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 대학생의 힘겨운 신앙의 길
2021년 9월, 저는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서 한 자매를 알게 되었고 그 자매는 제게 온라인 예배에 참석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자매가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주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증거해 주었을 때, 저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알아보는 동안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가족들이 생각났고,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족들도 분명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할머니를 예배에 초대했지만, 그분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믿고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예배에는 나가지 말고, 교회에 다니면 충분하니 공부에 전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계속 믿겠다고 고집하자 부모님은 몹시 화를 내며 걸핏하면 제 핸드폰을 빼앗고 제가 인터넷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 번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성격이 불 같은 아버지는 툭하면 제게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셨습니다. 한번은 제 머리채를 잡고 집 밖으로 밀어내기도 하셨는데,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당해도 싸다며 제가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됐다고 욕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미혹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3~24) 거짓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전에 하셨던 사역을 모방하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사람을 미혹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새로우시며 이전에 하셨던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따라 사역하십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시어 심판 사역으로 인류의 패괴를 정결케 하십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진리를 선포할 수 없고, 사람을 정결케 하거나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진리를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기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저는 이전에 몰랐던 많은 진리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의 비밀과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역으로 사람을 이끄시는지, 어떻게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시는지, 사람을 어떻게 각기 부류대로 나누시는지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통해 그분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임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어쨌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계속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집하자 어머니는 제 뺨을 때리셨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 단 한 번도 저를 때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4일 동안 부모님은 여전히 제게 핸드폰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또 저에게 학교도 가지 말고 집에서 살림하며 동생들을 돌보라고 하셨고, 동생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일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환경에 처하자 저는 좀 연약해졌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셨을까?’ 심지어 예배와 본분 이행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두 단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교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일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이는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교란이었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 … 어떤 일을 하든 일정한 심혈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받는 고통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게 한다는 말 자체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은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 불과하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낙심하지 말고 연약해지지 마라. 내가 너에게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나라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손쉽게 복을 얻고 싶은 것이구나. 그렇지 않으냐? 오늘날 모든 사람은 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지지 않을 것이며, 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작은 상황이라도 모두가 통과해야 한다. 단지 정도만 다를 뿐이다. 시련은 곧 나의 축복이다. 자주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축복을 간구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느냐? 어리석은 아이들아! 언제나 좋은 말만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고난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나의 즐거움에도 분명 동참할 것이다. 이는 내 약속이고 내가 너희에게 주는 축복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41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님이 저를 때리고 꾸짖으며 핸드폰을 빼앗아 하나님 믿는 것을 막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사탄의 간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으로 욥을 시험해 자녀와 재산을 잃게 하고 온몸에 악창이 돋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욥이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칭송하며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했습니다. 지금 제게 닥친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사탄의 간계도 있고, 하나님의 허락도 있습니다. 저는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님이 때리고 무슨 수로 막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여 사탄의 간계가 이루어지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집에서 하나님을 믿기가 힘들고 본분에 전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제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집을 나가자 가족들은 제가 실종되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저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 신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대로 가다가는 형제자매님들과 교회에 폐를 끼칠까 걱정되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언젠가는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자매의 집까지 찾아가 제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며 자매를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자매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저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보니 많은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이 저희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언론 매체까지 불러들여 제게 물었습니다. “어디 갔었니? 왜 부모를 떠났어? 왜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거니?” 두 분은 또 제가 부모님께 불효하고 말 안 듣는 자식이라는 둥 공부에도 관심이 없다는 둥 온갖 막말을 했습니다. 당시 주위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뿐이고,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 모든 것을 마주할 용기를 주세요.’ 그때, 예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습니다.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너는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 굴욕을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어떤 순간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고난을 겪으셨고, 중국 공산당 정부의 정죄와 박해를 받으셨으며, 온 세대에 버림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는데, 이만한 고통이 대수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이런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며, 저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를 깨닫자 제 마음에 믿음과 힘이 생겼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삼촌과 가족들은 제게 인터뷰를 강요했고, 제가 어떻게 말하든 그들은 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 가족들은 저를 감시하기 시작했고, 제가 잠을 잘 때조차 밖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저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저는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단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을 뿐인데, 가족들은 저를 그렇게 대한 것입니다.
