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열등감을 해결할 길이 생기다
어릴 적, 부모님은 생계가 바빠 저를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습니다. 당시는 산아 제한 검사가 한창이었는데, 외할머니 댁에 제 호적이 등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마을에서 인구 조사를 나올 때마다 외할머니는 벌금을 피하려고 저를 안고 이리저리 숨어 다니셨습니다. 이웃들은 저를 볼 때마다 호적이 없다고 놀리며 저에게 ‘유령 아이’, ‘엄마 없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비록 어렸지만 사람들이 저를 비웃는다는 것쯤은 알아들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그 사람들도 보기 싫고, 친구들도 같이 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부분 혼자 방에 틀어박혀 TV를 보거나 외할머니와 놀았습니다. 그래서 제 어린 시절은 비교적 답답하고 단조로웠습니다. 그 후,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부모님은 저를 집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제가 성격도 내성적이고, 말도 없고, 사람들을 봐도 인사할 줄 모르자, 어머니는 제가 바보 같고 동생만큼 영리하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스스로가 못났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사람들과 더욱 소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점차 제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때로는 마음속에 할 말도 있고 표현하고 싶은 관점도 있었지만, 말을 할 때면 긴장하고 겁이 나서 늘 횡설수설하곤 했습니다. 특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긴장해서 얼굴이 빨개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친척이 오거나 잔치에 가야 할 때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때는 구석진 곳을 찾아 조용히 앉아 다른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했습니다. 한번은 예배에 참석했는데, 50~6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그만 겁이 덜컥 났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까 입을 못 떼겠어. 나는 언어 전달력이 부족하잖아. 만약 말을 확실하게 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면 얼마나 민망하고 창피하겠어!’ 그래서 책임자가 저에게 교제하라고 할 때마다 저는 침묵을 선택하고 늘 한쪽에서 듣기만 했습니다. 때로는 몇몇 형제자매와 함께 업무를 배울 때, 책임자가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라고 하면 저는 절로 긴장이 돼서 교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말을 분명하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몇 번은 책임자가 지목해서야 마지못해 교제한 적도 있었습니다. 교제할 때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까지 변했고, 말을 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결국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민망해서 혼났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난 왜 이렇게 한심할까? 그냥 내 관점을 말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어렵고 긴장될까? 말도 제대로 못 하다니, 정말 너무 바보 같아!’ 협력하는 자매가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교제하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무척 부러웠습니다. ‘나는 왜 저런 자신감과 담대함이 없을까? 왜 나는 말 하나 하고 관점 하나 발표하는 게 이렇게 힘들지?’ 그 후 책임자가 저를 팀장으로 안배하자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어서 사람이 많으면 말을 못 하는데, 그때 가서 형제자매들이 무슨 질문을 했는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얼마나 민망하겠어?’ 저는 책임자에게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고, 저는 그저 착실하게 팀원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분을 거절하면 책임자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길까 봐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의 사역을 점검할 때도 저는 속으로 여전히 겁이 났습니다. 형제자매가 제게 질문하면 늘 다른 사람에게 대답하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까 봐 늘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때는 마지못해 몇 마디 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무척 긴장되었습니다. 이러는 저 자신을 보며 저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가 이미 사람들과의 정상적인 교류와 본분 이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갈수록 수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서 사역에 지장을 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약한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 어렵겠다 싶으면 바로 물러난다. 왜 물러나겠느냐? 한 가지 원인으로는 열등감이 있다. 열등감 때문에 감히 사람들 앞에 서지 못하고, 자기가 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조차 다하지 못한다. 자기 능력과 자질이면 충분히 가능하고, 자기 인성과 경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도 부담하지 못한다. 이러한 열등감은 그의 인성에 온갖 방면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의 인격에도 영향을 끼치고, 당연히 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자기 관점을 발표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가 자기 입장과 견해를 밝히는 걸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이 닥치든 선뜻 입을 열지 못하며, 시종일관 움츠러들고 물러나기만 한다. 사람이 얼마 없을 때는 그나마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을 엄두를 내지만, 사람이 많을 때는 어떻게든 구석진 곳으로, 조명이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 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한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말을 좀 하고 싶고, 자기 관점과 견해를 발표해 자기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도, 그럴 용기조차 없다.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열등감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너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입 열지 마. 넌 안 돼. 관점을 발표하지 마. 네 생각은 너만 알면 돼. 