하여 추리하고 상상한다. 이것이 바로 종교를 믿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주로 행위상의 변화와 정신적인 의지처를 추구하지만, 그들이 가는, 복받기를 추구하는 길은 변함이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관점과 관념, 상상 또한 변함이 없다. 그들의 생존 토대와 추구하는 인생 목표, 방향은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에 근거한 것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이 바로 이런 내적 상태를 보인다. 그럼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 것,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요구하는 생존, 생활, 본분 이행에 맞춰 정상 인성의 모든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며,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하나님이 살라는 대로 사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인생 방향과 목표는 종교를 믿는 사람과 완전히 다르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과 관련되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 등과 관련된다. 이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여부와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의 정의를 알았다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더냐? (정직한 사람이 되고 진리를 추구하며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럼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행위에 어떤 요구를 하더냐? (방탕하게 굴지 말고 경건하게 행동할 것, 정상 인성을 살아 낼 것을 요구하십니다.) 기본적인 성도의 품위를 지키며 정상 인성을 살아 낼 것을 요구한다. 그럼 정상 인성에 반드시 갖춰야 할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이는 하나님을 믿을 때 반드시 실행해야 할 수많은 진리와 관련된다. 이러한 진리 실제를 갖춰야 정상 인성이 있는 것이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할 수 있겠느냐? 이러한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 그리고 수많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근거하며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근원을 짚은 것이다.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인생의 바른길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인생의 길과 관련된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련 있는 진리는 매우 많으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러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종교를 믿는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을 뿐,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그저 외적인 좋은 행위를 중시하고, 제약받고 규례를 지킬 뿐이며, 정신적인 의지처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좋은 행위와 정신적인 지주, 정신적인 의지처가 있다고 해서 인생의 길이 달라지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혹자는 종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그가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나님을 믿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겠느냐? 이러한 것들을 모두 갖추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과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한 가지로 종교를 믿는 사람을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그저 행위상의 변화와 정신적인 의지처를 추구할 뿐이며, 어떤 진리와도 관련이 없다. 따라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생명 성품이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진리를 실행할 줄도 모르기에 하나님 말씀을 듣거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서도 참된 인식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종교를 믿으면, 그의 행위가 아무리 좋아도, 그가 하나님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이론이 아무리 수준 높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그는 여전히 사탄을 따른다. 그가 살아 내는 것,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 실행하는 것의 근거는 무엇이냐? 그의 생존의 근거는 무엇이냐? 절대로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에 따라 살고 있다. 처세할 때는 사탄의 논리와 철학에 근거하고, 진리라고는 조금도 없이 거짓말만 한다. 사탄 성품이 전혀 바뀌지 않았고, 그가 따르는 것은 여전히 사탄이다. 그의 인생관, 가치관, 처세 방식, 일 처리 원칙은 완전히 사탄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저 외적인 행위에만 약간의 변화가 생겼을 뿐, 그의 인생길, 생존 방식,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느냐?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생존의 근거가 변하게 된다. 생존의 근거가 변하면, 그는 무엇에 근거해 살게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지금 매일 말하고 일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살고 있는 것이냐? 예를 들어, 네가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럼 너는 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이냐? 너의 근거는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근거입니다.)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요구에 근거한 것이고,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걷는 인생길이 달라지지 않겠느냐?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냐?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어떤 점이 다르냐?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종교를 신앙하고, 종교의 규례를 지키며, 사람과 사탄을 따르고, 사탄의 권력 아래에 사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며,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이런 차이점이 있다. 너희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이 종교를 믿는 것이고, 어떤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너희는 분별할 줄 아느냐? 종교를 믿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지를 구별하는 핵심은 바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어떤 길을 가기로 선택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만약 네가 좋은 행위, 정신적인 의지처, 규례 준수, 개인의 이익 도모를 추구하고 진리는 전혀 추구하지 않는다면, 단지 표면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 추구한다면, 단지 좋은 행위만 어느 정도 갖출 뿐 진리 실제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런 좋은 사람이 좋은들 얼마나 좋겠느냐? 패괴 성품과 본성 본질이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입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시련이 닥치면 굳게 서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한다면, 이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진리에 근거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고,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에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시련과 환난이 닥쳐도 굳게 설 수 있고, 아름답게 증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구별된다.