제가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남동생이 갑자기 제 방으로 와서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낡은 핸드폰 하나를 가져다주더니 인터넷까지 연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낭송 영상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은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이 네게 행한 것을 너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는 모두 네가 배워야 할 공과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에게 행한 것과 보여 준 것은 모두 그를 사랑하게 하고 그를 진실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나아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고난받게 하지 않았다면, 솔직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더욱 의미하며, 사람은 마음으로 더욱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으로 도달하게 되느냐? 만약 고난과 연단,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 긍휼만 베푼다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천박하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마련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 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고통이 너무 커서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심지어 극도의 비통에 빠질 때도 있지만, 체험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사역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토대로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중에서) 그런 막막한 상황 속에서 연약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게 닥친 일들이 아무 어려움 없이 순조롭기만 했다면, 제가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자애뿐이었을 것이고, 하나님 사역에 대한 저의 인식은 너무나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에 대한 저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족의 통제와 박해,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무시를 마주하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마치 감옥에 갇혀 출구가 없는 것 같았지만, 이 환경을 통해 저는 저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제가 너무나 연약하며 제 분량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 저는 스스로 하나님께 큰 믿음이 있어서 어떤 환경이 닥쳐도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저는 그것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지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왜 하나님은 제게 이런 환경을 겪게 하시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진정으로 저의 부족함을 인식했고, 오직 고난의 환경을 겪어야만 자신을 진실하게 인식하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부모님은 저를 강제로 한 목사님에게 데려가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또한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하려고 억지로 당신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미혹된 거야. 길 잃은 탕자라고. 만약 돌아와서 부모 곁으로 온다면 주님께서 너를 돌봐 주시겠지만, 계속 주님을 거역하면 더는 돌봐 주시지 않을 거다. 효도하는 착한 아이가 되어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너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 저는 이것이 사탄의 시험임을 알았습니다. 두 분은 제가 미혹되었고 제 믿음이 틀렸다고 말했지만,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일부 진리를 깨달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임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지 미혹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참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예전 은혜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와 같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주 예수님을 저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개의치 않았고, 고난을 받고 목숨을 버릴지언정 주님을 따라 길 끝까지 갔습니다. 지금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많은 진리의 비밀을 깨달았기에 다시는 종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종교에는 새로운 빛 비춤도 없고 성령 역사도 없으며, 그 안에서는 결코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단지 제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일 뿐이어서 저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저는 부모님의 압박에 못 이겨 다시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걸핏하면 유언비어를 퍼뜨려 하나님을 정죄했고, 제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학우들도 저를 오해해서 나쁜 사람으로 여기며 무시했고, 심지어 총장님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네가 리더야? 절대로 학우들을 너희 예배에 초대하는 일이 없도록. 어머니가 이렇게 신경쓰시는데, 마땅히 공부에 전념하고 부모님 말씀을 들어야지. 안 그럼 학교에서 제적이야. 하나님을 믿으려면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기도하면 되잖아.” 부모님과 총장님은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매일 사람을 붙여 저를 지켜보게 했는데, 선생님, 학우들, 친구, 가족, 심지어 학교 경비 아저씨까지 저를 감시했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정시에 저를 등하교시키셨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늦게 퇴근하시면, 학교 경비 아저씨에게 저를 지켜보게 하셨고, 저는 총장실 근처에서 어머니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계속 하나님을 믿을까 봐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만약 또 하나님 믿다가 들키면, 경찰에 알려서 너랑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그 사람들 다 잡아넣으라고 할 거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우리 엄마 맞아? 내 모든 걸 통제하면서 내 감정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잖아.’ 이모도 말했습니다. “도망치려면 어디 한번 가 봐라. 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테니!” 그 기간 동안 저는 예배도 참석할 수 없고, 본분도 이행할 수 없어서 매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사탄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을 의지하며 마주하자.’