정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컴퓨터에 기록하고 혼자 소화해. 남이 알게 하지 마. 말 잘못했다가는 망신당한다고!” 그 목소리가 쉼 없이 네게 말한다. “이렇게 하지 마라, 저렇게 하지 마라, 이 말 하지 마라, 저 말 하지 마라.” 결국 너는 뱉으려던 말을 도로 삼킨다. 하고 싶은 말을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생각했으면서 막상 말할 타이밍이 오면 중도에 포기한다. 말할 엄두를 못 낸다. 민망해서 말을 못 한다.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말하는 게 꼭 규정을 어기는 것 같고, 법을 위반하는 것 같다. 언젠가 자발적으로 자기 관점을 발표하게 되면 내심 극도로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한다. 그 극도의 불안감은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말하고 싶고, 자기 관점을 발표하고 싶고, 정상인이 되고 싶고, 남들과 똑같고 싶다는 생각을, 그러한 마음가짐을, 그러한 계획을 열등감이 차츰차츰 덮어 버린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네가 말수가 적다고, 조용하다고, 낯을 가린다고, 나서기 싫어한다고, 사람 많은 데서는 말하는 걸 쑥스러워해서 얼굴이 빨개진다고, 비교적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열등감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다. … 이러한 정서를 패괴 성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사람에게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사람의 인성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정상 인성의 희로애락과 언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고,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작게는 사람의 성격과 취향, 지향에 영향을 주고, 크게는 사람의 인생 목표와 방향에 영향을 준다. 열등감이 생기는 원인과 과정, 그리고 사람에게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를 고려할 때, 어느 모로 보나 열등감은 사람이 내려놔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야 저는 제가 아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모습들이 제게 다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열등감이라는 정서에 묶여 늘 나는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사람이 많으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거나, 구석진 곳에 숨어 찍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의견을 발표해야 할 때면 절로 긴장이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다 함께 협력해서 본분을 잘 이행할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는 언어 전달력이 부족하고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 교제하라고 하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저 나름의 관점과 생각이 있을 때도 마음속으로는 자꾸 망설였습니다. ‘말을 할까, 말까? 내 관점과 견해가 맞는 걸까? 말하면 다들 찬성할까? 관두자. 그냥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견해나 관점을 더 들어 보자.’ 저는 늘 이런 생각에 영향을 받아, 마치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목이 막힌 것처럼, 많은 경우 제 관점과 입장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책임자가 저를 팀장으로 앉혔을 때, 저는 그 본분을 맡았으면 마땅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역을 점검할 때마다 늘 입을 떼지 못하고 걱정했습니다. ‘내가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 해서 형제자매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얼마나 민망할까!’ 그래서 저는 늘 저보다 전달력이 좋은 사람을 시켜 형제자매의 질문에 답하게 하고, 저는 옆에서 듣거나 맞장구를 쳐 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본분을 갈수록 수동적으로 이행했습니다. 열등감이라는 이런 부정적인 정서는 제게 정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점점 더 겁이 많아지고 수동적으로 변했으며, 심지어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교류하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과 진취성도 사라지고,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규정만 늘고 심리적으로 점점 심하게 위축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열등감에 속박되고 얽매여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이 문제에 대해 구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열등감은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일종의 정서지만, 사실 열등감이 생겨나는 근원은 사탄의 패괴와 사람의 생존 환경, 그리고 각자의 객관적 원인이다. 사회와 인류에게서 비롯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 전체가 악한 자의 권력 아래 있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고, 그 누구도 다음 세대를 진리에 따라,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교육하지 못하며, 사탄에게서 온 것으로 교육하기 때문이다. 사탄의 것으로 다음 세대를 가르치고 인류를 가르친 결과, 사람의 성품과 본질이 패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정서가 생겨나게 되었다. 생겨난 부정적 정서가 일시적인 것이라면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정서가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히 뿌리내려 떨쳐낼 수도, 잊으려야 잊을 수도,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도 없게 된다면 반드시 여러 방면에서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사람이 타인과 각종 일이며 사물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사람이 근본적인 옳고 그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영향을 주고, 사람이 일생에 걸쳐 걷는 길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인류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또 다른 방면은 사람 자신에게 존재하는 객관적 원인이다. 사람이 자라면서 받은 교육과 가르침, 받아들인 각종 사상 관점, 여러 처신 방식, 그리고 사람의 각종 말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닥친 문제를 정확한 각도와 입장에서 처리하고 풀 능력이 없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나쁜 환경의 영향 아래서, 그러한 나쁜 환경이 사람에게 가하는 압박과 통제 아래서, 인류에게는 자연히 각종 부정적인 정서가 생겨난다. 자기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자기 능력으로 바꾸거나 풀 수 없는 문제에 각종 부정적인 정서로 대항한다. 열등감이라는 정서를 예로 들겠다. 