너희 중에 마음속으로 오직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만 믿고, 성육신한 하나님에게는 늘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 만약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성육신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정한다 하더라도 늘 관념을 가지고 있고, 도무지 순종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종교를 믿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마음속으로 막연한 하나님을 믿으며, 모두가 종교 관념과 종교 규례를 준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좋은 행위와 규례 준수만을 중시하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성품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종교를 믿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방법과 외적인 좋은 행위만을 중시합니다.) 그들이 일하는 원칙과 근거는 무엇이냐? (사탄의 처세 철학입니다.) 사탄의 처세 철학과 사탄의 패괴 성품은 모두 어떤 것들이 있느냐? 교활하고 간사하며,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이며, 교만하고 방자하다. 무슨 일이든 혼자 결정하고,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또한 형제자매와 교제하지도 않고, 일할 때 늘 자신의 이익, 체면, 지위를 고려한다. 이는 전적으로 사탄의 성품에 따라 일하는 것이고, 사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오직 좋은 행위만 얼마간 있을 뿐, 육을 버리거나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조금도 포기하지 못한다면, 겉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아도 여전히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생존 방식을 조금도 버리거나 바꾸지 못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이는 곧 종교를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겉보기에는 버리고 헌신하는 것 같지만, 그가 걷는 길이나 그가 하는 모든 일의 근원과 출발점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 주관적인 판단, 야심과 욕망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또 사탄의 철학과 성품이 여전히 그의 생존과 일 처리의 근거이다. 그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일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깨달은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비록 명목상으로는, 그리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며, 겉보기에도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지만, 말하고 일할 때 여전히 사탄 성품에 따라 살아간다. 말과 행동에서 전부 패괴 성품이 드러나며, 그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을 볼 수 없고,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태도는 더더욱 볼 수 없다. 그는 일할 때 먼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자신의 욕망과 속셈을 충족시킨다. 이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가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없는 자는 가련하지 않으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듣기도 하고 이해도 했지만, 일할 때 자기 뜻이 너무 강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없고, 진리에 따라 실행할 수 없으며, 더더욱 원칙에 따라 실행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몇 년 믿고 나니, 겉으로 봤을 때는 많이 고분고분해졌고, 성실해졌으며, 좋은 행위도 많고, 영 생활 또한 비교적 정상적이고, 대인 관계도 별다른 큰 문제가 없으며, 본분도 좀 이행해서 성과도 있지만, 그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 문제는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그와 하나님 사이에는 정상적인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 또는 어떤 일이 닥치든,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나에게 유리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고 하나님 말씀에서는 뭐라고 하는지를 전혀 기도하여 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비록 때로는 그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는 하지만, 이는 모두 혼잣말일 뿐, 결코 진심으로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현실 생활 속에서 직면한 일과 결부시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마련해 준 환경 속에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지배를 대하느냐? 자신의 염원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일에 직면하면, 그는 회피하고 마음속으로 반발한다.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없는 일에 직면하면, 그는 온갖 방법을 생각해 출로를 찾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도록 애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구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겠느냐? 아무 관계가 없다. 그의 삶은 아주 비열하고, 야비하며, 강퍅하고, 추하다. 그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어긴다.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주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 보좌에 오르시어 왕권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직면한 일이 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칠 때는 순종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에서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환경을 전환시키려 하고 벗어나려 한다. 그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려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한다.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입지 않아야만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익, 자신의 처지, 자신의 기분과 느낌이 어떠한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냐? 일종의 전설 아니냐? 일종의 정신적인 의지처 아니냐?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외인, 즉 낯선 사람이다. 