그 후 저는 대학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 역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도였습니다. 친구는 제게 자신의 핸드폰을 주며 클로이(Chloe) 자매님과 연락해 보라고 했습니다. 클로이 자매님은 제게 영화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에서 형제들이 감옥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형제님들 중에는 10년 동안 감옥에 갇혀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고 교회 생활도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감옥 안에서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를 느꼈다고 해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형제들은 10년이나 감옥에 있었는데, 난 지금 겨우 가족의 방해와 통제를 받고 있을 뿐이야. 나도 이렇게 연약해질 게 아니라 하나님께 믿음을 가져야 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몇 단락 읽었습니다.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가 그렇게 사역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며, 또한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입장을 지키고 굳게 서야 한다. 욥이 이 수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지만,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 …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바로 사람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아 이를 수 없을 때, 갖춰야 하는 참된 믿음과 진실한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믿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네가 실생활에서 문제에 맞닥뜨릴 때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를 어떻게 느끼고 깨달아야 할까?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여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 모를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네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염원과 실제가 있음을 보일 수 있을까? 우선 너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런 후에는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 즉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사람과 일과 사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점차적으로 너에게 나타나는 것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사람과 일 가운데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을 살피고 깨닫는 것이다.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고, 사람이 행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도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얻고자 하는 성과와 맺고자 하는 결실을 아는 것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안배한 사람과 일, 그리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창조주가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어떻게 그의 생명을 사람에게 공급하며, 어떻게 진리를 사람 안에 만들어 넣는지를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비록 가족과 선생님의 핍박과 방해에 부딪혀 연약해지긴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서도,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원망해서도 안 되며, 욥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욥은 시련이 닥쳤을 때 자신이 태어날 날을 저주했지만, 하나님을 부인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핍박에 직면할 때마다 늘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제게 이 모든 일이 닥치게 하시나요? 왜 저는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데 이런 고난과 굴욕을 겪어야 하나요?’ 저는 이 환경을 겪고 싶지 않고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환경이 닥쳤을 때는 우선 기다리고, 그런 다음 구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명확히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반드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 저는 더 많이 기도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비록 이런 환경에서 어려움을 느껴 마음이 연약하지만, 당신의 말씀이 제게 힘을 주고, 제 마음에 평안을 주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셨습니다. 매일 밤 사람들에게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고, 심지어는 기도 중에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그 말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술에 취하면 제게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셨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었습니다. 『지금 추구하지 않는 자와 추구하는 자는 종착지가 다른 두 부류의 사람이다. 진리를 알고 실행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대상에 속하지만, 참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마귀이자 원수이며, 천사장의 후예이자 멸망될 대상이다. 막연한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는 신자 또한 마귀 아니겠느냐? … 성육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전부가 마귀로서 훗날 더더욱 멸망될 대상이다. 믿으면서도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자들 또한 모두 멸망될 대상이다. 살아남는 사람은 전부 연단의 고통을 겪고 굳게 선 사람이고, 진정으로 시련을 겪은 사람이다. 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원수이다. 즉, 이 흐름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하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적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사탄은 누구이고 마귀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더냐?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 무리들 아니더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아니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제가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그분을 대적하고 정죄하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늘 하나님을 모독하고 정죄하셨습니다. 두 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고, 두 분은 하나님의 원수이자 마귀 사탄이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멸해질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부모님께 구속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재주가 신통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오만하고 야심이 크다 할지라도, 아무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또 아무리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재능이 탁월하고 사람을 협박하는 수법과 권모술수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아무리 그것의 존재 형식이 변화무쌍할지라도 상관없다. 사탄은 지금껏 생명 있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만물의 생존 법칙과 규율을 정하지도 못했으며,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주관하거나 주재하지 못했다. 우주 창공에는 사탄에 의해 생기고 사탄으로 인해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아무것도 없고, 사탄이 주재하고 주관하는 사람이나 사물 또한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사탄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에 순종해야만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물 한 방울, 모래 한 알도 함부로 만질 수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개미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만든 인류는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의 눈에 사탄은 산속의 백합만도 못하고, 하늘을 나는 새만도 못하며, 바닷속의 물고기만도 못하고, 땅 위의 구더기만도 못하다. 만물 가운데 사탄의 역할은 만물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경륜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사탄의 본성이 아무리 악독하고 본질이 아무리 사악해도 상관없다. 사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분수에 맞게 자신의 기능,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과 부각물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본질이자 본래 자리이다. 사탄의 본질은 생명과 무관하고, 능력과 무관하며, 권병과 무관하다. 사탄은 하나님 수중에 있는 장난감,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과 힘을 주었습니다. 지금 제 주위에는 온통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뿐이고, 부모님도 온갖 방법으로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제가 학교에 있든 집에 있든 매일 저를 감시했고, 많은 간계와 수단을 동원해 제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두 분은 제 삶을 완전히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희망을 주었고, 저는 부모님이 겉으로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주관하시며, 저의 모든 것 또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아무리 가족을 통해 저를 교란해도, 사탄은 단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저는 가족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족의 핍박을 겪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따르려는 제 결심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해 굳게 서서 증거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 제 마음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 후, 부모님은 제가 수업 필기할 것이 너무 많다며 제게 노트북 한 대를 사 주셨습니다. 학교에는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친구들과 학우들이 저를 감시했기에, 저는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학교 와이파이에 연결하고 체험 간증 영상과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양 영상 등을 보았습니다. 가족들이 친구들을 시켜 저를 지켜보게 하니, 저는 자유롭게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도, 교회 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어느 날 새벽에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지금 저는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교회 생활을 하며 자유롭게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더없이 평안하고 해방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무척 감사드립니다!