네 부모가, 스승과 웃어른이, 그리고 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네 자질, 인성, 인격에 대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평가를 내리고, 궁극적으로 네게 공격, 박해, 억압, 속박, 결박을 가해 결국 너로 하여금 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꾹 참으면서 살게 하고, 원하지 않지만 부득이하게 찍소리도 못 하고 이런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최종적으로 생겨나는 정서는 기쁨도, 만족도, 긍정적인 것도, 발전적인 것도, 삶에 더 큰 동력과 명확한 방향성을 주는 것도 아니며, 확실하고 정확한 인생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때 생기는 것은 깊은 열등감과 같은 정서다. 이러한 정서가 생기면 너는 무력감을 느낀다. 일이 닥쳐 네 관점을 발표해야 할 때, 하고 싶은 말과 표현하고 싶은 관점을 마음속 깊이 수없이 곱씹지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한다. 다른 사람이 너와 똑같은 관점을 말하면 너는 그저 속으로 네가 남보다 못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에 같은 환경이 닥쳤을 때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 무턱대고 나서지 말자.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 난 안 돼. 난 멍청해. 난 우둔해. 난 바보야. 나를 감출 줄 알아야 해. 듣기만 하고 말하지는 말자.’ 이런 점으로 볼 때, 사람에게 열등감이라는 정서가 생겨나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나면 사람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이 부여한 사람의 정당한 권리가 이미 박탈당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박탈당한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왜 제가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며 소심하게 살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지난 일들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산아 제한 검사를 피하기 위해 외할머니 댁에 맡겨져서, 늘 외할머니를 따라 이리저리 숨어 다녔던 그 경험은 제 마음에 그늘을 남겼고, 저는 극도로 소심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곁에 안 계셨기 때문에 이웃집 아주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유령 아이’라고 놀렸고, 또래 아이들도 저를 엄마 없는 아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때 저는 머리 위의 하늘이 온통 잿빛으로 느껴졌고, 마음은 외롭고 답답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이 곁에 계시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그 후 저는 외출하기를 싫어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점점 더 과묵해졌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제 마음속의 소심함과 불안감 때문에 쉬는 시간에 반 친구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친구들을 그저 눈으로만 볼 뿐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며, 늘 제가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한 가지는 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 대답 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제게 확성기를 달아 줘야겠다고 놀렸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반 전체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반 전체의 웃음거리가 된 것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성적이 평범해서 선생님의 눈 밖에 난 데다, 그렇게 비웃음까지 당하니 저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 후에도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습니다. 제 마음은 더욱 무겁게 짓눌리고 외로웠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감정에 빠져 있다 보니, 많은 말과 속마음을 저 혼자 속으로 삭였습니다. 제가 늘 과묵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늘 서툴러 보이자, 부모님은 제게 화도 내고 답답해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너 바보 아니냐?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왜 그렇게 말주변이 없어!”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스스로를 못나고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평가들은 꼬리표처럼 저를 따라다녔고, 그로 인해 저는 계속해서 무척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지금까지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 의견을 발표해야 할 때면, 저는 분명히 관점과 생각이 있으면서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제 말이 부적절해서 부정당하고 더 못나 보일까 봐 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중에는 제 관점과 제안 중에도 적절하고 채택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저는 제 열등감의 원인을 어느 정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자신을 규정지었고, 그게 오래되다 보니 자발성을 잃어버려 사람들과 교류할 때나 본분을 이행할 때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하고 소심해졌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 열등감이 생겨난 배경이 무엇이든,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든, 어떤 일로부터 비롯되었든, 어쨌든 너는 너의 자질, 특기, 재능, 그리고 인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열등감은 잘못된 것이고, 자만도 잘못된 것이다. 둘 다 부정적인 정서에 속한다. 열등감은 너의 손발을 결박하고 너의 사상을 결박하며, 네 관점에 영향을 주고 입장에 영향을 준다. 자만 역시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열등감이 됐든 다른 부정적 정서가 됐든, 너는 그러한 정서를 일으킨 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선 그러한 말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이 너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 결론은 그게 네 자질과 재능에 대한 것이든, 인품에 대한 것이든 전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하여 열등감과 같은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늠해야 한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 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 자기 결점과 부족함은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질이 과연 좋은지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문제를 명확하게 보고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들다면 분별력 있는 주변 사람에게 평가를 부탁해도 된다. 