평안하고 무사할 때는 하나님이 그의 주재자이며 그의 모든 것이지만, 만약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또는 그의 이익과 체면에 손해를 입혀 그가 책망, 시련, 고통을 겪게 한다면, 그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는 회피하고, 반항하고, 거절하고, 심지어는 원망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며, 소극적이다. 소극적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바로 마음속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에게 늘 반발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의 체포와 박해에 직면해 고통을 좀 겪으면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원망한다. 그의 이런 마음가짐은 어떠하냐? 하나님이 한 일로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하나님이 여전히 그가 믿는 하나님일 수 있겠느냐? 그가 순종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감히 대항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이 더 있기를 바란다. 그는 ‘내 생각대로 내가 하는 대로 이루어 주어 완전히 내 뜻에 부합해야 그분이 하나님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지. 만약 하나님이 내 뜻에 따르지 않고 늘 내 뜻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나는 순종할 수 없어. 그런 분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야. 하나님이라면, 사람을 만족시켜야지. 하나님에게 사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이니, 하나님은 최선을 다해 그런 존재를 보호하고 아껴야 해! 어떻게 그런 존재가 굴곡, 시련, 실패를 겪게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대부분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이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별일이 없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공의롭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시련을 주고 책망하고 질책하고 징계하려 할 때, 그가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육을 버리며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려 하고 그의 운명을 주재하고 지배하려 하며 그의 인생을 주재하려 할 때는 그의 패역이 고개를 들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틈이 생기며, 갈등과 깊은 골이 생긴다. 이때 그는 하나님이 조금도 사랑스럽거나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의 바람을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매우 불편하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한다. 그의 이런 행동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얼마나 많은 관념과 상상을 품고 있든, 지난날 어떻게 자기 뜻대로 행동하며 하나님을 거역했든,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실행한다면, 구하는 것을 통해 순종하며, 자신의 모든 뜻과 바람, 타산, 속셈을 내려놓을 수 있고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자기 뜻을 따르고, 자신의 의도와 타산이 들어가 있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주지 않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여전히 네 하나님이겠느냐? 그럼 아니다.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따른다는 네 말은 빈말 아니겠느냐? 사람을 기만하는 말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너의 일거수일투족과 인생관, 가치관, 일을 대하고 처리하는 태도와 원칙은 전부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사탄의 법칙과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보아라. 애초에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신이 수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3일째 되는 날 부활할 것이라고 가르치자, 베드로가 예수에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뭐라고 했느냐?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마 16:23)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는 베드로가 그렇게 한 것을 뭐라고 정의했느냐? (사탄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왜 그것을 사탄이 했다고 말한 것이냐? 베드로가 사탄이냐? 베드로는 예수가 그렇게 한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의 신분을 몰라서 사탄의 출구 노릇을 했다. 사탄 대신 말하여 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가로막으려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베드로가 바로 사탄의 출구였던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저 표면적으로 버리고 본분을 이행해서 마치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아도 그 생각과 행동이 모두 사탄의 논리와 철학을 따르는 것이라면, 그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그는 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냐? 이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런 자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냐? 아니다. 듣기 좋게 말하면 바로 종교를 믿는 것이다. 비록 그가 입으로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를 악을 행하는 자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이런 사악하고 패괴된 인류 중,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다들 좋은 행위를 보이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면 응보를 받고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 징벌을 받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역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평안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은 일생이 편안하다.”라는 이방인의 말처럼 말이다. 이런 사상에 영향받고 이런 사조에 전염된 그들은 종교를 믿는 것은 좋은 일이고, 불신자들보다는 나으며, 불신자는 정신적 의지처조차 없고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어떤 나쁜 짓이라도 다 저지를 수 있으며, 이런 자는 종착지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는 결말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또 ‘이방인은 생사윤회를 믿지 않으며, 악한 짓을 행하면 응보를 받아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게 된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지. 