그의 말이 정확하든 아니든, 최소한 네가 자기에 대해 기본적인 판단을 내리고 자기를 규정하는 데에 참고 사항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 속에서 차츰차츰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정서는 사람이 분별하고 각성하고,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야 저는 열등감을 내려놓을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더 이상 묵은 기억속에 살면서 과거의 그늘과 타인의 잘못된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아가 그것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생활이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장단점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고, 또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종합해서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이 저를 평가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제가 자질은 평범하지만, 이해가 치우치지 않고, 일에 부딪히면 나름의 생각이 있으며, 본분에도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비록 자질이 좋고 영리하며 유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질이 아주 형편없고 생각도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형제자매들은 제가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다고 해서 저를 업신여기거나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긴장해서 말을 분명하게 못 할 때면 저 대신 보충하고 보완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형제자매 사이에는 진실한 도움이 있고, 폄하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정상 인성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많은 육체적 본능과 필요에 제약을 받는다. … 때로는 감정이나 육체적 필요에 속박되고, 때로는 육체적 본능이나 시간 또는 성격에 제약받는 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어서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데, 삼사십 대의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성격을 극복하지 못해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솜씨가 없으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서툴다. 그는 리더가 된 후에도 이런 성격 때문에 사역에서 어느 정도 제약받고 가로막혀 늘 이로 인해 괴로워하고 고뇌하며 심각하게 속박받는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모두 정상 인성의 모습이다. 이런 것들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라면, 하나님은 과오로 보겠느냐? 전부 과오가 아니며, 하나님은 이를 올바르게 대할 것이다. 네게 어떤 문제와 결함, 허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정상 인성의 조건하에서 네가 어떻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며, 어떻게 진리 원칙대로 행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를 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환해졌습니다. 저는 줄곧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는 것이 싫었습니다. 예전에 학교나 직장에 다닐 때도 늘 동급생이나 동료들에게 업신여김과 폄하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는 것이 잘못도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타고난 성격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역시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내성적인 사람을 외향적인 사람으로, 말주변 없는 사람을 달변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정상 인성 안의 부족함과 모자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지입니다. 이것들을 깨닫고 나니, 저는 더 이상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다는 것 때문에 괴롭지 않았고, 더 이상 자신을 싫어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제 부족함을 올바르게 대하고, 의견을 발표해야 할 때는 늘 ‘나는 안 돼, 나는 내성적이야, 나는 말주변이 없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제 책임을 다하고 원칙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했습니다.
한번은 사역을 점검하다가 어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발견하고 독려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려니 또다시 망설여졌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하지? 형제자매들이 메시지를 보고 적극적으로 반응할까? 만약 나한테 질문했는데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얼마나 민망할까!’ 이런 생각에 저는 감히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또다시 열등감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며칠 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네게 어떤 문제와 결함, 허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정상 인성의 조건하에서 네가 어떻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며, 어떻게 진리 원칙대로 행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를 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그 순간 방향과 길을 찾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든 안 하든, 저는 마땅히 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메시지를 보내 그들의 사역을 독려했고, 형제자매들이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때도 아는 만큼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사람이 행동하는 방향이자 준칙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한 자매가 제게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수동적이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 열등감의 영향 외에 또 어떤 패괴 성품의 속박을 받기 때문인지 반성해 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매는 제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가정의 교육은 한두 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수많은 명언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은 집안 어른이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일생에 다른 게 아닌 바로 이름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들 가운데 좋은 명성을 남기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어디서든 덕담과 칭찬을 많이 하고 선의의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남에게 미움을 사지 말고 좋은 일과 착한 일을 많이 하라.”