우리가 종교를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죽은 후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상한 사람이라고, 인류 중에서 거룩히 구별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비록 행위와 생각 방식이 다소 변하기는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종교를 믿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종교를 믿는 것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넘어올 수 있겠느냐?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은 진리를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를 믿으면 좋다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도대체 종교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분별할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것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전환하려면 하나의 단계를 거쳐야 하며, 진리를 좀 깨닫게 되고 나서야 약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네가 5~6년 또는 7~8년을 믿었음에도 여전히 사탄 성품에 따라 살고 여전히 사탄을 따르며, 전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깨달아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 심판과 형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의의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 안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하고, 진정한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 안배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하나님이 행한 것에 늘 관념과 오해를 품고, 원망과 불만을 갖고 있다면, 또 언제나 갖가지 관념과 상상으로 판단하고 대하며, 자신만의 생각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지도 못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 종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겠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사탄을 따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야말로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전혀 삼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로 불신파로, 하나님을 몇 년을 믿었든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종교 의식만 할 뿐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자임을 인정한다면, 너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느냐?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나님은 네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했는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에 순종했는지에 근거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는지, 얼마나 많이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좋은 행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얼마나 많은 글귀와 도리를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네가 진리를 추구했는지,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너를 가늠한다. 많은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에 관심이 없다. 또 늘 사탄의 철학과 세상의 각종 학설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인이라고, 그래야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아니다. 위인, 명인의 말은 매우 철학적이고, 사람을 쉽게 미혹한다. 네가 그것을 진리나 좌우명으로 여겨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평범한 한마디, 예를 들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성실히, 참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착실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실행하지 못하고 진리로 여기지도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진리를 실행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네가 실행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느냐? 네가 지킨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사탄의 말에 근거한 것이다. 네가 살아 낸 것은 사탄의 말인데도 네가 진리를 실행했다고, 하나님을 만족게 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아니겠느냐? 예를 들어,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실제적인 내용이 있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 내고 드러내는 것이 정직하지 않은 것이고 어떻게 살아 내고 드러내는 것이 정직한 것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방의 책을 찾아 읽으며 ‘이방인의 명언도 괜찮네. 좋은 걸 배우라는 거잖아! 예를 들어, ‘좋은 사람은 일생이 편안하다.’, ‘성실한 사람은 오래간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라 나중에 이득을 보게 된다.’ 등 말은 옳기도 하고, 진리에도 부합해!’라고 생각하고는 이 말들을 지킨다. 그가 이방인의 이런 격언을 지키면 어떤 모습을 살아 낼 수 있겠느냐? 그가 진리 실제를 살아 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으냐? 지식을 좀 익히고 책 몇 권 읽었다고, 명작 몇 권 봤다고, 식견을 좀 쌓고 명언과 민간의 속담들을 좀 들었다고, 그런 것을 진리로 여기고 그 말대로 행동하거나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믿는 삶에 적용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했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가짜로 진짜를 바꿔치기하는 것 아니겠느냐? 기만행위 아니겠느냐?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서 적잖이 일어난다. 