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가정의 교육은 사람의 행위나 행동 원칙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자신의 명성과 명망,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상, 그리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 나타내는 모든 관점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평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요시하면 무의식중에 본분 이행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원칙에 부합하는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지,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차순위, 후순위로 본다. 반면 가정이 네게 교육한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은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 네가 한 모든 것은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것도,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닌 자신의 명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네가 한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하겠느냐? 종교 행위가 된다. 너란 사람의 본질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전형적인 바리새인이 된다. 네가 걷는 길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이 된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다. 네가 한 모든 일의 본질은 변질되어 바뀌어 버린다.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도,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네 본분 이행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불합격이란 한 마디로 끝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가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과 피조물의 본분이 아닌 오로지 자기 명성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 네가 한 이 모든 일의 본질은 그저 이름을 위한 것이었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데도 너는 그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 넌 사람은 이름을 위해 살지 않느냐며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이 말은 긍정적이고 정당해 보여서 너도 모르게 이 말에 물들어 이 말을 긍정적인 사물로 간주한다. 네가 이 말을 긍정적인 사물로 간주한다면 너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고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얼떨결에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진리 준칙으로 여길 것이다. 네가 그것을 진리 준칙으로 간주한다면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든 듣지도 않을뿐더러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네가 무조건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네 좌우명에 따라 실행하고 일을 한 결과로 얻는 것은 좋은 명성일 것이다. 너는 바라는 것을 얻겠지만 진리를 위배하고 진리를 포기했기에 구원받을 기회도 잃어버리게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제가 오랫동안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아 명성을 매우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척 신경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체면과 지위에 묶인 꼭두각시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책임자가 저를 팀장으로 안배한 것은 사실 제게 아주 좋은 훈련의 기회였고, 형제자매와 함께 교류하고 배우는 것 역시 제 부족함을 채울 좋은 기회였습니다. 만약 제가 발표한 관점이 틀렸더라도 형제자매들이 즉시 제 편차를 바로잡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체면에 얽매여 사람이 많거나 의견을 발표해야 할 때면 ‘나는 안 돼.’라는 반응부터 보였습니다. 제 부족함이 드러나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안 좋은 인상을 남기고 무시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해야 할 말도 못 하고, 마땅히 져야 할 책임도 지지 못해 본분을 매우 수동적으로 이행했습니다. 개인의 체면과 지위를 너무나 중시한 탓에, 저는 진리를 실행하고 책임을 다할 기회도, 성령의 역사를 얻을 기회도 너무나 많이 놓쳐 버렸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진리를 실행하고, 더 이상 체면과 지위를 위해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후 사역상 필요로 인해 저는 다른 팀으로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는데, 팀장이 제게 형제자매의 사역을 점검하고 소그룹 예배를 주관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인데, 만약 알기 쉽게 얘기하지 못 해서 형제자매들이 못 알아들으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속으로 긴장이 되고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본분을 허락하신 것은 제게 부담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훈련을 받게 하시려는 것임을 깨닫고, 그 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 형제자매와 예배를 드릴 때는 협력하는 자매와 함께 주관했습니다. 교제하기 전에는 여전히 마음이 긴장되었습니다. 제가 교제를 잘 못 해서 형제자매들이 저를 얕볼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본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에 일종의 책임감이 생겼고, 용기를 내어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교제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긴장되기는 했지만, 예배를 몇 번 드리고 나자, 제가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교제할 때는 긴장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제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이런 작은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으로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