민간의 듣기 좋은 말, 옳은 도리를 전부 진리로 여겨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은 한 곳에 치워 둔 채 신경도 쓰지 않고, 몇 번을 읽어도 마음속에 새기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지 않는 이런 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고, 사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사탄이 한 그런 말에 철학적 이치와 심오한 뜻이 있다고, 너무나 전형적이라고, 최고의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무엇을 포기해도 그런 말은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 말을 포기하면 목숨이라도 잃는 것 같고, 마음이 텅 비기라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런 사람은 사탄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사탄의 명언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를 분석하고 인식할 줄 아느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늘 하나님 말씀을 읽지만, 일이 닥치면 늘 “우리 엄마가 그러셨는데”,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명사가 한 말인데”, “어떤 책에서 그렇게 말했는데”라고 말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런 거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라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면,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내적 상태를 사람이 발견하기 쉽겠느냐? 발견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사람 내면에 존재하면 매우 치명적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3~5년, 혹은 8~10년 믿었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무슨 일이 임하든 사탄의 말을 근거로 삼고 전통문화에서 근거를 찾는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사탄을 따르는 것 아니냐? 너는 사탄의 말과 성품으로 살아가니,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아니냐? 네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따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그 어떤 지배와 요구에도 순종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따르는 것이다. 사탄은 어디에 있느냐? 사탄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사탄의 철학과 논리, 법칙, 각종 헛소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이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수시로 자신의 모든 행동과 사상, 관점, 일 처리의 근거를 하나님 말씀과 맞춰 보고, 자신의 사상 속에 있는 것들을 해부해야 한다. 자기 안에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처세술, 속담, 전통문화인지, 어떤 것이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너희 자신이 항상 옳거나 진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고, 진리로 삼아 지키면서 진리를 대신하려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너희는 이런 것들을 해부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진리로 삼기에 네가 그걸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걸 간파했다면 사람은 커다란 난관을 돌파한 셈이다. 그것들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등을 모두 가로막는다. 사람이 온종일 흐리멍덩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을 생각하지도, 이러한 문제 해결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면, 이런 것들은 네 마음속에서 화근, 독소로 작용할 것이다. 뿌리 뽑지 않는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따를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을 것이니, 구원받을 방법도 없다.

이런 것을 교제한 후, 너희는 자신의 어떤 내적 상태와 생각 또는 편집적 관점이 하나님의 뜻과 요구, 진리에 위배되는지, 너희가 그것을 진리로 여겨 실행하고 지켰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제가 갖고 있는 관점은 사람으로 처신하려면 다들 좋아하고 접촉하고 싶어 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이런 추구가 매우 정당하고 정확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진리로 가늠해 보니 그런 사람은 무골호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간사한 사람을 폭로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자신에게 간사한 속셈이 있어 그렇게 한 것임을, 어디서나 늘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영합하였음을, 거짓 이미지로 다른 사람을 미혹하였음을, 때로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희생해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도 하였음을, 자신이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니고 또 진정한 사람의 모습도 갖고 있지 않음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발견했을 때 진리를 구하고 싶었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골호인이 아닌,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하며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외적 행위의 변화를 중시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형제자매들이 제가 교만하여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저는 좋게 상의해 가면서 말했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대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본분 이행에서 문제가 생겨도 지적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했습니다. 조금 전 하나님의 교제를 듣고 저는 자신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일했으며, 외적인 좋은 행위로 다른 사람을 미혹했고, 사실 아직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며, 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너희는 과거의 그릇된 관점과 행동 방식을 느낄 수 있고 의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진리를 실행할 때는 힘이 든다. 이런 내적 상태를 인식하고 느끼게 되면서, 너희는 패괴된 인류의 곤경에 대해 어떤 견해와 느낌을 갖게 되었느냐? 패괴된 인류가 모두 사탄에게 단단히 통제되어 있다고 느꼈느냐? 이 점을 의식했느냐? (의식했습니다.) 언제 의식했느냐? (제가 진리를 실행하려 할 때, 사탄의 본성이 내면에서 저를 통제하고 구슬려 마음속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했습니다. 마치 족쇄를 찬 것처럼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사탄이 지독하게 가증스럽다고 느꼈느냐? 아니면 시간이 지나 무감각해져 미워할 수가 없었느냐? (사탄의 가증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 사역이 몹시 필요하다는 것을 의식했느냐? 사람을 폭로한 말씀을 포함해 하나님이 선포한 이런 말씀과 진리가 전부 사실이고 실제적이지 않은 말씀이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을, 모두 완벽하게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을, 모두 사람이 진리를 얻어 구원에 이르는 데 가장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느냐?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이 몹시 필요하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어디에서 구원받을 길을 찾을 수 있겠느냐? 사람은 사탄과 악령이 이적과 기사를 드러내기를 바란다면, 모두 멸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사탄의 철학과 논리 법칙에 따라 산다면, 모두 파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제 너희는 의식하였느냐? 단지 의식하기만 한다면 여전히 부족하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이 생긴 것일 뿐이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심판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사악함과 사탄에게서 온 것을 증오해야 한다.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을 중시해야 하며,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분별하는 것을 중시해야 하고, 자신의 본성 본질이 추하고 사악하며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임을 간파해야 한다. 마음속에서부터 자신에게 반감을 갖고 자신을 혐오해야 비로소 의지와 힘이 생겨 사탄 본성의 결박과 속박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날 수 있으며, 진리를 실행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너에게 이런 의지가 없다면, 진리를 실행하라고 요구해도 너는 해내기 어렵다. 사람은 반드시 패괴 성품의 결박, 우롱, 괴롭힘, 유린, 능욕 등 이런 내적 상태 속에서 죽을 만큼 괴롭힘을 당해 고통을 느껴 봐야만 사탄을 증오할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바꿀 결심과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은 충분히 고생해 봐야 진리를 추구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와 동력이 생길 수 있다. 만약 네가 사람의 육과 상상 관념, 사치스러운 욕망과 각종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사탄의 것이 매우 좋다고 느낀다면, 고통스럽다고 여기지 않고 또한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너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 하겠느냐?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이 자기가 매우 간사하고 거짓말을 잘하며 진실을 말하기 싫어하고 남과 일을 처리할 때 늘 숨기고 가린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 보자. 그러나 그는 그것을 즐기면서 ‘이렇게 사는 건 정말 좋다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우롱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나를 우롱할 수 없지. 내 이익과 체면, 지위, 허영 전부 충족할 수 있고,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질 거야. 어떤 실수도 없이 완벽하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겠느냐? 원하지 않는다. 그는 간사함과 교활함을 영리함과 지혜로움이라는 긍정적인 사물로 여기고 이것들을 특히 사랑해 차마 버리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사람으로 처신해야 완벽하지. 이렇게 살아야 윤택하고 삶이 가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부러움과 앙망을 받을 수 있어. 사탄 철학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바보, 멍청이야. 날마다 손해를 보고 괴롭힘과 차별을 당하며 노예가 되어야 해. 그렇게 사는 건 가치가 없어.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간사한 성품을 버리고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설교를 얼마나 들었든,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든, 그는 진실하게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기꺼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따르면 많은 것을 버리고 포기해야 하며, 고생하고 손해도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종교를 믿는 거야. 그냥 이름만 걸어 놓고, 좋은 행위를 좀 보이고, 정신적인 의지처가 있으면 되는 거야.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겪을 필요 없고, 또 아무것도 버릴 필요 없어. 그저 마음속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마지막에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지 못합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는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광명을 동경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도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흐름을 좇기를 좋아하며, 명리와 지위를 사랑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두각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또 명리와 지위, 명인과 위인을 숭상하는데, 사실상 이는 마귀 사탄을 숭상하는 것이다. 그가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것은 진리도 긍정적인 사물도 아니다. 그는 지식을 숭상한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를 지닌 사람에게 동조하고 그런 자를 숭배한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 추구의 길을 걷지 않고, 명리와 지위, 권세를 추구하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희한한 방법으로 남을 제압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또 상류 사회에 합류하여 명인이나 위인이 되고, 온갖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숭배와 환영을 받는 우상이 되고자 한다. 그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무슨 길이겠느냐? 이는 마귀의 길이고 사악한 길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다. 그는 사탄의 철학, 사탄의 논리, 사탄의 각종 수단과 수법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남들의 신임을 얻어 내어 사람들이 숭배하고 따르게 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징벌까지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사실이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무엇에 근거하느냐?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지, 진리 추구의 길을 걸을 수 있는지 등에 근거한다. 이런 것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을 믿으며 구원받는 길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다.

2018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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